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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사연2015.12.12 (토)

토 계시말씀

선포일
2015.12.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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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212 토 계시말씀.hwp1 2015년 12월 계시말씀 ♥ 12월 12일 토요일 이때 너 하나 만들기에 정말 열을 내어라 작성일 : 2015. 9. 25. PM 01:19 작성자 : 오은미 (1시 낮 기도를 하였습니다. 최근 성격과 행실을 완전히 고쳐야겠다는 필요성을 깨닫고 기도할 때마다 간절히 성격과 행실을 고치길 간구했습니다. 이날도 이를 두고 기도할 때, 큰 건물 화장실과 연결되어 있는 복도 바닥을 저의 혼체가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성격과 행실을 진실로 고치고자 기도를 했더니 그 영적 모습을 보여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장실 바닥을 청소하는 모습에 의아하기도 했지만 온전하지 못한 성격과 행실을 가진 자는 마음속 더러운 화장실을 품고 사는 자들과 같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를 두고 주님께서 마음으로 말씀하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 주님의 말씀* 온전하지 못한 성격과 행실을 가진 자는 성삼위가 보시기에 마음속, 영혼 속 더러운 화장실을 마음 방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와 같다. 네 영혼, 네 육신이 축소된 성전과도 같은데 더럽고 냄새 나는 화장실에 성삼위가 거하시겠느냐? 아무리 작고 누추하고 무너져 가는 집과 같은 곳일지라도 그곳이 깨끗하고 그 마음의 중심에 더러움이 없는 자라면 성삼위는 거하시지만 아무리 크고 멋진 고층 빌딩의 성전을 가진 자라도 그곳이 화장실과 같이 더럽고 온전치 못하면 성삼위께서는 발길을 돌리시고 다시는 찾지 않으신다. 겉으로 보이는 건물의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삼위는 겉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보지 않으시고 그 사람의 마음을, 그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시대 말씀을 들을 때도 필요성을 느끼고 듣는 자는 그 순간 운명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전환이 되고 자기 한계로 갇혔던 것에서 벗어나게 된다. 진실로 성삼위 앞에 온전한 성격과 성품을 갖춘 자가 되기 위해 고치려는 필요성을 깨닫고 작은 것부터 고쳐 나가려는 것이 얼마나 큰지 아느냐? 말씀을 주고 기다렸다. 성격, 행실을 고치려는 마음이 들어 그 필요성을 가지고 행할 수 있게끔 말이다. (제 혼체가 쭈그리고 앉아 솔질을 하면서 바닥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선생님께서 곁에 오셔서 저와 함께 바닥을 청소해 주셨습니다.) 신부가 원하고 행하니 신랑이 함께하는 것이다. 성격, 행실을 고치라고 말을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라는 자도 있고 말씀을 듣는 순간은 고쳐 봐야지 했다가 삶 속에는 그 마음을 잊고 평소대로 성격, 행동을 부리고 살아가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온전한 행실을 하는 자란 겉으로 보이는 행동뿐 아니라 그의 말소리와 표정과 마음속 생각까지도 포함한다. 좋을 때 친절하지 않은 자가 없고 좋을 때 표정을 찡그리는 자가 없다. 자신의 기분에 따라 말을 하고 표정을 짓고 행동을 해 버리는 자는 신부보다는 아들, 종의 행위를 가진 자이다. 신부라면 곁에 동행하시는 성삼위의 마음과 기분과 생각을 먼저 살필 줄 알아야 진짜 신부이고 진짜 사랑을 하는 자의 모습이지 않겠느냐? 자신의 감정과 기분대로 눈앞에 보이는 자에게 말을 내뱉고 행동을 거칠게 하고 무정한 표정을 보이는 자는 동일하게 성삼위 앞에서도 내 앞에서도 충분히 그리 몸에 배인 대로 행동을 하고야 말기에 큰 실수를 한다. 최고의 웃음과 행복한 표정을 담은 자신의 사진과 자신의 최고의 은혜와 깨달음과 행함의 사연들을 아무리 나에게 보내와도 평소 성격과 행실이 빛이 나지 않는 자는 편지를 봐도 감동이 없고 글만이 한 바닥 빽빽이 적혀 있는 것과 같다. 영으로 혼으로 너희들 곁에서 네 말과 네 표정, 네 행위를 보고 함께 살고 있는 나 선생인데 그것 하나 제대로 모르겠느냐?  영으로 혼으로 함께함을 실제로 같이 피부를 맞대고 살아가고 있는 이때를 실감하지 못하는 자들은 아직도 자기를 만들기에 안일함을 보이고 목숨 걸고 자기를 깎고 만들기에 몸부림을 치지 못하고 있구나. 축복을 달라고 하는 자들은 많은데 큰 사명을 달라고 하는 자들은 많은데 자신의 성격과 행실을 고쳐 나갈 수 있게 함께해 달라는 자들은 없구나. 전도의 열을 내고 관리의 열을 내는 만큼 네 성격과 행실을 열나게 고치고 다듬고 만드는 자가 없구나. 자신의 성격과 행실을 고쳐서 그 마음 방을 궁궐로 만들고 살면 성삼위께서 늘 거하는 자가 되기에 그 행함이 땅을 벗어나 진정 휴거된 영의 고도에서 행하게 되니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사랑아, 이때 가장 사랑의 지혜를 가진 자는 말없이 자신의 성격과 행실을 고치려고 행한다. 그것이 작은 일이 아니다. 휴거를 이룬 자는 그 말도 은혜를 끼치며 그 표정도 사랑과 웃음을 머금으며 그 행실도 주를 의식하는 삶을 산다. 성격과 행실을 온전히 만들지 않는 자는 삶 속에서 크고 작게 겪는 상황에 불쑥불쑥 자신의 성격을 나타내고 행실로 행해 버리니 마치 영적으로 보면 자신이 걸치고 있는 멋진 옷을 벗어 두고 마음껏 상대를 향해 몸싸움을 하는 자와 같다. 성자와 주의 조건으로 휴거를 이루고 휴거의 옷을 입은 너희들이 온전하지 못한 행실 앞에 휴거 옷을 벗어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마음을 비워 낸 자가 마음이 아름다운 자이다. 하나님은 본래 그 마음을 아름답고 신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온전한 자는 그 육도 아름다운 자요, 그 인생 전체도 아름다운 자이다. 2015_1212 토 계시말씀.hwp2 마음, 생각의 전개체가 육신의 행함이며, 육신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을 잡는 자가 인생을 제대로 잡고 사는 자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자기의 육 인생 하나뿐 아니라 상대의 인생까지 잡고 다스려 낼 수 있는 자이다. 마음 하나 만든 것이 인생 작품, 걸작으로 만든 자이다. 마음속 욕망과 네 감정들을 진리의 검으로 잘라 내고 감정으로 그 순간의 욕망으로 세상의 삶도 신앙의 삶도 물을 담은 컵을 엎지르듯 하지 말아라. 육신이라는 컵 속에 마음이라는 물이 담겨져 있는 것과 같다. 그러기에 네 마음속 생각이 절제됨 없이 말로 행동으로 표정으로 쏟아 내는 자가 아닌 진정 절제의 미가 있고 진정 비워 낸 마음, 온전한 마음으로 너를 대하고 상대를 대하는 자가 되어라. (정리할 때 이어서 더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음의 눈을 떠서 네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아라. 내가 너를 깊은 말씀으로 교육하고 이끄니 이때 너 하나 만들기에 정말 열을 내어라. 흠 없이 만들어 놓아야만 빛나게 만들어 놓아야만 만족한다. 마음을 정금같이 만들어라. 네 마음 변치 않게 성삼위의 구상대로 만들어 보아라. 네 마음을 금같이 다이아몬드같이 귀히 여기며 귀히 세공하듯 귀히 깎고 닦으며 만들어. 그것이 인생의 최고 값이고 인생, 최고 값나가게 하는 것이다. (귓가에 평온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의 음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악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천국의 꽃들과 나무들의 잎사귀가 해변에서 불어오는 바람결에 만물들이 흔들리며 만들어 내는 소리였습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아름다운 자는 그 영혼이 아름답고 신비한 소리를 낸다. 그의 입술에서는 사랑과 은혜와 자비의 소리가 들리며, 그의 표정 속에 행복과 기쁨이 넘쳐난다. 휴거된 자의 삶이다. 그리 갖추기다. 사랑하니 말씀으로 나의 사랑을 전한다. 안녕. 매일 천국의 삶을 사는 선생이다. ♥ 12월 12일 토요일 인식관의 전환 – 평범이 곧 비범이며 정상(正常)이 곧 정상(頂上)이다. 작성일 : 2015. 10. 10. AM 01:30 작성자 : 최은솔 (저는 평소에 ‘온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습니다. ‘완전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지는 만큼 조금이라도 온전치 못한 잡생각이 들면 많이 낙심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에 ‘뱀 머리를 치듯 잡생각이 드는 즉시 짓밟아라.’ 하셨는데, 그 말씀을 실천해 볼수록 생각을 주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잡생각이 드는 그 자체가 죄라고 생각이 드니, 삼위와 같이 온전해져야 한다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렇지 못한 나를 보시는 삼위와 선생님께 죄송했고, 늘 한없이 제가 작아 보였습니다. 그것이 마음 한편에 짐이 되어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선생님께서 최근에 직접 말씀하신 것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잡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느냐다. 또한 내가 언제 신처럼 완전해지라고 했느냐. 인간은 인간 차원으로 완전해지면 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잠을 잘 자고 밥을 잘 먹는 게 어린아이 차원에서 완전한 것이다. 구구단의 차원에서 보면, 구구단을 실수 없이 다 외우는 것, 그것이 완전한 것이다. 나는 신처럼 완전해지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인간 차원에서의 완전을 이루며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제가 생각했던 막연하고 환상적인 완전함과는 너무나 다른 이 말씀을 듣고 저는 큰 충격과 동시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제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기성인들이 믿던 환상적인 신앙을 깨부수고 실존신앙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신데, 제가 또 하늘을 제대로 모르니 오해했다는 생각에 정말 죄송했습니다. 제가 선생님 말씀을 심정의 세계로 보지 않고 문자 그 자체로 보니 오해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생각이 신이다.’ ‘사도 시대’ ‘삼위일체가 온전하듯 온전해라.’ 이 모든 말을 문자 그대로 보면 너무나 차원이 높아 보여 나와 먼 얘기처럼 들리지만,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신’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능자 신’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여러 가지 말씀이 꿰어지기를, ‘생각이 신이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을 받으면 하던 일을 몇 배 더 빨리할 수 있다는 상식적인 말씀이었고, ‘사도시대’도 몇천 명을 돌이키며 외치는 삶 이전에 먼저는 ‘주님과 같이 사는 삶’이었고, ‘삼위일체가 온전하듯 완전한 것’도 신과 같이 환상적으로 완전한 것이 아니라 인간 차원에서의 완전함을 이야기하신 것이었습니다. 섭리의 말씀은 참으로 평범하지만 비범하며, 정상(正常)적이지만 이것이 곧 정상(頂上)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대의 문자신앙을 하고 있었던 저의 무지를 회개하며, 이 모든 것을 두고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기를 간구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 * 구약인들은 4000년 동안 나의 영이 직접 강림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예수라는 지극히 평범한 육신을 타고 왔고, 신약인들이 2000년 동안 예수가 직접 강림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선생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육신을 타고 왔듯, 하늘의 역사 방법은 지극히 평범한 것을 통하여 참으로 비범한 것을 이루는 세계이다. ‘신’인 내가 나타나기 위하여 ‘육’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했지만, 환상적인 신을 기대했던 유대인들과 기성인들은 완전한 신에 비해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예수와 선생을 알아보지 못하고 핍박하였다. 하늘의 역사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전능자 신이 인간에게 나타나려면 그 과정인 ‘육’이 있어야 하고 전능자 신이 인간에게 나타나려면 그 과정인 ‘말씀’이 있어야 한다. 참으로 상식적이지 아니하냐. 하늘역사에서 모든 것은 ‘순리’이다. 인간의 육신을 쓰고 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기대하며 이룰 것을 이룬다. 2015_1212 토 계시말씀.hwp3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대의 축복을 받아 섭리에 사는 너희조차도 시대 말씀을 환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 내가 이야기하고자 한다. 선생에게 있어서 ‘신’은 너희가 생각하는 ‘전능자 신’이 아니다. 인간 차원에서의 신을 의미한다. 요한복음에 하늘의 말씀을 받은 자가 ‘신’이라 하지 않았느냐. 하늘의 입장에서는 나의 말씀을 받은 자가 ‘신’이다. 또한 노력하고 몸부림쳐 그 분야의 ‘신’이 될 수 있다. 너희도 세상에서 특출한 자를 보고 그 분야의 ‘신’이라고 하지 않느냐. 인간 차원에서 ‘신’을 말한 것이 아니냐. 그들이 전지전능한 삼위의 신이 아니지 않느냐. 선생은 이와 같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과 몸부림으로 인간 차원에서 신의 삶을 이루었다. 또한 지금도 몸부림치며 신의 삶을 이루고 살아간다. 하늘의 관점에서 생각해야지, 너희의 관점에서 생각하여 사랑의 근본자인 나를 오해하지 말아라. 늘 너의 편에서 너를 응원하며 사랑하는 나를 오해하지 말아라.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라. ‘생각이 신이다.’ ‘사도 시대’ ‘휴거 300’ ‘휴거 700’ ‘온전함’ 등 이 모든 단어들을 문자로만 보고 듣고 너희 차원에서 생각하니 갈 길이 까마득해 보이고,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기도 하고, 낙심되고, 부담되고, 포기도 하며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 이제까지 너의 주관으로 생각했다면 그럼 오늘은 나의 생각을 들어 보자. 인식관의 전환을 이루자. 제대로 알아야 오해가 없는 것이다. 천천히 하나씩 설명해 줄게. 비유를 들어 보자. ‘초보운전’을 붙이고 다니는 차가 있다. 사람들이 다 그 차를 비켜 가지? 누구 하나 이해 못 해 주는 자가 없다. 왜? 처음이니까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운전자들도 초보운전의 시절이 있었기에, 누구나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알기에, 느리게 간다고 뭐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운전자들 간에 서로의 ‘이해’가 있기에 가능하다. 그렇지? 인간의 세계에서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늘의 세계랴. 신앙의 초보운전과 같은 너희를 우리가 이해 못 해 주겠느냐. 전능자 신의 잣대로 너희를 판단해 버리겠느냐. 전능자 신과 같은 수준의 삶을 바라겠느냐. 전능자 신과 똑같이 살지 못한다고 너희를 책망해 버리겠느냐. 그것은 너희가 우리의 천격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너조차도 나를 오해한 것이 아니냐. 내가 ‘완전해져라.’고 이야기한 것은 인간 차원에서의 완전함을 말한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과정이 없이 완성되는 것은 없는데, 너희는 자꾸 말씀을 문자로만 보고 자신의 현재 상태와 비교하며 낙심하고 자포자기한다. 이것이 이 시대 문자 신앙이다. 문자 신앙을 하지 말아라. 심지어 신입생들 중에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만 보니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며 말씀은 너무 이상적이고 완벽하지만 자신은 이 길을 가기 힘들 것 같다며 신앙을 저버리는 자들도 있다. 또는 섭리에 있지만 힘들어하는 자들도 있다. 제발 나의 심정을 좀 전해 다오. 지도자들이 제대로 가르쳐야지. 내 심정을 알고 선생 심정을 아는 너희들이 선생과 우리를 중보해 줘야지. 선생은 한 번도 비약적으로 환상적으로 나를 가르친 적이 없다. 또한 너희가 선생과 같지 못하다고 판단하며 닦달하며 키운 적도 없다. 오직 사랑으로 너희를 이해하며 너희가 스스로 행하도록, 차근차근 올라오도록 기다려 준 선생이지 않으냐. 그것이 하늘의 인격이다. 제대로 가르쳐 줘.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아이에게 자꾸 넘어진다고 책망하고 걷는 자와 비교한다면, 걸음마 배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겠느냐.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배우는 것이다. 넘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아이가 달리기를 하는 아이를 보고 부러워하면, ‘너는 걸음마를 배울 때’라고 한 번 더 이야기해 주며, 어서 걷는 것을 완전히 배우고, 달리기하자고 용기를 주면 돼. 넘어지는 것이 무섭다고, 또는 넘어지는 자기만 비정상이라고 느끼게 하며 걷는 것을 아예 포기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넘어지고 실수하는 것, 그것이 걸음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는 ‘정상’인 것이다. 2000m 산을 올라가는데 처음 올라가는 자가 체력도 좋고 산을 많이 타 본 자들을 보면서 그것과 비교하며 산 오르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 잘 올라가는 자들은 이미 많이 해 본 자들이기에 능숙한 것이고, 못 타는 네가 ‘정상’이라고 이야기하며 기본을 갖추자고 하고 함께해 주겠다며 용기를 주면 되는 것이다. 처음 섭리에 와서 말씀 들은 자들이 바뀔 것이 너무 많고, 해야 할 것이 많으니 벅차한다. 너희들이 3년, 5년, 7년, 10년씩 뛰며 만들어 온 결과만 봐서 그러하다. 너희들도 한 기간을 두고 만들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누구나 비약은 없다. 그렇기에 항상 생명들의 입장에서 생명들을 살펴 줘야 한다. 미디어를 못 끊는 것, 세상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을 이상하게 보지 말고, ‘신앙의 초보운전이기에 당연하다.’ 생각하고, 생명들이 괴리감에 이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잘 대해 줘. 너희도 그러했지 않느냐. 설명을 잘해 줘라. 말씀이 섭리 전체로 나가기에, 그것을 아이의 수준에 맞게 잘게 씹어 주는 것은 지도자들의 역할이다. 우리가 그것을 원한다. 인간 차원에서의 온전함은 신의 차원에서의 온전함과 다르듯이, 신앙의 연륜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온전함의 정도는 다르며, 너희에게 선생과 같은 차원의 온전함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기대하는 수준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 섭리길은 절대 힘든 길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눈으로 우리가 너희를 바라보고 응원하고 있다. 섭리역사는 마치 운동경기를 해서 금메달을 딴 자만 데려가고 나머지는 버림받는 역사가 아니라 각자 차원에 2015_1212 토 계시말씀.hwp4 맞게 행하면 모두를 데려가는 역사다. 700선도 어려운 게 아니야. 절대 기준이 아니라 상대 기준이기에 각자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는 그에게 해당되는 차원의 휴거를 이루는 것이다. 누구보다 너희를 사랑하고 배려하며 이해하는 우리의 심정을 전해 다오. 선생도 30년 넘게 만들었지 않느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절대 비교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하게 해 줘라. (충격적입니다. 하나님. 이제껏 제대로 모르고 살고, 제대로 모르고 가르친 것 같아요. 제가 이 말씀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저 혼자 저를 갑갑하게 가두고 있었거든요. 인류 역사상 한 번뿐인 휴거 때라 극적으로 온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조차 오해하고 있었으니, 이제 온 생명들, 어린 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잘 가르쳐 주고 싶어요. 죄송해요.) 너도 관리의 초보운전자이고, 어린 자이니 이해해. 그것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느냐. 자책하지 마. 괜찮아. 깨우쳐 줬으니 이제 잘하자. 섭리사 신앙이라는 것은 ‘선생 닮기, 선생 배우기, 선생 연구하기’다. 선생의 삶과 생각을 자세히 관찰해 보고 그의 의중을 잘 살펴보면 답이 나와.선생에 대해 잘 모르니 말씀도 오해하는 것이다. 지도자들이 핵을 잘 잡아 줘야 돼. 어떤 말씀이든지 문자 그 자체가 아니라, 선생의 의중을 잘 살피고 생명들의 차원에 맞게 하늘 심정을 전하여 다오. 오늘 배운 것을 절대 잊지 말아라. 사랑해. 사랑해서 말씀을 준 여호와니라. 안녕. (선생님과 육신이 떨어진 지가 참 오래되었고, 말씀으로만 만나는 것이 참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빨리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원 없이 한없이 하늘의 사랑의 말씀을 폭포수처럼 전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해. 답답하지 않느냐. 선생 심정은 오죽하겠느냐. 선생과 너희는 만나야 한다. 반드시 만나야 한다. 지금은 글로만 만나는 역사가 아니라 같이 사는 시대이며 육과 육으로 대면하여 만나는 인류 역사에 단 한 번 허락된 바로 그 시대다. 애가 타는 마음으로 이 시대를 위해, 선생을 위해 기도하고, 선생 육이 자유롭지 못하는 동안 선생의 의중이 너희에게 최고로 잘 전해지도록 기도해. 떨어져 있지만 혼으로 자꾸 만나고 배우고 말씀을 선생의 관점으로 제대로 연구해서 오직 너의 주관이 아닌 선생의 향기로 네가 변화되고 선생의 향기로 생명이 관리되도록 기도해. 선생 극적으로 사랑하여 오직 선생의 향기가 나는, 그의 사랑과 의중을 최고로 잘 전달해 주는 그런 지도자가 되어라. 안녕. ♥ 12월 12일 토요일 최고의 계시 작성일 : 2015. 10. 10. AM 04:49~05:11 작성자 : 신연호 (새벽에 교회로 가는데 머릿속에 ‘오늘도 최고의 계시를 받으러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혼아, 이건 무슨 생각이니?” 하고 물었는데, 새벽예배 때, 잠언과 계시말씀을 듣고 나니, ‘아! 삼위의 분체에게 매일 새벽 직접 잠언말씀을 듣고 있고, 선생님의 조건으로 합당한 사명자들을 통해서 때를 따라 주시는 최고의 계시말씀을 매일 새벽마다 듣고 있구나!’하는 것을 충격적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진정 1:1 사랑을 깨닫고 말씀을 들을 때, 제가 먼저 열을 내어 말씀 하나하나 아멘으로 붙잡으며 다짐하면서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할 때, 선생님께서 ‘다른 자가 받은 계시라도, 본인이 깊이 기도하고 상고하면 본인이 받은 것과 똑같다’고 하신 말씀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최고의 계시, 첫째로는 선생을 통한 말씀이다! 매일 쏟아지는 수십, 수백 개의 잠언들이 있지? 선생의 잠언 하나는 너희 계시자들이 받는 계시글 10페이지, 20페이지보다 더 깊고 차원이 높다. 선생의 말씀이 마치 성삼위와 같은 무한한 깊이와 차원의 바다라면, 계시자들을 통한 말씀은 각자의 수준과 차원의 그릇을 가지고서 삼위와 일체 된 그 바다에서 물을 퍼 온 것과 같아. 이미 알려 줬었지? 선생을 통한 삼위의 말씀의 차원이 이리도 깊고도 높도다. 실로 ‘무한한 성삼위 그 자체’이노라. 이 말씀의 가치를 ‘진정 아는 자’가 섭리사에 많지 않다. 다들 ‘매일 듣는 말씀’, ‘비슷한 말씀’ 정도로 인식하고, “그래~ 불러야지. 찾아야지. 같이 해야지. 하나 돼야지. 사랑 일체지. 실천이지. 휴거지.” 하면서, 매번 차원을 높이며 깊이 있게 하는 완전히 다른 말씀들을 가지고서, 모두 다 똑같은 말씀으로 인식한다. 진정 가치를 아는 자가 되어라! 매일 선생이 자신에게 1:1로 와서 실제 혼으로 영으로 삼위와 함께 와서 가르쳐 준다는 것을 알고 말씀을 대하는 자는, 매일 선생을 만나고 삼위를 만나서, 자신의 생전에 받을 수 없었던 코치를 매일매일 차원을 높이며 받게 된다. ‘최고의 계시’가 무엇이냐. 근본으로는 ‘최고 차원으로 삼위와 주를 만난다’ 함이다. 계시의 근본은 ‘1:1 깊은 사랑의 만남’이다. 사명, 일, 뜻을 이룸의 목적도 있지만, 이 모든 것들도 ‘1:1 사랑의 만남’이 0순위가 되어서, 진실한 사랑의 교통 위에서 사명도 뜻도 행하는 것이다! 근본은 사랑의 뜻이기에 그러하고, 신랑과 신부의 역사이기에 더욱 그러하도다! 선생을 통한 잠언과 주일, 수요말씀의 가치, 부흥강사를 통한 선생의 직접적인 코치들이 얼마나 귀하고 가치 있는 줄 깨닫고 알고 대하여라. 네가 지금까지 받아 보지 못한 차원의 가르침을 매일, 새롭게 받을 수 있다! 네가 지금까지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차원으로 올라서 성삼위와 1:1 사랑의 2015_1212 토 계시말씀.hwp5 교통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매일 더 높은 차원의 말씀을 준다. 이것이 엄청난 것이다. 이 말씀을 제대로 받으며 이뤄 가는 자는, 매일매일 이전에는 없던 차원으로 성삼위와 만나서 1:1 이전에는 없던 사랑 교통의 역사를 이루면서, 그 차원으로 개인, 교회, 삶의 터전에서 역사를 이뤄 간다는 것이다! 개인의 역사, 부서의 역사, 교회의 역사, 섭리의 역사, 세계의 역사! 이 모든 것들을 차원 높게 이루는 주인공은 다른 능력이나 재력을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말씀의 가치를 알고, 깊이 삼위와 주를 실체로 만나며, 그 사랑의 힘으로 이뤄 가는 자인 것이다! 고로 말씀의 가치와 기도의 가치, 새벽의 가치와 예배의 가치! 매일의 새벽예배의 가치에 대해서 감이 죽은 자, 새벽 생활이 죽어, 새벽이 죽은 삶을 사는 자들은, 때에 따라 합당한 차원으로 역사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도 새벽을 깨워라! 예배의 가치를 알아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도 생활 가운데 기도하라! 말씀을 놓치지 말라! 하는 것이다. ‘사랑 역사’에 있어서 가장 핵적인 ‘사랑’을 최고 차원으로 매일매일 이룰 수 있는 길이 바로 새벽기도와 새벽에 선포되는 말씀, 그리고 생활 속 기도의 삶과 말씀의 삶이기 때문이다! 삶은 생활로 이루어져 있다! 기도의 생활, 말씀의 생활을 하는 자가 최고 차원의 삶으로 연속 오르는 자다! 마치 능력이 뛰어난 남편과 만나야만이 신부는 어떤 일이든 이상적으로 잘 헤쳐 나갈 수 있는데, 매일 새벽마다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과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고 잠을 자며, 신랑과는 상관없이 따로 노는 인생을 사는 미련한 신부와도 같은 자들이 섭리 안에 정말 많고도 많도다. 이리 살면 너희만 힘들다. 너희를 너무나 사랑하는데, 이런 너희를 바라보는 나 성령의 심정에, 하나님과 성자와 주의 심정에도 애통의 눈물이 강을 이룬다. 쓰라리고 아프고 안타까워 심정이 상한다. ‘최고의 계시’를 매일 받아라! 선생의 말씀을 통해서 선생에게 직접 매일 배우고, 나 성령에게, 여호와 하나님께, 성자에게 매일매일 직접 배워라! 그 길은 매일 새벽을 깨워 진실로 삼위와 주를 만나길 사랑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말씀이 실제 삼위와 주가 되어 너를 만나 주는 것을 인식하고 말씀을 통해 삼위와 주와 매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너희는 계시말씀의 축복이 쏟아지는 때에 살고 있다. 이 말씀을 너무 많이 주니 가치를 모르는구나. 마치 다이아몬드를 매일 한 바가지씩 부어 주니, ‘아, 저 딱딱한 것, 무거운 것, 귀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너무 많다’하면서 점점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잃어 가는 것과도 같도다. 하나에 1억짜리 보석이 1000개가 쌓여 있다고 해서, 그 하나의 가치가 떨어지느냐? 삼위는 선생의 조건으로 너희에게 일억 천만금보다 더 귀한 말씀들을 각 계시의 사명자와 뜻이 있는 자들을 통해서 매일 쏟아부어 주고 있다. 이 귀함과 가치를 잃지 말아라. 계시도 수준과 차원이 있는 고로, 최고의 것만을 너희에게 주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일주일에 수백 편씩’ 각자 수준과 차원대로 계시를 받는다. 각기 다양한 개성과 특성대로, 차원과 수준대로 말이다. 그중에 뽑고 또 뽑아서 너희 전체에게는 최고의 것만을 주고 있는 것이다. ‘많다. 부담스럽다.’ 할 것이 아니라, ‘진정 최고의 엑기스만을 주시는구나!’ 깨닫고 감사하며 받아라. 진정 ‘매주 수백 통의 계시들 중에서 최고 엑기스’로 25개 정도만 뽑아 너희 전체에게 주는 것이다. 삼위와 주의 사랑이 가득한 영계의 영롱한 보석 수백 개 중에서 뽑고 또 뽑아 가장 최고 수준의 고귀한 보석 25개 남짓을 최종적으로 너희에게 주는 것과도 같도다. 말씀을 다 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한 말씀을 숙지하여 이뤘을 때 1억을 준다고 하면 다른 것을 할 것이냐? 1억만 준다고 하여도 너희 중 대부분은 눈을 떠서 눈을 감을 때까지 말씀만 보고 말씀만 이루기에 여념이 없이 살 자들이 많을 것이다. 천국 문은 1억을 들고 가도 안 열린다. 이 말씀을 듣고 행하면 네 영이 더욱더 높은 차원의 천국 문을, 황금성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의 영으로 변화된다. 너에게 영원한 권세와 능력을 주는 말씀이다. 영원한 삼위와 주의 사랑의 신부가 되게 하는 말씀이다. 계시말씀은 네가 알지 못했던 것, 네가 보지 못했던 것, 네가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세밀하게, 정확하게, 자세하게, 알고, 보고, 깨닫게 해 준다. 자상하게, 사랑을 가득 담아 너를 코치해 주고 인도해 주는 삼위와 주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다! 진정 삼위와 주를 만나고 싶고, 너의 차원을 더 높이고 싶으며, 그로 인해 더 깊이 사랑하면서 더 크게 역사를 이루고 싶다면 말씀을 잡아라! 말씀의 가치를 깨닫고서 진실로 말씀을 좋아해라! 말씀을 통해 삼위와 주와 사랑하는 것이 최고 차원으로 삼위와 주와 사랑하는 길이다! 삼위와 주 그 자체인 말씀의 가치를 근본으로, 새벽기도와 예배, 말씀 생활과 기도 생활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육했다. 말씀의 가치를 깨달아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 교육했다. 진정 사랑하는 너희들이기에 하늘과 최고로 사랑하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이는 마치 가장 사랑하는 한 상대에게, 자신의 개인 집을 오픈하는 것과도 같도다. 오직 최고로 사랑할 상대 1명만을 택해서 자신의 방에 은밀히 불러 1:1로 뜨겁게 사랑한다. 그와 같이 오늘 너희 각자에게 1:1로 찾아와서 하늘과 1:1로 가장 깊고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길을 가르쳐 준 것이다. ‘진리’라는 ‘삼위와 주의 방’에서 ‘1:1’로 매일 뜨겁게 사랑의 삶을 살고, 그 사랑의 힘과 능력으로 모든 것들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자! 결국 하늘과 사랑이 충만한 삶이 승리의 삶이 된다! 최고의 계시는 이 시대에 삼위가 선생의 조건으로 주는 계시이다. 2015_1212 토 계시말씀.hwp6 6000년 구원역사 이후 가장 크고 깊으며, 신부역사 최상급, 최고 급의 계시다. 최고 차원의 말씀으로 최고 차원의 사랑과 역사를 이루는 행복의 주인공이 되길 축복한다. 하늘 심정의 신, 계시의 신, 삼위의 성령이 말했노라. 샬롬. ♥ 12월 12일 토요일 <핵>인 ‘선생’과 연결이다. 네 인생의 핵을 걸고 살아라! 2015년 12월 12일 토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11. 20. AM 01:00 작성자 : 주달해 (이 말씀을 받기 전날에는, 정말 오랜만에 아무 일정도 없었습니다. 오랜만의 개인 시간이라 ‘오늘은 절대 나가지 말아야지!’ 하고 여러 계획을 세우고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들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계획들 중 제일 첫 번째 할 일은 선생님께 보내야 할 중요한 편지를 쓰는 것이었는데, 계속 생각은 했지만 다른 일을 하다가 하루가 다 갔습니다. 그 일이 그날 할 일들의 핵이 되는 일이었는데, 그것을 못 하니 남기는 것 없이 하루가 다 가서 어느새 새벽기도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성령님께서 “핵을 뺏기면 다 뺏긴 것이다. 핵 놓치면 다 놓친 거야.” 하셨습니다. 그것을 듣고 회개하면서 새벽에 이를 두고 기도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인생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핵의 시간이다. 이 인생의 시간을 ‘목적’에 목적을 두고 핵적으로 써야 인생의 핵, 구원의 핵, 휴거를 이룬다. 휴거를 이루었으면 태어난 목적을 이룬 자이며 인생의 보람과 기쁨을 다 가진 자이다. 축소하여 다시 말하니, 지금 이때는 나중을 위한 핵의 시간이다. 이 핵 시간을 잘 써야 후에 후회가 없다. 핵을 잡고 가는 훈련을 하여라. 삼위가 볼 때에 핵을 놓친 자는 다 놓친 자이고, 핵을 쥔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다. 이 세상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린 자라도 자기 영을 구원시켜 놓지 못한 자는 미련한 자가 아니냐. 네가 하루를 살 때에도 그리 살아라. 오늘의 핵, 지금 이 시간의 핵을 잡고 살아가야 한다. 그 시간의 핵은 그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며, 때 지나면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때를 알고 우선순위를 두고 생각하며 판단하고 순서대로 행해야 한다. 곧, 먼저 할 것을 먼저 하기다. 사람이 시간이 있어도 지식과 자료와 능력이 없으면 행치 못하고, 모든 지식과 자료와 능력이 있어도 시간이 없으면 행치 못한다. 이 두 가지 다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다. 모든 것을 갖추었어도 때를 몰라서 행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또 때를 알아도 갖출 것을 모두 갖추어 제대로 행할 수 있도록 내가 너를 가르친다. 사랑아, 핵에 생각을 꽂고 살아가야 한다. 계속 생각하고 연구하면 그 핵에 해당되는 것이 떠오른다. 이 시간도 핵이고, 저 시간도 핵이다. 기도의 핵심 시간은 새벽 시간이고, 잠의 핵심 시간은 밤 시간이다. 그 때에 해당되는 것을 알고 행해야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자다. 시대급으로 확대하면 종급 구원이 핵이 되는 구약시대가 있고, 자녀급 구원이 핵이 되는 신약시대가 있고, 신부급 구원이 핵이 되는 성약시대가 있다. 신약시대 중에서도 핵심 때인 예수의 초림 때, 곧 ‘당세’는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고, 성약의 핵심 때는 지금이다. 그 하늘의 때는 현재도 삼위께서 진행 중이다. 그러면 이제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네가 이때를 살고 있음을 아느냐? 이때는 성약역사에서도 핵심이 되는 때이며, 네 인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핵심 축복의 시대임을 믿느냐? (아멘,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들을 다 알고, 믿고, 진실로 시인합니다!) 그러면 네 인생의 핵을 걸고 살아라. 보통으로 살지 말라는 말이다. 이때를 놓친 자가 되지 말아라. 이 역사 안에 속해도, 또 이때를 알고 살아가면서도 핵을 놓치는 자가 너무나 많다. 이는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은 생각할수록 더욱 강력해지고, 시인할수록 더욱 확실해진다. 알아도 의식하지 않으면 뇌 속에서 간절함과 감사가 사라지고, 되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된다. 고로 자꾸 생각해라. 자꾸 의식하면서 감사가 식지 않게 늘 기억하며 살아라. 나 성령은 어제 너의 삶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는 왜 너에게 주어진 이 섭리 인생을 보통으로 사느냐? 왜 선생과 소통하는 것에 목숨을 걸지 않느냐? 네가 진정 그를 아는 자이냐?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 구원자와의 연결이다. 이것이 끊어지면 신부도 뭐도 아니고, 휴거도 구원도 그것으로 끝이다. 네 삶과 그의 삶의 연결이다. 끊어지면 사망이다. 애초에 네가 모든 것을 그의 이름과 그의 조건으로 이루었으니 그가 네 삶과 영원의 핵인 것이다. 그는 너에게뿐 아니라 지구 세상 전체의 핵 중의 핵이다. 모든 시대의 구원자와 사명자, 각종 선지자들을 통틀어도 그가 핵이고 최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다. 구시대 구원자는 과정이고 이 시대 구원자는 목적이다. 구시대는 과정이고 이 시대는 창조 목적의 완성이다. 이 핵을 놓친 사람은 1000년을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핵을 쥔 자는 하루를 살아도 1000년을 산 것과 같다. 어제 같은 삶은 네 인생에서 죽은 시간이며, 세월이다. 그런 시간은 있으나 마나 한 삶이다. 너의 영혼 구원에 추호도 도움이 되지 않고, 네가 늘 기도하는 삼위의 뜻에도 전혀 맞지 않으니 내가 너를 책망한다. 다시는 그와 같이 살지 말아라. 나 성령이 너를 보고 말하니 내 말을 듣고, 삶의 수준을 높여라! 핵인 선생과 연결이다. 2015_1212 토 계시말씀.hwp7 선생과 연결이 되었을 때에 네가 휴거를 이룬 자로서 이 시대와 나 성령 앞에 귀한 자다. 핵인 선생과 소통이다. 그를 잊으면 죽은 것이지. 어제와 같은 삶은 죽은 삶이다. (성령님께 진정 회개하며, “아멘!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 죄송해요! 그런데 선생님께 편지로 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저에게는 정말 쉽지 않아요.” 하고 고했습니다. ) 그가 너를 위해 왔으니 그에게 이야기해. 그가 너를 위해 행하니 그에게 고하여라. 사탄은 의이고 선인 척하면서 결국은 그와의 연결이 끊어지게 한다. 그 위선에 속지 말아라. 속는 자는 사탄과 같은 생각을 하는 자다. 사탄과 같은 생각을 하지 말아라. 사탄의 생각은 그와 끊어지게 하는 생각이며 사탄은 선생과 너희와 사랑의 삶이 끊어지게 하는 자다. 하나님과 성자와 성령은 그를 통해 너의 인생을 받는 자이며, 너와 그를 연결시키는 자다. 그와 끊어진 자는 삼위와도 끊어진 자이니 나 성령의 마음에 매우 합당치 않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여 돕는 증거의 신이다. 고로 나 성령은 너희가 선생과 끊어지는 그 꼴을 못 보지. 네가 내 말을 알아들으니 너의 모순을 뿌리 뽑기 위해 내가 강력하게 말한다. 알았으니 내 마음에 들게 제대로 행해라. 너를 사랑하여 이른 자, 사랑의 성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