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5.12.17 (목)
목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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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계시말씀
♥ 12월 17일 수요일
하나님과 주의 생각을 받아야
하는 근본 뜻은 700선으로
이끌기 위함이다
작성일: 2015. 10. 21. 작성자: 정형호
(수요예배를 드리기 위해 준비하며
기도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말씀*
3.16 휴거 날의
가치를 잊고 사는 자가 많다.
몇 년 지난 것처럼 느끼며,
감사가 사라진 자도 많다.
휴거가 얼마나 큰지 가치를 모르니
인생 차원이 제자리에 있고,
차원을 높이지 못하니 차원이 낮다.
황금성에서 매일 혼인 잔치하는
휴거의 영을 느끼지 못한다.
가치를 상실하면, 휴거도 상실한다.
고로 정녕 휴거의 가치를 알아야 된다.
사랑아.
성삼위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 네가 누구에게 집중하고
누구를 의식하느냐에 따라 너의 뇌에
집중하고 있는 생각이 들어간다.
주의 생각이 들어가느냐,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느냐
결국 너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너희는 누구의 생각을 받길 원하느냐?
생각이 중요하다고 하는 근본 뜻은
성삼위와 주의 생각을 받고 살라
함이다.
성삼위와 주를 부르지 않고
집중하지 않으니 인간의 생각이
들어가고 인성에 젖어 인간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한다.
더 이상적으로 할 수 있는데
결국 기도하지 않아서 생기는 연고다.
사람이 가져야 할 생각, 근본의
에너지, 성삼위와 주의 생각을 받아라.
곧 성령을 받으라 함이다.
내가 혼으로 나타나는
실체의 모습을 보여 주겠다.
(1. 기차 레일이 보였습니다.
기차 레일이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고
너무 멋진 두 대의 기차가 보였습니다.
두 기차가 똑같이 생겨서 같은
기차인가 하고 생각할 때,
성령님께서는 자세히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같은 기차인 것
같지만 종착역이 달랐습니다.
하나는 출발역은 뇌, 종착역은 주
생각이었고, 다른 기차는 출발역은 뇌,
종착역은 인간 생각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과연 어느 기차에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보자고 하셔서 보니,
대다수가 종착역이 인간 생각인
기차에 많이 타고 있었습니다.
마치 시장에서 이것이 좋다고
홍보를 하고 안내를 하는 것처럼,
사람들끼리 무지 속에 인간의 생각을
전파하며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주의 생각을 받지 않으면 인간의
생각을 주의 생각으로 착각하여
무지한 길로 가게 되고, 정확히
분별하지 못하겠구나 깨닫게 되었고,
정말 기도를 통해 주의 생각을
끊임없이 받아야 되겠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기차가 출발했는데 종착역이 주
생각인 기차는 빠르게 황금성을 향해
가고 있었고, 종착역이 인간 생각인
기차는 레일을 따라 출발역으로 다시
돌아오는 반복을 거듭하며 황금성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차에
타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차가
도착한 곳을 보며 실망했고, 그제야
기차를 잘못 탔다고 한탄했습니다.)
주의 생각을 받아야 영원히 천국
황금성에서 누린다. 인간의 생각을
받고 살아가다 보면, 제자리 차원에서
고립되기에 황금성에서 영원히 거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생각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된다.
2. 또 두 대의 기차가 보였습니다.
한 대는 KTX보다 훨씬 좋고 멋진
기차였고, 다른 한 대는 무궁화호보다
안 좋은 기차였습니다.
KTX보다 좋고 멋진 기차는
급행으로 초고속으로 가는 기차였고,
무궁화호보다도 안 좋은 기차는
완행으로 엄청 느리게 가는
기차였습니다.
이 기차에도 도착지 푯말이 있어서
보니, KTX보다 좋은 기차는 주
생각이 도착지였고, 무궁화호보다
안 좋은 기차는 인간 생각이
도착지였습니다.
내가 왜 도착지를 주 생각과
인간 생각으로 보여 준 줄 아느냐?
주 생각의 결말과 인간 생각의 결말을
알려 주기 위함이다.
주 생각의 결말은 최첨단의 차원 속에
최고의 황금성으로 가는 축복의
결말이요, 인간 생각은 제자리걸음을
하다 끊임없이 밑으로 떨어지는
결말이다.
너희는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
나는 너희가 주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 제대로 된
도착지로 기차를 타고 멋지게 가길
바란다.
너희는 주 생각이 종착역인 기차를
제대로 선택하여 간다고 하지만,
대다수가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오늘 깊이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발 기도해라.
기도가 약한 이유도 생각에서 지니까
그렇다. 어린 자도 주를 붙잡고 차원을
높여 가는데 수많은 자들이 제자리에
멈춰 있거나 떨어진다.
이번에는 영계의 실상을 보자.
300선부터 700선까지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지 보자.
(성령님과 함께 먼저 300선의 세계에
갔습니다. 이전보다 더 좋아진 세계에
놀랐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선생의 조건과 사랑으로 각 차원의
세계들마다 더 좋고 웅장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300선부터 399선까지 차원대로
나뉘어져 있지만, 이곳에 존재하는
영들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많은
자들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400선부터 499선까지
존재하는 곳으로 갔는데,
느낌과 존재하는 빛부터가 달랐습니다.
이곳에 존재하는 자들은 많지 않았고,
399선에서 400선에 들어오려고
몸부림치는 영들이 굉장히 많은데,
쉽게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의의 공적과 사랑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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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선은 더 없었고,
600선은 거의 없었고,
700선은 선생님과 부흥강사의 집만
더 웅장하고 더 빛이 찬란했고,
그 옆으로 조금씩 집이 갖춰지고
있었는데, 아직 그곳에서 활동하는
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다시 300선의
세계로 가자고 하셔서 갔습니다.
700선의 세계를 보고 300선으로
가 보니, 지구 세상에 온 느낌이라
별로 기뻐하지 않으니 성령님은
보여 줄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영들을 잘 봐라. 300선 안에서
수많은 자들이 왔다 갔다 하지?
위치가 계속 바뀌고 있지 않느냐?
자세히 보니 300선 안에서 정말
위치가 계속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영들이 거북이가
꼼지락대며 올라가듯 산을 기어
올라가는 느낌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모습을 보여 주시며
섭리사의 실태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께 왜 이러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1. 기본 신앙이 확실하지 않다.
2. 기도의 핵,
성삼위와 주와 대화가 적다.
3. 휴거의 인식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았다. 300선 휴거에 대한
기존 인식이 강한 자가 많다. 그래서
700선에 대해 계속 교육해 준다.
4. 죄의 문제가 크다.
생활 속에 작고 큰 죄의 문제가
지속되고 즉시 회개하지 않은 연고로
죄가 커지고, 묶인 자들도 많다.
회개는 즉시 하라고 한 선생의 말을
뇌에 깊이 새겨라.
죄는 휴거를 방해하고,
죽음으로 몰아가게 하는 암 덩어리다.
생각이 무너지고, 정신이 무너지니
휴거선이 내려간다. 휴거되면 작은
죄들은 다시 회복할 힘이 크지만
자꾸 죄를 지으면 회복할 힘이
적어지니 죄를 지으면 손해다.
사랑아.
황금성 혼인 잔치의 핵은 300선이
아니다. 확실히 인식하고 깨달아라.
성삼위와 주와 함께하며 같이 700선의
세계로 가서 함께 누리며 사랑으로
역사의 뜻을 펴는 것인데 성자가
안타까워한다. 700선으로 가기 위한
관문이 300선이라 이제 시작이다.
휴거를 위해 전적으로 달려온 자들은
그동안 해 온 행실이 있기에
700선으로 가기 쉬우나, 그렇지 못한
자들이 문제다. 고로 끊임없이
인식하고 깨닫고 행해야 된다.
(성자께서 안타까워하시니 선생님께서
직접 300선 세계에서 고군분투하시며
휴거된 영들과 혼을 깨우시자,
살아나는 영들이 많았습니다.
선생님의 조건과 사랑과 함께
사랑의 결실인 전도의 공적과 말씀을
실천하는 행실의 의의 공적을 세우면
더 빠르게 혼도 육도 영도 변화를
이루고, 휴거선이 높아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선생님이 손을 대시니 300선에서
400선으로 넘어가는 자들이
조금씩 많아졌습니다.)
핵을 알아야 휴거 완성의 뜻이
이루어지니 교육한다.
내가 한 영을 보여 줄게.
지난번에 본 영인데 빛이 더
찬란해져서 못 알아볼 뻔했지만
느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주의 말씀을 전하며 생명을
살리고 부지런히 뛰니 400선에서
500선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기존에 보았던 황금성 집에서
500선에 새로운 집이 또 생기고
있었습니다. 한국만 한 건물이
양쪽으로 수백 개가 존재하며, 중앙에
있는 핵심 건물은 하트 모양에 위에는
별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집마다
명패가 있는데 이 사람의 이름과
각 공적의 명칭이 쓰여 있었습니다.
천국의 영토를 확장하듯
400선의 지구 반만 한 집은 그대로
있고, 500선으로 차원을 높이니
또다시 집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결국 700선의 완전한 세계에 집이
생길 때까지 거쳐 가는 집처럼 차원을
높일 때마다 각 차원에 거하는 집을
마련해 주시고, 나중에 각 차원대로
오고 가며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300선인 자가 400선 세계는 못
가도, 400선이 된 자가 300선인
세계에 갈 수 있다는 것은
300선의 세계에도 집이 있고,
400선의 세계에도 집이 있으니
왕래할 수 있다 함이요,
400선인 자가 300선 세계에 가서
만나고 싶은 자들을 만날 수 있고,
300선에서 400선으로 못 오는 자는
성삼위의 허락 아래 400선이 된 자가
초대를 하면, 그 집으로 잠시 놀러 올
수 있는 것이다. 천국의 깊은 비밀을
가르쳐 준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아.
사랑과 주의 말씀을 행하여
이루는 의의 공적이 굉장히 크다.
네게 보여 준 자도 생명을 살리기
위해 간절히 주를 찾고 행하니
성령과 주가 그 강의에 함께하여
생명의 심령이 뒤집어지게 한다.
생명의 심령이 뒤집어질 때마다
내가 함께 있었다.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700선의 세계에 가려면,
1. 더 깨끗하고 완전한 사랑
2. 더 차원 높은 의의 공적
3. 사랑으로 더 많은 생명을 결실하는
것이다. 곧 사랑이 핵이기 때문에,
더 불타오르는 사랑의 힘으로 역사를
뛰고 더 행하는 만큼 차원이 오르게
되어 있다. 항상 차원은 어느
궤도에 오르면 한계를 맞이한다.
하지만 휴거의 차원은 그렇지 않다.
핵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더 사랑하면 더 행하고, 더 많이
사랑하면 더 많이 하는 것이 원리다.
그리고 마지막은 인격, 말, 행실, 생각,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보게 된다.
생각이 중요한 이유를 한 가지
더 말하면, 생각이 700선이 되면
영도 700선이 된다.
왜? 생각에 따라 행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차원
높은 완전한 생각을 받으면 700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은 완전한 700선의 세계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각을 받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자기가 원하는 일이 되고,
부부 일체, 일심동체, 행실 일체,
생각 일체 되듯 완전히 일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700선의 답이다.
하나님의 완전하고 온전한 생각을
받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의 완전하고
온전한 생각을 받고 모두 700선의
세계로 점진적으로 도전하며 차원을
높여 나가자.
함께하는 성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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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7일 수요일
역사의 때를 알고, 시대
보낸 자의 조건으로 살아난
너희들이 역사를 이루어라
작성일 : 2015. 10. 19. AM 05:10
작성자 : 정수현
(어느 날 성자 승천일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날 월명동에 가장 오고
싶으셨던 분이 바로 선생님이셨을
텐데 그 심정을 진정 깨닫지 못했다는
걸 충격적으로 알았습니다. 그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기도할 때 역사의
때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을
정리하였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
사랑아, 오늘은 깊은 것을
얘기하려 하니 잘 적어라.
역사의 때는 사람이 정하지 않는다.
하늘이 정한 때를 따라 정확히
움직인다.
너희가 성자 승천의 날이
3.16 그때가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여 내가 운행하였느냐?
아니다. 오직 나 여호와의 의향과
생각대로 가장 좋은 날, 합당한 날에
역사를 진행하였다.
그날은 누구보다
선생이 함께하고 싶었던 자리이다.
성자가 이 땅 가운데 왔다가 휴거된
영과 함께 하늘나라로 가는 순간을
왜 보고 싶지 않았겠느냐.
내가, 너희 선생과 함께
이 지상에서 성자 승천의 날을
육으로 보내길 원하였다면,
선생의 육신이 자유롭게 된 후에
성자의 승천을 감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 선생이 그곳에
있을지라도 나는 역사의 가장 좋은 때,
내가 계획하고 예정된 뜻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하늘 역사의 때라는 것이다.
너희의 휴거를 위해
선생이 전반기 때
1차 육적 휴거를 준비시켰고
2차 영 휴거를 선포하고 준비시켜
너희를 2015년 3월 16일에
휴거시켰다. 이때는 인류 역사상
전에도 후에도 없을 휴거 역사였다.
누가 그 장면을 가장 보고 싶었겠느냐.
성자 승천 때 휴거되는 사랑하는
신부들과 누가 가장 함께하고
싶었겠느냐.
너희는 그날 너희들이 그 장소에
함께하지 못함으로 마음에 한이
되었다고 하나 선생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상황 가운데 아예 갈 수가
없었다는 걸 생각해 보았느냐?
누구보다도 함께하고 싶었던 날인데
물론 그 혼과 영으로 함께하였지만,
육신이 자유롭지 못해 참석을 못 하는
그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느냐.
내가 그를 중심하고,
그의 육신이 자유로울 때를 기다려
승천 날을 미룰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인간에게 맞춘 역사가
되기에 결국에는 가장 합당한 때에
선생의 육신이 그곳에 있었어도
역사를 감행하였다.
실로 역사는 이와 같다.
때는 너희를 봐주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 만물과 일들의 이치대로
가장 합당하게 그것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때는 하늘이 정하여 미룰
수도 당길 수도 없다.
그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식물이 열매를 열어 추수를 해야 할
때 그때 열매를 따지 않으면 들쥐들이
다 파먹고 썩듯, 역사의 때는 정확히
간다. 나는 지체도 않고 미리 행하지도
않으며, 모든 걸 정확히 맞추어
역사하는 신이다.
인간은 자기 상황에 따라
일을 늦추기도 하고,
자신이 편한 대로 때를 바꾸기도 하지.
그러나 하늘은 모든 것을 정확히 때에
따라 운행하신다. 고로 이 ‘때’는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가 없다.
하늘의 때는 정확히 하늘이 구상한
대로 흘러간다. 그러한 하늘의 때를
너희는 정확히 알고 지켜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3.16 성자 승천과 그 후
이루어진 영 휴거 300선이 너희들의
생각과 달리 이루어졌을지라도 그것은
정확한 역사의 흐름인 것을 깨닫고
인정하여라.
그리고 선생이 너희를 대신하여
그 모든 죄를 청산하여 이루어진
역사임을 알아야 한다. 선생이
2009년에 시대의 선고를 받고
십자가의 길을 감으로 그 대가로
재림, 휴거의 말씀을 주었다.
그 조건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런 휴거의 역사도 없었다.
너희들의 죄로 인하여 역사가
지연되고 또 지연되다가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선생이
그 짐을 대신 지고 들어갔다.
고통의 십자가라는 것을 알고
그것이 얼마나 힘들 것인지도
알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역사가
제때에 이루어지지 못할 것임을 알고
선생이 최후의 결단을 한 것이다.
내가 시키지 않았다.
그가 자진하여 한다고 했다.
그의 결심과 고백에 성삼위가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힘들까도 생각하였지만
하늘이 감격하고 감동하여
선생의 조건을 받아 주었다.
거기서 이렇게 말씀을 받으며
역사를 이루며 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였는데 선생이 이루고
있다. 선생이 이 말씀을 받아 줘야
너희가 살기에 목숨 걸고 받아 내었다.
어떤 환경이 막고,
악평자가 막고, 사탄이 막아도
오직 역사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
또 너희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가
조건을 세웠다.
진정 더 이상 할 수 없는 조건이다.
더 할 수 없는 사랑이다.
그렇게 하여 이룬 역사다.
너희들이 그렇게 이룬 3.16을
진정 깨닫지 못하고 맞았을 때
선생이 얼마나 실망하고 한이
되었겠느냐.
누구보다 육신이 나가서
성자를 잘 보내 드리고 싶었을 텐데...
그 육이 나갈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자들이 제대로 못 깨닫고 제대로
보내 드리지 못한 사람이 더 많으니
선생의 한, 하늘의 한이 되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선생이 함께하고 싶었던
것을 너희는 생각해 보았느냐.
뛰쳐나가서 이 지상에서 최고로
멋지게 보내 드리고 싶지 않았겠느냐.
그런 선생의 마음을 알고 잘해야 한다.
이제 휴거 700선도 정확히 기한을
준다. 하늘의 때는 시계처럼 정확하다.
때는 기회라 하였다.
그 때를 놓치면 기회를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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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느 때냐?
휴거 700선을 당세에 이뤄야 할 때다.
선생이 나오기 전 2년 동안 준비해야
할 때다.
이때는 또 지나가면 영원히 안 온다.
눈앞의 시계만 보지 말고
하늘의 역사의 시계를 보아라.
지금이 어느 때인지 정확히 알고,
하늘이 어떤 심정으로 너희를 보고
있는지 알아라.
선생이 그 안에서 세운 조건으로
너희들이 살았으니 너희가
무한히 드려야 한다. 그 조건에
감사하며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선생이 십자가를 지지 않았으면
휴거를 이루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온전히 선생의 조건이다.
너희들이 누리는 지금의 행복과 혜택,
이 모든 축복은 누군가 너희를 위해
엄청난 조건을 세워 받은 혜택이라는
걸 알아라. 당연히 생각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가 보낸 자,
따르는 자들의 표상인 자가 세워야 할
조건을 세웠기에 이런 어마어마한
역사를 이룰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조건을 세운 복직된 하와가 선생이
행한 대로 조건을 세워 가능해진
역사다. 승리한 역사가 된 것이다.
누가 너의 도움이 되고 구원의 조건이
되었는지 깨달아라. 내가 말씀을 통해
다 말하고 있으니 깨달을 수 있다.
역사의 때가 지금도 정확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보낸 자의 조건으로
살아난 너희들이 나머지 역사를
이루어라.
때를 놓치지 말고
너의 방 안의 시계만 보며
개인 역사만 이루지 말고
하늘의 때를 보아라.
생각하여라.
시야를 넓히고 보다 큰 뜻을 위해
살아야 한다. 너희는 하늘의 역사를
위해 택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운행하는 역사를 제발 깨닫고
뜻을 이루는 너희가 되길 빈다.
사랑한다.
너의 하나님이.
♥ 12월 17일 수요일
심정에 꽂아라!
작성일 : 2015. 11. 17. / 11. 24.
작성자 : 이찬
(아침에 잠에서 깼습니다.
비몽사몽 상태에서 눈을 떴는데
순간 제 혼체와 영이 일체 되어
황금성에 있었습니다.
눈앞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빛나는 검을
뽑으시더니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전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긴장 속에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 앞에 오시더니
갑자기 그 검을 제 심장에 확!
꽂으셨습니다. 아프진 않았지만 너무
놀라서 정신이 번쩍 돌아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심장에 꽂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슨 계시인가
계속 생각하며 기도할 때
“심정에 꽂아라!”임을 알게 되었고
일주일간 이 계시에 대해 생각하며
지냈습니다. 새벽에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선연히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심정의 신부가 되어라.
심정을 빼면
시체라는 말을 들어 보았느냐.
심정이 없으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맛도 없는 법이다.
심정이 있으면 감동도 있고
눈물도 있고 기쁨도 있는 법이다.
심정을 아는 자는 자꾸 보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나에 대해서도 자꾸
알려 주고 싶다.
심정을 모르는 자는 마음이 안 가고
눈길이 안 가고 말도 안 나간다.
영적으로 보면 너희와 나 사이에는
심정으로 통하는 심정의 통로가 있다.
심정이 통하면 이 심정의 통로를
통하여 나에게도 너에게도 심장과
심장이 맞닿는 것과 같이 만날 수
있다. 나와 심정이 통하면 그는
그 즉시 형통한다.
섭리사 신부들이 휴거를 이루고
이제는 제법 성장하여 이 역사의
마지막 한때를 뛰고 달리고 있다.
이 당세의 때, 심정의 사도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열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심정으로 팍팍 통하며 뛰고 달리는
자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심정의 불을 받은 자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영계에서도 심정은 차원을 넘나들며
나의 마음에 꽂히고 나를 움직인다.
차원이 낮을지라도 심정이 닿으면
즉시 나와 심장과 심장을 맞대고
대면한다. 그럼 운명이 바뀐다.
내가 쓰는 자들은 심정이 남달라야
한다. 나는 애초에 심정이 남다른 자를
택하고 키운다.
선생을 보아라.
나에 대한 심정이 처음부터 남달랐다.
선생이 품은 그 심정이 끊임없이
나의 심장에 꽂혔고 선생과 나는
마치 심장이 하나이듯 일체 되었다.
부흥강사를 보아라.
선생을 향한 심정이
처음부터 남달랐다.
심정이 남다르니 행함도 남달랐다.
심정이 있으면 즉시 통한다.
심정이 있는 자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특히 영계는 심정의 세계이고,
나 역시 심정에 민감한 신이라
심정이 있는 자에게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항상 심정이 통해야 한다.
그래야 하늘의 큰일을 맡길 수 있고
치우침 없이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심정이 안
맞으면 그렇게 답답하고 힘들 수가
없다. 특히 안타까운 자들이 열심은
있는데 심정이 없는 자들이다.
모두 하늘을 향한 사랑이 있고
섭리에서 큰 꿈들을 꾸고 있을 것이다.
먼저는 하늘을 향한 뜨거운 심정을
가져라.
내가 쳐다볼 수밖에 없고,
성령이 거할 수밖에 없고,
선생이 쓸 수밖에 없는
뜨거운 심정을 가져라.
심정이 없이 열심만 있는 것은
이제는 원치 않는다.
너희는 휴거되었고 창조 목적을 이룬
신부가 되었기에 하늘 심정을 깨닫고
알아주며 이 당세를 불같이 뛰길
원한다. 지금 나의 이 말을 심정으로
깨달아야 한다.
기도를 할 때도 나의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그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하고, 그 마음을 향한 심정을
가지고 내게 뜨거운 심정의 기도를
해야 한다. 그런 기도가 나의 심정에
꽂히고 자신의 운명을 뒤바꾼다.
선생을 마음속 깊이 들여다보아라.
깊이 생각하며 느껴 보아라.
2015_1217 목 계시말씀.hwp5
진실함과 간절함으로 기도해 보아라.
네 마음속에 선생을 향한 심정이 오고
그의 고통과 아픔까지도 느껴질
것이며 어느새 그의 심정이 네
마음속에 꽂히게 된다.
말씀을 볼 때도,
무언가를 깨달으려 할 때도
심정으로 깨달으려 해야 한다.
말씀을 깊이 깨달으려면
논리와 이치적으로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적으로 깊은 심정을
받아 깨달아야 한다.
심정의 깨달음은 실천까지 옮겨지고,
생각의 깨달음은 생각에서 끝난다.
말씀을 쓸 때 선생이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썼는지,
어떤 상황에서 썼는지
깊이 생각하며 말씀을 보면
선생이 전하고자 하는 심정이
느껴진다.
그 심정을 읽는 자는
선생과 금방 소통된다.
부흥강사를 보아라.
선생의 심정을 꿰뚫고 있으니 척하면
척이다. 그러니 속이 시원하고 그녀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도를 할 때도 심정으로 하여라.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는 선생의 몸이 되어 선생의
심정을 생명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의 생각을 버리고
선생의 심정을 항상 생각하며
전도하여라.
그곳에서 얼마나 답답하겠느냐.
당장이라도 뛰쳐나와서 썩어 가는
이 세상, 생명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싶지 않겠느냐.
그 애달픈 선생의 심정을 깊이 깨닫고
네 마음에 받아 그 심정을 가지고
불같이 생명들을 전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불같이
전도하는 자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
선생의 심정을 받으면 어떠한
상황에도 전도할 수밖에 없다.
강의와 관리도 마찬가지다.
선생의 심정을 품고 해야 한다.
특히 생명이 힘들어하고 죽어 갈 때,
선생이 그곳에서 가지도 못하고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애가 탈지
그 심정을 생각해 보았느냐.
선생이 가면 5분 만에
그 생명의 생각을 돌릴 수 있고,
생명길로 이끌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니 얼마나 애가 타겠느냐.
너희가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선생의 심정이 생명을 살리는 것이니
강의든 관리든 선생의 심정을 안고
하여라.
30개론은 선생을 증거하는 말씀이니
반드시 선생의 심정을 안고 외쳐야
한다.
찬양도 심정을 가지고 불러 보아라.
심정의 찬양은 나에게 즉시 상달되고
그 찬양이 하늘 방송에 울려 퍼진다.
가사 하나하나를 마음속 깊이 새기며
심정을 안고 찬양하면 그 즉시 불이
오고 그 찬양의 주인공이 되며
받을 축복을 모두 받게 된다.
하늘의 모든 일을 행할 때도
반드시 심정을 가지고 행하여라.
그래야 모든 일이 형통하고 하늘이
그 몸을 쓰고 함께하기 쉽다.
열심만 가지고 10을 하는 자보단
일을 좀 못할지라도, 1을 할지라도
심정을 가지고 하는 자를 쓴다.
심정을 전하는 자가 심정의 일을 한다.
심정을 가진 자가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심정을 가진 자는
자신이 스스로 불을 받아 행한다.
심정을 가진 자는 하늘이 원하는
일이라면 누가 말하지 않고 누가 보지
않아도 어떻게든 그 일을 해 준다.
심정을 가진 자는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묵묵히 견디며 할 일을 다
해낸다. 심정을 가진 자는 서운함과
섭섭함을 안 타고 언제나 하늘 앞에
나아오며 하늘이 쓴소리를 할지라도
회개하며 더 하늘을 가까이한다.
심정을 가진 자는
말씀대로 항상 변화하며 발전한다.
심정을 가지지 않은 자들이 자신을
만들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하니
섭리사를 나간 것이다.
심정은 마음에 순간 감동을 받고 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깨달음에
깨달음을 연속하고 행하면서 생기는
것이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며 행하는 심정을
가져라. 네 마음속에 하늘 심정의
뿌리를 깊이 내려라.
네 육의 마음에서
네 영혼까지 심정의 뿌리를 내려라.
그 심정의 외침이 하늘까지 닿으리라.
심정을 아는 자는 한마디를 해도 그
한마디가 다르다. 심정을 가진 자는
한 가지를 행해도 느낌부터가 다르다.
너희에게 이 당세에 주는
축복의 선물은 하늘의 심정이다.
말씀으로 모든 것을 알려 줬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심정은
너희가 캐내라.
지금 이때 내가
심정을 부어 줄 것이다.
하늘의 심정을 받은 자는
하늘의 일을 불같이 행하게 된다.
지치지도 않는다. 이것 말고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느냐.
그러니 이 당세의 때, 너희는
하늘의 심정을 간구해라.
하늘의 심정을 간구하고
네 것으로 만들어라.
하늘은 큰일을 시키기 전에
먼저 하늘의 큰 심정을 내려 주고
그 심정부터 감당케 한다.
네게 하늘의 큰 심정이 임했다면
절대 놓치지 말고 감당하여라.
모두를 크게 쓰기 위해,
크게 쓸 자를 찾기 위해
이 심정의 말을 하였다.
지금 내가
크게 쓸 자들이 많이 보인다.
천국에 아직 너희들이 받아
가지 않은 큰 심정들이 많다.
먼저 받는 자가 주인이다.
지금은 먼저 하는 자가 주인인
시대이기에 하늘의 심정을 받는 자는
사명도 그 심정에 맞게 바뀌게 될
것이다. 지금은 먼저 하는 자의 것임을
잊지 말고 자신에게 합당한 심정
받기를 기도하여라.
심정을 가지고 행하기를 힘써라.
하늘의 눈이 가도록 뜨거운 심정을
가지고 행해 보아라.
이 심정이라는 것은 참으로 오묘하다.
사람도 보아라.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느냐.
이것은 단지 말 한마디가 아니라
심정을 알아주는 것이다.
심정을 아는 것이 이리 큰 것이다.
특히 지금 연말은
나 여호와의 심판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심정을 알고
나아오는 신부들이 되어야 한다.
회개도 심정을 알고 회개하며
심판도 나의 심정을 알고 나의 손을
잡아야 한다. 선생은 나 여호와의
심판의 때에 나의 심정을 잡음으로
나의 심판의 손을 거두었다.
심정을 모르면 화가 있는 것이다.
이 시대도 선생을 모르니 화가 있다.
2015_1217 목 계시말씀.hwp6
선생이 하는 말을 심정 깊이 듣고
선생의 행함을 심정 깊이 보았다면
절대 선생을 몰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부흥강사도 그녀가 어떤 심정으로
선생을 대하고 하늘을 모시는지
모르니 처음에 사람들이 모르고
제대로 대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을 볼 때도 그 사람의 깊은
마음속, 심정을 들여다봐야 그 사람을
알게 되듯 선생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선생을 진정 심정으로
깨달았다면 벌써부터 선생을 보이는
성자로 알았을 것이다.
부흥강사도 너희가 그녀의
심정을 깊이 꿰뚫어 보며
심정으로 깨달았다면 벌써부터
그녀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사랑들아.
심정으로 봐야 한다.
심정으로 깨달아야 한다.
심정은 심장에 꽂힌다.
하늘을 향한 뜨거운 심정을 가진
자들이 내 마음에 꽂히고 있다.
나의 심정에 꽂아라!
나의 심장에 꽂아라!
불같은 사랑의 행실로
선생의 심정에 꽂아라!
불같은 말씀을 세상
생명들의 심장에 꽂아라!
성령의 검을 나의 뜻을 방해하는
사탄, 마귀의 심장에 꽂아라!
모두 하늘 심정에 꽂아지는
마음을 가지고 행하길 바란다.
내가 다 보고 있다.
심판은 항상 축복과 함께 옴을 알아라.
이 연말에 난 섭리에 크게 쓸 자를
찾고 있다.
나의 심정에, 선생의
심정에 꽂히는 자를 크게 쓸 것이다.
나의 말을 너의 심정에 꽂아라.
모두 심정의 신부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의 심정을 외치자!
심정의 사도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나 여호와는 이 시대의 심장인 선생과
항상 함께한다.
이 시대 나의 심정은 오직 선생이다.
사랑한다.
나의 이 심정의 말이
너의 심장에 꽂히길 축복한다.
여호와다.
안녕.
♥ 12월 17일 수요일
차원은 축복이자 심판이다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11. 10. AM 01:00
작성자 : 주빛랑
(순회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보면 자기 차원의 말인데도 정말
진실되게 담대하게 주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때도 구시대 사람들은
자기주장이 구시대 차원인 것을
모르니까 새 시대, 새 말씀, 새 인물이
잘못되었다고 그렇게 담대하게
진실되게 주장하였고,
이 시대도 기성과 악평자들은
자기주장이 구시대 차원이자
잘못된 주장인 걸 모르니까
새 시대, 새 말씀, 새 인물이
잘못되었다고 그렇게 담대하게
진실되게 주장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성령님께 말씀드리길
“차원이 높은 자는 항상 차원이 낮은
자의 주장과 말에 핍박당하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차원이 낮은 자는 더
높은 차원의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너무나 담대하게 진실되게 자기 말이
맞다고 주장하니 정말 무섭습니다.
하나님께서 차원을 만드실 때
차원이 낮은 자가 차원이 높은 자가
하는 말을 듣고 그게 답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게끔 만들어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구원자도 딱 보면,
‘그가 구원자다’라는 것을 알 수
있게끔 만들어 놓으셨다면 구원자가
이토록 핍박받진 않았을 텐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께서 ‘차원’에 대해 여러
가지 깨우쳐 주셨고 이것을 계시로
달라고 기도할 때 주신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차원은 축복이자 심판이다.
차원이란, 행하여 이긴 자에게 주는
축복이요, 차원이란, 행하지 않아
머물러 있는 자에게 주는 심판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요,
질서의 하나님이다. 고로 모든 세계를
창조하실 때 ‘자기 차원에서 자기만족
속에’ 살게 하였다.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의 삶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에 평생 고통이다.
신약급 천국에 사는 자가 성약급
천국의 삶을 보면 ‘상대적 박탈감’에
영원한 고통이다.
고로 보지 못하는 것,
알지 못하는 것이 공의요, 질서요,
그래야지만 각각의 차원의
삶이 존재할 수 있기에
이는 존재의 법칙인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너희 인류를 긍휼히 여기시고
창조 목적의 뜻을 이루시고자
‘구원자’를 보내어 ‘시대 말씀’을
선포하시어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보는 것을 허락하시고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의 때’를
주셨다.
고로 구원자를 보냄은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한다는
최고의 증표라고 하지 않았느냐.
극진히 사랑하니, 자기 차원 속에서
자기만족으로 살고 있는 너희를
흔들어 깨워 새 시대, 새 차원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차원’은 안다고 해서 자기
소유가 될 수 없고 진정 깨닫고 자기
것으로 삼고자 수고의 땀방울을
흘려야 자기 소유가 될 수 있다.
고로 차원은 행하여 이기고 승리한
자에게 주는 축복인 것이다.
새로운 차원의 핵인 ‘구원자’도
누가 구원자인지 답을 알려 준다고
해서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다.
지난 2천 년 역사가 증명하지 않느냐.
예수가 구원자임을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지식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 구원자를 깨달아 자기 것으로
삼고자 하는 수고의 땀방울이
있어야지만, 구원자가 열어 주는
새로운 차원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답’을 알려 주시지 않고
‘답에 이르는 길’을 너희에게 알려
주신다. 답을 알려 주는 것은 ‘지식을
전함’이요, 답에 이르는 길을 알려
주는 것은 ‘깨닫게 하여 자기 소유로
삼게 함’이다.
2015_1217 목 계시말씀.hwp7
깨닫는다는 것은 반드시
‘과정’이 필요하기에 길을 알고 그
길을 걷는 과정 가운데 얻게 된다.
진정 깨닫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차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공의의 질서’다.
고로 하나님은
‘예수가 구원자다’라고
외치기 전에 ‘회개하라’하였다.
신약시대에 진입할 수 있는 답은
‘예수’이지만 그 답에 이를 수 있는
길, 그 답을 볼 수 있는 방법은
‘회개’인 것이다.
자기 차원에 만족하며 사는 자들을
자세히 보아라.
그들이 받은 심판이 무엇이냐,
교만한 대로 버려둠을 당한 것이
아니더냐.
교만한 자는 절대 하나님을 볼 수가
없다. 하나님은 곧 차원이신데,
교만한 자, 곧 하나님보다 자기중심인
자는 결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볼 수
없어 새로운 차원에 들어갈 수 없다.
이것이 곧 심판이지 않느냐.
그러나 진실로 어린아이 같은 자,
자기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행하심을 간구하는 선한 족속에게는,
하나님의 행하심 곧 구원자의 역사를
보여 주사 새로운 차원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곧 축복이지 않느냐.
고로 각 시대는 세례요한의 외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대의 전환,
시대 안에서도 전환기 때마다
‘혼란’이 찾아온다.
고로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하였다.
생각하라 함은,
너희의 마음을 비워 내고,
너희의 주관을 비워 내고,
하나님의 새 역사를 기다리라 함이다.
그로 인해 땅에서는 행한 자,
곧 차원을 높인 자, 곧 앞선 자가
구시대로부터 이해를 받지 못해
질타를 받고 핍박을 받고 나아가
십자가까지 져야 한다.
그러나 진정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자는 그러한 질타와 핍박과 십자가가
아프지 않다. 무지자들의 목소리에
위축받지도 않는다. 원주민이 자신의
삶이 옳다고 주장한다 한들 네가
그들의 삶에 들어가 그들에게
맞춰 살 것이냐.
이미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을
차지했는데 애굽으로 돌아가라 한다
해서 돌아가겠느냐.
그와 같이 아는 자, 앞선 자,
차원을 높인 자는 구시대의 무지가
오히려 ‘영광’이 되고 구시대의
아우성이 오히려 노래가 되어 그에
맞춰 춤을 추며 기뻐 좋아하며 산다.
그것이 선생의 삶이 아니더냐.
구시대 차원에 사는 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주장’은 옛것인데 ‘논리’는
탄탄하다. 그러나 새 시대 차원에
사는 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주장’은 새것인데 ‘논리’는
아직 약할지 모른다.
왜이겠느냐.
구시대는 구시대 삶을 존재시키기
위해 그들만의 논리와 질서를 탄탄히
세웠다. 마치 동굴에서 생활하던 자가
‘나무로 집을 짓는 기술’을 발견하여
2천 년이나 나무로 집을 짓고 살다
보니 더 이상의 나무 집이 없을 만큼
완벽한 나무 집이 완성된 것과 같다.
그러나 새 시대는 이제 막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기술’을
발견한 것과 같다. 그래서 아직은
기술과 구상과 노하우가 약하다.
그렇다 한들,
나무 집과 콘크리트 집이 비교가
되겠느냐. 나무로 아무리 완벽한 집을
지었다 한들 콘크리트로 대충 지은
집과 바꾸겠느냐. 불, 바람 한 번 불면
훅 날아가는 게 나무 집이지 않느냐.
고로 구시대가 아무리 뛰어난 논리와
질서를 가지고 있다 한들 새 시대의
새 주장 한마디와 바꾸겠느냐.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새 시대는
구시대를 반드시 덮어 버린다.
이미 새 시대, 새 말씀, 새 인물이
‘승리의 깃발’을 꽂은 이상 여호와
하나님이 가만히 계셔도 새 시대
물결이 구시대를 덮어 버린다.
구시대의 완벽한 논리와 질서는
바벨탑이 무너지듯 무너질 것이요,
새 시대 앞에 구시대는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고로 아는 자는, 모르는 자로 인해
고통받지 말고 아는 것에 대한
자부심으로 춤을 추며 살아라.
그 자부심으로, 구시대 있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이 ‘깨닫고 새
시대로 올 수 있도록’ 이끌어라.
말로 가르치면 상처를 남기지만 과정
가운데 깨닫게 하면 기쁨으로 오게
된다. 고로 그들의 무지에
답답해하지만 말고 그 답답한
심정으로 어떻게 하면 그들을
깨우칠까 연구하여라.
나 성령의 증거를 들어 보아라.
나 성령의 증거는 가르치는 증거가
아니요, 깨우치는 증거가 아니더냐.
고로 내게 배워라. 나와 함께 행하자.
마지막으로 새 역사를 만난
너희는 기억하여라.
하나님은 새 역사 안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차원으로 높이시며 역사하신다.
고로 자기 차원에서 만족하며 있는
자는 섭리의 기성, 섭리의 구시대가
되어 무지 속에 버려둠을 당하는
심판을 받는다.
고로 ‘회개하라’ 하였던
세례 요한의 외침을 잊지 말아라.
항상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새로운 행하심’을
맞을 준비를 하여라.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사람을 쓰고
새로운 방법으로 행하신다.
지금 불타고 있는 젊은 장작을 쓰고
새로운 역사를 펴 나가시는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자들,
머리가 굳은 자들,
자기 차원에 만족하는 자들은,
‘왜 하나님은 나를 쓰지 않고 젊은
자를 쓰시나’ 한다. 그리고
‘내 사명 인생은 끝났구나.’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너’를 쓰고 싶어도
새 감각이 맞지 않으니 쓸 수 없음을
깨달아라. 그리고 ‘너’를 쓰고 싶어
“젊은 장작을 보아라, 배워라”
외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아라.
젊은 장작을 보라 함은,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 방법을 보라 함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 방법을 보아야
성삼위와 호흡을 맞춰 새 몸이 되어
뛸 수 있지 않겠느냐.
새 사람이 세워지면
새 바람이 시작되는 것이다.
새 방법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흐름을 깨닫고
다시 하나님과 접붙임 하여 경험과
노련미를 살려서 앞서간다면
역사가 얼마나 빨리 가겠느냐.
지금은 진리의 터전 위에 행하고자
하는 자들을 쓰고 외치는 시대이니,
모두 일어나 담대히 시대를 외치며
기뻐 좋아서 살아라.
사랑한다.
너희와 함께하는 성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