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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5.12.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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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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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새벽말씀(편집본) 할렐루야! 이제 마지막 새벽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는 것을 보면 항상 마지막은 과거를 잘 청산하고, 또 미래의 새로운 날을 잘 시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을 잘 매듭짓고, 또 새로운 날을 잘 시작해야 된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이 잘 못하면 과거도, 미래의 새로운 세계도 죽이 되는 것입니다. 그 리고 실수가 되고 낙오자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새로운 각오를 한다. 새로운 마음을 먹는다. 기쁨으로 맞는다.” 하고 여러 가지 말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최첨단의 방법으로 새로운 해를 맞고, 1년을 미련 없이 놓고 가는 그런 새로운 날을 맞고, 그리고 마지막 날을 보내야 되겠습니다. 열차를 타고 가다가 갈아탈 데를 잘못 타면, 안 됩니다. 빨리 안 내리고, 탁 내리고 탁 올라 타야 됩니다. 갈아타는 것을 잘 했지요? 내리고, 올라타고! 우리는 과거에 내리고, 올라타고를 잘했습니다. 그래서 따라온 것입니다. 구시대에서 뛰어 내리고, 구시대 역에서 내리고 신시대 역에서 올라탔습니다. 그래서 새로 운 역사를 따라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따라와서 새로운 역사에 왔습니다. 그동안 모든 우리의 삶이 그런 삶으로 계속 오고 간 것입니다. 새로운 삶으로. 그동안도 계 속 쪼개보면 그런 삶으로 왔습니다. 옛것은 버리고, 새것으로 건너뛰고. 사람이 걸어갈 때는 오른 발 떼고 다시금 왼발 옮기고, 그러면서 전진이지요? 옛것은 버리고 새것으로 건너뛰는 이런 삶이 연속되는 새로운 삶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못합니다. 그 쉬운 것을 못합니다. 그것을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옛것은 시간 되면 버리고, 새것은 시간 되면 딱 받아들이고. 빨리 하면,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빨리 뛰면 1등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세계입니 다. 종교 역사로 본다면 기독교는 그것을 못 한 것입니다. 옛것을 버릴 줄을 모르고, 새것을 얻 을 줄을 모르고, 옛것 갖고 계속 사는 것입니다. 선생이 가끔, 지금은 안 가보아서 모르는데 생각으로만 거기를 생각해 보고 그러는데, 석막 교회를 보면 꼭 옛날 25년 전과 같습니다. 선생님이 다녔던 석막 교회가 있습니다. 거기를 1999년도까지 쳐다봤습니다. 차로 왔다갔다 하면서, 월명동 올라다니면서 봤는데, 그때만 해도 항상 삶이 똑같았습니다. 교회는 거기 다녀야 된다지만, 삶이 바뀌어야 되는데 바뀌지 않고 똑같았습니다. 안 바뀌더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들의 삶은 바뀌 지 않고 똑같습니다. 그와 같이 한 교회를 보면서 기독교 전체를 보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설교도 안 바뀝니다. 말씀이 바뀌어야 바뀌는데, 바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와야 하나님께서 새로운 말씀을 줘서 새로운 삶이 이루어지게 하는데, 새로 운 말씀을 가지고 누가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혹시 선생님 제자들이 가서 말씀을 전하면 뒤바뀌어서 옵니다. 새로운 말씀 받고서 ‘아, 역 사가 시작되었구나.’ 하고서 그냥 옵니다. ‘말씀’을 들어야 새롭게 뒤바뀝니다. 새로운 말씀을 들어야! 새로운 것을 봐야 새로운 것으로 뒤바뀌지, 새롭게 뒤바뀌지 않습니다. 보는 것이 그것이니 까, 환경이 그것이니까 거기서만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역사가 새롭게 진행될 때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가 하니, ‘새로운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 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보냈습니다. 이 시대 여러분들도 새로운 사람을 보냈기에 새로 운 세계로 뒤집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바꾸려면 첫째는 ‘말씀’을 하십니다. 거기에 해당되는 말씀을 하십니 다. 그것을 듣게 합니다. 사람의 뇌의 구조를 과학적으로 보면 뇌에서 무엇을 들으면 움직여집니다. 자동적으로. 차를 운전하려고 딱 엔진에 스위치를 넣고 가동시키면 움직입니다. 새로운 것을 들으면 움직여집니다. 머리에다 뭘 들으면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가 열을 하니까. 보일러 원리를 보면 뜨거우면 움직입니다. 찬물을 넣어 놓고 가만히 놔두면 보일러 밑의 배 선이 물만 차 있고 가만히 있습니다. 뜨겁게 하면 밀어붙이는 힘이 생깁니다. 수력의 힘이 있습니다. 가열시키면 물이 밀어붙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물이 뱅뱅 막 돕니 다. 그런 원리와 같이 우리의 몸의 보일러는 심장입니다. 심장이 보일러입니다. 뜨겁게 만들고, 뜨거우면 펌프질을 합니다. 그래서 피가 도는 것입니 다. 그러나 죽을 때가 되면 보일러가 꺼집니다. 심장이 꺼집니다. 멈춥니다. 그러면 피가 가 다가 딱 멈춥니다. 보일러의 원리와 똑같습니다. 다른 나라는 보일러 원리를 잘 모르지요? 일본도 보일러 원리를 잘 모릅니까? 보일러 원리에 대해서 한국에 갔다 온 사람에게 들으십시오. 다다미방은 보일러 원리를 잘 모를 것입니다. 심장 원리를 이해하게끔 이야기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말씀이 딱 떨어지면 움직입니다. 말씀이 떨어져도 움직이지 않은 것은, 불을 땠는데도 물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물이 없는 것입니다. 보일러가 펑크가 나서 새어 버 렸습니다. 그러면 불을 때도 물이 없어져버립니다. 그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가열하면 움직이듯이 새로운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 움직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봐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들려면 어떻게 하는지 압니까? 우리가 많이 겪어보았지만 본인도 그렇 게 역사하셨는가 들어보겠습니다. 그런 <여건>으로 엮어나가십니다. 여건을 그런 여건으로 엮어나가십니다. 가령 나에게 전도하게 하려면 전도할 수 있는 여건을 배경으로 줍니다. 전도할 수 있는 여 건을 줍니다. 여건을 안 주면 못하니까. 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그런 어떤 환경으로 엮어 나가십니다. 여건을 주십니다. 그러 면 해집니다. 가령 우리들에게 수영하게 만들려면 따뜻한 곳에 갖다 놓고 뜨겁게 만들면 수영하게 되어 있고, 목욕하게 되어 있습니다. 뜨거우니까 샤워장을 찾게 되어있고. 그렇게 행하신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옷을 껴입게 만들려면 환경을 차갑게 만들고, 춥게 만들면 옷을 껴입습니다. 자동적 으로 가서 말 안 해도 옷을 입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성령으로 모든 것의 여건을 해 주십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겪어 보았지 요? 그렇게 여건이 되었을 때 훨씬 더, 99.9% 행할 수 있는 그런 성공률이 있습니다. 여건이 없 을 때는 행해도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여권이 없는데 공항에 가서 자꾸 외국으로 나가려고 해 보십시오. 안 나가집니 다. 여권이 없는데 나가집니까? 안 나가지지요. 이와 같이 여권이 있어야 되듯이, 그런 여건으로 하나님께서 엮어 나가십니다. 이것은 많이 겪었지요? 그것을 겪었는데 다시 말씀하니까 잘 듣고 ‘아, 이렇게 되시는구나. 여건 가지고 엮어나시는구나.’ 여건을 주시고, 그리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으로 이제 본인의 책임은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 서 모든 일을 할 때 깨닫지 못하는 자는 낙오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깨달아야 됩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말씀했는데 깨달은 자가 있고, 못 깨달은 자가 있습니다. 깨달아야 됩니다. 깨닫지 못하면 뒤로 쳐지게 되고, 그리고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깨닫는 것은 본인의 책임입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그냥 허겁지겁 놀라고 충격 받는데, 어떤 사람은 고개도 끄떡하지 않고 그냥 쳐다봅니다. 그런 사람은 크지를 않습니다. 잘 안 큽니다. 적극성이 없는 사람은 잘 안 큽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무엇을 보아도 감각 있게 보고, 세밀하게 보고, 뜻 깊이 봐라.” 그런 이야기를 늘 했습니다. 감동을 받는 대로 사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감동 받는 대로 움직이니까. 그래서 감동이 없으면 안 됩니다. 깨달으면 감동이 옵니다. 그래서 깨달아야 됩니다. 똑같이 보여주고 여건을 주었는데 충격적으로 깨달아야 자기에게 큰 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렇지 않 은 사람은 그냥 거기서 있는 것입니다. 감격할 줄 모르고, 놀라지도 못하는 이런 사람들은 안 큽니다. 선생님이 첫째 사람을 어떻게 쓰는가 하니, 똑같은 환경을 보여주고 감격하고 충격 받는 사 람들은 그만큼의 선에서 씁니다. 그 다음에는 본인이 본인에 의해서 크는 것이 좌우되는 것 입니다. 그런 사람을 먼저 빼서 크게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가서는 교육을 시켜서 만듭니다. 교육 을 시켜서 충격 받는 것은 두 번째 B급입니다. 본인이 깨닫고 충격 받고 행할 때 A급이라 고 합니다. 그 다음에 안 되었을 때는 할 수 없이 교육에 들어갑니다. 말씀하고. 그런 사람은 B급 인생 이라고 합니다. 본인이 깨닫고 솔선수범하는 자, 그 사람이 A급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교육시켜서 하는 사람들이 B급입니다. 그런 순으로 하나님이 쓰시는 것입니다. 쓸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고 본인이 고백했습니다. 나머지는 가르쳐 줘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A급이 되고, 모두 B급들이고 그런 것입니 다. 이래서 모든 것을 볼 때 깨닫고, 충격 받고 스스로 해야 됩니다. 그래야 A급 인생이 됩니 다. A급 인생과 B급 인생이 섞여있으면 다 표가 납니다. 안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A급은 될 수 없습니다. 되면 좋지만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A급 인생 이 B급적인 생각을 할 때도 있고, B급 사람이 A급적인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섞음 섞음 그런 것이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환경을 주어도, 그리고 말씀을 했는데 거기서 얼마만큼 깨닫느냐가 중요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가서 얼마만큼 행동하느냐, 이게 두 번째입니다. 얼마만큼 행동하 느냐, 이러면서 인생이 되어 돌아가는 것입니다. 가르쳐도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르쳐도 거듭 안 하는 사람들은 용서는 일곱 번에 일 흔 번씩 하나 가르치는 것은 그렇게 많이 안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선생님부터도 산에서 “선악과가 무엇이다. 생명나무다.” 이것은 딱 한 번 배웠습니다. 거듭 가르치는 것이 없습니다. 딱 한 번입니다. 두 번째가 필요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모릅니다. “본인이 깨닫는 것이 크다. 본인이 행하라. 그와 같이 그러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안다고 해도 그것이 그런지 확인이 안 되는 이상은 또 의아스럽게 생각하니까. 연말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로 가는 도전적인 것, 새로운 세계를 이야기하면서 옛 것을 버리 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오늘 기독교는 새로운 세계가 왔는데 옛 역사를 못 벗었다. 왜 그랬을까? 새로운 말씀을 못 들어서 그렇다. 새로운 말씀을 들음으로 움직여서 새로운 세계로 와서 환경이 뒤바뀌는 데, 그것을 못했다. 그 뒤바뀌는 세계가 부활이다.” 새로운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부활 아닙니까? 행했을 때는 부활되고, 그리고 새로운 구 원이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은 옛것 버리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굉장히 무서워합니다. 왜 그런가하니, 바꿔버리는 것이 우측에 옛것을 갖고 있으면 좌측은 새것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고, 일단 버린 다음에 걸어와서 잡아야 되니까 ‘정말로 새것이 있는가?’ 그런 마음을 먹 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 그네를 뛰다가도 우측의 그네에서 좌측으로 건널 때, 공중에서 서커스단이 건너갈 때 일단 은 딱 놓고 공중에서 뛰어가서 잡습니다. 그것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 합니다. 그 것을 하게 될 때 ‘묘기사’가 되는 것입니다. ‘기술자’가 되는 것입니다. 선생을 가끔 보면 여러분들이 하는 말이 “선생이 묘기를 행하더라. 공중에서 줄타기를 하더 라.” 하는데, 생활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생활의 묘기를 부린다는 것입니다. 생활의 기술자 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많은 생명들이 금년도도 따라오다 말은 사람들은 몰라서, 어려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하니 한번 왔다가 떨어져나가면 가끔 신경 써서 하면 다시 오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못 온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도전이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데려다가 철저히 가르치 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로서 너무 잘 가릅니다. 내가 잘 가르는 것을 가르쳐 줘서 선악을 잘 구분하여 가릅니다. 일단 하나님께서 하늘의 혼인잔치에 오라고해서 데리고 왔습 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거의 모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고 메시아가 와서 역사 펴는 줄을 모릅니다. 거의 모릅니다. 그래서 빨리 가르치고, 돌연적으로 가르치고, 충격을 주고, 감동을 주고, 그리고 그들을 이끌어 주 고 적극성을 띠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냥 분위기만 잡으면 안 됩니다. 우물쭈물하고 안 됩니다. 확실하게 해야 됩니다. 그 전에는 조금 끄는 추세였는데, 지금은 뜸을 들이는 추세가 아니라 그냥 화끈하게 삶아대 는 추세로 역사가 돌아갔습니다.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산에 있다가 아합과 만나 부딪혔습니다. ‘어차피 부딪혔으니까 하 자.’ 하고서 “너 때문에 고통받았다.”하였습니다. “그럼 해 보자. 죽든지 살든지, 네가 믿는 신이 참신인가 내가 믿는 신이 참신인가 해보자.” 엘리야가 그러면서 결국 대결하고 말았습니다. 대결하면 이깁니다. 하늘 섭리의 사람들은 대결하면 이깁니다. 대결 안 하면 사탄들이 항상 이깁니다. 싸우며 부딪치면 머리 통 강한 놈이 이기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결국 의로서 부딪혀서 악한 세계를 다 깨부수고 말았습니다. 결국 부딪 혔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성품으로 살아왔고, 그런 성질로 자라왔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면 완전히 조작냅니다. 때려부수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못할 때는 하나님께서 옆의 사람 감동시켜서 그를 통해서 하도록 하며, 같이 부축하게 만들고 그렇게 해 나갑니다. 자, 이런 삶과 사상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오고 있습니다. 새벽에 흥얼거리고 나와서 눈을 비비고 앉아 있어도 새벽을 뛴 사람과 안 한 사람은 천길 차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도 새벽을 깨웠습니다. 어제 일을 너무 지나치게 많이 하다 보면 새벽에 일어나기 힘듭 니다. 그러면 막 정말로 천사가 깨우고, 와서 까치가 짖어대고, 꿈에 깨워놓고 가고 그래도 또 잡니다. 그런데 거의 예수님이 깨웁니다. 거의 깨워 줍니다. 사람을 통해서 깨워 주든지, 직접 깨워 주든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깨웁니다. 여러분도 새벽에 깰 때 많이 깨움을 받았지요? 천사 들이 깨워주기도 합니다. 새벽에 잠을 자다보면 쿵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나서 후닥닥 깨지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나서 딱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것이 다 깨워주는 것인데, 새벽의 일화 들이 많습니다. 새벽을 지키며 새벽의 역사를 펴고, 새벽부터 사랑함으로서 씨를 뿌린 자들은 그런 일화가 많습니다. 새벽에 여러 가지 일들이 많습니다. 새벽에 하나님께 축복해 준 것을 감당해 왔 습니다. 새벽, 한 번도 안 빠지고 새벽예배 드린 사람 한번 손들어 봐요. 각 교회가 얼마나 되는가 볼 것입니다. 새벽예배 한 번도 안 빠지고 참석한 사람 손들어 봐요. 나는 새벽예배 매일 매일 했으니까. 나는 새벽예배를 한 번도 안 빠지고 했습니다. 나는 빠 질 수가 없지요. 여러분이 새벽예배 한 번도 안 빠지고 열심히 한 사람은 이것도 표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열심히 한 사람에게 칭찬합니다. 내년도 한번 할까요? 내년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새벽을 빠지지 않고 계속했는데, 그때 새벽에 많은 엄청난 하늘과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때 보면 낮에는 뭘 결정 못 합니다. 낮에 결정하는 것은 확실치 못하므로 새벽에 결정합니다. 새벽이 되면 자동적으로 컴퓨터가 돌아가서 싹 결정 내립니다. 흑백이 구분됩니다. 그만큼 새벽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해 봐도 새벽에 말씀하면 완전히 또 다릅니다. 낮에도 말씀하면 다르겠지만, 새벽에 말씀하면 무엇인가 깊고 깊은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준비가 안 되었어도 ‘새벽인데.’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새벽에 말씀하면 말 씀이 튕겨 나오니까. 아무튼 새벽을 깨우며 열심히 뛴 여러분들! 새벽,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떤 교역자는 새벽을 거의 한 달 동안, 두 달 동안 안 나와서 그 교역자는 목사님인데 일 단 옷을 벗었습니다. 벗으라고 했습니다. “본이 안 되니까 안 된다. 우리 섭리사가 목사님들이 아무리 흔해 터졌어도 그렇게 수준 낮 게 노느냐?” 하고 목사 제명장을 줘서 보냈습니다. 시험 들어서 안 나오는 사람들은 혹시 모릅니다. 그러나 새벽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들은 “그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도 그러하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새벽! 새벽을 깨우는 역사! 그리고 새벽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새벽에 좌정하시는 하나님! 새벽에 말씀하시는 하나님! 너무 많아서 글로 다 써 놓았습니다. 잠언을 통해서 써 놓았습 니다. 잠언 받을 때, 거의 다 새벽에 받았습니다. 낮에 행한 것도 다 새벽에 썼습니다. 그리고 잠언뿐만 아니라 시도 그렇고, 거의 낮에 머릿속에 지나간 것을 새벽에 정리를 해서 썼습니다. 새벽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새벽을 깨우지 못하면 안 됩니다. 우리 신앙 생활하는 가운데 새벽에 하나님과 같이 살지 못하면 정말로 A급 신앙생활 하기 힘듭니다. 일찍 자면 일찍 일어납니다. 이게 원리입니다. 늦게 자면 늦게 일어납니다. 그게 원리입니 다. 가끔 우리가 공적인 일을 두고 늦게 잘 수밖에 없는 입장이 있습니다. 그때는 철야를 해야 됩니다. 철야하지 않으면 새벽을 뺏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마지막 매듭지으면서 여러 말씀을 했습니다.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버지의 기뻐하는 삶이 늘 이루어지게 해 주시고, 이 말씀을 모든 자가 듣고 깨닫고 역사 앞에 바로 서고 갈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는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역사로 왔으니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삼위의 능력과 권 능이 이들에게 함께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빠이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