주일말씀2015.12.06 (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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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06 (일)
- 성경 본문
- 열왕기상 5장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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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206 주일(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hwp1
2015년 12월 06일 주일
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
[ 열왕기상 5장 18절 ]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
The craftsmen of Solomon and Hiram
and the men of Gebal cut and prepared
the timber and stone for the building of
the temple.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제 12월입니다.
어느덧 2015년이 다 지나갔습니다.
이번 주 말씀을 듣고, 다음 주
말레이시아 순회 말씀을 들으면,
이제 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2016년의 방향’이
나올 것입니다.
◎ 오늘은 ‘차원’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의 주제는
‘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입니다. 그렇다면, 내년의
주제가 ‘차원을 높여라.’이냐고요?
그건 말씀을 들어 봐야 알겠지요?
◎ 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사람들은 죽어 가고 있는데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시간>도
‘흘러간 시간’은 죽은 것이듯,
<사람>도
‘지나간 삶’은 죽은 것입니다.
모두 살아서 돌아다니니,
‘과거가 죽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육>이 살아서 돌아다니니,
‘영혼이 죽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떤 영이 ‘죽은 영’일까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주관권을
벗어난 영>은 ‘죽음의 선, 사선(死線)을
넘어서 사는 영들’입니다.
그러나 <육>은 살아 있으니,
<육>이 ‘주의 말씀’대로 행한다면,
<육>도 <영>도 ‘생명의 주관권’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육>이 살아
있는데도 다시는 ‘빛으로 소생할 수
없는 영’도 있습니다. 곧 그 사고와
생각과 행위가 아예 ‘사망권’에 처해서
자신의 행위를 ‘선’으로 여기면서
‘악’에 속해 사는 자들의 영입니다.
이런 자들의 <영>은 아예
‘사망에 속한 영’으로 죽어 버려
다시는 빛 가운데로 나와 소생하지
못하고 다시는 ‘생명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끝납니다.
이단에 속해 사는 자,
우상에 속해 사는 자,
악에 속해 사는 자,
하나님과 주를 믿지 않고 사는 자들은
그 <육>도 <영>도 거의 ‘사망’에
속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육>이
‘사망권’에 속해 살다가 죽으면, 그
<영>도 영원히 ‘사망권’에 묻힙니다.
더러는 <육>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과 주를 믿음으로 그 <영>도
점점 소생하여 빛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더러는 <영>이 영계에서 다시
하나님을 믿고 주를 믿어 점점
소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삽니다.
왜요?
<육의 삶>만 생각하면서 사니,
<영의 삶>은 아예 생각조차
안 하기 때문입니다.
<영의 세계의 것들>은 결국
‘육의 뇌’를 통해 ‘생각과 기억’으로
전달받습니다. 고로 <뇌>가 굳거나
늙거나 <생각>이 온전치 못하고
흐리멍덩하면 영의 세계의 것들을
전달받지 못하고, 혹여 전달을
받더라도 흐릿하게 받습니다.
자기 육이 잠을 잘 때 꿈에서도
<자기 혼>이 영의 세계를 보기도 하고,
자기 육이 활동하는 생시에서도
<자기 혼>이 영의 세계를 접해서
보기도 합니다. 많은 것을 봐도
생각이 나지 않고, 인지를 못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깊이
들어가면 ‘생각’이 총명해져서
<혼이 본 것들>을 ‘뇌’에서 거의
기억하고, 혹은, 육의 생각을 떠나서
<혼과 영>으로 직접 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차원의 것들’만 보고
느끼고 삽니다. 고로 ‘그다음 차원의
것들’은 모르고 삽니다.
◎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들어요.
차원을 높여야 ‘상황’도 다르게
보이고, ‘답’도 다르게 받습니다.
여러분이 <자기 차원>에만 있으면,
그 차원에만 처하고,
그 차원의 답만 받게 됩니다.
차원이 같아야 ‘답’도 같습니다.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릅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차원이 같으면 ‘답’도 같지만,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
먼저 이 말씀을 가지고,
알아듣도록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서
<차원>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갓난아기>가 배가 고픈데, 어른
식단으로 밥을 주면 안 맞겠지요?
<어른>이 배가 고픈데 갓난아기
식단으로 밥을 줘도 역시 안 맞습니다.
<각자의 차원>대로 ‘답’을 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고로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보통으로 사는 자>에게
“땅도 1000평을 사고, 집도
100평으로 지어라.” 하면서,
‘상(上)차원의 방식과 답’을 주면,
‘중간 차원에 사는 자’에게는
안 맞습니다. 그 방식대로
행하다가는 망합니다.
<각자의 차원>대로 ‘답’을 줘야
됩니다. 고로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가령 집을 사려 하는데, <아파트>를
산다 합시다. 그러면 아파트 차원대로
‘계산’이 나오고 ‘답’이 나옵니다.
<별장>을 사거나 <땅에다 지은 집>을
산다면, 아파트를 사려고 할 때와는
‘계산’도 달라지고 ‘상황’도 달라지고
‘답’도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구약, 신약,
성약>으로 한 단계씩 차원을
높여 펼쳐져 왔습니다.
2015_1206 주일(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hwp2
<구약 차원>에 따라서 법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답도 다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모든 법이
‘종의 법’이고, 모든 상황이
‘종의 입장’이고, 모든 말씀과 답이
‘종급’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종에게 주는 사랑 차원’입니다.
<신약 차원>에 따라서
법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답도 다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다릅니다.
<신약>에서는
모든 법이 ‘자녀 법’이고,
모든 상황이 ‘자녀 입장’이고,
모든 말씀과 답이 ‘자녀급’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자녀에게 주는 사랑 차원’입니다.
<성약 차원>에 따라서
법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답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다릅니다.
<성약>에서는
모든 법이 ‘신부 법’이고,
모든 상황이 ‘신부 입장’이고,
모든 말씀과 답이 ‘신부급’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신부에게
주는 사랑 차원’입니다.
<구약에 속한 자>에게
‘신약 식 답’을 주면 안 맞습니다.
<신약에 속한 자>에게
‘성약 식 답’을 줘도 안 맞습니다.
이 시대 <성약 식 답>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이 시대 말씀’을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이 말씀>이
‘자신의 답’이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상황’도 달라지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달라집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초등학교 학문>은 아무리 배우고
알아도, 아무리 큰소리치면서 자랑해도
‘그 차원’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답은
모두 ‘초등학교 차원’입니다. 그래서
<한 단계 차원>을 높여 ‘중학교
차원’에 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시대 차원>은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아무리 천둥 번개 치듯 큰소리를 쳐도
‘구시대 차원’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구시대의 것’입니다.
<구시대 말씀>은 아무리 차원이
높아도 ‘역시 구시대’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차원 높게 행해도 ‘구시대
구원’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한 단계 차원>을 높여
‘새 역사’로 와야 됩니다. <끝>
◎ 지금은 왜 <한 단계 차원>을
높여야 하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또 설명해 주겠습니다.
다시 화면을 볼까요?) <영상2>
<초등학교 6학년>은
‘초등학교에서 최고 높은 차원’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은
‘고등학교에서 최고 낮은 차원’입니다.
아무리 ‘초등학교 고학년’이 안다고
큰소리쳐도 ‘고등학교 저학년’의
수준을 못 따라옵니다. 초등학교
수준을 못 벗어납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시대의 말>은 아무리
차원이 높아도 ‘구시대’이고,
<새 시대의 말>은 아무리
차원이 낮아도 ‘새 시대’입니다.
아예 차원이 다릅니다.
<구시대>에서
큰소리치면서 ‘최고로 높은 자’라도
<새 시대>로 온 ‘아이’만 못합니다.
<새 시대>는 ‘아이’로 태어났어도
‘차원 높은 새 시대’입니다. 고로
<구시대 어른>이 <새 시대 아이>를
못 따라옵니다. 그래서 반드시
<한 단계 차원>을 높여 ‘새 역사’로
와야 됩니다. <끝>
(* 왜 <한 단계 차원>을 높여야
되는지, 또 설명해 주겠습니다.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아무리 <100년 된 고욤나무>라도
열매는 ‘고욤 열매’입니다. 아무리
<3년 된 어린 참감나무>라도 열매는
‘참감’입니다. 100년 된 고욤나무에서
열린 ‘고욤 열매’가 아무리 커도
3년 된 참감나무에서 열린 ‘참감’의
크기를 못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새 시대>는 3년 됐어도
‘참감 같은 큰 열매’가 열립니다.
<고욤나무>를 베고, <참감나무>를
접붙여서 그러합니다.
<고욤나무>는 무엇입니까?
‘구시대’입니다. ‘자기’입니다.
<참감나무>는 무엇입니까?
‘구원자’입니다.
모두 <시대 구원자>라는 참감나무를
접붙여야 ‘참신부 열매’가 열려
‘구원’받고 ‘휴거’됩니다. <끝>
<고욤나무>는 아무리 커도 ‘고욤나무,
고욤 열매’입니다. <고욤나무>에서는
절대 ‘참감’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감나무>는 아무리 작아도
‘참감나무, 참감 열매’입니다.
이와 같이 <그 세계>에서는
‘그 차원 이상’은 못 보고 못
배웁니다. <차원>에 따라서
‘상황’도 다르고 ‘대함’도 다르고,
‘법’도 다르고 ‘답’도 다릅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약>에서는
‘자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신약>에서는
‘신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그 차원의 답,
그 차원의 상황, 그 차원의 대함’
뿐입니다.
<신부 열매>는
오직 ‘성약’에서 거둡니다.
<성약역사>가 무엇입니까?
성경의 모든 비밀을 밝히고,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역사입니다. <휴거>에 대해서
배우고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밝힌
‘성자와 분체’를 알고, 어서
‘이 시대 성령의 역사, 휴거의 역사’에
동참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 인생의 목적>도 이루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도 이룹니다!
똑같이 <성약 섭리역사>에 왔어도
각자 ‘차원’이 다릅니다.
<구원>도 <휴거>도 ‘자기 삶,
자기 행위의 차원’대로 이룹니다.
2015_1206 주일(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hwp3
똑같이 <휴거 700선)을 이뤄도
‘자기 삶의 차원’대로 이룹니다.
모두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고욤나무>에서 한 단계 차원을
높이니, <참감나무>가 되어 평생
‘참감 열매’를 얻게 됩니다.
비교가 안 되지요.
하나님의 역사도
‘한 차원씩’ 높여 왔듯이,
마지막으로 최고로 차원 높인
섭리역사에서도 각자 ‘한 차원씩’
높여야 상상도 못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그렇다면 ‘차원’이란 무엇인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차원>은
‘군대의 계급’과 같고,
‘공무원의 급수’와 같고,
‘회사의 직급’과 같습니다.
자기 실력대로
‘차원’이 좌우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뿐 아니라 <영계>에서도
‘차원’, 곧 ‘직급’이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에도 ‘직급’이 있어서
서러운데, 영계에서까지 ‘직급’이
있으면 어쩌나?)
<영계>라도
‘직급’이 없으면 ‘무질서’합니다.
또한 <영>은 ‘육이 세상에서 행한
공력’으로 직급을 갖게 됩니다.
<육신>이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공력을 쌓았으니, <영>이
당연히 ‘직급’을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영의 직급’은
공의로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성삼위와 주가 주신 사명>이
‘직급’이 됩니다.
하늘이 주신 사명을 충성으로 행하면,
세상의 직급과 명칭으로는 표현 못
하는 직위와 권위를 주십니다.
천사들도 각자
‘자기 직급’이 있습니다. 왜요?
각자 ‘사역’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천사들도 ‘자기에게 맞는 직급’을
가지고 사역을 합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영적 사명과 직급>을 받는데요,
이것은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주고, ‘그 사람에게 맞는 것’을 주어
개성대로 행하게 합니다.
사랑·믿음·행위·선·생명 구원 등
각 사람이 행한 행위의 결과로
<영적 사명과 직급>이 결정됩니다.
<육계>에서는 ‘직급’으로 다스리고
지시하고 주관하지만, <영계>에서는
‘직급’으로 누구를 다스리고
지시하기보다는 ‘자기 직급’대로
자기가 스스로 행합니다.
<영계의 직급>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영>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왜요?
<영계의 직급>은 ‘자기 영체’가 가지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옷>으로 입고 다니고, <빛>에 싸여
다니고, <미>로 갖춰져 아름다움을
풍기며 다닙니다.
<영계>에서는 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영이 얼마나 빛이 나는지, 영이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를 보면, 그 영이
‘어떤 급’인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도 ‘등급’이 있고,
영계에서도 ‘등급’이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자연 동굴>도 나라마다
형성된 대로 ‘등급’이 있습니다.
A급, B급, C급 등 개성대로
‘등급’을 매깁니다. A급은 최고
급이고, A급 중에서도 개성대로
또 나뉩니다.
<문화재>도 생긴 모양대로
‘각종 등급’이 있습니다.
<흐르는 물>도 ‘내, 하천, 강’이
있습니다. <강>도 얼마나 많은 물이
흘러서 얼마나 많은 자들에게
쓰이느냐에 따라서 ‘급’이 좌우됩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러합니다.
구약 강, 신약 강, 성약 강입니다.
하나님은 <구약>보다 <신약>에서
더 차원 높여 행하셨고, <신약>보다
<성약>에서 더 차원 높여 행하십니다.
<구약>은 할아버지 -
<신약>은 자녀 -
<성약>은 손자와 같습니다.
무엇을 해도
‘세 번째’가 많이 하고,
과거에 한 것보다
더 낫게, 더 좋게 합니다.
농사를 지어 봐도, 집을 지어 봐도,
작품을 만들어 봐도 그러합니다.
월명동을 개발할 때도 그러했습니다.
돌을 쌓을수록 ‘과거에 쌓았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더 낫게, 더 좋게
쌓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쓰실 때도 그러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에 썼던
사람’과는 비교가 안 되게 더 큰 자,
더 나은 자를 뽑아서 쓰셨습니다. <끝>
<이 세상>에서는
‘실권’을 못 잡았으나,
<영원한 세계>에서는 부지런히
뛰고 달려 ‘권세’를 얻기 바랍니다.
누가 차원을 높여 계급을 달게 될지,
예정은 없습니다. 삼위가 원하시는
대로 행하여 자기 공력을 쌓은 자가
주인입니다. 어서 뛰고 달리며
차원 높이기를 축원합니다. <전환>
말씀이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다.
◎ 지금까지 ‘차원’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모두에게 전할 메시지를 전하겠습니다.
인생도, 영도
‘차원과 급’이 있습니다. 모두
‘A급 인생, 최고 급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육의 생각과
행실의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육의 생각과 행실의 차원>을 높이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육의 생각과 행실의 차원>을 높이면
<영의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한 차원> 더 높이면, ‘현재 차원에서
원하는 것’을 받게 됩니다.
군대에서
<소대장>은
30여 명을 관리하고 다스립니다.
<중대장>은
100여 명을 관리하고 다스립니다.
<대대장>은
450~600명을 관리하고 다스립니다.
이렇게 ‘한 차원’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러합니다.
2015_1206 주일(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hwp4
<한 차원>만 높아도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월명동 함석집에서 ‘한 차원’ 높이니,
지금의 ‘청기와집’이 되었습니다.
<한 차원> 높은데도 비교가 안 됩니다.
어서 옛것을 때려 부수고,
차원을 높이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구약, 신약, 성약’입니다. 하나님은
‘한 단계’씩 차원을 높여서 역사를
펴 오셨습니다. 그런데 <한 차원의
차이>는 ‘동, 은, 금’ 같은 차이입니다.
<수석>은 1차원이었습니다.
한 차원 높인 것이
<수석 바위, 형상 바위>였습니다.
한 차원 더 높이니
<월명동 지형>입니다.
월명동 지형을 보니
‘사람의 여러 가지 형상, 별 형상,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 등
아름답고 신비한 형상들이었습니다.
<한 차원> 더 높이니, 얼마나
엄청납니까? 그래서 때마다
<한 차원씩>만 높이라는 것입니다.
<끝>
<한 차원>은
‘조금만 더’ 하면 높일 수 있습니다.
모두 ‘조금만 더’해서 <한 차원>씩
높이기 바랍니다! 늦게 하면,
차원을 높여도 써먹고 즐기는
날이 적어집니다.
고로 억울하고 아깝습니다.
빨리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그래야
써먹고 즐기는 날이 많습니다.
차원을 높여야 최고로 얻고,
최고로 보고, 최고로 쓰고 갑니다.
조건을 세워 차원을 높인 자만 얻고
누리고 갑니다. 모두 차원 높여
휴거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최고 황금성>을 얻었으니, 이제
거기서 이상적으로 살도록 ‘육’이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육>이 차원을 높이지 않으면,
<영>이 휴거됐어도 ‘휴거의 삶’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좋은 차’를 줬어도
‘기름 넣을 돈’이 없어서 차를
운영하지 못하는 격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모시고 섬기고 사랑하며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주와 함께
행하며 <육>이 꼭!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그래야 ‘휴거의 삶’을
운영하면서 <영>도 차원을 높여
‘황금성’에서 영원히 쓰고 누리며
삽니다.
이 시대에 신앙의 잠을 자는 자들과
하나님의 역사를 악평하는 자들은
안 보니 모르고, 못 얻으니 모릅니다.
보고 따르는 자만 알고, 행하면서 얻는
자만 압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고생돼도 ‘생명길’로 가는
자에게만 주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차원을 높이면 옛것을 벗어나
변화되고, 기뻐하고, 희망이 이루어져
이상세계입니다.
<월명동 호수>도 차원을 높이기
전에는 그곳을 ‘수영장’으로도
사용할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운동장 한쪽에 ‘수영장’을 따로
만들려고 계획하고 그리도
노력했습니다. 운동장 밑에
‘지하 수영장’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리도 몸부림치고 구상하며
기도하다가 영계에서 구상을 받고
<이미 있는 호수>에서 차원을 높여
‘수영장’으로도 쓰게 됐습니다.
그래서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차원을 높이면 편하고, 문제가
해결되고, 희망이 생깁니다.
이 세상의 건물이나 전자 제품들도
보세요. 그리도 차원 높여 발달시키고
개발하니, 각 분야의 이상세계를
만들어서 편하게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차원 높인 자>는
‘이미 아래 차원’에 처해 살아 봤기에
<아래 차원>이 어떠한지 너무나 잘
압니다.
고로 <아래 차원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큰소리치며 자기 것을
자랑해도 별것 아니다 생각하고
거저 줘도 마다합니다. 그러나
<차원을 높이지 못한 자>는
‘위 차원의 것’을 아예 못 봤고,
또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줄게요.
한 사람이
‘아파트’에서 살다가 곤고하여
차원을 높여서 그 돈을 가지고
땅에 별장을 짓고, 넓은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차원을 높이는 것은
힘들었지만 하나하나 갖추고 행하면서
결국 별장과 넓은 정원을 만들어
부활되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어떤 사람이
자기는 ‘좋은 아파트’에서 산다고
그리도 자랑하면서, 한 턱 쏠 테니
모두 자기 집에 놀러오라고 했습니다.
그 아파트에 가 보니,
‘자기가 살던 옛집’이었습니다.
<그 아래 차원에 사는 자들>은
그 아파트를 보고 좋다고 하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위 차원에 사는 자>만
그 아파트는 ‘아래 차원’이라는 것을
알고 아파트를 보고도 별로 안
좋아하고 시큰둥했습니다.
방을 구경시켜 준다고 해도
싫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상의 차원>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장을 지어 놓고 사는 사람이
“다음에는 내 집에 놀러 와.
내가 한 턱 쏠게. 사실 나는 이
아파트에서 살다가 다른 데로 이사
갔어.”했습니다.
다음에 그 집에 가 보니,
코스도 길도 다르고, 집의
모양도 환경도 아예 달랐습니다.
그곳은 집도 좋고, 환경도 좋고,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좋은
만큼 하나하나 갖추면서 노력했기에
차원을 높여 부활되어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시대 섭리역사>와
<구시대 기성>이 이러합니다.
차원을 높인 섭리역사에 와서
부활되고 휴거되어 살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섭리사 안에서도 저마다 때가 되면
<자기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전도사, 강도사, 목사 차원도 있지만,
<영적 신앙의 차원>을 높이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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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더 일체 되는 차원 높이기.
말씀 증거, 가르침의 차원 높이기.
성삼위와 주 사랑, 섬김의 차원 높이기.
행실 차원, 조건 세우기 차원 높이기.
전도 차원 높이기.
생각 차원 높이기.
기도 차원 높이기.
교육 차원 높이기.
말씀 차원 높이기.
계시 차원 높이기.
인격과 말과 행실의 차원 높이기.
방법의 차원 높이기.
경영 차원 높이기.
경제 차원 높이기. (입니다.)
2016년은 (잠시 쉬었다가) ‘차원을
높이는 해’입니다. (주제 따로 발표)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차원 높인 자>를 못 따라갑니다.
어떻게 ‘걷는 자’가 ‘뛰는 자’를
따라가며, ‘뛰는 자’가 ‘경주하는 자’를
따라가겠습니까?
<육>으로 하는 자는 1차원,
<혼>으로 하는 자는 2차원
<영>으로 하는 자는 3차원입니다.
<육>으로 하는 자가 어떻게
<혼과 영>으로 하는 자를
따라가겠습니까? <끝>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차원 높인 자>는 거기에 해당되는
것을 얻고, 자기만 알고 말하지
않는다. 말해 달라고만 하지 말고,
너도 차원을 높여서 받고 그 차원에서
살아라. 차원을 높이는 데 미쳐야,
차원을 높인다. 섭리인 모두에게
<최고 차원의 시대, 섭리역사>를
줬으니, 모두 최고 역사에서
최선을 다하기다.”
<말씀 마무리> 중요 부분
◎ 중요한 것을 한 가지 더 말씀하고,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르면,
차원을 못 높입니다. 고로 배워야
됩니다. 그리고 가르쳐 주고 도와줘야
됩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들>은 ‘최고로 차원을 높인
자’로서 ‘최고 급에 오른 자’입니다.
고로 세상 어떤 것도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었으니,
더 좋게 차원을 높이기 바랍니다.
차원을 높이지 않으면, 그 세계에서는
‘더 이상적인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차원을 높이는 때와 기회가 있습니다.
나무를 키울 때도
‘차원을 높일 때’가 있습니다.
나무가 한창 클 때 퇴비해 줘야
나무가 한 차원 더 큽니다.
그때가 지나면 퇴비를 줘도
효과가 20% 정도밖에 안 납니다.
제때 해야 됩니다. 인생들도
그러합니다. ‘차원을 높일 때’가
있습니다.
한창 클 때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나이가 더 들면, 힘들어서 차원을 못
높입니다. 늦기 전에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늦게 하면, 차원을 높였어도
그만큼 쓰고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하기. 빨리 차원 높이기입니다.
그래야 쓰고 누릴 시간이 많습니다.
서둘러서 쫓기면서 뛰듯 하면,
그 시간에 ‘불가능한 것’도 충분히
합니다.
한계가 왔을 때,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차원을 높이면, 한계를 벗어나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합니다.
걸어가서는 불가능하니,
사람들은 차원을 높여 자전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어서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휴거됐을 때 더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휴거의 삶’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걷기, 뛰기, 경주하기입니다.
자갈, 돌, 바위입니다.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입니다. <한 차원> 높였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올라가야 됩니다.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어떻게 차원을 높이겠습니까?
행하면서 높이기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차의 속력을 내려 할 때도
<마음>만으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서
속력을 내야 됩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행해야 됩니다.
행하면서 차원을 높이기입니다. <끝>
올림픽경기 때도 자기가
겨루고 행한 대로 각 종목별로
‘금, 은, 동메달’을 줍니다.
자기가 행한 차원대로 메달을
받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할까요?
차원을 높일 때는 하나하나
행하면서 갖추면서 높여야 됩니다.
<월명동 자연성전>을
예로 들어서 말씀할게요.
과거에는
<섭리사 성전>이 없어서 서울에다
‘전세살이 집’을 얻어서 성전으로
썼고, 모든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곳’이나 ‘공터’를 찾아서 섭리인들이
모여 말씀도 듣고 운동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섭리사 핵심 성전’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월명동>입니다.
<월명동>은 ‘최고 차원의 지형’을
찾아서 ‘최고 차원의 구상’을 받아
개발하여 만든 <자연성전>입니다.
그러나 한 번에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하나 구하고, 하나하나 행하고,
하나하나 갖추면서 지금까지 단계별로
계속 ‘차원’을 높여 왔습니다.
<핵심 성전>이 갖춰지고, 섭리사도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갖춰지니 섭리사 각 지역과
각 나라도 전세살이를 벗어나
<성전 구입, 성전 건축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갖추지 않으면,
‘차원’을 높여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고로 하나하나 행하면서 갖추면서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큰 차>만 산다고 되겠습니까?
‘운영할 능력’이 있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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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차>만 사 놓고 ‘운영’을 못 하면,
기름도 못 넣고 세금도 못 내서 결국
못 타게 됩니다. 고로 <차>를 사려면,
‘차를 운영할 능력’을 갖춰야 됩니다.
<만사의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에서도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돌과 재목’을 갖췄다고
했습니다. <신앙 세계>도 그러합니다.
하나하나 갖추면서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성자는 섭리사 신부들을 휴거시키고
떠나셨습니다. 이는 ‘최고 좋은 큰
차’를 사 주고 간 격입니다.
이제는 각자가
‘이 차’를 운영해야 됩니다.
그러나 갖추지 않으면,
운영하지 못합니다.
고로 부지런히 하여
갖추면서 때마다 ‘차원’을 높여
<성자가 선물로 주고 가신 휴거의
차>를 운영하면서 하나님과 성령님이
원하시는 <휴거 700선>까지 오르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가치성을 아는 것의 차원>을 높여라.
<가치>를 모르면, 주와 같이 천국에
못 간다. 같이 차원 높여
‘차원 높은 세계’로 가자고 하며,
네게 돈을 주고 ‘이 차’를 타고 같이
가자고 해도 오히려 그 돈으로 먹고
즐기느라 차를 못 타고 걸어오니,
어떻게 같이 갈 수 있겠느냐.
<시간>이 ‘돈’이다.
<귀한 시간>을 가지고
‘삼위의 뜻’대로 귀히 쓰면서,
제때 ‘그 차’를 타고 같이!! 가자.”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