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주일말씀2015.12.09 (수)

151209 수요말씀

선포일
2015.12.09 (수)
성경 본문
열왕기상 5장 18

첨부 파일

<2015년 12월 9일 수요말씀> 갖추고 행하면서 차원을 높여라 본 문 열왕기상 5장 18절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주일말씀에 이어서 ‘차원’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사람들은 죽어 가고 있는데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시간>도 ‘흘러간 시간’은 죽은 것이듯, <사람>도 ‘지나간 삶’은 죽은 것입니다.  모두 살아서 돌아다니니, ‘과거가 죽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 <육>이 살아서 돌아다니니, ‘영혼이 죽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 그렇다면, 어떤 영이 ‘죽은 영’일까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주관권을 벗어난 영>은 ‘죽음의 선, 사선(死線)을 넘어서 사는 영들’입니다. 그러나 <육>은 살아 있으니, <육>이 ‘주의 말씀’대로 행한다면, <육>도 <영>도 ‘생명의 주관권’으로 돌아옵니다.  그러나 <육>이 살아 있는데도 다시는 ‘빛으로 소생할 수 없는 영’도 있습니다. 곧 그 사고와 생각과 행위가 아예 ‘사망권’에 처해서 자신의 행위를 ‘선’으로 여기면서 ‘악’에 속해 사는 자들의 영입니다. 이런 자들의 <영>은 아예 ‘사망에 속한 영’으로 죽어 버려 다시는 빛 가운데로 나와 소생하지 못하고 다시는 ‘생명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끝납니다.  이단에 속해 사는 자, 우상에 속해 사는 자, 악에 속해 사는 자, 하나님과 주를 믿지 않고 사는 자들은 그 <육>도 <영>도 거의 ‘사망’에 속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육>이 ‘사망권’에 속해 살다가 죽으면, 그 <영>도 영원히 ‘사망권’에 묻힙니다. 더러는 <육>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과 주를 믿음으로 그 <영>도 점점 소생하여 빛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더러는 <영>이 영계에서 다시 하나님을 믿고 주를 믿어 점점 소생하기도 합니다. 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삽니다. 왜요? <육의 삶>만 생각하면서 사니, <영의 삶>은 아예 생각조차 안 하기 때문입니다. <영의 세계의 것들>은 결국 ‘육의 뇌’를 통해 ‘생각과 기억’으로 전달받습니다. 고로 <뇌>가 굳거나 늙거나 <생각>이 온전치 못하고 흐리멍덩하면 영의 세계의 것들을 전달받지 못하고, 혹여 전달을 받더라도 흐릿하게 받습니다.  자기 육이 잠을 잘 때 꿈에서도 <자기 혼>이 영의 세계를 보기도 하고, 자기 육이 활동하는 생시에서도 <자기 혼>이 영의 세계를 접해서 보기도 합니다. 많은 것을 봐도 생각이 나지 않고, 인지를 못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영계에 깊이 들어가면 ‘생각’이 총명해져서 <혼이 본 것들>을 ‘뇌’에서 거의 기억하고, 혹은, 육의 생각을 떠나서 <혼과 영>으로 직접 보기도 합니다.  사람들은 ‘자기 차원의 것들’만 보고 느끼고 삽니다. 고로 ‘그다음 차원의 것들’은 모르고 삽니다. ◎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들어요.  차원을 높여야 ‘상황’도 다르게 보이고, ‘답’도 다르게 받습니다.  여러분이 <자기 차원>에만 있으면, 그 차원에만 처하고, 그 차원의 답만 받게 됩니다.  차원이 같아야 ‘답’도 같습니다.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릅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차원이 같으면 ‘답’도 같지만,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 먼저 이 말씀을 가지고, 알아듣도록 하나하나 설명해 주면서 <차원>에 대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 <갓난아기>가 배가 고픈데, 어른 식단으로 밥을 주면 안 맞겠지요? <어른>이 배가 고픈데 갓난아기 식단으로 밥을 줘도 역시 안 맞습니다. <각자의 차원>대로 ‘답’을 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고로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 <부자>가 <보통으로 사는 자>에게 “땅도 1000평을 사고, 집도 100평으로 지어라.” 하면서, ‘상(上)차원의 방식과 답’을 주면, ‘중간 차원에 사는 자’에게는 안 맞습니다. 그 방식대로 행하다가는 망합니다. <각자의 차원>대로 ‘답’을 줘야 됩니다. 고로 차원이 다르면, ‘답’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 가령 집을 사려 하는데, <아파트>를 산다 합시다. 그러면 아파트 차원대로 ‘계산’이 나오고 ‘답’이 나옵니다. <별장>을 사거나 <땅에다 지은 집>을 산다면, 아파트를 사려고 할 때와는 ‘계산’도 달라지고 ‘상황’도 달라지고 ‘답’도 달라집니다. 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구약 – 신약 – 성약>으로 한 단계씩 차원을 높여 펼쳐져 왔습니다. ▸ <구약 차원>에 따라서 법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답도 다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다릅니다. <구약>에서는 모든 법이 ‘종의 법’이고, 모든 상황이 ‘종의 입장’이고, 모든 말씀과 답이 ‘종급’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종에게 주는 사랑 차원’입니다. ▸ <신약 차원>에 따라서 법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답도 다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다릅니다. <신약>에서는 모든 법이 ‘자녀 법’이고, 모든 상황이 ‘자녀 입장’이고, 모든 말씀과 답이 ‘자녀급’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자녀에게 주는 사랑 차원’입니다. ▸ <성약 차원>에 따라서 법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고, 답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다릅니다. <성약>에서는 모든 법이 ‘신부 법’이고, 모든 상황이 ‘신부 입장’이고, 모든 말씀과 답이 ‘신부급’이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신부에게 주는 사랑 차원’입니다.  <구약에 속한 자>에게 ‘신약 식 답’을 주면 안 맞습니다. <신약에 속한 자>에게 ‘성약 식 답’을 줘도 안 맞습니다.  이 시대 <성약 식 답>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이 시대 말씀’을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이 말씀>이 ‘자신의 답’이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상황’도 달라지고, ‘하나님이 대하시는 것’도 달라집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 <초등학교 학문>은 아무리 배우고 알아도, 아무리 큰소리치면서 자랑해도 ‘그 차원’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답은 모두 ‘초등학교 차원’입니다. 그래서 <한 단계 차원>을 높여 ‘중학교 차원’에 가야 됩니다. 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시대 차원>은 아무리 많이 알아도, 아무리 천둥 번개 치듯 큰소리를 쳐도 ‘구시대 차원’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구시대의 것’입니다. <구시대 말씀>은 아무리 차원이 높아도 ‘역시 구시대’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차원 높게 행해도 ‘구시대 구원’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한 단계 차원>을 높여 ‘새 역사’로 와야 됩니다. <끝> ◎ 지금은 왜 <한 단계 차원>을 높여야 하는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또 설명해 주겠습니다. 다시 화면을 볼까요?) <영상2>  <초등학교 6학년>은 ‘초등학교에서 최고 높은 차원’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은 ‘고등학교에서 최고 낮은 차원’입니다. 아무리 ‘초등학교 고학년’이 안다고 큰소리쳐도 ‘고등학교 저학년’의 수준을 못 따라옵니다. 초등학교 수준을 못 벗어납니다. 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시대의 말>은 아무리 차원이 높아도 ‘구시대’이고, <새 시대의 말>은 아무리 차원이 낮아도 ‘새 시대’입니다. 아예 차원이 다릅니다. <구시대>에서 큰소리치면서 ‘최고로 높은 자’라도 <새 시대>로 온 ‘아이’만 못합니다. <새 시대>는 ‘아이’로 태어났어도 ‘차원 높은 새 시대’입니다. 고로 <구시대 어른>이 <새 시대 아이>를 못 따라옵니다. 그래서 반드시 <한 단계 차원>을 높여 ‘새 역사’로 와야 됩니다. <끝> (* 왜 <한 단계 차원>을 높여야 되는지, 또 설명해 주겠습니다.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 아무리 <100년 된 고욤나무>라도 열매는 ‘고욤 열매’입니다. 아무리 <3년 된 어린 참감나무>라도 열매는 ‘참감’입니다. 100년 된 고욤나무에서 열린 ‘고욤 열매’가 아무리 커도 3년 된 참감나무에서 열린 ‘참감’의 크기를 못 따라옵니다. 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새 시대>는 3년 됐어도 ‘참감 같은 큰 열매’가 열립니다. <고욤나무>를 베고, <참감나무>를 접붙여서 그러합니다.  <고욤나무>는 무엇입니까? ‘구시대’입니다. ‘자기’입니다. <참감나무>는 무엇입니까? ‘구원자’입니다. 모두 <시대 구원자>라는 참감나무를 접붙여야 ‘참신부 열매’가 열려 ‘구원’받고 ‘휴거’됩니다. <끝>  <고욤나무>는 아무리 커도 ‘고욤나무, 고욤 열매’입니다. <고욤나무>에서는 절대 ‘참감’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감나무>는 아무리 작아도 ‘참감나무, 참감 열매’입니다. 이와 같이 <그 세계>에서는 ‘그 차원 이상’은 못 보고 못 배웁니다. <차원>에 따라서 ‘상황’도 다르고 ‘대함’도 다르고, ‘법’도 다르고 ‘답’도 다릅니다. 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약>에서는 ‘자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신약>에서는 ‘신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그 차원의 답, 그 차원의 상황, 그 차원의 대함’ 뿐입니다. <신부 열매>는 오직 ‘성약’에서 거둡니다.  <성약역사>가 무엇입니까? 성경의 모든 비밀을 밝히고,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역사입니다.  <휴거>에 대해서 배우고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밝힌 ‘성자와 분체’를 알고, 어서 ‘이 시대 성령의 역사, 휴거의 역사’에 동참해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 인생의 목적>도 이루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도 이룹니다!  똑같이 <성약 섭리역사>에 왔어도 각자 ‘차원’이 다릅니다. <구원>도 <휴거>도 ‘자기 삶, 자기 행위의 차원’대로 이룹니다. 똑같이 <휴거 700선>을 이뤄도 ‘자기 삶의 차원’대로 이룹니다.  모두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고욤나무>에서 한 단계 차원을 높이니, <참감나무>가 되어 평생 ‘참감 열매’를 얻게 됩니다. 비교가 안 되지요. 하나님의 역사도 ‘한 차원씩’ 높여 왔듯이, 마지막으로 최고로 차원 높인 섭리역사에서도 각자 ‘한 차원씩’ 높여야 상상도 못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전환> ◉ 계속해서 ‘차원을 높이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 <보통 삶>은 ‘보통’으로 살면 되니, 모두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보다 높은 삶>은 ‘보통’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고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 지금 이 시대, 이때는 ‘보통보다 높은 차원에서 살 때’입니다. 한 번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려면, 계획적으로 올라야 올라갑니다. 오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올라가면 평지라서 쉽습니다.  월명동도 석막리에서 올라갈 때는 경사가 있으니 힘듭니다. 그러나 올라가면 ‘평지’라서 쉽습니다. <육의 삶>도, <영적 차원>도 그러합니다.  올라가지 않고서는 ‘다음 차원의 것’은 못 얻습니다. 올라가지 않고서는 ‘이상세계’는 못 얻습니다.  <휴거의 차원>도 오르기입니다. 오르려면, 하나하나 행하면서 갖추기입니다. 그 차원만큼 올라가면, 그 차원대로 얻게 되고 빛나게 됩니다.  감나무에 올라가서 ‘손이 닿은 곳의 감들’을 다 땄으면, 거기서 더 올라가야 ‘위에 있는 감들’을 따게 됩니다. 어린 자라도 누구나 오르면, 그 차원의 것을 얻게 됩니다. <영계>도 ‘오르는 자’가 보고, <계시>도 ‘오르는 자’가 받습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오르는 자>를 따라서 같이 따라 올라라. 힘들어도 내려가지 말아라. 말씀을 듣기다. - 행하기다. - 실적이다. - 공적이다. 포기하면 ‘10배 더 힘든 삶’이다. 힘들어도 오르면 ‘100배 더 좋은 삶’이다.” 하셨습니다.  오르기는 힘들고, 내려가기는 쉽습니다. 고로 사람들은 ‘쉬운 길’로 갑니다. 그러나 그 길은 ‘얻는 것’이 적고, 찾아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없는데 찾아야 하니, 찾느라 ‘올라갈 때’보다 더 힘듭니다.  <새벽 기도 시간>도 ‘시간’에 따라 ‘차원’이 다릅니다. <새벽 4시>는 ‘땅에서 손이 닿는 곳의 감 따기’입니다. <새벽 3시>는 ‘감나무로 올라가서 감 따기’입니다. <새벽 2시>는 ‘감나무의 위로 더 올라가서 감 따기’입니다. <새벽 1시>는 ‘감나무 꼭대기로 올라가서 감 따기’입니다. 세상만사 삶의 이치가 그러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끝까지 하는 자>는 해가 질 때까지, 자기 전까지 오르면서 거둡니다. 영계에서 보면 이같이 보입니다.  영계에서 보니 <1층>에는 ‘보통 식당과 잡화점과 상가들’이 있었고, <2층>에는 ‘쉬는 곳’이 있었고, <3층>에는 ‘씻는 곳’이 있었고, <4층>에는 ‘크고 좋은 집’이 있었습니다. 영계에서 보니, 올라갈수록 더 좋았습니다.  그러니 모두 <휴거의 차원, 신앙의 차원>을 높이기 바랍니다! 올라갈수록 편하고 좋습니다. 올라갈수록 누립니다.  눕고 자면 편합니다. 그러나 ‘얻는 것’이 없습니다.  누워 있으면 ‘생각’으로 얻고, 앉아 있으면 ‘조금씩’ 얻게 되고, 서서 다니면 ‘그 주관권의 것’을 얻고, 뛰어다니면 ‘평소에 얻지 못한 것’을 얻게 됩니다. 영계에서 보니 그러했습니다. 차원이 높을수록 ‘좋은 것’이 있었고, 그곳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내가 다 얻을 수 있었습니다.  매일 ‘자기 기회’가 옵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차원’을 높여야 잡습니다.  비행기가 뜨고 날면 차와 충돌할 일이 없듯이, 자기가 ‘차원’을 높이면 적도, 막는 자들도, 사탄도 상관이 없게 됩니다.  차원을 높이면, ‘주관권’이 달라집니다. 차원을 높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차원을 높이면, ‘답’이 달라집니다. 차원을 높이면, ‘환경’이 달라집니다. 차원을 높이면, ‘삼위일체의 대함’이 달라집니다.  차원을 높여서 사는 자만 압니다. 고로 알려면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실제로 ‘차원’을 높이려면, 기도하기, 성삼위와 대화하기, 주께 배우기, 알기, 행하기입니다.  주께 배우고, 기도하고, 성삼위와 대화하면서 하나하나 행하고 갖춰야 <차원>이 높아집니다.  자기가 행하면서 ‘자기 소원’을 이루고, ‘자기 차원’도 높이고, ‘자기 원하는 것’도 얻게 됩니다.  자기 수고로 ‘땅의 것’도 ‘하늘의 것’도 얻게 됩니다.  사람은 ‘얻어야’ 힘을 받고 하게 됩니다. 고로 주께 먼저는 배우고, → 그다음은 행하고, → 그다음은 차원을 높이면서 얻고 누리는 것입니다.  <기분>으로 좋아지는 것은 순간이고, 금방 열이 식어 버립니다. <행함>으로 좋아져야 됩니다. 그래야 실제로 시동이 걸려서 뛰고 달리며 얻게 되고, 실제로 ‘차원’이 높아집니다.  <기분의 시동이 걸린 자>는 ‘시동만 걸렸지 가지 않는 차’와 같고, <생활 시동, 행실의 시동이 걸린 자>는 ‘달리는 차’와 같습니다. <기분의 시동>만 거는 데서 끝나지 말고, <생활의 시동>을 걸고 가기까지 하기 바랍니다. 생명을 관리할 때도 ‘생활의 시동을 걸고 가기까지’ 관리해야 얻고, 누리고, 차원을 높이고, 딴 세계로 가게 됩니다. <전환> ◎ 조금 더 말씀해 주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 예전에는 잘했는데, 주를 따르다가 제 갈 길을 간 자들이 있습니다. 영계에 가서 보니, 그들은 그때 하나님이 필요해서 쓰신 그때 한때의 그릇이었습니다. 항상 ‘자기 때’가 아닙니다. 나머지는 자기가 ‘책임’을 하며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존재합니다.  <섭리사를 벗어난 자들>을 영계에서 보면, 아담과 하와 같이 ‘다른 영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곳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하나님이 사시는 곳과는 <전혀 다른 체계의 영계>였습니다. 고로 ‘복직’은 어렵습니다. <육계>에서 보면 가까운 곳에 있는 것 같아도 <영계>에서 보면 전혀 다릅니다.  성경을 보면 <자기중심대로 하는 가인 편>이 ‘아벨 편’이 되지 않았고, <신광야의 운명>이 ‘가나안의 운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변화된 자>만 ‘하나님 편, 아벨 편’이 되었고, ‘가나안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 섭리사를 나간 자들을 생각하면서, ‘설마 해가 질 때까지는 오겠지?’ 하지 마세요. <해>가 되돌아와서 ‘방향’을 전환하겠습니까? <이미 운명이 기울어진 자>는 다시 못 옵니다.  <운명이 기운 자 본인>은 생각도 안 하는데, <반대쪽 좋은 편에 있는 자>가 안타까워하면서 ‘언제 오나?’ 하고 애간장을 태웁니다. <자기 기분>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말아요. <영계와 영의 상황>을 봐야 됩니다.  ‘참나무가 소나무 될까?’ 하고 기르지 말아요. 아예 태생이 <소나무>라야 교육하고 가르쳐 줘도 더 좋게 변화됩니다. 그러나 <소나무>라도 ‘좋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입니다. 각자 ‘자기 차원, 자기 수준’만큼 변화되고 얻고 누립니다.  <큰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자기 몸같이 키우고 만드십니다. 고로 ‘수천 명 중의 한 명씩’입니다.  수고만 한다고 해서 ‘큰 자’가 되겠습니까? 월명동보다 크다고 ‘시대 하나님의 궁’이 되겠습니까? 이 소나무가 크다고 ‘저 사연 소나무의 역할’을 하겠습니까? 큰 바위라고 ‘형상석’을 따라가겠습니까? 사람도 그러합니다. <큰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키우고 만드십니다.  각자 <자기 위치>에서 행하며 <자기 개성>대로 빛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성의 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 각자 <개성의 왕>으로서 ‘자기 위치’에서 빛나며 살고 둘째, 그 <개성의 왕들>이 ‘핵’을 중심으로 어우러져 <하나님의 섭리역사>를 빛내는 것입니다.  이에 대해 ‘월명동 비유’를 들어 볼게요. <월명동>에는 운동장, 잔디밭, 야심작, 돌 조경, 산책로, 호수 등 각각의 장소가 있고, 수백 개의 사연 돌과 사연 나무들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오직 성삼위의 구상’대로 서로 어우러져 하나 되어 <자연성전>을 빛내고 있습니다. <섭리인들>도 각각 ‘개성체’이지만 오직 ‘주의 가르침과 교육’으로 성장하고 행하며, 서로 칭찬하고 서로 위해 주면서 <전체>가 하나 되어 월명동같이 되면 더 크게 빛납니다.  <큰 자>와 같이 빛나야 <자기>도 크게 빛납니다. <큰 자>라도 <작은 자들>과 같이 빛나야 더 빛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큰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자기 몸처럼 키우고 만든다고 했지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큰 뜻’을 실현하기 위함입니다. <큰 바위를 옮기는 것>이 ‘인력’으로 되겠습니까? ‘큰 장비’로 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큰 일>은 큰 장비와 같은 ‘큰 사람’을 데리고 ‘하나님’이 하셔야 됩니다.  <큰 사람>은 ‘하늘’로부터 타고납니다. <키 큰 것>도 타고나야 됩니다. <키 작은 사람>도 ‘다른 것’을 타고납니다. 누구나 ‘타고난 것’이 있습니다. 자기 지체를 보세요. ‘손가락’도 길고 짧은 것을 타고납니다. <하늘로부터 타고난 큰 자>도 그러합니다.  그러나 <타고난 자>는 깊이 봐야 보입니다. <형상석>도 그냥 보면, 일반 돌과 비슷해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형상’을 타고나서 다르게 보입니다. 주도, 시대 하와도, 사도도, 선지자들도 <타고난 자>로서 ‘삶’이 다릅니다.  <땅으로부터 타고난 자>가 있고 <하늘로부터 타고난 자>가 있는데, <하늘로부터 타고난 자>는 작게든 크게든 ‘성삼위’를 쳐다보고 믿고 섬기고 사랑하며 삽니다.  <많이 타고난 자>는 많이 행하여 솟아납니다.  그러나 타고났다고 해서 그냥 두면 빛나지 못합니다. 타고난 만큼 가꾸고 행해야 됩니다. 첫 번째는 ‘타고나기’, 두 번째는 ‘만들기’입니다.  <타고난 자>라도 처음에는 찾기 힘듭니다. 키워야 됩니다. <치타>도 키워야 지상을 날면서 사냥하고, 호랑이와도 겨룹니다.  <타고난 자>라도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조금 타고난 자>도 많이 만들면, 확실히 표가 납니다.  <타고난 기본>은 못 고칩니다. <월명동의 산들>은 ‘낮게’ 타고나서 ‘높게는’ 못 만듭니다. 그러나 개발하고, 돌을 세우고, 나무를 심어 가꾸어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나는 타고난 것이 없다.” 하지 말고, 각자 ‘개성의 타고난 것’을 찾고 개발하고 가꾸어 <월명동>같이 빛나기를 바랍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가꾸어라. <가꾸는 것>은 ‘자기 계발, 자기 변화’다. 다 귀하니 가꾸어라. 그리고 <크게 타고난 자>와 일체 되어라. 그러면 ‘너도 같이’ 빛난다. 옆에 <궁궐>이 있으면, 옆에 ‘잘 만들어진 건물들’도 같이 빛나듯, <크게 타고난 자>와 일체 되면 ‘같이’ 빛난다. <큰 바위>를 세우니 ‘그 지역’이 같이 빛나듯 <큰 자>가 있으니 ‘그 주관권’이 같이 빛난다. 이와 같이 <하나님, 성자, 나 성령>이 옆에 있으면 ‘인생들’이 같이 빛난다.” (하셨습니다.)  <핵>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집니다. <핵>과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에 따라서 ‘빛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모두 <개성의 왕들>이 되어 ‘자기 위치’에서 개성대로 빛나되, 꼭 <주의 교육>을 받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앞세우고 뛰어야 됩니다. 그러면 ‘힘’이 나고, ‘차원’이 높아지고, ‘빛의 강도’가 달라져 ‘빛나는 육과 영’이 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