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09.11 (일)
160911 주일말씀(자유의지, 별 수 있는 신앙과 별 수 없는 신앙) 최종본
- 선포일
- 2016.09.11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7장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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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11-주일말씀(자유의지,_별_수_있는_신앙과_별_수_없는_신앙)-최종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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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1일 주일말씀>
자유의지
별수 있는 신앙과 별수 없는 신앙
본 문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신앙 보장, 휴거 보장’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주제는 ‘자유의지, 별수 있는 신앙과 별수 없는 신앙’입니다.
<말씀 시작>
섭리사에 와서 시대와 주를 알고 그렇게도 열심히 하던 자들이
신앙이 변해 세상으로 가는 것을 두고,
기도하며 성령님께 고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그들이 과거에 열심히 했지.
그때는 나 성령도 인정하며 잘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이 식고,
마음에서 시대를 따르기 싫어하게 되고 변질된 이유가 있다.
자기가 신앙을 유지하지 못하고
점점 편안한 육적인 생활로 흐르고,
또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편한 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고생돼도 생명길로 가야 되는데,
고생은 피하고 대책 없이 편하게만 살다 보니 그리되었다.
또 이성으로 흘러 그것을 더 사랑하고,
영원한 것을 귀히 여기지 않고 등한시하고
가치 없게 여겼기 때문에 그리된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에 잘했어도 <오늘> ‘이성’으로 흐르고,
<오늘> ‘영원한 것’을 등한시하고,
<오늘> ‘시대와 주와 휴거’를 가치 없게 여긴다면
<오늘>은 생명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빨리 돌이키지 않고 그 삶을 연속하면,
결국 세상으로, 사망으로 돌아가게 된다.
<매일> 주 안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해야
신앙과 휴거에 변수가 생기지 않고,
사망으로 가지 않고 완전하다.” 하셨습니다.
(중요) 인생은 ‘어느 한 순간’이 아닙니다.
인생 100년 ‘매일’ 삶이 지속됩니다.
고로 ‘매일’이 중요합니다.
식사도 한 번만 한다고 살 수 있습니까?
숨도 몇 번 몰아쉰다고 살 수 있습니까?
잠도 며칠 몰아서 잔다고 살 수 있습니까?
<매일> 먹고 자고 <끊임없이> 숨을 쉬어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신앙도, 휴거도 ‘어느 한 순간’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도 ‘삶’이며, 휴거도 ‘삶’입니다.
고로 <매일> 먹고 자고 <끊임없이> 숨 쉬듯 해야 됩니다.
<과거>에 잘하고 끝냈다고 해서 지속되고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삶을 <현재>에도 살면서 <앞날>까지 지속해야 보장됩니다.
매일 진실로 기도하는 삶, 매일 말씀을 실천하는 삶,
매일 성령의 감동의 삶, 매일 휴거의 삶을 살면서,
매일 삼위일체를 ‘보이는 사람’같이 대하고
삼위와 대화하고 교통하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신앙이 넘어지고, 하늘 향한 사랑이 약해지거나 식고,
마음과 생각이 병들고, 휴거에 나쁜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매일> 열렬해야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마치
계속 비가 오면 도랑의 물도, 연못도, 호수도 마르지 않듯이
신앙도, 휴거도, 사랑도 마르지 않고 넘쳐흘러 완전하게 됩니다.
한 번에 빨리하고 몇 번 많이 한다고, 엄청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매일> 하면서 <꾸준히> 지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도 몇 번 많이 하고 끝내면 별 변화가 없습니다.
<매일 꾸준히>, 그리고 <매일 간절히> 해야
효과가 크게 나타나고 기도가 이루어집니다.
신앙도, 휴거의 삶도, 사랑의 삶도
<매일 행하는 자>가 ‘영웅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자를 통해 <말씀>을 주시면
그 말씀을 듣고 믿느냐, 안 믿느냐,
말씀을 듣고 행하느냐, 안 행하느냐는 각자 본인이 하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줘도 <자기>가 먹고 소화시켜야 되듯이,
구원과 휴거를 이루는 말씀을 줘도
<자기>가 듣고 행함으로 ‘육 변화, 영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어떤 끈으로 묶어 놓고
하나님과 메시아를 믿다가 싫어도 못 나가게 해 놓지 않으셨습니다.
고로 사망으로 절대 못 가도록 보장이 안 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자기 자유의지>를 절대 ‘하나님과 주’께 맡기고 살면
그 사람은 절대 ‘세상으로 흘러 사망으로 가는 변수’가 없고,
절대 ‘신앙 보장, 휴거 보장’이 됩니다.
<자기>가 ‘자기 신앙의 주인’이 되고 ‘머리’가 되어서 하면,
하나님과 주를 잘 믿고 행하다가도
시험에 들거나, 핍박이 오거나, 유혹을 받거나,
환경이 바뀌거나, 자기 마음이 변하면
생각을 ‘세상’으로 뺏기게 되고,
신앙에도, 휴거에도 안 좋은 변수가 생깁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계선을 넘어가면
자기가 싫어서 섭리사를 나가고,
자기 육성이 더 원하고 좋아하는 세상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하나님과 주를 믿고 살게 하셨어도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행하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만일 주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주를 믿다가 그만둘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리와 공의’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생각하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모두
하나하나 하나님의 간섭을 받으며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을 살피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스스로 먹고 소화시키게 하시고,
스스로 보고 듣게 하시고,
뇌를 창조하여 거기서 분별하고 판단하게 하셨습니다.
그 뇌에, 생각에,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주어,
자기가 그 말씀대로 생각하고 행하면서 변화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로 인해 혼과 영도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아무리 하나님과 주가 말씀해도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하느냐에 따라서
<자기 인생>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와 공의의 법칙>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주를 믿고 사랑하며
<구원>과 <영원한 것>을 위해서 잘하다가도
하나님과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죽고 신앙이 식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이성으로 가고,
세상 향락으로 빠지고, 물질 세상으로 가 버립니다.
이것은 <자기 자유의지>에 따라서
<자기 생각>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행할 것들’을 다 해 주십니다.
그러나 100% 생명을 마음대로 하지 않으십니다.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저마다
<자기>가 ‘자기 자유의지’대로 결정하게 두십니다.
<자기 자유의지>를 잘 썼느냐, 못 썼느냐에 따라
육의 운명도, 영원한 운명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던 자들이라도
이성으로 나가고, 술로 나가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가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고서 각종 이유를 대고
하늘을 원망하며 세상으로 갑니다.
이는 <자기>가 ‘구원과 휴거’를 가치 없이 여기고,
<자기>가 ‘자기 생각’을 병들게 하다가
그 ‘병’이 ‘자기’를 그렇게 되게 한 것입니다.
<구원>은 ‘구원자 혼자’ 살리고 잡아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구원하는 삼위와 주가 할 일>을 해야 하고,
둘째, <구원받는 본인의 절대 믿음과 행함>이
끝~~까지 적용돼야 합니다.
<휴거>도
첫째, <삼위와 주의 역사>로 이루어지고,
둘째, <휴거되는 본인 책임 분담>으로 이루어집니다.
섭리사를 나간 자들을 보면,
힘들어하는 자들을 찾아내고 연락해서
“왜 나같이 확 뿌리치고 안 나오고 거기에 매여 있냐?” 합니다.
그 말을 하는 자도 한심하고, 그 말을 듣는 자도 한심합니다.
<자기 육성>이 폭발되어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나가 놓고서는
<자기>가 ‘자유의지를 잘 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유의지>를 잘못 썼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 자유의지>로 자기가 원해서 생명길을 벗어났으니,
자기가 행한 대로 자기 삶도, 영도 책임져야 됩니다.
결국 <자기 자유의지>를 잘못 썼으니,
별수 없는 신앙이 되고 말았습니다.
절대 ‘육성’을 잡고
<영의 생각, 성령과 주의 생각>으로 행해야 됩니다.
<자기 자유의지>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말고,
꼭 ‘하나님과 성령과 주’께 맡겨야 됩니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생각대로 자기 갈 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과 주의 생각대로 행하여 ‘신앙과 휴거 보장’이 됩니다.
<자기 자유의지>를 ‘하나님과 성령과 주’께 맡기고
<자유의지>를 잘 쓰고 살아야 별수 있는 신앙이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사람의 생각>은 ‘변화무쌍’합니다. 정말로 잘 변합니다.
고로 구원받고 휴거되고도
<자기 마음>대로 사니 ‘휴거에 변수’가 생겨서
<육의 행실과 반응>에 따라서 <영>도 휴거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왜 휴거됐는데 변수가 생기냐. - 합니까?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단계까지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 차원 높여 ‘완전한 휴거, 완성된 휴거’를 이뤄야 됩니다.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세계 타이틀을 거머쥔 운동선수들도
<자기 기록>과 <타이틀>을 안 뺏기려고,
그 터전 위에서 ‘계속’ 행합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계속 <휴거>를 유지하면서 더 <차원>을 높이려면
휴거된 터전 위에서 ‘매일, 계속, 더’ 행해야 됩니다.
휴거됐으니, 자기가 하기만 하면 휴거되기 전보다 쉽습니다.
휴거된 영이 자기 육을 돕고,
영의 권세가 있으니 사탄도 잘 다스리게 됩니다.
- 그런데 휴거된 것을 확신하지 못하거나,
- 휴거를 경히 여기거나,
- 휴거됐다고 방심하고 매일 휴거의 삶을 살지 않으니까
휴거의 권세도 실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식고 변수가 생기는 것입니다.
모두 ‘방심’하면 안 됩니다.
휴거됐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휴거됐다고 ‘자기 자유의지’를 막 사용하면 안 됩니다.
휴거됐어도 아직은 ‘육’을 가지고 살아가니,
매일 ‘육성’이 튀어 올라옵니다.
매일 <말씀과 기도>로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매일 <삼위와 주>를 부르며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휴거의 권세, 신부의 권세>를 업신여기면 안 됩니다.
그러니 힘이 없고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휴거됐는데 보통으로 행하니, 그 힘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고로 ‘휴거의 차원’을 높이지 못하여
매일 그 위치에 있으면서 곤고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실력이 있어도 안 쓰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쓰고 연구하고 행해야 됩니다.
자기 실력만큼 <행하는 자>가 그 면의 ‘영웅’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본인의 자유의지>대로 하되,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자기 자유의지>대로 하되,
자기 마음대로, 자기 좋은 대로 했으니
자기가 선악 간에 100% 책임지고 대가를 받게 됩니다.
<자기 자유의지>로 선택했으나,
그것이 ‘옳은 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에 해당되는 대가>도 ‘자기’가 책임지고 받아야 됩니다.
<자기 자유의지>를 ‘하나님과 주’께 맡기고 그 뜻대로 한 자는
오직 ‘하나님과 주가 이끄신 길’로 갑니다.
신앙은 한 번 허리가 꺾이면, 정말 일어나기 힘듭니다.
본인이 얼마든지 안 꺾이게 할 수 있는데,
오랜 기간을 빗나가서 행하니 꺾이는 것입니다.
한 번 주의 품을 벗어나면, 다시 돌아오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복직 기간>이 길고,
다시 돌아와도 <목숨 걸고 할 힘>이 안 생깁니다.
그만큼 힘을 ‘세상’에 썼으니,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도 ‘보통 신앙’만 합니다.
섭리사에 있으면서도
<힘>이 빠져서 못 한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힘>이 없다기보다, 자기가 <힘>을 안 내는 것입니다.
주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자기가 ‘자기 생각’에 갇혀서 ‘못 한다’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데 <온 힘>을 다 쓰니, <힘>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차원에서 그때 그 순간만 생각하고 낙심하거나,
그때 그 순간만 생각하고 그냥 되는 대로 막 행하면서
이성에 빠지고 세상에 빠져 살면 절대 안 됩니다!
과거에 이성으로 흘러 막 살다가 다시 돌이켰는데,
<본래 하나님과 주가 계획하신 뜻>을 이루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잘하다가 자기 갈 길로 가면,
하나님은 ‘펑크 난 타이어’를 ‘새것’으로 교체하듯
즉시 ‘다른 사람’을 세워서 행하십니다. 왜요?
교체하지 않으면 <하나님 섭리의 뜻>을 운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에 섭리사에서 그리도 주의 사랑을 받고 살던 자였는데,
생각이 변하고 사랑이 식어서 배신하고 나갔습니다.
그 영을 봤는데, ‘예전의 아름답던 모습’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하기를
‘저런 자를 구원하고 휴거시키려고 그리도 사랑하고 도왔다니...
과거가 너무 안타깝다.’ 했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없게 해 줬어도 걷어차고 배신하고 나갔으니,
‘내가 못 해 줘서 저리 됐구나.’ 하는 생각도 안 들었습니다.
그~렇게 붙잡아 주고 도와주고
오직 구원과 휴거를 위해 그리도 사랑해 줬는데,
주를 배신하고 이성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리도 회개하라고 기회를 줬지만
1년, 2년, 3년이 가도록 계속 속이고 거짓말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리도 충분히 회개 기간을 줘도 안 했으니,
자기가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주를 등지고 자기가 행한 행위>로 인해
결국 ‘육’도 ‘영’도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결국 <자기>가 ‘자기’를 그리 만든 것입니다.
썩은 과일은 아깝지 않지요?
이와 같이 ‘사망에서 썩어 있는 영들’은
마치 ‘죽은 나무’와 같아서 아깝지 않습니다.
아무리 <과거에 휘날리며 살았던 자>라도
<현재 사망에서 썩어 있는 자>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어려도 - 살아 있는 생명>이 그리도 큽니다.
지금은 ‘살아 있는 자들’을 귀히 보고 관리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세상 사업>도 <어떤 일>도 한 번 깨지면, 다시 하기 힘듭니다.
<신앙>도 한 번 리듬이 깨지고 신앙의 삶이 깨지면,
그 후에는 하고 싶어도 다시 하기 힘듭니다.
한 번 신앙의 삶이 깨진 자의 영적 현상이 어떠한지,
영계에서 그 광경을 봤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줄 테니 잘 들어요.
<영계의 현상>
신앙의 삶이 깨진 자의 ‘영적 현상’을 보니,
그 <영>이 ‘강 건너 사망’으로 갔는데,
사탄이 ‘그 영’을 잡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그곳을 벗어나 ‘다시 생명권으로 돌아오게 할 배’가 없었고,
그러니 ‘그 환경에 처한 영’이 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 영을 만나 보니,
그 ‘생각과 행위와 속’이 훤히 보였습니다.
전에는 그렇게도 간절하게
“나는 생명권으로 다시 돌아가야 된다.
나는 여기 살 영이 아니다. 다른 자들과 나는 다르다.
나는 전에 살던 생명권으로 꼭 돌아갈 것이다.”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80% 이상이 ‘거기 사는 영들’과 어울리면서
아예 ‘그 환경의 체질’이 되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사는 집은 ‘개집’보다 조금 컸고,
천장 높이는 ‘1m’도 안 되어
허리를 ‘ᄀ’자로 구부리고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나를 보더니 <생각>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고는 나를 따라 나오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잘 안 됐습니다.
거기서 나오려는 마음을 먹으니,
거기서 ‘그들을 관리하는 악한 영들’이 감시하면서 말하기를
“왜 생각이 그릇되었냐. 너는 여기 백성이 아니냐.
그러니 여기 법을 따라야 된다.”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자기들의 백성’이 아니니,
내게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옆에 서 있기만 했습니다.
그때 생각하기를
‘여기 사망권에 있는 영들을 데리고 나오려면
내가 ‘한동안’ 여기 살면서 계속 가르치고
<생각>이 바뀌게 하여 이끌어 내야 된다.’ 했습니다.
그런데 간첩같이 이곳에 숨어서
그렇게 오랫동안 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열심히 하며 따르는 자들도 계속 가르쳐야 되고,
또 구원을 기다리는 자들도 구원해야 했습니다.
사망권에 있는 영들을 보니,
아예 그 모습이 변질되어 귀신 같았습니다.
이미 그리도 사랑해 주고 도와주었는데
자기가 가치를 모르고 안 해서 사망으로 온 영들을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가르치고 투자해도
그들이 다시 잘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내주며 다시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별로 안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과거가 생각나,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렇게 잡아 줘도 자기 마음이 변해서 이리되었는데,
또 마음 변해서 돌아서면 무슨 소용이냐?
열심히 하는 자들에게 시간을 내주고,
그들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주자.
그리고 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하자.
그리함으로 더욱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
또 주를 기다리며 인생길을 찾는 자들을
어서 전도해서 가르치자.’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섭리사를 나간 자들의 영적 실상’을
보여 주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섭리사를 나가면,
<자기 행위>대로 ‘사망으로 끝나는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고
섭리사 전체에게 가르쳐 주라 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니 ‘아주 조금 빛이 있는 세계’가 보였습니다.
그곳을 보니 ‘원시인같이 사는 영들’이 있었습니다.
각자 ‘자기 육의 행위’대로 그‘영들’이 대가를 받고 있었는데,
<구원해 주러 오는 자>도 없었고
<찾아와 보는 자>도 전혀 없었습니다.
<구원의 길>은 ‘실오라기’만큼도 없었습니다.
그 영들을 보니 - 이미 세상에서 그 ‘육’에게
각종으로 <구원의 빛으로 오는 길>과 <기회>를 다 줬는데,
<자기 자유의지>를 잘못 쓰고 ‘자기중심’으로 살면서
끝까지 구원의 길로 오지 않은 자들의 영이었습니다.
고로 그들을 ‘실오라기’만큼이라도 이끌어 내기 위해
찾아오는 자가 전혀 없었습니다.
옷은 썩어 냄새가 났습니다.
<자기 육의 형상>을 ‘영’도 가지고 있었는데,
<육>은 ‘미인’이었는데
<영>은 병든 폐인같이, 거지같이 되어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극심한 병에 걸려 피골상접하고,
죽음의 선고를 받고 살 날이 며칠 안 남은 자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영혼의 양식>인 ‘말씀’이 끊어졌으니
그렇게 피골상접이 되어 막연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 알아야 됩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저런 자들을 구원하고 휴거시키려고
그리도 사랑해 주고 도와주며 몸부림쳤구나.
다시 구원하고 원상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구원과 휴거>는 이미 기울었으니 주도 마음을 접습니다.
이제 <주를 따르며 열심히 하는 자들>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인생길을 찾는 자들>을 다시 전도하여
그들에게 ‘구원의 시간, 의의 돈’을 써서 그들을 구원합니다.
하나님도 그리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 때가 지나면, 끝장이구나.
필요 없이 그들을 챙기고 사정할 것 없구나.’ 깊이 깨달았습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생명권에서 생명의 말씀을 들으며 사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중한지 깨닫고,
이 삶을 매일 낙으로 삼고 인생을 투자하고 살아라.”
<잠시 쉬었다가>
혼계나 영계에 가 보면, ‘혼과 영의 비밀’을 보게 됩니다.
이는 <가상>이 아닌 <실체 세계>입니다.
<흑암 쪽에 있는 혼이나 영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려 하면,
어떤 혼과 영은 자기 흉측한 모습을 안 들키려고 도망가기도 합니다.
또 어떤 혼과 영은 거기를 벗어나려고 나를 따라 나오려고 하는데,
도저히 나와지지 않습니다.
어떤 혼과 영은 수렁에 빠져서 나오려고 하면 또 빠지고 또 빠지니,
괴로워서 계속 소리를 지릅니다.
어떤 혼과 영은 쥐가 끈끈이에 붙은 것같이
몸도 등도 끈끈한 것에 붙어서
거기서 나오려고 온갖 몸부림을 쳐도 계속 들어붙으니
힘이 빠져서 결국 못 나옵니다.
한번은 섭리사에 있는 잘 아는 사람인데,
‘아니, 네가 이 정도야? 육계에서 보고는 모르겠구나.’ 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그 손을 잡고 잡아당기니,
끈끈이가 하나의 철 고랑같이 강했습니다.
내 몸도 같이 붙어서 안 떨어져서
순간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힘이 와서 오랫동안 몸부림쳐서 나만 떨어지고,
그 사람은 그대로 끈끈이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겁이 나서 다시 잡아끌어 올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내 조건으로
‘그 매여 있는 육신에게 편지하여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회개하게 하자.’ 하고
그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그러니 자기가 요즘 어디에 빠지거나 묶인 것 같다고 하며,
기도가 안 되고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잠만 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빠져나오려고 노력해도 생각대로 잘 안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기도해 줬습니다.
꿈으로 자기 혼과 영을 보면서 기도하여 결국 기도가 되고,
그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했습니다.
자기 육이 어떤 것에 묶여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주를 오해하거나, 자기 주관에 빠져 생각하거나,
세상에 빠져 있거나, 이성으로 흘러 있거나,
여러 가지 일로 묶여 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는 결국 그 <묶인 것>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고,
결국 ‘죄의 주관권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때는 나오려고 안간힘을 써도 혼도 영도 쉽게 안 나와집니다.
꿈에 <자기 혼>이 묶이지 않고 날아다녀야 됩니다.
<영적 실상>은 ‘육의 행위’로 보이고,
<육의 실상>은 ‘혼’으로 보입니다.
고로 <자기 육의 생각과 행실>을 잘 살펴보고,
어디 ‘묶인 것’이 없는지 잘 보고 관리해야 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자기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성령과 주의 방향>으로 잘 써야 됩니다.
잘못하면 <자기 자유의지>를 잘못 쓰고,
<자기>가 ‘자기’를 사망으로 보내게 됩니다.
<자유의지>를 자기 마음대로 잘못 쓰면
별수 없는 신앙이 되어 사망으로 가고,
<자유의지>를 하나님과 주께 맡기고 그 뜻대로 잘 쓰면
별수 있는 신앙이 되어 삼위와 주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과 주가 귀히 보고 생명의 양식을 줘도
<자기>가 ‘매일 꾸준히 끝까지’ 행해야 됩니다.
자기가 주의 말씀을 받고 행함으로!!!
휴거되어 그 영이 황금성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구원받고 휴거되는 자들>이 많으나,
자기가 귀히 관리하지 않아서
점점 <사망으로 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구원받고 휴거되어 열심히 하는 자들>이 많으나,
자기가 귀히 여기지 않고 변해서
점점 <일반적으로 되는 자들>이 많습니다.
절대 ‘휴거 보장’을 받고 ‘휴거’에 마음을 놓으려면,
절대로 ‘매일 주와 교통, 주와 일체,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자기 행위>로 구원도, 휴거도, 황금성 천국도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보장받게 됩니다!
그 행위의 터전 위에 ‘주의 역사, 삼위의 역사’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주의 말씀을 ‘절대시’해야
<삼위와 주>도 ‘절대’ 행하십니다.
주와 떨어지면 안 됩니다.
생각과 행실이 일체 되어 있어야 됩니다.
주와 일체 돼야 - <휴거>에 마음을 놓습니다.
한번 ‘자기 생각’을 잘 살펴봐요.
주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주가 말하면 자꾸 토를 달고 인정하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줘도 느낌이 없고 감동이 없고,
자꾸 ‘자기 생각’으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불평이 되고, 원망이 되고, 악평이 되어
주와 더 멀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가 안 보이고,
한계선을 넘어가서 결국 신앙이 와르르 무너지게 됩니다.
엉성하게 하면, ‘자기 혼과 영’에게 별 기대도, 희망도 없습니다.
정말 잘해야 됩니다.
마음이 식지 않도록, 신앙의 병이 생기지 않도록,
휴거에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주와 멀어지지 않도록
<주의 말씀>을 확실히 ‘자기 뇌 과일’에 꽂고
매일 귀히 보고 행하며 주를 부르고 찾고 대화해야 됩니다.
<말씀>이 ‘영의 양식’이고 ‘무기’이며,
‘나무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퇴비’와 같고,
‘과일나무의 밑거름’과 같습니다.
<말씀의 권세>는 ‘철장 권세’입니다. ‘주의 권세’입니다.
고로 이것으로 싸우고 다스리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항상 ‘진리 충만, 성령 충만’해야 됩니다.
항상 깨어 근신하며
절대 <주의 생각>과 멀어지지 않게 하기를 축원합니다.
<110일 기도 기간> 동안 이것을 놓고도 기도하면서,
- 주와 일체 된 생각을 회복시키고,
- 묶인 것들을 풀고 회복하고,
- 마음의 병과 신앙에서 병든 것들을 치료하고,
- <기도의 불>이 붙어
<다른 것들>도 하나하나 다 ‘불’을 붙여 나가
휴거 차원도 높이고, 생명 농사도 잘 짓고,
신앙 보장, 휴거 보장을 받고 기뻐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