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04.10 (일)
160410 주일말씀
- 선포일
- 2016.04.10 (일)
- 성경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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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0일 주일말씀>
생활의 사랑이다
본 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핵심만 봉독)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매년 4월 둘째 주 주일은 ‘부활 주일’입니다.
◎ 우리는 ‘부활의 근본’을 알고,
이 땅에서 <육>도 휴거되어 살고 있고
<영>도 휴거되어 영원한 세계를 얻고 살고 있습니다.
◎ <요한복음 5장 24절~29절> 말씀처럼
시대 말씀을 듣고 ‘시대 구원자’를 절대 믿고 일체 되고,
그를 통해 ‘삼위일체’를 절대 믿고 사랑하며,
삼위가 이 시대 구원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듣고 행하면
그것이 ‘부활’이며 ‘거듭난 것’입니다.
<생각>도 변화되고, <행실>도 변화되었습니다.
그리함으로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영>이 생명권으로 나와 부활됐습니다.
◎ <고린도전서 15장 50~53절> 말씀처럼
시대 복음의 나팔 소리를 듣고 홀연히 변화되어
<육의 행위>를 통해 <영>이 부활되고 변화됐습니다.
◎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더 좋은 부활’을 이루어 나가면서,
부활의 부활을 거듭하면 ‘휴거’ 됩니다.
고로 <휴거>는 ‘부활의 할아버지’입니다.
◎ 이렇게 부활되고 변화되고 거듭나서
‘더 좋은 부활, 더 차원 높은 변화’를 이루어 휴거된 것이
곧 ‘영이 황금성으로 가는 영 휴거’입니다.
<육>은 ‘땅에서 휴거의 삶’을 살면서 계속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 작년부터 섭리사는 <3.16 휴거 날>에
휴거의 대역사를 진행합니다.
올해도 <3.16 휴거 날>에 ‘부활과 휴거의 행사’를 했습니다.
각자 ‘더 좋은 부활’을 이루었고,
‘휴거’되었고, ‘휴거의 차원’을 높였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부활절’은
각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며 진행합니다.
◎ <부활과 휴거>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말씀했습니다.
실상 ‘이 시대 말씀’이 모두 ‘부활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부활, 휴거’라고 말하지 않아도
<시대 말씀>을 지켜 행하면,
계속해서 ‘더 좋은 부활, 더 차원 높은 휴거’를 이룹니다.
◎ <더 좋은 부활, 더 차원 높은 휴거>를 이루려면,
이제부터는 정말 ‘생활’을 잘해야 됩니다.
자기 터전에서, 생활 속에서
매일 더 좋은 부활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고,
더 차원 높은 휴거가 일어납니다. 믿습니까?
◎ 이제 오늘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의 주제는 ‘생활의 사랑이다.’입니다.
◎ 오늘 말씀이 참 깊습니다.
깊은 말씀도 보통으로 전하면 보통으로 들리고,
보통으로 들으면 보통으로만 압니다.
설교자들이 오늘 ‘주일 성령집회’를 해 줄 테니,
깊이 듣고 깊이 깨닫고 행하기 바랍니다.
◎ 생활의 사랑이다!
- 이것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여러분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대해 배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알고 있습니까?
이것을 ‘핵’으로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 목적’을 이뤄야 됩니다.
그래야 ‘인간으로서 태어난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사랑의 근본체’이시기에
자녀와 같은 천사들을 사랑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사랑의 상대체>를 창조하여 영원히 최고의 사랑을 하려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핵’으로 배웠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살기도 했고,
혹은 안 믿고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섭리역사>를 만나고 <성자 주>를 만나서
<시대 말씀>을 배우고 <사랑의 뜻>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됐습니다.
<시대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삼위와 주를 향한 사랑>이 없으면,
결국 ‘이 시대 구원’도 ‘휴거’도 이루지 못합니다.
고로 우리는 모두 ‘삼위 사랑, 주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사랑으로 휴거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요>
여러분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사랑합니까? (잠시 쉬었다가)
사랑을 한다면, (잠시 쉬었다가) 사랑의 관계를 해야 됩니다. (강조)
<중요>
그렇다면 <삼위와 주와의 사랑의 관계>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가 원하는 일을 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찬양하기, 전도하기, 관리하기, 말씀 듣고 행하기,
말씀대로 행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변화되기,
하나님의 각종 뜻을 행하기 등이
→ 마치 세상에서 사랑하는 자와 사랑의 관계를 하는 격입니다.
이 도를 깨닫고 행하기 바랍니다.
사람들끼리도 서로 사랑하며 ‘사랑의 관계’를 합니다.
<세상 사랑의 관계>를 크게 나누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육체의 관계입니다.
둘째, 생활하며 사랑으로 대해 주는 관계입니다.
셋째, 마음과 생각으로 늘 잊지 않고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중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 앞에도 그러합니다.
이 <영적 사랑의 관계>도 크게 나누면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영적 사랑의 관계>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고 그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영적 사랑의 관계>입니다.
셋째, 생활 속에서 마음과 생각으로 늘 잊지 않고
무엇을 하든지 삼위와 주를 빼놓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
<영적 사랑의 관계>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지금부터 하는 말씀을 잘 들어요.
첫 번째로 ‘생활의 사랑 관계’는 무엇인지 말씀하겠습니다.
세상에서는 ‘육적 사랑의 관계’가 참 무섭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으니
‘생활 속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고로 ‘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 사랑의 관계가 끊이지 않아야
가장 크고 뜨거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생활의 사랑의 관계>란,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교통’을 말합니다.
이것은 ‘육적 관계’가 아니라
‘정신과 생각의 교통, 정신과 생각의 관계’입니다.
<육적 사랑의 관계>보다 ‘더 크고 강한 것’은
<정신과 생각의 관계>입니다.
곧 늘 마음과 생각으로도 ‘상대’를 잊지 않고 교통하며,
어떤 일을 하든지 ‘상대’를 빼놓지 않고 같이 하는 삶입니다.
<중요>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마음과 생각>에서 ‘삼위와 주’를 잊지 않고 사랑하며,
어떤 일을 하든지 ‘삼위와 주’를 빼놓지 않고 같이 행하며
실제로 ‘생활 속’에서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말>보다 더 무서운 것은 <행하는 것>입니다.
<육적 사랑의 관계>는 ‘순간’하고 끝납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활의 사랑 관계>는
실제로 생활 속에서 연속적으로 행해야 되니, 아주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향한 생활의 사랑 관계>는
하나님의 역사를 두고 매순간 자기 변화를 이루면서 행해야 되니,
아주아주 어려운 것입니다.
<중요>
매일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삼위와 주의 생각과 일체 되어
매순간 잊지 않고 삼위와 주를 사랑하고 교통하며 사는 삶이
<생활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것을 하는 자가 ‘휴거된 자’이며,
정말 ‘휴거의 삶’을 사는 자이며,
계속해서 ‘휴거의 차원’을 높여 가는 자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
‘순간 대화, 순간 관심, 순간 생각, 순간 사랑’은 쉽습니다.
‘생활 속에서
매순간 사랑, 매순간 생각, 범사에 대화’가 어렵습니다.
<사랑>은 지구가 쉬지 않고 돌듯이 ‘연속’돼야 합니다.
이것이 ‘진짜 사랑, 위대한 사랑’입니다.
<순간>은 누구나 잘합니다.
<지속적>으로 잘하기가 어렵습니다.
노인도, 어린아이도 ‘순간’은 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중요>
<사랑>도 그러합니다.
‘순간’은 쉬워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관심 갖고,
대화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위대한 사랑’입니다.
<나무>가 하루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크듯,
<열매>가 하루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크듯,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쉬지 않고 사랑해야 됩니다.
<휴거된 자들의 사랑>은 ‘지속적인 사랑’으로서,
매일 ‘육’과 함께 ‘영’이 ‘사랑의 생활’을 합니다.
난자와 정자를 보세요.
결합되면,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시간과 함께 큽니다.
그렇게 해서 ‘생명체’가 됩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
매순간 생각 일체, 행동 일체, 사랑 일체 되어 살면,
완전히 결합되었기에 매일 크고 변화됩니다.
변함없이 주를 사랑하고 지속적으로 대화하며 행하세요!
그러면 매일 성장하고 변화되고 커 나갑니다.
변하면, 더 이상 안 크고 변화도 없습니다..
정상에서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정상에서 이탈하면, 가도 ‘딴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중요>
매일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 사랑을 중심’해서 행하며 살아야
‘늘 사랑의 행위를 하는 자’와 같습니다.
그래야 ‘신앙’이 매일 큽니다.
어린아이가 성장하고 커야 사랑할 수 있듯이,
<신앙>이 커야 삼위도 주도 그를 ‘사랑의 대상체’로 삼고
마음껏 사랑하며 뜻을 이루십니다.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상태로 가만히 있으면 행복을 누리겠습니까?
절대 떨어지지 않고 완전히 일체 되어
성장하고 커서 ‘생명체’가 돼야 합니다.
삼위와 주와 매순간 떨어지지 말고 일체 되어
매일 성장하고 매일 변화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야 수만 가지의 보람과 기쁨과 행복과 사랑을 누립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 말씀을 들으니, ‘생활의 사랑 관계’에 대해서 잘 알았지요?
이제부터는 두 번째로
‘생활의 사랑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생활의 사랑’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씀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있습니까?
올해 수료생들에게 질문할까요?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습니까?
다시 전체에게 질문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전도하고, 기도하고, 관리하고,
말씀을 행하고, 삶을 살고 있습니까?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행했느냐,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그 일을 했느냐에 따라서
‘삶’도 ‘혼’도 변화되고
‘영’까지 변화되어 ‘영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생각하는 대로 느낍니다.
힘들다 생각하면 힘들게 느껴지고,
행복하다 생각하면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십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행하는지 보시고,
그 ‘생각’을 보고 대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보실까요?
잘 들어요.
<중요>
<자기를 위한 생각>만 하느냐,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의 것>도 함께 생각하고 하느냐.
- 이것을 늘 보십니다.
<진짜 중요, 진짜 좋은 말씀>
<자기 것>만 생각하고 하느냐,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의 것>도 생각하고 하느냐.
- 항상 이것을 보시고, (잠시 쉬었다가)
- 그 생각이 ‘삼위와 주의 것’을 생각하고
‘삼위와 주’를 위해 해 주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 주도 행하실 때
‘그 사람의 것’도 같이 넣어서 해 주십니다.
<살>과 <뼈>도 그러합니다.
<살>이 <뼈>를 위해서 해 주면,
<뼈>도 <살>을 위해서 ‘기둥’이 되어 굳건하게 해 줍니다.
여러분은 <살>이 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는 <뼈>가 되어
서로 같이 생각해 주고 서로를 위해서 해 줘야 됩니다.
이것이 ‘생활의 사랑, 위대한 사랑’입니다.
성령님은 거듭 말씀하며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가 ‘삼위와 주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것’만 생각하고 하면,
하나님도 나 성령도 성자도 ‘너희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든지 ‘삼위와 주의 것’도
<네 생각>에 같이 넣어서 해 줘라.
그러면 삼위도 주도 ‘너의 것’을 같이 넣어서 해 준다.”
(믿습니까?)
여러분은 삼위와 주 앞에 ‘자녀’도 ‘형제’도 아니지요?
여러분은 ‘신부로 부활’됐습니다.
정말 <참신부>라면,
늘 ‘사랑하는 자의 것’을 생각하면서
‘같이 사는 삶’을 삽니다.
<형제>와 <신부>는
‘급’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삶’도 다릅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줄게요.
가령 자기에게 ‘사랑하는 자’가 있다면,
먹을 것을 살 때 ‘자기 것’도 사고 ‘애인의 것’도 사지요?
이와 같이 무엇을 하든지 ‘자기 것’도 하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의 것’도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옷 한 벌’을 산다 합시다.
‘이 옷 입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지!
이 옷 입고 기도해야지!
이 옷 입고 전도하고 강의해야지!
이 옷 입고 설교해야지!” 하면,
- 이것이 자기 삶과 생활에 하늘 것을 넣어 준 것이 됩니다.
- 이것이 삼위와 주를 위해 산 것이 됩니다.
항상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의 것’도 넣어 주기입니다.
이것이 ‘생활의 사랑’입니다.
자기가 시장에 가서 ‘한 보따리’를 사 왔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한 보따리’를 다 뒤져도
<자기 것>만 있지 <사랑하는 자의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애인이 보고,
“너만 생각했구나.
시장에서 내 생각은 안 했구나.
나 전혀 생각 안 났어?” 했습니다.
너무 미안해서, 즉시 ‘자기 옷 하나’를 애인에게 줬습니다.
그러니 애인은 “잊어버리고 못 샀구나.” 하며 그 마음을 알아줬고,
받은 옷을 다시 돌려주며 “사랑의 맘 받았으니 됐다.” 했습니다.
시장에서 한 보따리를 사 왔는데
다 ‘자기’를 위해 샀지, ‘애인’은 생각도 안 했습니다.
이러면 안 되겠지요?
<중요> 여러분도 하늘 앞에 이러면 안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신부>라고 간판만 크게 걸어 놓고
<입>만 벌리고 살지 말고,
삼위와 주와 영원히 살 자들이니
매일 ‘진실한 사랑의 생활’을 하여라.”
<어떤 생각>을 하고 하느냐가 그리 큽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자기 생각>에 ‘삼위와 주의 것’도 꼭 넣어서 해야 됩니다.
<자기가 해 줄 것>이 없어서 ‘작은 것’을 줘도
<마음과 생각>을 ‘산’같이 크게 주면,
실상 그것이 ‘산같이 준 것’이 됩니다.
하나님도 주도 그것을 ‘큰 사랑’으로 보고 대하십니다.
<사랑의 한 몸>이라면,
‘모든 일’을 할 때마다 ‘사랑하는 자의 것’도 넣고 합니다.
<휴거된 자들>은 ‘복직된 자들’로서
모든 일을 할 때마다 살과 뼈가 일체 되듯
항상 ‘삼위와 주의 것’을 넣어 같이 행합니다.
(반복) 항상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의 것도 넣어 주기입니다.
이것이 ‘생활의 사랑’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여기까지 말씀을 들으니 ‘생활의 사랑’이 무엇인지,
‘생활의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겠지요?
이제 세 번째로 ‘생활 사랑의 시동은 자기가 걸어야 된다.’
에 대해 말씀하고,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 자체>가 안 좋으면,
‘맛있는 사과’를 먹어도 맛이 없고,
‘금가루’를 먹어도 기쁘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이 기쁘고 희망에 차고 흥분돼야
상대가 ‘은’이어도 기쁘고 ‘돌포도’여도 기쁜 것입니다.
<사람의 근본>은 먼저 ‘자기 기쁨, 자기 흥분’입니다.
곧 <자기>가 좋고 기뻐야 뭐든지 좋고 기쁘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기쁨과 희망의 시동’을 안 걸면,
<상대>가 아무리 기쁘게 해 줘도 못 느낍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 앞에서도 그러합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에서 먼저 ‘시동’이 걸려야
<생명의 말씀>을 해 줘도 <뜨거운 사랑>을 해 줘도
역사가 크게~ 뜨겁게~ 일어납니다.
<구원>도 ‘자기가 출발’해야 되고,
<휴거>도 ‘자기 엔진의 시동’이 걸려야 됩니다.
<상대의 영향>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기 시동을 거는 일’이 그리 큽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세상에 오셨어도
<자기 시동>이 안 걸리면 왔다가 그냥 가십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가 땅에 왔어도
<자기 생각의 시동>이 안 걸리니 못 따라가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자기 시동>이 걸려야 세상 것도, 하늘의 것도 느낍니다.
“왜 나를 기쁘게 좋게 안 해 주냐?” 말하지 말고,
먼저 ‘자기 시동’을 걸어야 됩니다.
그래야 ‘만사의 모든 것’이 느껴집니다.
이는 마치 소경이 눈을 떠서 보는 격입니다.
<자기>가 ‘식물인간’이면,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가 와서 사랑해 줘도 못 느낍니다.
그러므로 자기 책임, 곧 ‘자기 생각의 시동을 거는 것’이
그리도 큽니다.
<지옥>도 하나님이 못 해 줘서 가는 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삼위와 주가 역사해 주고 사랑해 줘도
<자기>가 ‘책임’을 못 하고 ‘시동’을 안 걸다가
그 고통스러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천국>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역사해 주고 사랑해 줘도
<자기>가 ‘시동’을 안 걸고 안 하면 못 갑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삼위와 주가 역사해 주고 사랑해 주고 도와줘도
<자기>가 안 하면 못 합니다.
마치 밥상을 차려 줘도 자기가 안 먹으면 못 먹듯 그러합니다.
계속해서 ‘삼위와 주의 사랑’을 느끼며
계속해서 ‘휴거의 차원’을 높이며 올라가려면,
<자기가 시동을 걸고 행하는 것>이 ‘열쇠’입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부분 전체 - 화끈하게! 심정 깊게! 불나게! 외쳐 주고 마친다)
◎ 오늘 말씀...
사랑하면, ‘사랑의 관계’를 해라.
<육적 관계>가 아니라 <생활 속 사랑의 관계>다.
곧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매일 <마음과 생각>에서 ‘삼위와 주’를 잊지 않고 사랑하며,
어떤 일을 하든지 ‘삼위와 주’를 빼놓지 않고 같이 행하며 살아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
순간 대화, 순간 관심, 순간 생각, 순간 사랑은 쉽다.
생활 속에서 매순간 사랑, 매순간 생각, 범사에 대화가 어렵다.
하나님의 역사를 두고 연속적으로 행해야 되니, 어렵다.
그러나 이같이 ‘생활의 사랑’을 하는 자가
‘위대한 사랑’을 하는 자다.
매일 ‘삶 속’에서 ‘생활 속’에서
삼위와 주의 생각과 일체 되어
매순간 잊지 않고 삼위와 주를 사랑하고 교통하며 살아라.
좋을 때나,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슬플 때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오나, 날이 좋으나
항상 ‘성령과 주와 함께’ 행해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빼지 말고, 절대 같이 행해야 된다.
네가 빼면, 하늘도 너를 뺀다.
어린아이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엄마에게 착 붙어 같이 행해야 실수도 없고 위험도 없다.
이와 같이 언제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 같이 행해라!
빼지 말고 항상 끼워 넣고 같이 행해라!
항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껴 주기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껴 주기다.
생활 속에서 항상 사랑이다. 대화다. 이야기다. 교통이다.
<최고 높은 사랑의 차원>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
생각도 몸도 한 덩이가 되어 같이 행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소경이 눈을 못 뜨면 못 보듯
<자기 마음과 생각>에 시동이 걸리지 않고 흥분되지 않으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희망>이 안 느껴진다.
아무리 ‘외부에서 자극’이 와도
‘자기 시동’이 안 걸리면 못 느낀다.
<자기 흥분>이 안 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가 사랑해 줘도 못 느낀다.
고로 네가 시작해라! 네가 먼저 해라! 네가 시동을 걸어라!
그러면 하는 만큼 느끼고, 얻고, 누린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