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05.15 (일)
160515 주일말씀(모르는 자는 소경이다. 정리와 소각)
- 선포일
- 2016.05.15 (일)
- 성경 본문
- 서 4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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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5일 주일말씀>
모르는 자는 소경이다
정리와 소각
본 문 요한1서 4장 6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한국은 <스승의 날>입니다.
자기를 가르쳐 준 스승에게 감사하는 날이지요.
올해는 <교육의 해>이며 <차원을 높여 솟아오르는 해>입니다.
오늘도 ‘스승의 날’을 맞아 교육하고 가르쳐 줄 테니,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차원 높여 솟아오르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시작>
◎ 성령님은 ‘두 가지’를 보여 주시며,
그에 대해 계시하시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 첫 번째는 ‘모르는 자는 소경이다.’에 대한 계시이고,
두 번째는 ‘정리와 소각’에 대한 계시입니다.
<계시1>
◎ 첫 번째 계시입니다.
꿈에 내 혼이 보니 ‘한 여자 소경’이
내 뒤에서 나와 거리를 두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눈 뜬 사람들’이
그 소경을 따라서 같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옆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있었습니다.
그냥 두면 모두 절벽 아래로 뒹굴 것만 같아서,
그들 가까이 가서 나를 따라오게 했습니다.
꿈을 깨고 성령께 이 꿈에 대해 물었습니다.
성령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자 소경>은 ‘진짜 소경’을 말한다.
<눈 뜬 사람들>은 눈은 떴지만
‘생각과 행위가 소경과 같은 급’이라서
‘소경’과 함께 다니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모르면, ‘그 면의 소경’이다.
섭리인들이 이와 같다고 전체에게 해 준 계시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이 ‘어떤 것’을 모르면, ‘그 면의 소경’입니다.
그 부분을 제대로 알게 될 때, 눈을 뜬 격이 됩니다.
잠을 자고 있으면, 모르지요?
고로 모르는 자는 ‘잠을 자는 자’와 같고 ‘소경’과 같습니다.
이 시대에도, 섭리에도
눈은 뜨고 있는데 ‘눈 뜬 소경들’이 많습니다.
<교육의 해>에 주께 배우고 ‘소경’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어느 면에서든지 ‘소경’이면 제대로 못 보니,
제대로 하지 못하여 손해입니다.
만일 사업하는 자가 ‘그 면의 소경’이면,
큰 손해를 보고 망하게 됩니다.
가르치는 자가 ‘그 면의 소경’이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니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고로 ‘소경’에서 벗어나려면,
<눈 뜬 자>와 같이 행해야 됩니다.
곧 ‘육도 영도 사리에 밝은 눈뜬 자’와 같이 행해야 됩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그 면에서 모르면, 자기도 소경이 되어 소경을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면에서 사고가 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세요.
항상 <구시대 소경들>이 모르고,
‘하나님의 새 역사를 반대하는 이론’을 펴며 막았습니다.
<악평자들>도 모르고 악평하니 ‘소경’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새 역사를 반대하는 이론’을 펴며
새 역사를 핍박하고 방해합니다.
섭리사도 보세요.
<모르는 소경들>이 항상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작은 문제가 아닌,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고로 소홀히 보면 큰일입니다.
<눈뜬 자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들은 ‘말씀과 성령 역사, 휴거 역사, 생명 역사’를 일으킵니다.
<소경>이 ‘그릇된 사고’로 집에 불을 지릅니다.
그 집은 ‘개인 마음의 집’입니다.
고로 ‘무지의 사고’로 그들의 이론을 받아들이면,
자기 마음의 집에 불이 나서 다 타 버리게 됩니다.
항상 <모르는 자들>이 각종 문제를 일으키고 사고를 내니,
선생은 항상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놓고 ‘전체’를 교육하면서,
모두 <말씀>으로 가르쳐 눈을 뜨게 합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을 듣고
자기가 소경 같은 생각을 했는지 깨닫고 돌이키기 바랍니다.
자기가 ‘어떤 면의 소경’인지 모르면, 못 고칩니다.
소경 된 채로 뛰면, 안 보이는 상태에서 하려니 얼마나 답답합니까?
말씀 듣고 깨닫기 바랍니다. 알아야 고칩니다.
성자의 말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자는 모릅니다.
성자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야 됩니다.
사람의 지체를 보세요.
각 지체가 있지만, 모든 것은 <머리>가 압니다.
<머리>가 알고 ‘각 지체’에 할 일을 지시하게 됩니다.
<머리>만 확실히 압니다.
<지체>는 <머리>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평생 모르고,
모르니까 행하지 못하여 그로 인해 받는 영광을 뺏기고 삽니다.
<손>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면,
손은 그로 인한 영광을 뺏기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 <머리>는 ‘주’이고,
따르는 자들은 모두 ‘각 지체’와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오직 <보낸 자>만이 ‘그 뜻’을 알고 세상에 전합니다.
고로 그가 ‘머리’입니다.
그러니 주와 일체 되어, 주가 하는 말을 믿어야
소경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을 모르면 ‘소경’입니다.
머리와 지체를 제대로 모르면 ‘소경’입니다.
성자를 모르고, 그 심정을 모르면 ‘소경’입니다.
시대 진리를 모르면 ‘소경’입니다.
하나님의 자연성전을 모르면 ‘소경’입니다.
어떤 사건을 모르고 행하면 ‘소경’입니다.
꿈의 계시를 못 풀면 ‘소경’입니다.
만물 계시를 못 풀면 ‘소경’입니다.
일하는 자들을 놓고 올바로 표현해서 부르지 못하면 ‘소경’입니다.
말을 함부로 하는 자도 ‘소경’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을 보고,
“노가다다. 저것은 아무나 하는 쉬운 일이다.” 합니다.
<노가다>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막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고로 그 말 자체가 안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표현을 ‘자연성전의 일을 하는 자들’에게 하며,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은 ‘어떤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을 보고 하지만,
결국 그로 인해 ‘거기에 연결된 자’ 모두
그 말에 해당되는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구상하고 보호하고 함께하셨고,
선생은 하나님의 구상에 따라 자연성전을 개발했고,
그에 따라 섭리인들도 같이 동참하고,
조은이도 맡긴 일들을 했습니다.
만일 ‘자연성전의 일’이 노가다이면
그와 연결된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선생도
섭리인들도, 조은이도 모두 ‘노가다’를 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듣고, 진정 회개하여 ‘소경’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몇 사람만 보면서 지적하지 말고,
연결되어 일한 삼위와 섭리인 모두를 생각해서 모두에게 말씀하여
‘앞 못 보는 소경’들을 고치자!”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진정 회개해야 ‘소경’을 면하게 됩니다.
섭리인들, 다시는 그런 말을 쓰면 안 됩니다.
사회에서도 그런 막말은 함부로 안 씁니다.
도로 공사하는 자들, 건물 건축자들은 ‘예술가’입니다.
그들이 일하니 우리 모두 집에서 살고, 도로를 달리고,
하나님 성전에서 귀한 말씀을 듣고, 예배도 드립니다.
요즘은 목공 일을 하고, 칠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노가다’라는 표현을 안 합니다.
<인테리어>를 한다고 하지요!
하물며 하나님의 구상대로 행하는 자연성전 건축가들은
최고의 예술인들 아니겠습니까?
<자연성전 건축과 개발>은
삼일일체와 주와 전 세계 섭리인들이 같이 하는데,
그런 막말을 하면 정말 안 됩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됩니다.
함부로 ‘말의 화살’을 날리다가
그 화살을 하나님과 성령님께도 쏘게 되고,
성자 주에게도 쏘게 되고, 조은이에게도, 범석이에게도 쏘게 됩니다.
<자연성전>은 ‘하나님의 1000년 역사 최고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만든 자들을 ‘노가다’라고 표현하면
하나님의 심정이 상하시니,
하나님은 <말씀>을 내보내시고
그 ‘말씀’이 그들을 ‘심판’하게 됩니다.
<언어의 길>도 배워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자연성전의 일을 하는 자들을 표현하는 언어’를 주겠습니다.
앞으로는 ‘건축가, 최고 예술가’라고 표현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늘 구상을 주시며,
일하는 자들과 ‘매일’ 함께하십니다.
그 일을 하는 ‘한 사람’만 보고 판단하고 말하지 말아요.
그러면 ‘말의 화살’을 잘못 날려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 일이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꼭 확인하고 말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선생이 시킨 일’을 하다가
지도자한테 왜 그런 것을 하냐고 혼났습니다.
그 일은 선생이 그 사람을
오랫동안 가르치고 설득해서 겨우 시작한 일인데,
지도자가 그것을 막은 것입니다.
고로 ‘연결된 선생’을 막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일을 하는 한 사람’만 보지 말아요.
‘그와 연결된 자’를 보고 판단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소경>에 대해 한 가지만 더 말씀하고,
<정리와 소각>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선생에게 편지할 때 ‘자기 이름’을 숨기고
편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도 ‘소경’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숨기고 ‘익명’으로 편지하여
형제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이름’ 대신 ‘남의 이름’을 써서
여러 가지를 말합니다.
그러면 죄 없는 자가 억울함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결국 누가 그 편지를 썼는지 기어코 찾아냅니다.
지금까지 다 찾아냈습니다.
그러나 말을 안 할 뿐입니다.
누구인지 알고, 다 처리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전환 - 계시2>
◎ 두 번째 계시입니다.
이것은 <꿈>에 ‘혼’을 통해 주신 계시가 아니고,
<생시>에 ‘내 육이 겪은 것’을 통해 깨닫게 하신 계시입니다.
선생의 방은 정말 비좁은데,
이것저것 늘어놓은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한 시간 동안
바닥에 늘어놓은 것들을 다 <정리>했습니다.
방이 정돈되니 깨끗했고, 공간이 생겨서 그나마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 말하기를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 환경에서
내가 방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에요.
모두 평소에 사용하는 것들이니
<정리 정돈>이 상책이에요.” 했습니다.
이때 성령님은 “그것은 <정리>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
“네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 또 방에 꺼내 놓고 해야 하니,
그때는 또 비좁은 방에 물건들이 가득 차게 된다.
<정리>만 하지 말고, <소각>해라.
<소각>은 ‘일을 다 하여 끝내는 것’이다.
그래야 깨끗해진다.” 하셨습니다.
결국 이날은 ‘정리한 것들’을 놓고
하루 종일 극적으로 일을 하여 끝내고 <소각>시켜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니, 방에 아예 빈 공간이 생기게 됐습니다.
다음 날 성령님은
“이제 <소각>됐구나. 아예 공간의 여유가 생겼다.
아예 해서 없애 버리니, 속까지 시원하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정리와 소각>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정리>는 ‘우선 급한 대로 하는 임시 처리 방법’이고,
<소각>은 ‘근본을 해결한 것’입니다.
청소하여 쓰레기를 집 한곳에 모아 놓고 쌓아 놓은 것은
<정리>에 불과합니다.
그대로 두면, 그로 인해 냄새가 나고 집에서 못 삽니다.
때가 되면 쓰레기 수거하는 날에 내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소각>입니다. 이렇게 해야 깨끗해집니다.
자기 할 일을 계획만 해 놓고 행하지 않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정리>입니다.
고로 지금은 깨끗하지만, 곧 살다 보면 어지럽혀집니다.
<소각>해 버려야 됩니다.
<소각>은 ‘자기 할 일을 하여 없애는 것’입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하겠다고 결심만 한 것은 <정리>입니다.
고로 ‘근본 해결’이 안 됩니다.
그러니 또 밀리고, 다시 어지럽혀져 머리가 아프고,
근본의 변화를 이루지 못한 채 원상태로 돌아옵니다.
행해서 없애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소각>입니다.
<회개>도 하겠다고 마음먹은 상태는
‘쓰레기를 버리려고 정리하여 집에 쌓아 놓는 격’입니다.
정말 회개하여 없애야 ‘쓰레기를 소각한 것’이 되어
다시 그로 인해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리만 해 놓은 것>은 또 움직이고 일하면, 흐트러집니다.
<안 좋은 생각>도 그러합니다.
자기 뇌에서 안 좋은 생각을 버리겠다 마음만 먹은 것은
<정리>입니다.
그러면 생활할 때 다시 ‘안 좋은 생각’이 튀어나오게 됩니다.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고쳐야 <소각>되어 완전합니다.
나쁜 성격도, 성질도, 분노도, 혈기도, 거짓도, 속이는 것도
안 하겠다고 마음만 먹은 것은 <정리>입니다.
소각이 안 됐으니, 생활할 때 또 튀어나옵니다.
휴거됐어도 ‘육신’을 가지고 땅에서 사니,
육이 살아 있는 동안은 ‘육신 성격의 영향’을 받고 삽니다.
나쁜 성격을 소각시키지 않으면, 휴거됐어도 계속 튀어나옵니다.
고로 ‘자기 완전함’과 ‘휴거’를 방해합니다.
아예 고치고 없애는 것이 <소각>입니다.
<소각>해야, 그때부터는 아예 없으니 안 합니다.
검정 옷을 안 입으려면, 아예 버려야 됩니다.
‘안 입어야지.’ 하고 옷장 속 깊이 넣어 <정리>해 두면,
그 후에 여건이 됐을 때 다시 꺼내 입게 됩니다.
저마다 ‘자기 뇌의 생각 속에 저장된 것’이 있습니다.
또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저장된 것,
각종 웹툰과 소설, 각종 음란물, 썩는 문화들이 있는데
<정리>만 해 놓고 ‘때가 되면 꺼내 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혹은 <정리>만 해 놓고 ‘절제하고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상태이면, 때가 되면 또 꺼내 보게 됩니다.
<소각>해야 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병이 났을 때도
약 먹고 임시로 진정시키면 <정리>에 불과하여
후에 그로 인해 또 문제가 발생됩니다.
수술하든지 오랜 시간 동안 치료하여 근본적으로 낫게 해야
<소각>한 것이 되어 아예 병이 낫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신앙 속에서도, 삶 속에서도 ‘옳지 않은 것들’은
머리에서 <정리>만 하지 말고 아예 <소각>시켜야 됩니다.
이런 자가 극적인 단계에 오른 자이고,
그 면에서 근본으로 휴거된 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음식을 먹겠다고 각종 음식을 식탁에 갖다 놓았습니다.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습니다.
→ 이 단계는 <정리 단계>입니다.
입에다 넣고 씹어서 삼켜야 <소각>입니다.
그때, 영양분이 흡수되어 살이 되고 피가 됩니다.
만사에 이렇게 ‘소각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믿습니까?)
<휴거>도 ‘정리 단계, 소각 단계’가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역사하심과 주의 희생과 공적으로
2015년 3월 16일 전능자 성자가 떠나실 때,
준비된 자들을 휴거시키면서 결국 다 휴거시켰습니다.
<300선 휴거>입니다. 이로써 <휴거 정리>를 했습니다.
이제는 본인이 깨닫고 행하며 ‘소각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휴거를 상실하지 않고, 그래야 완전하고,
그래야 계속 차원을 높이며 휴거를 완성합니다.
이것이 <휴거 소각 단계>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두 ‘소각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주가 끌어 줘야 따라오는 삶에서 벗어나,
자기가 완전히 주를 믿고 좋아하며 따르는 삶!
자기가 먼저 삼위와 주를 찾는 삶!
자기가 먼저 삼위와 주를 사랑하는 삶!
믿음과 사랑이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행하며 차원을 높이는 삶!
이것이 ‘소각의 삶’입니다.
자연성전 백보좌 형상 <야심작>같이 완성해야 <소각>입니다.
<정리와 소각>에 대한 계시는
‘할 것을 하고 완성하여
만사의 모든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라는 계시’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주의 말에 절대 순종하지 않고
“예, 맞습니다.”라고만 하는 것은 <정리>에 불과합니다.
결국 생활할 때 ‘자기 주장’이 나와서
주의 말에 토를 달며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완전히 믿고 따름으로 ‘소각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주의 말에 ‘아멘 하는 자’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
그렇게 주가 말씀을 주는 대로 믿고 아멘, 아멘 하며 행한 자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됐습니다.
이는 주의 말을 절대 믿고 행함으로
주와 생각이 일체 되어 버렸기에
그 행위로 인해 그 ‘영’이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된 것입니다.
올해 <3.16 휴거 날>에도 ‘그날 최고 정한 시간’까지
각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과 행동 상태’를 봤습니다.
극치의 순간까지 보고 ‘휴거 차원’을 결정했습니다.
어떤 영은 그날 휴거될 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분위기를 보고 함께하다가 뒤집어져서
마치 목 탈 때 물 마시듯 사랑 충만하여
순간 주와 생각이 일체 되었습니다.
고로 <영>은 그 자리에서 ‘신부 옷’을 입고 휴거되었고,
그 <육과 혼>은 땅에서 그 기쁨을 누렸습니다.
<300선 휴거>는 이와 같습니다.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살 생각도 안 했는데,
순간 감동되어 지갑을 털어서 물건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휴거될 영’이 아니었는데
현장에서 감동되어 ‘휴거’를 결정하고,
못 한 것들은 성자와 주의 사랑과 조건으로 다 청산시키고
휴거시켜 데리고 갔습니다.
또 다른 면으로 <300선>에 대해 설명해 줄게요.
결혼을 위해 만남을 가진 남녀가 광장에서 만나기만 하고,
아직 ‘결혼’은 결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서로 이야기가 잘되면 생각이 바뀌면서
순간 홀연히 ‘결혼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단계가 ‘약혼’입니다.
이와 같이 <휴거 300선>도
그 단계에서 순간 생각이 바뀌어 결정하여 데리고 가면서
‘결혼을 위한 약속, 곧 약혼, 곧 300선’이 결정됩니다.
그 후에는 ‘다른 차원’이 많으니
거기서 ‘공적’도 쌓으면서 ‘행할 것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하면서 차원을 높이며 ‘휴거를 완성’하게 됩니다.
저마다 매일 <휴거>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자꾸 관심을 가져야 간절해지고, 그에 따른 삶을 살게 됩니다.
세상 어떤 일이든, 휴거든 ‘관심’이 없으면,
매번 그 자리에서 맴돌게 됩니다.
<휴거>에 ‘관심’을 가지고 ‘전심’으로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근본이 변화’됩니다.
잠깐 행하다 말고 전심으로 행하지 않으면,
<정리>만 한 것이라서 ‘임시’로만 변화된 것입니다.
전심으로 행해야 <소각>이 되어 ‘근본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되면, ‘없던 것’이 생깁니다.
고로 <변화>는 곧 ‘건설’이며 ‘개발’입니다.
마른 땅을 1m 파고, 또 파서 2m까지 파니 변화되어
없던 ‘샘’이 생기고, 거기서 물이 나와 ‘물’도 생겼습니다.
이와 같이 만사에 얼마나 행하느냐에 따라 변화됩니다.
육신의 직책은 ‘그 일을 하기 위한 명칭’입니다.
목회를 하면 ‘목회자 명칭’이 주어지고,
운전을 하면 ‘운전수 명칭’이 주어집니다.
<명칭>을 보고 <휴거 선>을 판단하면 안 됩니다.
어떤 직위, 직책, 명예에 상관없이
<휴거>는 자기 행위대로, 자기가 행한 만큼 이루어집니다.
섭리사에 직책이 없는 평신도들도 많습니다.
누가 물어보면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위와 직책은 없어도 ‘높은 선’으로 휴거된 자들이 많습니다.
왜요? <휴거>에만 전념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휴거>는 직위, 직책, 명칭, 명예 상관없이
자기 행위대로, 자기가 행한 만큼 합당하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올해 섭리사는 전 세계적으로 합당하게 갖췄습니다.
올해 3.16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전달하여
전 세계적으로 이날을 알고 준비했고,
또 핵심지에서도 하나 되어 행했습니다.
그로 인해 <큰 물살>이 일어났고,
<섭리사 전체>가 ‘휴거의 혜택’을 보게 됐습니다.
<큰 물살>이 일어나니,
그 물살을 따라서 ‘그 위력’으로
삼위일체가 주와 함께 ‘수만의 영들’을 정화시키고 변화시켜
모두 휴거되고 휴거의 차원을 높이게 됐습니다.
마치 나라와 나라 간에 ‘큰 물건’의 거래가 결정되니,
그로 인해 ‘작은 물건’까지 수출이 결정된 격입니다.
올해 3.16 휴거도 그러했습니다.
마치 ‘큰 군함’이 대량으로 수출되니,
그에 따른 ‘작은 부속품들’도 같이 대량 수출이 결정된 격입니다.
올해 3.16 휴거도 이같이 되었습니다.
건물을 살 때도 ‘큰 호실’ 계약이 결정되면,
‘작은 호실’도 그 건물에 속하니 파는 자가 같이 사라고 합니다.
결국 같이 사서 합치는 격입니다.
합치니, <작은 것>도 같이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올해 3.16 휴거도 이러했습니다.
작년 3.16 첫 번째 휴거 날에는 몰라서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두 번째에는 알 것을 알고 철저히 준비했습니다.
이로써 ‘허다한 무리’가 휴거된 것입니다.
<자기 공적>이 없으면,
‘그를 사랑하는 자가 세운 공적’과
‘전체의 공적’으로 같이 얻게 됩니다.
가령 빈손으로 야외 소풍을 갔어도
단체 식사 시간이 되면, 같이 먹고 마시게 됩니다.
올해 3.16 휴거도 이러했습니다.
이로써 올해는 <휴거된 자들>도 많고
<700선으로 휴거 차원을 높인 자들>도 많습니다.
고로 이제부터 지도자들은
그만큼 섭리인들을 잘 가르치고 잘 지도해야 됩니다.
어떤 자는 <자기 휴거>를 분위기로 대강 알았고,
어떤 자는 느낌으로 알았고,
어떤 자는 주의 말에 순종하며 간절하게 행하다가 알았고,
어떤 자는 휴거를 시인하며 깊이 감사하다가 알았고,
어떤 자는 만물 계시를 통해 알았고,
어떤 자는 말씀을 들으면서 알았고,
어떤 자는 찬양을 부르다가 가사가 확 와 닿으며 알았고,
어떤 자는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행하다가 알았고,
어떤 자는 기도하여 물어보고 알았고,
어떤 자는 믿음으로 믿고 행했습니다.
그날 <자기 육>을 조금만 더 신령하게 준비했다면
휴거 날 <육>이 귀히 쓰였을 것이고,
<자기 육>을 통해 ‘자기 영의 휴거’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직도 <자기 휴거>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휴거됐다고 <지식>으로만 알면 ‘확신’이 없습니다.
‘땅의 성자를 절대 믿고, 그가 하는 말씀을 믿고 행하며,
삼위일체를 절대 믿고 사랑하며 일체 되어 살면
<휴거된 것>이다.’하는 것은 - ‘지식의 확인’입니다.
육으로도 기도하고, 혼으로도 교통하며 물어보기입니다.
수백 번, 수천 번 물으면
성령도 주도 ‘한 번’이라도 대답해 줍니다.
그래야 답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안 합니까? 물어봐요!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물어봐야 됩니다.
<추측>만 하지 말고 <지식>으로만 확인하지 말고,
실제로 육으로도 혼으로도 교통하며 <확인>해 봐야 됩니다.
자기가 ‘사건의 사연과 의사’를 밝히며 확실하게 물어봐야
그에 해당되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며 깨닫게 해 줍니다. (알겠지요?)
모르면 ‘소경’입니다.
휴거됐다 생각만 하는 것은 <정리>입니다.
긴가민가하면서 뇌에 이것저것 쌓아 놓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활하다 보면, 다시 생각이 어지러워집니다.
아예 확인하고 아는 것이 <청산>이며 <소각>입니다.
한두 번 비행기를 타 본 사람은
지금 비행기를 타고 가도 실감이 안 나서
‘안 탄 것 같다.’ 생각됩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영이 휴거되니,
육은 ‘내가 휴거 안 됐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영>이 휴거되어 황금성에 거합니다.
<육>은 땅에서 휴거됐으니, 매일 ‘휴거의 삶’을 살아야
휴거를 실감하고 확인하게 됩니다.
<휴거>는 ‘자기 행위와 삶’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휴거된 자>라면, ‘휴거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휴거됐어도 계속 <상위 급>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이것이 이제부터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리함으로 변질되지 않고 헤어지지 않는
<완벽한 휴거>를 이뤄야 됩니다.
결혼했어도 이혼하고 헤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휴거>도 ‘하늘과의 결혼’과 같습니다.
휴거된 후에 삼위와 주를 모시고 섬기며 사랑이 열렬해야
<완전한 휴거, 완벽한 휴거, 휴거의 완성>을 이루어
영원히 휴거를 상실하지 않고, 삼위와 주와 헤어지지 않습니다.
고로 이제부터는 <정리의 삶>에서 끝내지 말고,
<소각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곧 “하겠다!” 말만 하고 마음만 먹고 계획만 하는
<정리의 삶>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정리>만 하면, 때가 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옵니다.
자기 할 일을 해서 없애 버리고
삼위와 주를 모시고 섬기고 사랑하며
자기를 더욱 완전하게 만들어 버리는
<소각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소각>을 해야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변화>로 인해 ‘없던 것’을 얻게 되고,
더욱 ‘차원’ 높여 나아가게 됩니다.
큰 산도 잡풀과 잡목만 <정리>하면,
때가 되면 다시 잡풀과 잡목으로 뒤덮여 버립니다.
아예 큰 산을 뭉개어 평지로 만들고
거기에 ‘집’을 지어야 됩니다.
그러면 완전히 변화되어 다시는 ‘산’이 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아예 행할 것을 행해 버리고
자기를 만드는 것이 <소각>입니다.
그러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때부터는 ‘완전한 변화, 새로운 세계’입니다.
이와 같이 ‘청산하고 소각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정리>만 하고 <소각>하지 않는 자들은
다시 그러한 여건과 상황이 닥치면 방에 또 다 늘어놓습니다.
아예 없애고 소각하면, 계속 깨끗한 방을 유지합니다.
이와 같이 ‘죄 회개’도 그러합니다.
<정리>만 하지 말고, 완전히 <소각>해야 됩니다.
<자기만 아는 죄>가 있습니다.
이런 죄를 짓고 스스로 회개하고 끝내면,
그 죄는 ‘자기 장부’에서만 없어지고 ‘스스로’만 기쁩니다.
주께 고하여 회개하지 않으면,
주는 그가 회개한 것을 모르니 인정하지 않고
‘주의 장부’에는 죄의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이것은 <정리>에 불과합니다.
고로 때가 되면, 다시 늘어놓게 되고 지저분해집니다.
고로 계속 ‘죄인’입니다.
주께 회개하면 ‘자기 장부’에서도 죄가 없어지고,
‘주의 장부와 하나님의 장부’에서도 죄가 없어집니다.
고로 같이 기뻐하게 됩니다.
이것이 <소각>입니다.
소각하니, 그때부터 깨끗합니다.
고로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죄의 내용’을 알리기 곤란하니,
무작정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다 고해야 완전히 소각됩니다.
주께 고하면, 주가 알고 용서해 주고 그 일을 놓고 기도해 줍니다.
또한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도록 간구해 줍니다.
고로 주께 고하며 회개하고 용서받고,
죄를 완전히 <소각>하기 바랍니다.
체면 때문에 말로 고하지 않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는 마치 바닥 청소를 할 때 ‘마른 걸레로만 닦은 격’입니다.
고로 완전히 깨끗하지 않습니다.
먼저는 쓸어 내고, 그다음에 ‘물걸레’로 닦아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마른 걸레’로 닦는 것입니다.
<물>은 ‘말씀’이며 ‘주’입니다.
먼저 물걸레로 닦듯 말씀을 듣고 <주>께 고하여 해결하고,
그다음에 마른 걸레로 닦듯 <자기>가 온전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깨끗하게 해라!
마음만 먹지 말고, 계획만 하지 말고, 말만 하지 말고 해라.
이제부터는 ‘소각의 삶’이다.”
◎ 말씀 마쳤습니다.
* <소경>과 <정리와 소각>에 대한 더 깊은 잠언은
이번 주 새벽에 계속 전해 주겠습니다. (깊은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