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02.17 (수)
160217 수요말씀
- 선포일
- 2016.02.17 (수)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2장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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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7일 수요말씀>
변화는 위대하다. 극이다. 뜨겁게 해라
본 문 마태복음 22장 37절 (핵심만 봉독)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극이다. 변화다. 뜨겁게 해라.’라는 주제로
‘전체 생방송’으로 뜨겁게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1월 17일 주일말씀과 이번 주 주일말씀을 잊지 말고,
잊어지려 하면 다시 보고 감각을 익히면서
극적으로 변화되며 뜨겁게 하기 바랍니다.
◎ 오늘은 주일말씀에 이어서 말씀하겠습니다.
주제는 ‘변화는 위대하다. 극이다. 뜨겁게 해라.’입니다.
<말씀 시작>
◎ 오늘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먼저 <예배를 안 드리고 말씀을 문서로만 보는 자들>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습관이 되어 말씀을 ‘문서’로 보고 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직급이 있는 자들’이 그러합니다.
핍박이 있어서 교회에 오기 힘든 사람들도
자기 스스로 ‘문서’만 보고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니,
모바일이나 씨티엔 녹화를 보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습관이 되어 말씀을 ‘문서’로 보고 마는 자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뜨끔한 꼴 닥치게 하시니,
이 말씀을 듣고 즉시 교회에서 예배 드리기 바랍니다.
분명 미리 가르쳐 줬습니다.
가르쳐 줬는데도 안 하다가 행한 대로 받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 통해 말씀했으니, 모두 고치고 변화되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 이제 <설교를 들을 때의 자세>와
<설교를 하는 자들>에게 꼭 할 말을 전해 주면서
오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설교를 시작하면, ‘쓰는 데’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쓰면, <기록>은 남는데 <설교 이해>는 잘 못 합니다.
말씀을 더 잘 이해하고 남기기 위해 ‘기록’하는 것이지만,
그러다가 설교를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설교가 나갈 때는 ‘쓰기’보다
잘 듣고 뇌에다 핵을 입력하면서 ‘이해’하기 바랍니다.
예배 후에 <설교 전문>이 ‘문서’로 나가니 문서를 보면 됩니다.
<자기가 쓴 것>은 ‘설교 일부’이지만,
<말씀 문서>는 ‘설교 전체’입니다.
설교 시간에 잘 듣고 이해하면,
나중에 설교 문서를 보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열심히 쓰지만,
써 놓고 거의 80%는 다시 안 봅니다.
그러면서 설교를 들을 때 쓰느라,
내용을 이해도 못 하고 그냥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설교가 시작되면 아예 펜을 놓고,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데 집중하기 바랍니다.
성경을 봐도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그때 ‘이해’를 못 해서
한자리에서 말씀하셨는데도 각각 ‘하는 말’이 달랐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한쪽에서는
“예수님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 하고,
한쪽에서는 “아니다. <말씀의 떡>이다.”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의문만 품고 수수께끼 신앙을 합니다.
말씀을 전해 줄 때 잘 이해하면, 전체를 다 알게 됩니다.
고로 말씀을 전해 줄 때 ‘잘 듣고 이해’하고,
나중에 ‘문서’를 보면 됩니다.
설교를 제대로 들으려면, 꼭 ‘듣는 데 집중’해야 됩니다.
쓰다 보면 ‘쓰는 데’ 신경이 쓰여서
‘듣는 데’ 집중할 때보다 이해를 잘 못 합니다.
여러분이 한 번 시험해 봐요.
선생도 기도하면서 말씀을 받을 때,
먼저 하나님과 성령님이 계시해 주시는 말씀을 다 듣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해한 것의 핵’을 기록합니다.
이것이 ‘잠언 한 개’입니다.
그러니 ‘내용’도 알고 ‘답’도 잘 압니다.
<설교 전체>를 잘 들어야 ‘답’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 들어야 됩니다.
써 가지고 다니면서 읽어도 모릅니다.
일단 ‘전체를 듣고 이해하기’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령님은 <설교할 때> 이해하도록 ‘감동’시키십니다.
그래서 모두 설교를 잘 이해하도록
설교자에게 ‘강약’을 넣어서 잘 설명해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강약’을 잘 조절하면서 설명해야
듣는 사람들이 이해를 잘하고 그들에게 감동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못하는 설교자는
<설교>가 아니라 <낭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약’을 조절해서 설교하라고 하니,
강하게 말할 때 너무 고함을 치는 설교자도 있습니다.
고함을 너무 크게 치면, 괴물 소리가 됩니다.
설교자는 매일 거울을 보고 저마다 연구해야 됩니다.
자기가 설교하고, 자기가 만족할 정도가 돼야 합니다.
설교하고 나면,
청중의 80~90%가 “설교 잘했다!” 해야 됩니다.
<작곡가>가 아무리 ‘멋진 노래’를 만들어 줬어도
<가수>가 ‘강약’을 조절하지 못하고 잘 못 부르면,
작곡가 실망, 청중 실망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리 ‘말씀’을 잘 만들어 내보냈어도
설교자가 ‘강약’을 조절하지 못하고 ‘감동’을 못 주면,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성령님 실망, 선생 실망,
힘들게 정리한 자 실망, 청중 실망입니다.
예전에 기독교 목사들은 금요일이 되면
설교 준비를 위해 기도하려고 산으로 갔습니다.
혹은 집에서 금식하며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본인이 기도하며 설교를 다 쓰고 준비해야 됩니다.
섭리사는 설교를 다 써 주면서
밑줄까지 그어서 강약을 표시해 주는데도
기도도 연구도 안 하고, 준비도 충분히 안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제는 선생이 코치 안 합니다.
여기서 더 할 말도 없습니다.
모두 ‘마지막 목회’라 생각하고 해야 됩니다.
TV에 나오는 사람들도 ‘몇 달씩’ 연습해서 ‘한 번’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1500번’ 연습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선생도 시대 말씀을 전하러 나오기 전에
<말씀 한 건>당 ‘5000번’씩 기도하며 확인하고
만들어서 나왔습니다.
목회자는 설교하고 나면, 설교가 어땠는지 꼭 물어봐야 됩니다.
<설교함>을 만들어 놓고,
교인들의 여론을 들으면서 연구해야 됩니다.
교인들도 ‘목회자의 설교 상태’를 보고,
“좋다. 어떻다.” 해 줘야 됩니다.
직접 말로 하기보다,
<설교함>에다 ‘쪽지’로 핵을 말해 주면 좋습니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말하지 말고,
정말 진심을 담아서 인격적으로 말해 줘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령이 그 몸에 임하면,
그가 말할 때 ‘감동 감화와 불’이 옵니다.
성령님께 ‘간접적인 감동’만 받으면,
성령님도 ‘감동’만 주십니다.
병을 고치고, 말씀의 능력을 행하고, 표적을 행하면
성령도 주도 ‘그’를 쓰고 ‘그 몸’을 통해 행하십니다.
성령을 받아 능력도 행하고, 말씀도 능력으로 전하고,
불의 역사를 강하게 일으키는 자들은
<직급>을 안 따지고 ‘집회’도 허락합니다.
목회자들은 자꾸 배워야 됩니다.
해외는 자주 못 보니, 그리도 간절히 배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목회자들은 ‘배우고자 하는 간절함’이 부족합니다.
자꾸 가르쳐 달라고 해야 가르쳐 줍니다.
자꾸 구해야 해 줍니다.
다른 모임을 자주 하기보다,
<선생에게 배운 자>를 만나서 자꾸 물으면서 배워야 됩니다.
선생은 <영적 파트에서 한 사람>을 제대로 키웠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봐야 됩니다.
모두 조은 부흥강사같이 해야 됩니다.
그래야 교회가 부흥됩니다.
<1년>에 ‘10명, 20명, 30명 선교’는 현상 유지입니다.
<1년>에 ‘50명, 100명, 200명, 300명’씩 부흥돼야
흑자가 되고, 희망이 있고, 시대를 끌고 나가게 됩니다.
올해는 ‘극의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극적’으로 행하며,
각 분야별로 차원을 높여 ‘극의 변화’를 이룰 때입니다.
그런데 ‘생명 역사의 변화’가 너무 안 되고 있습니다.
보통으로 하면, 보통으로 끝납니다.
지금은 극적으로 뜨겁게 해야 됩니다.
방법을 달리해야 됩니다.
변화되어 극적으로 뜨겁게 하여 물 끓듯 해야
고기를 삶고 끓이듯 합니다.
뜨겁지 않으면, 성령이 오셔도 불이 바로 꺼집니다.
극의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극적으로 뜨겁게 해야 됩니다.
<극>은 ‘핵’이며 ‘끝’입니다.
<극>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극>에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마태복음 22장 37절을 보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 했지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것이
- 극으로 뜨겁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정녕코 행하는 극의 근원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뜻하시고 목적하신 것’은
정녕코 행하여 ‘뜻’과 ‘목적’을 이루십니다!
우리도 ‘정녕코’ 행해야 되겠습니다.
곧 ‘극까지, 끝까지’ 행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극>에서 ‘생명의 역사, 휴거의 역사’가
찬란하고 위대하게 일어납니다.
<잠시 쉬었다가>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됩니다.
<변화>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아야 됩니다.
변화되면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변화된 것’만 남아 ‘딴 세상’이 됩니다.
<설교자의 설교>도 변화돼야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서 ‘딴 세상’이 됩니다.
설교뿐만 아니라
올해는 각 분야별로 차원을 높여 극적으로 변화돼야 합니다.
그래야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진 것’만 남아져 딴 세상이 됩니다.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가까이하기 싫습니다.
<변화되지 않은 사람>에게 주의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고로 변화되지 않으면,
즉시 ‘제2의 사람’을 택하여 은밀히 가르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나와서 활동하게 합니다.
때가 돼도 ‘변화’되지 않으면,
떡이 쉬고 과일이 썩듯이 ‘변질’됩니다.
<변하지 않는 뺀질이들>은 대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반응이 없고 변화가 없는 자들>에게 시간 뺏기지 않고,
새로운 다른 사람을 뽑아 기르면 됩니다.
그들에게는 그 전에 썼던 시간의 10분의 2만 써도 잘합니다.
생각 변화, 행실 변화, 생활 변화, 휴거 변화,
삼위일체 대하는 것의 변화, 주를 대하는 것의 변화,
설교 변화, 강의 변화, 말 변화,
소외감과 서운함을 타는 것에서 변화,
부서 변화, 교회 변화, 자기 변화입니다.
<매일 변화>입니다.
변화되려면 ‘자극’을 줘야 됩니다.
<작은 모래 한 알>도 그냥 두면 안 움직입니다.
자극을 줘야 움직입니다.
이 큰 <지구>도 그냥은 안 움직입니다.
중력권의 자극을 받고 공전과 자전을 하며 움직입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모두 ‘말씀의 자극’을 받고 깨닫고 행하여 변화되라고
말씀을 해 주는 것입니다.
모두 말씀을 듣고 ‘자극’을 받아
<말씀의 힘>과 <자기 스스로의 힘>을 합쳐서
극으로 뜨겁게 행하여 극으로 변화되기를 축원합니다!
<전환>
◎ 이제 ‘변화’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해 주고 마치겠습니다.
<변화>는 ‘천국’이고, <변질>은 ‘지옥’입니다.
<변화>는 그렇게도 좋고 희망차고,
<변질>은 그렇게도 나쁘고 실망입니다.
<변화>는 ‘소생하는 것’이고, <변질>은 ‘썩는 것’입니다.
<썩은 것>은 ‘쓰레기장’으로 가듯이,
<썩은 인생들>은 ‘사망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그 <육>이 세상에서 ‘호랑이 소리’를 내지만,
죽은 후에는 그 <영들>이 영의 세상에서 ‘쥐 소리’를 냅니다.
더 이상 변질될 수 없게 변질되어
그 <영혼>이 ‘죄의 대가’로 ‘고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지옥의 불바다가 얼마나 뜨거운지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겪은 자도 다 모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만 아시는데,
하나님도 ‘더 이상 뜨겁게 할 수 없는 뜨거운 온도’입니다.
그곳에는 ‘하나님과 메시아를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의 영혼’과
‘불순종한 사탄들’이 갑니다.
거기서 기한 없이 세세토록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영>은 죽지도 않습니다.
고로 고통을 받아도 죽을 수 없습니다.
<영>은 ‘자살’도 못 합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것도 <영>은 못 죽입니다.
<영의 죽음>은
곧 ‘영원히 죽지 않고 고통받는 것’을 말합니다.
고로 살아 있을 때,
<자기 육>을 가지고 <자기 영>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영 구원>은
자기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생명의 말씀을 듣고 행하고,
하나님이 보낸 주를 믿고 죄를 회개함으로 되는 것입니다.
<영>이 ‘사망권으로 변질’되지 않고,
‘생명권으로 변화’되어 살아야 됩니다.
<지옥>도 영원히 존재하고,
<천국, 하나님의 세계>도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르고
“지옥은 없다. 천국은 없다.” 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쓰레기’가 생기고
그로 인해 ‘쓰레기장’이 생기듯,
<악인과 사탄으로 인해 생긴 지옥>은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계신 천국>,
<구원받고 휴거된 영들이 가는 천국>은 반드시 있습니다.
지옥이 없다고 하는 자들의 생각을
하나님의 공의의 저울에 달아 분석해 보았습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불법으로 살아서
결국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두렵기도 하고 기분도 나쁘니
자기 스스로 안심하며 살고자 <지옥>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은 무지로 뇌가 그렇게 굳어 있으니,
<지옥>이 없다고 믿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인간의 생각’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땅’을 면치 못합니다.
그러니 ‘땅’을 면치 못하고 ‘땅’만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을 면치 못하고 ‘육’만 생각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봐야 됩니다.
그래야 ‘영혼’과 ‘영의 세계’를 알고,
<영원무궁한 맛>으로 살게 됩니다.
사람이 생각을 잘못하면,
‘허무한 맛, 실망의 맛, 걱정 근심의 맛’으로 살아갑니다.
주와 함께해야
‘영원한 기쁨의 맛,
휴거를 중심한 최고의 맛’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허무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으려면,
오직 <삼위일체와 주의 생각>을 가지고 살기 바랍니다.
<자기중심적 생각>은 순간 입에는 달지만,
점점 변질되어 가는 음식의 맛과 같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변화>란, ‘발전’입니다.
<변화시키는 것>은 ‘더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변화되면,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변화되면, 신비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됩니다.
변화되면, <한화 만 원짜리 흙덩이>가
<한화 수백억을 호가하는 청자기, 백자기>가 됩니다.
변화되니, <흙>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도자기>로 변화됐습니다.
이같이 <자기 성격, 생각, 마음, 행실>도
변화되면 ‘옛것’은 없어집니다.
변화되면, ‘수백만 배’나 더 가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육>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여
<영>을 ‘진짜 휴거의 형체’로 변화시켜 놓아야 됩니다.
그러면 ‘옛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영>이 ‘인간의 뇌로는 상상도 못 하는 형체’가 되어
그전보다 ‘수조 배 가치 있는 영’이 됩니다.
그리함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사랑’을 받고,
영원히 ‘자기를 구원한 주의 사랑’을 받고 살게 됩니다.
<흙>과 <모래>가 변화되면
딴 세상으로 만들어 놓으니 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릇>이 되고 <집>이 되고 <빌딩>이 되어
수백 배 가치 있게 쓰여집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모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몸부림쳐 변화돼야 합니다.
<이 시대 최고의 말씀>을 행하여
‘휴거의 육·혼·영’으로 변화시켜야 됩니다.
그리하면 <최고 극의 영의 세계>인 ‘황금성 천국’을 차지하고,
<최고 극의 형체>인 ‘삼위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영원히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최고로 원하시는 형체>는
‘사랑의 대상체, 신부의 형체’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최고로 원하시는 형체>로
자기를 변화시키는 자는
지구상에서 최고로 위대하고 아름답고 신비한 자입니다.
<월명동>도 ‘하나님의 구상’으로 변화시키니,
<옛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딴 세상>이 됐습니다.
지금 ‘옛집’이나 ‘논’이나 ‘밭’이 있습니까?
<옛 모습>은 다 사라졌습니다.
딴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궁궐>이 되었습니다.
<환경>도 ‘하나님의 구상’으로 변화시키듯,
<자기 인생>도 ‘휴거’를 목적하고
‘이 시대 말씀’으로 변화시키기입니다.
그러나 ‘변화시킬 때’가 있습니다.
때 지나면, 몸부림쳐도 ‘조금’밖에 변화되지 않습니다.
지금은 <차원 높여 변화되는 때>라서 행하는 만큼 변화됩니다!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고 ‘위대한 변화’를 낳게 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온전하게 완성시키는 변화’입니다.
변화되다가 중단하면, ‘미완성’으로 끝납니다.
변화되다가 중단하면, ‘완성시킬 자’에게 기회가 넘어갑니다.
고로 ‘온전하게 완성시키는 변화’입니다.
지구가 쉬지 않고 돌듯이, 계절이 쉬지 않고 가듯이
꾸준히 행하여 제때 끝내 변화시키기 -입니다.
악인과 악평자들은 끝장나게 행해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수고’가 헛되게 하시고,
도리어 그 악한 행위대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우리들은 끝장나게 행할수록
모든 수고가 빛이 나고
행위대로 ‘극의 면류관, 극의 메달’을 얻게 됩니다!
고로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놓지 말고
극까지, 끝까지, 결단코, 정녕코, 끝장이 나게 행하여
꼭 ‘완성까지 가는 변화’를 이루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