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07.03 (일)
160703 주일말씀(기도는 입력이다 외 두 가지 말씀)
- 선포일
- 2016.07.03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3장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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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03-주일말씀(기도는_입력이다_외_두_가지_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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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3일 주일말씀>
기도는 입력이다
삼위일체는 ‘사람이 쓰는 말’과
‘사람이 쓰는 존재물’로 말씀하고 보여 주신다
삼위일체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본 문 마태복음 13장 13절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13장 34-35절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세 가지를 말씀해 줄 것입니다.
첫째, 기도는 ‘입력’이다.
둘째, 삼위일체는 ‘사람이 쓰는 말’과
‘사람이 쓰는 존재물’로 말씀하고 보여 주신다.
셋째, 삼위일체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 입니다.
◎ 먼저 ‘오늘 말씀을 받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 주면서,
왜 ‘기도는 입력’인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 첫 번째 말씀>
자기 전에 ‘새벽기도’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꿈에 선명하게 보여
꼭 ‘새벽 제시간’에 잠에서 깨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밤 11시가 다 돼서 잤는데도
새벽 1시 전에 일어나 ‘제시간’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께 ‘제시간’에 깨워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이때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도는 입력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어젯밤에 자기 전에 꿈으로 깨워 달라고
<기도>로 ‘네 생각에 입력’해 놓고,
<기도>로 ‘나 성령의 생각에 입력’해 놨지?
그래서 기도 시간이 됐을 때,
<나 성령>도 행하고 <네 뇌>도 작동되어 꿈을 꾸고,
잠에서 깬 것이다.”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나를 깨워 주시기 위해
기도한 대로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꿈을 꾸면 ‘여러 가지 장면’이 보이지요?
그중에서 ‘끝에 꾼 꿈’이나 ‘초점을 맞춰서 보여 준 꿈’이
<계시하시고자 하는 꿈>이라고 했습니다.
이날도 ‘새벽 마지막 꿈’을 통해 나를 깨워 주셨습니다.
선생이 비행기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순간 누가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순간 잠에서 깨어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뜨고 쳐다보니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하여 착륙했고,
<여자 대통령>이 비행기에서 내리려고 지나가면서
나를 살짝 스친 것이었습니다.
또 <섭리 사람들>이 있었는데,
짐을 들고 비행기에서 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얼른 일어나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잠에서 깼고, 일어나 보니 새벽 1시 전이었습니다.
<여자 대통령>은 ‘누구’를 비유해서 보여 주신 걸까요?
(대답 잠깐 들어 보고) 여러분도 금방 알겠지요?
<성령님>을 ‘여자 대통령’으로 비유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여성 신’이니,
여자로 나타나야 ‘성령님’인지 금방 알기 때문입니다.
기도한 대로 성령님이 ‘꿈’을 보여 주시며 깨워 주셨는데
그때 일어나지 않고 또 잤으면,
성령님과 ‘시간’도 갈리고 ‘몸’도 갈려
<혼자>서 행하게 됐을 것입니다.
기도한 대로 성령님이 ‘꿈’을 통해 깨워 주셨을 때
즉시 일어나서 기도했기에
성령님과 ‘시간’도 ‘몸’도 함께하며 <같이>이 행했습니다.
이날 ‘새벽 제시간 1시’에 일어나서 기도하며
성령님께 받은 말씀을 - 오늘 해 주겠습니다.
잘 가르쳐 줘야 이해하고, 알고, 깨닫고, 잘 행하기까지 합니다.
오늘도 이해되게 잘 가르쳐 주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첫째, <기도>는
‘자기 뇌와 마음과 생각’에 입력하는 것입니다.
둘째, <기도와 대화>는
‘삼위의 마음과 생각’에 입력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뇌와 생각에 입력되어 있는 것’을 행하는데,
‘입력된 것 중에서 원하는 것’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생각에 있는 것’을 행하십니다.
그러니 꼭 <자기 생각>에도, <삼위의 마음과 생각>에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입력’해 놔야겠지요?
고로 <기도와 대화>로 강하게 ‘입력’해 놔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도 행하고, <삼위일체>도 합당하면 해 주십니다.
컴퓨터에도 글씨를 입력하면, 그 내용이 저장되어 출력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도
‘자기가 원하는 것, 구하는 것’을
<기도와 대화>로 입력시키고 인식시켜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아멘!)
이 정도 교육이면, 모두 ‘입력의 말씀’을 깨달았지요?
이제 ‘성령의 감동’을 받고 행·해·야 됩니다! (아멘!)
<전환 : 두 번째 말씀>
◎ 이제 <두 번째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이 말씀 속에 ‘두 가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먼저 ‘한 가지’를 말씀하면서,
‘다음 말씀’도 연결해서 전해 주겠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절대 신’으로서 ‘전지전능’하십니다.
이에 비해 인간은 ‘뇌의 생각과 지능’이 상상도 못 하게 낮습니다.
고로 삼위가 ‘어떤 말’을 해 주셔도 잘 못 알아듣고,
‘어떤 것’을 보여 주셔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 마음의 생각과 의견들>을
그때그때 사람들이 잘 알아듣도록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십니다.
성령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떤 방법으로 하시기에
인간이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것입니까?”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삼위일체는 ‘절대 신’이지만 <하늘나라 말>로 안 하고,
<사람들이 쓰는 말>로 말씀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이용하여 말씀하고 보여 주고,
<사람들이 쓰는 존재물>을 이용하여 말씀하고 보여 준다.
<사람이 쓰는 말>은 너희가 늘 쓰는 말이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과 인간이 쓰는 존재물>은
너희가 늘 쓰면서 보고 있으니,
그 방법으로 말하고 보여 주면
어려운 내용도 잘 이해하고 즉시 알고 깨닫게 된다.” (하셨습니다.)
발달된 사람들이 원시인들을 가르쳐 알게 할 때도
‘원시인들이 쓰는 말과 존재물’을 사용합니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도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보여 주실 때,
‘사람들이 늘 쓰는 언어와 존재물’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도 그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이해가 잘되게 말해 주려면,
‘그들이 쓰는 말’로 말해 줘야 됩니다.
예수님 때도 “<비유>가 아니면 말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고로 <농사짓는 곳>에 가면
‘농사 비유’를 들어 말씀하며 깨닫게 하셨고,
<고기 잡는 어부>에게는
‘어부가 접하는 바다와 그물 비유’를 들어 말씀하며 깨닫게 하셨고,
<기존성을 가진 유대 종교인들>에게는
‘그들이 사용하는 종교의 단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외식하는 종교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을 보면,
너무 ‘어려운 단어’을 사용하여 말을 합니다.
이는 자기 지식, 자기 권위, 자기 간판을 나타내려 함입니다.
그러니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이 못 알아듣고 잘 이해를 못 합니다.
섭리역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같이 말을 잘하고 잘 이해시켜 주려면,
‘상대가 쓰는 말’로 알아듣게 해 주고,
‘상대에게 해당되는 것’을 비유로 들어서 쉽게 말해 줘야 됩니다.
자기 권위와 간판을 나타내려고 ‘어려운 단어’를 쓰면,
듣는 사람이 잘 못 알아들어서 말이 끊어집니다.
<상대>를 파악하고
- ‘그에 맞는 말’을 쓰고
- ‘그에 맞는 것’을 비유로 들어서 ‘쉽게’ 이해시켜 주는 자가
최고로 말을 잘하고, 강의를 잘하고, 설교를 잘하는 자입니다.
<전환 : 세 번째 말씀>
◎ <두 번째 말씀>이 끝났습니다.
하나씩 핵심을 짧게 말씀해 주니, 이해가 잘되지요?
이제 <두 번째 말씀>과 연결시켜 <세 번째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기도하며 성령님께 또 물었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말씀하실 것이 있으면
잘 알아들으라고 다 드러내서 ‘직접’ 말씀하시면 되는데,
그렇게 하시지 않고
왜 어렵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까?”
극히 조심하라 - 하는 계시를 주실 때도
꿈에 간단히 ‘계단에서 넘어지는 것’을 보여 주시면 되는데,
비유로 ‘돼지가 경사진 곳을 가다가 뒹구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니 ‘혹시 오늘 돼지고기 먹으려나?’ 궁금해하고,
혹은 ‘다른 것들’이 생각납니다.
왜 이렇게 어렵게 ‘비유’로 말씀하고 보여 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또 물었습니다.
“6000년 전 구약 때부터 <비유>를 썼으니,
이제는 그만 써도 되지 않습니까?
신이라 <말>로 안 하신다면,
<글>로 써서 보여 주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계속 <비유>를 쓰시려면,
비유로 말할 때 얼마나 좋은 것이 많은지
<비유의 근본>을 교육해 주세요.” 했습니다.
이것에 대해 성령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세 번째로 ‘비유의 근본’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가르쳐 주면 잘 듣고 - <비유>를 잘 깨닫고 행하겠습니까? (아멘.)
더욱 삼위와 주를 부르고 대화하며 사랑하겠습니까? (아멘.)
그리고 전할 것들은 전하며 가르쳐 주겠습니까? (아멘.)
그럼 말씀하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것을 두고 말할 때,
마치 수박 쪼개서 벌려 놓고 말하듯
다 드러내 놓고 ‘직접’ 말해도 안 된다.
그러면 다양하게 표현할 수 없고,
그러니 하고자 하는 말이 다 전달되지 않고,
듣는 너희도 깊이 깨닫지 못한다.
<비유>를 들어서 말하며 ‘그 이치’를 보여 줘야
듣는 너희가 섬세하게 보고 느끼고 인정한다.” (하셨습니다.)
◎ 그리고 <비유의 근본>에 대해 말씀하며 깨우쳐 주셨습니다.
성령의 말씀을 전해 줄게요. 잘 들어요. ‘성령의 교육’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성령의 생각>대로 하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한다 합시다.
이 사람은 본인이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직접’
왜 성령의 뜻대로 안 하냐고 말하면, 이해를 못 하고 오해합니다.
그리고 ‘나는 오직 성령의 뜻대로 살았는데...’ 하며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맞지요?)
그러나 성령님이 앞에 서 있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성령님을 따라서 하고 있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말을 안 듣고
혼자 다른 곳으로 가면서 자기 마음대로 일하는 것을
<비유>로 보여 주며 스스로 깨닫게 하면,
‘내가 저같이 성령의 생각대로 안 하고 내 맘대로 했구나.’
시인하며 깨닫게 됩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은
꿈에나 생시에나 ‘자신이 창조한 만물’을 보여 주면서
스스로 시인하고 깨닫게 하십니다.
<만물>을 ‘글’로 삼고,
<비유>로 그 상황을 적나라하게, 혹은 은밀하게 보여 주십니다.
그러면서 ‘벌거벗은 것’까지 다 보여 주십니다.
이렇게 <비유>로 ‘본인이 그동안 행한 것들’을 보여 주며
핑계하지 못하도록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면 ‘직접 말이나 글’로 다 드러내 놓고 하는 것보다
핑계하지 못하고 훨씬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자기>는 ‘자기 얼굴’을 못 봅니다.
‘안 보이는 부분’은 못 봅니다.
반드시 ‘거울’이 있어야
거울에 비추어 ‘자기 얼굴과 안 보이는 부분’을 봅니다.
<비유>는 ‘거울’과 같습니다.
고로 <비유>로 말하면,
그 <비유>에 자기를 비춰서
‘자기 근본의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됩니다.
(믿습니까?)
합당하고 깊은 비유는
- <거울>과 같아서 ‘안 보이는 것’까지 볼 수 있고,
- <X-ray>와 같아서 ‘속’까지 볼 수 있고,
- <투시경>과 같아서 ‘신혼골수’까지
오묘하게, 신비하게, 날카롭게, 예리하게
감동으로 깨닫게 해 줍니다.
직접적인 말이나 글로는 ‘표현의 한계’가 있습니다.
- 고로 100% 전달이 안 되고,
-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도 못하고,
- 은밀하게 표현하지도 못하고,
- 스스로 깨닫고 인정하게 하지도 못합니다.
성령님은 이같이 가르쳐 주시며,
“그래서 하나님도 성자도 나 성령도 ‘비유’로 말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게으르면,
<꿈>에 - 집에 비가 새는 것이나, 비가 오는 것이나,
땅이 질퍽거리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누가 <직접 말>로 “너 게으르다.” 하면
기분도 나쁘고 심정도 상하고 잘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글>이나 <편지>를 써서 “너 게으르다.” 하고
직접적으로 전하면 더 기분이 나쁘고 심정이 상할 뿐입니다.
꿈에나 생시에나 ‘그에 합당한 비유’를 들어 보여 줘야
자기가 스스로 깨닫고 시인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맞지요?)
구약 때도 <비유>를 들어 ‘메시아’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다 때가 되어 <구약 비유의 실체>인 ‘예수님’이 오셨고,
그를 직접 보게 하고, 그의 말을 직접 듣게 했습니다.
<아는 자>에게는 ‘비유’가 필요 없습니다.
<아는 자>에게는 ‘직접 말’을 해 줍니다.
고로 예수님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아는 자들>에게는 ‘직접 말씀’하셨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신약 2000년 동안 비유로 말한 것들>이
이제 ‘실체’가 와서 직접 말하고 보니 ‘비유’가 필요 없습니다.
<실체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은밀한 비밀’이기 때문에
독수리, 혹은 두꺼비, 큰바위얼굴 상징으로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비유에
“재림주는 하늘 흰 구름을 타고 다시 온다.” 했습니다.
<흰 구름 비유의 실체>는 이것입니다.
새 시대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무지를 벗어나
마음도 생각도 행실도 정화되어
차원 높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는 ‘하늘 신부’입니다.
<이 시대에 제일 첫 번째로 하늘 신부로 정화된 자>가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가 되어
<성자>는 ‘그 육신’을 쓰고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성자와 시대 구원자>는
‘이 시대 말씀을 듣고 정화된 하늘 신부들’을 타고
이 시대 하나님의 역사를 펴 나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보낸 자 인구름을 쓰고 나타나고,
<삼위가 보낸 구원자>는 시대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인구름을 쓰고
나타납니다.
이는 ‘나무와 열매 같은 이치’입니다.
<열매>는 ‘나무’를 쓰고 나타나지,
<열매>만 따로 떨어져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꽃>은 ‘나무’를 쓰고 나타나지,
<꽃>만 따로 떨어져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보낸 자의 육신’을 쓰고 이 땅에 나타나십니다.
또한 <그 보낸 구원자>는
‘따르는 자들’을 타고 나타나 행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만드신 것과 행하시는 것을 보면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냥 직접 <말>로 하고 <글>로 하면, 못 느낍니다.
<비유>로 자세히 섬세히 보고 들어야
느끼고 알고, 감탄하고, 탄복하고, 기절초풍하고,
충격에 흥분되어 말씀의 감동으로 힘이 솟아나고,
뛰게 되고, 뛰다가 날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직접 말하면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골 아프고, 오해도 하게 되고, 지루하고 재미도 없습니다.
<비유>는 연극하며 보여 주듯,
깨우쳐 주고자 하는 것을
만들고 엮어서 ‘영화 장면’같이 보여 줍니다.
고로 이해도 잘되고, 골도 안 아프고, 오해도 안 하고,
재미있고 신비하고, 섬세하게 이치를 알게 되고,
각자 자기 차원대로 스스로 풀고 깨닫게 됩니다.
고로 <꿈>과 <비유>에 대해 꼭 배우고, 잘 풀어야 됩니다.
꼭 기도하며 하나님과 성령님께 물어야 됩니다.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보여 주지만,
그것으로 보여 줘야 ‘실체와 본질’을 깨닫고 제대로 행하게 됩니다.
<비유>는 항상 ‘이와 같이 이러하다.’ 하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비유로 보여 줌>은
- 하나님의 비밀을 모르는 자들에게 실체를 알리기 위함이고,
- 근본을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함이고,
- 스스로 시인하고 인정하고 깨달아 행하게 하기 위함이고,
- 하나님의 비밀을 잘 간수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 때도 - 예수님을 반대하니 <비유>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유를 읽는 자>는
“저 비유는 ‘예수님’을 보고 한 말이다.” 하고 압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모르면 <비유>로 말합니다.
그러나 <비유를 읽는 자>는
무엇을 보고, 누구를 보고 말하는지 압니다.
또한 <극의 비밀>은 ‘비유’로 설교가 나갑니다.
그러면 각자 ‘자기 차원’대로 비유를 풀고 깨닫고 행하게 됩니다.
차원을 높이고, 삼위와 주와 생각이 일체 된 만큼
<주가 말하는 극의 비밀>을 풀고 깨닫습니다!
<말씀 마무리>
이제 <비유>를 ‘거울’로 쓰시며
잘 모르는 것, 잘 못 깨닫는 것, 잘 안 보이는 것을 비추어
잘 보고 깨닫고 시인하게 하신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깨달았지요?
직접 말하면 ‘직설’이니,
오히려 기분이 상하고 심정이 상하고 화가 납니다.
지나가는 개가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
행인에게 맞고 절룩거리며 다니는 것을 보면,
<그와 같이 행한 자>는 깨닫게 됩니다.
<자기 행위>를 통해 성령이 깨닫게 하십니다.
이제 이만하면 ‘비유의 근본’에 대해 알았지요?
앞으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꿈에도, 생시에도, 삼위와 대화할 때도,
민족이나 교회나 개인에게 전달할 것도, 상대에게 전달할 것도
악인과 악평자들에 대한 것도
은밀한 것들은 ‘비유’로 말씀하시니,
오늘 배운 대로 잘 깨달아야 됩니다.
<비유>로 해야 핑계대지 않고, 이유를 달지 않고,
자기가 모르는 것이나 못 보는 것들을 깨닫고 행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삼위일체가 <비유>로 보여 주고 말씀하시면,
- 꼭 삼위와 주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 <비유>를 깨닫고 속 시원히~ 행하고,
- 삼위와 주를 더욱 사랑하며,
- <비유의 달인>이 되어 살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는 ‘입력’이다.
삼위일체는 ‘사람이 쓰는 말’과
‘사람이 쓰는 존재물’로 말씀하고 보여 주신다.
삼위일체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