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07.24 (일)
160724 주일말씀
- 선포일
- 2016.07.24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5장 23-24
첨부 파일
- PDF
160724-주일말씀.pdf
161.6 KB
<2016년 7월 24일 주일말씀>
대화로 풀어라
풀어야 화목하게 된다
본 문 마태복음 5장 23-24절
이사야 55장 6-11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대화로 풀어라.
풀어야 화목하게 된다.’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섭리세계 각 교회들은 이미 수련회를 시작해서 끝난 교회도 있고,
지금 수련회가 진행되고 있는 교회도 있고,
수련회를 준비 중에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수련회 주제는 뭐지요? 네! <폭포수 같은 화목>입니다.
모두 화평하고 화목하라고
올해 수련회는 ‘각 교회별’로 쪼개서 하라고 했습니다.
각 교회별로 수련회를 하는 목적은 ‘화목’입니다.
그렇다면, <화목하는 데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서로 대화하며 푸는 것’입니다.
물론 수련회 때 물놀이도 하고 예술제도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화목’이며 ‘서로 대화하며 푸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 교회 수련회 프로그램을 보니, 물놀이, 수영, 예술 등
‘같이 어울려 뛰어노는 프로그램들’만 짰습니다.
목포 교회에서 가까운 여수 교회 앞 해수욕장으로 수련회를 가려고
현장 답사를 해 보니,
바닷물 속에 ‘독종 해파리’가 너무 많아서
물놀이를 하면서 화동하려던 기대에 어긋났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이 보고를 받고, 선생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보고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섭리 전체 수련회 때 물놀이와 각종 예술제도 하면서
대화하며 마음을 풀고 화목하라고 했더니,
각 교회마다 물놀이와 각종 놀이만 함께 하면서
같이 어울리며 화목하려고 하는구나.
<핵심>은 뒷전에 두고,
그냥 예전처럼 한마당 어울려 놀면서 화목하려고 계획을 한다.
그것이 아니라고 ‘해파리 징조’를 보여 주었다.
<핵심>은 ‘화목’이다.
같이 어울려 놀기만 한다고 화목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뭉친 것들을 풀어야 된다.
그러려면 서로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대화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어떤 교회는 이번 수련회 때
찬물에 발 담그고 서로 어울리며 같이 놀면서
다 풀고 오자고 광고하니,
120명 중의 60명만 수련회에 간다고 했답니다.
결국 안 가는 사람들은 할 수 없으니,
갈 수 있는 사람들만 가기로 했답니다.
그렇게 되면, ‘수련회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마음이 안 풀립니다.
말귀를 잘 알아들어야 됩니다.
찬물에 발 담그고 서로 어울리며 같이 노는 것으로는
<화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특별히 마음에 뭉치고 얹히고 얽힌 것이 없는 사람들이나,
화병이나 심정의 병이 없는 사람들은
수련회 때 같이 물놀이하고 어울리고 먹고 예술만 해도
조금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고
교회에서나 생활 속에서나 화목하게 됩니다.
그러나 상대의 말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를 받고 마음에 뭉친 것들이 있는 사람들은
같이 어울리고 먹고 예술을 하는 것만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
반드시 상대에게 말을 하면서
“내 생각과 저 사람의 생각이 달랐구나.” 인정하고,
하나님과 구원자 앞에서 풀어야 됩니다.
마음에 뭉치고 맺힌 것이 몇 달, 몇 년 됐는데
같이 웃으며 실컷 물놀이를 한다고 풀리겠습니까,
웅장하게 예술제를 한다고 풀리겠습니까,
실컷 먹는다고 풀리겠습니까?
지난날 우리는 수도 없이 예술제도 해 보고,
같이 뛰어놀아도 보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어 봤습니다.
그렇다고 마음에 뭉친 것들이 다 풀려서
상대와 화목이 이루어지고, 교회의 화목이 다 이루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서로 회개할 것을 회개하면서 대화하고
“내가 오해했네. 내가 크게 상처를 줬네.
내가 몰랐어. 미안해.” 하며 풀어야 풀립니다.
땅에서 뭉친 것들은 땅에서 서로 대화하며 풀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에서도 풀어 줍니다.
그때 주의 마음도 풀립니다.
그제야 ‘화목’이 일어납니다.
그때부터 생명 유실이 적어지고, 교회도 부흥됩니다.
또한 그때부터 갖가지 축복이 오고,
영과 육이 소원했던 희망이 이루어지고,
사탄도 물리치고, 지상천국도 이루어집니다.
집안에서도 그렇지요?
부부 사이에 맺힌 것이 있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맺힌 것이 있는데
가족들끼리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고 풀리겠습니까,
같이 물놀이를 가서 실컷 논다고 풀리겠습니까.
물론 그때는 그 환경에 젖어서 같이 어울리며 먹고 놉니다.
그러다 ‘근본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기에
집에 돌아오면 다시 마음이 틀어져서 싸웁니다.
맛있는 것을 먹더라도, 같이 어울리며 놀더라도
꼭 ‘서로 대화’하며 풀 것을 풀어야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교회도 그러합니다.
서로 마음에 뭉치고 맺힌 것을 서로 말하며 풀지 않고
물놀이나 각종 예술을 하면서 그때 임시 분위기로 풀게 되면,
그때는 그 환경에 젖어서 옆에서 하는 대로 자기도 어울리며 놉니다.
재미있어서 소리도 지르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서로 대화해서 푼 것이 아니고
순간 분위기에 어울려서 논 것이니,
근본의 맺힌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로 돌아오면, 다시 심정이 틀어지고 화목이 깨집니다.
<근본>을 풀지 못하면,
생활 속에서 심정을 건드릴 때마다
‘풀지 못했던 마음들’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땅에서 매인 것>이 안 풀리니,
<하늘에서 매인 것>도 안 풀리기 때문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서로 대화해라. 대화로 풀어라. 남김없이 풀어라.
<대화>가 ‘뭉친 것을 푸는 데 핵심’이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이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듣는 데서 속 시원히 말해야 됩니다.
혼자만 말하면 화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두 다 말을 못 하면 열 명, 스무 명이라도 이야기해야 됩니다.
최대한 돌아가면서 속마음을 이야기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말을 듣고 다른 사람들도
‘나도 저 사람처럼 그러하다.’ - 공감하고 이해하고 용서합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대화만 하면 힘드니까,
하다가 더우면 물에도 들어가고, 노래도 부르고,
깜짝 예술제도 잠깐씩 하면 됩니다.
그리고 또 대화하면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서 말해 줄게요.
가령 교역자가 교인들 앞에서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 줬다 합시다.
사람들 앞에서 인정해 주니, 마음이 기쁘고 좋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잘한다고 주께 보고도 해 주고,
공의롭게 ‘신급’도 올려 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냥 잘했다고 칭찬하고 끝나니,
마음에 응어리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입으로는 그 말을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해야 됩니다. 말을 안 하면 뭉친 것이 안 풀립니다.
“교역자님, 나 잘한다고 주께 보고도 해 줘요.
그리고 열심히 했으니 신급도 올려 줘요.” 해야 됩니다.
그러면 교역자는 그냥 넘기지 말고,
진지하게 면담하면서 대화하고 해결해 줘야 됩니다.
교역자와 교인 사이도 그렇고, 형제 사이도 그렇고,
교회에서 서로 깊은 대화를 하지 않으니
마음에 응어리가 져서 문제가 생깁니다.
<대화>로 풀고, <대화>로 자기 소원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함으로 서로 풀리고 화목하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인간’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주어 우리가 그 말씀을 행하면,
그로 인해 ‘우리의 영’이 변화되고 휴거되게 하셨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도 모릅니다.
<말씀>이 없으면, ‘성령의 역사와 은혜’도 없습니다.
<말씀>이 그리도 중합니다. <말씀>으로 다 해결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이사야 55장 6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불러라.
내게로 와라. 나와 풀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나는 죄짓고 이제 틀렸어. 천국에 못 가.’ 하면서
막 사는 사람도 있다.
무엇을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하고, 막 해 버린다.
이것이 <너희 생각>이다.
<나 여호와>는 너희가 포기하지 않고, 회개하고,
용기를 내어 열심히 해서
정녕 나 여호와가 원하는 뜻을 이루기를 원한다.
너희가 ‘생명의 길’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는
‘어차피 <육신>이 끝나면 <영혼>은 지옥에 가니
더 늙기 전에 매일 먹고 즐기고 놀자.’ -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나 여호와의 생각>은 ‘하늘’같이 높다.
<나의 생각>을 들어 보아라.
먼저 <죄>에 대해서 변론하자.
네가 ‘몰라’서 죄를 지었구나.
그러나 ‘네 양심’을 통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느꼈지.
<양심>도 ‘나 여호와가 준 생각’이다.
그런데 양심을 거스르고 그래도 계속했지.
<해결 방법>은 ‘오직 이것’이다.
잘못했다고 해. 그러면 용서할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또 ‘알고도’ 죄를 지었구나.
역시 <해결 방법>은 ‘오직 이것’이다.
네 잘못을 고하고 회개해. 그러면 용서한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이제 <의>에 대해서 변론하자.
네가 <의>를 행했느냐.
네가 <의>를 행한 만큼 네가 위기를 면하였고,
네가 <의>를 행한 만큼 네가 잘되었다.
그러나 <의>를 행하되,
나 여호와를 사랑하며 그 뜻 안에서 행해야
그 의가 ‘영원한 의’가 되어
네 <영>이 받아서 ‘영원히 효과’가 있다.
<일반 의>는 ‘육신’이 받고 누리고 끝난다.
하나님은 이같이 지구 세상 73억 명을 모두 대면하면서,
<말씀>으로, <말>로 변론하여 풀어 주시고 화목하게 해 주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그런데 사람들은 <말과 대화>로 풀지 않고
각종 예술로, 오락으로, 먹고 마시는 것으로 풉니다.
그러니 <근본>이 풀리지 않아
싸움과 다툼이 끊이지 않고 화목이 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얽히고 뭉친 것들’은
<말과 대화>로 풀고 <회개와 사과>로 풀어야 됩니다.
자기가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도 풀리게 하십니다.
교회에서도 모두 이같이 해요.
수련회가 ‘화목의 장’이 되게 해요.
이 기회를 잡고, 교회를 ‘화목’으로 이끌기 바랍니다.
<문제>가 정확해야 <답>도 정확하여 풀어집니다.
그러니 수련회 때 시간을 잘 짜서 모두 대화하고 전체가 대화하여
자기 속마음을 말하고, 상대의 말도 들어 봐요.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전도한 생명이 있는데,
관리를 소홀히 하여 나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잘하겠다고 ‘자기 생각’만 하고,
전도한 생명을 열심히 관리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니, 전도된 생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전도자가 지도자니까 그 전도된 생명은
싫다고 하지도 못하고, 못 하게 하지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다가
결국 몸이 아프다고 하며 교회를 안 나오게 됐습니다.
신입생인데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왔고,
선생이 대화하여 전도자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제야 서로 말하여 풀었습니다.
전도된 생명과 ‘깊은 심정의 대화’는 안 하고,
자기 생각대로 지나치게 간섭하며 관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깊은 대화와 관리’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화목>은 ‘진실한 말과 대화’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꼭 잊지 말기 바랍니다.
어떤 교역자는 교인 중에 자기 말을 따르지 않으니 거리를 뒀습니다.
그러니 결국 그 사람도 교역자의 모순만 보이고,
교역자도 상대의 모순만 보이니,
결국 서로 말을 안 하다가 감정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꼭 ‘진실한 말과 대화’로 풀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역자에게 비밀 면담을 했는데,
후에 교역자가 자기 이름을 대면서 뒤에서 말을 했습니다.
그것을 알고 심정이 상하니 돌아섰습니다.
교역자는 꼭 ‘대화’하며 그 사람에게 ‘회개’해야 됩니다.
그래야 풀립니다.
어떤 지도자는 식사를 사 주면서
“너는 그렇게 살이 쪘는데, 음식이 넘어가냐?
속이 상해서 나는 먹고 싶지 않다.” 했습니다.
섭리사에는 여자들도 보통 60kg이 넘는데,
그 사람들을 향해서 다 ‘말의 비수’를 꽂은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체질’이 다릅니다.
또 ‘키’가 크면 몸무게도 많이 나갑니다.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말을 함부로 하면 절대 안 됩니다.
모두 ‘대화’하고 ‘사과’하여 풀어야 됩니다.
선생도 여기 있지만 ‘수만 번의 글’로 대화하며
서로 뭉친 것들을 풀어 주었습니다.
역시 <화목하는 데>는 ‘대화’입니다.
수련회를 앞두고 있는 교회들은
오늘 말씀을 잘 듣고 지도자들이 의논하여
프로그램을 잘 짜기 바랍니다.
꼭! 서로 <대화>로 풀고 <회개>도 하고 <사과>도 하면서
땅에서 풀고, 그로 인해 하늘에서도 풀기 바랍니다.
<대화>하면서 물놀이도 하고, 깜짝 예술제도 하고,
함께 먹고 즐기기도 하기 바랍니다.
<주>가 ‘육신’ 쓰고 가고, ‘영’으로도 가서 봅니다.
또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예배 드리거나 영광 돌리기 전에
형제를 속상하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하고, 해가 되게 하고, 손해를 준 일이 있으면
꼭 형제와 <말>로, <대화>로 진정 사과하고 풀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 앞에도 회개하고 풀고 용서받아야 됩니다.
<인사치레>로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실 때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해야 됩니다.
그리함으로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매인 것을 풀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나아가 예배 드리고 영광 돌려야 됩니다.
형제와 풀 것을 안 풀고 주께만 잘해도 안 됩니다.
형제와 풀 것 먼저 형제와 대화하며 풀고,
주께도 감사하고 영광 돌려야 됩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화목’하게 됩니다.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민족도 ‘화목’입니다.
뉴스나 신문을 보면,
화목하지 못하고 늘 격한 감정으로 싸우는 일이 많습니다.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사건들은 전체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입니다.
민족, 종교계, 정치사회, 회사, 가정 모두를 다 보면
격한 감정으로 다투는 일이 만 배, 십만 배는 더 일어납니다.
모두 다 풀고 살아야 이 땅에 전쟁이 없고 화목하게 됩니다.
고로 하나님이 땅에 보낸 자는 매일 이것을 두고 기도합니다.
섭리사에 온 여러분들은 ‘하늘 신부들’이니,
꼭 서로 대화하고 풀면서 ‘화평과 화목’을 이루어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화목을 이룬 주인공들’이 되기 바랍니다.
올해 수련회부터 시작합니다.
<화목>을 위해 꼭 <대화>로 ‘마음에 뭉친 것들’을 풀어야 됩니다.
어느 교회든지 꼭 해야 됩니다.
이것이 되면 계속해서 교회가 잘되고 부흥되고,
각자 휴거 차원을 높이게 되고,
주 맞는 준비를 하면서 서로 교통하며 형통하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잠깐 말씀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어느 때는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주의 생각>도 어느 때는
<구원받으려고 따르는 자들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육성을 다 빼고 <하나님의 생각>을 전해 들으면, 정말 다릅니다.
크게 한다고 다 하나님의 생각과 맞는다고 할 수 없고,
작게 한다고 다 하나님의 생각과 안 맞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때마다 ‘합당’하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 생각, 주의 생각>과 딱 맞게 하려면
‘자기라는 돌포도나무 몸통’을 자르고, 거기에
‘주라는 참포도나무 머리’를 접붙여야 됩니다.
곧 ‘자기라는 몸’에 ‘주의 머리’를 달고,
<주의 생각>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자기 몸>에 <주의 머리>를 달지 않으면,
주가 이야기해도 ‘생각’이 다르고 ‘행실’도 다릅니다.
고로 주는 ‘내 몸이 아니구나.’ 바로 압니다.
휴거된 신부라면 <몸>은 ‘자기’이고 <머리>는 ‘주’입니다.
그러면 지혜, 명철, 총명, 말씀 충만, 성령 충만, 화목,
경제, 건강, 회개, 전도, 강의, 설교, 대화, 능력, 영감,
영의 세계, 선악 분립, 쪼개기, 분별, 판단, 기도,
사탄 멸하기, 악평 처리, 예술의 강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갑니다.
요즘에는 주가 교역자들을 1:1로 관리하면서,
교회에 문제가 있거나 교인들과 문제가 있으면
최대한 이야기해 주어 고쳐 주고,
만일 교역자가 습관이 되어 못 고치면 교체도 해 줍니다.
섭리사 전 세계 교역자들은 <주>가 직접 가르치고 이끕니다.
<주의 생각>은 ‘교역자들의 생각’보다 높습니다.
그러하기에 ‘구원’하고 ‘휴거’시키는 것입니다.
갇혀 있어도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서
그 생각을 가지고 행하니 만 배, 십만 배 행합니다.
문제는 <따르는 자들>이
‘주의 생각을 알아듣고 따르냐’, 혹은
‘주의 생각을 못 알아듣고 못 따르냐’입니다.
<주>는 생각이 높은데 <따르는 자들>이 생각이 낮으면,
주의 말을 못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따르는 자들의 생각 수준>에 맞춰서
지도해 주고 교육해 주겠습니다.
<하나님을 대변하는 자>와 <따르는 자>는 다릅니다.
<구원하는 자>와 <구원받는 자>는 다릅니다.
지도자가 ‘본인의 머리’에 맞춰서 하니,
주도 ‘그 정도의 머리’인 줄 알게 됩니다.
자기 생각을 싹 뽑아내고
오직 <주>를 ‘머리’로 삼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자기중심으로 하는 자는 운명이 점점 뒤바뀝니다.
늘 이해시키려고 같은 차원에서 전하는데
이제는 한 차원 높게 말씀해 주겠습니다.
쉽게 알아들으라고 늘 꿈 이야기를 해 주면서 설명해 주는데,
이제는 차원 높여 말해 주겠습니다.
교역자에게 ‘주의 말’을 전해 들어도
그들을 ‘머리’로 삼지는 말아야 됩니다.
교역자는 <머리>가 아닌, 여러분과 같은 <지체>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머리’이며 ‘하나님의 지체’입니다.
<주>를 멀리하고 <보이는 지도자>를 머리로 삼으면,
자기도 ‘그 수준’이 됩니다.
심정 쏟아 가르칠 때 배워야 밟히지 않습니다.
<주>를 ‘머리’로 삼지 않고
<자기 육성의 머리>를 ‘머리로 삼는 자’는
결국 ‘주를 머리로 삼는 자’에게 밟히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온 자인데 나중에 온 자에게 밟혀,
그가 ‘주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큰일들을 다 시키니, 모두 구경꾼이 되었습니다.
각 교회는 부지런히 가르치고 증거하여
<주>를 ‘머리’로 삼게 해야
<표적>이 일어나 매일 <화목>이 강같이 흘러가게 되고,
<휴거의 차원>도 <사랑>도 불이 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각 교회에 ‘선물 하나씩’ 주겠습니다.
(싸인 보여 주면서) 바로 이것이 선물입니다.
다 같이 읽어 볼까요? (싸인 밑에 아래와 같이 자막 띄운다.)
<싸인 화면에 띄우고, 밑에 자막 띄우고>
한 배 타도 <생각>은 각각이나, <목적지>는 ‘한 곳’이다.
그리고 오늘 말씀의 주제를 다 같이 외쳐 볼까요?
<화면에 자막 띄운다>
<대화>로 풀어라. 풀어야 화목하게 된다.
◎ 여기서 말씀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