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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5.12.19 (토)

토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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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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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219 토 계시말씀.hwp1 2015년 12월 계시말씀 ♥ 12월 19일 토요일 내 <심정>과 <말>을 받고 나의 몸이 되어서 행해 다오! 작성일 : 2015. 10. 19. PM 01:22~01:53 작성자 : 주수신 (새벽잠언을 공부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각자의 마음을 통해서 말씀해 주시니,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몇 명의 생명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었는데, 삼위가 아니라 자신을 중심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저는 언짢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언짢아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기에 ‘왜 이런 마음이 들지?’ 생각하며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기도 시간에 성령님께 이러한 상황들을 고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왜 그때 성령님의 말을 전해 주지 않았느냐고 하시며 몹시 속상해하셨습니다. 저는 그 언짢은 느낌이 저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떠올리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내가 너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말해 주니, 너는 나 성령의 심정과 말을 그저 너의 느낌과 생각으로 여기기도 한다. 내가 각 상황에 따라서 나의 심정을 느끼게 해 주고, 나의 말을 너의 뇌에 전달함은 그 상황에 너를 쓰고 합당한 일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때에 내가 하고자 하는 ‘합당한 일’이란, 내 심정과 말을 다른 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일 수도 있고, 네 스스로의 잘못된 것을 하늘 방향으로 교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네가 너의 것과 나의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모든 것들을 예사로만 여기면 내가 너를 통해서 다른 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다른 자들을 잡아 주지를 못한다. 네가 나의 입과 몸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말이다. 모든 사람들은 차원대로 보고 느낀다. 자신의 관을 버리면 버린 만큼 신의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 ‘자기 자신’이라는 옷을 몇 겹씩 껴입으면 껴입은 만큼 자신의 것만을 보고 듣고 느낀다. 나 성령이 볼 때 그것이 바로 너희의 차원이다. 너 스스로 인간을 높이면 신이 낮아진다. 네 것만 보고 행하니 그것이 나의 심정을 거스르는지도 알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마치 네가 모든 것들을 다 아는 것처럼 이것저것 판단하려 한다. 인간 차원의 판단을 믿고, 그리 행하며 산다. 그리 행하는 만큼, 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신의 구상대로 행하는 것을 보고 오해하며,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다. 성삼위가 볼 때 차원이 낮은 자이다. 그러나 위와는 반대로, 나 성령을 높이면 인간이 낮아진다. 나 성령을 너의 머리로 두고 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같은 고도에서 사방을 살피는 것과는 다르다. 선과 악이 쪼개져 보이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갈려 보인다. 하늘이 높음을 알고, 땅이 낮음을 안다. 나 성령의 심정과 생각을 받으니 인간의 말과 행위를 보고 신의 방향과 어느 부분이 다른지를 알고 그에 대한 하늘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자, 사랑아. 나 성령이 너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내 심정과 말을 전하니, 예사로 여기면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나의 것인지, 아닌지는 어찌 분별할 수 있겠느냐? 다른 자는 몰라도, 너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왜? <네 평소 신앙>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네 육의 삶을 잘 보아라. 네가 생활하며 누구를 생각하고, 누구와 대화하며 함께 사는지를 보아라. 네가 나 성령을 자주 부르고 나와 가까이 붙어 있는 만큼 내가 너에게 말할 발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네가 성삼위와 선생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며 같이 사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치자. 하늘과 평소 교통의 길이 나 있지 않은데, 어찌 수시로 무시로 나의 말을 듣겠느냐. 네 상태는 네가 제일 잘 안다. 죄가 있고, 평소 신앙이 안 되는데 자기 주관과 사탄이 하는 말들을 나 성령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사랑아, 네가 평소에 가까이 한 대상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또 너에게 말할 조건이 되는 대상이 네게 말을 하는 것이다. 육과 영 사이의 교통에 대해서 가르쳐도, 너희는 영이 네게 주는 생각과 너 자신의 생각을 잘 분립하지 못한다. 사탄이 너희에게 낙심, 자포자기, 화, 짜증, 시기, 질투에 관련된 마음과 생각을 준다고 알려 주어도, 그 말 또한 형식적으로만 여긴다. 이것을 모르니 늘 시달리며 사는 것이다. 그 실체를 육으로도, 혼으로도, 영으로도 확인하며 살아라! 네 뇌를 통해서 영과 교통할 때 너의 육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있고, 혼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있고, 영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있다. 너희는 육으로 존재하니, ‘육’을 통해서 겪는 것이 가장 실체적이지 않느냐. 고로 마음과 생각의 분별법 또한 너희에게 가장 쉬운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네 육을 보고 알아라!” 사랑아, 내가 너를 쓰는 이유는 너를 통해 내 말을 하고 내 뜻을 펴기 위해서이다. 나 성령이 아무런 이유 없이 너에게 나의 심정과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2015_1219 토 계시말씀.hwp2 나의 심정은 너에게 감정, 기분, 그리고 느낌으로 와 닿고, 나의 말은 너에게 생각으로 와 닿는다. 네가 나를 얼마나 중심하는지를 네 신앙의 척도로 두고 너의 것과 나의 것을 분별하여라! 줘도 못 받고, 받아도 못 사용하면 지혜자가 아니다. 너도 답답, 나도 답답이다. 나 성령과 함께 행한 것, 그리고 행하고 있는 것들을 놓고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더욱 행하여라! 이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네 차원을 더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더욱 나의 온전한 몸이 되어서 살 수 있는 길이다. 사랑해. 한 단계 더 높이자. 안녕. ♥ 12월 19일 토요일 1.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생각을 잘해라. ‘하늘 심정’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말씀’을 잡고, 그대로 사는 것이다. 2. ‘생명길’은 ‘말씀대로 사는 길’이다. 작성일 : 2015. 10. 17. AM 01:23~02:03 작성자 : 신연호 (새벽 1시에 교회에는 왔지만, 계속 졸렸습니다. 순간 모기에 물려 손이 간질간질하더니 곧 욱신거렸습니다. ‘모기가 손을 물고 간 덕에, 잠을 완전히 깰 수 있게 돼서 좋다!’ 라고 생각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때 성령님께서 “생각하기에 달렸다.”라고 하시며 해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말씀*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모기는 사탄을 상징하지 않느냐. 썩은 것에서 생겨나서,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란 하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네게 유익이 된다. ‘괜히 졸다가 모기에 물렸네. 이처럼 나는 틈만 나면 사탄에게 당하기만 하는 인생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면 낙심만 되고, 사탄은 너의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타고 들어와 더 역사하며 낙심의 마음만 커지게 만든다. 생각을 달리하니, 지금 너처럼 잠을 완전히 깨고 나를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효과를 보지 않았느냐? 그와 같이 사탄 같고 모기 같은 자들이 있다. 그와 같이 사탄 같고 모기 같은 환경과 여건들이 있다. 똑같다.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다르게 하면, 같은 상황에서도 ‘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이 같은 조건에서, 네가 ‘생각을 어떻게 다르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판이하게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형제의 모순 때문에 힘들어하느냐? ‘형제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 생겼다!’ 하며 기쁜 마음으로 기도해 주라고 하였다. 가령 남이 못 해서 네가 행할 것이 많아졌느냐? ‘행할수록 더 변화를 이루니, 덕분에 내가 더 행하여 내 그릇을 키울 기회가 되는구나. 좋다. 감사하다.’ 하며 행하는 자는 복이 있다! 실제 개인의 그릇이 커지며, 소위 말하는 대인배가 되는 것이다. 더욱 하늘과 일체 되는 것이다. 반면, 불평불만만 털어놓는 자들은, 자기 수준, 자기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그로 인하여 불평불만하는 죄만 더 짓게 되고, 이 사람 때문이니 저 사람 때문이니 하면서, 원망하고 탓하는 사탄과 일체 되어 형제를 미워하며, 영적으로 육적으로 사탄의 몸이 되어 쓰이게 된다. 더욱 사탄과 일체 되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하늘과 더욱 일체 되어 차원이 높아지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사탄과 더욱 일체 되어 차원이 떨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디서나 잘 크고 자라는 인생들은 상황, 환경, 여건이 좋아서 잘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잘해서’ 쑥쑥 잘 성장하는 것이다. 고로 ‘생각을 잘하라!’ 그리도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생각을 잘할 수 있죠?”) 그때그때 하늘이 하길 원하는 생각이 있다. 하늘과 대화치 않고 그저 너희 차원에서는, 하늘의 생각을 알 길이 없다. 고로 그때그때 상황과 환경, 여건과 사람 등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하늘의 의견을 ‘물어라!’ 내가 자꾸 하늘 앞에 ‘구해라! 물어라!’ 하는 이유를 알아라. 답을 안 줄 것인데 물어보라고 하겠느냐? 응답하지 않을 것인데 구하라고 하겠느냐? 답을 줄 것이니 물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도 너희에게 주고 싶어서 구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 말해 줬으니 이제는 내가 시키기 전에 탁 눈치 채고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답을 받아 가고, 이것저것 하늘의 뜻을 따라 구하고 받아서 하늘과 함께 이뤄 가며 누리며 살아야 한다. 너희는 ‘눈치’가 있어야 한다. 그저 너희 개인의 유익을 얻기 위해 주변의 분위기나 살피는 그런 눈치가 아니다. 하늘의 의중과 뜻, 심정을 헤아리고, 위로해 드리고,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한 ‘사랑의 눈치’가 있어야 한다! 이 눈치가 빠른 신부는 하늘의 심정을 늘 의식하며, 딱! 딱! 맞춰 행함으로, 하늘을 기쁘게 하며 자신도 기쁘게 산다! 이 눈치가 없는 신부는 하늘의 심정을 거스르는 말과 행위, 생활을 반복하며, 실상 하늘을 실망시키고 자신도 힘을 쭉쭉 빼면서 산다. (“영적인 눈치가 정말 빨라지고 싶어요!”) 그럼 말씀을 자세히 봐라. 말씀을 깊이 봐라. 말씀은 정확하고 확실한 하늘의 심정이지 않느냐. 무언가 자세히 보고 깊이 보기 위해선, 일단 정확히 ‘이해’를 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해하려면 그 내용을 알아야 하지. 2015_1219 토 계시말씀.hwp3 그 내용을 알려면, 봐야 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말씀을 좀 봐라. 말씀을 사모하며 잘 보는 자는 매일 주는 잠언과 계시말씀들도 여러 번 반복해서 상고하고, 연구하고, 정리하면서 하늘의 방향에 따라 심정에 따라 척척 맞춰 기도하고 행하면서 쭉쭉 차원을 높이는데, 말씀을 사모하지 않으며 안 보는 체질이 밴 자는, 오늘 새벽에는 나 성령이 선생과 함께 어떤 잠언과 가르침을 해 줬는지, 어떤 계시말씀을 줬는지, 최근 선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 성령이 선생을 통해 너희 각자에게, 이 시대의 인생들에게 어떤 말을 해 줬는지, 아예 들어보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자들도 많다. 생활이 바쁜 것 알고 있다. 하지만 맘먹고 핵심적인 주일, 수요, 새벽잠언들, 그날 주는 핵심 계시들을 상고하는데, 매일매일 3~4시간씩 걸리느냐? 선생이 모두 삼위께로부터 다 받아서 주고, 부흥강사가 최고로 먹기 좋게 요리해서 주니, 너는 그냥 먹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다. 맘먹고 상고하면 그리 많은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다. 너희가 아무리 바쁘다고는 해도, 24시간에서 1시간은 나지 않겠느냐? 사람과 이야기하고, 자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미나 휴식에는 매일 몇 시간씩 시간을 쓰면서, 그렇게 사랑한다는 삼위와 주 자체가 되는 말씀에는 1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빠서 못 하고, 여유로워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 하늘을 사랑하는 자는 행한다! 진정 하늘을 더욱 사랑하고자 하는 자는 몸부림쳐 행한다! 진실로 삼위와 선생을 사랑한다면, 말씀을 사모하는 맛을 점점 더 알게 된다! 말씀을 통해 삼위와 선생은 가장 선명하고, 강하게, 매일매일 새로운 차원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매일 새로운 정신과 사상으로, 새로운 방법과 방향과 뜻으로 나타나는 말씀은 매일 새로운 옷을 입고, 새로운 콘셉트와 이벤트와 사랑으로 나타나는 하늘 신랑 삼위와 선생 자체인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속 보이지 말고 살자. 너희들의 사랑이 진실한 것을 안다. 나 성령의 사랑 또한 한 치의 거짓이 없이 진실하니, 진정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며 하늘과 더욱 사랑으로 가까워지는 삶을 살자. 말씀을 얼마나 가까이 대하느냐에 따라서, 하늘 심정에 맞추는 기도의 차원도, 하늘 심정에 맞춰 사는 생활의 차원도, 결국 그 인생의 사랑의 차원과 삶의 차원도, 결정된다. ‘생각을 잘하라’는 교육으로 시작했지만, 그 생각을 잘하는 비결은 결국 하늘의 생각을 알고서, 하늘과 함께 생각하고, 하늘과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고, 하늘의 생각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길은 역시 ‘말씀’임을 교육했다. 너희가 얼마나 말씀을 잡으며 사느냐에 따라 하늘과 생각, 마음, 생활, 삶의 일체율이 달라진다! 삼위와 주의 돛인 말씀을 자신에게 강하게 꽃아 일체 된 자는, 똑같이 환난 풍파가 몰아치는 삶에서, 나 성령의 순풍으로 인생 파도를 모두 헤치며 넘실넘실 영원한 성공으로, 더 높은 차원의 황금성의 삶으로 영, 혼, 육이 전진한다. 그러나 새 돛과 같은 새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매일매일 기도의 차원도, 하늘 심정에 맞춰 사는 삶의 차원도 자꾸 떨어진다. 그렇게 말씀을 잡지 않고 계속 살다간, 인생의 돛이 낡아 찢어지고, 돛의 기둥도 넘어가다 결국 뽑혀, 이 시대에 불어 주는 나 성령의 순풍도 받지 못하고, 파도치면 얻어맞고, 배가 뒤집어지는 듯한 영, 혼, 육의 인생을 살며, 점점 사망으로 가는 삶을 살고 있구나. 섭리사엔 영적으로 민감한 자들이 많다. 기도만 많이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중심치 않으면, 아무리 기도하고 감동받고 깨닫고 하여도 자기 수준, 자기 차원이다. 그리고 결국 자기 주관으로 빠지게 된다. 이는 마치 자기 기분에 아무리 잘 나가는 것 같다고 하여도, 자기의 노를 가지고, 자기 방향으로 전진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오직 주의 기둥과 삼위의 돛을 강하게 자신에게 꽂고서, 나 성령의 순풍을 맞으며 가는 자가 아니고선, 방향을 온전히 잡을 수 없다. 파도를 이길 수 없다. 도착하는 곳이 아예 다르다. 말씀 없이 열심을 내는 자, 자신은 잘하고 있는 것같이 느낄 수 있으나, 하늘에서 지켜보면 혼자 자기 길로 가고 있다. 자기 노로 신나게 저으며 하늘 심정을 상하게 하고 있다. 말씀에 맞춰 사는 인생이 최고 차원의 인생이다. 삼위에게 맞추는 것이 최고 차원의 도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최고 차원의 도다. 하늘의 뜻에 합당하고, 때에 합당하고, 천주의 심정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말씀을 잃고 사는 것이 최고 안타까운 인생이다. 그 노력한 만큼 결실과 열매를 맺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우냐. 말씀대로 기도와 행실의 씨를 뿌리는 자는 노력하는 대로 육도 혼도 영도 영원히 얻고 누리니 얼마나 보람되냐. 이런 인생을 살라고 매일 말씀을 주는데, 안타까운 인생을 살고 있으면 두 배, 세 배로 안타깝다. 심정이 타고 애가 탄다. 그 무지함에, 그 안타까움에 삼위와 주의 심정이 심히 쓰리다. 한 명도 헛된 수고를 하지 않기를 원한다. 인생, 영원한 것을 남기지 못하면 결국 헛수고한 것이다. 매일매일 너희 수고가 알찬 결실을 맺길 원한다. 매일매일 너희 모든 하루가 말씀과 연결되고 말씀으로 가득 차길 축복한다. 그리하여 삼위의 심정에 맞는 생각, 마음으로 생활도 삶도 살고 각종의 일도 행하며, 행하는 대로 영원히 누릴 것을, 지금부터 평생토록 계속 차원 높여 가며 얻고, 영원히 사랑하며 같이 쓰자. 영원히 사랑하며 함께 살자. 결국 사랑이 목적인 삶이다. 과정도 사랑을 목적으로 꽉 채워서 살아가자. 우리 사랑의 핵심, 네가 하늘 사랑의 삶을 차원 높여 살 수 있는 길은 말씀을 더욱 잡으며 사는 것임을 교육한 성령이다. 2015_1219 토 계시말씀.hwp4 샬롬. (계시를 정리할 때 선생님께서 짧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무조건 감사다. 오직 감사다. 감사할 것이 없느냐. 그래도 감사다. 감사는 깨달음의 문을 열게 한다! 감사하면, 무엇이 감사한지 깨닫게 된다. 그럼 진정 감사하게 된다. 나를 봐라. 평생 감사, 감격이다. 영원히 감사, 감격이다. 오직 사랑의 삶이다. 모르겠으면 말씀을 봐라. 힘들면 말씀을 봐라. 말씀이 성자와 주가 되고 하나님과 성령님이 되어 너를 일으켜 세우고 너를 위로하고 네게 힘을 주며, 또 네 사랑의 삶을 불태울 대상이 되어 주고 영원한 감사와 사랑의 삶을 살아갈 인생의 길이 되어 준다. 기도가 안 될 때도 말씀을 봐라. 기도가 잘될 때도 말씀을 봐라. 기쁠 때도 말씀을 봐라. 슬플 때도 말씀을 봐라. 오직 하늘만 보고 가는 삶이다. 그 어떤 것도 하늘과 함께하는 삶이다. 나는 내 모든 것을 오직 하늘과 함께하기 위해 성삼위의 말씀대로만 살았다. 너도 네 모든 것을, 오직 하늘과 함께하고자 한다면, 나를 통한 성삼위의 말씀대로 살아라. 부흥강사가 그리해서 성공하지 않았느냐. 부흥강사를 봐라. 영육으로 성공해서 찬란한 해처럼, 아름다운 달처럼,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살고 있지 않느냐. 말씀을 사랑하는 너의 사랑을 하늘이 기억하리라. 말씀을 사랑한 너의 사랑을 하늘이 영원한 사랑으로 갚아 주리라.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늘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늘을 사랑하는 자로다! 삼위께서 사랑으로 창조하신 이 세상, 사랑으로 창조하신 모든 인생들아, 들어라! 말씀을 실천하는 자는 사랑을 위해 창조한 모든 것의 뜻을 이뤄 주는 자로다! 그는 삼위와 주의 모든 뜻을 이뤄 주는 자요, 삼위와 주와 함께 가장 크게 영원히 누릴 자로다! 말씀 속에 다 있다! 사랑, 전도, 역사, 뜻. 진정 말씀을 행함에 모든 것이 있도다! 진정 말씀을 사랑함에 모든 것이 있도다! 사랑하면 행하나니, 진정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라! 오늘도 삼위를 사랑하고 너희를 사랑하여 오직 삼위의 말씀대로 행하며, 너희를 향해 줄 삼위와 나의 최고의 사랑,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써 내려간다. 나는 이미 말씀대로의 역사, 삼위의 역사와 하나가 되어 살고 있다. 너도 진정 사랑으로 이 말씀의 역사에 참여하여라. 나와 하나가 되고 삼위와 하나가 되어 하늘의 뜻길을 가자! 고생돼도 생명길을 가자. 결국 우리가 영원히 함께, 행복할 길이다. ‘생명길’은 ‘말씀의 길’이다. ‘말씀대로 사는 길’이다. 영원한 사랑의 길, 영원한 성공의 길이다. 진정 사랑하는 너와 함께 가길 원한다. 삼위와 함께 생명의 말씀으로 인생들에게 나타나, 말씀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하늘 뜻을 이루며 영원히 사랑하는 성약의 구원자, 성약의 신랑 선생이로다. 샬롬. ♥ 12월 19일 토요일 생각의 전환, 인식의 전환이다 작성일 : 2015. 10. 20. 작성자 : 임원섭 (군 생활을 하는데 피하고 싶은 상황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두고 기도해 왔는데, 흘러가는 것을 보니 상황은 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 상황에 대한 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상황은 그대로지만 제 마음이 바뀌니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역시 하늘의 역사는 제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음에 감탄하며 이것을 두고 기도하니, 성령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네 고백이 맞다. 네가 내게 상황과 여건을 틀어 달라고 기도하였지만, 나는 네 문제의 근본을 알고 근본을 바꾸기 위해 역사하였다. 문제의 근본이 무엇이냐. 네 마음, 네 생각이다. 네 인식이다. 생각을 전환하면 판도가 뒤바뀐다. 인식을 전환하면 판도가 뒤바뀐다. 생각과 인식을 전환하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은덩이가 금덩이로 보인다. 그로 인해 얻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인식을 버리고 하늘의 생각으로 생각해라. 하늘의 생각으로 인식해라. 하늘의 생각대로 행해라. 그것이 답이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수록 고통받고 고생한다. 머리가 잘못되어 있으니 손발뿐만 아니라 영까지 고생한다. 자기 생각 점검, 자기 인식 점검이다. 늘 확인하기다. 잘못된 것은 즉시! 전환하여라. 하나씩 해 나가면 된다. 꾸준히 해 나가면 그것이 너의 사상이 된다. 오늘은 깊은 것을 가르쳐 줄게. 차원을 높이는 방법이다. 어렵다 말고 행해라! 사람은 모든 것을 뇌를 통해 보고 듣고 접한다. 너희가 마주하고 있는 이 세계를 그 자체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네 뇌를 통해 ‘새롭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문제’도 그러하다. 실상 문제가 아니거나 별것 아닐 수 있다. 어떠한 사건이나 상황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뇌를 거쳐 인식하였기에 그것을 문제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것인데 네 생각을 거치니 아주 큰 것으로 인식된다. 2015_1219 토 계시말씀.hwp5 반대로 아주 큰 문제, 아주 큰 것인데도 뇌를 거치면 아주 작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대처도 결과도 달라진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좌우된다. 생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인식하면 그것에 대해 반응한다. 반응은 마음으로 나타나고,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곧 생각에서 행동으로다. 어떠한 것을 생각을 거쳐 받아들이는 것이 ‘인식’이고, 그것이 굳어져 습관화된 것이 ‘인식관’이다. 인식관으로 굳어지면 고치기가 힘들다. 자기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 인식관 때문에 진리도 거부하고, 생명길도 거부한다. 좋은 것을 가르쳐 줘도 싫다고 하고, 허황된 것 속에서 희망을 찾아 떠난다. 어떤 자는 머리로는 알아도 자기 마음이 자꾸 악한 것으로 흐르는 자들이 있다. 그 이유는 ‘잘못된 인식관’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상 것을 받아들일 때 의식적인 생각으로는 ‘싫다!’ 하지만, 형성되어 있는 인식관은 그것을 ‘좋다!’ 하니 그 인식에 의한 반응으로 마음이 흐르는 것이다. 마음이 흐르니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생각으로는 그것이 ‘싫다!’ 하여도 인식관으로 인해 마음이 동하니 그리되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 ‘싫다!’ 하는 생각은 ‘의식적인 생각’이고, 인식관으로부터 나온 ‘좋다!’ 하는 생각은 ‘무의식적인 생각’이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알지도 못하게 마음이 흘러 버린다. 사람이 한 척의 배라면 사람의 무의식은 바다의 파도와 같다. 그 파도에 의해서 배가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파도를 어찌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이 있으니 ‘강력한 엔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강력한 엔진’은 ‘강력한 생각’이다! 곧 의식적으로 강력하게 생각하는 것, 이를 통해 무의식적인 생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자들이 강력한 생각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못 한 다. 또는 노력해도 파도에 휩쓸리는 자들도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겠느냐? 엔진에 넣을 기름이 없어서다. 기름이 있어야 엔진이 돌아가지 않겠느냐. 육적 차원으로는 생각의 엔진에 기름을 넣는 데 한계가 있다. 연약한 육으로 어찌 끝없는 파도를 이기겠느냐. 육으로는 끊임없이 강력한 생각을 할 이유도 없고, 할 수도 없다. 한다고 하더라도 육은 육으로 끝날 뿐이다. 육적 차원으로 강력하게 몰아붙여 봤자 끝은 낭떠러지다! 진정한 길, 옳은 길, 생명의 길은 ‘하늘길’이다! 하늘길은 힘들고 머나먼 길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나, 아무나 오지는 못하는 길이다. 삼위가 억지로 끌고 올 수도 없는 길이다. 엔진의 기름이 영원해야 하늘길도 걸어갈 수 있다. 믿음이 엔진의 기름이요, 소망이 엔진의 기름이요, 사랑이 엔진의 기름이다. 무엇에 대한 믿음, 소망, 사랑이겠느냐. 육의 차원으로는 순간의 것들이나, 영의 차원으로는 영원한 것들이다. 하늘에 대한 믿음, 소망, 사랑이다! 하늘에 대한 믿음, 소망, 사랑을 원동력으로 강력한 생각을 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잘못된 인식관을 이기고 행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잘못된 인식관을 이기면 자신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3차원’이다. 파도대로 휩쓸려 사는 것이 1차원, 육적 차원으로 이기며 사는 것이 2차원, 하늘을 향한 강력한 생각으로 이기며 사는 것이 3차원이다. 이 차원까지는 사람이 자체적으로 하는 차원이다. 사람이 자체적으로 하는 것은 3차원을 못 벗어난다. 3차원은 자기 자신이라는 파도는 이겨도 세상 파도에 휩쓸리고 사탄에게 당한다. 한계가 있다. 4차원으로 도약하는 방법이 있으니, ‘주의 돛을 다는 것’이다! 신약시대 제자들이 파도에 떨고 있을 때, 메시아 예수는 명하여 파도를 잠잠하게 했다. 제자들이 세상 풍랑에 흔들리고 쓰러질 때, 예수를 통한 진리로 파도를 잠잠케 하였다. 그들의 마음 가운데 풍랑을 가라앉힌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시대도 그러하다. 메시아는 세상 바다를 잠잠케 한다. 그의 입에서 나온 진리는 바다를 다스린다. 마음속 풍랑을 잠잠케 한다. 요동치 않고 하늘길을 가게 한다. 주의 돛을 다는 것, 주를 깨닫고 주와 일체 되는 것이다. 이는 진리를 깨닫고 진리로 행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사랑으로 그와 완전히 일체 될 때, 그것이 주의 돛을 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와 생각 일체·행동 일체 될수록, 주의 돛을 깊숙이 꽂으면 꽂을수록 자신의 인식관이 깨부수어진다. 잘못된 인식관이 깨부수어지니 하늘 생각과 더욱 일체 되어 간다. 행하는 자는 선순환이요, 행하지 않는 자는 악순환이다! ‘강력한 생각의 엔진’과 더불어 ‘주의 돛’을 달고 항해해야 한다. 주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진리, 그것을 사모하며 자신의 생각을 다스려야 한다. 말씀으로 자신의 생각을 주와 일체시켜라! 그리고 100% 행하여 주와 행동 일체 되어라! 그러면 세상 바다를 다스린다! 사탄과 싸워 승리한다! 그러나 돛은 있는데 바람이 약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다음 차원으로 순간 오르는 방법이 있다. 바로 ‘때를 타는 것’이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때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 때에 따라 똑같이 행해도 딴 세상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 때 번개처럼 전진해야 한다. 지금이다! 지금이 때다! 지금이 그때다! 지금이 전진할 때다! 지금은 성령의 바람이 강력하게 불어오는 때다. 휴거역사를 이루고 사도역사를 이루어 가는 때다. 2015_1219 토 계시말씀.hwp6 주가 살아 있고 나 성령이 최고로 역사하는 때다. 전에도 후에도 없을 성령의 역사를 일으킨다! 이때가 아니면 다음은 없다. 돛이 없는 배는 바람이 불어 봤자 살짝만 나아간다. 그러다 파도에 밀려 다시 제자리다. 이처럼 주의 돛을 달지 못한 자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 순간이다. 결국 제자리이거나 뒤처지게 된다. 주의 돛을 활짝 펴고, 깊이 꽂은 자는 강력한 바람이 불면 번개처럼 전진한다! 성령의 바람이 강력하게 부니 오히려 파도가 놀라 뒤집혀 버린다. 자신의 인식관이 순식간에 뒤바뀌고 세상이 뒤집어진다. 비밀을 하나 더 알려 줄까? 나 성령이 바람을 강하게 일으킬 때 주의 돛을 활짝 펴고, 깊이 꽂은 자는 바다를 항해하지 않는다. 바람이 하도 강하니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독수리가 날개 치듯 훨훨 날아가 하늘을 항해한다. 세상 바다와 상관없는 자가 된다.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서 도착한다. 그것도 생명의 보화를 가득 싣고 말이다. 비유로 일렀으니 깊이 깨달아라! 이렇게 때에 맞춰 성령의 바람을 타고 행하는 것, 그것이 5차원, 6차원, 7차원이다! 행할수록 높아진다! 때는 이미 시작되었고 기다리지 않고 지나가고 있다. 이때를 잡는 말씀을 선생을 통해 주고 있다. 하나도 놓치지 말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행하는 만큼 실체이고 권세다. 행하는 자를 찾노라. 그가 사도가 될 자다. 네가 하겠느냐? 행해라! 나 성령이 바람을 끊임없이 강력하게 일으켜 줄 테니, 강력한 생각의 엔진을 켜고! 주의 돛을 활짝 펴고, 깊이 꽂고! 성령의 바람을 타고! 하늘의 운세를 타며! 끊임없이 전진하기를 축복한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성령이다. 샬롬. ♥ 12월 19일 토요일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2015년 12월 19일 토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11. 3. AM 03:00 작성자 : 정수현 (이 세상에 ‘진실’이 ‘진실이 아닌 것’에 가려 손해를 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대 말씀도, 시대 보낸 자도 하나님의 진실이 맞는데 세상이 생각하는 진실의 잣대로 판단되는 게 너무 억울하였고, 그것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도 안타까웠습니다. 성삼위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며 기도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랑아, 이 세상이 진실을 왜곡하니 사람들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려 하다가 거짓에 모든 것을 팔아 인생을 사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였느냐. 걱정 말아라. 진실은 영원하며 결국엔 드러나게 되어 있다. 너희들이 진실이 무엇인지 모르고 진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영원히 모르고 갈지라도 그 진실이 거짓에 가려 진실이 아닌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느냐? 사람들은 자기들이 보는 것, 듣는 것으로 판단하여 자신의 잣대로, 자기의 가치관으로 선악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모든 것의 기준이 각각 개인마다 다 달라서 무엇이 절대 선인지, 악인지 몰라 판단이 다를 때가 많지. 그래서 인간은 참으로 혼란스럽고 무엇에 기준하여 살고 판단할지 막막할 때가 많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 진리가 없느냐? 절대 변하지 않는 그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너희들이 보는 것으로 잣대를 삼고 기준 삼아 영원히 그것이 맞다고 하지 말아라. 함부로 판단하여 그것이 죄가 될까 함이다. 오늘은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모든 자들이 이 세상에 진리가 없다고 하여도 진실은 존재하고 그것이 꼭 드러난다는 것을 말하고 싶구나. 이 세상에 아무리 악이 판을 쳐도, 나는 그것이 승리하게 창조하지 않았고 그렇게 운행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이 섭리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을 놓고 너희들의 생각으로 볼 때 ‘왜 하나님이 저런 걸 그냥 놔두시지? 어떻게 저런 상황이 존재할 수 있지?’ 하지만, 나 여호와가 다 감찰하여 신혼골수를 쪼개며 선악 간에 다 은밀히 갚아 주고 있음을 절대 믿어라. 너희들이 그런 것을 보고 내가 과연 역사하는지 의심하지 말고 그래서 나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섭리를 뛰다 보면 이 섭리 안에서도 자신의 생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이 있고, 악한 자가 승리하는 것같이 보여도 그 과정 가운데 내가 다 역사하고 진실을 알고 심판하고 축복하여 다 감찰하고 운행하고 있다. 그러니 그런 것을 걱정하지 말고 너희 의인들은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나에게 간구하고 고하여라. 내가 알고 있다 하더라도 너희는 나에게 선악 간의 모든 것을 고하여라. 너희 선생이 이 지구상 부조리와 부정부패, 선악 간의 모든 것을 나에게 낱낱이 고하듯 너희는 그와 같이 나에게 말하며 고하는 것이 너희의 할 일이다. 악한 일을 행하는 자와 대적하여 싸우기 전에 먼저 나에게 간구하여 영적으로 처리하게 하고 그 후에 꼭 육적으로 해야 할 것이 있으면 그때 내가 손을 대고 착수한 후에 나와 같이 해야 한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깊은 뜻이 있으니 이것을 꼭 알고 믿어야 한다. 너희들은 먹구름이 해를 가린다고 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냐. 이 세상의 사탄이 나의 진리를 가리고 세상을 악으로 가린다고 이 세상에 진리가 없고 내가 없다고 할 것이냐. 그렇지 않으니 너희가 이것을 정확히 알고 진정 나를 믿고 진실이 영원히 존재함을 믿고 살아라. 2015_1219 토 계시말씀.hwp7 악한 것이 득세하며 악이 더 우세한 것 같아도 나는 하나하나 다 쳐다보고 결국 진실이 드러나게 하며 공의롭게 심판하여 승리하게 한다. 그런 나 여호와임을 믿으라는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 말고, 나를 더욱 믿으라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이 세상에 천국을 실현하기 위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려워 말고 시험에 들지 말아라. 내가 과연 너희 기도를 듣고 있느냐고 하지 말아라. 사탄이 더 우위라고 생각지 말아라. 악평자들이 이 섭리사를, 선생을 악평하며 아니라고 하여도 믿지 말아라.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그것이 진실인 줄 알고 손가락질하며 죄를 뒤집어씌우나, 그것이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결국 승리하며 드러날 것이며 보이는 것, 주장하는 것이 진실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것이 맞는 것 같아도 진실의 눈을 떠서 보아라. 과연 무엇이 진실인지 너희들이 분별할 수 있다. 모르겠으면 나에게 물어보아라. 그러면 알려 주지 않겠느냐. 기도해서 영적으로 분별해야지, 겉으로 보이는 육적인 판단으로 하다가 네 영이 영원히 사망으로 갈까 한다. 진실과 사랑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여 운행하고 있다. 내가 존재하니, 나의 법칙으로 창조하였고, 나의 말씀으로 진리가 존재하고 그것으로 선악 간에 공의롭게, 공평하게 다스리고 있음을 믿을지어다. 내가 선포하고 내가 말하였으니 절대 너희들은 이 모든 것을 믿고 살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와 함께하고 있으니 사람들 때문에 낙심되고, 눈에 보이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힘들어도 내가 있으니, 내가 역사하고 있으니 그것을 믿고 포기하거나 낙심치 말아라. 너희에게 공의로 역사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