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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6.08.10 (수)

160810 수요말씀

선포일
2016.08.10 (수)
성경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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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0일 수요말씀> 중요 휴거에 변수가 없게 해라 본 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자기 할 일은 생명과 같다.’라는 주제로 말씀했지요? <좋으나 나쁘나 우리는 하나다> 노래를 받은 ‘사연과 의미’도 말씀해 주면서, <자기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은 마치 ‘청소하듯 중하고 필요한 일’이며, ‘아픈 허리를 치료하듯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역사하셔도 자기가 행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 또 <휴거의 할 일>에 대해서도 말씀했지요? <지금 이때 자기에게 꼭 필요한 일>은 ‘휴거의 할 일’이다. 전쟁터에서 <원수>를 죽였어도 <자기>가 죽으면 무슨 ‘유익’이냐. <적>도 살리고 <자기>도 살리는 것이 ‘승리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의 악한 자, 악평자,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지옥’에 보낸다고 해서 자기에게 ‘유익’이 되냐? 결국 <자기>가 ‘천국에 못 간다면, 원수, 악평자들을 다 지옥에 보내도 ‘자기 유익’이 없다. 섭리사를 악평하는 자들이나 세상의 악한 자들이 어찌 됐든, <자기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은 어서 ‘휴거’를 이루고 ‘우리의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꼭 해야 될 일>이다. (했습니다.) ◎ 오늘은 ‘휴거의 할 일’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중요 부분  인생은 <좋은 일>도 보고 듣고 겪으며 존재하고, <나쁜 일>도 보고 듣고 겪으며 존재합니다. 고로 인생은 존재하는 한 <생각과 행위>에 따라서 ‘변수’가 일어나게 됩니다. 고로 좋다가도 ‘생각과 행위의 변수’가 생기면, 갑자기 돌변하여 안 좋게 됩니다. 또 안 좋다가도 ‘생각과 행위의 변수’가 생기면, 갑자기 좋게 되기도 합니다.  이러다 보니, 인생은 변화무쌍합니다. 신앙도 좋다가도 안 좋아지고, 안 좋다가도 좋아집니다. 모두 ‘생각과 행위의 변수’ 때문입니다. 이것이 ‘자기 휴거’와 직결되니, <좋을 때>는 ‘휴거 차원’을 높이기도 하지만, <안 좋고 나쁠 때>는 ‘휴거’를 잊고 상실하기도 합니다.  <삼위와 주께 절대 속한 자>가 되고, <휴거가 보장된 자>가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휴거 차원을 높여 <700선 휴거>를 넘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때마다 ‘생각과 행위의 변수’에 따라서 <휴거>에도 ‘변수’가 있게 됩니다.  <같은 휴거 700선>이라도 ‘차원’이 또 다릅니다. <미약한 저차원의 700선>이 있고, <완벽한 고차원의 700선>이 있습니다. <완벽한 고차원의 700선>이라야 어떤 일이 있든지 ‘변수’가 없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 <어린 자 수준에서 이것저것 갖춰서 700선에 이른 것>과 <보다 강도 높은 수준에서 이것저것 갖춰서 700선에 이른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이는 마치 <일반 사람이 보통 자재로 건축해서 완공한 집>과, <전문가가 좋은 자재로 건축해서 완공한 집>같이 차원이 다릅니다.  <나무를 캐다 옮겨 심은 것>이 ‘똑같이 700선’이라고 합시다. 일부 나무는 ‘일반 사람들’이 캐다 옮겨 심었고, 일부 나무는 ‘전문가들’이 캐다 옮겨 심었습니다. 모두 ‘700선 검사 딱지’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이 심은 나무’는 힘들게 살아나기도 했고, 그중 더러는 죽기도 했습니다. 이같이 ‘변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심은 나무’는 그대로 잘 뿌리박아 새잎이 나고 싱싱하게 크기 시작했습니다.  이와 같이 <휴거>도 그러합니다. 자신이 어떻게 얼마나 행했느냐에 따라서 똑같이 <휴거 700선>을 이뤘어도 ‘차원’이 달라집니다. 자신이 강도 높게 생각하고 전적으로 행하여 <휴거 700선>을 이뤄야 완전합니다. 그래야 휴거되고도 ‘변수’ 없이 완전합니다. 만일 제대로 못 하면 - <휴거>되고도 ‘변수’가 생겨서, <영>이 ‘천국에서 혼인 잔치’를 하다가도 <육>이 제대로 못 하니 불안해서 <육>을 돕기 위해 ‘땅’으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 <휴거>를 그냥 이루는 것으로 생각합니까? “<지구를 다 얻는 것>보다 <휴거>가 더 크다.” - 해도 아직도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 육성으로 생각하면서 육적으로 할 것들을 다 하고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 <휴거에 대한 설명>을 다시 듣기 바랍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 섭리인들의 행위를 보면, 그동안 몇 년 동안 전해 준 ‘휴거 말씀’으로 충분하니까 더 말씀하지 않고 그냥 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100명 중의 20명은 무너집니다. 그들은 ‘휴거가 상실’되어 ‘영원히 휴거되는 데 제함’을 받고, <휴거에서 벗어난 곳>에서 ‘시대 구원’만 받고 살게 됩니다. 영원히 복직은 없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더 중요 부분 ◎ <휴거>에 대해서 잘 들어요.  <휴거 전>에는 마치 ‘연애’하듯 <땅>에서 <육>으로는 ‘주’와 같이 살고, <영>으로는 ‘삼위일체’와 같이 삽니다. 바로 이때가!! 중요하고 귀합니다. 이때 ‘잘못된 성격과 행위’를 고치고, 매일 ‘죄를 회개’하여 깨끗하게 해야 됩니다. 잘못된 성격과 행위를 못 고치고 <결혼식 같은 휴거>를 하면, ‘질 낮은 휴거 결혼 생활’이 됩니다.  결혼한 자들을 봐요. 결혼하기 전에 잘못된 성격과 행위를 못 고치고 결혼하면, 결혼 후에 ‘질 낮은 결혼 생활’을 하게 됩니다.  <중요> 하늘 신부들도 그러합니다. <잘못된 성격과 생각과 행위>를 못 고치고 휴거되면, 온전한 삼위를 거스르고 주의 심정을 상하게 합니다. 그러면 휴거됐어도 ‘변수’가 생기게 되고, 하늘과도 주와도 ‘100% 누리지 못하고 사는 처지’가 됩니다. 그러면 하늘은 ‘다른 자들’을 통해 <영광>을 취하십니다.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삼위와 주의 ‘사랑’이 가고 ‘축복’이 갑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구원역사 6000년 동안 이같이 역사해 오셨고, 주도 땅에서 뜻을 이뤄야 하니 <이 사람>에게 ‘변수’가 생겨서 못 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채워 주면서 왔습니다.  <중요> 휴거되어 살아도 자기 육성을 못 버리고 자꾸 육적인 것들에 빠져 사는데, 이런 행위가 심하여 하늘과 갈등이 일어나면, 소리 없이 하나님과도 주와도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뜻>을 이뤄야 하니 하나님과 주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가게 되고, 결국 그 자리에 ‘제2의 사람’이 서서 행하게 됩니다.  <심령이 죽은 자>는 ‘산 자의 행위’를 모릅니다.  <중요> <휴거가 중하다는 것>을 알고 전심으로 행해야 됩니다. 계속해서 <휴거의 가치>를 모르고, 육성으로 흘러 <자기 성격>을 못 고치고, <자기 생각과 행위와 사랑>이 다른 데로 흐르면, 주는 다 압니다. 무엇으로 알겠습니까? <주께로 오는 사랑의 물줄기>가 약해져서 ‘사랑의 잔’이 안 차니, 그것을 보고 알게 됩니다.  <중요> - <사랑>이 육으로 흘러 다른 데로 흘렀든지, - <사랑>을 귀히 여기지 않고 주를 잊고 살았든지, - <사랑>이 세상으로 흘렀든지, 일단 ‘주께로 오는 사랑의 잔’이 넘치지 않으면, 그 문제로 인해 <신부의 휴거>에 지장이 생깁니다. 그 즉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도 그에 따라 대하십니다. 항상 <사랑의 잔>이 ‘한 방울’이라도 넘쳐흘러야 됩니다. 이것이 되는 자가 ‘보장된 신부’가 됩니다.  <중요> <여러분 각자를 향한 삼위와 주의 사랑>은 100%입니다. 고로 <삼위와 주를 향한 사랑>이 100%여야만, <사랑의 저울이 되는 삼위와 주 앞>에 ‘공의로운 사랑’이 됩니다. 이런 사랑을 하는 자가 ‘진실로 휴거된 자’이며 변수 없이 ‘휴거가 완전히 보장된 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 삼위와 주를 100% 사랑하지 않고 휴거되면, <그 영이 실제로 거하는 곳>이 자기 생각과는 다릅니다. 마치 ‘열매가 실한 과일나무’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열매가 시원찮은 과일나무’와 같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자기 휴거 집에 있을 것이 다 있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기대하고 찾아도 없습니다. 그제야 <행하지 않은 것>은 그저 망상에 불과하여 실제로는 되어 있는 것이 없고, <자기가 행한 것>만 실제로 ‘천국 자기 휴거 집’에 건설되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하나하나 깨닫게 됩니다. <천국의 자기 휴거 집>도 처음에는 좋아서 “이렇게 좋은 집이 내게 있다니!” 감탄하지만, <볼수록 만족 없는 집>이고, <방들도 만족스럽지 않은 구조와 디자인>입니다. 천국의 자기 휴거 집이 <처음에 볼 때 좋게 보이는 것>은 세상 집에 비해서 좋으니 그렇게 보인 것입니다. 천국의 자기 휴거 집이 <볼수록 점점 만족스럽지 않게 보이는 것>은 자기 생각만큼 갖춰지지 않은 상태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방의 구조와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좀 뜯어 고칠 수 있나?’ 생각하지만, 세상 집 고치듯 자기 마음대로 못 고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위>를 해야만 거기에 따라 ‘천국 휴거 집의 구조와 디자인’이 달라집니다. 때가 되어 배고파 먹을 것이 있나 보면 ‘그냥 일반 음식’입니다. 음식 맛도 ‘별로’입니다. 천국에서 기대했던 음식 맛이 아닙니다. 맛이 생각과 다르니, 먹다 맙니다. 정원에는 과일나무에 열매들이 열렸으나 ‘보통 열매’입니다. 따 먹으니 맛이 그리 입에 감치지 않고, 세상에서 먹는 ‘아쉬운 과일 맛’입니다. 이 모두 자기가 ‘사랑의 잔’을 충만히 채우지 않고 주를 대하고,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대한 연고이며 대가입니다.  <중요> 또한 자기 휴거 집 정원마다 <사랑의 열매를 여는 나무>가 있는데, 이 <사랑의 열매>는 ‘하나의 휴거 열매’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 ‘사랑의 열매’가 안 열린 채 ‘꽃’만 피어 있고, 어떤 열매는 파인애플만 하게 열려 있는데 익지 않아 시퍼렇습니다. 고로 따 먹지도 못합니다. 그리 익기를 원해도 푸른빛만 눈이 부시도록 납니다. 세상에서 삼위와 주를 ‘사랑의 잔’이 넘치도록 사랑하지 못한 연고이며 결과입니다.  <중요> <사랑의 열매>가 익으려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전심으로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면 ‘열매의 색’이 조금씩 변하면서 익는데, 익은 후에 먹으면 ‘삼위와 주를 사랑한 강도만큼’ 맛있어서 그 맛으로 <영의 뇌와 온몸>이 흥분됩니다. 그러면서 <영의 뇌와 온몸>에 ‘사랑의 불’이 붙게 됩니다. 그때부터 ‘사랑의 힘’이 솟고 <천국의 자기 휴거 집의 구조와 환경>도 달라지게 됩니다.  세상에서 살 때 삼위와 주를 전심으로 사랑하여 ‘사랑의 잔’이 넘치게 하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대한 자들은 천국 자기 휴거 집에 <자기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들>이 존재하고, 자기 정원에 <사랑의 열매들>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열려 있고, 푹 익은 과일 향기가 진동합니다. <푹 익은 과일>의 희망은 ‘주인이 먹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 과일을 따서 먹으면 세상에서 먹는 수백 종의 맛있는 과일과는 비교가 안 되게 맛이 진하고 달콤하고 향기롭습니다. 이 과일나무의 잎사귀는 싱싱하고, 과일나무의 둘레는 두껍고, 키는 사람의 ‘한 키 반’ 정도 됩니다. 한 나무에 과일이 ‘7~15개 정도’ 열립니다. 과일의 생긴 모양은 ‘타원형’인데, 마치 ‘참외’ 같기도 하고 ‘파인애플’ 같기도 합니다. 열매가 열리면, 꽃들이 열매를 싸 주고 있습니다. <꽃 속>에서 ‘열매’가 큽니다. 그런데 그 ‘꽃 껍질’을 까지 않고 ‘열매’를 먹어도 됩니다. 과즙이 풍부하고, 여러 가지 향기가 납니다. 씨가 없고, 실속 있는 과일입니다. 버릴 것이 전혀 없고, 한꺼번에 3~4개를 먹습니다. 따다 놔도 썩지 않고, 집에 과일 향기가 가득하여 그 향기에 취하게 됩니다.  천국에서 ‘딸기’를 봤는데, 그 크기가 ‘참외’만 했습니다. 보기에도 좋고 싱싱했고, 실제로 맛도 끝내줬습니다. <천국 딸기의 향기>는 어떤 정도인가 하면, 옆에만 가도 그 향기가 코를 찔러서 코피가 날 정도이고, 감기에 걸렸을 때 콧물이 줄줄 흐르듯 콧물이 흘러내릴 정도입니다. 먹으면, <영의 뇌와 온몸>에 전율이 흐릅니다. 너무 짜릿하여 “으앗!” 소리를 지르게 합니다.  <중요> 세상에서 ‘자기 육’이 삼위와 주를 진정 사랑하며 대한 대로, 천국에서 ‘자기 영의 정신과 생각’이 음식의 맛과 과일의 맛을 짜릿하게 느끼며 먹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한 가지만 더 말씀하고, 오늘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 <중요> 세상에서 <말씀을 귀히 보는 자>는 말씀을 들을 때 진실로 “아멘!” 할 뿐 아니라, 말씀을 들으면서 ‘희열’을 느끼고, 감탄하며 ‘흥분의 소리’를 냅니다. 얼마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귀히 대하고 말씀을 귀히 대하느냐 ‘그 뇌와 생각과 행실의 강도’에 따라서 <삼위와 주>를 느끼고 <말씀>을 느낍니다. <뇌가 반응하는 강도>가 낮고 <감각>이 낮으면, 아무리 ‘좋은 말씀’을 줘도 못 느낍니다. 마치 - <병든 자>에게 ‘진수성찬’을 줘도 맛을 못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 <설교>도 <잠언>도 귀히 여기고 기도하고 50번, 100번씩 읽고, 행하면서 보면 정말 기쁘고 흥분되어 - 마치 ‘사랑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이 정도는 돼야 - 말씀을 들으면서 ‘흥분’되고, “아멘!” 소리가 억제하지 못하게 저절로 나옵니다.  “깊은 말씀을 주세요. 깊은 깨달음과 감동을 받도록 말씀을 주세요.” 하지만 말고, 먼저 자기가 ‘깊이 기도’하고 ‘병든 생각’을 고쳐야 됩니다. 그러면 ‘말씀의 제맛’이 납니다.  음식도 ‘맛 값’입니다. <맛>에 따라 ‘황금 같은 음식, 은 같은 음식’이라고 합니다. 물론 <음식 맛>도 중요하지만, <먹는 자>가 ‘정상’이냐가 기본으로 중요합니다. <먹는 자>가 정상이 아니면, <음식 맛>이 좋아도 못 느낍니다.  천국도, 영의 세계도 <자기 생각과 혼과 영의 감각과 강도>를 약하게 하고 가서 보면, 별 감동이 없습니다. 기절초풍하게 느끼고 깊이 깨달으면서 보려면, <자기 생각과 행위의 수준>을 높이고 <강도>를 높게 해야 됩니다.  <잠언>도 ‘하나님과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씁니다. 하나의 ‘말씀의 과일’입니다. 이 ‘말씀의 과일’을 제대로 취하여 먹으면, <뇌>와 <생각>과 <온몸>에 전류가 흐르듯 감동이 흐릅니다.  <잠언 하나>는 ‘과일 하나’와 같고, <주일 설교, 수요 설교>는 ‘진수성찬’과 같습니다. 고로 매일 새벽마다 ‘과일 10~40개’를 주는 것과 같고, 매주 주일과 수요일마다 ‘진수성찬 한 상씩’ 주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고, 말씀을 듣기 바랍니다.  어느 때는 <말씀을 받을 때> 한 포도나무에 ‘수백 송이의 포도들이 열린 것’을 보여 주며 그것을 따 먹게 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쓰게 하십니다. 어느 때는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렸는데, 그중의 ‘익은 감’ 몇 개를 따 먹게 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쓰게 하십니다. 어느 때는 ‘복숭아, 사과, 배, 오렌지, 각종 과일’을 보여 주며 <말씀>을 쓰게 하고, 어느 때는 ‘쇠고기, 돼지고기, 칠면조 고기, 닭고기’ 등 특별한 고기들을 먹는 꿈을 꾼 후에 <말씀>을 쓰게 하기도 하십니다. 모두 ‘영의 양식’을 보여 준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성령님’이 주시는데, ‘수백 가지 과일과 음식’같이 만들어서 주신다는 뜻입니다.  <맛있는 과일과 음식>을 줘도 자기가 ‘건강한 상태’에서 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낍니다. 이와 같이 ‘자기 신앙, 뇌, 생각’이 ‘영적으로 건강’해야 하나님과 성령님이 각종으로 주시는 <영의 음식>, 곧 <말씀>을 제대로 느끼고 감탄하고, 영도 혼도 육도 <말씀>을 제대로 받고 느끼고 기뻐하며 <말씀의 영양분>을 쭉 흡수하게 됩니다. (믿습니까?) ◎ 마지막으로 잠언 두 개 전해 주겠습니다.  있을 때는 ‘귀한 것’을 모른다. 없어야 그제야 ‘귀한 것’을 10배, 100배 깨닫고 알게 된다.  <귀한 것>을 알아야 있을 때 목숨 걸고 모으고 쌓아 놓는다. 그리고 없을 때 댐의 물을 쓰듯 귀히 쓴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