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04.24 (일)
160424 주일말씀
- 선포일
- 2016.04.24 (일)
- 성경 본문
- 이사야 11장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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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4일 주일말씀> 준비 철저히 하고, 성령으로 외칠 말씀
실체 역사다. 실감 있게 해라
본 문 이사야 11장 9절, 30장 26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니,
말씀을 들을 때 뜨거운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휴거된 자들’이나
‘휴거되는 과정 중에 있는 자들’이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주제는 ‘실체 역사다. 실감 있게 해라.’입니다.
<말씀 시작>
◎ 먼저 ‘시작하는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그래야 뒤에 <핵심 말씀>을 전할 때, 잘 이해가 됩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직접 보고, 직접 듣고, 직접 만져 봐야
<실체>를 실감 나게 느낍니다.
곧 사람들은 <실체>를 크게 본다는 것입니다.
<상징과 비유>는 ‘다른 존재의 것’을 가지고,
<실체>에 대해 말해 주고 증거해 줍니다.
곧 ‘그림’이나 ‘조각물’이나 ‘만물’이나
‘각종 말씀’을 <비유>로 들어 <실체>를 증거해 줍니다.
그러나 <상징과 비유>는
‘실체의 증거물’에 불과하며 ‘실체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고로 느낌도 만족도도 100%가 안 되고, 실감도 안 납니다.
예수님 때도 예수님이 죽은 후에는 <실체>가 없으니,
각종으로 <비유>를 들면서 <실체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니 듣는 자들은 느낌과 실감과 감동을 약하게 받았고,
이에 증거자들은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고로 <성령>께서 ‘증거자들이 증거하는 터전 위’에
더욱 증거하고 감동시켜 깨닫게 하셨습니다.
<실체>가 없으면
- <형상>을 만들어서 전하고
- <영상>을 만들어서 전하고,
- <그림>을 그려서 보여 주면서 증거하는 등
<상징과 비유>로 이해시켜야 되니,
‘증거하는 자’가 힘이 들고,
‘듣는 자들’도 속 시원히 실감이 안 납니다.
사람을 비유로 나타낸 영상, 사진, 조각물은
만져 봐도 ‘생명력’이 없습니다.
실물보다 수백 배 작은 <사진>을 보는 것과
<실물>을 보는 것은 정말 다릅니다.
<사진>은 만져 봐도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사진>은 다만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지,
<실체>와는 달리 ‘현실감’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을 <사진>으로 보다가
사진보다 수백 배 큰 <실체>를 보면 ‘거인’을 본 것 같습니다.
고로 ‘생각’도 달라지고 ‘느낌’도 달라집니다.
<말씀>도 그러합니다.
<말씀>도 ‘실체 주, 실체 성삼위, 실체 역사’를
증거하는 ‘증거물’입니다.
고로 <말씀>을 듣고 생각만 하면
실체적인 감이 없으니 <말씀>이 실감이 안 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실제로 행하여 <실체>로 만들어야!
수백 배 실감 나게 ‘큰 것’을 보게 됩니다.
고로 <행하는 자>는 ‘실체’를 만들어서 사니,
신앙도 생각도 죽지 않습니다.
<행하지 않는 자>는 ‘실체’를 만들지 못하여 ‘실체’가 없으니
실감 나지 않고 현실감이 없어서
곤고하고 낙심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실체>는 정~말 중요합니다.
실감 나게 하고, 현실감을 느끼게 하고, 감동을 줍니다.
이 시대는 <증거할 실체>가 살아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전능하신 성자>는 ‘그 육신’ 쓰고 나타나셔서 행하십니다.
그리고 ‘수백 가지’로 증거해 줍니다.
<말씀>으로 증거해 주고,
<성령>으로 증거해 주고,
<뉴스>를 통해 ‘삼위가 주와 함께 행한 것’으로 증거해 주고,
<그동안 행한 것>을 가지고 증거해 주는 등
각종 ‘실체’로 증거해 줍니다.
<하나님의 때, 새 역사의 시대>가 왔기에
삼위일체는 섭리사와 종교계와 민족과 세계에
예전에도 지금도 거침없이 행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알아야 됩니다.
<증거할 실체>가 살아 있고,
<삼위가 실체>를 보이며 역사하심을 알고 깨달으면,
자신 있게 증거하게 됩니다!
여러분 자신도 <실체>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하고 좋습니까?
그러나 <실체>가 살아 있어도 행하지 않으면
<실체>가 없는 것과 같아서 느낌도 감동도 실감도 약합니다.
휴거됐어도 ‘휴거의 삶’을 살면서 행하지 않으면,
<실체 휴거>를 실감하지 못하고 낙심하고 주저앉게 됩니다.
자기가 <실체>로 살아 있음을 절실히 깨닫고,
살아 있는 <실체 주>와 함께하고 있음을 절실히 깨닫고,
<실체>를 가지고 어서 행하기를 축원합니다!
<전환>
◎ 이제 <오늘의 핵심 말씀>을 전할 것인데,
잠깐 ‘전초 식’으로 몇 마디만 해 주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위대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의 하나는 ‘이것’입니다.
바로 생긴 대로 쓰지 않으시고
본래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까지
더 좋게 만들고 변화시켜서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쓰면 가치 있고 위대하게 쓰지 못하니,
삼위일체가 인간과 함께 만들어서 쓰십니다.
근본이야 어떻게 생겼든지, 만들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육>을 만들면서
<혼과 영>까지 변화되고 만들게 하십니다.
그렇게 ‘전능하신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기까지
위대하게 만들게 하십니다.
<전능하신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기까지 만드시니,
얼마나 엄청납니까?
단, 본인이 열심을 내는 만큼 빨리 만듭니다.
자료를 주는 만큼 빨리 만듭니다.
<자료>는 ‘자기 육’이 행함으로 ‘자기 영’에게 줘야 됩니다.
주를 향한 믿음, 삼위와 주를 향한 사랑,
각종 신앙의 일들, 공적 등이 <자료>입니다.
<육>이 행하면서 ‘자기 영’에게 이러한 ‘자료’를 줘야
<육>도 변화되고 <영>도 만들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만드는 데 너무 느려서
그 좋은 젊음의 때가 다 갑니다.
그러니 성령도 주도 너무 애간장이 탑니다.
빨리 만들어져야 늙기 전에 얻고,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보람 있게 살고,
얻을 것을 주고받으며 귀히 쓰게 됩니다.
하나님은 6000년 동안 구원역사를 진행하시며
시대마다 계속 ‘차원’을 높여 인생들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구약 1차원 - 신약 2차원 - 성약 3차원으로 만들었습니다.
<부활>은 ‘변화’입니다. ‘흑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시대에 보낸 자를 믿고,
그 말씀 듣고 행함으로 변화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되고,
계속해서 더 주의 말씀대로 행함으로
연속 ‘더 좋은 변화, 더 좋은 부활’을 이루는 것입니다.
<시체 부활, 육신 부활>만 믿는 자는 ‘무지자’입니다.
<육신 부활>은 천 년, 만 년 가도 안 됩니다!
앞으로 보세요. <육신 부활>은 절대 안 일어납니다!
- 하나님이 보낸 시대 구원자를 믿고,
- 그가 하는 말씀을 듣고,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고,
- 자기를 구원하고 살린 자가 누구인지 깨달아 일체 되고,
-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곧 ‘부활’입니다.
그러면 <육>도 사망권에서 나와 ‘생명권의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이 곧 ‘육신 부활, 삶의 부활’입니다.
이에 따라 <영>도 하늘나라 형체로 점점 변화되는데,
이것이 곧 ‘영의 부활’입니다.
<휴거>는 ‘완전한 부활’입니다.
더 좋게 부활되고 부활되면, ‘완전함’에 이릅니다.
그 첫 단계가 <휴거 300선>입니다.
거기서 계속 차원을 높여 ‘더 좋은 부활’을 거듭하면,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는 완성 단계>,
<인간으로서 신이 되는 단계>에 오릅니다.
이 단계가 <휴거 700선>입니다.
<전환>
◎ 이어서 ‘휴거’에 대해 말씀하면서,
<오늘의 핵심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올해 3.16에 휴거된 자들>이 ‘수만 명’입니다.
땅의 성자를 중심으로 두 증인부터 제대로 하니,
<섭리사 전체>가 그 영향을 받고 모두 휩쓸려
정말 많은 자들이 ‘휴거’되었고 ‘휴거의 차원’을 높였습니다.
<휴거 300선>은
주를 믿고 따르며 행하면, ‘주의 사랑’으로 되게 해 줍니다.
이는 마치 남자가 여자를 보고
‘아무 조건’을 안 따지고 사랑한 격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본인이 주와 같이 행해야 됩니다.
올해는 각자 주와 같이 제대로 행했기에
정말 많은 자들이 ‘휴거의 차원’을 높였습니다.
모두 제대로 하여 ‘기다린 열차’에 올라타듯 했습니다.
그날 자연성전에 온 자들은 온 대로 행했고,
못 온 자들은 ‘그 영들’이 와서 뜨겁게 행했습니다.
모두 휴거되기를 간절히 원하며 마음먹고 크게 행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는
3.16 휴거 잔치 마지막 순간까지
각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보고
그 생각이 ‘휴거’에 뒤집어지고 믿고 행하는 대로
휴거시켰고 휴거의 차원을 높여 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휴거되어 떠나기 한 시간 전, 10분 전’까지
정신 못 차리고 무대만 쳐다보고 찬양만 했습니다.
그런데 찬양 중에 휴거되기를 간절히 원하며 마음이 뒤집어졌습니다.
홀연히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면서,
청중 속에 ‘마음이 뜨겁게 감동’되고 끓는 물같이 되어
거기서 홀연히 변화되어 휴거됐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
많은 자들이 ‘휴거’되었고 ‘휴거의 차원’을 높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의 심리인가? 분위기에 따른 현상인가?
내가 너무 간절히 원하니, 휴거됐다는 생각이 들었나?”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휴거의 사명자>가 모르겠습니까?
버스 운전수는 굳이 버스에 탄 인원을 확인하지 않아도
운전석의 거울을 보고 “버스가 꽉 찼다.” 하고 압니다.
제대로 하면, 제대로 휴거됩니다.
특히 올해 3.16은 <중심>에서 제대로 했습니다.
선생도 제대로 했고, 중심 사명자들도 제대로 했습니다.
제대로 했으니, 그 영향으로 모두 제대로 휴거됐습니다.
3.16 이후 섭리사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정말 많은 자들이 휴거됐고, 휴거 차원을 높인 것이 확실합니다.
올해는 <성찬식>도 ‘하루 반 만’에 준비했는데,
성찬식에 임하는 자세나 준비 과정만 봐도
많은 자들이 휴거됐고 휴거 차원을 높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각종으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보면,
많은 자들이 휴거됐고 휴거 차원을 높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휴거됐는지, 휴거 차원을 높였는지 잘 모르는 자들은
단 일주일이라도, 20일이라도 열심히 하면서 확인하면 압니다.
또 자기가 그 선에 해당되는 대로 생각하고 살아 보면 압니다.
<700선>은 인간으로서 신이 된 단계이며,
삼위일체의 완전한 사랑의 대상체가 된 단계이며,
더 이상 주를 등지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어려움이 와도 절대 주 뜻대로 살려고 하며,
시대를 외치려는 마음이 뜨거워 외치며 삽니다.
그렇게 살아지면, ‘그 선으로 휴거된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휴거된 자>는 평소와는 다르게 행해야 됩니다.
비유로 말하면
<아기를 임신했을 때>와 <낳았을 때>는 다릅니다.
<아기를 임신했을 때>도 산모가 태아를 잘 관리해야 되지만,
<아기를 낳은 후>에는 실제로 젖을 주며 부지런히 관리하고
더 신경 쓰고 가르치며 키워야 됩니다.
이와 같이 휴거되면
그 <영>이 ‘하늘 신부’가 되어 ‘천국’에 속해서 사니,
그때부터는 평소와는 다르게 살아야 됩니다.
그런데 <영>은 안 보이니까 ‘실감’이 안 나지요?
그때는 <자기 육>을 보면 됩니다.
<육신>이 ‘제2의 영’이니,
<육신>이 삼위와 주를 사랑하고 섬기며
결혼한 여자가 남편을 대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실제로 ‘사랑의 생활, 휴거의 생활’을 해야 됩니다.
<육>이 ‘보이는 영’ 되어 행해야
<보이는 육>을 통해 ‘보이는 않는 영’을
확실히 알고 실감하게 됩니다.
이제, 오늘 처음에 했던 말을 기억해 봐요.
<상징과 비유>는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지요?
<영>은 ‘본체’이며 ‘주인’ 격입니다.
그런데 안 보입니다.
그 <영>이 ‘육신 ’을 쓰고 행합니다.
고로 <육>이 확신 있게 제대로 행해야
<본체 영>을 완전히 실감 나게 알게 됩니다.
그래야 성령이 꿈을 통해 ‘혼과 영’을 보여 주며 계시해 주십니다.
결혼하면 연애하던 때와 달리
<결혼 생활>을 하며 ‘결혼의 삶’을 살고,
취직하면 학생 때와 달리
<사회생활>을 하며 ‘그에 따른 삶’을 살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휴거됐으면
<휴거 생활>을 하며 ‘휴거의 삶’을 부지런히 살아야 됩니다.
<건축 허가>를 받았으면, 실제로 ‘집’을 지어야 됩니다.
안 지으면 허가가 취소됩니다.
<임신>을 했으면, 때가 됐을 때 ‘아이’를 낳아야 됩니다.
이와 같이 휴거된 이후에는
부지런히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휴거의 삶’이 중단되어 있는 자는,
허가를 받아 놓고 집을 안 짓는 자와 같고,
임신했는데 때가 지나도 아이를 못 낳는 여자와 같습니다.
또 아기를 낳긴 했는데, 안 크는 아기와 같습니다.
휴거됐으면 부지런히 ‘휴거의 삶’을 살면서 행하고,
부지런히 거두면서 살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성장기 때> 잘 먹고 부지런히 합당하게 운동하면
몸이 제대로 발육되고 각 지체의 균형이 제대로 잡힙니다.
<성장기 때> 잘 안 먹고 운동도 안 하면
각 지체가 표가 나게 아쉬운 곳이 많습니다.
조은 목사도 ‘성장기 때’ 이를 알고
성령도 성자도 많이 먹였습니다.
그러니 그때 키가 쑥쑥 컸고, 몸도 건강하게 됐습니다.
또한 산 타기를 하게 하고 수천 미터씩 뛰게 하면서
육신을 단련하게 했더니, 몸이 튼튼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말씀을 행하여 ‘정신과 영’을 만드니,
주 옆에서 더욱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만드는 것>이 그리도 ‘위대한 일’입니다.
<성장기 때> 빨리 행할 것을 행하여
‘육’도 아름답고 멋있게 만들듯,
‘마음과 생각’도 ‘혼과 영’도 멋있게 만들기 바랍니다!
성장기는 곧 ‘지금 휴거 때’입니다.
<휴거 때> 부지런히 말씀 듣고 기도하고 깨닫고 행하며,
주와 완전히 일체 되어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영>이 제대로 크고, 완전한 단계로 완성됩니다.
<키>도 ‘제때’ 못 크면,
더 이상 못 크고 평생 그 키로 살아야 됩니다.
<영>도 ‘제때’ 안 크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영원히 그 위치에서 끝납니다.
<영>이라고 무조건 크는 것이 아닙니다.
<의>로 ‘미가 완성’되고 ‘성장’됩니다.
영계에서 보면,
<육신>이 주의 말을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
<영의 키>도 작고 <영>이 성장하지 못한 채로 있고,
더러는 <영>이 불구자가 되어 있습니다.
<영의 권세>는 ‘영 자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영>이 ‘미’를 갖추고 있을수록 ‘빛’이 날수록
그만큼 ‘권세’가 있음을 뜻합니다.
<영>은 ‘육신’이 행하는 대로 한없이 변화됩니다.
<영>은 ‘육신’이 행하는 대로 ‘미와 빛’을 갖추어
권세를 나타내게 됩니다.
<영의 키>는 2~2.5m입니다.
그 정도가 돼야 ‘정상’입니다.
육같이 160, 170, 180, 190cm이면 작습니다.
<영>도 ‘몸매 자랑’을 합니다.
<영 자체의 미>가 ‘권세’이기 때문입니다.
<휴거 때, 성장기 때> ‘육’이 행해야 ‘영’이
그만큼 변화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육신>이 각 분야별로 날마다 조금씩 더 해야 됩니다.
그리하면 <자기 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빛이 나게 됩니다!
그러면 <영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뀝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선생은 ‘<육>은 남들같이 잘생기지 못했으니,
<영>은 최고로 멋있게 만들자!’ - 했습니다.
그때가 20대 전후였는데,
<내 영>을 자세히 보고 깨닫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행했습니다!
그리고 시대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기를
“<육>은 계속 늙어 가니,
부지런히 <육신> 가지고 주 뜻대로 행하여
<영>을 멋있고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어라.” 했습니다.
이 말은 ‘겉모습이 잘생긴 사람들’보다
‘겉모습이 자기 생각만큼 잘생기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며 가르쳤습니다.
<휴거의 영>은
정말 ‘아름답게, 빛이 나게, 권세 있게’ 만들어야 됩니다.
<하늘 신부>이니 그러합니다.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이니 그러합니다.
어떻게 <휴거의 영>을 아름답게, 빛나게, 권세 있게 만들까요?
<시대 말씀>을 가지고 ‘행함’으로 만듭니다!
기성 신앙을 했더라도 <이 시대 말씀>을 못 들었을 때는
<영>이 기껏해야 ‘흰옷’을 입고 다니며 만족했습니다.
계시록 3장 4절을 보면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몇 명’이 있는데,
흰옷을 입고 주와 함께 다닌다.” 했습니다.
<기성>에서는 ‘흰옷’만 입으면 ‘으앗! 와~~’ 했습니다.
그러나 <섭리역사>에서는 다릅니다.
우리는 ‘휴거의 영’이 되어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돼야 합니다.
고로 ‘흰옷’만 입어서는 안 되고
<영>이 ‘팔방미인’이 되어 ‘광채’가 나야 하며,
<영의 옷>도 ‘빛’이 나고
<영의 머리>에는 ‘금관’을 써야 됩니다.
기성에서는 ‘예수님의 옷’만 광채가 납니다.
휴거됐으니, 이제 부지런히 ‘휴거의 삶’을 살기 바랍니다.
그래야 ‘변화’됩니다. 그래야 ‘만들어’집니다.
<영의 광채>와 <영의 면류관>은 거저 뒤집어쓴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삼위와 주를 사랑하며 살고,
시대 말씀을 듣고 행했기에 얻은 것입니다.
섭리인들은 ‘하늘 신부’라서
‘영이 꾸민 것’도 다르고, ‘영의 광채’도 다르고,
‘삼위가 대하는 것’도 다르고, ‘주는 면류관’도 다릅니다.
<하늘 신부>라면, ‘그에 맞는 삶’을 삶으로
그와 같은 ‘권세와 축복과 사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역사에 와서 휴거된 자들>만 계시록에
“그들이 제사장이 되어 왕 노릇 한다.
1000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한다.” 말씀한 대로
영도 육도 그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영>뿐만 아니라 <육>도 휴거되어 삶을 살아가니,
<경제 축복>도 받게 됩니다.
그러나 행하고 뛰고 달려야 그만큼 ‘축복’을 받게 됩니다.
<추측>은 실감도 느낌도 기쁨도 약합니다.
<실체>가 실감도 느낌도 기쁨도 강합니다.
<실체>를 가지고 ‘실감’하면서 살려면,
→ 어서 ‘제2의 영’인 <육신>을 가지고 행하며
휴거의 생활, 휴거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머지 전체 힘 있게 외쳐 주고 마무리)
말씀을 들었으니, 이제 ‘한 가지’만 남아 있습니다.
바로 ‘매일 행하는 것’입니다.
열 번을 해서 안 돼도, 해야 됩니다!
자꾸 하면 ‘연습’이 되고 ‘훈련’이 됩니다.
고로 ‘유능’하게 되어 결국은 ‘성공’합니다.
만사의 모든 것이 ‘처음’에는 잘 안 됩니다.
범석 목사를 봐요.
처음부터 ‘돌’을 잘 쌓았습니까?
자기가 해 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자꾸 하니, 이제는 정말 잘합니다.
조은 목사를 봐요.
처음부터 ‘부흥강사’로서 외쳤습니까?
조은 목사도 ‘처음’에는 잘 안 돼서 울면서 노력했습니다.
자꾸 하니 ‘유능’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불을 뿜는 세계적인 부흥강사’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마다 청중을 뒤집어 놓게 됐습니다.
이제는 청중이 ‘만 명 이상’은 돼야 더 잘 외칩니다.
평신도도, 전도사도, 강도사도, 목사도
어린 자라도, 부족한 자라도 자꾸 하면 잘하게 됩니다.
모두 시대를 증거하라고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강력하게 역사하시니, 하면 됩니다!
자꾸 노력하고, 자꾸 행하면서 ‘성령의 불’을 받으면,
말씀을 아는 터전 위에 ‘부흥강사’가 되어
힘 있게 유능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모두 각자 개성대로 행하여
‘시대 유능한 신부 사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