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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5.12.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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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일
2015.12.2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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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1일 새벽말씀(편집본) 또 하늘의 말씀을 들음으로 시작해서 하루가, 우리 섭리 나라의 역사가 각각 개성으로 시작 되며, 각 나라는 각 나라에 하나님의 뜻을 향한 모든 섭리들이 있으니 그 뜻을 펼 것이며, 개인마다 교회마다 말씀을 중심해서 펼 것입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가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입니다. 본문을 알고 떠나야 됩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서 주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다.” 참으로 내 때가 아니고, 우리의 때가 아니고 하나님의 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때를 지키면서 하나님의 때를 지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때를 지키기보다는 하나님의 때를 지켜야 됩니다. 자기 때인가, 하나님의 때인가를 구 분해야 될 것이고, 반드시 때를 지켜야 됩니다. 어제 새벽 말씀에 “때는 하나님이다.”라고까지 표현되었습니다. “때를 못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못 만난 사람이다. 때에 맞추어서 충성하도록 하라. 그 충 성이 참으로 참된 충성이다. 때에 맞추어서 충성하자. 때에 맞지 않게 충성하면 그 충성이, 그 수고가 헛된다.” 그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자, 그러면 잘 들어요. 거진 인생들은 인간의 때로 흘러갑니다. 왜? 하나님의 때를 모르니까 그래요. 하나님의 때 를 가르쳐 주면 하나님의 때로 흘러갑니다. 그것을 모르니까 인간의 때로 흘러간다는 것입 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까 자기의 뜻으로 흘러간다는 말입니다. “야, 네가 이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고, 이렇게 사는 것은 네가 사는 것이 다.” 그렇게 가르쳐 주면 대개는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면, 네 것도 다 들어있다.” “어떻게?” “웅장하게 아름답게 멋있게 가치있게 들어있다.” 그럽니다. 사람은 나부터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하나님의 거대한 그 뜻을 모르면 나의 뜻대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나라도 말해야지 요. 그런 입장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갈 것이고, 그렇지 않고 성령으로 감동시키는 일이 없든지 예수님이 말씀 안 하면 나라도 말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 자기의 뜻이라도 살아가야 되지 않겠느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니까 여러분이 온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기다리던 성약역사가 왔습니다. “이 성약역사는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 니다. 온 인류가 다 해당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의 때를 따질 때, 지금은 어디까지나 성약역사입니다. 성약역사라, 성약시대에 오면 잘 되는 것입니다. 그 역사만 잘 된다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되는 것입니다. 성약역사를 맞고, 성약역사에 해당되는 말씀을 하고, 죽기살기로 충성하고 사니까 잘 될 수 밖에 더 있습니까? 그러나 구시대 사람들은 구시대 역사만 사는 것입니다. 구시대 역사만 살고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가 보면 안 되잖아요. 가보면 구시대 사람들만 모여 있고, 나이 먹은 사람들 만 모여 있습니다. 계통적으로 그래요. 그래서 구시대의 일만 합니다. 지금도 저 유대 종교인들은 유대 종교의 일만 합니다. 유대 종교의 삶만 살고 있습니다. 보 십시오. 신약역사를 봐요. 그대로 신약에 해당되는 일만 계속 하는 것입니다. 구약 앞에는 신약이지 만, 지금 성약 앞에는 구약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그 시대의 때를 따라갈 때에 마치 밥 먹을 때 밥 먹고, 잠잘 때 잠자고, 일할 때 일 하고. 이치가 합당하지 않습니까? 이런 삶이 연속되어야 됩니다. 우리 인생들도 자기의 때를 따라서 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압니까? 고달픕니다. 그리고 할 일을 제대로 못 합니다. 그리고 몸이 따라주지를 못 합니다. 때를 맞추어서 해야 몸이 따라줍니다. 어제 밤에 새벽 2시까지 했습니다. 말씀을 외치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새벽에 몸이 안 따 라주었습니다. 새벽 3시에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몸이 안 따라주었습니다. 그래서 때를 따라서 일을 못 하면 몸이 안 따라준다는 것입니다. 몸도 안 따라주고,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사는 것이, 그것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때가 이런 시대가 왔다. 성약의 역사가 왔다. 하나님이 행하시지, 사람이 누가 하냐? 내가 행하냐? 네가 행하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우리가 알았다. 거기에 맞춰 일을 하니 까 잘 되더라. 거기에 맞춰 귀를 기울이니까 거기에 해당되는 성약의 말씀이 들려온다.” 구약에다 대 놓으면 구약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구약의 외침이 들어오지만, 이 새로운 시대 에 귀를 대놓으면 새로운 시대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의 역사를 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보람 있다. 재미있다. 즐 겁다. 기쁘다. 그리고 가치 있다.” 이런 표현을 쓰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섭리의 삶을 할지라도 벌써 어제는 옛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은 새것 이로다.” 이렇게 나가는데, 구시대에 있는 사람들은 굳세게도 구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살기는 모두 삽니다. 사는데 어떻게 되었는가 가서 보자는 것입니다. 소리가 다릅니다. 구시대는 벌써 소리가 다릅니다. 소리가 다르고, 행실들이 다릅니다. 그리고 심심하고, 절망 적이고, 소망이 없습니다. 다 끝나 버렸다는 것입니다. 끝나서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전진, 새로운 시대의 발견, 새로운 시대의 일들이 얼마나 희망스럽습니까? 오늘도 또 새로운 날에 새로운 말씀에 ‘무슨 말씀하시는가?’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충성을 했을지라도 때에 맞게 충성하지 못하면 안 된다.” 어제도 보니까 때를 맞추어서 충성치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충성을 열심히 하는데, 너는 때를 맞추어서 못 한다. 때를 맞추어서 충성해야지. 때를 맞추 어서 충성해야지. 때를 맞추어서 충성을 못한다.”고 어제도 책망을 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 다. 때를 맞추어서 충성해야지! 충성을 해 놓고 와도 왜 책망 받는가 하니, 때에 맞춰서 충성하 지 않아서. 다시 말하면, 지금 구시대의 일만 열심히 하고서 하나님께 충성하고 왔다고 하면 책망 받습 니다. “누가 그것 하라고 했느냐? 이런 일이 급한데, 이것을 해야지.” 선생이 어렸을 때, 크면서 일할 때 열심히 땀 흘리고 ‘이제 오늘은 칭찬 받고, 밥도 맛있게 해서 주겠다.’ 하고 집에 갔는데, “오늘 무슨 일했느냐? 밭에서는 보이지도 않더라.” “아, 나 산에 가서 일하고 왔습니다.” “산에 가서 뭐했느냐?” “나무해 놓고 왔습니다.” “지금 그것이 급하냐? 농사 다 지어놓은 저것을 지금 다 버리게 생겼는데? 나무가 급해?” 혼났습니다. 뒈지게 혼났습니다. 기분 잡치게 혼났습니다. 아버지가 소리 지르고. 나는 지금 겨울철이 온다고 나무를 하루 종일 해 놓고 왔습니다. “오늘 뭐 했냐?”고 하면 나무 열 짐을 해 놓고 왔다고 큰 소리 치려고 했더니만, 오던 길로 아버지가 “어디 갔다 왔냐?” 해서 “나무 해놓고 왔습니다.” 했더니 “아니, 나무를 해? 얘는 때를 몰라. 아니, 회골에 가서 그렇게 기다려도 니가 오지를 않아. 도대체 어디를 갔었단 말 이냐? 지금 농사 다 지어 놓은 것 거둬들여야지. 눈 속에 다 꺼박으려고 그래?” 하며 혼났 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해도 혼나겠구나. 때를 못 맞추어서 하면.” 물론 그것도 해야 됩니다. 나무를 하지 않으면 겨울에 살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나무를 땠 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후에 할 일이다. 곡식을 거둬들여야 나무를 해다가 밥을 해 먹지 않냐? 겨 울이 오니 곡식을 거둬들여야 하지 않느냐? 가을 곡식을 빨리 거둬들여야지 하지 않냐? 늦 곡식을 거둬들이고, 무우 배추를 뽑아 들여야 되지 않겠냐? 그런 다음에 나무를 해다가 삶 아먹든지, 덥혀 먹든지 해야 되지 않겠냐?” 그것입니다. 그래서 때를 맞춰서 반드시 해라! “그래서 때를 맞춰서 해야만 모든 일이 좋다. 하기는 하되 때를 맞추어서 하라. 그것도 할 일이다. 나무도 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 할 일은, 곡식을 빨리 거둬들여라. 그리고 나무를 갖다 불을 때서 먹지 않겠냐.” 순서를 바꾸어도 안 됩니다. 때를 못 맞추면 안 됩니다. 때에 맞는 일은 얼마나 효력 있고, 이상적입니까? 우리에게 때에 맞추어서 일하라고 아침에 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때를 맞춰서 일을 하도록 하라.” 그래서 밤잠을 못 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돌아오면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막 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제는 보니까 뭐인가 서운했스빈다. 한참 일하다 허리를 펴보니까. ‘내가 밥을 먹었나? 먹지 않았나?’ 보니까 밥을 안 먹었습니다. 밥그릇에 먹은 흔적이 없었습니다. ‘아, 내가 밥을 안 먹었구 나.’ 이러면서 선생은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이 나이 먹어서 건망증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만큼 일에 묻혀버렸습니다. 일에 파묻혀서 ‘내가 밥을 먹었나, 안 먹었나?’ 합니다. 먹는 것이 문제입니까? 먹는 것이 그렇게 기쁩니까? 잠을 자는 것이 그렇게 기쁩니까? 하나 님의 일을 하는 것이 기쁘지. 때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기쁘지! 그러므로 하늘에 영광을 돌리며, 뜻있게 역사를 펴나가자는 것입니다. “이때를 기다렸는데 어찌 내가 잠을 자랴? 내가 이때를 기다렸는데. 내가 얼마나 이때를 기 다렸다고. 내가 이때를 얼마나 기다리고, 이때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이때가 왔는데 어이 내 가 잠을 자고, 어찌 밥을 먹고 있으랴? 어찌 눈을 팔고 있으랴? 이때 내가 원하는 일을 몽 땅 해야지. 만족해야지.” 하면서 합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이런 것을 갖고서 “어이, 피곤해. 성약역사가 고달프다. 그리고 사명이 고 달프다. 어휴, 하루 이틀도 아니고 힘들다.” 하는데, 그러면 바로 넘어져 버립니다. “너무 좋다. 즐겁다. 하나님도 좋아하신다. 나도 기쁘니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이렇게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이 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힘이 안 오느냐 하면 “아이, 피곤해. 아, 인생 살기 고달퍼. 이것이 천국이야? 천국이 왜 이렇게 힘들지?” 이러면 고달프다는 말입니다. 한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입 갖고, 말 갖고 흉년 만든다.” 흉년을 압니까? 말 갖고 자기가 가난하게 만들고, 말 갖고 부자 되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자기 말 갖고 자기를 고달프게 만들고, 자기 말 갖고 자기가 역시 지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사는 것을 봤지요? 내 삶을 사람들이 두 가지로 봅니다. “신세 고달픈 삶이다.” 이렇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거의 신세 고달픈 삶이라고 할 것입 니다. 그러나 나는 ‘신세가 펴는 삶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긍정적으로 항상 봅니다. 환난 이 있어도, 매인 일이 있어도, 고통스런 일이 있어도. 매이면 매인 대로, 풀러 놓으면 풀린 대로. 그러니까 나에게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어떤 환난이 있어도 일하는 것을 보면, 환난 때는 더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또 환난을 벗 어나면 벗어난 대로 일했습니다. 과거에 일한 것을 죽 보면, 그 일을 못하고 주저앉은 때가 별로 없었습니다. 내 과거를 보면, 일을 미련 없이 했습니다. 다시 또 일을 하라 해도 그만큼 더 이상 하기 힘들 정도로, 극하게 뛰어 옵니다. 웃으면서 뛰어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웅웅 거려도 시속 800킬로를 달립니다. 슬슬, 술렁술렁 가는 것 같아 도. 선생님이 이 섭리를 몰고 가는데 시속 800킬로로 몰고 간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빨리 달립 니다. 그래서 섭리사가 버뜩버뜩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일이 너무 태산같이 많으니까, 그렇게 빨리 달려도 못 다 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서 일을 해야 일이 10배, 100배, 1000배 유익합니다. 선생은 때를 따라서, 맞춰서 하기에 때를 지키지 못한 사람보다 100배, 1000배, 10000배 더 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때를 따라서 쫓아온 것입니다. 힘들어도! 청춘이 늙는 줄 모르게 왔습니다. 조금 생각해 보면 ‘이것, 언제 이랬나?’ 보면 벌써 8년 전에 한 일입니다. ‘이것 언제 일한 것이지?’ 하면 5년 전에 일한 일입니다. 무엇을 찾다보면 벌써 5년 전에 끝난 일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갔습니다. 왜냐하면 부지런히 뛰고 달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 하루를 축소시켜 볼까요? 하루 동안 정신없이 일을 한 사람을 보면 ‘내가 그것을 했나?’ 하는데 오전에 했다는 것입니다. 나, 그렇게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때를 지켜 부지런히 뛰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막 뛰고 달리고 하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나도 그렇게 뜁니다. 왜 그런고 하니, 여기서, 내가 여기서 안 하면 전체가 졸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선생님이 열심히 뛰면 여러 분도 그렇게 되고, 내가 열심히 안 뛰면 여러분도 열심히 못 합니다. 왜?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지. 그리고 내가 고통을 받고 있으면 여러분도 고통을 받고 있고, 내가 즐거우면 여러분도 즐겁 고. 쳐다보고 항상 뛰지 않습니까? 말씀으로 모두 분별하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따라 가니까 너무 재미있다. 너무 좋다. 즐겁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역사를 우 리는 펴니 너무 좋다.” 그러면서 성약역사를 이루면서 가는 것입니다. 성약역사라고 뾰족하고, 산이 변해서 들이 되고, 들이 변해서 바다가 됩니까? 똑같은 환경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같은 섭리사라도 누구는 고달프다 하고, 누구는 힘들다고 하고, 누구는 재미있다고 합니다. 똑같은 환경입니다. 똑같은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입니다.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 네 마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된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가 이 시대, 이때를 따라갑니다. 금주에는 무엇을 넣어주는가 하니, “너, 때를 지켜라!!” 이 말씀이 금주의 말씀입니다. “때를 지켜라. 때를 안 지키면 안 된다. 꼭 때를 지켜서 해.” “네, 자신 있습니다. 때를 지켜서 하겠습니다.” “우리는 때를 꼭 지키자.” 지금의 때는 어느 때일까? 이 주일은 때를 지키라는 사상을 하나님께서 집어넣어 줍니다. 정신을 집어넣어 줍니다. “때를 안 지키면 안 된다.” 내가 때를 기다렸던 것은, 때가 되면 되기 때문에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그 냥 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100분의 일만 움직여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때가 안 되었을 때, 1000배 일을 해도 안 됩니다. 겨울철에 봄날을 기다려 보세요. 봄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그 추운 지방에서는, 영하 25도 영하 30도 또 나아가서는 영하 15도가 됩니다. 어느 때는 영하 10. 그런 날 중에서 봄날이 하루라도 있습니까? 봄날이 하루도 없 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그냥 봄이 닥칩니다. 그래서 그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때만 되어라. 때만 되어라.” 때를 기다리는 것은 때가 되면 되기 때문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를 기다리다가 힘 들다고 섭리를 나가버렸습니다. 거기도 때가 있는가 하고. 안 되지요. 선생은 그 날을, 그 때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잠언 쓰고, 말씀을 새벽마다 퍼부어 주고, 부활 시키고, 그리고 때가 지나기 전에 부지런히 하늘 모시고 살고. 신부니까. 신부니까 신부 짓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말만 신부가 아닙니다. 신부같이 부지런해야 됩 니다. 여자는 근면성이 있어야 됩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늦게 일어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6시에 일어나도 우리는 5시에 일어나 야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뭐 하시기에요?” 하나님도 바쁘십니다. 하나님도 하나님만큼 바쁩니다. 하나님도 다 일하십니다. 인생을 다스 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일 안 하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대개 무슨 일을 하시지요?” 선생님이 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대개 말씀을 외치고, 가르치고, 온 인류의 생명을 다스리 고, 삶을 주관하시는 그 일을 같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만히 있으면 얼마나 재미없겠습니까? 얼마나 재미없겠습니까? 내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습니까? “그렇지 않느냐? 너희들이 가만히 있어 봐라. 얼마나 재미가 없겠어? 재미없겠지?” 듣고, 깨닫고, 적고, 가서 행하고, 들은 것을 행하고, 또 들은 것을 적고, 기록하고 하면 얼 마나 재미있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도 때를 따라서 행하여야 재미있는 것입니다. 자, 우리 이제 온 인류를 향해서 뛰고 달리자고! 때에 맞는 일들을 우리가 안 하면 참 재미가 없다. 고달프다. 때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들이다.” 이때에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모시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웃고, 싱글벙글. 무엇을 봤길래? 아니 무얼 보고 외치기에 그렇게 하지?” “뭘 보고 외치기는. 지금 온 세계의 너희들을 쳐다보고, 지금 하늘을 쳐다보고 웃는 거야.” ‘아! 역사에 찡그리고 설교하면 안 되는데, 그래서 그러시는구나.’ “그것이 아니여. 찡그려야 할 것은 찡그려야지.” 환경이 찡그릴 환경이면 찡그려 버립니다. 알겠어요? 어려운 환경과, 어려운 처지가 있어도 선생님이 웃으면서 한 것은 벌써 희망을 내다보고, 희망적인 삶을 보고 환난이 있으나 어려운 일이 있어도 웃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열심히 뛰고 달려야 되겠습니다. 때를 따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때가 어떻게 됩니까?” “너희들이 이 세상의 때에 맞춰서 그냥 하면 돼. ‘아, 지금 곡식뿌릴 때다.’ 하듯이 말씀 갖 다가 막 뿌리고, 그리고 곡식을 가꿀 때에 막 가꾸듯이 이렇게 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런 다음에 또 거둬들일 때, 거둬들이고. 만물의 이치와 같이 하면 되지 않겠냐. 시대의 역사를 그렇게 펴라.”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외쳤습니다. 구체적인 말씀은 바로, “꼭 때를 지켜라. 하나님은 때를 지켜 행하시는 하나님이다. 좌정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 은 곧 때이시다.”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때를 지키라고 아주 강력하게 여러 위치를 통해 말씀하셨고, 때를 지켜야 역시 기쁘고 즐거운 것이라 했습니다. “반드시 때를 지키라. 때! 저 기성인들은 때 못 지켜서 저렇게 살고 있지 않느냐? 너희들도 이 성약의 역사가 왔어도 때를 못 지키면 또 성약역사의 기성인들이 되는 것이다. 때를 안 지키면. 반드시 새로운 역사가 왔어도 새로운 시대의 때를 지키지 않으면 이 새로운 시대의 구시대 삶을 사는 것이다.”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나에게 반드시 때를 지킬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고, 나에게 말하여 주시고, 주님은 이끌어 주시고 때를 향해서 부지런 히 뛰고 달리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지금은 우리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과, 주 그리스도의 사랑하심과, 나의 간구하는 간구가 모든 자에게 영원하고 영원할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