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12.1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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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213 주일(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hwp1
2015년 12월 13일 주일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오해도
풀리고 손해 간 것도 얻는다
[ 시편 23편 5절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통해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여 <생각의 차원>을 높이고
<삼위와 주와 일체>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오해도 풀리고 손해 간 것도
얻는다.’입니다.
◎ 이 말씀은 <말레이시아 순회
말씀>이자, <2015년 12월 13일
주일말씀>입니다. <말씀 시작>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성령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걱정하시지 않게 해
드릴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성자도 나 성령도
걱정하지 않게 해 주려면, 누구나...
(잠시 쉬었다가)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삼위일체를 믿고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그동안
역사의 의문도 풀리고, 하늘을 향한
무지도 풀리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도 풀리고, 오해도 풀리고,
그동안 손해 간 것들도 얻게 된다.”
(하셨습니다.) 아멘!!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알파와 오메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안’에 모든 계획이 질서 있게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끝’을 벗어나서 주지 않으십니다.
<시작할 때> 조금 주시고,
<중간부터> 조금 더 주시고,
<끝나기 전>에 점점 많이 주시다가,
<끝장>에 ‘최고의 것’을 주십니다.
<다 하고 끝났을 때>, 끝까지
다 겪고 나면 ‘각종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섭리하십니다.
생각해 봐요.
직장에서도 일이 다 끝나야 ‘월급’을
줍니다. 일당을 받는 자라도 하루 일이
다 끝나야 ‘일당’을 줍니다. 건축을
할 때도 처음에는 ‘착수금’만 줍니다.
그러다 일이 다 끝나면 ‘일한 대가’를
줍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하든지
‘각종 고난·역경·문제들’은
<처음>에도 있고,
<과정 중>에도 있고,
<끝>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에
고난·역경·문제들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의문과 오해’가 풀리고,
‘그동안 손해 간 것’을 얻고,
‘수고의 대가’를 받을 때는
<끝났을 때>입니다. 하나님도
<그동안 수고한 것의 대가>는
‘끝’에 주십니다.
고로 끝까지 해야 됩니다.
끝까지 해야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구원자도,
교역자도, 관리자도 걱정을 안 합니다.
물론 <중간>에 지쳐 쓰러지기도 하고,
각종 환난과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끝>까지 하기만
한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갈 것이니, 근본적으로는 걱정이 안
됩니다.
<구원>도 ‘끝까지 행하며 견디는 자’가
받습니다. <처음>에는 주를 믿고
따랐어도 <끝>까지 안 믿고 떠난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집>도 끝까지 건축한 집만
준공검사를 받고 사용 허가를 받아
쓸 수 있게 됩니다. (맞지요?)
<짓다가 만 집>은 쓸 수 없습니다.
올림픽 때 각종 경기에서도
‘끝까지 한 자’만 인정하고
그 안에서 메달을 줍니다. (맞지요?)
처음과 중간에 아무리
‘1등’을 했을지라도 ‘끝까지 못 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그만둔 자’에게
어떻게 메달을 줍니까?
‘끝까지 하여 결국 승리한 자’가
메달을 얻게 됩니다.
<처음>에 다 주고 <과정 중>에
다 준다면 어떻게 ‘참된 자’를 찾고,
‘의인’을 찾고, ‘끝까지 변치 않는
자’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중간에 변한 자’를 <휴거>시킬 수
있으며, 어떻게 ‘중간에 변한 자’를
<천국 황금성>에 가게 할 수
있습니까?
섭리사 여러분 모두
<성삼위와 주>를 끝까지 믿고
사랑하며 여기까지 왔기에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게 되었고, <휴거 역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환난과 어려움을 당했어도,
지쳐 쓰러졌어도 결국 ‘끝까지’ 왔기에
현재 이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했어도 환난과 어려움으로
쓰러지고, 자기 본능·자기중심으로
행하며 산 자들은 끝까지 오지 못하고
오다가 말았습니다.
힘들어도 끝까지 해야
<자기 생명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성경의 인물들도 끝까지 했기에
모든 의문과 오해를 풀고, 축복을
받고, 해같이 빛나게 됐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직접
왕이 되어 통치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게 ‘왕’을 달라고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게
했습니다.
2015_1213 주일(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hwp2
<사울>은 준비하지 않고 연단받지
않고 ‘왕위’에 올랐기에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사무엘 선지자>도 고통을 겪었고,
선지자 대접도 못 받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행하여 다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이 준비시킨
<다윗>을 택하게 되었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시기 질투하여 다윗을 죽이기
위해 온갖 추악한 짓을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로부터 오는 괴로움과 고통’을
하나님 마음에 들게 잘하는 ‘다윗’을
보고 해소하며 다윗을 위해 끝까지
기도해 주었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전쟁에서 패하고,
자신도 자살하여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 후 <다윗>이 ‘왕위’에 올라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했고,
<사무엘 선지자>도 높임을 받게
됐습니다.
끝까지 하니 의문도 다 풀렸고,
사울로 인한 한도 다 풀렸고,
얻을 것도 얻게 되었습니다.
<다윗 왕>
<다윗 왕>도 사울로부터
온갖 환난·핍박·고통을 받았고,
이웃 나라로부터 전쟁의 고통을
받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어 다 승리하여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리게 되었고,
왜 그동안 사울로부터 그렇게 고통을
받았는지 모든 의문도 풀게 되었고,
하늘과의 사이에 오해되는 문제도
다 풀렸고, 그동안 참고 견딘 것의
대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로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시편 23편 5절>에 그 고백이
나와 있지요?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의 목전>이 바로 ‘끝’이
아닙니까? 끝까지 했더니,
끝에 가서 다 갚아 주셨습니다.
다윗이 끝까지 연단받고 행하여
받았으니, 사탄도 힐문하지 못합니다.
<요셉>
<요셉>은 ‘꿈’ 때문에 형제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애굽에까지 팔려가
‘종살이’를 했습니다. 거기서 또
이성의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하게 됐습니다. 옥에 가서 옥에
갇힌 자들의 ‘꿈’을 풀어 주었고,
결국 ‘왕의 꿈’까지 풀어 주어
애굽의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어떤 환난과 어려움도 다 이기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랑하며
끝까지 갔더니,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고, 자신을 미워하여 애굽에
팔아넘겼던 형제들이 굴복했고,
하나님의 뜻도 풀고, 사연도 풀고,
소원도 성취하게 됐습니다.
<선생>
<선생>도 시대 말씀을 불신하고
악평하는 자들이 사랑과 진리와
이성의 누명을 씌우고 억울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어이
모두를 사랑하게 하시어, 이곳에서도
‘진리와 사랑’으로 변함없이 끝까지
행하여 결국 <하나님의 창조 목적,
휴거 역사>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뜻도 풀고, 의문도 풀리고,
그동안 해를 당하고 손해 본 것들도
다 받았고, 악평자들로부터 오해를
받은 충성자들의 사연도 풀리고,
생명들을 살리는 영광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경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보면,
<끝까지 한 자들>은 과거의 의문이
다 풀렸고, 하늘에 속한 것뿐 아니라
땅에 속한 것들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환난·핍박·억울함·힘든 일을
겪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오해하고,
안 믿어진다고 하며 안 믿고,
각종 문제로 따라오다가 만 자들은
<역사의 광야 노정>에서 쓰러지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획하신
엄청난 영원한 뜻>을 못 이뤘습니다.
정말 ‘억울한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의문’을
풀지 못하고, ‘오해와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각종 문제’로 번민하면서
삽니다.
그들은 끝까지 오지 못함으로 인해
‘의문·오해·문제·억울함·고통’으로
끝났습니다. 끝까지 하지 못했기에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만나
<시대 말씀>을 들어도 자기가 행해야
문제가 해결되고, 답을 얻고,
인생의 의문을 파헤치게 됩니다.
고로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환난도 이기고, 형제끼리 부딪혀도,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 변치 말고
끝까지 가야 됩니다.
끝까지 가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형제>끼리 부딪혔을 때는
‘주와 일체’ 되면 절대 해결됩니다.
그러나 <주>를 찾지 않고 일체 되지
않으니 힘든 일이 더 닥치어 죄를
범하고, 더 함정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와 일체 되지 못한 연고>로
그리도 힘든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와 부딪히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기 영혼의 운명인
신앙까지 버리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주와 일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일’이든 다 이깁니다.
(* 철인3종 경기 금메달
선수 ‘아이린’을 알지요?
아이린도 주와 일체 되지 않았을 때는
신앙이 힘들었습니다. 주와 일체 되니,
이제 <신앙>도 힘들지 않고, 더욱
‘초인’이 되어 <경기>도 뛰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끝까지 하니, 성령님이
관리하여 주와 하나 되게 해
주셨습니다. 모두 이와 같이
이러합니다.)
( * 이 부분의 문장은
말레이시아 순회 때만 전한다)
2015_1213 주일(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hwp3
혹시 <주>와 부딪혔다면, 그때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가면
해결됩니다. 꼭 자기 상황을 삼위께
고하고 간구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때 외롭다고 하며 이성을 찾으면서,
지극히 ‘이성의 본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함정에 더 깊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안 하는 자>는
아침에 집에서 나와서 일을 보고,
저녁에 집에 돌아가다가 말고
길거리에서 자는 자와 같습니다.
<끝까지 안 하는 자>는
답을 얻지 못하고, 억울하게 의문을
품고 짐을 지고 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만 더 있었으면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데,
하루 전에 나간 자도 있습니다.
그 때가 돼야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환> 조금 쉬면서 전환
◎ 이제 <월명동> 이야기를 하면서,
왜 끝까지 해야 되는지 말해
주겠습니다.
(* 잠시 화면을 보면서 <자연성전의
모습>을 감상하겠습니다.) <영상1>
* 월명동 자연성전의 모습이
영상으로 잠깐 나간다. <끝>
<월명동>도 끝까지 하여 사야 할
땅들을 사서 <성약역사 하나님의
대(大)자연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처음부터 쉽게 땅을 산 것이 아닙니다.
땅을 사는 과정 중에 문제도 많았고,
정말 힘들기도 했고, 일이 잘 안
풀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끝까지
하지 않았으면, 땅을 사면서 왜 그런
문제들이 있었는지 의문을 전혀 풀지
못했을 것이고, 안 되는 것이 뜻인 줄
알고 꼭 살 땅을 못 사고 끝났을
것입니다.
<하다가 마는 자>는 ‘중단한 데’서
‘현실’만 보고 판단하고 주장하고
끝납니다. 그리고 남에게도 그같이
말하고 가르칩니다.
<월명동 땅을 살 때>는 하나의
땅을 살 때마다 수십 번씩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냥 쉽게 산 땅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때는 ‘이 산은 사는 게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하고
중간에 그만뒀다면, 선생 역시
‘중단한 데’서 ‘현실’만 보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했더니,
결국 ‘핵심지’는 다 샀고 개발도
했습니다.
이렇게 과정 가운데 어려움들이
많았지만, 결국 끝까지 하여 개발하고
<자연성전>을 만들었기에 그동안 왜
안 됐는지 의문도 풀렸고, 시대 최고의
비밀도 풀렸고, 사연도 풀렸습니다.
하다가 말았으면
하나님의 시대 비밀을 못 풀고,
의문·오해·섭섭함으로 끝났을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다른 곳>에다
‘하나님의 구상’도 못 받고 지옥 같은
고생을 하면서 개발을 했을 것입니다.
원래 <월명동>은
처음에 ‘수련장’으로 개발했습니다.
오직 성삼위를 붙들고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의 구상대로 끝까지
하니, 이 시대 성삼위를 모실
‘자연성전 하늘의 궁’이 되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야심작 : 설교자
먼저 확실히 이해하고 전할 부분
◎ <자연성전의 최고 핵심>이 어디죠?
- 네! <야심작>입니다.
(* 잠시 화면을 보면서,
<야심작>을 감상하겠습니다.) <영상2>
* 야심작의 모습이
잠깐 영상으로 나간다. <끝> 그러나 이
<야심작>도 쌓기만 하면 무너졌습니다.
다섯 번이나 무너졌습니다.
(* 어떻게 무너졌는지, 잠깐 화면을
볼까요?) <영상3>
이곳에 쌓은 돌들은 ‘작은 돌들’이
아닙니다. 몇십 톤씩 되는 ‘큰
돌’입니다. 하나님의 구상대로
쌓는다고 쌓았는데, 쌓기만 하면
무너져서 돌이 다 깨졌습니다.
그러나 “돌은 무너졌어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하며, 하나님의
구상을 실현하고자 끝까지 쌓았습니다.
<끝>
만일 끝까지 안 했으면 <야심작>의
의문을 못 풀고, 왜 돌이 그렇게
무너졌는지 답을 못 얻고 육적으로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심작>은 왜 ‘다섯 번’이나
무너졌을까요? 이것은 ‘자연의 원리’로
하나님이 무너지게 한 것입니다.
왜요? 다시 쌓으라고요.
왜 ‘다섯 번’이나 무너졌을까요?
아는 사람은 손을 들고 ‘핵심’을
대답해 보기 바랍니다.
(전체 - 손을 든 사람
2명 정도만 발표하게 한다.)
(말레이시아만 해당 - 전 세계에서
이곳 현장에만 선물이 있습니다.)
(* 이제 답을 발표하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 <돌을 세워서 쌓은 위쪽>은
‘등받이’, <돌을 눕혀서 반반하게 쌓은
쪽>은 ‘의자 바닥’, <양쪽 맨 끝 돌>은
‘의자 손잡이 끝’
<야심작>은 성자가 떠나시면서
‘그 비밀’을 밝혀 주셨습니다.
“<야심작>은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인데,
다섯 번째까지 ‘의자 형상’으로 만들지
않았기에 무너지게 한 것입니다. <끝>
<잠시 쉬었다가>
◎ 이제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 주겠습니다.
(중요 부분 : 설교자들은 이해를
확실히 하고 설명해야 된다.)
<야심작>을 쌓을 때
‘다섯 번째’까지는 돌을 너무 경사지게
쌓아서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다섯 번째’에는 <야심작 중간 쪽>에도
많은 돌들을 ‘세워서’ 쌓았습니다.
최고 많은 돌을 ‘세워서’ 쌓았는데,
무너진 것입니다.
<설명 중요>
그래서 ‘여섯 번째’ 다시 쌓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야심작 중간 쪽>에 ‘돌을 세워서
쌓지 못하는 여건’이었습니다. 돌이
‘다섯 번’이나 무너지면서 그 기간
안에 ‘크고 좋은 돌들’이 많이
2015_1213 주일(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hwp4
들어왔습니다. 그 ‘큰 돌들’을
<야심작 위쪽>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추가 화면>
돌을 쌓을 때는
‘포클레인’을 사용하여 <아래 쪽>부터
쌓고 서서히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쌓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위로
올라가면, 포클레인이 돌을 들어서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돌을 쌓아 놓은
곳> ‘위’에 흙을 채워서 그 위에
‘포클레인’을 올려서 연속해서
돌을 쌓아 올라갑니다.
그래서 <야심작 아래 쪽>은 돌을
‘세워서’ 쌓지 않고, <좋은 호피석>을
‘눕혀서’ 반반한 면이 위로 올라오게
하여 앉기 좋게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채워
‘포클레인’이 올라가게 해서
연속해서 쌓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포클레인’이
<야심작 위쪽>으로 올라가려면
<야심작 중간 쪽>에도 돌을 ‘세워서’
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섯 번째에는 밑에 쌓았던
것처럼 <야심작 중간 쪽>도 반반한
면이 위로 나오게 해서 의자같이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앉아서 사진 찍는 장소로 하자.
또 축구 할 때 관중석으로 하자.”
하고, <야심작 중간>까지 돌을
반반하게 의자처럼 쌓았습니다.
그런데 <야심작 위쪽>은
‘포클레인’으로 할 수 없어서 결국
‘크레인’을 사용하여 <야심작 위쪽
부분>만 돌을 부챗살같이, 병풍같이
‘세워서’ 쌓았습니다. 그렇게 하니
<야심작 상단부>가 아주 멋있었습니다.
<끝>
* 야심작 사진 한 장 준비
(씨티엔 준비)
설교자들은 사진을 보면서 그냥
설명하지 말고, 반드시 ‘야심작 위쪽,
아래쪽, 중간 쪽’을 각각 가리키며
설명. (중요) 그런데! 여섯 번째로
돌을 다 쌓은 후에 흙을 다 파내고
보니, <야심작 가운데>도 밑처럼
돌을 눕혀서 반반하게 의자처럼
쌓았기에 가운데가 휑하니 볼거리가
없었습니다.
다섯 번째 쌓았을 때는
<야심작 가운데>에 <사랑솔>같이
가지가 너울거리고 잘 뻗어 나간
큰 소나무들을 심었는데 병들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야심작 가운데>에는 ‘소나무’도
없는데 ‘돌’까지 눕혀서 반반하게
쌓았으니 볼거리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좋아서 웃고 박수 치며
“이제 됐다! 됐다!”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의자 형상’이
제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 여기까지 마지막으로 쌓은
<야심작> 사진 보여 주면서 계속 설명
<잠시 쉬었다가>
<야심작 중간 쪽>이 너무 휑해서
하루는 ‘중간에 눕혀서 반반하게 쌓은
돌 몇 개를 빼내고, 멋있게 다시 돌을
세워서 쌓을까? 어디 ‘뺄 만한 돌
없나?’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혹여 ‘돌 몇 개’를 빼면,
<야심작 위에 세운 돌들>이
곧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너무 두렵고 ‘이것은 하면 안 된다.’
하는 마음이 아주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고하기를
“사실 <가운데>에 ‘돌 일곱 개 정도’만
빼내서 다시 멋있게 세워서 쌓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하니,
“됐다! 됐어!” 하는 느낌이
오면서 깨달아졌습니다.
그래도 운동장에서 <야심작>을 볼
때마다
‘보암직’ 하지 않고 ‘꺼림칙’하여
‘바위 몇 개만 <중간>에 갖다
놓을까?’ 또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중간 쪽> 말고,
<맨 하단부>에 바위를 놨습니다.
그리고 <야심작 좌우>에
‘최고로 큰 돌’을 세웠습니다.
(* 이 돌 사진 씨티엔에서 준비
- “바로 이 돌이죠” 설교자 멘트)
좌우에 이 돌을 세울 때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좋아! 멋있어!”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결국 끝까지 하여
<야심작>을 완성했습니다.
<야심작 작업>은 시작부터
끝까지 ‘3년’이 걸렸습니다.
<야심작>을 쌓고 완성될 때까지도
몰랐는데, 18년 만에 ‘야심작 의문’이
다 풀렸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돌을 눕혀 반반한 면으로 쌓은
하단부와 가운데>는 의자 바닥이고,
<돌을 뾰족하게 세워서 쌓은 야심작
상단부>는 의자 등받이이고,
<좌우 아래에 세운 87톤 바위>는
의자 손잡이 끝부분입니다.
이것은 ‘상징’이니, 똑같지 않아도
됩니다. 초상화 같지 않아도 이미지와
형체만 나타내면 됩니다.
만일 <야심작 중간>에 돌을
‘뾰족하게 세워서’ 쌓았다면,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요?
의자 바닥이 되는 부분에 돌을
‘뾰족하게 세워서’ 쌓았다면,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심작 중간 쪽에 있는 <사랑솔>은
‘백보좌의 분재’와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하나님 보좌 앞에
‘네 생물’이 있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 야심작>
앞에도 ‘네 생물’이 있습니다.
곧 ‘호랑이바위, 성자바위 안
치타 형상 바위, 낙타바위,
코끼리바위’입니다. <끝>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이 아니니
야심작 돌들이 ‘다섯 번’이나 확
무너지게 하셨고, 야심작 중간에
세운 ‘큰 소나무’가 죽게 하셨고,
야심작 중간 쪽에도 돌을 ‘세워서’
쌓지 못하도록 여건을 틀어 주신
것입니다.
<6수>는 ‘끝나는 수’입니다.
다섯 번이나 돌이 무너졌지만,
끝까지 하니 ‘여섯 번째’에
<하나님의 구상>대로 완성했고,
모든 의문도 풀고, 답도 받고,
사연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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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그것도 모르고 ‘야심작 중간에
세운 납작한 돌 몇 개’를 빼내고,
다시 세워서 쌓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의자의 앉는 자리>에다 돌을 세워서
쌓아 ‘바늘 보좌’를 만들려고 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애태우셨겠습니까?
아직 때가 안 되어 <야심작>이
‘백보좌 상징’임을 밝힐 수 없으니,
무조건 “됐다. 거기는 돌은 세워서
쌓지 않아도 된다. 좋다.”라고만
말씀하시며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그전에는 <야심작>이 ‘의자’와
전혀 비슷하지도 않았고,
‘뾰족한 돌’만 세워서 삼위일체
신이라도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돌이 ‘다섯 번’이나 무너지면서,
그 안에 ‘크고 좋은 돌’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 돌로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 야심작>을 쌓게 하신 것입니다.
그 전에는 ‘막돌’을 가져다 쌓았는데
그 돌로는 <야심작>을 쌓을 수 없으니,
돌이 다섯 번이나 무너지게 하시며
‘막돌’을 가지고서는 스스로 ‘돌 쌓는
기술’을 터득하게 하신 것입니다.
<기술과 자료>가 있으니, 하나님은
그때부터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
야심작’을 완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땅에서 미련을 품고
아쉬워하며 찜찜하게 생각했는데,
전능하신 삼위일체는 <마지막으로
쌓은 작품>을 보시며 만족하여 웃고
잔치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자는 승천하시기 전에,
매일 선생과 깊은 대화를 했습니다.
그때, 도대체 <야심작>은 왜 그렇게
만들었냐고 물었습니다.
성자는
<야심작의 인봉>을 떼 주셨습니다.
“이것은 ‘최고 깊은 비밀이야.
<하나님의 최고 야심작>인
‘백보좌’를 상징하여 만들었다.
걸작이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으앗!” 소리를
질렀습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숨이 거의 끊어지려고 했습니다!
감격하며 “세상에 백보좌
상징이라니요!” 하며 놀랐습니다.
이런 나를 보고,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야심작 사진>을 보니,
선연히 ‘의자 형상’이 보였습니다.
<월명동 야심작>을 쌓기 시작하고
18년 만에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성자바위의 비밀>도 다 풀어
주시어 ‘일곱 가지 형상’과 ‘그 의미’를
알려 주셨고, <섭리세계와 민족과
세계의 의문과 비밀>도 풀어 주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나는 성경에 예언한 그 약속을
다 이루고 간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끝까지 하니, 의문이 풀렸습니다.
끝까지 행하여 만들어 놓으니,
그때부터는 ‘눈’에 보이지요?
그래서 의문이 풀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모두 끝까지 행해야 ‘개인의 의문,
시대의 의문’이 다 풀어집니다.
<하는 도중>에는
‘하나님의 은밀한 비밀’이라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하여
다 완성하면, 그때는 ‘눈’에 보이게
되니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고로 행한
자가 보고 깨닫게 되고, 답이
보입니다.
그때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말씀하십니다.
<야심작>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보좌 상징’으로 만든다고
말씀하셨으면, 일부러 ‘의자 형상’으로
만들어 그 형상이 의미가 없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만든 것이
아닌 사람이 만든 것이 됐을 것입니다.
<야심작 구상>은 ‘만드는 선생’도
100분의 1도 몰랐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만 아시고
행하셨습니다. 선생이 마음을 비우고
행하니, 그 구상을 ‘나’를 통해
실행하셨습니다.
<인생>도 ‘자기중심’을 비우고 살아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대로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삶을 살게
됩니다.
<야심작>은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의 구상’이고,
‘하나님의 실천’입니다.
<섭리역사의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작품,
하나님의 구상,
하나님의 실천입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미리 알고 행하면
‘인성’으로 하게 되고, 일단
‘인간의 본능’으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순리적’이지도 않고
‘질서’도 없습니다.
어떤 것은 미리 알리면,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사탄과
악한 자들이 알고 시기 질투하여
방해합니다.
사람을 키울 때도 미리 ‘크게 될 것’을
알리면, 연단받고 자신을 연마할 수
없습니다. 또 사탄과 악한 자들도
알고, 아직 크지도 않았는데 미리
막고 방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이 끝까지 행하게 하십니다.
끝까지 행하면,
눈으로 보이니 확실합니다.
고로 스스로 깨닫게 되고,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조은 목사의 사명>도
처음부터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순수하게 오직 주 뜻대로,
주 가르침대로 크게 했습니다.
조은이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계획하신 것들을 끝까지 다 행하고
나서야 ‘복직된 하와’라고 밝혔습니다.
해 놔야 하나님도 ‘답’을 주시고,
끝까지 행했기에 ‘눈’에 보이니
시인하게 되고, 행했으니 주가 말해도
‘자신’도 ‘청중’도 인정하면서
감격하고 기뻐합니다.
<큰일>은 미리 알면, 의식되고
신경이 쓰여서 부담되어 더 못 합니다.
그래서 <큰일>은 항상 은밀히 합니다.
<구원자>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큰
사명’이지요? 그는 최고로 숨겨서
은밀히 키우고, 수만 가지를 겪고
고통을 당하면서 연단받은 후에
나타나게 하십니다. 연단받고 나타나야
자신도 다스리고, 청중도 다스리고,
사탄도 이기고 다스립니다.
2015_1213 주일(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hwp6
그렇게 행하면서
<하나님의 최고 목적>을 이루는
‘대상의 몸’이 되어 삼위의 시중을
듭니다. 그리고 끝까지 행하여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신구약 6000년 동안 세우지 못한
<아담과 하와의 조건>을 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꿈과 이상과 목적>을
이뤄 드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해 본 자>만 압니다.
<집 한 채>도 일일이 벽돌을
쌓으며 만들어야 완성되는데,
<과거 6000년 동안 못 한 것>을
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마지막 역사가 시작되어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셨고,
‘시대 대표’도, ‘시대 하와’도
수만 번씩 참고 견디고 행하면서
힘든 조건을 세웠고, 고통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해서 된 것입니다.
그 뒤를 따라서 여러분도
‘제2의 복직된 하와들’이 되기까지
각종 어려움과 연단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 역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결국
<끝까지 한 자들>만 ‘하늘 뜻’을
이루며 가고 있습니다.
<말씀 마무리>
이 시대의 <휴거> 외에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 베푸시는 사랑은
더 이상 없습니다. 최고의 역사,
하나님이 베푸시는 마지막 사랑은
‘휴거’입니다.
◎ 이것에 대해 오늘 마지막으로
<비유의 말씀>을 해 주면서 깨우쳐
줄 테니 잘 듣고, 이 말씀을 평생
간직하고 끝까지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더 차원 높여 변화됩니다.
한 나라에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 왕은 ‘한 여자’가 잘되게 늘
도와줬습니다.
그러다가 공부하도록 돈을 대
주었습니다. 그러다 땅도 사 주고,
집도 사 주면서 더 크게 해
주었습니다. 여자는
“내가 왕에게 최고의 은혜를 받고
삽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내가 아직도 덜 해 주었다.” 하면서,
그 후에는 그 여자를 ‘왕의 궁’에
데려다가 왕을 돕게 했습니다. 전보다
더 차원 높이 대해 준 것입니다.
그보다 더 이상의 것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왕은 여자가 23세가
되었을 때 ‘왕비’로 삼았습니다.
그야말로 최고의 차원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왕이 여자에게 묻기를 “여기서 ‘더
이상의 것’이 또 있느냐?” 했습니다.
여자는 말하기를
“더 이상은 없습니다. 여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니, 더는
없습니다. 있다면, 목숨 다해 왕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고,
왕을 위해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매일 춤을 추며, 매일 왕과 대화하고
사랑하며 기쁘게 살았습니다.
<왕>은 왕으로서 더 이상 해 줄 수
없이 다 해 줬습니다. 그때부터는
<택함 받은 여자>가 해야 됩니다.
<왕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매일
대화하고 사랑하며 기쁘게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섭리인들은
<휴거>되어 ‘황금성’을 차지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의 것>이 있다면, 마음과 뜻과
목숨 다해 삼위일체와 주를 사랑하며,
매일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 그 힘으로 생명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왜 다 해 줬는데도 안 합니까?
왜 하다가 맙니까?
그러니 휴거되다가 맙니다. 그러니
휴거 700선까지 완성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다 지나고 늙어서 하려고
합니까? 지금은 ‘끝’이 아닙니다.
<끝까지 가는 길의 중간 단계>입니다.
모두 끝까지 행하며 가야 됩니다.
그래야 ‘눈’에 보이니 확실해집니다.
그래야 <황금성>이 확실하게
‘자기 것’이 됩니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다 풀리고,
자기 행위만큼 ‘황금성 휴거 집’을
더 크고 좋게 건설하고, 자기 행위만큼
‘휴거 700’선을 크게 이루게 됩니다.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는 왜 이
나라에 하나님께서 ‘섭리의 기반’을
두셨는지 진정 알고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야 됩니다.
끝까지 가야 <하나님의 행함>도
<섭리인들의 행함>도 알게 됩니다.
그때는 ‘눈’에 확실히 보이니,
부인하지 못합니다. *)
( ‘*’ - 이 부분의 문장은
말레이시아에만 전한다)
어서 끝까지 행하면서
<휴거 700선>을 완성하고,
성자가 택해 놓고 가신 생명들을
부지런히 전도해야 됩니다.
천 명으로 올랐다가 주저앉고
다시 하면 안 됩니다.
(이 문장은 말레이시아에만 전한다)
<휴거에 있어서 최고 핵심>은
‘사랑’입니다.
성삼위와 주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힘을 가지고 생명을
살피고 전도하게 됩니다.
신약 자녀 시대 때도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었을 때,
베드로는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며
고백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여라.
내 양을 살펴라.” 했습니다.
하물며 신부 시대인 이때는
어떠하겠습니까?
생명을 전도한 자들은
<휴거 선>이 높습니다. 그리고
<휴거>를 ‘작게’ 이루지 않고 ‘크게’
이룹니다. 고로 <황금성의 자기 집>을
넓은 지역에다 멋있게 건설합니다.
또한 땅에서도 <그 육>이
‘공적자 위의 단계’에 있게 됩니다.
모두 하면 됩니다.
모두 <휴거 700선>을 놓고 ‘크게’
이뤄야
인생 100년이 아깝지 않고, 섭리
인생이 아깝지 않습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