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새벽말씀2016.04.04 (월)

월 새벽말씀

선포일
2016.04.04 (월)
성경 본문
있다잠26:20

첨부 파일

2016년 4월 4일 새벽말씀(편집본) 할렐루야! 또 새벽이 돌아와 새벽을 맞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리고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을 듣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열심히 하고, 기도도 하고 했는데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도 안 됩 니다. 그래도 안 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뜻이 아닌가?’ 그러는 때가 있습니다. ‘이상하다. 뜻이 아닌가?’ 합니다. 나무를 길러 봐도, 농사를 지어 봐도, 인생생활을 해 봐도 무엇을 하다보면 이상하게 안 되 는 일이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기도도 하고, 정성도 들이고 열심히 했는데. 왜 그럴까? 반드시 거기에는 뭐가 한 가지 빠졌는데, 빠진 것이 있든지, 빠진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때를 따라서 할 일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신앙 생활하는 가운데, 오래 하다보면 신앙 생활이 지겹습니다. 권태증 이 옵니다. 그게 뭡니까? 밥 먹는 것도 권태증이 오는데. 똑같은 밥과 똑같은 음식만 계속 먹으면 아들 딸들이 엄마를 쳐다봅니다. 맨날 똑같은 것만 먹어야 되냐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뭘 먹냐? 무우 먹고, 배추 먹고 김치 먹고 밥 먹고 해야지, 뭘 먹냐? 고기 먹고 그래야지.” 그래도 나중에 체질이 안 받아요. 그렇게 잘 먹어도. 좋은 것을 먹어도. 부잣집 사람들이 잘 먹어도 나중에 가서는 밥맛을 잃어버리고 그럽니다. 그래서 나가서 외식을 합니다. 순수한 저 시골에서 해 주는 밥 같은 것을 바꿔서 먹으면 엄청나게 먹습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변화를 시켜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알겠습니 까? “그렇게 안 하면 존재를 못한다.” 그것은 안 되는 법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절을 따라서 겨울, 봄, 여름, 가을로 확실히 변화를 시킵니다. 하루해를 가지고서도 변화를 시킵니다. 밤하고 낮하고 기온의 변화를 안 주면 안 됩니다. 변화를 시켜버립니다. 계속 낮에 뜨겁듯이 밤도 뜨겁다? 밤이 차갑듯이 낮도 계속 춥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그 순간순간마다 변화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생동을 하게 합니다. 차 갑게 했다가, 뜨겁게 했다가 이렇게 해서 만물도 더욱 생동감 있게 해 줍니다. 하루 가지고도 그렇습니다. 하루 갖고도 이렇게 바꿉니다. 기온을 바꿉니다. 밤 하고, 낮 하 고. 아침 하고, 점심 하고. 그렇게 자주 하는 것도 있습니다. 크게 보면 계절로 크게 나눕니다. 4계절이 있는 계절. 여름만 있어도, 여름철에는 밤을 갖고서 겨울철 같이 보냅니다. 여름만 계속되는 뜨거운 열 대지방도 밤에는 기온을 확 돌립니다. 이런 자연의 세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 잘 보라는 것입니다. 만물도 그렇게 해서 존재를 시키는데, 사람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를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변화를 줘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책을 본다고 해도 계속 성경책만 보십시오. 눈이 안 보이고, 나중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나중에는 지겹습니다. 계속 보면 지겹습니다. 권태증에 사로잡힙니다. ‘아, 끝이 없다.’ 선생님이 많이 그랬습니다. ‘아이, 끝이 없다. 이것을 언제 다 읽지?’ 뭐하러 그렇게 합니까? 성경 한 시간보고서 딱 다른 것 하고 와서 또 보고 그래야지요. 선생님은 한번 하면 그것만 계속 해버리는 성질이 있습니다. 끝끝내 합니다. 나중에 예수님께서 나에게 성경 보는데 계엄령을 내렸습니다. “한 자도 안 틀리게 읽는 것 이, 그것이 성경 읽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독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 자도 안 틀리 게.” 한 자도 안 틀리게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한 자도 안 틀리게요?’ 얼른 빨리 읽으려고 하니까 그렇게 정독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에 ‘안 되겠다.’ 했습니다. 얼른 읽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확 할 때 해 버리면 며칠만 해도 한 열흘 동안 한 폭이 됩니다. 내가 성경을 읽는데 여러 방법으로 읽었습니다. 듬성듬성 읽으려니까 한도 끝도 없이 오랜 시간이 갑니다. 막 몇 달씩 갔습니다. 집중적으로 읽어 버리면 한 1주일이면 읽고 그러는데 요. 많이, 더 읽을 때는 1주일도 안 걸립니다. 며칠밖에 안 걸립니다. 왜냐하면 거의 외운 것을 훑어보니까요. 훑어봐야지 정독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정독을 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방법으로 읽어본 것입니다. 앞에서부터도 읽어보고, 거꾸로도 읽어보고, 각종 각색으로 읽어봤습니다. 선지자들 나오는 데만 읽어보고, 메시아 나오는 데만 읽어보고 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읽으니까 지루함이 없었습니다. 권태증이 없었 습니다. 그리고 성경만 읽지 말고, 다른 책도 읽어보아야 됩니다. 읽어보고 자꾸 비교를 해 봐야 됩 니다. 성경만 읽으면 지루하니까요. 구약만 읽으면 지루합니다. 구약 한번 읽었다가 하루는 신약을 읽고 이렇게 하면서 계속 읽 어보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그것을 연속하면 지겨운 것이다. 지겹고 나중에 가서는 권태증에 사로잡힌다.” 연애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와 내가 백 년을 살자.” 그렇게 했습니다. “너와 내가 같이 지내보니까 너무 좋다. 같이 백년은 살자. 못 살아도 수십 년은 살자.” 그 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극적으로 사랑하고 좋아하고 사랑에 불이 붙어서 사는데도 몇 달 못 가서 그 런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언제 없어졌는지 그런 마음이 없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막 서로 껴안고 서로 좋아하며 사는 것, 거기에 대해서 호기심 갖지 마요. 하나님이 호기심 갖지 말라고 하십니다. “계속 쫓아다녀 봐라. 얼마까지 그렇게 하는가.” 결국 둘 중의 하나가 가다가 버립니다. 왜? 성경에 나왔습니다. “나무가 다하면 재만 남아 있다잠26:20)” 타는 나무가 몇 달, 몇 년씩 탈 것 같습니까? 큰 산이 타는데도 그저 1주일 타면 다 끝나는 데요. 이 엄청난 큰 산이 다 타는데도 그 정도면 됩니다. 그 밀림이 타는데도 타다가 끝나 잖아요. 사랑이 그렇게 오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열렬한 만큼 빨리 타니까 그 기간이 짧습니다. 그냥 꾸준하게 촛불 같이, 호롱불 같은 사랑은 오래 갑니다. 깔짝깔짝 타니까. 열렬한 사람은 바로 타서 끝나 버립니다. 그래서 100년이 너무 멀고, 100년이 영원 같습니 다. “10년도 너무 멀다. 몇 년도 너무 멀다.”는 것입니다. 그래놓고서 “아, 사랑이 무엇인지 모 르겠다.” 합니다. 사랑을 안 배웠으니까 모르지요. 자기가 언제 배웠습니까? 하나님께 배워야지요. “사랑도 그런데, 모든 것도 그러하다.” 이것은 어떤 것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입장이 아니라, 이것은 부정적으로 봐야 온전합니 다. 부정적으로 볼 것은 부정적으로 봐야 됩니다. “사랑도 그러한데, 모든 세계 모든 것이 그러하다.”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 돈 버는 것도 그렇고, 돈을 쓰는 것도 그렇고 다 그렇다.” “돈을 쓰는 것도 지겨워요?” “그럼 지겹지.” 유럽 사람들을 만나 봤습니다. 아버지가 돈 주지, 환경 주지, 집도 주지 그랬는데 지겹다고 다 집어 던지고 이태리로, 독일로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무 행 복하다고 했습니다. 스위스, 덴마크 애들이 그랬습니다. 누가 얘기를 해 줬습니다. “선생님, 쟤들은 스위스 덴마크 등 아주 갑부의 아들딸들인데 자살해서 죽으려다가 살았어 요.” 무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돈도 계속 맨날 써 보고, 맨날 놀기만 하고, 맨날 스키나 타고 그 랬는데 “지겹다. 살 길이 없다. 인생이 편하려고 살고, 행복하려고 사는데 해 볼 것 다 해 봤는데도 희망이 없으니 죽어 버리자.” 그러다가 자기가 ‘안 것 좀 해 보자.’ 하고서 최고 고생하는 데 가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싱글벙글 싱글벙글 너무 좋아서 막 뛰어 다니며 너무 재미있어 한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죽었다고 했습니다. 방법을 달리 하니까 살잖아요. 더 좋은 세계에서 더 나쁜 세계로 변경을 시키니까 산다는 것입니다. 화분의 나무가 더 좋은 데로 못 옮기고 더 나쁜 데다 집어 쳐 넣더라도 옮기면 그 놈이 낫 다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못 삽니다. “세상의 모든 만사가 그러하다. 같은 존재로 계속 하면 죽는다. 방법을 달리하라. 자기 임 무, 사명, 모든 것도 자꾸 변경을 시켜라. 본인이 알지 않느냐?” 그렇지요? 가만히 있으면 제일 편합니다. “네가 제일 편한 장소에, 편한 자세로 앉아라.” 내가 그럽니다. 월명동에서 여러분들에게 그랬지요? “제일 편한 자세로 앉아라.” 하면 양반 다리하고 앉아 있고, 다리 쭉 뻗고 앉아 있습니다. 혹은 두 무릎을 세우고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그래놓고 “그러면 제일 편한 자세로 앉았으니까 그대로 설교 다 들을 때까지 가만히 있는 거야.” “네!” 그랬습니다. 그러나 30분 가면 벌써 다리를 돌리고, 허리를 돌리고, 무릎을 이리하고 저리하고, 자세를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계속 그럽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아무리 편한 자세를 해도 계속 은 못 견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 편한 대로 살아라. 그 대신 계속 그대로 하는 거야.” 하면 대답하지 말라 는 것입니다. 대답하면 큰일 납니다. “불편하게 살지라도 요렇게도 살고, 조렇게도 살고,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살겠습니다.” 그래야 됩니다. 아무리 편하게 살아도 계속 그렇게 하면 존재를 못 합니다. 그것이 이치요, 원리라는 것입 니다. 그것이 부정적인 것 같으나 그것이 바로 진리라는 것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구시대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발견하지 못하면 존재를 못 합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계로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갈이를 해 주듯이 여러분들은 새로운 갈이를 여러분 자신들이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 면 못 견딥니다. 전도만 계속 하는 사람도 똑같습니다. 방법을 달리하면서, 싹싹 방법을 달리하면서 해야 됩 니다. 만약 그것이 “지겹다. 권태증이 일어난다.” 할 때는, 괜찮습니다. 자기가 부정한 것이 아니 라 한계 상황에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른 변경해서 다른 방법으로 하라.” 그러니 구약시대고, 신약시대고 새로운 역사를 하나님이 시작했는데 전환이 안 되면, 분갈 이 안 해 주는 나무와 똑같아서 그 좋은 나무를 버리는 것입니다. 죽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거기다 주어도, 신약말씀을 주어도 그 얘기입니다. 주어도 안 됩니 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껴안아도 안 됩니다. 껴안으면 뭐합니까? 병을 고쳐줘야지요. 병을 고쳐야지요. 사랑 안 해서 죽는 것이 아니니까. 사랑 안 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섭리사 나가는 사람들이 사랑 안 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분갈이를 안 해줘서 죽습니다. 그 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센터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사랑 안 해서 죽는 것도 있고.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들 개인 개인은 하나님께서 어떤 센터의 말씀을 딱 하면 자기 것을 자기가 빨리 알고 ‘아, 나는 이것을 해야 되겠다. 내가 분갈이 때가 됐다.’ 해야 합니 다. 안 하면 죽습니다. 자꾸 죽어 들어갑니다. 힘 발휘를 못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잎사귀가 피고, 그 속잎이 나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빨리 변경하라. 자꾸 자기 위치에서만 꼭 붙잡고 있지 말고 변경하라. 너 죽으면 이제 임무가 없어. 죽은 사람이 무슨 임무가 있어?” 합니다.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을 적어놓았다가 임무를 안 줍니다. “쟤는 끝까지 그런 애야. 안 준다.” 하고 하나님이 안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일하다 너무 지쳐서 계속 쉬어 보라는 것입니다. 계속 쉬니까 힘이 없습니다. ‘이상하다. 힘이 나고 생동적이어야 하는데 왜 그럴까?’ 이제는 일을 해야 쉬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을 해야 됩니다. 집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살던 집일지라도 그렇습니다. 그 집을 힘들고 어렵게 해서 마련했 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해 봤습니다. 옛날에 월명동에 힘들게, 눈물겹게 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계속 토요일마다 청소 하고 닦고 만들고 그랬습니다. 나중에 가서는 그것도 지겹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전도하러 갔다가 몇 달 동안 돌아다니다 보니까, 그 다음에 와보니까 천국 같더라 는 것입니다. 변경을 주니까. 변화를 주니까 새로워졌습니다. 같은 집인데도, 똑같은 집인데 도. 안 살다 다시 살려니까 싹 생기가 돋았습니다. “그렇게 변화를 줘야 한다. 방안에 있을 때 답답하면 바람만 쐬고 와도 싹 생기가 도는데.” “그래서 모두 변화를 받아라. 하나님이 말씀을 선포할 때. 그 때 못 하면 안 된다.” 본인 개인 것은 개인이 아니까. 그래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임무를 주는 것입니다. 안 하면 죽으니까. 죽습니다. 여러분들이 일하다가도 “선생님, 더 이상은 못 하겠어요.” “너, 일 잘하는데.” “아...”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래. 좋다. 그러면 다른 것을 하자. 다른 것을 하도록 하라.” 합니다. 군대에서나 사회에서나 잘하면 계속 그 사람을 씁니다. 여러분들, 쓰여질 때에 방향을 다르게 쓰라는 것입니다. 다른 방향으로, 다르게. 그렇게 해 야 됩니다. 계절이 오면 옷도 갈아입고. 선생님 넥타이도 보십시오. 벌써 봄이 온다니까 새파란 것을 찼잖아요. 봄이 온다니까. 이게 표시입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환경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옷들도 다 다르게 봄옷으 로 돌리고. 그리고 말하는 것도 다 달라집니다. 봄이 오면. 계절은 인생을 뒤바꿔 놓고, 계절은 하나님이 뒤바꿔 놓고! 창조하셨으니까. “이것은 절대적이다. 그러니 새로운 역사가 와야 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 그러십니다. 내가 내 고향 회골에서 일할 때, 20대부터 이야기하셨습니다. “고욤나무도 그늘이 시간 따 라 돌아가는데, 사람의 수준을 높여야 되겠느냐, 안 높여야 되겠느냐? 말하는 것도 높여야 되겠느냐, 안 높여야 되겠느냐? 시대가 2000년이나 되었는데.”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차림도 다르게 하고. 여자들도 그래요. 옷차림을 싹싹 바꾸고, 머리도 싹 바꾸고, 스타일을 다르게 하면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지겹게 보내지 말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준비하고 있어라. 준비하고 예비하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이 거기에 가입해서 해야 천국입니다. “사람이 편하게 살아도 똑같은 삶은 지루한 것이다. 그것은 원리요, 진리요, 그것은 생명력 이 없는 삶이다.” “희망차게 그 날을 위해서 준비하고 예비하라. 예비하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말씀으로 변론해 주시고, 가르쳐 주 심을 감사합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정말로 지겨워서 못 참는 것입니다. 이것을 변동시켜 서 열심히 할 수 있게 축복해 주시고,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게 해 주시옵소서. 성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함께 하시고, 성자 예수님의 사랑하심과 인자하심과 공의로우 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이 이들에게 함께하고 영원할지어다. 아멘. 그럼 여기서 빠이빠이! 안녕! 어둡게 안 사라지고 환하게 사라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