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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6.01.31 (일)

160131 주일말씀(실수는 죽음까지 초래한다)

선포일
2016.01.31 (일)
성경 본문
사사기 16장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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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31일 주일말씀> 실수는 죽음까지 초래한다 본 문 사사기 16장 17-18절 마태복음 5장 48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인생을 살면서, 일을 하면서, 신앙을 하면서 정말로 중요하게 새길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곧 ‘실수’에 대한 말씀입니다. 말씀의 주제는 ‘실수는 죽음까지 초래한다.’입니다. <말씀 시작>  성경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를 보면 하나님 앞에 ‘실수’한 자들이 그리도 많았고, <작은 실수>로 인해 <큰 실수>도 하게 되어 결국 심판받아 사망으로 가기도 하고, 고통받고 회개하여 돌이키기도 했습니다. 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온 ‘삼손’도 <실수>로 ‘자기 비밀’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하여 실패했습니다.  <실수>는 ‘하나님의 예정’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자기 무지와 오해로 실수하게 되고, 확인하지 않고 행하다가 실수하게 됩니다.  아담과 하와는 ‘타락 실수’를 했고, 가인은 ‘아벨을 죽이는 실수’를 했고, 노아의 아들 함은 ‘아버지의 행동을 터치하는 실수’를 했고, 아브라함은 ‘하늘 앞에 제물 실수’를 했고, 또 ‘종을 첩으로 들여 그 씨를 퍼뜨린 실수’를 했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미워하여 죽이려 하는 실수’를 했고, 야곱은 ‘첫 번째 결혼 실수’를 했고, 롯의 사위는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는 실수’를 하여 멸망당했고, 롯의 부인은 ‘소돔 땅을 뒤돌아보는 실수’를 하여 죽었습니다. 삼손은 ‘자기 비밀을 말하는 실수’를 했고, 와스디는 ‘왕 앞에 실수’ 하여 왕비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 앞에 수백 번씩 실수’를 하다가 결국 할복자살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을 취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복음을 전하지 않고 사명을 피해 도망가는 실수’를 했습니다.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도 모세도 원망하고 악평하는 실수’를 수백 번씩 하다가 결국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복지에 가지 못하고 신광야에서 고통을 받다가 죽었습니다.  신약 때 베드로는 ‘메시아 예수님 앞에 실수’하여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으로 구원의 길을 열려고 하는 것을 막음으로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또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자기들 앞에 나타난 ‘예수님의 영’을 보고, ‘귀신이라고 말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이외에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바리새인과 율법인들도 ‘예수님 앞에 수백 번의 실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의 실수’를 보고 설교하셨고, ‘바리새인과 율법인들의 실수’를 보고 설교하셨습니다.  섭리인들도 ‘선생 앞에 수십만 번 실수’를 했습니다. 왜 ‘수십만 번’인지 계산해 봐요. 한 명당 50번씩만 실수하면, 그 정도 계산이 나옵니다. <생각 실수, 말실수, 행동 실수>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래서 섭리사에서도 ‘제자들의 실수’를 보고서도 설교가 나갔고, ‘선생을 악평하며 실수하는 저들’을 보고서도 설교가 나갔습니다. 어떤 것은 ‘직접’ 말했고, 어떤 것은 ‘비유’로 돌려서 말했습니다.  신구약을 다 합치면 ‘실수한 자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행한 대로 다 받았습니다.  모두 성경을 한 번씩 읽어 보고, 성경의 인물들이 하늘 앞에 무엇을 실수했는지 빼 보세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보고하고, 선생의 영에게도 보고해 줘요.  성경의 인물들이 실수한 것이 몇 번인지 빼내는 것도 하나의 ‘조건’이며 ‘책임’입니다. 누구나 해 봐요. 교역자도 꼭 해서 오늘 말씀을 토대로 수요일에 은혜 집회를 해 주기 바랍니다. 3일이면 뺍니다. 왜 하냐고요? 그와 같이 ‘자기도 실수한다는 것을 깨닫고 고쳐라.’ 함입니다.  <예수님 때 제일 큰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아는 사람 있어요? 그리고 <이 시대의 제일 큰 실수>는 무엇이었습니까? 한 번 대답해 봐요. (손들게 하고, 몇 명 대답하게 한다.) (교역자는 세 명만 뽑아서 식사비 3만 원씩 줘라. 교역자들은 답을 알지?) <전환> ◎ 지금부터 실수하지 않도록 <이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 <사람>은 ‘신’이 아닙니다. <사람>이니 잘한다고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실수하고, 생각나도 판단을 잘못하여 실수합니다. 또 몰라서 실수하고, 알아도 다루는 기술이 없어서 실수합니다.  <실수하는 사람>은 마치 ‘잠자는 사람’과 같아서 잠잘 때는 전혀 모르듯, 자기가 실수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잠을 안 자는 자>, 곧 ‘아는 자’가 볼 때는 그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순간 깜빡해서 가스 불을 안 끄고 나갔는데, 그로 인해 화재가 나서 집을 다 태우기도 합니다. <순간의 실수>로 10년, 20년 동안 몸부림쳐 벌어서 지은 집을 다 태워서 잿더미가 되게 합니다. 신앙의 삶에서도 그러합니다. 순간 울적하여 ‘실수’로 불법을 행하다가 자기가 수년 씩 쌓아 온 공적을 모두 잿더미로 만듭니다. 그러니까 <실수>가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 <교통사고>도 ‘순간 실수’로 일어납니다. 50년, 70년씩 더 살 사람이 ‘순간의 실수’로 죽기도 하고, 평생 불구로 고통받고 살기도 합니다. 한국만 해도 <교통사고>로 1년에 8000명 이상이 죽고, 다치거나 불구가 되는 자는 1년에 20000명 이상이 됩니다. 신앙의 삶에서도 그러합니다. 순간의 실수로 <자기>도 ‘신앙의 불구’가 되게 하고, <따르는 자들>까지 ‘신앙의 불구’가 되게 합니다.  산을 좋아하여 등산을 하다가 실수로 순간 발을 잘못 디뎌서 떨어져 죽거나, 전신 마비가 되어 식물인간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를 중심하고 모르고 실수로 행하다가는 이같이 됩니다.  사진을 더 잘 찍으려고 뒤로 더 가다가 절벽으로 굴러떨어져 죽기도 합니다. 실제로 어떤 나라의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관광을 가서 절벽에서 사진을 찍는데, 뒤로 몇 걸음 더 가다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매일 실수하여 사고를 당하고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신앙의 삶 속에서도 이런 자들이 많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실수’가 많습니다. <생각 실수>를 하여 그릇되게 행하고, <행동 실수>를 하여 그릇되게 행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 신앙의 상처’가 많이 생깁니다.  사람들은 왜 그렇게 ‘실수’를 많이 할까요? <자기 무지>와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실수를 안 하려면 ‘신’이 돼야 합니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신’이 되냐고요? 절대 ‘전능하신 하나님, 성령님, 성자 중심’ 하면 됩니다.  스스로는 잘한다고 하며 했지만, 그로 인해 ‘실수’도 많고 ‘오해’도 많습니다. 실상은 그것이 아닌 것이 많습니다. <자기 무지>로 ‘실수’하고,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실수’합니다.  형제를 판단하는 것도 그렇죠? <자기 무지,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형제’를 잘못 판단하여 형제에게 큰 상처를 주고 자기도 힘들어집니다. 자기가 모르고 자기가 잘못 생각하니, 실수로 잘못 판단한 것입니다.  해마다 ‘이성의 실수’도 너무 많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그동안 자기가 쌓아 온 공적’을 무너뜨립니다. 정말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자꾸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자기 혼자서 판단하면 ‘실수의 길’로 갑니다. 힘들수록 더 배우고 고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도 “정신 차려!” 하며 교육하고, 자기는 ‘자기 차원의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니, 자꾸 주께 배우고 고쳐야 됩니다.  대개 ‘자기 뇌와 생각 안의 그릇된 사고’로 실수하게 됩니다. 고로 실수하지 않으려면 ‘그릇된 사고’를 빼내야 됩니다. 안 빼내면, 수시로 ‘그릇된 사고’를 하여 그로 인해 교통사고를 내듯 실수하여 사고를 칩니다.  <성삼위와 일체 되지 않고 주와 일체 되지 않은 자>는 계속 ‘그릇된 사고’를 합니다. 그 사고를 안 빼내면 그 그릇된 사고로 인해 ‘병든 신앙’을 하게 됩니다. 못 고치면, 그로 인해 ‘고통’이 오고 ‘죽음’까지 오게 됩니다.  저마다 ‘중심을 잃고 핵을 잃는 실수’를 하면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큰 사고가 나고 죽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시간>도 실수하지 않고 제대로 써야 됩니다. <시간>은 1초도 멈추지 않고 지나갑니다. <시간>은 딱 정해져 있습니다. 고로 ‘시간의 착오’가 있으면, 그 날은 만사가 깨집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지구>를 멈춰 <시간>을 조종할 수 없으니, 네가 뛰고 달리면서 시간을 조종해라. 먼저 할 일 먼저다. 순서대로다.” 하셨습니다.  <시간>을 ‘제때’ 못 쓰면, 열 번을 해도 그릇되게 잘못 행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도 보세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시험 때 시간을 제대로 못 쓰고 실수하면 시험을 망칩니다. 아무리 준비된 취업 준비생이라도 면접 시간을 착오하고 실수하면 실패합니다. 아무리 요리를 잘하는 주부라도 요리 시간을 착오하고 실수하면 요리를 실패합니다. 이와 같이 삶에서도, 신앙에서도 <시간의 착오, 시간의 실수>를 하면 실패하고 망합니다. 고로 ‘시간 실수, 시간 착오’를 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아무리 모든 것을 투자하여 열심히 했어도 실수하면 제대로 안 됩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실수 없이 해야만 제대로 됩니다.  <구원자>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사명’이 ‘구원의 사명’이라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제시간에 맞춰서 실수 없이 해야 제대로 됩니다. 선생도 ‘제시간’에 맞춰서 안 하니, 열 번을 해도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열심을 내되, 시간의 착오 없이 ‘제시간’에 맞춰서 하기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인간은 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하여 제대로 못 해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 저마다 ‘큰 성공’은 아니어도 ‘자기 성공’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로 제대로 못 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선생도 살면서, ‘실수 없이 제대로 한 날’만 제대로 됐습니다. 작은 일도, 큰일도 실수 없이 제대로 해야 제대로 됩니다. 지구 세상 어느 누구도 실수 없이 제대로 해야 제대로 됩니다. 실수하여 제대로 못 하면 제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인생도, 일도, 신앙도, 육적인 것도 하나님 안에서 성공하려면, ‘실수하지 않고 제대로 행하기.’입니다.  실수하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렇게 수고하고도 곤고하고 수고가 헛되게 됩니다.  연못의 물을 뺄 때는 ‘바가지’로 퍼내지 않고 ‘수문’을 열어 놓듯이, 제대로 하면 쉽습니다. 연못의 물을 ‘바가지’로 퍼내 보세요. 얼마나 어렵겠어요? ‘수문’을 열어 제대로 하면 쉽지요? 이와 같이 <신앙의 일>도 제대로 안 하면 힘들고, 제대로 하면 쉽습니다.  때가 오면 자동적으로 될 일인데 <인력>으로 ‘실수’하면서 하니, 지치고 쓰러지는 것입니다.  <무지>는 인생들 모두에게 매일 ‘고통’을 줍니다.  <필요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안 해도 되는 일>인데 ‘실수’로 고생하면서 합니다.  한번은 선생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인데 지나치게 계속했습니다. 그 일은 ‘바위를 캐내서 길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보시고 나를 깨닫게 하시기를 “그렇게까지 힘들게 할 필요가 있느냐. 실수로 선을 넘어서 하는 일이다. 아예 안 하는 것이 더 이상적이다. 기도하여 방법을 달리해라.” 하셨습니다. 다시 확인하니, 옆의 흙만 파내면 길이 됐습니다. 고로 즉시 하던 일을 멈추게 하고 다른 방법으로 했습니다. <바위를 캐내서 길을 내는 일>은 ‘실수로 하는 일, 필요 없는 일’이었고, <옆의 흙을 파내서 길을 내는 일>은 ‘제대로 하는 일, 꼭 해야 될 일’이었습니다.  어떤 지역의 성전을 사려는데 ‘큰 성전’이었습니다. 재정이 부족했지만 무리하게 진행하려 했습니다. 지역의 온 교회들이 총동원하여 같이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즉시 중지시켰습니다.  모르니, 혼자서 산의 흙을 파서 옮깁니다. 때가 되면 산을 이용해서 월명동같이 걸작을 만들 수 있는데 모르니까 그리 고생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안 하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실수>는 ‘실족하게 하는 행실’입니다.  주와 일체 되어서 하면 그리 힘들지도 않고 몸부림치지도 않습니다. 주와 일체 되지 않으니, 자기중심으로 돌아갑니다. 고로 그리도 몸부림치며 고생합니다. 주와 일체 되어서 하면, 힘든 일이라도 능력을 받아서 능히 행합니다. 맞지요? 여러분 모두 다 경험했을 것입니다.  선생도 <많은 일>이 있어도 첫째, 실수 없이 제대로 하고 둘째, 필요 없는 일을 안 하고 셋째, 먼저 할 일을 먼저 하며 순서 있게 할 때는 쉬웠습니다.  실수 없이 제대로 하기. 필요 없는 일 안 하기. 순서대로 하기입니다. 이것이 인생도, 일도, 신앙도 ‘성공하는 비법’입니다.  실수가 없으려면, 꼭 ‘확인’입니다. <확인>이 ‘신’입니다. 꼭 확인하여 ‘할 일’인지 파악하고, 실수 없이 제대로 행하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제 하나씩 가르쳐 주면서 말씀하겠습니다.  <하지 말아야 할 일, 필요 없는 일>인데 충성이나 하는 듯 열심히 하면, 그로 인해 ‘전체’가 힘들게 됩니다.  <할 일>이라도 너무 무리하게 하면, 힘듭니다. 적당량을 하면서 꾸준히 하기입니다.  실수로 선을 넘어서 하면, 아무리 해도 해결이 안 됩니다.  <할 일>이라도 무리하게 선을 넘지 말고, 적당하게 합당하게 하기입니다. 무리하게 하다가 지치면, <할 일>이 오히려 ‘지옥’이 됩니다.  누구나 <자기 할 일>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모두 ‘몇 가지씩’은 <자기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일’에 빠지면 ‘다른 것’은 못 합니다. 선생도 하루에 적어도 ‘네 가지 일’은 절대 꼭 해야 됩니다. 선생이 여기 있으니, 꼭 이 ‘네 가지 일’을 멈추면 안 됩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너무 바쁘니, ‘기도 시간’을 미뤘습니다. 그러면 열 번을 해도 일이 더 밀리고 안 됐습니다. 실수한 것입니다. 실수하여 제대로 못 하고, <꼭 할 것>을 제시간에 못 하니 열 번을 해도 안 되고 더 힘들고 고생하고 어려웠습니다.  <기도>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기도 시간>인데 바쁘다고 ‘다른 일’과 바꿔서 하면, 그 일이 더 무겁고 힘들어집니다. <일>은 ‘대상’이며, <자기>는 ‘주체’입니다. <일>이 ‘주체’가 되고 <자기>가 ‘대상’이 되면 일에 끌려다니게 되고 지쳐 쓰러지게 됩니다. <기도>는 ‘누구’를 위해서 합니까?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일에 끌려다니지 말고, 일과 같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꼭 ‘그 일’을 다 못 하더라도 <기도 시간>에 기도하고서 하면, ‘하는 일’이 더 잘됩니다. <절대적인 것>은 꼭 순서 있게 해야 됩니다.  바쁘다고 <주일예배, 수요예배>에 상습적으로 빠지고, <새벽기도>를 안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순서를 바꿔서 다른 것 먼저 하면, 절대 안 됩니다.  한번은 선생이 일이 많이 밀려서 속 시원하게 다 해 버리려고, 철야를 하면서 <기도>도 미루고 밀어붙였습니다. 실수한 것입니다. 실수하여 제대로 못 하니, 열 번을 해도 제대로 안 됐습니다.  그 후에는 아무리 일이 밀렸어도 <기도 시간>이 되면 순서를 바꾸지 않고, 절대 ‘기도 먼저’ 하고 ‘다른 일들은 늦게’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했는지 다 했습니다. 연구해 보니, ‘뇌 차원, 생각 차원’이 높아져서 길게 할 말을 핵심만 짧게 하여 더 확실히 전달하고, 둘러서 할 일을 질러서 했기에 모두 한 것입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실수 없이 제때 하는 그 시간은 <신의 시간>이라서 - 연속해서 ‘표적’이 일어납니다.  모든 일은 ‘시간의 실수’를 하지 않고, 제시간에 순서대로 하기입니다. <새벽 기도 시간>은 ‘하루에 한 번’입니다. <기도> 먼저 제시간에 하고, <나머지 하루의 일들>을 순서대로 하기입니다.  <먼저 할 일>을 ‘먼저’ 해야 공격당하지 않고 공격하면서 행합니다. - 고로 ‘승리’합니다. 또 편하게 하려고 하지만 말고, 실수 없이 제대로 해야 됩니다. - 그래야 ‘제대로’ 됩니다.  그렇다고 <기도>만 하면서 하루를 보내면 안 됩니다. 선생도 한 번에 기도할 때 3~4시간 동안 무리하게 하니, 마음과 생각은 기쁘고 말씀을 많이 쓰니 좋았지만, <기도하는 데> 시간을 다 써서 <생명들을 관리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기도만 해도 안 됩니다. 생활 가운데 ‘골고루’ 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하나님과 성령님의 말씀을 전해 주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 <인생을 사는 기술>은 참 어렵다. 가르쳐 주니, 그대로 행해라. 잘되고 형통한다.  <말씀>은 마치 농부에게 ‘농사에 필요한 기구’를 준 격이다. 줬는데 안 쓰면, 못 하고 또 당한다. <말씀의 연장>을 써라. 줬으니, <쓰는 것>은 ‘자기 책임’이다.  <자기 무지, 자기중심적 생각, 그릇된 사고>로 행하지 말아라. 그러다가 실수한다. <나 여호와의 길>은 ‘한 길’이다. <여호와의 방법>, ‘그 한 길’이다.  행해라! 이것은 ‘얻기 위해 거치는 고통’이다. 얻으면 ‘기쁨’이다. 너 혼자 해서는 안 된다. 나 여호와, 나 성령 혼자 해도 안 된다. - 같이 하자!  실수 없이 행하는 만큼 잘된다.  <핵심지>에서 일을 잘해야 <결과지>에서 일의 양이 적어진다.  <핵심지>에서 ‘할 때’ 해야 된다. 안 그러면 <결과지>에서 일의 양이 많아진다. ▸ 이 말씀에 대해 잠깐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핵심지>인 선생이 너무 바쁘다고 일을 덜 해서 보내니, <결과지>인 조은이의 일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그것이 몇 달씩 반복되니, 조은이는 일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해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이 섭리인 모두 그러합니다. 이에 하나님도 성령님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 일을 잘못하면, 일이 더 많아진다.  <일에 지친 자들>은 ‘일에 대한 교육’을 들어라. 배우고 하면 쉽게 하고, 더 얻는다.  시대 구원자가 ‘십자가의 길’을 다 가면, 하루에 절대적으로 꼭 해야 하는 ‘네 가지 일’을 안 해도 된다. 그때는 그가 ‘말’로 하기 때문이다.  이 시대 십자가는 ‘생활의 십자가, 정신적 심정의 십자가’다.  <육신을 가진 자>가 ‘육의 할 일’을 안 하고 나 여호와에게, 성령에게 해 달라고 하면 되겠느냐. <육의 것>은 ‘육’이 하면 쉽고, <영의 것>은 ‘영’이 하면 쉽다. 나 여호와도 성령도 ‘이 땅에서 할 일을 할 때’는 항상 ‘사람의 육신’을 쓰고 시켜서 행한다. 너희는 ‘육’이 있으니, 너희가 ‘나의 육’이 되어 해라. 같이 하자! 내가 너의 육을 쓰고 할 테니, 너도 하자.  자기 자녀, 신앙의 자녀를 잊으면 <잊어버리고 있는 시간> 동안 ‘그 생명’은 죽는다.  정신 안 차리고 확인 안 하고 하다가 실수로 문제가 생겨서 번져 가고 있는데도 ‘지도자’는 모르고 있다. 왜? 의식을 안 하고 있고, 잊고 있기 때문이다.  의식을 안 하면 눈으로 봐도 모르고, 실수하며 가고 있어도 모른다. 고로 지도자는 늘 살펴라. ◎ 마지막 말씀입니다.  <자기가 그릇 인식한 것>인데 실수로 ‘온전한 것’으로 생각하니, <정말 온전한 것>을 듣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릇 인식하고 있으면서 온전한 것으로 생각하니 길을 떠난 자는 계속 ‘험한 길’로 가게 되고, 넘어지고 넘어져야 그제야 ‘온전한 길’을 찾아 나오게 됩니다. 혹은, 계속 자기 생각을 주장하며 ‘고통 길’로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처해 탄식합니다. <작은 일>을 실수하다 보면, 결국 <큰일>도 실수하게 됩니다. <실수>는 각종 사고를 일으키고, 마음에도 몸에도 큰 상처를 주고, 죽음까지 초래합니다. 선생도 하다 보면,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으로 말씀합니다. 모두 오늘 말씀을 듣고 고치자! 실수하지 말자! * 말씀 후 뜨겁게 마무리기도 후, 봉헌기도 하기 전, 교역자가 단상에서 내려가기 전에 광고할 부분 ◎ <실수>에 대한 말씀이 더 있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은 교역자들이 오늘 말씀을 토대로 은혜 집회를 하고, 다음 주에 한 번 더 <실수>에 대한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 다음 주에 한국과 아시아 몇 나라들은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을 맞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들었으니 모두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다가 실수하지 말고, 오직 성삼위와 주와 일체 되어 ‘설 명절’ 잘 보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