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6.01.04 (월)
월 새벽말씀 0d8e9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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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4일 새벽말씀(편집본)
“내게 배워라. 그리고 교육을 받으라. 그러고 나서 전도를 하여라.”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누구한테 배워서 써먹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누구한테 배웠느냐.
원래 선생님은 하늘로부터 배웠습니다. 세상의 모든 신학이나 모든 것을 보면 대개 사람들한테 배웁니다.
선생은 분명코 신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신학교에서 배웠더라면 이미 이 말씀이 세상에 다 있고,
우리뿐만 아니라 다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배우고, 예수님께 배워서 나만 갖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세례요한을 보내서 전초하라고 세례요
한에게도 말씀을 다는 안 주었지만, 거죽 말씀은 주었겠지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 성서에 있는 말씀을 훑어 거의 다 나오고, 시대의 말씀이 거의 다 나옵니다. 그것을
가지면 충분히 하나님이 성서에 예언한 지상천국을 이룰 수 있고, 그 말씀 따라 행하면 하나님과 일체 되
고 주와 일체 되고 충분히 살 수가 있습니다. 행동을 해야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운영하는 일을 보세요. 태양을 보세요. 어느 때는 문 닫았다가 열었다 하는 일이 없습니다. 끊임
없이 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새벽예배에 한 교회 한명씩만 와도 섭리사에 세계적으로 한 800명이 오
니까 그들을 위해서 외치고 말씀을 가르쳐야 되지 않겠느냐?”
800명을 가르쳐놓으면 그들이 옆에 가서 한마디씩 합니다. “오늘 아침에 무슨 말씀을 했는가? 새벽 말씀
들은 사람이 있는가?” 해서 죽 전하면 그것이 금방 내 만 명씩, 2만 명씩 번져갑니다.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이 운영하는 역사니까 늘 끊임없이 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일체 돼서 움직일
때는 끊임없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끊임없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면 무슨 일이 있는지 압니까? 끊임없이 하다보면 <변화>가 옵니다. 반드시
변화가 옵니다. 어느 날은.
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지면 그 그릇이 차고 넘쳐 버립니다.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추녀 끝에 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지면 그릇을 갖다놓으면 물이 넘쳐버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도 저래야지.’ 하는 마음이 옵니다.
“끊임없이 하다보면 변화가 일어난다. 다시 말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해야 일어나는가 하니, 해야 됩니다! 가만히 있는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없습니
다. 자꾸 해야 됩니다.
선생님도 기적을 일으킬 때 보면, 계속 하다 보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계속 하자! 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글을 쓸 때도, 큰 표어 같은 것을 쓸 때도, “사랑하라” 이런 것을 쓸 때도 큰 글씨를 쓰다보면 한 6-70장
쓰면 쓰기가 싫고, 너무 힘듭니다. 그 하나 쓸 때마다 힘이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힘은 쓰는 대로 나가니
까. 무용을 한다든지, 춤을 춘다 해도 힘이 들어갑니다. 힘이 드니까 하고나면 힘이 쭉 빠져있습니다.
하여튼 나가면, 말을 많이 해도 힘이 빠져 나갑니다. 힘이 없습니다. 받을 때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하다보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365일 동안 끊임없이 뭐인가 해 봐요.
365일 동안 새벽 기도를 끊임없이 한 사람들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혁이 일어날 것입니다. 무슨 변혁이
일어나는지는 각자에게 일어나는 변혁으로 끝이 없을 것입니다. 못 받을 것을 받았든지, 병이 나았다든지,
자기의 도대체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해결되었다든지, 체질이 뒤바뀌어 버렸다든지.
체질 바꾸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그것도 기적입니다.
꼭꼭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체질이 되면, 체질이 뒤바뀌면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그대로 됩니다. 해집
니다. 습관이 되니까.
습관 되면 얼마나 이상적인지 압니까? 습관 되면 꼭꼭 새벽잠을 잡니다. 그것은 그 전에 깰 수가 없습니
다. 안 깨집니다.
그와 같이 습관 되면 자동적으로 됩니다. 태양이 동에서 뜨듯이. 그래서 습관을 들여놓으면 그렇게 큰 것
입니다. 큰 보화 중의 보화입니다. 그래서 표적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끊임없이 할 것을 선생님이 오늘 가르쳐 주었습니다. 끊임없이 해야 됩니다. 끊임없이 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나는 했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동안 끊임없이 했습니다. 산에서 기도할 때나, 말씀을 받
을 때 끊임없이 계속 해서 결국 기적이 일어났는데, 무슨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온 인류가 원하던 역사를
가지고 오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섭리 종교는 불교고 유교고 다 해당됩니다.
길이 딱 하나입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하나님이 역사하는 길은 딱 그리스도를 중심한 한 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 유교, 어떤 세상의 누
구를 막론하고 다 해당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어도 옛날 믿은 식으로 믿는 사람의 길이 다르고, 구시대 기독교의 가는 길이 다르고, 우
리의 길이 다릅니다. 모든 길은 새 길로 가는 것이 근본입니다.
가령 국가가 엄청난 돈을 들여서 새 길을 냈습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새로운 고속도로를 냈습니다. 백
성들이 낸 세금, 국가의 그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고속도로를 냈습니다. 그것은 국가 전체가, 국민 전체가
혜택 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 공무원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
라 누구든지 해당되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 써먹으면 엄청난 손해가 갑니다.
이와 같이 이 새로운 길은, 이 성약 역사의 길은 누구에게든지 시대에 가장 빨리, 가장 이상적인 역사를
펴는데 필요한 말씀이고 이상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안 사용하는 사람은, 이 길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이상을 이룰 수 없다! 이 성약말씀이 아니고서는 이 시
대의 성약역사를 할 수가 없고, 구약말씀 갖고는, 신약말씀 갖고는 안 된다.”
신약의 말씀은 문자적 말씀이고, 상징적인 말씀 갖고는 주인공이 아니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유든 사람 갖고, 그 사람을 갖고 뜻을 이루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만물 갖고 뜻을 이루면 되
겠습니까? 만물 갖고 비유했는데. 사람을 두고 말했습니다. 사람을 두고 만물로 비유했습니다.
원래 나를 가지고 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꽃을 갖고 가서 무엇을 합니까?
“꽃을 보는 자는 기쁘리라. 향기를 맡으리라. 결국 꽃에서 열매를 열어서 기쁨을 얻으리라.” 했다고 꽃을
갖고 가서 계속 앉아서 꽃의 향기 맡고, 꽃에 가서 열매 따먹는다고 앉았다고 만족이 이루어집니까? 그것
이 아닌데. 기독교는 그런 역사를 펴왔습니다. 기다리는 역사입니다.
“내게 배워라. 지금은 2천년 된 그 역사가 아니다. 지금 역사를 배워라.”
무슨 이야기하는지 잘 들었지요? 어떤 것을 얘기하는지.
“내게 배워서 자꾸 써먹고, 내게 배우라. 확실히 알고 살아라.”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운영하는 것은 완벽하게 끊임없이 운영하신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하늘 국가의 공직자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늘 공무원들도 있어요. 그리고 또 하늘 국민들입니다.
따르는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운영해야 됩니다. 개인이 아니니까. 이것을 듣고 끊임
없이 하늘과 일체 되면 여러분들도 끊임없는 사람이 됩니다.
내가 말씀을 끊임없이 안 해 주면 여러분들이 끊임없이 온다고 해도 아마 힘들 것입니다.
늘 목사님은 끊임없이 새벽예배에 나옵니다. 사람이 오나 안 오나. 혼자나 둘이 나와도 목사님이 나왔으니
까 같이 상대가 되어서 기도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새벽예배에 안 나왔다고 칩시다. 그러면 자기
가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바람이 치고 너무 비가 많이 왔습니다. 그냥은 내가 교회를 안 갈 수 없으니까 하루는 비라도 많이
와서 할 수 없이 못가면 안 가도 이유가 되겠다 했는데, 그런데 진짜 비가 많이 왔습니다. 문을 열었다가
못 가겠다 했습니다. 비 좀 그치면 가겠다고 했으나 비가 안 그치겠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뒤집어쓰고
갔습니다. 그때는 특별한 것도 없어서 뭐 조금 뒤집어쓰고 갔습니다. 바람이 너무 부니까 우산도 못 받았
습니다.
갔는데, 얼마나 비가 밤새도록 왔는지 도랑을 못 건넜습니다. 물이 허리까지 닿았습니다. 한 3미터만 가면
건너가는데, 양쪽에 논두렁을 하느라고 쌓아서 그 사이에서 물이 확 나오는데, 팍 퍼졌다 나오는데 거기를
건너가야 했습니다.
갈까 말까 하다가 결국 갔습니다. 얼마나 단순합니까? 뒤로 돌아서 집으로 와버리면 끝나는데, 그렇게 무
서웠던 것입니다. 오면 되는데, 그래도 기어코 가겠다고 갔습니다. 논두렁길을 타고 가면 물에는 전혀 안
빠지는데, 만일 발을 잘못 디디면 물에 처박히기에 그것보다는 건너가는 것이 낫겠다하고 건너기 시작했습
니다.
아마 지금은 그렇게 무섭게 못 할 것입니다. 어렸을 때가 너무 무섭습니다. 결국 건너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가 하니, 군대 가기 전 10대 때입니다. 확실합니다. 옛날 집 생각이 나니까.
건너갔는데 비에 흠뻑 젖고서 건너갔습니다. 건너갈 때 한 다리가 떴습니다. 다리가 뜨면 떠내려간다고 우
리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습니다.
“물 건너갈 때 다리가 뜨면 떠내려간다. 다른 조처를 취해야 된다.”
다리가 떠서 안 디뎌졌습니다. 한 다리는 딛고 한 다리는 떴는데 뜬 다리가 안 눌러졌습니다. 그래서 물이
라도 잡겠다고 막 잡았습니다. 물이라고 잡으면 힘이 되겠다 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걸렸습니다. 그것을
잡고서 두 발짝 건너서 건너갔습니다. 그것을 잡아당겼는데도 안 끊어졌습니다.
그렇게 비를 흠뻑 맞고 갔습니다. 그 다음 도랑은 물이 더 많이 내려갔지만, 그 도랑은 너무 넓어서 충분
히 허벅지밖에 물이 안 닿아서 충분히 건너갔습니다. 그렇게 건너서 교회에 갔습니다.
가니까 아무도 안 왔습니다. 나 혼자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오겠지. 교역자님은 강대상 뒤에 있는가?’ 하
고 쳐다보았습니다. 항상 강대상 뒤에서 기도했었습니다. 노삼헌 목사였는데 강대상 뒤를 쳐다봐도 없었습
니다. 그리고 극성부리는 권사님들이 있었습니다. 새벽예배 때에 종치는 것에 극성부리는 권사님들이 있었
습니다. 365일 동안 종을 치는데, 그 권사님도 안 왔습니다. 그분이 우리 어머니 보다 꼭 먼저 와서 종을
쳤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내가 석막리로 이사 가기 전에는 못 당하겠다.” 하셨습니다. 항상 먼저 와서 쳐
버리니까. 어느 때는 서로 먼저 치려다가 새벽 3시에 종을 쳤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시계가 없으니까 그
종소리 듣고 논두렁 보러 가는데, 3시에 가서 논두렁 물고를 보고 있는데 날이 안 샜습니다. 계속 쭈그리
고 앉아 있다가 거기서 졸다가 왔답니다. 보니까 3시에 종을 친 것입니다. 그때 논두렁 보러 다니는 사람
들이 동네 논도 아니고 저 멀리에 있는 명막골, 노루니 거기까지 들어가서 논두렁 보러 다녔습니다.
그 사람들이 “어제 새벽에는 도대체 왜 그렇게 일찍 종을 쳤어? 논두렁 물고를 보고서도 한 시간 앉아 있
으니까 날이 새더라.”했습니다.
그 날은 아무도 안 왔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안 왔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꼭 왔습니다. 그때는 오다가 떠
내려갔는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할 때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요. ‘혹시 오다가 괜찮았는가?’
우리 어머니도 나와 보니 나는 갔겠다, 물 생각을 한 것입니다.
아무도 안 오고 혼자 강대상 밑에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오겠지.’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다가 쑥 들어갔습니다.
그때 선생님께 무슨 기적이 일어났는가 하니, ‘하나도 없으면 하나님이 와서 어떻게 되겠는가? 쳐다보고,
아무도 없으면. 그리고 이것이 비상적인 사태가 돼서, 이 문제가 큰 문제를 좌우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을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하늘의 일에 충성을 다하며 끝끝내 모든 사람이 기준을 못 세운 기준을 세우면서 가리
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못 세운 기준을 세우겠다. 모든 사람이 세우지 못한 기준을 세워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그 교회는 지금 있는 교회가 아니고, 그 전에 있던 교회입니다. 10대 때 교회이니까. 군대 갔다 와
서 지은 교회가 지금 석막교회입니다. 그 교회 말고, 그때의 교회는 없어졌습니다. 나무로 지은 교회로 조
그맣게 15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당시는 전도사였습니다. 바로 앞에 살아서 도랑 건널 것이 없이 그냥 들어오면 되는
데 안 왔습니다.
결국적으로 선생님이 기준 세우고 기도하는데 단상에서 해 덩어리만한 불덩어리가 나에게 비춰 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것이 탈 때 가슴이 뜨겁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당시 깊은 영적인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서약했습니다. 그때 서약한 것이 무엇인가 하니 “하나님의
사람이 돼서 이와 같이 누구도 못하는 일을 해 내면서 가겠다.” 그렇게 기도하고 간구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 새벽기도에 갔던 기준이 생각납니다.
이와 같이 끊임없으니까 어느 날 하나님께서 딱 축복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크나크게 역사하는
동기가 더 컸던 것입니다.
기록적인 것이 나에게 보고가 됩니다.
“너는 어떻게 되었느냐?”
“우리 교회에서 제일 전도 많이 했습니다.” 그것이 기록세운 것입니다.
“너는 뭐냐?”
“우리 교회에서 관리를 최고 많이 했습니다.”
이런 기록적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이 챙기시고, 역사를 꼭 합니다.
“우리 교회서 헌금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이런 기록적인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뿐만 아니라 둘, 셋, 넷 다 뽑아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끊임없어야 된다는 말에 그것이 해당됩니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그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매듭을 짓습니다. 길게 하면 안 됩니다.
낚싯밥이 좋아야 고기를 큰 놈을 잡고, 좋은 것을 잡습니다. 낚시가 좋고, 크고.
전도에 대해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낚싯밥이 좋고, 그리고 낚시가 좋고 커야 큰 고기를 잡습니다. 우리는
낚시가 그야말로 너무 좋잖아요.
내 낚시는 좋은데, 여러분들이 갖고 가서 어떻게 써먹느냐는 것입니다.
낚시는 큰 것도 많고, 고래 낚시뿐만 아니라 상어 낚시도 다 있는데, 여러분들이 갖고 가서 제자들이 가서
깔짝깔짝하며 붕어 낚시나 하며 집어 던지니 그런 사람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대학생을 손 댈 때는 대학생의 수준에 해당되는 말씀을 탁탁해야 그들이 오지, 어디 가서 초등
학생 다루듯이 하면 그들은 고개 흔들고 안 옵니다. 지금 애들이 얼마나 배웠다고 그래요. 정신과 사상이
다릅니다. 크고 엄청난 것으로 대해야 됩니다.
어른은 어른답게 해야 됩니다. 사회의 큰 사람이나 젠틀맨들은 그런데 해당되는 말씀을 꽉꽉 해 주면서 끌
어 와야 됩니다.
우리는 낚싯밥이 너무 좋습니다. 시대의 새로운 말씀, 새로운 역사, 새로운 전술, 방법, 이상적인 것이 있
습니다.
사냥하는 데 있어서도 어떤 무기를 갖고 하느냐. 새총 갖고 하면 새밖에 못 잡아옵니다. 꿩 총 갖고 가면
꿩 밖에 못 잡아오는 것입니다. 멧돼지 총 가져야 멧돼지를 잡는 것입니다. 꿩 총 갖고는 멧돼지를 못 잡
습니다. 혹시 맞기는 맞아도 도망쳐 버리지, 잡을 수가 없습니다. 섣불리 건들면 또 쫓아와서 물어뜯습니
다.
이와 같이 과감하고 이상적인 것을 가지고 사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말씀이 좋지 않습니까? 시대의 말씀이 얼마나 이상적입니까?
내가 산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받을 때 내가 원자폭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원자폭탄 만들 때 부속품 하나
씩 만들어서 끼우고, 만들고, 원료 만들고, 여러 가지 화학적인 것을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혼자 만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혼자. 산에서.
‘내가 왜? 내가 지금 말씀 연구하고 있는데, 왜 이러지?’ 했는데, 말씀의 원자폭탄을 만들었습니다. 사랑의
원자폭탄, 진리의 원자폭탄, 시대의 원자폭탄.. 많습니다. 역사의 원자폭탄.
역사적인 말씀을 죽 하면 안 받아들일 사람이 없습니다. 역사가 그렇게 갔는데 안 받아들입니까?
“네가 지금 초저녁이라고 하는데, 초저녁인가 봐라. 시간을 봐라.” 하면 “어? 어떻게 된 거야? 내 시계만
그렇게 되었구나.”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런 모든 우리 시대의 말씀의 원자폭탄이 있어서 우리는 터트립니다. 세상의 원자폭탄
은 있어도 못 터트립니다. 평화 시대가 왔기 때문에 못 터트립니다.
나는 누구를 멸하러 오고, 심판하러 심판의 원자폭탄을 갖고 온 것이 아니고 사랑의 원자폭탄, 진리의 원
자폭탄, 화목의 원자폭탄 이런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터트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작고 큰 것을 터트립니다. 매일 말씀으로. 그래서 선생님이 말씀을 한번 하면 여러분들 마음
이 확 돌아옵니다.
‘무기’ 갖고서 사냥하는 데 좌우되듯이, 어떤 무기가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듯이 그러합니다. 동시에 거기에
해당되는 ‘기술’이 있어야 됩니다.
포탄 쏘는 기술, 총 쏘는 기술, 칼을 쓰는 기술, 낚시질하는 기술. 낚싯대는 똑같은데 어떤 사람은 고기를
잡고, 어떤 사람은 못 잡습니다. 그것은 ‘기술’입니다. 그래서 기술이 꼭 필요합니다.
“일에 대한 기술이 필요하다. 자꾸 해 봐라. 전도 잘 하는 사람에게 가서 강의 들어보라. 어떻게 하는가?”
들어보니까 이상적이지요? “금년도는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르칠 테니 내게 배워라. 내가 가르
쳐주마. 그리고 나머지는 너희들끼리 한 것을 자꾸 이야기를 하도록 하라.”
마지막 한 마디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지금 ‘15일 동안’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열심히들 하라고 했습니다.
그 기간 가지고 영광도 돌리는데, 자기 할 일 꼭꼭 하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매일 돌리는 자입니다.
새벽에 영광 돌리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물어보았더니 “자기 할 일을 꼭꼭 하는 자는 나에게 늘 영광을
돌리는 자다.” 하셨습니다.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며 무대에서 하는 것은 15일 하고 잠잠해질 것이다. 그러나 생활은 해야 되니까 생
활 속에 영광을 늘 돌리도록 하라.”
자기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허락한 것이 있습니다.
결혼하면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늘 그것을 해야 됩니다. 그런 것을 안 하니 이혼
하고, 안 하니 싸우고 헤어지는 것이지 제대로 하고서 헤어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
니다. 남자의 기대대로 안 하니까 헤어지게 되고, 여자의 기대대로 안 하니까 여자가 발로 차고 도망쳐 버
리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이 기대를, “나에게 무엇을 기대 거는가?” 물어보고서 자꾸 해 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도 하나님께 “인간으로서 모르겠습니다. 어떤 기대를 거는가 가르쳐 주세요.” 했습니다.
“그것은 안 물어보아도 안다. 내가 주니까.”
하나님께서 기대를 걸 때 그냥 거는 것이 아닙니다. 춤을 보고 싶으면 춤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노래를 듣고 싶으면, 하나님께서 노래를 가르친답니다. 그래서 그때에 알아볼
수 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세계는 무언의 역사입니다.
또 전도하는 영광을 받고 싶으면 그에게는 전도하는 것을 자꾸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어떤 지식의 영광 받고 싶으면 자꾸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잘 들었습니까?
한없이 말씀이 연속되지만 여기서 말씀을 그만 끊겠습니다.
그러면 모두 열심히들 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관리도 하고 그래요.
항상 착오 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선생님!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이제는 괜찮아요. 잘 나와요.”
그리고는 또 놔둬 버립니다. 그러니까 문제 일으키고, 야단법석 납니다. 끊임없이 계속!
그러면 야비한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계속 관리를 해야 됩니다.
나를 보고 그럽니다. “나는 천국이고 뭐이고, 이상세계고 뭐이고 선생님께 솔직히 이야기하는데, 선생님이
별 것도 아닌 나를 너무 붙잡아 줘서 고마워서 교회 나와요. 감사해서. 나 지금도 하나님이 있는지 잘 몰
라요. 선생님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그러나 선생님이 좋아요. 연애하면서 같이 살고 싶어요. 그 많은 사람
중에 너무 관심을 잘 가져주니까요.”
“이러든 저러든 좋고, 따라오면 천국 간다. 나를 따라오면.”했습니다.
여러분들도 끊임없이 관리를 해 줘야지 야비한 관리를 하면 안 됩니다. 순간만 처리하고, 그러다 문제가
팍 일어납니다.
그가 일부러 계획적으로 문제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신음하는 소리를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영혼의
신음 소리, 자기 힘이 없는 신음소리를 들어봐요. 사탄들이 와서 그 놈을 자꾸 잡아갑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
그래서 영혼의 신음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됩니다. 함부로 하지 말고 잘 해야 됩니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을 관리하는 것을 잘해야 됩니다. 나도 금년도는 심각하게 관리를 할 것입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 살려놓았습니다. “야, 이제 됐다.” 하고서 밭 매러 나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와보니까 죽
어 버렸습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그것은 비상조치만 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도 많은 안전사고가 납니다. 일
단 의사들이 죽자 살자 잘 수술해서 살려놓았는데, 수술 뒤에 계속 해 주었어야 되는데 못 해 주어서 그냥
죽은 것입니다. 그런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은 간호원과 의사들에게 돈을 주어서 별지 관리를 해 달라고 하면 양심상 별지 관리
를 해 줍니다. 그래서 살기도 한답니다.
우리들도 그렇게 해서 해 주면 이상적일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과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데, 거의 관리자
들이 길러서 정들다시피 합니다. 그래서 관리자만 붙여 놓으면 일단은 삽니다. 워낙 붙잡고 하니까.
한번은 보니까 직장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앓아가면서 하면서 그것 갖고서 관리하는 데 써먹어서 기어코
살려놓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려놓아서 그가 결국 큰일들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살려놓은 애를 내가 지금 외국에 파견 보내서 선교에 쓰고 있다.” 했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나간 줄 알았는데 외국에 가서 선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끊임없이 관리를 계속 해 줘야 됩니다. 그렇게 해 줘야 크게 됩니다. 그래야 나중에 본인이 합
니다.
날짐승 독수리도 보면 새끼가 사냥해서 지가 먹을 때까지 관리를 합니다. 그리고 다른 강한 동물들이 와서
습격하지 않도록 그것도 지켜 줍니다. 거의 끊임없이 합니다. 본인이 습격을 막을 수 있는 정도가 될 때까
지 관리를 해 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우리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새벽도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가르쳤으니 감사합니다.
“내게 배워라. 하늘의 가르침을 배워라. 끊임없는 말씀을 듣고 배워라.”
성부 성자 성신의 큰 능력과 권능으로 늘 이들에게 함께해 주시고, 새벽을 통해 배워서 자신만만하게 가서
말씀을 전해서 이들이 이끌어 오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내가 간구했으니 모두 잘 되고 형통하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마쳤습니다. 오늘 밤 또 말씀 들으러 모두 신입생 데리고 와요. 지도자들이 대개 새벽제단에 나오는
데, 신입생들도 자꾸 끌고 나와요. 계속 끌고 나오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생활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활 변화가 일어나야 됩니다.
새벽예배에 오기 전에는 원리가 있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그러나 왔다만 가면 힘이 확 일어납니다. 하루
종일 기분 좋습니다. 그렇지요?
빠이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