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6.02.10 (수)
160210 수요말씀
- 선포일
- 2016.02.10 (수)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2장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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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0일 수요말씀>
하나님은 ‘질 좋은 자’를 찾으신다
본 문 마태복음 12장 35절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성격과 성품, 생각’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은 질 좋은 자를 찾으신다.’입니다.
<말씀 시작>
사람마다 <성격>이 다 다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생각>도 다 다릅니다.
<자기 성격>이 자기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또 <자기 생각>이 자기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 그렇다면, <성격과 생각>을 쪼개서 이야기해 볼까요?
<성격>은 ‘성품’이라고도 하지요?
<성격, 성품>은 ‘마음의 질’을 말합니다.
<땅>도 <밭>도 각각 ‘질’이 다릅니다.
기름지기도 하고, 황폐하거나 메마르기도 합니다.
이것이 ‘땅의 질’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성격>, 곧 ‘마음의 질’도
거칠기도 하고, 온순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는 등 사람마다 각각입니다.
<땅의 질>과 같이 <마음의 질>이 있는데,
이것이 곧 ‘성격, 성품’입니다.
<성격, 성품>은 ‘체질’에서 오고,
<생각>은 ‘뇌’에서 옵니다.
<성격, 성품>은 유전자와 연관되어 타고나고,
<생각>은 자신의 노력과 수고로 좌우됩니다.
◉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성격과 성품>은
처음에는 ‘부모의 유전자’로 인해 100% 영향을 받습니다.
육체이니 그러합니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어 생명이 태어나는데,
정자와 난자는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니라 <부모>의 것입니다.
고로 ‘부모의 유전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점점 배우고 성장하고 행하면서
자기를 개발하고 성격도 성품도 좋게 변화시키게 됩니다.
<생각>은 ‘자기’가 태어나게 합니다.
<생각>도 ‘자기 혼자’ 하기도 하지만,
상대적인 영향을 받아서 ‘자기 생각’이 형성됩니다.
마치 정자와 난자가 하나 되듯,
<자기 생각>과 <상대의 생각>이 하나 되어 형성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 생각과 하나 되어 ‘생각’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땅의 사람들>과 하나 되어 ‘생각’을 만듭니다.
물건도 보세요. 만드는 대로 ‘모양과 형체’가 형성됩니다.
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면 ‘그릇 모양’이 되고,
나무를 가지고 ‘책상’을 만들면 ‘책상 모양’이 됩니다.
모든 만물도, 물건도 만드는 대로 ‘모양과 형체’가 형성됩니다.
결국 <타고난 성격과 성품>도, <체질>도, <생각>도
어떤 영향을 받고 만드느냐에 따라서 형성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성격과 성품>, 그리고 <생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의 질, 생각의 질>에 따라서 ‘삶’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성품과 생각>을 보시고, 사람을 쓰십니다.
<거칠고 메마르고 강퍅한 성품과 생각을 가진 자>는
의로운 데, 좋은 데, 생명을 살리는 데 쓸 수가 없습니다.
<거칠고 메마른 땅>에는 ‘씨’를 뿌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고로 <자기 성격과 성품>을 좋게 의롭게 만들고,
<자기 생각>을 최고로 좋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역사하셨을 때> 잘 들어가고,
<시대 말씀이 들어갔을 때> 잘 받아들이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의롭게 가치 있게 쓰실 수 있습니다.
섭리사를 나간 자들을 보면,
결국 <자기 성격과 성품과 생각> 때문에 나간 것입니다.
신앙을 하다 보면 누구나 의심도 하게 되고,
오해도 하게 되고, 억울함도 당하게 되고, 흔들리기도 하고,
형제로부터 힘든 일을 당하게 되고,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환난과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렇다고 다 형제를 비난하고, 섭리사와 선생을 악평하면서
섭리사를 나가지는 않습니다.
섭리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오해나 의심, 어려움이나 환난, 억울함이 있을 때
기도하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영적으로 판단하고, 때로는 참고 이해하고,
때로는 주께 호소하고 하나님께 호소하면서
하나하나 이기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섭리사를 나간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자기 성격과 생각>대로 해 버렸습니다.
결국 <자기 성격과 생각>이
<자기>를 ‘생명권’에서 내쫓고 죽인 격입니다.
이 말을 들어 보세요.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오해도, 억울함도, 어려움도 당합니다.
그때마다 누구나 폭력을 행사하고, 사람에게 해를 주고,
분노를 표출하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지는 않습니다.
다 <자기 성격과 생각의 질>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인>은 자기 성격대로 ‘아벨’을 죽였고,
<에서>는 자기 성격대로 ‘야곱’을 죽이려 쫓았고,
<사울>은 자기 성격대로 ‘다윗’에게 수많은 해를 주었습니다.
그런 ‘거칠고 메마른 성격과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님이 쓰실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사랑>이 ‘목적’이니,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사랑하며 살기 위해
<인간의 질>을 보고 확인하십니다.
<인간의 질>은 ‘성격과 성품, 생각’에서 나오게 됩니다.
아무리 겉모습이 아름다워도 ‘질’이 안 좋으면, 사랑하지 못합니다.
농부가 <땅에 좋은 씨를 뿌리는 것>이 ‘땅을 사랑하는 것’인데,
씨를 뿌리기 전에는 먼저 ‘토질’을 봅니다.
<토질>이 ‘씨’와 안 맞으면 씨를 뿌려도 거둘 것이 없으니,
원하는 대로 ‘목적’을 이루지 못합니다.
고로 지혜로운 농부는 <토질>이 ‘씨’와 안 맞으면,
아예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사람도 사랑하기 위해 상대에게 ‘사랑의 씨’를 뿌리기 전에
꼭 <성격과 성품>, 곧 ‘마음의 질, 성질’을 봐야 됩니다.
또 ‘육의 체질, 행실의 질’을 봐야 됩니다.
<성질, 체질, 성품, 성격>이 자기와 안 맞으면
‘사랑의 씨’를 뿌려도 ‘사랑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질>이 멋있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해야 됩니다.
곧 ‘생각의 질, 마음의 질, 체질, 행실의 질’입니다.
<물>도 질이 좋냐, 나쁘냐를 먼저 봅니다.
<물의 질>이 좋아야 먹어도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물감>도 질이 좋냐, 나쁘냐를 봅니다.
<물감의 질>이 좋아야 ‘색’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질’이 좋아야 됩니다.
<털옷>도 아름다우나 ‘질’이 안 좋으면, 털이 자꾸 빠집니다.
그러면 어느새 거죽만 남아서 옷이 흉측하게 됩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고로 ‘질’을 봐야 됩니다.
<옷>이 예쁘고 디자인이 좋은데 ‘질’이 안 좋으면
금방 해지고, 변하고, 물이 빠지고, 눈에 확 띄게 낡아집니다.
고로 보기에도 흉하고, 기분도 나쁩니다.
고로 옷이나 물건을 살 때는 ‘품질’을 보는 것입니다.
사 놓고 ‘질’이 안 좋으면 금방 낡거나 고장 나기 때문입니다.
옷도 물건도 ‘질’이 좋아야 하듯이,
사람도 ‘생각의 질, 성질, 체질, 행실의 질’이 좋아야 됩니다.
고로 <겉>만 보지 말고
<성질, 성품, 성격, 생각의 질>을 봐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를 택할 때도 <겉>만 보고 택하면 사랑에 실패합니다.
<성질, 성품, 성격, 생각의 질>이 좋은 자를 택해야 됩니다.
세상에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질 나쁜 사람>을 택하여 같이 살면,
인생이 정말 아깝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미쳐서 사랑하지만,
알고 보면 ‘질이 안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성질, 마음의 질, 생각의 질이 안 좋은 사람>은 잘 변질됩니다.
마치 ‘질 나쁜 털옷’을 입고 다닐수록
자꾸 털이 빠져 흉하게 되듯이
<마음의 질이 나빠 변질된 자> 역시 그러합니다.
칼도 연장도 ‘쇠의 질’이 좋아야 잘 끊고 잘 자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용하는 사람’도 기뻐서 그 연장을 좋아하고
더 귀히 다루고 가치 있게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인생들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품, 성격, 마음의 질이 좋은 자>가 있는지
그리도 찾으십니다.
<목적>은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육>은 ‘인생 일생’ 동안 사랑하며 살려고 찾으시고,
<영>은 ‘영원히 사랑하며 살려고 찾으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섭리사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섭리사에 ‘백만 명’이 넘게 오고 갔습니다.
그들을 보고 겪으면서 봤습니다.
하나님은 ‘보낸 자’를 통해 ‘시대 말씀’을 주시며,
그 말씀을 행함으로 ‘질’이 좋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질이 좋게 변화된 자들>은 ‘뜻’을 이루는 데 쓰셨습니다.
그러나 변질되어 <질이 안 좋은 자들>은
자기 나쁜 질대로 거기에 맞게 섭리사를 나갔습니다.
저마다 ‘질의 병’을 꼭 고쳐야 됩니다.
생각의 질, 마음의 질, 성질, 체질, 행실의 질 등입니다.
<질 안 좋은 자기 성격, 자기 성품, 자기 생각>으로 인해
<자기>에게도 고통을 주고,
<형제들>에게도 고통을 주고,
<자기 혼>에게도 고통을 주고
<자기 영>에게 영원한 지옥 고통을 주었습니다.
<생각의 질, 성질, 체질, 행실의 질>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아야 됩니다.
<자기 마음, 생각, 성격, 체질>을 만들지 않고 그냥 쓰면,
평생 영원히 기한도 없이
<자기>로 인해 ‘자신’이 고통을 겪게 됩니다.
자기가 ‘질’이 안 좋다면,
밤잠도 안 자 가며 필요 없는 일을 싹 자르고 끊고,
<자기 질>을 좋게 만들어야 됩니다!
기계도 생활용품도 ‘질’을 보고 확인하고 사지요?
누가 똑같은 가격을 주고 ‘질 안 좋은 제품’을 사서 씁니까?
<질 안 좋은 전자제품>은 바로 망가집니다.
<질 안 좋은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매일 <사람의 마음의 질, 생각의 질, 체질, 행실의 질, 성질>을
저울에 달아 보고 확인하십니다.
그리고 ‘질이 좋은가, 안 좋은가’ 자세히 보고 대하시고,
질에 따라 축복도 주시고 심판도 하십니다.
<사람의 질>이 좋아야 ‘축복’을 주십니다.
섭리사에서도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은
순간 꽃피듯 하다가 지고,
기어이 악평과 악한 말을 하면서 나갑니다.
<질이 좋은 자들>은 인생 죽을 때까지 ‘인꽃’이 피고,
죽은 후에도 ‘영꽃’이 영원히 펴서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질>이 육도 영도 이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질>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질>은 ‘마음 바탕, 생각 바탕, 체질 바탕’입니다.
<월명동 자연성전>에도 ‘수많은 돌들’이 왔다 갔습니다.
아무리 형상이 좋고 크고 멋져도 <질 안 좋은 돌들>,
특히 <석회석>은 스스로 깨져서 죽어 나갔습니다.
<질 좋은 돌들>만 남아지고 쌓아져서
저마다 ‘아름다움과 신비함과 웅장함’을 나타내고 있고,
‘하나님의 멋진 구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뇌의 질, 생각의 질, 마음의 질, 체질>이 좋아야 됩니다.
<자연석>은 ‘돌의 강도와 질, 모양’에 따라서 값이 정해지지요?
<사람>은 ‘몸과 생각의 질, 생각의 형상’에 따라 가치가 좌우되고,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가치가 좌우됩니다.
<나무>도 ‘질이 좋고 품종이 좋은 것’만 살아서 남아 있고,
‘질 나쁜 것들’은 병들어 죽어서 없어졌습니다.
<사람>도 ‘질’이 나쁘면 병이 듭니다.
악의 병, 마음의 병, 육체의 질병이 들어서
병과 싸우느라 기쁨과 보람을 누릴 시간이 없습니다.
고로 몸 전체가 ‘질’이 좋아야 됩니다.
<생각의 질, 마음의 질, 성질, 체질, 행실의 질>입니다.
모두 ‘질’이 좋도록 고치고 만들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질 나쁜 개인>과 <질 나쁜 민족>을 심판하십니다.
<평화롭지 못하고 무력을 행하는 자와 민족>을 심판하십니다.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평화롭게 하지 못하는
<질 나쁜 자들과 민족>은
예전에도 심판하셨고 지금도 심판하고 계십니다.
두렵게 하시고, 정신적 고통과 삶의 고통이 오는 심판을 하십니다.
전능자 하나님께서 질병도 막아 주시고, 경제도 도우시고,
전쟁도 막아 주시며 ‘심판의 뜻’을 돌리셨는데
그 후로 서로 화평하게 하지 못하고 계속 싸우니,
서로의 행위로 인해 두려움과 고통을 받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의 심판’입니다.
<심판>은 다른 말로 하면 ‘청소’입니다.
고로 심판하면, ‘더러움과 악’을 없애니 깨끗해집니다.
<질 안 좋은 자들과 민족>을 심판해야
전 세계가 깨끗해져서 질이 좋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개인에게도, 민족에게도, 각 종교인들에게도 ‘매일’ 있습니다.
질 나쁘면 ‘심판’입니다.
그 심판은 이러합니다.
질이 안 좋아서 스스로 망가지는 심판이며,
질이 안 좋으니 주인이 사용하지 않는 심판이며,
사용하지 않으니 버리고 깨끗하게 하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악하게 사는 연고로
<질이 나쁜 자들과 민족>에게
<그 날>이 지진같이, 홍수같이, 태풍같이 임하게 됩니다.
방 청소를 안 해서 방이 더러우면 ‘방의 질’이 안 좋은 것입니다.
그러면 ‘청소’로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도 <행실>도 <삶>도 더러우면
<질 나쁜 마음·행실·삶>이니,
깨끗하도록 ‘심판’을 받아야 됩니다.
더러운 방을 엄마가 대신 청소하여 깨끗하게 하는 심판을 받기 전에,
자기가 먼저 더러운 것을 청소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손을 대시기 전에,
자기가 먼저 회개하고 고치고 깨끗하게 하기입니다.
<병>은 ‘생각의 질’과 ‘몸의 질’이 나빠질 때 생깁니다.
다 고쳐야 깨끗하게 됩니다.
매일 고치고, 매일 깨끗하게 해야 ‘질’이 좋아집니다.
이와 같이 매일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매일 의롭게 행하면서 매일 깨끗하게 해야 ‘질’이 좋아집니다.
<겉모습>이 아름다운 자라도
<생각과 행실>이 더러우면 ‘질 나쁜 자’가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도 천대받게 되고,
모두 외면하고 싫어합니다.
하나님도 ‘행위’대로 대하십니다.
행위가 더러우면, 그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 심판은
질이 나쁘니 자기 스스로 망가지고 고통받는 심판이며,
질이 나쁘니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심판입니다.
<절대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법을 벗어난 것>이 ‘죄’요,
그런 자를 ‘질 나쁜 자’로 보고 심판하십니다.
<무지>로 인해 ‘질’이 나빠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낸 자’를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가르쳐 줬는데도 안 고치면,
보낸 자는 전능자와 의논하여 성령과 함께 행위대로 심판합니다.
<육이 죽은 자>는 끝나서 기억이 안 나듯,
<영이 사망 지옥에 간 자>는 ‘죽은 격’이 되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기억하지 않고 끝내 버리십니다.
<영을 구원하고 사는 자>만 기억하시고
그 육과 ‘육신 평생’ 기뻐하며 같이 사시고,
그 영과 ‘영원히’ 기뻐하며 같이 사십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
곧 ‘선과 악’을 ‘하늘과 땅’과 같이 대하시고 통치하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질이 나쁘면, <물건>도 안 삽니다. <사람>도 안 씁니다.
<사람의 질>은 ‘생각의 질, 행실의 질, 체질, 성질’을 말합니다.
고로 ‘자신의 질’이 나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의롭게 행함으로 변화되어
새롭게 좋게 만들기입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자기가 질이 나빠도 생명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좋게 변화되면
<육>은 ‘땅’에서 휴거의 삶을 살게 되고,
<영>은 ‘천국 황금성’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자기의 질, 상대의 질>을 연구해야 됩니다.
생각의 질, 마음의 질, 체질, 성질, 행실의 질 등입니다.
<질>을 연구하고 파악하여 ‘매일 좋게 만들기’입니다.
<몸>도 체질이 허약하고 강하지 못하면, 제대로 못 씁니다.
매일 잘 먹고 운동하고 건강하게 살면서 ‘강하게 만들기’입니다.
부모의 유전을 받아서 <약하게 태어난 몸>도, <체질>도
자꾸 노력하면서 만들면, 좋게 변화되어 좋아집니다.
부모의 유전을 받아서 <강하게 태어난 몸>도, <체질>도
계속 관리하지 않으면, 변질되어 약해지고 나빠집니다.
<생각>도 <성품>도 그러합니다.
안 좋게 태어났어도 - 자꾸 고치고 만들면 좋게 변화되고,
좋게 태어났어도 - 방치하면 안 좋게 변질됩니다.
<몸>도, <체질>도, <생각>도, <성품>도
관리하기입니다. 만들기입니다. 그리함으로 좋게 변화되기입니다.
만사의 모든 이치는 똑같습니다.
만사의 모든 이치는 똑같다? -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가령 ‘과일’을 보세요.
1년 내내 그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일은 ‘그 과일의 철 한때’ 먹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도 ‘그 인생 청춘 한때’입니다.
그때 실컷 못 쓰면, 과일이 제철 지나면 못 먹고 끝나듯 끝납니다.
만사의 모든 이치는 동일합니다.
인생, <자기 때>를 알고, <청춘의 한때>를 알고,
그때 실컷 자기를 고치고 쓰면서 온전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말씀 마무리>
◎ 한 가지만 더 핵심적으로 말씀하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자막 준비>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불>은 ‘불’이 조정하면 안 된다.
<불>은 ‘불의 대상, 곧 불을 쓰는 자’가 조종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불>이 무엇입니까? 곧 ‘태양’입니다.
그래서
“<불>은 ‘불’이 조정하면 안 된다.
<불>은 ‘불의 대상, 불을 쓰는 자’가 조종해야 된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태양>이 지구같이 돌고,
<지구>가 태양같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함입니다.
<불>, 곧 <태양>은 누구입니까?
- ‘하나님, 성령님, 성자’이십니다.
<불의 대상, 불을 쓰는 자>가 누구이며, <지구>가 누구입니까?
- ‘우리 인간들’입니다.
곧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가 조정하면서 가까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이 ‘자기 마음과 생각과 행위’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가까이하고 잡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야 본인이 가까이하니 느끼고, 본인이 말하니 느끼고,
본인이 생각하니 느끼고, 본인이 행하니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가까이하고 말씀하시고 사랑해 주셔도
<본인>이 생각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고로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면서
태양을 느끼고 태양의 영향을 받아서 존재하듯이,
<본인>이 <성삼위>를 가까이하고 잡고 살면서
<본인>이 생각하고 행하면서 <성삼위>를 느끼고 사는 것입니다.
◎ 교역자들이 1분 정도 한마디 더 해 주고 말씀 마친다. 꼭 하기!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