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06.05 (일)
160605 주일말씀(사람도 환경도 대하고 쓰기 달려 있다)
- 선포일
- 2016.06.05 (일)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5장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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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05-주일말씀(사람도_환경도_대하고_쓰기_달려_있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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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5일 주일말씀>
<사람>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고,
<환경>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다
본 문 요한복음 5장 24절 (성경 봉독자는 밑줄 친 부분 힘 있게 외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① 내 말을 듣고, ②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지난 6월 1일은 섭리역사 시대 복음을 외치기 시작한 지
38주년을 맞아 <알파절>을 보냈고,
성령의 약속대로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통한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고,
<시대 복음>을 가지고 <이 시대와 주를 증거하는 불>이
날마다 생활 속에 활활 타오르기를 축원합니다.
<시대 복음>을 외치며 ‘증거’하고 ‘전도’해야
<섭리역사>가 계속 커지고,
그로 인해 <시대 주를 따르는 사람들>도 웅장한 변화를 이룹니다.
◎ <증거와 전도>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으니, 곧 ‘관리’입니다.
곧 ‘관리’에 대해서도 말씀이 나갈 것입니다.
◎ 오늘은 그보다 먼저 전할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사람>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고,
<환경>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다.’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새벽에 기도하고 ‘오늘은 어떤 말씀을 주시려나?’ 하고,
하나님과 성령께서 계시를 주시면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펜 끝’이 ‘내 몸’을 찔렀습니다.
따끔하여 놀라고 있을 때,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사람들도 ‘대하기’에 달려 있다.
<볼펜 끝>으로 대하면 찌르게 되고,
<볼펜의 부드러운 쪽>으로 대하면 찔러도 안 아프다.”
(하셨습니다.)
상대에게 ‘어떤 모순’이나 ‘고칠 것’이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은 <볼펜 끝>으로 대하듯 ‘날카롭게’ 대하여,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상대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무서우니, 가까이 대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볼펜 옆면>으로 대하듯 ‘부드럽게’ 대하여
스스로 깨닫게 하고 느끼게 하여 스스로 고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안 무섭고 부드러우니, 가까이 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유익’을 위해
형제들에게 피해를 주며 행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유익’을 위해
주의 이름을 이용하고 팔아서 믿게 하여 피해를 줍니다.
이런 자들은 교회를 좀먹는 자들입니다.
결국에는 다 들통 납니다.
<거짓>이 ‘남’은 속이지만, ‘자기 양심’은 못 속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성령님’은 못 속입니다.
<자기가 행한 일>은 남은 다 몰라도 ‘자신’은 알듯,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아십니다.
섭리사에 가끔씩
술 먹는 자, 담배 피우는 자, 이성을 사귀는 자들이 있습니다.
안 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놀랄 말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께는 두려워서 말을 못 합니다.
그로 인해 ‘주’를 가까이하지 못하고 자꾸 멀어집니다.
교회나 자기 사명지에 있을 때는 안 하는데,
자기 직장 동료나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어울리면서 합니다.
<그런 환경>에 처하면,
그 환경을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이성 사귀는 곳’으로 대합니다.
그러면서 선생에게는 ‘자기 좋은 것’만 보고합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어떻게 되겠습니까?
<은혜의 강>이 마르고 맙니다.
성령도 돕지 않으시고, 그 행위를 꾸짖으십니다.
주도 꾸짖으며, 잘되려거든 먼저 행위를 온전하게 하라고 합니다.
꾸짖을 때는 <볼펜 끝>으로 대하듯 ‘편지’로 직접 꾸짖기보다,
<볼펜의 부드러운 쪽>으로 대하듯
‘그 양심’을 꾸짖으며 깨닫게 합니다.
다 속여도 ‘자기 양심’은 못 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모르면, ‘그로 인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사탄이 그로 인해 고통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장로>나 <직급이 있는 자들>이나 <키우는 자들>이 그러하면,
성령도 주도 정말 노여워합니다.
이런 자들은 ‘본’이 안 되니,
주가 쓸 수도 없고 키울 수도 없습니다.
<주>를 알면 ‘머리’로만 안다 하지 말고,
주의 말씀을 행하며 ‘행위’로 시인해야 됩니다.
고로 이들은 주를 안다고 하나 ‘지식’으로만 알지,
‘행위’로는 주를 시인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또한 주의 일을 하더라도 ‘자기 유익’을 위해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환경>에 처하면 형제들과 주를 속이고,
그 환경을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이성을 사귀는 곳으로 대합니다.
<자기가 처한 환경>을 ‘죄짓는 환경’으로 대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아무도 모르겠지.’ 하며 태연합니다.
그렇다면, ‘징조’를 보여 주겠습니다!
그러니 뜨끔하게 ‘징조’를 받기 바랍니다.
휴거됐어도 ‘이로 인해’ 휴거를 상실해 가니 안타깝고,
어떤 자는 ‘이로 인해’ 아직 휴거되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굳이 술, 담배, 이성 문제가 아니더라도
각자 ‘고쳐야 할 모순’이 있습니다.
‘그 모순’으로 인해 휴거를 상실해 가기도 하고,
‘그 모순’으로 인해 휴거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고로 ‘그 영’을 살리기 위해 꾸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꾸짖을 때는 <볼펜 끝>으로 대하듯 하기보다,
<부드러운 쪽>으로 대하듯 하며 ‘양심’으로 깨닫게 합니다.
다 속여도 ‘자기 양심’은 속이면 안 됩니다.
스스로 ‘양심’으로 깨닫고 꼭 고치고 소각해야 됩니다.
<볼펜 끝>으로 대하듯 ‘편지’해서 직접 말하지 않았다고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볼펜 옆면>으로 대하듯 ‘양심’으로 깨우쳐 줍니다.
이것은 ‘그 양심’에 대고 말씀한 것입니다.
부드럽게 대했지만, ‘가장 강력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고로 꼭 고쳐야 됩니다.
그래도 안 고치고 계속하는 자는
‘양심에 화인 맞아 감각이 없는 자’입니다.
이 시간 <양심에 화인 맞아 감각이 없는 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양심’에 가책이 되도록 깨닫게 하십니다.
그런 자들이 가끔씩 있지만,
그런 자들이 섭리사와 교회를 좀먹으니
어서 고치고 소각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야 섭리사가 더욱 깨끗해지고 빛이 납니다.
그로 인해 축복이 막히지 않습니다.
한쪽에서는 ‘이 시대 신부’답게
어려워도 힘들어도 깨끗하게 하면서 목숨 다해 뛰는데,
한쪽에서는 자기 좋은 대로 막 행하면 되겠습니까?
어서 ‘양심으로 깨닫게 하는 말씀’을
뜨끔하게 듣고 소각하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그들이 ‘내 앞에서 행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자기는 ‘숨어서’ 하지만,
영계로 보면 ‘선생 앞’에서 그리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대하기’에 달려 있고,
<하나님>도 ‘대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으로 대하는 것이냐고요?
<자기 행위>로 대하는 것입니다.
잘 대해 달라고만 하지 말고,
자기가 상대를 잘 대해야 상대도 잘 대합니다.
하나님께 축복만 달라고 하지 말고,
<자기 온전한 행위>로 하나님을 대해야 하나님도 주십니다.
대하는 대로 확실히 표가 납니다!
안 하겠다고 <정리>만 하고,
직장 동료나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면 또 합니다.
“<정리>만 하지 말고 <소각>해라. <소각의 삶>을 살아라.”
했는데도 아직까지 <소각>을 안 하니, 또 반복해서 하는 것입니다.
<소각>을 안 하면, 더럽습니다.
쓰레기도 ‘정리’만 하고 ‘소각’을 안 하면
그로 인해 오염되고, 각종 해충들이 생깁니다.
죄도 그러합니다. 반드시 ‘소각’해야 됩니다!
<소각>을 안 하면, 더러워서
하나님도 성령도 주도 가까이 못 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은 ‘더러운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고로 항상 깨끗하게 하십니다.
당장 안 고치면,
다른 사람이 ‘자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본인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세워 섭리하십니다.
주도 ‘제2의 후자’를 세웁니다.
<사람>도 <하나님>도 <환경>도 대하고 쓰기에 달렸는데,
잘못 대하고 잘못 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휴거를 상실해 가고, 휴거되지 못하고,
축복을 받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부터 하는 말씀을 더 깊이 잘 듣기 바랍니다.
<쓰레기>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냥 버리기도 하고, 재활용하여 귀히 쓰기도 합니다.
<초막>이라도 <감옥>이라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습니다.
<작은 집>이라도, <작은 교회>라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습니다.
공부 방으로 대하고 쓰면 ‘공부 방’이 되고,
기도 방으로 대하고 쓰면 ‘기도 방’이 되고,
말씀 방으로 대하고 쓰면 ‘말씀 방’이 되고,
연구실로 대하고 쓰면 ‘연구실’이 되고,
수도생활 하는 곳으로 쓰면 ‘수도생활 환경’이 됩니다.
구조나 환경은 안 좋아도 대하고 쓰는 대로 얻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수준 낮은 생각으로 나쁘게 쓰면,
그 좋은 환경이 <감옥>만도 못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깊이 기도하고, 서신을 쓰고, 말씀을 썼습니다.
그것이 ‘신약성경의 일부’가 되어
2000년 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후손들에게 전하며 깨우쳐 줬습니다.
선생도 <이곳>에 있으면서
‘섭리인 수만 명이 써도 못 쓰는 책’도 쓰고
‘수만 잠언’을 쓰고,
‘수천 편의 말씀’을 써서 쉼 없이 영의 양식을 먹이고,
‘각종 수백 가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이 이같이 행하니
“역시 <환경>도 대하고 쓰기에 달렸구나.” 깊이 깨닫고 말씀합니다.
모두 ‘행해야!’ 자기에게 해당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몸>도 <자기 환경과 거처>도 <땅>도
누가 최고로 귀히 대하고 쓰는지 보십니다.
<그 귀한 몸>을
- ‘담배 피우는 소각장’으로 삼고 사는 자가 있고,
- ‘썩은 술 단지’로 삼고 사는 자가 있고,
- ‘썩는 이성 타락의 몸’으로 삼고 사는 자가 있고,
- ‘생각을 좀먹게 하는 미디어의 몸’으로 삼고 사는 자가 있고,
- ‘자기가 좋아하는 몸’으로 삼고 사는 자가 있습니다.
선생은 기도할 때, 그들이 가는 길을 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물질, 경제, 그들의 꿈이 깨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왜요?
그 길로 가면서 형통하면,
그 형통함을 가지고 ‘사망’으로 더 빠르게 가기 때문입니다.
<사망으로 가는 형통>을 막아야 됩니다.
그렇게도 “술 먹지 말아라. 담배 끊어라.” 했는데도
안 끊고 계속한 사람들 중에서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술 먹고 가다가 차에 치여 죽고,
간암으로 죽고, 폐암으로 죽은 자들이
선생이 하지 말라고 경고한 사람들 중에서 30명이나 됩니다.
술, 담배가 뭐 그리 좋아서 합니까?
세상에서는 “하루에 와인 한 잔 마시면 건강에 좋다.” 하지요?
아닙니다.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술은 한 잔만 마셔도 그 속에 ‘발암 물질’이 있으니,
술 한 잔도 안 좋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폐암 환자의 90% 이상>이 모두 ‘흡연자’입니다.
“나는 담배 피워도 괜찮다. 술 먹어야 좋다.
나는 아무 이상 없다.” 하지 말고,
경고할 때 잘 듣고 ‘자기 몸’을 귀히 쓰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 앞에도
떳떳하게 가까이 나아오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말씀하겠습니다.
<똑같은 그릇>이 있어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 그릇은 이미 만들어졌으니
마음대로 ‘크게’ 할 수도 없고 ‘작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소변을 받아서 버리는 요강’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물을 담아 채소밭에 물 주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약단지’로 사용할 수도 있고,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대하기에 따라 ‘하찮게’, 혹은 ‘보다 귀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감옥>도 그러합니다.
<감옥>... 이름만 들어도 정말 무섭고 답답합니다.
그러나 이 <감옥>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설책, 잡지, 만화책을 보는 방’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고통과 싸우는 방’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 소리 지르고 우는 방’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감옥’ 그대로 쓰고,
어떤 사람은 ‘목매달아 죽는 곳’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사회에 나가면 좋게 살려고 계획하는 방’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횡령하고 사기 치려고 구상하는 방’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폭력을 행하는 방’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깊이 기도하며 하늘 뜻을 행하는 방’으로 씁니다.
<환경>은 못 바꿉니다. ‘똑같은 감옥’입니다.
그러나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습니다.
(중요) 인생들 모두가 그러합니다.
<자기 몸>도 <자기 거처와 환경>도 ‘대하고 쓰기’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의 몸의 구조>는 뜯어고칠 수 없습니다.
키가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하고,
인물이 덜하기도 하고, 잘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하고 쓰기’에 따라 운명이 좌우됩니다.
<환경의 구조>도 뜯어고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그대로밖에 살 수 없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하고 쓰기’에 따라 운명이 좌우됩니다.
작은 방도, 작은 집도, 작은 교회도 구조는 못 바꾸지만
‘대하고 쓰기’에 따라 운명이 좌우됩니다.
하나님은
- 잘생겼든 못생겼든
누가 ‘자기 몸’을 가장 귀히 쓰는지 보시고,
- 고통의 환경이든 좋은 환경이든
누가 ‘그 환경’을 가장 귀히 쓰는지 보십니다.
선생은 <고통의 환경>이라도
이 시대에 최고로 행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뜻을 세상에 펴는 데 썼습니다.
또 5만 번 이상 편지로 하나님과 성령과 성자의 뜻을 전해 줬고,
책으로 하면 150여 권이나 되는 하나님의 시대 말씀을 썼고,
4만 개 이상의 잠언을 썼습니다.
<고통의 환경>을 최고로 귀하게 대하고 쓴 것입니다!
<내 몸>을 최고로 귀하게 대하고 쓴 것입니다!
모두 <자기 몸>도, <생명들>도,
<자기 거처와 환경>도, <교회>도
그 모양과 구조가 어떠하든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대하고 쓰기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최고 좋은 운명’으로 바꾸기를 축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누구인지 아는 대로
가까이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시대 구원자>가 누구인지 그 가치를 아는 대로
가까이하며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가 ‘삼위일체와 주’를 알고 대하는 대로,
삼위일체도 주도 그를 가까이 대해 주고,
존귀하게 대해 주고, 가장 귀하게 써 줍니다.
마치 ‘거울’과 같습니다.
<자기>가 웃으면 ‘거울 속의 자신’도 웃듯이,
<자기>가 ‘삼위와 주’를 제대로 알고 귀히 대하고 가까이하면
<삼위와 주>도 ‘그’를 귀히 대하고 쓰고 가까이해 주십니다.
그러나 <자기>가 찡그리면 ‘거울 속의 자신’도 찡그리듯이,
<자기>가 ‘삼위와 주’를 잘 모르고 멀리하면
<삼위와 주>도 ‘그’를 쓸 수도 없고 가까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는
‘자기라는 그릇’을 만들어 놓기에 따라 쓰십니다.
<자기>라는 인생의 그릇을
- ‘자기’가 연구해서 쓰는 사람이 있고,
-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삼위와 주’가 쓰시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 그릇’입니까?
<자기>라는 인생 그릇은
‘자기’가 쓰면 ‘작게’ 쓰기도 하지만,
‘육적’으로만 쓰고 끝나게 됩니다.
여기서 ‘육적으로 쓰고 끝난다.’ 함은
<영적인 존재, 하나님>이 쓰지 않으시니,
인간은 ‘육’인 고로 ‘육적’으로만 쓰이고 끝난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육’으로 존재하기에 ‘육적’으로 흐릅니다.
고로 ‘영원한 세계, 영원히 사는 영, 영의 구원’을 생각지 않고,
‘그저 100년 후면 끝나는 육의 삶’만 생각하며 삽니다.
<자기 혼과 영>이 있어도 - <자기 혼과 영 자체>로는
‘영원한 삶, 영적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라는 인생 그릇이
‘영적’으로 쓰이고 ‘영원한 삶’을 얻으려면,
반드시 ‘영의 존재자, 영적으로 이끄는 자’가
이끌고 잡아당겨 줘야 됩니다.
곧 ‘하나님이 보낸 시대 구원자’와 연결되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일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로서 ‘육적’으로만 사용되다가 끝납니다.
<자기 육과 혼과 영>이 자체적으로 ‘100% 영적’으로 행해도
‘하나님의 영원한 주관권’에는 못 들어갑니다.
이는 <여자 혼자> ‘아기’를 못 낳는 격입니다.
또한 <돌포도나무 혼자> ‘참포도 열매’를 못 여는 격입니다.
반드시 ‘대상’은 ‘주체’와 일체 돼야 합니다.
곧 ‘돌포도나무’는 ‘참포도나무’와 접붙여야 됩니다.
이와 같이 <육적인 돌포도나무와 같은 인생>은
<주체>이며 <참포도나무>인 ‘시대 구원자’를 만나,
그를 통해 ‘영원하신 삼위일체’와 일체 돼야 합니다.
<생명의 유전자 결합>이 없이는 ‘생명’이 탄생되지 않듯이,
<영원하신 삼위일체>와 <인간>이 일체 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 영적 존재의 형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중요) 모두 <자기 몸>을 ‘자기’가 써서
작게 육적으로만 쓰고 끝나지 말고,
‘시대 구원자’와 ‘삼위’가 원하시는 대로 써서
크게 영적으로 영원히 귀히 쓰이고 영원히 사랑받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증거하며
<자기 몸>과 <자기 환경>을 최고로 귀히 씀으로 인해
많은 생명들을 전도하고 관리하고 가르치고 구원하여
‘성약 섭리역사, 신부 역사의 번성’을 이루기를 축원합니다!
<번성>이 안 되면 ‘당세’에 끝납니다.
하나님은 ‘육’도 번성하게 하셨고,
그 육을 통해 ‘영’도 번성하게 하셨고,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도 번성하게 하셨고,
그리함으로 ‘자기 영이 받는 기업’이 더욱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만드신 이유와 목적은
<지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지구>를 만드신 이유와 목적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을 만들고 ‘각 지체’를 만드신 이유와 목적은
<사랑의 지체>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지체>를 만드신 이유와 목적은
<유전자>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유전자>를 만드신 이유와 목적은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번성>이 없으면, ‘당세’에 끝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사람의 육>을 만드신 이유와 목적은
<영>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영>을 만드신 이유와 목적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
영원한 세계 천국에서
영원히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함으로 <선의 번성>을 이루고,
<하늘 신부의 번성>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번성>과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번성>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생명의 번성>은 ‘축복’입니다.
<선의 번성>은 ‘축복’입니다.
<성약역사 신부들의 번성>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자기 몸>과 <자기 거처와 환경>과 <생명들>을
삼위와 주와 일체 되어 가장 귀하게 대하고 씀으로
‘시대 최고의 번성’을 이루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마무리> 힘 있게 외치고 마무리!
◎ <알파절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잊지 말고,
<근본의 힘>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그 힘을 잃지 말고,
잊었으면 다시 ‘그 역사의 현장’을 보고 감각을 되살리고,
매일 ‘성령의 불, 휴거의 불, 진리의 불’이 타올라
<폭발적인 힘>을 가지고 시대를 힘 있게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 <힘>을 잃었다면, 성자 주 앞에 나오세요!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만큼
‘진리의 힘, 성령의 힘, 신의 힘’을 받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섭리역사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없어서 기갈나는 일은 1000년 동안 없습니다.
이 말씀은 ‘이 시대의 힘’이 될 것이며,
‘갈하고 주린 생명들’을 먹일 것이며,
‘존재의 생명력, 생명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 <영의 양식>이며 <근본의 힘>인 ‘시대 진리의 말씀’은 계속됩니다.
그와 더불어 ‘뜨거운 성령의 역사’도 계속됩니다.
그와 더불어 ‘살아 있는 주의 강한 힘’이 함께할 것입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