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6.06.22 (수)
160622 수요말씀(전체를 교육하고 관리해라)
- 선포일
- 2016.06.22 (수)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14장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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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22-수요말씀(전체를_교육하고_관리해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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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2일 수요말씀>
<전체>를 교육하고 관리해라
본 문 요한복음 14장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관리>에 대해 깊이 말씀했습니다.
◎ 오늘도 <관리>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목회자와 지도자, 관리자 교육 말씀>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과 지도자들만 교육하면 안 되니,
이 말씀을 ‘섭리사 전체’에 전합니다.
그래야 모두 ‘방향’을 알고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오늘 말씀에 숨겨진 깊은 의미와 핵심>은
어제 ‘교역자 모임’을 통해 교육해 주었습니다.
오늘 섭리사 전체를 위해서 또 말씀해 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관리에 대한 근본의 말씀>을 주시며,
섭리사 체제를 다시 바로 잡아 주시고,
핵심은 어제 교역자 모임에서 깊이 교육해 주었습니다.
이 말씀은 6월 26일 주일에 또 전해 주겠습니다.
◎ 목회자들은 오늘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면서
다시 주께 교육받고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고 섭리사 전체는
말씀을 들으면서 주의 교육을 받고 배우기 바랍니다.
<말씀 시작>
<생각>보다 <실체>는 부족하니, 더 많이 해야 됩니다.
<생각>에 이 정도 했으면 많이 했다고 하지만,
<실체>를 보면 얼마 안 됩니다.
자기가 행한 것이 <생각>에는 많다고 하지만,
<실체>를 보면 얼마 안 되는 원인이 있습니다.
<자기 생각>이 작은 상태에서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이 작으니,
<자기 생각>에는 100쯤 했다고 하는데
<실체>는 60~70밖에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작으면, 행해도 작습니다.
목회자들도, 지도자들도, 관리자들도 진정 깨닫기 바랍니다.
<자기 생각>에는 많이 했다고 했는데,
왜 <실체>는 적은지 깨달아야 됩니다.
생각이 작으니, 행해도 적게 나오는 것입니다.
주의 말을 듣고 ‘생각’을 크게 키우고 행해야 됩니다.
어린아이는 많이 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적습니다.
이와 같은 것입니다.
<자기 생각>은 작습니다.
고로 <삼위일체의 생각>을 받아서 해야 됩니다.
그 생각을 가지고 100% 하면, 100% 많이 합니다.
<작은 생각>으로 100% 해 봤자, 작습니다.
◎ 작은 생각으로 100% 해 봤자, 작다?
이 말을 이해되게 설명해 줄까요?
<새끼손가락>으로 100% 들어 봐요. 그 정도밖에 안 됩니다.
<한 손>으로 100% 들어 봐요. 그 정도밖에 안 됩니다.
<온몸>으로 힘껏 100% 들어 봐요.
자기 몸무게보다 무거운 것들도 듭니다.
이와 같이 <생각과 행실>도 ‘차원성’입니다.
평소에 <자기 생각>을 ‘크게’ 키우지 않고 행하면,
행했어도 - 확인하면 생각보다 ‘적게’ 행했습니다.
<행할 것 전체>를 보고서,
그 안에서 얼마나 행했는지 계산해 봐요.
그럼 <전체> 중에서 ‘10분의 2, 10분의 3’밖에 못 했습니다.
<온몸>으로 <전심>을 다해 행해도
‘연단’하면서 ‘행하는 양’을 늘리면서 행해야 많이 행합니다.
위도 먹는 대로 늘어나고 먹는 양이 많아지듯,
<생각의 양>도, <행실의 양>도 그러합니다.
자꾸 연단하면서 <생각>을 키우고,
<행하는 양>을 늘리면서 해야 많이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육계의 것도, 영계의 것도
‘나름대로 힘껏 했으니 많이 했겠지?’ 하고 확인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 고로 실망합니다.
어떤 것은 그때 한 번 지나가고 끝나니, 후회입니다.
그 일은 다시 못 하니, ‘전체 일의 양, 전체 행할 양’을 보고,
<전체> 중에서 얼마나 했는지 계산하면서 해야 됩니다!
“나는 있는 힘 다해 힘껏 했다.”라고만 하지 말고,
<전체> 중에서 얼마나 했는지 봐야 됩니다.
자기는 힘껏 했다고 하는데,
<전체>를 보면 생각보다 얼마 못 했습니다.
선생이 계속 몸부림쳐 편지를 써 주었습니다.
정말 몸부림쳐 했습니다.
고로 ‘많이’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늘 편지 못 받았다고 하며,
세계 여기저기에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내가 힘껏 한 것> 말고 <전체>를 계산해 보니,
10분의 1밖에 못 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실망했습니다.
이에 성령께서 “방법을 달리해서 해라.” 하셨고,
<전체>에 해당되게 ‘단체’로 계속 편지를 써 주니,
그제야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하게 됐습니다.
<전체의 10분의 1>만 편지를 써 줄 때는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정말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면서 ‘관리’도 잘 안 됐습니다.
<단체로 묶어서 전체>에 편지를 써 주니,
시간을 10분의 1도 안 썼는데 전체에 다 해 주게 됐습니다.
<편지 내용>도 ‘전체의 것’이니, 골고루 써졌습니다.
모두 이같이 하기 바랍니다.
<방법>을 달리해야 ‘전체’를 챙깁니다.
이같이 ‘관리’하고 ‘교육’하기 바랍니다.
몇 명만 몸부림쳐 하면, 자신과 상대만 힘듭니다.
죽도록 일을 많이 했는데, 표는 얼마 안 났습니다.
<일의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판단’입니다.
<일의 지혜>가 ‘판단’을 잘해야 됩니다.
<전체>를 다 해야 됩니다.
<집회>도, <강의>도, <관리>도 ‘전체’를 놓고 봐야
많이 했는지, 적게 했는지 압니다.
아무리 많이 관리했어도 <관리할 자>만 죽도록 했지,
<전체>는 관리가 안 됐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전체>를 관리해야 됩니다.
그래야 많이 하고 표가 납니다.
이렇게 하도록 ‘방법’을 찾아서 하기 바랍니다. 꼭이요!!
교회마다 <관리할 자들>만 죽도록 관리했기에
또 관리가 안 되어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체>를 ‘교육’하고 ‘관리’해야 됩니다.
글을 쓸 때 획을 빠짐없이 다 써야 ‘글자’가 되듯이,
관리할 때도 이와 같이 <전체>를 해야 됩니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해도
많은 한 것 같은데 몸을 보면 별 표가 안 납니다.
건강검진을 하여 확인해 보면,
몸 관리를 잘한 것 같아도 별로 못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목회자는 잘 들어요. <전체 관리>입니다.
설교 관리, 기도 관리, 교회 운영 관리, 재정 관리, 교육 관리,
장년부·가정국·청년부·대학부·중고등부·유초등부·
예술단·특수 부서·장로 권사단·집사들·
각 부서 지도자들 관리입니다.
그리고 개인까지 관리입니다.
중간 지도자들이 생명들을 직접 다루면서 잘하기도 하지만
강한 말이나 행동으로 생명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니,
교회 중간 지도자들을 잘 관리하고 교육해야 됩니다.
어떤 지도자는 공의롭지 못하게
일부 몇 명만 관리하고, 잘되는 부서만 관리합니다.
이는 목회자가 아니라 ‘부서장 수준’입니다.
앞으로 선생이 계속 교육하면서, 교정해 나가겠습니다.
<자기 몸 지체 하나>만 관리하면,
<나머지 지체>에 문제가 생겨 넘어지고 다칩니다.
<몸의 각 지체 모두>를 관리하듯, <전체 관리>입니다.
<외과 쪽>만 신경 쓰고 관리하면,
<내과 쪽>에서 병이 생겨 건강이 무너집니다.
이와 같이 <자기 관리>, 그리고 <외부 관리>입니다.
<전체>를 관리해야 ‘관리’가 됩니다.
저마다 ‘생활 목록, 관리 목록’을 적어 놓고,
<전체>를 다 관리했는지 매일 체크해요!
이것이 안 되니 1년, 2년, 3년씩 밀리게 됩니다.
오늘부터 당장 해 버려요!
<전체 관리>를 안 하고 목회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그것만큼 한이 되고 후회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부터 정말 해야 됩니다!
<각 교회 부서 자체>에서도 ‘부서 지도자들’이 100% 하지만,
<목회자>도 자기 사명 차원으로 ‘같이’ 해 줘야 됩니다.
목회자가 부서 지도자들에게 맡기기만 하지 말고,
꼭꼭 ‘전체’를 살피며 같이 해 줘야 됩니다.
부서 지도자들도 <자기 부서 전체>를 관리하지 못하고,
몇 명만 적극적으로 몸부림쳐 해 줍니다.
그러니 몸부림쳐 해 놓고도 별로 못 했고,
나머지 생명들을 뺏기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전체 관리>입니다.
<자기 관리>도 그러합니다.
<전체>를 안 하고 <한 센터>만 관리하니,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 개인 관리>도 ‘전체’를 다 해 줘야 됩니다.
말씀 관리 100% 해도, 기도 관리를 안 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또 영적 관리만 하다가 학교 공부나, 집, 직장에 문제가 생깁니다.
육적 관리만 하면 영적으로 바로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 개인>도 ‘전체’를 다 관리해야 됩니다.
그래야 변화되는 표도 나고, 차원 높이는 표도 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영적 파트와 육적 파트에서 수십 가지로 관리할 것들이 있습니다.
다 관리해야 제대로 돌아갑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70%가 ‘관리 문제’로 섭리사를 나가고,
그중에서 ‘목회자와 지도자가 주는 상처’로 인해
안 나오는 자들만 30%나 됩니다.
나머지 30%가 ‘그 사람 본인이 책임을 안 해서,
가치를 몰라서, 말씀을 몰라서’ 신앙을 저버립니다.
또 <신앙의 병>이 들어도 결국 세상으로 갑니다.
<몸>이 아프면 ‘입맛’이 없어서 잘 못 먹지요?
이와 같이 <신앙>에 병이 생기면 ‘말씀의 맛’을 못 느끼고,
말씀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점점 더 ‘육성’으로 치우치다가,
결국 그것이 깊어지면 ‘사망’에 처하게 됩니다.
<신앙의 병>은 ‘죄’로 인해 오게 됩니다.
고로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은
늘 기도하면서 꼭 ‘죄 문제’를 미리 파악하여
목회자와 지도자가 같이 ‘회개’하며 문제를 해결해 줘야 됩니다.
그래야 <근본적인 신앙의 병>을 고치게 되고,
그로 인해 다시 ‘말씀의 맛’을 찾아
다시 ‘생명권’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모두 ‘관리’입니다.
그리고 ‘사전 기도’입니다.
매일 쉬지 않고 기도하기, 정말 눈물로 기도하기,
주의 마음으로 쉬지 않고 살피기, 쉬지 않고 관리하기입니다.
그리고 때마다 교회에 회개 역사를 일으켜 깨끗하게 하기입니다.
목회자 자신부터 희생하며 잘못한 것을 회개하고,
교인들 전체도 간증하며 회개하게 하고,
그로 인해 교회에 <회개 운동>이 때마다 일어나야 됩니다.
선생이 여기서 특별히 잘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선생은 때마다 잘못한 것들을 찾아서 설교 중에 말씀합니다.
왜요? 모두 각 센터에서 저마다 ‘회개할 것들’을 찾아서,
모두 회개하고 깨끗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목회자들이 때마다 해 줘야 됩니다.
자기 먼저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면서,
교회 전체에 <회개 운동>을 일으켜 깨끗하게 만들기입니다.
때마다 ‘특별 기도’와 ‘회개 운동’으로
<교회 신앙의 대청소>를 수시로 해 주기입니다.
<관리>가 안 되면,
그로 인해 ‘다른 것’에 문제가 터져 손해가 갑니다.
교회마다 <관리>를 위해 의논하고 연구하기 바랍니다.
어떻게 주의 말씀대로 할지 연구,
어떻게 전체를 관리하면서 행할지 연구입니다.
(알겠습니까? - 목회자부터 ‘아멘!’)
<각 부서 지도자>가 ‘관리하는 책임’을 한다고 하는데,
그들만 관리하면 관리가 안 됩니다.
<각 부서 지도자들>은 ‘부서와 부서 생명들’을 맡아 관리하되,
<목회자>는 ‘총책임’을 지고 ‘관리의 장’이 되어
수시로 ‘전체’를 빠짐없이 살피고 관리해 주며 교육해 주고,
더불어 ‘개인’까지 살피면서 관리해 주고,
하나님과 성령님께 매일 ‘보고할 것들’을 보고해 주고,
주께 정기적으로 ‘총보고’를 해 줘야 됩니다.
이것을 제일 잘하는 교회가 <서울 주님의교회>입니다.
그 교회 목회자는 주일, 수요일, 매일 새벽마다 주는 말씀,
섭리사 전체 말씀을 정리하고, 순회하고, 주가 따로 맡긴 일을 하고,
섭리사 전체를 살피면서도 합니다.
목회자 모두 - 하면,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설교’만 하면, ‘설교’밖에 권한이 없습니다.
모두 ‘주님의교회’같이 관리해야 됩니다.
쉬지 않고,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 연구하고 의논하고 교육하면서,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하면서,
잘될 때는 차원을 높이면서,
계속해 나가니 그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교회는 이렇게 <전체>를 살피며 해도
항상 ‘놓치는 부분, 놓치는 생명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물며 <부분>만 살핀다면,
교회 운영도, 관리도, 생명도 얼마나 많이 놓치겠습니까?
<각 부서 지도자들>은 ‘부서 전체와 부서 생명들’을 관리하고,
<목회자>는 ‘총관리’를 하며
부서 교육과 전체 교육을 계속해 주고,
필요할 때마다 ‘개인 면담’을 진행해 주고,
<부목회자>는 목회자와 함께 목회하듯
말씀 파트, 설교 파트, 관리 파트, 교회 운영 파트에
모두 신경 쓰면서 같이 ‘총관리’를 해 줘야 됩니다.
목회를 오래 해도 ‘관리 능력, 운영 능력’이 낮으니
목회를 잘 못 하고, 또 힘들게 하게 됩니다.
왜 능력이 낮은가 하니,
주의 말씀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만큼은 꼭 하기 바랍니다!
<전체를 관리하는 자>가 ‘큰 자’입니다.
<전체를 관리하는 능력을 갖춘 자>가 ‘큰 목자’입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전체’를 다 둘러보며 관리하다 보면,
<전체 관리 주권>을 부리기도 합니다.
이것이 또 문제입니다.
주권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목회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관리>는 위해 주고, 섬겨 주고, 도와주고,
계속해서 교육해 주고 가르쳐 주고, 키워 주고,
부족한 것을 채워 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목회자가 알아도 못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 알릴 것들은 꼭 알려서, 주가 하게 해야 됩니다.
이제부터는 목회자가 <전체>를 관리해야 됩니다.
장년부·가정국·청년부·대학부·중고등부·유초등부·
예술단·특수 부서·장로 권사단·집사들·
교회 지도자들 관리입니다.
재정 관리, 경제인 관리, 전도하는 자들 관리,
강의하는 자들 관리, 관리하는 자들 관리,
교회에서 말없이 충성하는 자들 관리,
새벽기도 관리, 교인 건강 관리,
전체 교육 관리, 부서 교육 관리,
중간 지도자들이 생명을 다룰 때 강하게 하지 않도록 관리,
교회를 옮긴 후에도 잘 다니는지 관리,
타 교회와의 교류 관리, 교회 행사 관리,
교인들과 주와의 소통 관리, 아픈 자들 관리,
악평자 교육 관리, 이단 교육 관리,
보화 찾기 관리, 심방 관리,
사업부 관리, 스타 관리, 결혼할 자들 관리, 자연성전 관리 등입니다.
혼자서는 못 하니 ‘각 파트의 지도자들’을 세워서 같이 하되,
<목회자>가 꼭 ‘총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목회자>는 꼭 목회자를 도와서 같이 해야 됩니다.
이것이 ‘부목회자가 할 일’입니다.
목회자들 - 그동안 앞에 말한 대로 다 관리하며 했습니까?
한두 번 설교하고, 몇 명 관리하고, 몇 번 강의하고
“힘들다. 피곤하다.” 합니까?
못 하겠다 하는 목회자는 - 다른 일을 해도 좋습니다.
<전체 생명들>과 <교회>를 위해서
철저히 하는 자가 목회를 해야 됩니다.
7년, 8년씩 아예 그 교회를 책임지고,
주와 함께 교회를 살리고 키우고,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자에게
목회를 맡길 것입니다.
목회자가 약해서 못 하면 교회 손해, 생명 손해, 하나님 손해입니다.
지금도 주와 같이 철저히!
선생이 나가서도 주와 같이 철저히! - 입니다.
<전체>를 안 하고 <몇 가지>만 죽도록 합니다.
그래 놓고 생각보다 적게 됐다고 합니다.
<전체>는 ‘스무 가지’인데 ‘두세 가지’만 했으니,
목회를 20~30%만 하는 격입니다.
일곱 가지, 열 가지, 열다섯 가지, 스물한 가지를 해야
제대로 목회하는 자입니다.
<전체 교육과 관리를 잘하는 목회자와 교회>에는
생각지도 못한 ‘맛나고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교육하겠습니다.
관리해도 ‘감정’을 넣고 하면,
관리가 안 되고 오히려 ‘손해’입니다.
그러니 관리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요!
꼭 ‘기도 관리’를 해야 됩니다.
사탄을 몰아내고, 악한 것을 끊어 내고,
자기 감정을 다스리고, 영적인 것들을 파악하고,
하나님과 성령이 함께하시도록 꼭 기도해야 됩니다.
선생이 성령과 의논하여
각 교회와 부서에 파악할 사람을 보내어
파악하고 선생에게 보고하게 합니다.
혹은 교회나 부서 안에서 교정할 것이 있으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선생에게 보고해 줍니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교회를 샅샅이 뒤지면서 누가 선생에게 보고했는지
찾아서 따지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런 목회자는 ‘자기 앞의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얼마나 손해가 가는지 모릅니다.
자기 혼자서는 못 봅니다. 자기가 다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옆에서 같이 봐 줘야 제대로 다 봅니다.
그리고 때마다 교정할 것들을 꼭 교정해야 됩니다.
<책 한 권>도 완전하게 출판되려면, 수도 없이 교정해야 됩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성직자>는 어떻겠습니까?
왕이 신하를 보내어 그쪽 상황을 파악하고 보고하라고 했는데,
그쪽 사람이 “누가 보고했냐?” 하면서,
그 사람을 찾아서 괘씸하다고 합니다.
왕이 이를 알고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런 목회자는 선생이 기록부에다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기록을 후대까지 남깁니다.
이런 자들은 꼭 회개하고, 다시는 그같이 행하면 안 됩니다.
고치면 땅의 것도 하늘의 것도 기록이 없어지고,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꾸 누가 보고했냐고 하며 따지는 사람은
앞으로 보고를 안 받고, 마치 ‘볼펜 끝’으로 찍듯이
직접 ‘양심’으로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같이 말씀해야 고치니, 말씀합니다.
누가 선생에게 보고하면
“누가 보고했냐?” 하며 찾고 따지는데, 잘 듣기 바랍니다.
도둑질한 사람 보고해야 하고, 불난 곳 보고해야 되고,
문제가 발생하면 보고해야 되고,
불법한 자를 보고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성령이 감동을 주어 하게 했는데도 “누구냐?” 합니다.
하나님께도 “도대체 누구냐?” 하는 자입니다.
선생이 알고 편지하면,
“도대체 누가 그런 보고를 했냐?” 합니다.
그 소리가 그대로 ‘주의 귀’까지 들려옵니다.
보다 보다 못 해서 보고한 것인데,
그것을 두고 “누구냐?” 찾으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누군지 찾는다고 또 보고가 옵니다.
그러니 ‘그 행위가 지극히 잘못되었음’을 직접 지적합니다.
인격 있고, 의롭고, 신령하고, 온전한 성직자가 되기 바랍니다.
운전수가 졸아서 졸았다고 보고하면, 왜 보고했냐고 합니다.
자기도 같은 차에 탔으니 같은 운명이니, 보고합니다.
그리고 그 차에 같이 탄 많은 생명들이 위험하니, 보고합니다.
다 죽을 위험에 처했는데, 보고 안 하겠습니까?
보고하지 않으면 ‘소경들’이 계속 ‘소경 짓’을 합니다.
그러다 ‘눈뜬 자들’에게까지 피해를 줍니다.
자기가 모르고 그릇 행하면서도 그것을 ‘옳다.’ 합니다.
옆에서 그것이 아님을 알고 보고하면, 감정적으로 화를 냅니다.
그런 자는 정말 주가 싫어합니다.
고로 목회자와 지도자는 꼭 ‘기도’해야 됩니다.
그리함으로 ‘육성’으로 흐르지 않게 해야 됩니다.
기도함으로 ‘주와 심정’을 맞춰야 됩니다.
그래야 ‘감정’으로 흐르지 않고 ‘주의 뜻’대로 흘러갑니다.
<보고자>는 ‘하나님이 세운 보초’입니다.
<보초를 서야 할 자>가 안 서면, 순간 당합니다.
그래서 생명들을 많이 뺏겼습니다.
하는 일이 안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보고자>는 매우 귀합니다.
고로 돈을 주고서라도
‘목회자 자신의 보고를 해 줄 자’를 세워야 됩니다.
<교회 보고>는 꼭 해 줘야 됩니다.
단, 보고하기 전에 꼭 확인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면 주도 확인하고 진행합니다.
서운함 탄다고 보고받고도 그냥 놔두면,
자기 발을 자기가 찍는 격이 됩니다.
사람은 ‘자기 차원의 것 이상’은 잘 못 봅니다.
고로 교회에 <보고할 사람>이 없으면 ‘교회 경영’이 깨집니다.
목회자와 지도자가 원해서 교회에 ‘뛸 사람’을 보내 주면,
어려도 귀히 여기고 살피며 주와 같이 써야 됩니다.
그런데 오히려 싫어하고 배척합니다.
나이가 들어 성격이 변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수록
손자, 손녀를 예쁘게 보고 잘 대해야 되는데 오히려 다투니,
혼자만 두고 다들 가까이 안 합니다.
그러니 쓸쓸하게 됩니다. 주와도 심정이 연결이 안 됩니다.
고로 교체할 자는 교체합니다.
또한 같은 지역인데도,
두세 교회를 합치면 하나가 안 되는 곳이 있습니다.
화평하지 않으면 ‘사탄’이 역사합니다.
만일 교회를 합봉 했을 때 하나 되지 않으면,
화목하게 하기 위해
- 원래 있던 목회자들이 번갈아 가며 목회하게 하거나,
- 그것도 안 되면 모두 옮기고 다른 목회자를 배치합니다.
섭리역사에는 ‘선후배’가 없습니다.
오직 ‘휴거된 선후배를 따지는 세계’입니다.
이곳은 학교가 아닙니다. 회사도 아닙니다.
오직 ‘선과 진리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세계’입니다.
<전환> 중요 부분
◎ 더 교육하겠습니다. 잘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시동>은 ‘두 가지’로 걸립니다.
첫째, 일단 <몸>을 반복해서 움직여 그 일을 해 봐요.
그러면 그 일의 시동이 걸리게 됩니다.
둘째, 그 일에 <생각>을 집중하고 뜨겁게 해 봐요.
그러면 몸에 시동이 걸립니다.
두 가지로 시동을 걸어서 뜨겁게 행하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육신 행위의 시동이 안 걸리는 자’는
그만큼 기능이 약해진 자요, 죽은 자입니다.
<행동을 거듭해서 시동이 걸리는 자>는
보다 ‘육적인 자’입니다.
그러나 <육>이 행하면서
<정신과 생각>에 ‘시동’을 걸어서 하게 됩니다.
<생각>만 해도 ‘시동’이 걸려서 해야 됩니다.
<생각하는 것>으로 ‘시동’이 걸려
기도하고, 삼위와 주와 교통하고, 느끼면서 해야 됩니다.
<생각>은 ‘영적인 쪽’입니다.
고로 <생각으로 시동을 걸어 행하는 자>는 ‘영적인 자’입니다.
<마음과 생각>으로 몸이 행하도록 ‘시동’이 걸리면,
이는 ‘자동식 인생’입니다.
<몸>으로 반복해서 행해야 ‘시동’이 걸리면,
이는 ‘수동식 인생’입니다.
<수동식>은 느리고 <자동식>은 빠릅니다. - 인생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정신일도 하여 <생각>이 ‘척척’ 잘 돌아가야
<감동>도, <깨달음>도 ‘척척’ 잘 받습니다.
젊으면, <생각>만 해도 신경이 예리하니 ‘뇌에 시동’이 걸립니다.
나이 먹으면, 생각과 신경이 둔해서
<행해도> ‘뇌에 시동’이 잘 안 걸립니다.
그렇다고, 나이 탓을 하렵니까?
지혜자의 말을 잘 듣기 바랍니다.
<예리하여 잘 보고 듣는 젊은 사람들>을 세워서 쓰면 됩니다.
그들이 행하면서 주께 보고하게 하며 쓰니,
감정으로 대하지 말아요. - 그러다 하늘 심정 거스릅니다.
<젊은 자들이 보고 듣는 것>을 ‘못 보고 못 듣는 원인’은
그만큼 둔해지고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은 목회자 없는 데서 끼리끼리 말합니다.
그 말을 전해 주니, 얼마나 고맙고 좋습니까?
그 말을 듣고 고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도 못 보고 못 듣고 있습니다.
보고 듣고 말해 줘도 모르고 있습니다.
뇌가 굳어서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입니다.
주 앞에는 못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지만,
정말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인사성’으로만 말합니다.
교인들은 목회자가 잘하도록 1년 동안 기도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도 안 하니, 보고한 것입니다.
교인들을 살펴 달라고 해도 안 해 줍니다.
설교만 해 주고 끝냅니다.
계속 그리도 부탁해도 안 하니, 선생에게 보고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보고가 맞았습니다.
목회자와 지도자들 모두 새롭게 교육받았으니,
이제 절대 그러지 않고 싹 고치고 할 것임을
선생이 믿고 맡겨도 되겠습니까? (목회자부터 ‘아멘!’)
목회자는 ‘스물한 가지’는 해야 됩니다.
<양들>만 기르더라도 ‘열다섯 가지’는 살피고 관리해야
양의 젖을 짜고 목자 노릇을 합니다.
하물며 6000년 만에 얻은 <신부 관리>는
그보다는 더 많이 해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기 관리를 못 하는 지도자>는 ‘교인 관리’도 못 합니다.
<목회>도 ‘때’가 있습니다.
그 나이 때, 그 때 할 일, 그 해에 할 일, 그 날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 때’에 다 하고 지나가십니다.
고로 때 지나면 절대 못 합니다. 한 번입니다!
하나님도 ‘때 지난 것’은 더 반복하지 못하십니다.
<목회의 일생 동안> ‘정말 할 것’을
목숨 다해 못 하고 마는 자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후회이고 미련입니까?
<자기 기회의 때>에 목숨 걸고 못 하고 끝나면,
평생! 영원히! 후회가 됩니다.
예전에 주와 가까이 지냈다는 것만 내세우고,
생명들을 다루지 말아요! 절대 안 됩니다.
<이제 온 젊은 자들>은
‘섭리의 대를 이어서 주와 함께 뛸 자들’로 크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 얼굴은 못 보지만,
더 차원을 높여 말씀으로, 편지로, 생각으로, 혼으로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가르칩니다.
예전에 주와 가까이 지냈다는 것보다,
현재 젊은 나이로 주께 배우는 것을 더 크게 봅니다.
젊은 자들과 하나 되어서 해야 됩니다.
젊은 자들을 의식하고 경계하면 안 됩니다.
후대 역사를 위해 꼭 그들을 챙겨야 됩니다.
그러면서 나이든 자들과도 하나 되어 행해야 됩니다.
하나 되어서 해야 ‘목회의 명’이 깁니다.
<말씀 마무리> 중요 부분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교육하고,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동안 어릴 때 그렇게 주가 키우고 길렀는데
나이가 들었어도 <자기>만 크려고 하다 보니,
이제 ‘자기를 대신하여 세울 자’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험악한 ‘영적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이 40~50세 먹기까지 죽도록 하여 ‘전도한 자들’은 있는데,
‘자기같이 가르치고 세운 자’는 정말 드뭅니다.
자기를 대신할 자를 안 키우고,
오히려 젊은 자들이 크면 거친 말과 행동으로 힘들게 합니다.
선생이 성령과 함께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에게 묻습니다.
“<자기같이 키우는 자>가 있느냐? 정말 있느냐?
없다면, 이번만큼은 꼭 해야 된다!
그래야 그가 ‘자기 몸’이 되어서 대를 잇고,
그로 인해 나이가 들어도 계속 영광을 받는다.
선생이 조은이, 범석이를 키워서 내 몸으로 쓰듯,
그 외에 수천 명을 키워서 쓰듯, - 키워라!
목숨 걸고 키워라!
<초인> 되게 키워라! <영웅> 되게 키워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자신의 몸, 자기 대신자’를 꼭 키우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봐요.
신앙이 다 죽어 무너졌어도
키운 ‘그 한 사람’으로 다시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 시대도 ‘선생’ 하나 키워서
<1000년 역사> 하시는 것을 봐요!
목회자들은 자기 목회 기간에
주와 함께 일체 되어 ‘자기를 대신할 자’를 키우고
그가 ‘주의 사람’이 되게 해 주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의 마음이 놓입니다.
<인재들>을 꼭 찾아요! 그리고 키워요!
<인재>는 찾아야 알고, 키워야 압니다.
주와 같이 <인재들>을 찾고 키우라고 하니,
오히려 ‘자기 종’같이 삼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영광으로만 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안 됩니다.
그들은 ‘지도자가 부리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키우고,
<영적 전쟁>을 위해 ‘장수’로, ‘사령관’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마무리 말씀>
<관리>는 ‘마음의 끈’으로 같이 묶어야 됩니다.
혼자 두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사탄과 세상과 이성’이 포식자가 되어 잡아갑니다.
<관리>는 위해 주고, 섬겨 주고, 가르쳐 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고, 말씀의 무술을 익히게 하고, 행하게 하여
섭리사에서 ‘하나님과 주와 함께 행할 자들’을 키우는 것입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