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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6.02.14 (일)

160214 주일말씀

선포일
2016.02.14 (일)
성경 본문
마태복음 22장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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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4일 주일말씀> 극이다. 변화다. 뜨겁게 해라 본 문 마태복음 22장 37절 (핵심만 봉독)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2월 둘째 주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몇 가지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미국 순회 만물 계시> ◎ 지금까지 <해외 순회>가 있을 때는 말씀도 생방송으로 전해 주고, 교육 말씀도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따로 듣게 해 줬는데, <말레이시아 순회>와 <미국 순회>는 소식을 전혀 못 들었지요? 해외 순회도 하나님의 역사이니, 오늘은 <미국 순회>에 대해서 몇 가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 오늘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 소개) <당부> ◎ 2007년부터 조은 목사가 선생의 몸이 되어 불철주야 쉬지 못하고 계속 뛰고 있습니다. 특히 예전에는 선생이 말씀을 전하면 됐지만, 지금은 선생이 기록해 놓은 말씀을 조은 목사가 받아서 일일이 다 정리해야 되기에 시간이 세 배, 네 배 이상 들어갑니다. 일주일에 4일 동안 하루 종일 앉아서 말씀을 정리하고, 나머지 3일의 시간을 가지고 목회도 하고, 순회도 하고, 섭리사 행사가 있으면 하고, 면담도 하고, 섭리사를 돌아보기도 하고, 선생도 신경 써야 하니, 사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입니다. 교역자들 교육도 해야 하고, 해외뿐 아니라 한국도 여러 교회와 지역을 돌아봐야 되는데 정말 시간이 여의치 않습니다. 집회하는 자들이 있지만 조은 목사가 움직이는 것은 또 다르니, 꼭 조은 목사가 할 것은 본인이 해야 됩니다. 선생이 나가기 전까지, 조은 목사가 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물론 선생이 나가도, 조은 목사가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그래도 지금 ‘휴거 후 3년 반’의 정말 중요한 때를 보내면서, 모두 차원을 높일 때이니 정말 움직여야 됩니다. 모두 감당할 수 있도록 꼭 기도해 주기 바랍니다. 기도한 자에게 ‘주가 주는 혜택’이 갑니다. ◎ 한국도 해외도 섭리사 전체적인 상황을 선생이 가장 정확하게 보고 받도록 조은 목사에게 더 많이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몸이 하나이니 전체를 다 돌아보면서 살펴보기는 힘듭니다. 먼저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전체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라고 했습니다. 꼭 기도해 주기 바랍니다. ◎ 이제 오늘 말씀을 들어야겠지요? 극이다. 변화다. 뜨겁게 해라. - 라는 주제로 <2월 둘째 주 주일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 오늘은 특히 ‘알고자 하는 자, 깨닫고자 하는 자, 배우려고 하는 자, 하고자 하는 자’를 대상으로 말씀할 것입니다. 1%라도 알고자, 깨닫고자, 하고자 한다면 그 1%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 시작>  이곳에는 인생을 오래 산 어른들도 있고, 이제 자기 인생을 책임지며 살기 시작한 초년 어른들도 있고, 자기 인생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설계하는 대학생들도 있고,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각각 나이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관심사나 취미도 다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한결같이 ‘공통점’이 있습니다. 뭘까요? <시간>입니다. <시간>은 여자에게도, 남자에게도, 어른에게도, 학생에게도, 어린아이에게도, 부유한 자에게도, 가난한 자에게도, 명예가 있는 자에게도, 명예가 없는 자에게도, 세상 스타에게도, 모두 동일하게 주어진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이 <시간>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명예’나 ‘권세’로도 살 수 없습니다.  다시 말하면, ‘모두에게 공통점’은 매일 시간은 가고 인생의 해는 저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방금 전에 ‘해’가 떴더라도 그 해는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점점 저물어 가지요? 이와 같이 아무리 ‘인생의 해’가 방금 뜬 어린아이라도 시간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하루하루 저물어 갑니다. 고로 어리면 어린 대로 인생을 제대로 살아야 되고, 젊으면 젊은 대로 인생을 제대로 살아야 되고, 나이가 들었으면 남은 인생을 더 제대로 살아야 됩니다.  모두 ‘갈 길’이 멉니다. 그리고 ‘할 일’은 많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학교 과목만 해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시험 때만 되면, 공부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 과목만 공부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다 사회에 나가면, 하루 종일 거의 돈 버는 데 시간을 투자합니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 그렇다고 사람이 공부만 하고, 돈만 벌다가 끝나면 되겠습니까? 뭔가 남기고 살아야 됩니다. 학식도 남기고, 재물도 남기고, 명예도 남긴다 하지만, 결국 그런 것들은 어차피 ‘자기’가 죽으면 못 가지고 갑니다. <영원히 ‘자기’에게 남길 것>을 남겨야 됩니다. <자기가 죽어도 가지고 갈 수 있는 것>, <자기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을 남겨야 됩니다. 이왕이면 ‘영원한 최고의 것’을 남겨야 됩니다. 곧 ‘휴거된 자기 영혼’입니다. 또 ‘휴거됨으로 얻는 영원한 황금성 천국’입니다.  여러분은 ‘이것’을 얻고 살고 있습니까? 아직 어린데 ‘이것’을 벌써 남기고 살고 있습니까? 나이가 들었지만 여한이 없도록 ‘이것’을 남겼습니까? 어려도 젊어도 나이가 들었어도 <이것>을 얻고 남겼다면 일단 ‘영원한 축복 보장’을 받은 것이니, 안심입니다. 아직 <이것>을 얻지 못하고 남기지 못했다면, 어리나 젊으나 나이가 들었으나 ‘보장’이 안 되니 불안합니다. 아직 <이것>을 얻지 못하고 남기지 못했다면 주가 챙겨도 ‘보장’이 없고, 사명이 커도 ‘보장’이 없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을 다 배우고 깨달은 사람은 압니다.) 2015, 2016, 2017년은 ‘최고 황금기’입니다. 지구 역사상 최고 황금기이며, 구원역사상 최고 황금기입니다. 어린아이나, 젊은이나, 어른이나 지금 ‘이때’를 맞아서 ‘이때’가 어느 때인지 알고 산다면, 그 누구도 맞지 못한 ‘최고의 때’를 맞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축복’입니다.  사람이 잘생기게 태어나면 좋지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면 좋지요. 머리가 좋게 태어나면 좋지요. 그러나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인지 압니까? 바로 ‘때를 잘 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 2016년은 지구 역사상 딱 한 번뿐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태어나 갓난아기로 이때를 보내는 사람이 있고, 어느 정도 커서 말귀를 알아듣고 행하는 10대로 이때를 보내는 사람이 있고, 깊이 인생을 생각하며 극적으로 행하는 청년으로 이때를 보내는 사람이 있고, 지나온 세월 동안 쭉 주를 따라오다가 중년이 되어 이때를 맞고 보내는 사람이 있고, 인생 말년이 되어 이때를 맞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예 ‘이때’를 못 맞고 죽은 사람도 있고, 아직 태어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가 어느 때인지, 정말 알아야 됩니다. 배워야 됩니다. 알고, 가치를 깨달아야 됩니다. (미국 순회 말씀 항상 잊지 말아라.)  이때를 한마디로 하면, ‘휴거 후 3년 반의 때’입니다. <휴거 기간>은 ‘시대 보낸 자가 살아 있을 때’까지이지만, <휴거 후 3년 반의 기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는 누구에게나 ‘한때’입니다. 해가 떴어도 서서히 지듯, 서서히 이때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 앞장서서 주인과 함께 먹고 마시며 휴거의 삶을 사느냐, - 뒤처져서 힘들게 휴거의 삶을 사느냐가 좌우됩니다. (질문)  모두 ‘갈 길’이 멉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인생의 해>는 저물어 가고 있고, <휴거의 해>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매일 ‘보통으로 하고 끝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지금은 ‘보통으로 할 때’가 아닙니다. <휴거 전 3년 반>이 그리도 중했다면, 이제 <휴거 후 3년 반>이 최고로 중합니다. ▸ <대학 입시 전>이 그리도 중요합니다. 그때 잘해야 ‘합격’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학 입시 후>가 최고 중요합니다. 합격됐어도 ‘졸업’을 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고, 졸업 후에 어떻게 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 <결혼 전>이 그리도 중요합니다. 그때 잘해야 ‘사랑하는 자’를 뺏기지 않고 얻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혼 후>가 그리도 중요합니다. 그때 못 하면 그렇게 사랑하여 얻었어도 결국 헤어지기 때문입니다. ▸ <휴거>도 그러합니다.  지금은 매일 ‘자기 삶에서 기적’이 일어나야 됩니다. 기적이란, 무엇입니까? 곧 ‘자기 위치에서 더 변화되어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못하던 자가 잘하는 것이 기적이고, 안 하던 자가 하는 것이 기적이고, 못 깨닫던 자가 깨닫는 것이 기적이고, 이 차원에 있던 자가 다음 차원으로 가는 것이 기적이고, 이 모습이었던 자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 기적입니다.  여러분은 ‘기적’을 원합니까?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기적은 누가 일으키느냐.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고 나 성령이 일으키느냐. 네가 하기에 따라서 기적이 일어난다. 네가 기적을 일으켜야 하나님도 나 성령도 성자도 주도 그 기적을 가지고 기적을 일으킨다. 너는 매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하셨습니다.  <기적>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기도 기적, 전도 기적, 생각 기적, 행실 기적, 삼위와 주와의 대화 기적, 설교 기적, 강의 기적, 성격 바꾸는 기적, 하나 되는 기적 등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무한하게 해라.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라. 네가 하는 만큼 역사해 주겠다!” 하셨습니다.  <새 역사>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왜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 ‘할 일’이 많습니다. 또 ‘새로운 일’이 주어졌으니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구 역사>는 ‘할 일’이 없어서 가뭄이 들었습니다. 할 일이 많아도 걱정이고, 할 일이 없어도 걱정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 어떤 사람은 ‘할 일이 많아서’ 걱정되어 한숨을 쉬고, 어떤 사람은 ‘할 일을 찾다가 없어서’ 걱정하며 한숨을 쉽니다. 어느 인생이 낫겠습니까?  잘 모르겠다고요?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요? 어떤 사람은 ‘먹을 것이 많아서’ 걱정되어 한숨을 쉬고, 어떤 사람은 ‘먹을 것을 찾다가 없어서’ 걱정하며 한숨을 쉽니다. 어느 인생이 낫겠습니까? <끝>  선생도 하루 종일 일하고도 또 <할 일>이 쌓여 있을 때, 한숨을 푹 쉬게 됩니다. 그때는 힘들지만 철야하면서 다 해 놓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됐다. 다 했다! 이제 좀 쉬자.” 했는데 <할 일>이 또 있으면, 그때 한숨을 쉽니다. 그래서 선생은 ‘천국에나 가야 이 짓을 안 한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또 행하니, 결국 ‘다른 때는 못 받는 깊은 말씀’을 받아서 썼습니다. 그때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래도 <할 일>이 없어 걱정하고 한숨 쉬는 것보다 <할 일> 많아서 한숨 쉬는 것이 낫지 않느냐. 행하는 대로 ‘네’가 얻고 ‘네’가 잘된다.” 하셨습니다.  사람은 ‘목적한 것’을 행하면서 <극>에 처해야 ‘감동과 깨달음’이 오고, ‘극적인 생명의 말씀’이 옵니다. 왜요? <극>은 ‘끝’이기 때문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 샘도 <극>에서 ‘물줄기’에 닿아야 ‘물’이 나옵니다. 100m 달리기를 할 때도 <극>에 가야 ‘결승선’이 나옵니다. <극>은 ‘끝’입니다. 고로 <극>에 처한다는 말은 <끝>까지 한다는 말입니다. 끝까지 하여 ‘극’에 다다르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끝>  말씀을 들을 때도 정신을 집중하고 <극>까지 가야 말씀 전체가 이해되고 깨달아집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정신과 생각을 일도(一到) 하고 <극>까지 가야, 그 일에 대해 다 알게 됩니다. 또한 참고 견뎌야 <극>에 올라가서 더 느끼고 감동되고 더 깨달아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제 ‘극’에 대해서 더 설명해 주면서 말씀하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 <극>에 가면, ‘핵’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극>에는 ‘전체의 길들’이 잘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극’은 무엇일까요? <극>은 ‘끝’이기도 하지만 ‘핵’이기도 합니다. <극>은 ‘수도권, 공항, 역(驛)’입니다. 이 <극>에 ‘전체의 길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끝>  <극>과 <극>이 만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늘의 극>은 ‘하나님, 성령님, 성자’이시고, <땅의 극>은 ‘인간’입니다. 이 극과 극이 만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 <극>은 ‘핵’이면서 ‘끝’이라고 했지요?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 하나님의 구원역사도 ‘극의 역사, 끝 역사’가 있습니다. 곧 <마지막 성약역사>이며, 성약역사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찬란하게 펼쳐져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휴거 역사>입니다. <휴거 역사>는 ‘극의 역사’이며 ‘끝 역사’입니다. <끝>  <극의 역사>는 ‘짜릿짜릿 감동, 충격, 감격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행하지 않는 자>는 극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극의 신비와 기쁨을 제대로 못 느낍니다. 자기가 해야, ‘극의 느낌’을 받아 미칩니다. 남이 해 주면, 느끼기는 해도‘극’은 못 갑니다. <자기가 해서 극에 오른 자>는 ‘금메달을 딴 자’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중요  <극>에 올라야 ‘백두산 천지’도 보여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그것에 대해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휴거 세계>도 구간마다 ‘극에 오른 자’만 느끼고 깨닫고 감동받고 감격합니다.  <사랑의 영적 극의 세계>도 ‘낮은 데’ 있지 않습니다. <샘>은 물이 나와야 ‘샘’입니다. 물이 안 나오면 ‘함정’입니다. 물이 나올 때까지 샘을 파듯, 극에서 ‘삼위와 주와 일체 될 때까지’ 해야 됩니다. <끝>  그렇다면 ‘일체’란 무엇일까요? 돌포도나무에 참포도나무를 접붙여야 ‘참포도’를 엽니다. 그러나 접붙였어도 완전히 일체 되어 한 몸이 돼야 합니다. <돌포도나무에 참포도나무를 접붙여 참포도 열매를 연 것>이 ‘일체 세계’이며, 이것이 ‘극의 세계’입니다. <자기>라는 ‘돌포도나무’에 <주>라는 ‘참포도나무’를 접붙여서 신앙을 시작했어도, 말씀을 배웠어도, 주를 만났어도, 주의 말씀을 행하고 성삼위를 사랑해야 ‘일체’ 되어 <극의 세계>에 오르게 됩니다. 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못 하면, ‘돌포도나무’로 끝나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 <극적인 자>는 ‘극적’으로 행하고 ‘극’에 올라 변화되어 버립니다. <끝>  그렇다면 <최고 극의 차원>은 무엇일까요?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했을 때가 ‘최고 극의 차원’입니다.  <최고 극의 역사>는 ‘휴거 역사’입니다.  <극의 나쁜 생각>이 아닌, <극의 좋은 생각>은 ‘초인’이 되게 하고 ‘신’이 되게 합니다.  좋은 극의 생각을 가지고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극의 차원으로 행하여 <최고 극의 차원인 휴거 700선>을 이루어, <최고 극의 세계인 황금성>을 차지하기를 축원합니다!  그러나! 극의 생각을 가지고 극적으로 뜨겁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두고 ‘극적으로 뜨겁게’ 해 보지 않고, 휴거되어 황금성 천국에 가는 것은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최고 극적으로 뜨겁게 해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뜻과 목적>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최고 극의 역사>는 ‘최고 극으로 뜨겁게 하는 자’를 통해 이루십니다.  극의 생각으로 극적으로 뜨겁게 행하지 않고서는 극의 기쁨도, 극의 감동도, 극의 깨달음도 있을 수 없습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최고 좋은 생각의 극>에 계시고 <최고 좋은 극의 세계>에 계십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가야 ‘그 차원’에 이릅니다.  저마다 <극의 좋은 생각>을 가지고 <매일 극적으로 뜨겁게 행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극에 있는 자>는 ‘극에 있는 것’을 얻습니다. 극의 메달입니다. 극의 면류관입니다.  <극>은 ‘알파, 시작’이며 ‘오메가, 끝’입니다. 계시록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했습니다. <극>과 <극>이다. - 함이며, <극>으로 ‘끝까지’ 행하고 ‘정녕코’ 행한다. - 함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작은 일>이라도 ‘극’으로 해 버릇해야 됩니다. 기도하는 것도, 말씀을 듣는 것도, 설교하는 것도, 강의하는 것도, 증거하는 것도, 전초하는 것도 하나하나 ‘극의 생각을 가지고 극으로 뜨겁게 행하기’입니다. 그러면 <큰 것>도 자신 있게 해집니다.  <행한 자>만 됩니다. 그냥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위치에 선 자>는 다 ‘몸부림치고 행한 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겉만 보고 그냥 얻은 줄 알고, 무지하게 생각하여 서운함을 탑니다.  <행한 자>는 ‘꿀’을 먹으려고 벌에 쏘여 가면서 행하여 얻었고, <행하지 않은 자>는 벌에 쏘이기 싫어서 아예 행치 않아‘꿀’을 못 얻고, 또 어떤 자는 행하긴 했는데 <지혜롭게 행하지 못한 자>로서 벌에 쏘이기만 하고 ‘꿀’은 못 얻었습니다.  <자기가 행하지 않아서 꿀을 얻지 못한 자>는 그저 벌들이 꽃꿀을 채취해서 저장하면 꿀이 되는 줄 압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행하지 않아서 얻지 못한 자>는 남들은 그냥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꿀 만드는 법>을 알듯이, <꿀 인생 만드는 법>을 깨달아야 됩니다. 그냥 대충 살면서 어떻게 얻겠습니까? 극에 처해 살아 봐야 알고, 얻게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 벌들이 꿀의 재료가 되는 ‘꽃꿀’을 채취해 집에 돌아와서 빈 벌집에 ‘꽃꿀’을 저장합니다. 그러면 성장이 덜 되어 나갈 수 없는 벌들이 ‘벌집에 저장된 꽃꿀’을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여, ‘입 안의 침’과 섞이도록 되새김질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꽃꿀’이 발효되어 ‘꿀’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벌들은 ‘날갯짓’으로 꿀의 수분을 증발시켜 적당한 농도로 만듭니다. 꿀이 완성되면, 벌들은 ‘꿀이 저장된 방’에 ‘덮개’를 덮어 밀봉하는데, 이 ‘벌집’을 채취해서 ‘꿀’만 추출한 것이 우리가 먹는 자연 꿀입니다. <끝>  이렇게 <극>에 가야 ‘극적으로 변화’됩니다. 곧 <끝>까지 해야 ‘변화’됩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극의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극적으로 뜨겁게 해야 삶도 변화되고, 휴거의 영으로도 변화됩니다.  변화가 얼마나 위대한지, 기적인지 깨닫기 바랍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중요  <꿀>도 <꽃꿀>을 변화시켜 만듭니다. <꽃꿀>이 <꿀>이 되니 ‘변화’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답습니까?  변화되면 <꽃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꿀>만 남듯, 변화되면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위대한 것>만 남습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변화되면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변화된 새로운 삶, 휴거의 영, 황금성>만 남습니다. <변화>는 정말 위대하고 아름답고 신비합니다. <끝> 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변질되지 말고 변화되어라.” 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도 안 듣고 변질되어, <육>도 사망권으로 가서 죽고 <영>도 사망권에 처해 영원히 죽은 격이 되었습니다.  모두 <시대 생명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극의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극으로 뜨겁게! 칼날같이 강하게 생각하고 행하기를 축원합니다!  <극>에 꽂혀 행하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정신일도, 생각 일도(一到), 사랑 일도(一到) 됐는데 다른 것이 생각나고 보이겠습니까? 하나님 사랑, 성자 사랑, 성령 사랑, 주 사랑도 그러하고, 휴거의 삶도 그러하고, 신앙의 삶도 그러합니다. <극>으로 해야 ‘육계의 육성’을 뚫고 깊이 들어갑니다.  사탄도, 육성도 마치 ‘짐승’ 같아서 담대히 ‘강한 정신과 말씀의 무기’로 치고 대항하면 도망갑니다. 짐승은 지능이 낮아서 놔두면 무작정 덤벼들지만, 무기로 강렬히 대항하면 두려워서 도망칩니다. 사탄도 악한 자들도 그러하고, 자기 육성도, 유혹도 그러합니다.  그런데 사탄은 지능이 낮으니, 도망쳤다가 또 옵니다. 자기 육성도 그러하고, 세상 유혹도 그러합니다. 그러면 다시 또 강렬히 대항하면 됩니다. 강하게 물리치면 도망갔다가, 또 옵니다. 또 대항하면 또 도망칩니다. 그렇게 사탄도 악한 자들도 꺾고 이기고, 자기 육성도, 타인의 유혹도 대항하여 꺾고 이기는 것입니다.  그렇게 자기 마음의 중심을 ‘절대적 말씀’으로 꺾고 다스리면서, 그렇게 ‘육성과 유혹’을 뚫고 깊이 들어가면서 <극의 단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성장하여 ‘육 사랑 차원’을 지나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 ‘정신 사랑, 혼 사랑, 영 사랑’을 하며, 사랑의 신비함을 극으로 느끼게 되고, 그때부터는 삼위께, 주께 받기만 하지 않고 <그가 원하는 일>을 해 주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9>  기도하면서 말씀을 쓰는데, 성령님이 한 장면을 보여 주셨습니다. 영계에서 이 장면을 보고 즉시 그려 봤습니다. 이 장면입니다.  성령님은 이 장면을 보여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어느 때는 - 너 홀로 가라. 그래야 거기에 해당되는 것을 얻는다. 삼위가 같이 가면, 거기 것만 얻는다. 너 홀로 가서 얻을 것을 얻고, 얻고 나서 만나자. - 할 때가 있다.” 하셨습니다. <끝>  혼자 보내셔도 성령님이 가라고 하셨으니, 성령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 <극>에만 ‘극적인 것’이 있습니다. 남극도 북극도 안 가 보고, 지구의 끝까지 갔다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극>에 갔다면, ‘극에만 있는 것’을 내놔야 됩니다. 극의 세계, 극의 역사 <휴거>도 그러합니다. <휴거 극>에 가 봐야 ‘극에 있는 것’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오직 ‘섭리역사’에서만 내놓을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극의 역사>에 왔어도 <극적 차원>에 처해 살지 않는 자는 <극적인 것>을 줘도 쓸 줄도 모르고 귀한 줄도 모릅니다.  <극적인 것>을 느끼지 못해서 못 한다고요? <극>은... ‘뇌와 생각’에서 돌아가니, 육의 눈으로 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생각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극적인 단계로 가야 <극의 역사, 극의 기쁨, 극의 감동>을 느끼고 감격합니다.  <꾸준히 행하는 자, 끝까지 행하는 자>도 ‘극적인 삶을 사는 자’에 해당됩니다. 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극에 처할 때까지, 끝까지, 정녕코 뜨겁게 행하기입니다. 하다가 중도에 그만하면, 마치 생선을 넣고 국을 끓이다 말고 먹는 것과 같아서 비린내가 심하고 속이 매슥거리듯 그렇게 됩니다. <극>은 뜨겁든지 차갑든지 확실합니다! 극에 처해 끝까지 확실하게 행하기입니다.  <극>에서 ‘생명의 역사’도 일어납니다.  사탄은 ‘극’이라면 포기하고 갑니다. 왜일까요?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0>  사탄은 ‘극’으로는 못 갑니다. 사탄은 ‘6’수라서 ‘66’ ‘666’까지만 갑니다. 우리는 성삼위, 주와 일체 되어 ‘7, 77, 777’까지 계속 갑니다. 고로 사탄은 ‘극’이라면 포기하고 갑니다. 고로 <극>까지 끝까지 확실하게 뜨겁게 가기 바랍니다. <끝>  물도 ‘극’까지 가야 펄펄 끓습니다. 거기에다 음식 재료를 넣어야 음식이 됩니다. <극적으로 행하는 자>만 느끼고 열나고, 물이 팔팔 끓듯 ‘생각’도 ‘몸’도 감동되어 요동이 일어납니다.  모두 개성대로 행하며 ‘극’에 가기를 축원합니다! <전환> ◎ 한 가지만 더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 뭐든지 ‘하나’는 하기 쉽습니다. ‘두 개’를 하기 어렵습니다. <두 개를 한 자>는 ‘극에 서 있는 영웅’입니다.  그렇다면 ‘두 개’는 무엇일까요? ▸ <육의 것, 영의 것>입니다. <육의 것>도 하고, <영의 것>도 하기입니다. ▸ <자기 것>도 하고, <남의 것>도 해 주기입니다. ▸ <설교 전초>도 잘하고, <본 설교>도 잘하기입니다. ▸ <설교>도 잘하고, <성령의 감동>도 일으키기입니다. ▸ <웅장>하기도 하고, <아기자기>하기도 하기입니다. ▸ 하루 시작인 <기도>도 잘하고, <하루 생활>도 잘하기입니다.  새벽부터 일어나서 기도하면서 <오늘 말씀>을 ‘극’으로 해서 다 썼습니다. 여덟 시간 걸렸습니다. 이제 ‘기도’해야 됩니다. <말씀>도 ‘극’으로 잘 썼으니, 이제 <기도>도 ‘극’으로 잘해야 됩니다. 기도도 극으로 잘하면, ‘두 개’ 다 한 것입니다. 이래서 “두 개 하기가 어렵다. 두 개를 한 자는 극에 서 있는 영웅이다.” 한 것입니다.  지도자도 <자기 혼자>서도 ‘극’으로 다 하고, 그다음에 <따르는 자들도 자기 몸같이 잘하게 해 주기>입니다. 두 개를 다 하면 ‘극에 서 있는 영웅’입니다.  <어떤 것을 발견하기> - 한 개입니다. 그리고 <발견했으면 잘 해결하기> - 한 개입니다.  <작품>도 ‘양면성’을 극으로 갖춰야 걸작입니다. <해, 달, 별>도 ‘양면성’을 극으로 갖춰서 우주와 지상의 ‘대걸작’이 되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1>  <하나님의 대자연성전 월명동>도 두 가지를 극으로 갖췄기에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합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이 시대 사람들>이 만나서 뜻을 이룬 곳입니다. ▸ <돌>과 <나무>가 만났고, <땅>과 <물, 호수>가 만났고, <산>과 <거할 곳>이 만났고, <자연성전>과 <건물 성전>이 만났고, <자연 환경>과 <이 시대 하늘의 신부들>이 만났습니다. <끝>  <세상의 명승지>는 ‘육의 것 하나’만 갖췄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환경>이라도 ‘육적인 것’만 갖춰져 있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빠지면 ‘영의 세계, 영원한 것’이 빠진 것입니다. <영과 혼>이 <육>과 함께 갖춰져 있어야 됩니다.  인생도 <영의 것, 육의 것 두 개를 한 자>는 ‘완성된 자’입니다.  <생각>과 <행실> 두 가지를 다 갖춰야 됩니다. <좋은 생각>과 <인격> 두 가지를 다 갖춰야 됩니다.  갖춰야 ‘변화의 완성’을 이룹니다.  <자기 생각과 행실 일체 시키기>, <성령과 주와 일체 되기>입니다.  두 개를 해야 ‘주체와 대상’이 하나 되어 역사가 일어납니다.  <두 개>를 다 해야 ‘구원’도 ‘휴거’도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 한 개만 한 사람은 ‘쪽문, 미완성 문’과 같고, 두 개 다 한 자는 ‘쌍문, 멋진 문’입니다.  <하나님의 창조 목적, 휴거>는 두 가지를 다 해야 이루어집니다. <육>으로도 삼위를 사랑하고 행하며 변화되기, <영>으로도 삼위를 사랑하고 변화되기 -입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변화>는 위대합니다. <극의 변화>는 위대합니다. 그러나 <변화>는 실오라기만큼이라도 말이나 생각, 행실로 ‘자극’을 줘야 시작됩니다.  바윗덩이도, 작은 돌도 모래 한 알만큼이라도 ‘자극’을 안 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도 동일합니다. 말씀을 들었어도 ‘자극’을 안 주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자극’을 줘야 됩니다. <행하는 것>이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대한 변화, 극의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 <지구>도 ‘중력권의 자극’을 받고 공전과 자전을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위대한 일’을 합니다.  <몸>은 ‘자기 것’이지요? <생각>도 ‘자기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 몸, 자기 생각’이라도 생각과 행위의 자극을 주지 않으면 행하지 않게 됩니다. 고로 ‘변화’도 없습니다.  그러나 <불의>로 자극을 주면 ‘죄’를 짓게 되고, <의>로 자극을 주면 ‘의’를 행하게 되겠지요? <좋은 자극, 의의 자극>으로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 전도 자극, 가르치는 자극을 일으켜 생명을 전도하여 알게 해 주면, 그 사람에게도 ‘자극’이 일어나 ‘생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 <관리>도 ‘자극’입니다. 자꾸 생명을 관리하여 자극시키면, 상대의 마음이 자극되어 조금씩 조금씩 달라집니다.  <자기>가 스스로 ‘자극’을 주어 행하기. <상대>가 못 하니 ‘자극’을 주어 행하기 하기. -입니다.  우리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하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자극’을 받고 더 도우시고 더 행하시고 더 역사를 일으켜 주십니다!  행하는 만큼 절대! 절대! 절대! 달라지니, 희망을 가지고 감사 감격하며 극에 처해 변화를 이루며 뜨겁게 행하기 바랍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