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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5.12.3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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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3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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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_1231 목 계시말씀.hwp1 2015년 12월 계시말씀 ♥ 12월 31일 목요일 나 성령을 돕고 싶으냐? 내가 너를 가르치듯, 너 또한 다른 자들을 가르쳐라! ‘이상’을 바라보고 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라! 작성일 : 2015. 10. 22. AM 02:03~02:50 작성자 : 주수신 (성삼위 하나님, 성령님, 성자님을 도와 드리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저에게 “내가 너에게 행하듯, 너 또한 다른 자들에게 그리 행해라. 그리해 나를 도와줘.” 하셨습니다. 이어서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님의 말씀* 사랑아, 네가 나를 돕고 싶으냐? 네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나 성령이 행하듯, 너 또한 그리 행하여라! 내가 너를 두고 행하듯, 너 또한 다른 자들을 두고 행하여라! 그것이 바로,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행하느냐? 나는 늘 너를 가르친다. 네 ‘무지’와 ‘부족’을 드러낸다. 너에게 <더 나은 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준다! 그리고 그리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네가 그 방법대로 행할 때, 더 잘 행할 수 있도록 옆에서 늘 함께한다. 너를 너무도 사랑하니, 네가 더 큰 것들을 얻고 누리며 살길 원한다. 고로 나는 너에게 <이상>을 가르친다. 늘 네가 지닌 것보다 더 이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가르치며, 그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행할 때까지, 얻을 때까지’ 가르친 다. 더 이상적인 것이 있음을 아는 자에게는 ‘하 차원’에 있음이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모르는 자에게는, 그저 그런 일인 것이다. ‘모르니 그렇게만 산다.’ 더 이상적인 길이 있음을 모르고, 그 길을 어찌 가는지를 모른다. 그러니 그 차원에서만 사는 것이다. ‘아는 자’만 속이 터진다! 사랑해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자만 애가 탄다. 네가 나에게 배운 것이 무엇이냐? 내가 너의 무지를 깨우고 널 가르쳐서 네가 <의>를 쫓도록 만들어 주지 않았느냐! 이상을 바라보고, 그 <이상>을 쫓도록 만들어 주지 않았느냐! 성삼위는 그리 행함으로 6000년 역사를 이끌어 왔다. 사랑하니, 더 이상적인 것을 주기 위한 인도였다! 나 성령을 도와줘. 다른 자들을 가르쳐라! 그들의 ‘무지’를 일깨워 주어라! <무지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라! 그들이 나 성령과 같이 차원 높은 꿈을 꾸고, 더 나은 것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라! 네가 나에게 배운 것들을 다른 자들에게도 가르쳐라! <그들의 변화에 원동력이 될 말씀>을 전해 주어라! 사람은 배운 만큼이다. 배워야만 보는 것도, 듣는 것도, 깨닫는 것도, 행하는 것도 더욱 이상적이다. 제대로 보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못하면, 보아도 꼭 봐야 할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배우지 못한 만큼 차원 낮게 산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배움’이다. 너희 모두도 배우지 못하면 <하늘 신부>로 살 수가 없다. 배운 만큼 행하며 이상적인 것을 얻고 살아간다. 너희를 신부답게 만드는 것은, 역시, ‘하늘의 가르침’을 얼마나 받아들였느냐이다! 인간은 ‘밑이 깨진 독’과도 같다. 고로, 가르쳐도 가르쳐도 잊어버린다. 감동과 은혜로 역사해 주어도 역시, 잊어버리고 만다. 밑이 깨진 독에 물이 차 있게 만들려면, 물이 모두 새 나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보다 더 짧은 간격으로 반복적으로 물을 부어 주는 수밖에는 없다. 너희 모두가 그러하다. 반복적인 학습 없이는 모두 잊어 먹고 만다. 나 성령은 <신>이다! 너희의 하루는 나 성령에게 있어서는 ‘한순간’에 불과하다. 내가 얼마나 너희를 보살피는지 보아라. 너희의 하루는 영인 나에게 있어서는 마치 1~2분과도 같다. 인간의 시간으로 24시간 내내 너희를 사랑하여 쫓아다니며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성삼위를 더욱 느끼게 해 주기 위해서 그리도 행한다. 나는 너희의 시간으로 1~2초도 헛되이 쓰지 않는다. 그 시간도 놓치지 않고, 너희를 사랑함으로 연속적으로 역사한다. 너희를 ‘더’ 이상적으로 만들기 위한 쉼 없는 내 노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밑 빠진 독과 같기에, 1시간을 살면서도 나를 잊고 살 때가 많다. 이상을 찾지 못하고, 현 위치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산다. 그러다가는 모든 것들이 식어 버린다! 나만 노력해서는 안 된다. 너, 나와 ‘호흡’이 맞아야 한다! 내가 들이마시면 너는 뱉고, 내가 뱉으면 너는 들이마시는 것이다. 그래야 나와 한 몸이지. 나와 일체 된 자이지. 깨진 독에 나만 물을 부어서는 안 된다. 너도 매 순간, 나를 찾으며, 더 나은 자가 되고자 행해야 한다! 나와 <생각의 방향>이 같아야 하며, 나와 <행함의 방향>이 맞아야 한다! 사랑아, 그래야만 우리가 같이 살 수 있다! 너만을 보아도 그러하고, 다른 자들을 보아도 그러해. 섭리 전체를 보아도 그러하고, 이 지구 세상을 보아도 그러하다. 성삼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늘, ‘이상적인 역사’를 편다. 네가 나를 진정 돕고 싶으냐? 다른 자들의 ‘무지’를 깨우쳐 주어라! 다른 자들이 ‘이상’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가르치고, 그 이상을 바라며 행할 수 있도록 가르쳐라! 2015_1231 목 계시말씀.hwp2 모르면 나 성령이 아예 인도할 수가 없다. 이끌려 와야 인도를 하는 것인데, 현재의 자리에 우두커니 버티고 서 있기만 하니, 무슨 수로 어찌 이끌겠느냐. 성삼위가 역사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줘. 네가 육이니, 육과 더 잘 통하지 않느냐. (성령님, 진정 성령님의 끝없는 가르침을 볼 때, 저를, 그리고 우리 모두를 너무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저를 가르치실 때, 그 가르침의 방향은 항상 ‘이상’이었습니다. 지금 또한, 제가 더 차원을 높여서 성령님을 도와 드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니, 이 역시, ‘이상’이 아닙니까. 그리 행할 때, 저도, 성삼위도, 다른 자들도, 섭리사도 모두 더 잘될 줄을 믿습니다. 방법이 ‘이상적’이니, 그 방법을 통해서 얻게 될 것 역시도 ‘이상’입니다.) 그래, 사랑아! 그러나 ‘이상’이 모든 자들에게 <이상>으로 와 닿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바라고 있는 자에게나 ‘이상’이 되는 것이다. 제 위치에서 만족하고 있는 자에게는 ‘이상’이 좋은 것이 아니다. 괜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 굳이 취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과한 것, 수고로운 것, 다른 자의 것,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혹은 ‘이상’에 대해서 하늘과는 다른 관을 지니고 있는 자에게는 역시 <육과 영으로 더 좋은 것을 누리게 되는 삶>이 ‘좋지 못한 것’이 되기도 한다. 이성과 물질 그리고 술을 ‘이상’으로 보고 있는 자에게 있어서 그것들을 멀리하는 것은 좋은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을 이상적인 길로 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의 <가치관>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가치관을 바꾸어 주려면, <옳고 그름의 척도>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자신이 현재 지니고 있는 것보다 더 이상적인 것이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 즉, 이상이 왜 이상인지를 가르침으로 자신의 굳은 <생각과 인식을 부수는 것>이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성삼위와 보낸 자가 아무리 하늘의 말씀을 주며 최고의 길을 알려 주어도, 자신에게는 전혀 와 닿지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사람들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가르쳐라. <나 성령이 그의 인생을 최고로 좋게 만들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들어 주어라! <그의 육, 혼, 영의 운명을 뒤엎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줘. 나의 진리로 ‘무지’를 깨뜨려 주어라! 모르니 제 차원에서 만족하고 살지, 알면 그리 행치 않는다. 아는 자는 마치 달궈진 프라이팬에 콩을 놓으면 탁탁 튀어 오르듯, 그리 행한다. 제 위치에 발붙이고 편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꾸 튀어오를 시도를 하며 살아간다. 네가 나 성령의 말씀을 받지 않았느냐! 신의 말씀을 받았으니, 이 부분에 있어서는 신의 생각을 받은 자이다! 오늘도 나 성령은 너에게 ‘이상’을 가르쳤다! 이 말씀으로 너 자신도, 다른 자들도 ‘이상’으로 향하게 만들어 주어라! 나 성령이 너를 가르치듯, 너 또한 다른 자들을 가르쳐라! 그리해 너도, 다른 자들도 더 나은 것을 바라며, 더 나은 자가 되도록 만들자. 사랑해. 사랑하니 네 길을 인도한다. 너도 나를 사랑함으로 내 일을 해 줘. 다른 자들이 나의 길로 오도록 인도해 줘. 나와 같은 생각을 지니도록 만들어 줘. 나와 연결시켜 줘. 안녕. ♥ 12월 31일 목요일 진정한 사랑이란 사랑의 상대체가 원하고 바라는 그 사랑을 주는 것이다 작성일 : 2015. 10. 31. PM 07:20 작성자 : 오은미 (날씨가 너무 추워 따뜻한 국물의 음식을 먹고 돌아와 저녁기도를 했습니다. ‘네가 나를 생각에서 찾고 불렀기에 나도 같이 갔다. 그 음식은 내가 사 준 것이다.’라는 선생님의 마음이 전해졌고 이후 대화한 것을 기록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 오늘은 교육을 해 줄 것이다. 잘 듣고 꼭 그리 행하고 살아. 식사할 때 들었던 이야기를 듣고만 끝내지 말고, 이를 놓고 기도를 해라. 너를 기도케 하려고 일부러 듣게 하였다. (아멘. 교회를 안 나오는 한 회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회원은 한때는 참으로 열심히 했던 자인데 직장에서 직급이 올라가고,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연봉도 많이 받게 되었습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영적인 것은 뒷전으로 미루고 더 육적으로 치우치다 지금은 예배조차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 회원의 상황을 듣게 하셨으니 꼭 기도를 하겠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니 주의 능력으로 영육의 상황이 바뀔 수 있길 간구합니다.) 늘 기도하는 자가 되어라. 너를 위해 상대를 위해 주위에 어리고 약한 자를 위해서도 늘 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다. 기도를 하면 운명이 바뀐다. 네가 나를 부르며 기도를 하면 내가 영으로 혼으로 그에게 가서 그 가던 길을 돌이키게 하고 그의 손을 붙잡고 이끌어 온다. 기도를 하는 것은 너희들의 책임이고 그들을 영적으로 이끌어 오는 것은 내가 할 책임이다. 많은 자들이 대화를 나눌 때 많은 주제와 소재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상대, 즉 주위의 형제들에 관한 것이지 않느냐? (네. 섭리사에서 있으니 교회 사람들의 이야기, 힘들어하는 자, 약한 자들의 상황을 놓고 이야기를 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그래. 너희들의 모든 이야기를 성삼위가 듣고 나 선생도 함께 듣는데 너희들은 그저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보다 기도를 해 줘야 하는 상황이 있기에 듣게 하고 알게 하는 것인데 듣고 그 순간은 마음이 동하여 안타까움도 가여운 마음도 측은한 마음을 품기도 하지만 그 자리를 떠나기가 무섭게 그 마음은 간데없고 진정 그들을 위해서 꾸준히 기도하는 자들이 없구나. 너희들의 삶 속 대화를 듣고 성삼위와 나는 이를 놓고 기도하고 2015_1231 목 계시말씀.hwp3 힘들고 약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자들을 혼으로 영으로 찾아가서 만나기도 하고 살피기도 하는데 성삼위와 주의 육이 되어서 진정으로 기도를 하고 육으로 행하여 주는 자가 적구나. 신앙이 힘든 자들의 상황이 때로는 대화의 한 토픽으로 끝나고 마는 때도 있으니 나의 신부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애가 타는구나. 나는 매일 매 순간을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데 너희들은 나를 위해, 아프고 힘들고 약한 자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를 해 주느냐?  나와 같은 방향을 놓고 기도를 해야 나와 같이 성삼위께서 원하시는 일을 진정 해 드릴 수 있는 것인데 같은 것을 기도치 않으니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뿐더러 그 생명을 지킬 힘이 약해지니 더욱 육적인 것으로 세상적인 것으로 그 중심이 기울어 버리게 된다. 사랑의 축복 속에서 휴거로 창조의 목적을 이루어 가고 있는 자들아. 1:1 사랑이 중하다고 하나 네 앞에 성삼위만을, 주만을 보고 주위를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 너의 기도, 너의 신앙, 너의 휴거 차원을 높이는 것, 너의 공적, 너의 삶만을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주 이기적인 생각을 가진 자의 모습이지 않겠느냐? 형제는 아파서 죽어 가고 속병이 나서 곪아 터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은혜와 깨달음과 기쁨에 취해서 옆을 돌아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인생 하나를 겨우 살아가는 자이지 않겠느냐. 너희들에게 이리 큰 사랑과 축복을 주는 것은 너희 혼자 기쁨에 취해 살라고 함이 아니다. 그 사랑과 하늘의 손길을 아프고 힘들고 약한 신앙의 형제들에게도 나누어 주며 시대와 주를 알지 못하는 자들 가운데도 알려 주라고 함이다. 때가 되어서 하늘의 표가 나는 축복을 받기도 하고 기쁨이 허락되기도 하나 그 축복과 기쁨을 허락하는 성삼위의 속마음을 헤아리며 받은 축복과 기쁨을 온전히 사용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저 애는 왜 그랬대?  섭리에 살면서 왜 그리 살아?’라고 냉정하게 정죄하듯 말을 하지 말고 너는 그가 넘어지고 일어날 힘이 없어 할 때 그에게 손을 내민 적이 있는지, 넘어지기 전에 아파하고 힘들어할 때 그를 위해 진정 기도를 해 준 적이 있는지 되돌아보아라. 성삼위의 사랑과 주의 동일한 사랑을 받고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이 길을 가고 있는 너희들은 신앙의 혈통의 형제들인데 때로는 남남보다 더 남과 같은 모습, 힘들 때 손을 내밀 수 없을 정도의 냉랭함이 너희들에게서 느껴지니 나도 성령도 그 형제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구나. (사랑에도 각 파트별로 평균의 점수가 나와야 할 것인데 어떤 자는 자기 사랑이 부족하고 어떤 자는 하늘 사랑이 부족하고 어떤 자는 형제 사랑이 부족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모습입니다.  성삼위의 사랑을 받은 자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인색하고 부족한 신부의 모습입니다.) 올해 사랑의 완성을 이루자. 사랑으로 휴거를 이루는 것인데 휴거의 수치적 단계에만 집중을 하지 말고 ‘사랑의 완성’을 놓고 근본 사랑의 점수를 높이는 자가 되자. 너희가 공기를 들이마시며 호흡하듯 너희는 성삼위와 주의 사랑을 들이마시며 사랑으로 호흡하며 사랑으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냐?  그러니 생활 속에 모든 생각도 작은 행함 하나까지도 사랑을 입고 하자. 추운 겨울이 오면 얇은 옷을 겹겹이 입음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듯이 이때 하나님 사랑의 옷, 성령님 사랑의 옷, 성자 사랑의 옷, 주 사랑의 옷을 겹겹이 입고 살아가도록 하자. 사랑이 없이 매섭게 부는 바람에 떨고 있는 자에게 네 사랑의 옷을 벗어 주고 입혀 주어라. 홀로 있다는 생각에 외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자에게 주 사랑의 옷을 입혀 주어라. 너희들의 작은 관심만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고 너희들의 작은 관심으로 다시 웃을 수 있는 자들인데 그 순간의 때를 놓치니 수백 배, 수천 배 뒤늦은 노력을 하고 사랑을 보여 주어도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고 세상을 향하고 주를 잊어버리고 살게 되는 것이다. 형제 사랑이라 하니 어려우냐?  형제 사랑이라고 하니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눠 줘야 할 것 같으냐? 아니다. 생활 속 작은 관심,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해 주는 것, 그들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러 주는 것, 그들의 빈자리를 알고 알아봐 주는 것이 주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형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 너를 변화시킨 것이 주의 기다림과 인내의 사랑이고, 너를 휴거시킨 것이 주의 목숨을 건 사랑의 몸부림임을 잊지 말고 형제를 대하고 약한 자를 대할 때도 그리해라. 그것이 나를 돕고 나에게 힘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늘 나에게 힘을 주고 싶다고 나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무엇으로 나에게 힘을 주고 기쁨을 주겠느냐? 나의 이 한마디의 말을 나의 이 속 심정을 알고 진정 형제를 살펴 주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는 자들이 되어라. 그것이 나에게 최고의 힘이며 기쁨이며 보람이다. 부모가 아무리 고생의 삶을 살아도 가정의 형제들이 우애 있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모의 고생과 어려움이 다 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모에게 잘하는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형제끼리 싸우고 겨루고 하나 되지 못한다면 그것이 부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이며, 그것이 부모를 눈물짓게 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사랑과 성삼위가 원하는 사랑은 이리 다르다. 진정한 사랑이란 사랑의 상대체가 원하고 바라는 그 사랑을 주는 것이며 그 사랑의 삶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임을 알고 오늘 사랑의 교육을 받고 땅의 사랑과 하늘의 사랑을 온전히 행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주와 같은 길을 가기 위한 방법은 주와 같이 행하며 사는 것이다. 진정 사랑의 행함에 빛을 내며 사는 이때를 보내자. 사랑한다. 주가 원하고 삼위가 원하는 사랑의 삶을 살길 축복한다. 선생이다. 2015_1231 목 계시말씀.hwp4 ♥ 12월 31일 목요일 새벽예배의 중요성 작성일 : 2015. 10. 24. AM 04:42 작성자 : 이아라 (새벽에 새벽 찬양 인도 담당자가 나오지 않아서, 제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옷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완전히 음정도, 박자도 다 틀렸습니다. 새벽예배의 중요성을 저부터가 먼저 인식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부서가 영광 돌리는 날이었음에도 저부터 준비가 안 되었던 것입니다. 화가 난 감정을 추스르고 기도할 때 주신 감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새벽예배도 예배가 맞다. 주일예배, 수요예배와 같은 예배이다. 하지만 그 예배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자가 교회의 절반 이상이 넘는다. 너도 새벽예배의 중요성을 어렴풋하게만 인식하고 강하게 네 뇌리에 인지하지 못했지? 새벽예배는 힘드니까 선택 사항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상황에 맞춘 지극히 인본적인 생각이다. 교회의 현 위치를 보려면 예배를 보라고 하였다. 특히 새벽예배를 보면 돼. 새벽예배가 얼마나 정성으로 드려지고 있는지, 얼마나 준비되어 드려지고, 얼마나 전심으로 성삼위를 모시고 있는지가 각 교회의 현 위치다. 인본적인 생각은 ‘피곤하니까, 삶의 리듬을 맞추어야 하니까, 무리하면 안 되니까, 한두 번 빠진다고 큰일 나지 않으니까.’ 등등이다. 지극히 인본적이구나. 신본적인 생각, 나 여호와의 생각을 받으라! 주일예배, 수요예배는 한 번 빠지면 큰 것으로 인식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새벽예배는 하루 빠져도 깊이 생각지 않고 개선하지 않는구나. 심지어 이제 무뎌져서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자들이 허다하다. 정말 너희가 성삼위의 생각을 받았다면 그리 안일하게 이때를 흘려보내지 못할 것이니라. 사람은 차원에 따라 살아간다. 세상 사람들을 보아라. 주일예배를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자들이다. 기성을 보아라. 수요예배, 금요기도회에 가는 것을 교회에 빠져 다닌다고 생각한다. 차원대로 그 생각대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 너희는 어떠하냐. 섭리 안에 기성인이 되어 새벽 제단 드리기를 쉬이 생각하고 있진 않느냐. 충격적으로 깨달아라. 구시대 기성인들이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고 환난과 비바람의 길을 가게 했다. 섭리사의 기성인들이랴. 그들은 선생의 마음속 더 큰 아픔이다. 새벽예배부터다. 아주 기본부터 균열이 일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신앙이 무너진다. 네 속에 네 주관, 네 생각, 지극히 인간적인 입장으로 기성화된 것을 뜯어고쳐라. 새벽예배는 주일, 수요 제단과 같은 거룩한 하나님의 제단이다. 내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것이다. 그렇게 예배드리는 것인데 얼굴도 씻지 않고 양치도 하지 않고 와서 앉아 있는 자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잘못되었다. 집에서 입던 평상복을 입고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만 때우고 가는 자들, 마치 옆집 아저씨를 만나러 온 듯 정성으로 내 앞에 예배드리지 않는 자들, 나는 새벽마다 와서 그런 너희들을 보고 있다. 완전한 정장은 아니더라도 나를 만난다는 인식은 하고 깨끗하게 옷을 입고 나아와야지. 새벽에 너의 중심이 다 드러나노라. 나를 어찌 대하는지, 생활 속에서 나를 어찌 모시고 있는지. 선생은 날마다 냉수욕을 하고 옷을 정갈히 입고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내게 나아왔다. 선생은 그리 몸으로 너희에게 보여 주고 삶으로 네게 가르쳐 주었는데 새벽예배 때는 간소하고 편하게 입고 와도 된다는 사고는 어디서부터 온 것이냐. 보는 천사들이 더 민망해할 정도인 자들도 있다. 선생을 생각해 보아라. 차원대로 받고 차원대로 생각하고 차원대로 사는 것이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들이 평생 땅을 면치 못하는 삶을 살길 원치 않는다. 새벽예배는 기도 시작부터이다. 한 시 기도를 하는 자이든, 두 시 기도를 하는 자이든, 세 시, 네 시 기도를 하는 자이든 새벽기도 시간은 나와 대면하는 시간이라는 정신의 인을 박아라. 그 시간은 잠자는 시간이 아니다. 사고가 무뎌져 잠자고 있는 자신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많구나. 너희는 주일예배, 수요예배 때 잠을 자고 있느냐. 그렇지 않잖아. “새벽예배는 새벽 시간이잖아요. 그러니 잠이 와요.” 하는 자, 체질을 하나씩 나와 함께 만들자. 세상 사람들 중에 아침잠이 많아서 주일예배를 못 온다는 자들이 많다. 그들과 너희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 너희는 내 신부가 되었으니 새벽잠을 못 이겨 내 앞에 나오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아침잠 때문에 주일예배를 못 드리겠다고 하는 자와 같다. 신의 입장, 신의 눈, 신의 생각으로 한번 생각을 해 보아라. 무뎌져서 하루하루 살아가지 말고 생각의 날을 세워 보아라. 차원을 높이고 싶다고 하면서 어찌 무뎌진 생각, 무뎌진 행동을 반복하고 있느냐. 새벽기도 후 본 새벽예배가 들어갈 때는 모든 자들의 마음이 내 앞에 준비되어 뜨거워야 한다. 마치 주일 찬양으로 그 심령을 내 앞에 준비시키듯 새벽예배도 각 사람의 마음이 내 앞에 온전히 나아와야 하건만 긴장의 끈을 푼 채 조는 자, 다른 생각을 하는 자, 피곤해하며 형식과 외식으로 드리는 자 모두 내 앞에 합당치 않다. 새벽예배를 준비하는 찬양 인도자, 설교자, 반주자, 기술팀 모두 새벽예배가 ‘예배’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느냐. 그 맡은 바 담당 사명이 있는데 쉽게 펑크를 내고 대타를 세우는 것이냐. 주일 찬양 인도자가 늦잠을 자서 찬양이 펑크 나는 것과 같다. 내 말이 맞느냐? (맞습니다. 하나님. 새벽예배가 허술하게 이루어지고, 인도자가 펑크 나서 대타를 할 경우 옷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심령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태라면 성삼위 앞에 너무 민망해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예배는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도 아니요, 너희끼리 진행하는 의례적인 행사가 아니다. 성삼위를 모시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니 너희 각 2015_1231 목 계시말씀.hwp5 심령이 진정 새벽예배 가운데 온전한 마음으로 내 앞에 나아왔는지 점검해 보아라. 곧 네 신앙의 중심, 네 신앙의 상태를 점검해 보아라. 매일매일 예배를 준비하고 연습하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정신은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임의로 네 생각대로 하는 것이 하나하나 계속 많아지다 보면 신앙이 뒤처진다. 나는 네 마음의 중심을 본다. 선생은 기성의 무덤 가운데서 살아나 첫 열매가 된 자이다. 살아난다는 것이 무엇이냐. 관념화되지 않는 것이고, 실체로 실존한다는 것이며, 진실로 행하여 멈춰 있지 않고 생동한다는 것이다. 기성은 죽어 있다. 첫 마음이 죽었고 그들의 삶 속에 살아 있는 나 여호와가 관념화 되었으며 시대 구원자를 온전히 맞지 못함으로 그 속에 진리가 없다. 너희는 기성화되지 말아라. 죽지 말아라. 네 삶 가운데 나 여호와가 살아 있게 해 다오. 한 명이라도 깨어 있으면, 이 새벽 제단이 항상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한 사람을 발판으로 해서 내가 그 교회의 영광을 온전히 흠향한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진정 사랑의 기준이 되어 깨어날지어다. 매일의 제단을 살려라. 새벽예배 제단을 너 스스로 폐하지 말라. 그것이 불법이며 신부로서 내 심정을 거스르는 일이니라. 사랑한다. 샬롬. 이 일을 계기로 네게 계시했으니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새벽예배 제단을 지켜 행해 휴거의 차원을 높이길 바란다. 원래 예배 때 성삼위가 더욱더 은혜와 성령, 진리를 부어 준다. 새벽예배에 와서 전심을 다해 삼위를 만나는 자는 매일 하늘 예배를 통해 영, 혼, 육이 성장하는 자이다. 섭리사 각 사람의 인식이 깨어나고 마음이 새로워져 모두 새롭게 행하자. 신앙의 권태를 느끼는 자들, 새롭게 행하는 것은 거창하게 행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부터, 기본부터 인식을 새롭게 하면 삶이 변한다. 새벽예배에 대해 각 사람의 견해가 다르고 인식이 흐려져, 그 가치와 중요성을 모르는 자들이 많다. 절대적으로 말하지만 너희의 기준은 오직 선생이다. 선생의 새벽말씀 영상에서 선생이 하루라도 흐트러져 예배를 준비한 적이 있더냐.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최고로 깨끗하게, 최고로 멋있게, 최고로 완전하게 나를 모셨다. 선생과 같이해야 새 역사다. 성약 신부 섭리역사다. 알겠지? 안녕. ♥ 12월 31일 목요일 ‘인류의 구원자’로 맞아라! 2015년 12월 31일 목요일 새벽 계시말씀 작성일 : 2015. 12. 3. AM 01:00 작성자 : 주사랑빛 (“내일부터 교회 전체가 선생님을 위해, 그리고 1년 동안 지은 죄를 회개하고 더 선교하기 위해 <21일 마지막 작정기도>를 시작해요. 이때 선교 부흥을 위한 방법이 여러 가지이지만 지금의 방향은 기도하여 더욱 구원자의 돛을 꽂는 것이라고 감동을 주셨어요. 제가 감동을 제대로 받은 것이 맞나요? 근본 문제의 해결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하셨어요.”) *성령님의 말씀* 맞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우선시하지만 그 결과가 나오기 위해서는 밟아야 하는 <단계>가 있다. 그 단계를 밟아야 <목적>에 다다를 수 있고 거기에서 결과를 얻게 된다. 이를 모르고 결과만 빨리 얻으려 하니 과정 중에 포기하는 자가 나오는 것이다. 너도 그러하지 않았느냐? 나와 함께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놓친다면 처음에는 빨리 가는 것 같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나와 함께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초에 구원자의 돛을 달아야 순풍을 타고 빨리 간다고 했지?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15년의 뚜껑을 다 덮지 않았다. 그러니 너무 성급히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달린다면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네가 계속 나를 불러 대고 마음이 활화산 같아서 빨리 왔다. 나 성령을 부르면 내가 즉시 네게 와서 대답한다. 그때 생각의 파장을 멈추지 않으면 나의 대답을 들을 수가 있다. 비운 만큼 내가 더욱 역사하니 기도를 하는 것이 합당한 방향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들을 나 성령이 다 해 줄 것이다. 네 소원을 내게 말하는 만큼 나는 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말하는 수고조차 하지 않는데 내가 어찌 들어줄 수 있겠느냐. 통해야 목적을 이룬다.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목적을 이룬다 해도 그것은 ‘인간의 목적’이다. 나의 목적을 이루려면 나의 말대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하려면 나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지. 그래서 구원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새벽마다 부어 주는 나 성령의 말을 귀를 열어 들으라는 것이다. 나는 구원자를 통한 말씀을 더욱 깨닫게 하고 시인하게 하며 뇌에 새기게 만들고 행하게 한다. 이를 절대 잊지 말아라. <목적>을 잃으면 <목줄>을 잃은 개와 같이 방황하다가 차에 치여 죽임을 당한다. 목적을 잃으면 안 돼. 개인의 목적에서 벗어나라. 인류를 위한 목적으로 나아가라. 너희 선생을 너의 선생이 아닌, 가정의 선생이 아닌, 교회의 선생이 아닌, ‘인류의 선생’으로 맞으라고 했다. 개인의 목적만을 추구하다 말면 ‘개인의 선생’으로도 못 맞는다. 개인의 목적에서 벗어나야 너희 가정이 보이는 것이다. 가정의 목적에서 벗어나면 너희 교회가 보이고 교회의 목적에서 벗어나면 너희 민족이 보일 것이다. 민족의 목적에서 벗어나면 인류가 보인다. ‘인류의 구원자’다. ‘인류의 삼위’다. 결국 ‘증거하라’는 말이다. 한 가정에서 선생을 맞으려느냐. 한 민족에서? 아니다. 인류가 선생을 맞아야 한다. 2015_1231 목 계시말씀.hwp6 선생이 나오면 인류에게는 ‘마지막 휴거의 기회’다. 시간은 한 번 가면 안 오듯이 이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다. 남은 한때만 남았지. 인류가 살아 있는 구원자를 맞을 기회가 ‘한 번’이란 말이다. 너희가 얼마나 중요한 자인지 아느냐? 인류가 구원자를 맞을 수 있게 인도할 자가 지구상에 너희 외에는 없다. 인류는 ‘섭리 신부들’이라는 <문>을 통해 선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문을 열지 않고 꽉 닫아 놨다. 열어라. ‘그 문을 연다는 것’은 ‘말씀을 외친다’는 말이다. 말씀을 외칠수록 그 문은 즉시 열리고 더 크고 넓게 바뀌게 된다. 그러니 많은 자가 그 문을 통해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삼위를 만난다. 고로 휴거된 섭리 신부들이 귀하고도 귀하다. 너희 각자가 그만큼 귀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못 해. 고로 삼위와 선생이 해 줘야 한다. 고로 ‘매달리라’는 것이다. 1년 동안 구원자의 돛을 단 자들은 순풍을 타고 휴거 700선이 되었다. 선생의 말대로 하면 무조건 역사가 일어난다. 무지한 자는 핵을 모르는 자다. 너도 그러한 자를 봤지?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핵>이 없어. 핵이 없으면 힘이 없으니 하다 말게 된다. 정확한 하늘의 방향을 선생을 통해 가르쳐 줘도 제대로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하니 핵이 없지. 봐라. 그래도 데려가야 하지 않겠느냐. 이것이 나의 방법이다. (성령님, 그런데 데려가기는 하겠지만 실망이 너무 커요.) 그 실망도 사랑이다. 하나의 과정이다. 그 과정들을 겪어서 목적에 이르게 하는 것이란다. 그러니 다 같이 가야지. 나도 매일 애가 타고 심정이 타 들어가지만 또다시 손을 내민다. 사랑하니까 그리하는 것이다. 결국은 잘된다. 하나님도 그러하셨다. 수많은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기대를 한 만큼 실망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역사해 오니 결국 창조 목적을 이루었다! 이것을 보고 깊이 깨달아라. 축소해 보면 너희 인생도 그러하다. 멀리 갔어도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 하늘의 마음이고 실망을 주었어도 또 기대하는 것이 하늘의 마음이다. 너희도 생명을 그리 대해 주어라. <인류의 선생>으로 맞는 ‘목적’을 가져라! 단 하나의 기회의 문인 너희들아, 살아 있는 구원자를 인류에게 소개하라. 담대하고 자신감 있게 하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하리라! 그리 행하는 자는 나의 소원을 이루어 주었으니 나도 너희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육의 시간은 제한적이기에 선생이 육신을 가지고 뛰고 달리는 기회는 단 한 번이다. 그러니 인류가 모두 그를 맞을 수 있도록 하라. 살아 있는 구원자를 보고 죽어야지. 살아 있는 구원자를 만나지 못하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냐. 너희가 ‘그 문’이다. 성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