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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5.12.16 (수)

151216 수요말씀 완성본

선포일
2015.12.1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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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6일 수요말씀>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연단받고, 이기고 얻어라 본 문 시편 23편 5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삼위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려면, 끝까지 해야 된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오해도 풀리고, 손해 간 것도 받는다.’ 라는 주제로 말씀해 주었습니다. ◎ 오늘은 먼저 <이번 주 말씀의 핵심 내용>을 전해 주고, 이어서 ‘끝까지 연단받고, 이기고 얻어라.’에 대해 짧고 굵게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냐고 물었을 때, 성령님은 “끝까지 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 시작할 때 어려움도 있고, 과정 중에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도 있지만 결국 ‘정말로 끝까지 가겠다.’ 마음먹고 행한다면, 근본적으로는 걱정이 안 됩니다. 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주도 가장 크게 걱정하시는 자들이 있으니, 끝까지 못 하는 자, 중도에 포기하는 자입니다. 처음에 아무리 잘하던 자도 중간에 마음이 변하여 주를 등지고 나가기도 하고, 열심히 하던 자도 이성에 빠져 휴거까지 인정하지 않고 나가기도 합니다. 혹은 하늘과 형제를 오해하고 나가기도 하고,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다가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환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성삼위와 주를 붙들고 행하며 이긴다면, 그는 ‘삼위일체가 걱정하시지 않게 하는 자’입니다.  육상 경기도 끝까지 가 보기 전에는 <승리자>를 확신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가서 ‘결승선’을 넘은 자가 <승리자>가 됩니다.  끝까지 해야 ‘승리를 확신’합니다. 끝까지 해야 ‘의문’도 풀리고 ‘오해’도 풀립니다. 끝까지 해야 ‘그동안 손해 간 것들’을 보상받고 얻게 됩니다. 끝까지 해야 ‘그동안의 한’을 풉니다. 끝까지 해야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사연과 뜻’도 알게 됩니다.  <집>도 끝까지 지어야 완성하여 살 수 있습니다. <수고의 대가>도 끝까지 해야 줍니다. <하루 품삯>도 하루 종일 일하고 끝에 가야 줍니다. 아무리 <멋진 글>이라도 끝까지 마무리해야 빛이 납니다. <휴거>도 ‘끝까지 하는 자’가 완성합니다.  <처음>에 다 주고 <과정 중>에 다 준다면 어떻게 ‘참된 자’를 찾고, ‘의인’을 찾고, ‘끝까지 변치 않는 자’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중간에 변한 자’를 <휴거>시킬 수 있으며, 어떻게 ‘중간에 변한 자’를 <천국 황금성>에 오게 할 수 있습니까?  하나님은 <처음>에는 조금만 주시고, <중간>에는 조금 더 주시고, <끝>에 가서 최고로 많이 다 주십니다. 끝까지 변치 않고 성삼위를 사랑하며 그 뜻대로 행한 자에게 그 행위대로 크게 많이 갚아 주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 월명동 <야심작>은 ‘다섯 번’이나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쌓았습니다. 끝까지 쌓으니, ‘그동안 왜 그렇게 무너졌는지’ 의문이 풀렸습니다.  첫째, 처음에는 돌을 살 돈이 없어서 ‘막돌’을 사다가 쌓았는데,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쌓고 보니, <막돌>을 가지고 ‘돌 쌓는 법’을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좋은 돌>이 있어도 내게 ‘돌 쌓는 기술’이 없으면 <좋은 돌>이 무용지물이니,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상’대로 돌을 쌓게 쓰시려고 먼저는 <막돌>로 손수 돌을 쌓으면서 ‘기술’을 익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좋은 돌>을 구해 나가게 하셨습니다.  둘째, 토목공사를 다 했다고 더 이상 바닥을 파내지 않았는데, 그로 인해 결국 쌓은 돌들이 무너졌습니다. 끝까지 쌓고 보니, 돌을 너무 경사지게 쌓아서 위험했는데 바닥에 바위가 나오기까지 흙을 파내게 하고, 그 위에 돌을 ‘눕혀서’ 쌓게 하신 것입니다.  셋째, 하나님은 ‘천국 백보좌’를 상징하여 <야심작>을 쌓으려고 구상하셨는데, 다섯 번째로 쌓았는데도 ‘백보좌 형상’이 아니니 <뜻>이 아닌 고로 무너뜨리셨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 결국 여섯 번째 돌을 쌓을 때는 ‘크고 좋은 돌’을 구해 와서 쌓았습니다. <큰 돌>을 쌓으려니 ‘크레인’으로 쌓아야 했습니다. 크레인으로 쌓기 전까지는 최대 포클레인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포클레인으로 보다 높은 곳에 쌓으려면, 밑에다 흙을 쌓아 놓고 거기에 올라가서 쌓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야심작 아래와 중간 쪽>에는 돌을 ‘세워서 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쪽은 사람이 많이 앉도록 <좋은 호피석>으로 ‘반반한 면’을 위로 올라오게 해서 쌓았습니다.  그러나 포클레인도 <야심작 맨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고로 <야심작 상단부>에는 크레인으로 돌을 들어서 ‘부챗살 모양’으로 ‘병풍’처럼 세워서 쌓았습니다.  다 작업하고 흙을 다 파내고 보니 <야심작 아래쪽>은 사람들이 올라가서 앉기 좋은 ‘스탠드’가 되어 있었고, <야심작 위쪽>은 돌을 세워 쌓아서 ‘병풍’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끝> (* 이제 전체적으로 <야심작>을 다 쌓고 ‘끝에 가서 의문이 풀린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 그런데 <야심작>을 다 쌓고 보니, <중간>에는 ‘돌을 세우지 못해서’ 해 놓고도 별로였습니다. 다섯 번째로 쌓을 때는 <중간>에도 ‘세워서’ 쌓았습니다. 그런데 여섯 번째로 쌓을 때는 <중간>에는 세워서 못 쌓았으니 ‘다섯 번째만 못하다.’ 생각하고 아쉬워했습니다.  ‘그래도 <스탠드)>같이 쌓았으니 사람들이 많이 앉아서 사진 찍기도 좋고, 축구 하면 앉아서 응원하고 관람하기 좋겠다.’라고만 생각하고, 제자들이 “만족하게 쌓았어요?” 하면, 아쉬워도 “만족하게 쌓았다.” 했습니다.  그리고 <야심작 중간 쪽>이 너무 휑해서 ‘눕혀서 반반하게 쌓은 돌 몇 개를 빼내고, 세워서 다시 쌓을까?’ 하고 돌아다녀 봤습니다. 그런데 혹여 ‘돌 몇 개’를 빼면, ‘세운 돌들’이 움직여서 넘어질까 걱정되어 하려다 안 했습니다.  만일 <야심작 중간>에 돌을 세웠다면,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요? <돌을 눕혀 반반한 면으로 쌓은 하단부와 가운데>는 의자 바닥이고, <돌을 뾰족하게 세워서 쌓은 야심작 상단부>는 의자 등받이이고, <좌우 아래에 세운 87톤 바위>는 의자 손잡이 끝부분입니다. 그런데 <의자 바닥이 되는 부분>에 돌을 ‘뾰족하게 세워서’ 쌓았다면,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쪽에 ‘세워서 쌓은 돌’을 다시 뽑아야 했을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성자는 승천하시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야심작의 인봉>을 떼 주셨습니다. “<야심작>은 ‘하나님의 백보좌’를 상징하여 쌓은 것이다. 걸작이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다시 <야심작 사진>을 보니, 선연히 ‘의자 형상’이 보였습니다. <월명동 야심작>을 쌓기 시작하고 18년 만에 깨달았습니다. <끝>  모르면, 잘해 놓고서도 고민합니다. 모르면, 손과 발이 고생입니다. 모르면, 머리와 생각이 고생입니다.  결국 끝까지 하니, ‘의문’이 다 풀렸습니다. <하늘의 걸작>을 낳았습니다!  월명동에는 <샘>도 많습니다. 끝까지 파내니, ‘물’이 나왔습니다.  하나님도 주도 끝까지 좇아야 그동안 왜 그같이 되었는지 ‘의문’이 다 풀리고,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지 ‘뜻’도 풀리고, 그동안 ‘손해 본 것’을 다 보상받아 얻게 되고, 과거의 ‘오해’도 ‘무지’도 다 풀어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 <농부>가 ‘과수원 농사, 논밭 농사’를 끝까지 해야 그동안 투자한 것을 얻고, 모두 거두어 보람을 누립니다.  하다가 잘 안 되고 힘들고 어려워도 끝까지 해야 됩니다. <끝까지 하는 그 좋은 기질>로 끝까지 하여 ‘밭에 감춰진 보화’도 발견하게 됩니다.  수천 가지 환난과 어려움을 견디고 이기고, 끝까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며 그 뜻을 행하며 살았더니, 결국 하나님이 <휴거 역사>를 하시어 <창조 목적>을 이루는 데 ‘사명자’가 되어 모두 휴거시켰습니다! 선생은 끝까지 하여 얻은 것이 정말 많습니다! 육적인 것도, 영적인 것도 다 얻었습니다!  끝까지 해야 됩니다. 끝에 가면 ‘승리하는 선’까지 왔기에 얻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로 인하여 후회하며 한이 맺혔지만,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끝까지 하여 ‘다윗’을 왕으로 세움으로 사울로 인해 한 맺히고 억울했던 것들을 다 풀고, 죽을 때까지 존경받고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 <다윗>은 사울로부터 갖은 고통과 죽음의 위협을 당했지만,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랑함으로 결국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받았고, 그동안 고생하고 고통받은 한을 풀었습니다.  <요셉>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했지만,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랑하니 애굽 왕의 꿈을 풀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됐습니다. 고로 그동안의 억울함을 다 풀었고, 자신을 미워하여 애굽으로 팔았던 형제들도 요셉 앞에 굴복하고 돌아왔습니다.  <예수님>도 그 시대의 온갖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행하여 ‘십자가’까지 지면서 그 시대의 죗값을 다 대속해 주시고, 신약 2000년 역사의 조건을 세우셨습니다. 그로 인해 <신약역사>가 찬란하게 펼쳐지게 됐습니다.  끝까지 성삼위를 사랑하며 그 뜻대로 하면, <정한 날>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한’이 풀어집니다.  섭리사도 그러합니다. 온갖 환난·핍박·악평 속에서도 끝까지 ‘주의 말씀’을 듣고 ‘삼위의 방향’대로 왔습니다. 때가 되니 우리는 <진리와 휴거>로 더욱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괴롭히던 자들은 병들어 죽기도 했고, 옥에 가서 고통을 당하기도 했고, 의인들을 괴롭힌 죄로 이를 갈며 고통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또한 경제가 가물어 허리끈을 졸라매고 살고 있고, 괴로움과 번민으로 호흡하듯 살고 있습니다. 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주를 따라가는 자들>이 건너편을 바라보니, <악으로 끝까지 가는 자들> 앞에 ‘지옥과 흑암’이 입을 떡~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00m를 앞두고는 ‘지옥의 블랙홀’이 있는데, 블랙홀의 힘으로 ‘지옥’으로 쭉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는 곳>에서 ‘섭리역사’를 만나고 ‘주’를 만나 ‘지옥’에서 빠져나와 주를 사랑하며 살다가도 다시 ‘세상 사랑, 이성 사랑’에 빠져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거기서 나오라고 해도 ‘보낸 자’를 배척하고 나가더니, 결국 술과 마약을 음식으로 삼고 살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은 지옥에 매여 있고, 허벅지만 한 강철 쇠고랑이 발목과 손목에 채워져서 지옥사자의 감시하에 살고 있습니다. <그 육신>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구원자를 통해 권고한 말’을 무시하고, ‘주’를 불신하고, 등을 돌리고, 외면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후회해도 ‘단 1초’도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혹여 영계에서 살아 돌아와도 “이제 나는 너를 모른다. 지옥에서 네가 사랑하는 자와 실컷 사랑해라.” 합니다.  그러나 <지옥>에는 ‘사랑’이 모래만큼도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도 없습니다. ‘자기를 타락시킨 자’와는 영원히 원수가 되어 살게 됩니다. 주의 말을 듣지 않아서 그리된 것입니다.  성자도 주도 무릎 꿇고 빌며 목숨 다해 이야기했어도 <자기>가 안 듣고 그 길로 간 것입니다. 지옥에 가서 고통을 받으며 이 생각을 계속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너는 왜 미친 짓을 했냐?” 하며, 망치로 자기 머리를 깨서 골이 나오면 다 밟아 뭉개 버리고 웁니다. 그러고 나서 눈을 빼고, 불 젓가락으로 자기를 지집니다.  지구 세상에서 구원받지 못하여 <지옥으로 간 영들>은 지옥 고통을 받다가 미쳐서 칼로 자기 얼굴을 찌르고, 도끼로 자기 머리를 쪼개고, 도끼로 자기 팔다리를 자르고, 칼로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고, 자기 생식기가 더럽다며 다 도려내어 개에게 주고 불에 태웁니다. 그렇게 영원히 기약 없이 삽니다. 주께서 권고한 날에 그 말을 듣지 않고, 기회를 줘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주를 불신하고 세상의 썩은 자를 따라가 사랑한 연고입니다. 그 고통은 ‘육신 일생, 영혼 영원히’ 갑니다.  성령님은 이미 여러 사람을 통해 계시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고 사망길로 가니, <정한 때>부터 ‘심판’입니다. 혹은 심판을 받고 그때부터 조건을 세워서 올라오기도 하는데, 거기서 조건 세우기는 너무 무섭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가 권고하는 말을 듣고, 기회를 줄 때 어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 그동안 삼위가 구원자를 통해 권고한 말을 외면하고 등진 자들은 <육신>은 ‘썩은 사과 겉’같이 빨갛고 멀쩡한데, <영>은 ‘썩은 사과 속’같이 썩어서 죽어 있습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길>로 가지 말고, <주가 인도하는 길>로 와라. 이 길만이 <생명길>이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마다 모두에게 ‘축복’을 주었다. 행해 봐라! 행해 보면, 자기가 ‘무슨 축복’을 받았는지 안다.” <전환> ◎ 이제 ‘끝까지 연단받고, 이기고 누려라.’에 대해서 짧고 굵게 말씀하겠습니다.  <사울>은 연단받지 않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했고, ‘자기 어려움’도 ‘민족의 어려움’도 해결하지 못하여 실패의 정치를 했습니다.  하나님은 <다윗>이 어렸을 때부터 택하여 준비시키셨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고도 <다윗>은 사울로부터 갖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을 통해 더욱 연단을 받았고, 어려울수록 하늘과 더 가까이하며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했습니다. 결국 왕이 되어 ‘하나님 앞’에도 마음에 들게 정치를 했고, ‘백성들’도 평화롭게 다스렸습니다.  성경의 인물들은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연단과 시련’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욱 연마하고 끝까지 연단받아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냈고, 결국 ‘영광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 <욥>도 ‘갖은 시련과 고통’을 당하면서 사탄과 인(人)사탄과 싸웠습니다. 극한 연단의 시간을 거치고 나니 사탄도 그를 힐문하지 못했고, <뺏긴 것들>을 ‘배’로 돌려받았습니다.  <야곱>도 형 에서에게 쫓기면서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연단을 받았습니다. 또 삼촌 집에 가서도 각종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연단받고 행하여 결국 사랑하는 라헬을 얻었고, 재물도 얻었고, 그로 인해 <자기 소원>도 이루고 <하나님의 소원>까지 이루었습니다.  <요셉>도 형제들로부터 시련과 고통을 받았지만 이겼습니다. 형제들이 미워하여 요셉을 애굽에 팔았고, 요셉은 거기서 ‘종살이’를 하며 또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각종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연단을 받았기에 결국 기회를 잡아 왕의 꿈을 풀어 주어 <자기 한>도 풀었고 <하나님의 뜻>도 이루었습니다.  <에서>는 야곱을 괴롭히면서 들개같이 인생을 살다가 끝났고, 그 영은 영원히 사망에 묻히게 됐습니다.  <사울>은 그렇게도 다윗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지옥 같은 고통 속에 살다가, 결국 ‘자기와 자기 민족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했습니다. 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을 괴롭히려고 말을 타고 돌진하며 공격하려다가 나뭇가지에 머리가 꽂혀 죽었습니다.  <가룟 유다>는 ‘메시아’를 팔아넘기고 공격하다가, 정신이 돌아오니 너무 괴로워서 견디지 못하고 목매달아 스스로 자기를 죽였습니다.  역사적으로 <의인을 핍박한 자들>은 정한 날에 그 육도 영도 모두 멸망받았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연단을 안 받고 하면 <자기>도 감당하지 못하고, <자기가 다스릴 자들>도 감당하지 못하고, <자기 일과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고, <자기와 겨루는 상대>를 두고 싸워 이기지 못합니다.  <연단>은 ‘배우는 것’입니다. 말로도 배우지만, ‘행동’으로 겪으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 <연단>은 ‘자기를 튼튼하게 하는 것’입니다. 곧 무술을 익히는 것과 같고, 축구·배구·농구·수영·양궁·육상 레슬링·태권도·철인3종 경기 등 각종 운동 대회의 경기를 위해 연습하고, 배우고, 자신을 연마하는 것과 같습니다.  <연단>은 ‘행하면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 <연단>은 ‘청중을 끌고 앞장서서 목적지까지 가도록 자기가 미리 걸어가 보고,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 <연단>은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 고로 하나님은 큰 인물이나, 표상이나, 지도자나, 하나님의 사명을 맡겨 쓰시려면 연단하십니다.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게 하기 위함이고, 청중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리고 이끌어 나가게 하기 위함이고,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여 승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 어떤 사람은 ‘연단 때’ 어렵고 힘들다고 거부하며 안 하다가 <연단>이 아니라 <연탄>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니 섭리사에 남아 있어도 ‘큰일’을 못 합니다. 혹여 ‘작은 일’을 맡겨도 잘 감당을 못 하고 겨우 합니다. 고로 ‘쓸 데’가 적습니다. 혼자서는 잘 있지만, 청중 가운데는 내보내기 불안합니다. 사탄도 못 이기고, 자기 어려움도 감당 못 합니다. 그러니 청중을 다스리며 주의 가르침대로 가르치는 데는 쓸 수가 없습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100% 연단받아라! 그러면 <휴거>를 감당한다. <사명>을 감당한다. <사탄>을 이긴다. <어려움>을 다 이긴다. 결국 높이 솟아오르고, 하늘의 굄을 받는다. 끝까지 해라! 그러면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이니 확실하다. 그때 의문도, 오해도, 무지도 풀린다. 그때 얻은 것은 완전히 네 것이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