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5.12.27 (일)
151227 주일말씀 최종본
- 선포일
- 2015.12.27 (일)
- 성경 본문
- 잠언 4장 23
첨부 파일
- PDF
151227-주일말씀 -최종본.pdf
217.2 KB
<2015년 12월 27일 주일말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극’에 속해 산다
본 문 잠언 4장 23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생방송 설교 때는 설교문에서 빼고 전하는 부분이 있었고, 추가 설명도 있었음.
◎ 할렐루야!
◎ 오늘은 2015년 12월의 마지막 주일이자,
2015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 2015년은 <전도의 해>였죠?
올해 3월 16일에 ‘최고로 중요한 날 (휴거 날)’을 보내고,
그때부터 ‘성령의 역사, 증거의 역사’가 펼쳐지면서
어떤 사람들은 빠르게 뛰고, 어떤 사람들은 더디게 걸으면서
어느새 2015년의 끝까지 왔습니다.
◎ <휴거의 해, 전도의 해>답게
휴거 이후, 더욱 성삼위와 주를 사랑하며 휴거의 삶을 살면서
더 나아가 생명들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 특히 휴거 이전에도 이후에도
선생이 받아서 기록한 말씀들을
섭리인 전체가 보고 전할 수 있도록 일일이 정리해 주고,
선생의 심정을 대변해 말씀을 외쳐 주며
한국과 전 세계에 성령의 불을 일으킨 조은 부흥강사,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 자연성전 개발과 관리에 수고한 범석 목사와 성지 사역자들,
수고 많았습니다.
◎ 교단, 교역자들, 지도자들, 각 교회 사명자들 모두 수고했고,
작든지 크든지 섭리사와 각 나라, 각 교회에서
주가 맡긴 사명을 한 여러분, 수고했습니다.
◎ 섭리역사의 기록을 위해 힘써 준 CTN과 사진국, 수고했습니다.
◎ 올해 휴거 이후
“<성자의 승천>과 <휴거>를 외쳐야 불이 일어난다.”라는
말씀에 따라서, <찬양>으로 ‘성자 승천과 휴거’를 불같이 외친
프라비스 찬양의 사역자와 찬양단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이들은 <말씀>보다 강도 높게 <찬양>으로 시대를 증거하며,
듣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잘했습니다! 주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늘의 방향에 따라서 ‘성자 승천과 휴거’에 대해서
<찬양>으로 강도 높게 불같이 외쳤으니,
올해 <전도의 해>를 누구보다 뜻 있게 보냈습니다.
◎ 또한 주님의교회는 “이대로 <전도의 해>를 보낼 수 없다.” 하며
하반기부터 ‘주일예배’로 생명들을 불러와
<진정한 휴거 잔치, 생명 잔치>를 했습니다.
<주일예배> 때는 새로 온 사람이 최고 220명을 넘었고,
<성탄이브 행사> 때는 340명을 넘겼습니다.
생명을 ‘문화 행사’나 ‘강의’로 연결하여 가르치기는 쉽지만,
<예배>로 연결하여 바로 하나님과 주와 섭리사를 접하게 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차원을 높이고, 교육하고,
인식을 전환시키고, 예배의 수준과 차원을 높이고,
‘하면 된다.’는 의식과 믿음을 가지고,
모두 하나 되어 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실질적으로 몇 달 해 보니
악평을 접하여 끊기는 경우는
단 2%에 불과했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섭리사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휴거와 황금성에 대해서 궁금해 하며
<다음 예배>나 <강의>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40~50%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제 <예배로 연결하는 신입생>만 300명을 넘겨보겠다고 합니다.
◎ 그래서 ‘표상’에게 배우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가 보내어 일체 된 자’에게 배우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안 된다. 저기에는 누가 있어서 잘된다.”라고만 하지 말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자기 주관을 비우고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 교회 수준, 자기 수준을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갑니다.
◎ 1년 동안 특히 생명을 살리기 위해
관리하고 가르치고 강의한 세계 각 나라 모든 여러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 부지런히 말씀을 배운 여러분, 말씀 배우고 깨닫느라 수고했습니다.
◎ 처음 오신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 여러분 모두에게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감동·감화·증거의 역사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극>에 속해 산다.’입니다.
주제에 따라 ‘극’에 대해 말씀하면서,
후반부에는 ‘주의 몸이 되어 살 자들’에게 말씀해 주겠습니다.
이 말씀은 선생이 부흥강사에게
여러 장의 편지로 심정을 전해 주고 코치해 준 말씀입니다.
잘 듣고 ‘주의 심정, 성령의 심정’ 받기를 바랍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극’에 속해 삽니다.
어떤 것을 두고 할까, 안 할까 생각하지요?
이렇게 <마음과 생각>이 ‘극’에 속해 삽니다.
<행동>도 ‘극’에 속해 삽니다.
어떤 것을 두고 하든지, 안 하든지 하지요?
이렇게 <행동>도 ‘극에 속해 삽니다.
<극에 속하는 근원지>는 ‘마음과 생각’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러합니다.
과거에는 극에 속해 좋게 지냈던 사이였는데,
문제가 생기고 부딪히고 마음이 변하여
앙숙이 되는 극에 속해 버리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잘 지내던 자녀였는데,
부모와의 갈등과 문제가 생기면서
남남처럼 지내는 극에 속해 버리기도 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러합니다.
과거에는 하나님과 주를 잘 믿고 신앙생활을 잘하다가도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변하여 안 하게 되는 극에 속해 버립니다.
반대로 과거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극에 속해 안 믿던 자가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 믿는 극에 속해 신앙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과거에 5년, 10년, 20년, 30년 동안
그렇게 하나님과 주를 믿으며 신앙생활을 잘했는데,
일순간 극으로 기울어져 신앙을 저버릴 수 있을까?’ 합니다.
그럴 만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 첫째, 과거에 오랫동안 주를 믿고 따랐어도
주와 완전히 일체 되지 못하고 열심히 하지 못해서
얻은 것들이 없기 때문에 오랫동안 주를 믿다가도
일순간 극으로 기울어져 신앙을 저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와 하나 되어
극에 속해 열심히 했으면,
절대 주를 버리고 떠나지 않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주를 믿고 행함으로
얻은 것과 쌓아 놓은 것이 있고,
미래에 천국의 소망까지 있으니 못 떠납니다.
▸ 둘째, 극에 속해 신앙생활을 잘하던 자들이
정반대의 믿지 않는 극의 세계로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일에 부딪혀
마음이 상해 화가 나고 마음이 뒤집어지니
과거에 얻은 것이고 뭐고,
과거에 기뻐하며 산 것이고 뭐고 다 내던져 버리고
현실에 힘든 것, 어려운 것, 억울한 것만 생각하면서
뇌가 그렇게 작동되어 생각이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고로 그렇게 잘하다가도 ‘반대의 극’으로 기울어집니다.
사람의 마음도, 생각도, 몸도
그때마다 부딪히고 겪고 느끼는 대로 ‘극’에 속하게 됩니다.
그때의 마음과 생각으로 결정하게 됩니다.
고로 ‘극’으로 뒤집어집니다.
극도로 화가 나서 마음이 뒤집어지면,
마치 해가 구름에 덮이듯 뇌가 ‘반대의 극’으로 뒤덮여서
과거에 좋아하던 것도
그동안 살면서 얻고 즐기던 것도 다 버리고
현실의 ‘극에 속한 생각’으로 가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극에 속해 좋아하며 사랑하던 자도 버리고
미워하는 극에 속해 살아가기도 합니다.
과거에 오랫동안 ‘어떤 일’을 하면서
“나는 이 일을 안 버리고 평생 하겠다.” 하던 사람도
어느 날 ‘그 일’로 고생하고 힘든 일이 닥치면,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현실에 처한 어려움>만 생각하고 고통스럽고 어려우니
‘그 일’에서 벗어나 ‘반대의 극’으로 가 버립니다.
거기서 벗어나니까 더 이상 그 일로 인해 고통을 안 받게 되지요?
그러니 좋아하면서 ‘건너편 극’에 속해 살게 됩니다.
그러나 당장 편하고 좋아도
<과거에 한 일로 인한 열매>는 얻지 못하게 됩니다.
비바람이 지나가면 화창한 때가 오는데,
<현실의 어려움>만 생각하고 마음이 뒤집진 채로 행한 것입니다.
사람이 ‘극’에 속해 살다가
‘반대편 극’으로 기울어지면, 참 무섭게 변합니다.
그동안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과도 원수가 되고,
그동안 얻은 것들도 다 버리게 되고,
주를 믿고 따라다가도 싫어하여 버리게 되고,
구원도 천국도 싫어져서 하나님 주관권을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한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세상에 속한 일>은 극에 속해 ‘동쪽’에서 살다가
힘들어서 ‘서쪽’으로 옮겨
그쪽 극에 속해 살면서 또 개척해 나가면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속한 일>은 다릅니다.
<하나님과 주를 믿고 사랑하는 극>에 속해 살다가 거기서 벗어나면
<사망의 극>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는 다시 ‘구원의 삶’을 개척하여 살 수 없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그 사람을 향해 정하신 뜻이 깨지고,
그 사람이 그동안 행하면서 쌓은 공적이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다른 데’서는 못 폅니다.
100명, 1000명이 뭉쳐서 역사를 펴려 해도
‘하나님이 그 시대에 보낸 구원자’를 벗어나서는 못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한 주관권’에서 ‘보낸 자’를 중심하여 폅니다.
‣ 신약 때,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벗어나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데리고
딴 데 가서 구원역사를 펼 수 있었습니까?
그 시대에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 예수님’을 벗어나서는
하나님이 그 시대에 원하시는 ‘자녀급 역사’를 펼 수 없었습니다.
‣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섭리역사에서 벗어나 몇 명이 뭉쳐서 딴 데 가서 한다고
하나님의 역사를 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원하시는 역사>는
오직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를 중심하여 펴 나갑니다.
<하나님의 새 역사>는 ‘여러 군데’서 펴지 않습니다.
<단 한 명의 구원자>를 보내서 그를 ‘머리’로 삼고 뜻을 펴십니다.
나머지는 믿어도 ‘구시대’에 속해 있습니다.
신약역사는 ‘예수님’을 중심하여
개인형, 가정형, 민족형, 세계형으로 역사가 뻗어 나갔습니다.
다른 자를 중심해서 다른 데서 역사를 펴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오직 ‘한 주(主)’를 중심해서
개인형, 가정형, 민족형, 세계형으로 역사가 뻗어 나갑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의 극>에 속해 살다가 벗어나지 말아요.
환난·핍박·어려움·고통이 있어도, 시험이 들어도
유혹이 있어도, 형제들과 부딪혀도, 억울함을 당해도,
<현실의 어려움>만 보고 마음 뒤집어지지 말고
주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주와 같이 끝까지 하여
육으로도 영으로도 얻고 거두고 누리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이 유혹에 빠지거나, 시험에 들거나,
자기 사명을 못 해 낙심하거나,
그때 그 순간 힘들고 고통을 당하면,
그때는 <마음과 생각>이 ‘그런 고통’을 안 받으려고
본래 가던 ‘하나님의 주관권’ 벗어나 피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기가 결정한 대로 가게 됩니다.
순간 그 고통은 피했지만,
<영원히 가는 길>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럴 때는 벗어나서 ‘다른 극’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 주관권 안>에서 성령과 주와 같이 문제를 해결하며
고통을 벗어나야 됩니다.
길을 가는 사람은 ‘목적’을 두고 가게 됩니다.
그런데 가다가 힘들다고 ‘그 길’을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목적지’에 못 가게 됩니다.
가다가 넘어졌으면 일어나서 쉬어 가고,
힘들면 잠시 쉬었다가 가고,
길이 험하면 약간만 돌아서 가는 것입니다.
아예 ‘그 길’을 벗어나 버리면 안 됩니다.
사랑해서 결혼하여 같이 살다가도
당장 어려움이 닥치고 힘들다고 마음이 뒤집어져서
과거에 같이 살아오던 것들을 다 버리고
이혼하고 떠나 버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힘들어도 그 안에서 서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혼>이라는 ‘극의 세계’로 가 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러합니다.
순간 얼마간 닥친 험한 길이나
순간 얼마간 닥친 비바람을 벗어나려고,
목적지로 가던 본질의 길을 떠나면 안 됩니다.
순간 안 믿어진다고 홱 돌아서서 하나님과 주를 안 믿고,
순간 오해하여 의심하고 홱 돌아서서 주를 등지고,
화난다고, 힘들다고 하나님과 주를 등지고 벗어나고,
형제들과 싸웠다고 하나님과 주를 등지고 벗어나고,
억울하다고 순간 그 고통을 해결하려고
하나님과 주를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가면,
하나님이 과거에 역사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것이 다 없어지게 되고,
그동안 받은 것들도 다 버리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이 앞날에 계획하신 것들은 못 받게 됩니다.
<새 역사, 하나님의 주관권 안에서 쌓은 공적>은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십니다.
벗어나면, 모든 것이 다 깨진 것입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끝까지 가는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계획하신 영원한 것을 얻게 됩니다.
현실의 환난과 어려움으로
과거에 열심히 하며 살아온 것과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하나님과 주가 계획하지 않은 극의 길’로 가지 말아요.
주를 믿고 살면서 이성의 유혹을 견디기 어렵다고,
물질 때문에 힘들다고, 오해받는다고,
억울한 일과 힘든 일이 있다고, 핍박을 당한다고,
하나님과 주를 벗어나 세상으로 간 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그 육도 영도 봤습니다.
5년, 10년 동안 봤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햇빛’을
의로운 자에게나 불의한 자에게나 다 비춰 주시듯
새 역사가 시작됨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민족과 세계 전체에 기본적으로 주시는 혜택만 받을 뿐,
그저 ‘육’에 속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영원한 세계로 가는 길>은 아예 벗어나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니 ‘고통’인데, 그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자기 삶으로 인해 오는 고통’을 받으면서
‘육에 속한 극의 삶’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섭리역사에 있다가 세상으로 나간 자들을 보면,
세상에서 ‘육’이 살아가기는 합니다.
자기가 원하던 사랑과 물질을 얻었어도
그 앞에는 ‘영생의 삶, 영원한 길’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자기가 원하던 것을 얻으며 육으로 만족하며 살아도
그것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새 역사에 베푸시는
영원한 휴거와 황금성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중 더러는 ‘육’이 심판을 받아 병들거나 죽은 자도 있습니다.
더러는 세상에 나가서 괴로우니,
자기가 과거에 신앙생활을 잘못했다고 하며
섭리역사가 나쁘다고 악평하고 막으면서
자기의 괴로움을 잊으려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행하시는 일을 두고 악평하니,
천법에 의해 ‘영원한 심판’을 받고
그 ‘영’이 지옥이나 무저갱이나 음부에서 살기도 합니다.
고로 그 ‘육’ 역시 사망권에서 살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깨지고,
‘육’은 누려도 ‘영원한 것을 상실한 세계’에서 살게 되고,
‘화(禍)의 주관권 세계’로 들어가게 되고,
‘물질·명예·기쁨·희망 없는 지옥의 삶’을 살게 됩니다.
<좋은 목재>가 ‘궁’에서 벗어나니
‘개인 집 짓는 곳’으로 팔려 가서 가치 없게 쓰이거나,
‘땔감’으로 팔려 가 한 번 불을 지피고 끝나 버립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주’를 벗어나니 ‘개인의 삶을 사는 데’로 갔습니다.
거기서 편하게 살 것 같아도, 그 삶을 살면서 또 고생합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지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생명의 길을 가도 고생은 합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의 고생은 ‘고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결국 잘되고 형통하며 ‘영원한 것’을 얻게 됩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역사를 벗어나면
최고로 영원한 축복인 ‘휴거의 축복’을 못 받고 끝납니다.
그 손해와 억울함은 영원까지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어떤 사람은 여름에 길을 가다가 ‘옷’ 때문에 덥다고
옷을 집어던져 버렸습니다.
옷을 버리니 덥지도 않고,
옷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편하고 좋았습니다.
그러다 가을이 오니 서늘해졌습니다.
그때 ‘버렸던 옷’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 겨울이 오니 너무 추웠습니다.
옷을 버린 자는 추위에 지옥 고통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생명의 길’을 버리면 이러합니다.
왜 힘들면 극적으로 마음이 뒤집어져서 버리려고만 합니까?
힘들어도 ‘하나님 안’에서 해결해야 됩니다.
덥다고 극적으로 옷을 버리지 말고
옷을 벗어서 짊어지고 다니며 더위를 해결하고
추워지면 다시 입듯이,
힘들다고 극적으로 신앙을 저버리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고통과 억울함을 당하면 지혜롭게 해결해라.
순간 고통과 오해와 환난과 유혹을 피하려고
정반대의 극으로 가지 말아라.
그 안에서 해결해라.
내가 함께하니, 나와 같이 하자.” 하셨습니다.
길을 가다가 소나기가 오면,
잠깐 ‘남의 집 추녀 밑’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가
소나기가 그치면 다시 길을 가면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아예 길을 안 가 버리면 되겠습니까?
이런 생각과 행동은 참으로 미련한 것입니다.
신앙의 길, 구원의 길을 가다가도 그렇습니다.
환난과 핍박도 있고, 어려움과 고통도 있고, 유혹도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려고 아예 극에 처해 신앙을 저버리고,
주를 버리고, 구원과 천국을 버리면 되겠습니까?
주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잠깐 피했다가 다시 가면 됩니다.
아예 환난과 핍박, 어려움과 고통, 유혹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그 순간 마음 가는 대로, 생각 가는 대로 극으로 치우쳐
정반대의 다른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앞에 문제가 닥쳐도 순간 이기고 해결하는 길이 많다.
기도해라. 싸워 이겨라.
주께 도움을 구하고 옆의 사람과 함께 행하여 이겨라.
하나님과 성자와 나 성령을 불러라.
그러면 “너의 책임이니 네가 해라.” 하면서
쳐다보고만 있지 않고, 꼭 돕는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면 마음 뒤집어져 극으로 벗어나지 말고,
삼위일체를 부르고 주를 불러라.” 하셨습니다.
<전환>
◎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극’에 속해 살아간다.
- 이제 이 말씀을 이해했습니까?
◎ 이제 <한 단계 깊은 차원>을 말씀해 주겠습니다.
지금까지 한 말씀은 ‘자기가 깨닫고 지켜야 할 말씀’이라면,
지금부터 하는 말씀은 ‘한 차원 높여 주의 몸이 되어 사는 자들이
주의 심정을 깨닫고 지켜야 할 말씀’입니다. (특히 교역자들)
신앙생활을 처음 하거나,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생명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관리하며 신앙을 지키기 힘듭니다.
고로 신앙이 어린 생명이 힘들어할 때는
지도자가 꼭 ‘관리’해 주며 붙잡아 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
‘극의 세계’로 가 버립니다.
<관리 실수, 관리 부족>으로 ‘생명 손실’을 보게 됩니다.
누가 볼펜을 쓰다가 잘 안 나오니, 그 볼펜 열 자루를 내게 줬습니다.
잉크가 있는 부분에 공기가 차니
공간이 생겨서 안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볼펜을 잡고 그 부분을 입으로 ‘후~’ 하고 불어서
잉크가 나오게 하면 되는데, 기술이 없으니까 내게 준 것입니다.
선생이 다 고쳐서 썼습니다.
선생은 볼펜을 많이 쓰니까 잘 압니다.
(하루에 볼펜 한 자루를 다 쓸 때도 있으니까. 글을 하도 많이 써서.
그렇게 써 보지 않은 사람은 ‘에이~ 어떻게?’ 한다.)
또 볼펜이 여름에는 잘 나오는데 겨울에는 안 나옵니다.
그럴 때 선생은 볼펜을 이불 속에 넣어 둡니다.
따뜻해지면 잉크가 풀려서 다시 잘 나옵니다.
<볼펜>도 ‘다루기’입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생명>도 ‘잘 다루기’입니다.
볼펜 잉크가 안 나올 때는
방법을 알면 다시 나오게 하여 쓸 수 있듯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알고 다루기’입니다.
자기 마음을 가지고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자기에게 인상 찌푸리면 싫듯이,
상대도 누가 인상 찌푸리면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마음처럼 상대의 마음을 알고 다루기’입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그 마음과 생각을 알면, 금방 통합니다.
주가 자기를 보고 웃어 주고 자기 말을 잘 들어주면 좋듯이,
주도 자기가 웃으며 대하고 말을 잘 듣고
끝까지 사랑 변치 않고 살면 좋아합니다.
<지도자들>은 그동안 해 봐서 잘 알지만,
<신앙이 어린 자들>은 무엇을 하든지 능숙하지 않습니다.
잘 모르고 많이 안 해 봐서 잘 못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무시하고 책망하기만 하니
신앙이 어린 자들이 간 떨어지고 놀라 심장에 지진이 나고,
뇌와 생각이 뒤집어져서 본정신이 아니게 됩니다.
그래서 놀라 쓰러지면,
“왜, 기분 나빠? 그렇게 지적받는 게 싫어?” 하며 또 책망합니다.
그때는 놀라서 뇌세포가 확 굳어 버리니, 아무 말도 안 들립니다.
상대의 마음을 몰라주면, 생명을 다루지 못합니다.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시키면서 이야기해 줘야 됩니다.
선생도 <뇌와 생각>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습니다.
그러니 성자는
“네가 어린 자들을 이해해라.” 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시대 십자가를 지면서 <뇌>에 대해서 공부한 후부터는
생명들을 대하는 것도 확 달라졌습니다.
이렇게 늘 성자께 배웠고, 이제 성령께 배우며 행하고 있습니다.
생명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해야 됩니다.
그래야 살릴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놀라서 마음이 뒤집어집니다.
그때 지도자가 또 지적하면,
마음이 확 꺾여서 ‘과거에 잘하던 것’은 아예 생각하지 않고
<섭리역사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서 ‘극’으로 갑니다.
불이 나서 집이 타고 있는데,
“누가 불을 냈냐?” 하면서 따지고 혼내고 있다가는
집이 다 타 버려서 ‘극의 세계’에 처하게 됩니다.
불이 나면 불 먼저 끄듯이,
생명에게 문제가 생기면 “네가 잘못했잖아.” 하며 지적하기보다
먼저 마음을 알아주고 문제를 해결해 줘야 됩니다.
그다음에 본정신이 돌아왔을 때 하나하나 설명해 주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확 뒤집어져서 ‘극’으로 가 버립니다.
그때는 어떤 말로 위로하고 설명해 줘도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심폐소생술>도 ‘바로 하기’입니다.
4분만 늦으면, <심폐소생술>을 해도 소용없습니다. 죽습니다.
<신앙의 생명 관리>도 그러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즉시 손대기’입니다.
<자기>가 즉시 손을 못 대면, <다른 사람>이라도 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그 생명이 삽니다.
사람들은 <뇌세포>가 잘 뒤집어집니다. <생각>이 잘 뒤집어집니다.
사소한 일에도 잘 뒤집어집니다.
그렇게 잘하던 사람도 누구에게 오해를 받으면,
순간 뒤집어져 확 돌변하여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잘하던 사람도 순간 이성으로 뒤집어져서 타락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도 주도 ‘뇌’가 안 뒤집어지게
여러분 각 사람의 뇌를 꽉 잡고 다니십니다.
모두 이것을 알고, <자기 생각>을 성령과 주께 맡기고 살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아기가 말을 안 듣는다고 엄마가 화가 나서
아기 혼자 내버려 두고 잠깐 어디 갔다 와서 보니,
아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옆에 ‘큰 뱀’만 있었습니다.
그 뱀이 ‘아기’를 잡아먹어서 배가 불룩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끝난 것입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뱀이 잡아먹기 전에 아기를 챙겨야 됩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말을 안 듣는다고 엄마가 화가 나서
“너 혼자 집까지 걸어오면서 고생 좀 해 봐라.” 하고,
엄마 먼저 갔습니다.
화가 가라앉은 후에 다시 가 보니,
이미 어린아이는 없어진 후였습니다.
아이를 못 낳는 사람이 데리고 가서 외국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아이를 다시 돌려주겠습니까? 절대 안 내줍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러합니다.
한 번 ‘하나님’을 벗어나면, 99%가 못 돌아옵니다.
사탄이 한 번 잡으면, 잘 안 내줍니다.
악평자들을 봐요. 사탄이 한 번 잡으니 안 내주지요?
그러니까 계속 섭리사를 악평하면서, 그것이 뜻인 줄 알고 삽니다.
고로 어떤 꼴을 당해도 생명이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것입니다.
한 번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면,
다시 돌아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벗어나서 사는 것이 뜻이라고 생각하며 편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게 ‘뜻’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니, 하나님도 그냥 두십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사는 자>만
‘뜻’을 알고 ‘뜻’을 이루며 ‘뜻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도 성령도 성자도 구원자도
여러분을 ‘애인’같이, ‘신부’같이 대하십니다.
그리고 ‘부모의 마음’으로 대하십니다.
여러분도 생명들을 애인같이, 자녀같이 다뤄야 됩니다.
주의 심정을 가지고 부모의 마음으로 대해야 됩니다.
한 번 사망에 뺏기면, 그 생명은 영원히 끝납니다.
고로 선생은 참고 또 참으며, 끝까지 관리합니다.
주를 배신하고 섭리사를 나가서 고통을 주는 자들을 보면,
그 행위가 너무 악해서 치가 떨립니다.
그 행위가 하도 못돼서 심판받아 마땅합니다.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며 별말을 다 하니까요.
그렇다고 버리면, 그 영혼은 지옥에 갑니다.
그러니 그 행위가 너무 악해도
그 <영혼>을 생각할 때 참 불쌍합니다.
그래서 선생은 생각합니다.
‘지옥만은 절대 안 된다. 영원히 쉬지 않고 고통이다.
그때 내가 더 잡을 것을!’ 하며 한탄합니다.
한 번 <하나님의 새 역사 주관권>을 벗어나
‘악평의 세계, 반대편 극의 세계’로 가니,
그 삶이 섭리의 삶보다 100배 더 못한 삶이어도
그쪽으로 ‘뇌와 생각’을 돌리고 그게 더 좋다고 하며 삽니다.
그러므로 “너 나가면 고생한다.” 하고 놔두면 안 됩니다.
한 번 <새 역사 주관권>을 벗어나면, 고생돼도 다시 안 옵니다.
‘지옥 고통(을) 받으면 다시 오겠지.’ 하지만, 못 옵니다.
<극>으로 가기에 못 옵니다. 영원히 끝납니다.
이것이 ‘인간 심리의 첨단 논리’이며 ‘실제’입니다.
‘영계의 비밀’입니다.
<하나님과 주가 택한 자>라도 한 번 벗어나면 거의 못 돌아옵니다.
<나무>도 ‘옥토’에서 캐내어 ‘메마른 땅’에 심으면,
자생력이 생겨서 거기서 메마른 대로 살아갑니다.
<바위 절벽의 나무>도 많이는 못 큽니다.
그러나 많이 못 크는 대로 살아갑니다.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 믿어도
“이것이 좋다. 편하다.” 하며 살아갑니다.
섭리사를 벗어난 자들도 “이것이 좋다. 편하다.” 하며 살아갑니다.
한 번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기적입니다.
모두 이것을 알고 ‘생명’을 관리하고,
모두 이것을 알고 ‘자기’를 관리하고,
모두 이것을 알고 지금 하나님이 불렀을 때
<하나님의 주관권>으로 쏙 들어오기 바랍니다.
<택한 자>라도 벗어나면, 다시 못 옵니다.
한 번 벗어나면, 영원히 찾을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고로 벗어나지 않았을 때 속상해도 희생하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관권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보세요.
종교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니,
기나긴 6000년의 세월이 흘러 이 시대에 겨우 복직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관권을 떠나는 것>은
강을 타고 이미 떠내려간 격입니다.
어린아이가 집을 나갔다가
비가 오니 다시 집에 들어오는 격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때 못 하고 벗어나면 ‘당세’에는 못 하고,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후에 다시 해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은 속상해도, 화가 나도, 그가 잘못했어도 잡아 주며
“내가 잘못했어.” 하면서 대신 회개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도 지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못 해도 끝까지 기회를 주어
일도 맡기고 사명도 맡기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들은 이러한 하늘 심정을 알고
주와 같은 마음으로 생명들을 붙잡아 주고 관리해야 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해야 되냐고요?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자기가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다 뿌리치고 자기가 벗어납니다.
그때까지 잡아 줘야 됩니다.
지금 이 말씀을 쓰는데, <만물 계시>가 하나 왔습니다.
옷을 입는데, 지퍼가 고장 나서 잘 안 올라갔습니다.
그러니 너무 불편한 거예요.
그러다가 지퍼가 아예 못 쓰게 됐습니다.
지퍼가 멀쩡한 옷이 또 있으니, 그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계속해서 붙잡아 주며 기회를 줬는데
아예 ‘마음과 생각’이 고장 나서 끝까지 속이고 안 하면,
그때! 하나님은 ‘더 좋은 자’를 뽑아 키워서 쓰십니다.
자기가 만들어진 대로만 쓰이게 됩니다.
<마무리>
◎ 오늘 말씀 -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극에 속해 살아간다.
마무리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외롭고, 환난과 핍박이 있고, 유혹이 온다고
순간 그것을 모면하기 위해
<하나님의 주관권>을 벗어나 ‘극’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성령과 주를 부르며 같이 행하기 바랍니다.
또한 한 번 벗어나면 영원히 못 돌아오니,
부지런히 <주 안>에서 ‘자기’를 관리하고 ‘생명’을 관리하며
휴거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
지금 이때가 <하나님의 새 역사 주관권>으로 와서 살 때입니다.
이때 의심하고 오해하고 가치를 모르고 벗어나면,
바로 ‘세상의 극’에 처하고 ‘자기 삶의 극’에 처하게 되어
다시 신앙의 기회를 잡는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지금! 이때! 하나님과 주와 ‘영원한 인연’ 맺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