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04.06 (수)
160406 수요말씀(행하는 자는 공격하여 얻는다)
- 선포일
- 2016.04.06 (수)
- 성경 본문
- 갈라디아서 6장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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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06-수요말씀(행하는_자는_공격하여_얻는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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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6일 수요말씀>
행하는 자는 공격하여 얻는다
본 문 갈라디아서 6장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생활>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삼위일체와 주를 믿고 살면서도 ‘생활’해야 하고,
휴거됐어도 ‘생활’을 해야 존재합니다.
<생활>은 정말 중요하고,
<생활>을 ‘성공적으로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휴거 후 생활과 신앙생활>을 잘하고, <휴거의 삶>을 잘 삶으로
더 ‘차원’을 높이고 ‘역사’를 이루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 올해 3.16에 거의 다 <휴거 차원>을 높였고,
<700선 휴거>를 이룬 자들도 정말 많습니다.
<700선 휴거>는 ‘휴거 완성의 단계’로서
- ‘인간으로서 신이 된 단계’이며,
- ‘삼위일체의 진정한 사랑의 대상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올해 엄청난 ‘휴거의 대(大)역사’ 후에
섭리역사가 완전히 꽂히고 온전한 자들도 많이 나왔으니,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가만히 있으면 될 것도 안 됩니다.
다 가꾼 곡식도 거두지 않으면 먹고 즐길 수 없듯이,
휴거됐어도 뜨겁게 행하지 않으면 판이 식어 버리고 얻지 못합니다.
휴거됐으니, 휴거 차원을 더 높였으니,
삼위일체가 우리 편이니, 섭리역사가 완전히 꽂혔으니,
이제 더욱 힘 있게 행하며 전진하며 날아올라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행하는 것’에 대해 더 말씀해 주겠습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선생이 2016년 새해를 맞으면서,
섭리인들을 대표해서 꾼 꿈 이야기를 해 주었지요?
3월 6일 부산 순회 겸 주일말씀으로 해 주었습니다.
기억나지요? ‘횡재하는 꿈’입니다.
그 꿈을 항상 잊지 말고 행해야 올해 또 얻고 횡재하게 됩니다.
◎ 모두 기억하도록, 간단히 ‘새해 꿈 이야기’를 해 줄게요.
꿈에 한 남자가 ‘돌’을 캐고 있기에
선생이 가까이 가서 보니, <괴석>이었습니다.
그 돌이 마음에 들어 사려고 했더니, 안 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생각보다 별로였습니다.
그래도 사고 싶었는데 안 판다고 하니 실망하고 돌아 나왔습니다.
그때 <돌 하나>가 엎어진 채로
‘그 집 담장 위’에 얹어져 있었습니다.
그 돌을 파냐고 물으니,
주인은 “그냥 가져가쇼!” 하며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 돌은 <형상석>으로
내가 처음에 원했던 돌보다 ‘훨씬 더 좋은 돌’이었습니다.
모양은 ‘호랑이 형상’이었고,
<몸체와 머리 부분>은 ‘속이 빈 좋은 돌’이었고,
<꼬리 부분>은 ‘꼬리 모양으로 생긴 돌’을 가져다
그 돌 옆에 연결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돌을 바로 들고 나왔습니다.
처음에 사려고 했던 돌보다 더 좋고 마음에 들어서 기뻤습니다.
이 꿈대로 <처음에 자기가 원하던 것>이 안 돼도
실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꿈이었습니다.
끝까지 행하면, ‘더 좋은 것’을 얻게 됩니다.
선생이 내 신앙 철학대로
꿈에서도 끝까지 행하니, ‘내 수고’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꿈에서도 끝까지 행하니, ‘더 좋은 것’을 얻었습니다!
생시에도 꿈에도 ‘내가 찾는 것’은
끝까지 행하여 기어이! 꼭! 얻고야 맙니다!
이 말씀을 전하면서, 여러분에게 말씀했습니다.
<토끼>를 쫓다가 <사슴>을 만나서 잡아오고,
<새>를 쫓다가 <꿩>을 만나서 잡아온다. 고로 행해라!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안 돼도 실망하지 말아라. 행해라!
<더 좋은 것>으로 주신다!
◎ 이 말씀, 모두 기억하지요? 잊지 말아요!
<하늘의 운을 탄 자>도 ‘행해야’ 얻습니다!
행했는데 안 됐고요? 그래도 손해는 없습니다. 왜요?
행하면서 ‘훈련’이 되었으니, 그만큼 ‘유능’해집니다.
고로 다음에는 보다 쉽게 행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얻게 됩니다.
저마다 행하지 않으면 ‘생활의 공격’을 당하고,
행하면 ‘생활의 공격자’가 되어 삽니다. (이 말도 잊지 말아요!)
매일 행하기를 축원합니다!
행해야 ‘사탄’을 공격하여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냥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생활 속에도 ‘생활의 적들’이 있습니다.
역시 행함으로 공격하여 해결하게 됩니다.
<생활의 적들>이 늙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우리도 늙어서 못 합니다.
행하기 바랍니다!
휴거됐으니, 휴거 차원을 높였으니 ‘그 표’를
<행함>으로 내기 바랍니다.
<행하는 것>이 ‘공격하는 것’입니다.
행하면 공격하고, 행하지 않으면 공격당합니다.
휴거됐어도, 휴거 차원을 높였어도
삼위일체가 도우셔도, 주가 살아 있어도
행해야 문제가 해결되고, 행해야 유능해지고, 행해야 얻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행하니, 얻고 누립니다.
행하지 않으면, 못 얻고 못 누립니다.
행하지 않으면, 얻어도 고생을 얻고 고통을 얻습니다.
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행하면 거의 됩니다.
그러나 행하되, ‘불의’는 행하지 말아야 됩니다.
<꼭 행할 것>을 두고 행하면, 행하는 만큼 됩니다.
그러나 <불의>는 행한 만큼 대가를 받게 됩니다.
행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만큼 행해 보지 않아서 어려워하는 것입니다.
가령 ‘편지 쓰기 어렵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꾸 안 써 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편지 쓰기 쉽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매일, 혹은 주기적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매일, 혹은 주기적으로 편지를 써 봤으니 쓸 때마다 잘 써져서
순간 5분, 10분이면 할 말을 다 넣고 편지를 씁니다.
편지를 안 쓰다가 쓰면 잘 안 써지니,
몇 시간씩 쓰고 밤새워 쓰게 됩니다.
고로 뭐든지 행해 버릇해야 됩니다.
단! ‘불의’는 아닙니다.
<불의>는 자꾸 안 행해 버릇해야 됩니다.
행해도 ‘법칙’을 벗어나서 행하면, 수고가 헛되게 됩니다.
전도도, 강의도, 설교도, 관리도, 기도도
어떤 사람은 ‘잘된다.’ 하고,
어떤 사람은 ‘어렵다.’ 합니다. - 어떤 차이일까요?
전도, 강의, 설교, 관리, 기도가 정말 어려우니,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못 하는 사람>이 따로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단, 얼마나 해 봤느냐, 얼마나 안 해 봤느냐의 차이입니다.
<자꾸 해 버릇하고 매일 하는 사람>은 ‘잘된다.’ 합니다.
<안 해 본 사람>이 ‘어렵다.’ 합니다.
전도도, 강의도, 설교도, 관리도, 기도도 매일 해야!
기술자가 되고, 프로가 되고, 능력의 달인이 됩니다.
매일 행하는 자가 ‘영웅’이고,
매일 행하는 자가 ‘능력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누구든지 부지런해서 얻고, 게을러서 잃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 일>에는 ‘자기가 주인’이니, 행해라.
<네 일>인데 ‘네’가 안 하면 누가 하냐.
<네>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행하고 얻는다.” 하셨습니다.
원해서 행하게 되고, 필요해서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행해야 ‘필요한 곳’이 생기고
행해야 ‘행한 것’이 쓰여집니다.
<행할 것>을 행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어때요?
편하게 삽니다!
그러나 그것은 ‘연속 편한 것’이 아닙니다.
연속 행하지 않음으로 연속 편하면,
결국 ‘살 자료’가 떨어져서 ‘고통의 세계’로 넘어갑니다.
<가만히 있어서 편한 것>은 ‘잠시뿐’이고, 결국은 고통입니다.
<일해서 편한 것>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결국은 편합니다.
희망도, 기쁨도, 사랑도
움직이고 행할 때 느끼고 보이고 얻어집니다!
선생도 행하지 않으니, 홀로 있었습니다.
차도, 비행기도 움직이며 행하니 사람들이 몰려와서 타고 기뻐했고,
행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모두 떠났습니다.
행한 것만 - 보입니다.
행하지 않으면 - 안 보입니다.
<집>을 지으니 ‘집’이 보이고,
<나무>를 심고 키우니 ‘나무’가 보였습니다.
<사랑>하니 ‘사랑’이 보이고,
미워하니 ‘미움’이 보였습니다.
심는 대로 보이고 얻게 됩니다.
심으면 ‘심은 것’이 보이고 얻고 거두고,
안 심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못 얻고 못 거둡니다.
<신앙>도, <휴거>도, <생명>도, <만사의 모든 것>도 그러합니다.
얼마든지 주 안에서 심기를 축원합니다.
주 안에서 심고 거두기 -입니다.
<선물>은 거저 줘서 얻는다고요?
그러나 역시 ‘선물 받을 만한 건’이 있어서 주는 것입니다.
고로 거저 주는 <선물>도 알고 보면, ‘심고 거두는 격’입니다.
주 안에서 심고 - 거두세요!
주 안에서 심고 - 선물도 받으세요!
주 안에서 심고 - 축복도 받기를 바랍니다!
<전환> 중요 부분
◎ 더 깊이 말씀하겠습니다. 잘 들어요.
올해 설교 중에 ‘극의 좋은 생각’을 가지라고 말씀했지요?
그러나 사람이 항상 좋게만 인식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부정적 성향’으로 다 나쁘게만 보면,
결국 ‘나쁜 인식’으로 인해 자기에게 ‘불이익’이 옵니다.
그래서 ‘이치’를 깨달아야 됩니다.
생각해 보세요!
<배설물>은 더럽고 냄새가 납니다.
그러니 나쁘게 보고 “귀찮다. 냄새 난다.” 합니다.
그러나 ‘이치’를 깨달아 ‘좋은 인식’으로 생각한다면,
몸에서 생명의 작용을 하고
생리적으로 배출되는 것이니 ‘좋은 것’입니다.
<영양가>를 흡수한 후에 <찌꺼기>는 몸에 두면 큰일 나는데,
생리적 작용으로 배설물을 자동으로 밀어내니 좋아해야 됩니다.
<몸의 노폐물>도 그러합니다.
땀과 노폐물이 쌓이니, 계속 씻어 줘야 됩니다.
그것을 “귀찮다.”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 살면서 자기 몸을 쓰고
필요 없는 것을 배출하는 것이니,
<씻는 시간>을 ‘청소 시간’으로 좋게 보고
기쁘게 처리해야 됩니다.
노폐물과 배설물을 귀찮다고 처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만 해도 속이 더부룩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귀찮다고 처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고통’입니다.
인생의 날 중에도 ‘환난기, 고통기, 밤의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을 ‘나쁜 인식’으로만 생각하면, 너무 힘듭니다.
이 기간은 ‘그동안 얻고 썼으니 쓰레기가 나왔는데,
그 쓰레기를 버리고 청소하는 시간’입니다.
집에서 생활을 하면 ‘쓰레기’가 나옵니다.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활하면서 먹고 썼으니 ‘쓰레기’가 나옵니다.
힘들어도 ‘쓰레기’는 버려야 <집>도 빛나고 <자기>도 좋습니다.
집이 깨끗하니 손님들이 모여듭니다.
<인생의 환난기, 고통기>도 그러합니다.
그동안 썼으니 ‘청소하는 기간’입니다.
힘들어도 청산할 것 청산하고 깨끗하게 정비하는 시간입니다.
그러고 나서 ‘잔치하기’입니다.
음식을 해 먹고 ‘설거지 거리, 음식 쓰레기’가 나왔다고,
그것을 처리하기 싫어합니까?
맛있게 음식 만들어 먹었으니,
먹고 - 기쁘게 설거지하기, 음식 쓰레기 치우기입니다.
맛있게 먹은 후에 ‘설거지’ 하는데,
왜 “힘들다. 고생한다.” 합니까?
먹었으니 힘도 생겼잖아요.
그 힘을 가지고 치우면 됩니다.
자기 삶에 오는 환난도, 고통도, 어려움도 그러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휴거의 삶을 살면서
얻고 누리고 살았으니 ‘청소하고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얻기 위해 ‘닦고 청소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얻고 썼으니 청소하는 것이고,
또 앞으로 얻기 위해 청소하는 것인데
행하면서 뭐 그리 힘들다 합니까?
먹고 마셨으니 뒤처리하며 씻고 닦고,
그로 인해 생긴 쓰레기를 기뻐하며 처리하기 -입니다.
또한 얻기 위해 그릇 닦기, 만들기, 기뻐하며 감사하기 -입니다.
행한 대로 찌꺼기 처리하기 -입니다.
깨끗이 하지 않으면, 문제가 닥치고 고통이 옵니다.
자기가 먹고 누렸으니 - 배설하고 씻고 닦듯이,
<자기 인생 가운데 오는 환난·고통·어려움>은
자기 인생을 위해
자기가 설거지하고 치우는 환난·고통·어려움입니다.
고로 힘들어도 해야 됩니다.
<이치와 법칙>을 알고 행하면, 나쁘게만 보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할 일>로 보고 행합니다.
<새 역사>를 만나고 <휴거>됐으니
마치 ‘바나나’를 먹으려면
‘껍질’을 벗기고 먹는 수고는 해야 되듯,
<자신>을 더 개발하기 위해
그 정도의 수고와 어려움은 있어야 됩니다.
바나나를 껍질도 안 벗기고 그냥 먹으려 합니까?
그냥 먹으면 탈납니다.
새 역사를 만나서 사는 휴거의 삶도 그러합니다.
하다 보면, 환난도 핍박도 어려움도 있습니다.
바나나를 먹으려면 ‘껍질’을 벗기고 먹는 수고는 하듯,
환난 핍박이 오고 어려울 때는 청소하듯 치우는 것입니다.
농부가 ‘황금벌판’을 얻으려면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와 같이 <더 이상은 없는 최고의 휴거>를 얻었으니,
그로 인해 환난·핍박·어려움이 와도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실망하지 말고
기뻐하며 끝까지 행하기 바랍니다!
<환난 핍박 때>‘주와 같이 행한 자’는
<먹고 마실 때>도 ‘주’가 그와 같이 해 주십니다.
아이라도 젖을 먹으려면, 빠는 수고를 해야 됩니다.
“아이고, 힘들어서 못 먹겠네.” 하며 투덜대면,
엄마가 “그만 먹어.” 하며 못 먹게 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축복’을 주는데
<축복을 얻으면서 행할 일>을 두고
“아이고, 힘들어서 못 하겠네.” 하며 투덜대면,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을 거두고 다른 사람에게 주십니다.
그래 놓고 ‘제 마음대로 사는 자들’은 더 고통받고 힘들어져서
돼지들과 같이 ‘쥐엄나무 열매’를 먹고 비척대며 살아갑니다.
<말씀 마무리> 중요 부분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선생도 10년 가까이
바닥에 엎드려 쉬지 않고 말씀을 쓰며 행정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기도도 무릎 꿇고 끊임없이 하고 글도 쉬지 않고 써야 하니
매일 땀이 나고, 무릎에는 굳은살이 박히고,
다리는 굳어서 저리고 아프지만, 힘이 안 듭니다. 왜요?
힘들어도 삼위와 대화하고 진리로 생명을 살리니,
마음이 흥분되어 좋고 기뻐서 ‘마음 천국, 삶의 천국’입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기 정말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힘들니까 하지 마!” 하는 말을 듣고 싶습니까?
그럼, 힘드니까 기도하지 말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의 광야’로 갑니다.
거기서 ‘선인장’이나 꺾어서 먹고 살아야 됩니다.
<기도>는 결국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 때를 따라 새벽을 깨워 ‘기도하기’입니다.
- 그리고 ‘삼위와 주와 사랑하며 얻고 누리기’입니다.
<때> 지나면, 그나마도 ‘끝’이 납니다.
<말씀 쓰는 수고의 때>가 끝나니,
선생이 쓰던 ‘볼펜의 잉크’도 다 되어 끝났습니다.
새벽부터 기도하고 말씀 쓰니, 벌써 저녁 6시입니다.
이제 저녁 기도를 해야 됩니다.
오늘도 말씀 쓰기 불가능했는데,
기어이 행해서 받아 쓰고야 말았습니다!
오늘도 행하니, ‘말씀’을 얻었습니다!
이와 같이 행하면, 올해는 ‘더 좋은 것’을 얻습니다.
처음에는 잘 안 돼도
끝까지 행하면, 기어이 ‘더 좋은 것’을 얻습니다.
이것이 올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행하면, ‘약속하신 것’을 주십니다.
행하면, 안 되는 게 없습니다.
힘들어도 행하면, 행한 만큼 무조건 됩니다.
모두 말씀을 듣고,
주와 함께 먹고 마시고 행하며 얻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