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6.09.14 (수)
160914 수요말씀(자유의지, 별 수 있는 신앙과 별 수 없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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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14 (수)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7장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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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14-수요말씀(자유의지,_별_수_있는_신앙과_별_수_없는_신앙).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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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4일 수요말씀>
자유의지
별수 있는 신앙과 별수 없는 신앙
본 문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자유의지’에 대해 말씀하면서,
<신앙 보장, 휴거 보장>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 오늘은 <주일에 전해 준 말씀>을 조금 전해 주고,
<주일에 못다 한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고로 하나님과 주를 믿다가 주를 등지더라도
어떤 절대적인 끈으로 묶어 놓고 못 나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주를 잘 믿고 행하다가도
시험이 들거나, 사탄의 유혹을 받거나, 이성에 빠지거나,
환난과 핍박이 오거나, 생각을 세상으로 뺏기면
점점 신앙이 넘어지고 주와 멀어집니다.
그러다 자기가 싫어서 주를 등지고,
자기 육성이 더 좋아하는 대로 세상으로 나갑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주를 사랑하고
구원과 영원한 것을 위해 살면서 그렇게 잘하다가도
하나님과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죽으면
자기가 좋아하는 이성으로 가고,
세상 향락으로 빠지고, 물질 세상으로 갑니다.
하나님이 택하여 하나님과 주를 믿고 살게 하셨어도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행하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하나님과 주를 믿다가 그만둘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리와 공의’가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생각하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것 모두
하나하나 하나님의 간섭을 받으며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을 살피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스스로 먹고 소화시키게 하시고,
스스로 보고 듣게 하시고,
뇌를 창조하여 거기서 분별하고 판단하게 하셨습니다.
그 뇌에, 생각에,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 주어,
자기가 그 말씀대로 생각하고 행하면서 변화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로 인해 혼과 영도 하늘나라 형체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순리와 공의의 법칙>입니다.
교회에서 봐도 열심히 하던 자들이
이성으로 나가고, 술로 나가고, 마음이 식어서 나가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고 각종 이유를 대고 원망하다가
세상으로 나갑니다.
이는 <자기>가 ‘자기 구원’을 등한시하고 가치 없이 여기고,
<자기>가 ‘자기 생각과 신앙’을 병들게 한 것입니다.
그 병으로 인해 <자기>가 ‘자기’를 그렇게 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행할 것들’은
성령과 함께 기본으로 다 해 주십니다.
그러나 ‘자기가 행할 것들’은 자기가 해야 됩니다.
<구원>은 ‘구원하는 하늘 편이 할 일’과
‘구원받을 본인이 절대 갖춰야 될 믿음과 행함’이
끝까지 적용되어야 받습니다.
<휴거>도 ‘휴거시키는 삼위와 주의 역사’와
‘휴거되는 자기 책임’이 같이 있어야 이룹니다.
신앙뿐 아니라 인생들이 살아갈 때도
<자기 자유의지>에 따라서 ‘자기 좋은 대로’ 결정하며 삽니다.
좋은 지역에 살다가도
<자기 생각>이 변해서 ‘다른 지역’이 더 좋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곳은 아니다.” 해도
거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니
그 좋은 집도 팔고 환경도 버리고
‘자기가 택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때부터 ‘환경의 운명’이 뒤바뀝니다.
인생 삶도 그러하고, 신앙의 세계도 그러합니다.
<자기 생각>이 변하면 ‘전에 좋아하던 것’도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결정’했기에
결국 <육>도 ‘자기 행위’대로 받고,
그로 인해 <영의 운명>도 ‘영원히 결정’됩니다.
하나님과 주를 믿고 사랑하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자기 생각>이 변하면,
전에 아무리 ‘하나님과 주’를 사랑하며 살았어도
그 마음이 변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주와 멀어지고 주를 떠나게 됩니다.
세상에서 자기 좋은 대로 살다가 후회하면서,
다시 주 앞에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에 빛나던 때’와 같지 않습니다. 왜요?
<자기 행위>로 인해 ‘영의 위치’가 결정됐기 때문에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영’이 즉시 회복되지 않습니다.
다시 ‘의를 행하고 의를 쌓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기 구원과 휴거>를 ‘삶과 생활’로 삼고,
마치 ‘자기 육신’이 살아 나가듯
절대 하나님과 주를 믿고, 세상 불의를 끊고
<매일 절대적>으로 살아야 됩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과 주를 믿고 구원과 휴거의 삶을 살수록
<절대 신앙>이 되어 ‘영계의 영의 상황’이 확확 달라집니다.
<인생 사는 공식>은 같습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이라도
자기 사업이나 자기 일을 할 때
절대적으로 행하며 열심히 하면 얻고, 안 하면 못 얻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주를 믿어도
그냥 ‘일반적’으로 믿으면 그 가치를 반 정도만 알고 얻습니다.
절대적으로 믿고 구원과 휴거의 삶을 사는 만큼
가치도 확실히 알고 많이 얻습니다.
각자 ‘자기 행위’대로 겪고 얻고 받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 없이 행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마다 자기가 행한 대로, 자기가 하나님을 대한 대로
호리라도 다 갚아 주십니다.
<육>이 ‘구원에 실패’하면,
그 <영>은 100% ‘지옥’이나 ‘지옥 쪽’으로 갑니다.
<육신이 죽은 후>에 그제야 심판받는 것이 아니고,
<육신이 살아 있을 때> ‘매일 자기 삶’으로 심판받습니다.
<육신이 살아 있을 때>
자기가 ‘의를 행한 것’도 받고, ‘불의를 행한 것’도 받습니다.
그 <영>도 ‘자기 육의 행위’대로
‘그에 해당되는 영계’에 처해 살게 됩니다.
처음에는 <구원받고 휴거되는 자들>이 많으나,
자기가 귀히 관리하지 않아서
점점 <사망으로 가는 자들>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구원받고 휴거되어 열심히 하는 자들>이 많으나,
자기가 귀히 여기지 않고 변해서
점점 <일반적으로 되는 자들>이 많습니다.
절대 ‘휴거 보장’을 받고 ‘휴거’에 마음을 놓으려면,
절대로 ‘매일 주와 교통, 주와 일체,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자기 행위>로 구원도, 휴거도, 황금성 천국도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보장받게 됩니다!
그 행위의 터전 위에 ‘주의 역사, 삼위의 역사’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과 주의 말씀을 ‘절대시’해야
<삼위와 주>도 ‘절대’ 행하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세상 사업>도 <어떤 일>도 한 번 깨지면, 다시 하기 힘듭니다.
<신앙>도 한 번 리듬이 깨지고 신앙의 삶이 깨지면,
그 후에는 하고 싶어도 다시 하기 힘듭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나 사는 자들의 영들>을 영계에서 보면,
상상할 수도 없는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거기서 사탄에게 잡혀서 묶여 있고 형벌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는 <방의 천장 높이>는 70cm, 1m도 안 되고,
<집 크기>는 큰 개집만 합니다.
<옷>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고,
<먹을 것>은 종일 다니면서 겨우 주워 먹고,
그러니 몸에 <영양>이 부족하여 살이 뼈에 착 붙어 있고,
그곳에 오는 자들이 없으니 막연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영혼의 양식>인 ‘말씀’이 끊어졌으니
그렇게 피골상접이 되어 막연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 알아야 됩니다!
그들의 영을 보면, ‘세상에서 봤던 모습’이 거의 없습니다.
겨우 “저 영이 누구의 영이구나!” 하고 알아볼 정도입니다.
젊은 자인데, 90세 노인처럼 다 늙어 있습니다.
극심한 병에 걸린 것처럼 폐인이 되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영을 구원하러 찾아오지 않습니다.
고로 다시 생명권으로 돌아오기를 원해도 쉽게 안 됩니다.
-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돌아오기를 원하고,
- 주의 생각대로 계속 행하고,
- 진실로 회개해야 겨우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극히 드뭅니다.
이미 ‘그 영이 사망으로 선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로 ‘육’이 생명권으로 다시 돌아오려 해도 잘 안 됩니다.
다시 살리려면 구원자가 사망권에 가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며 가르치고
<생각>을 돌려놓고 이끌어 내야 됩니다.
그러나 이미 변심해서 사망권으로 갔는데,
다시 돌이키고 잘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 <영의 체질>도 ‘사망권의 체질’이 되어
돌이키고 생명권으로 온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시간>과 <의>를
- ‘열심히 하는 자들’에게 투자하고,
- ‘인생길을 찾는 자들’에게 투자해야 됩니다.
그리고 어서 ‘하나님의 뜻’을 더욱더 펼쳐 나가야 됩니다.
영의 세계를 보면, 투명하게 다 보입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이미 ‘구원과 휴거’가 기울어졌는데,
<육의 세계>에서는 모르니 계속 관리하고 기도해 줍니다.
이는 마치 ‘죽은 소나무를 계속 관리하는 격’입니다.
이 소나무가 죽으면 ‘다른 소나무’를 캐다 심고,
<죽은 소나무> 대신 기쁨과 희망을 얻습니다.
주를 따르다 나간 자들도 그러합니다.
그보다 ‘더 좋은 자’를 택하고 구원하여
<사망으로 간 자들> 대신 기쁨과 희망을 얻고 뜻을 이룹니다.
월명동에도 열 주의 소나무가 죽었습니다.
일부는 현장에서 캐다가
빨리 월명동으로 옮기지 못하여 늦게 심어서 죽었고,
일부는 심기는 했는데
장마철에 소나무 뿌리를 싸고 있던 흙이 떠내려가서
뿌리가 다 노출되어 말라 죽기도 했습니다.
그때 “이 솔은 누구 상징이다.” 했습니다.
상징물처럼 그 생명도 결국 섭리사를 나갔고,
결국 ‘영원히 사망에 묻히는 소나무 같은 영’이 됐습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이 ‘사망’으로 가니,
그 <혼과 영>도 ‘사망’으로 간 것입니다.
<사망에서 혼과 영이 받는 고통>은
마치 ‘100% 육신이 사망에 가서 받는 고통’과 같습니다.
<생명권에서 생명의 말씀을 들으며 사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중한지 깨닫고,
이 삶을 매일 낙으로 삼고 여기며, 인생을 투자하고 살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저마다 기도하여 영계에 가고자 하면,
누~구나 ‘실력’이 있어서 가 보게 됩니다.
꿈에 <지상영계>도 보고,
<그 위의 단계의 영계 등> 다양하게 보게 됩니다.
또 <섭리사를 나간 자들이 사는 세계>도 보게 되고,
<지옥 세계>도 보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의 꿈’이 아니고,
<혼>이 ‘영의 비밀의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못 보면, ‘주의 말’을 들으면 됩니다.
절대 ‘보장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어떤 것이 보장된 삶일까요?
영원한 삶이 보장되고, 휴거가 보장된 삶입니다.
그러려면 <자기 구원과 휴거>를 ‘삶과 생활’로 삼고,
마치 ‘자기 육신’이 살아 나가듯
절대 하나님과 주를 믿고, 세상 불의를 끊고
<매일 절대적>으로 주와 일체 되어 살아야 됩니다.
절대로 ‘매일 주와 교통, 주와 일체,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자기 행위>로 구원도, 휴거도, 황금성 천국도, 영적 상황도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보장받게 됩니다!
그 행위의 터전 위에 ‘주의 역사, 삼위의 역사’입니다!
‘내가 이렇게 믿고 행해서는 영적으로 별로겠다.’ 하면,
그 생각이 거의 맞습니다.
<주의 조건과 공로>로 영적 상황에 변수가 있지만
<자기 행위와 삶>을 따지고 계산해 보면,
자기가 생각하는 영적 상황이 거의 맞습니다.
하나님과 주를 믿고 사랑하다가 떠나면,
<메시아>는 ‘그 사명의 권한’만큼
그 ‘육신의 삶’을 틀고 칩니다.
<육신이 하는 일>이 ‘허사’가 되게 하기도 하고,
그 <육>을 ‘병과 환난’으로 치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메시아의 권세이므로 ‘계시록의 말씀’같이 행합니다.
<사망으로 선고받은 영들>은 ‘뿌리를 모두 자른 나무’같이 됩니다.
고로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점점 ‘사망으로 사라지는 현상’이 보이게 됩니다.
섭리사에서 하나님도, 주도 사랑하며 열심히 하다가
점점 ‘세상과 이성’으로 빠져 결혼을 한 자가 있습니다.
그 인생이 어떻게 되나 보니
당장 남편이 하던 사업이 사막처럼 되었고,
본인은 병들어 쓰러져서 후회하며 탄식하고,
그 영은 사망에 묶인 영이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대신하여 ‘그보다 100배 더 나은 자’가 다시 와서
<전자의 운>과 <자신의 운>을 다 받아서 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전자를 통해 못 이루는 휴거의 뜻’을 이루고 계셨습니다.
그 <영>은 어떻게 되나 보니 ‘배신의 영’으로 복직이 안 되고,
육과 영이 받은 선고가 ‘1000년’인 고로 회복이 불가능했습니다.
그 사람의 과거를 생각하니 ‘모순’만 생각났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하나님과 주 앞에는 극으로 잘하면 ‘극의 사랑체’가 되어
<생명의 영>으로서 ‘영원히 누리는 자’가 되고,
변심하여 등을 돌리면 ‘극의 반대편 사람’이 되어
<사망의 영>으로서 ‘영원히 소멸되는 자’가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한번은 ‘한 생명’에게
정말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며 몇 년 동안 그를 챙겼습니다.
그런데도 ‘자기 삶과 이성’에 빠져서 안 돌아왔습니다.
계속해서 돌이키도록 돕고 기회를 줬으나, 절대 안 돌아왔습니다.
이를 두고 하나님께 보고하니,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도 ‘많은 생명 가운데 하나의 생명’에 불과하다.
그 한 사람에게 ‘그렇게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왜 쏟느냐.
큰 산을 파고 <과수원>을 만들어서
그 과수원에 ‘수만 주의 과일나무’가 있다 하자.
그중의 <한 나무>만 관리하면서
그 <한 나무>에서 ‘많은 열매’를 얻으려 하느냐.
아무리 퇴비를 많이 하고 가꿔도 ‘한 나무의 희망’이다.
<한 나무>에서 ‘2~3배의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
<전체>를 골고루 잘 대해 주자.
어느 누가 됐든지 ‘많은 인생 중의 한 인생’이다.” 하셨습니다.
큰 산을 파서 <과수원>을 만들고,
거기에 ‘수만 주의 과일나무’를 심었다 합시다.
그중의 <한 나무>만 관리하고 거기에만 정성을 쏟으면,
아무리 잘돼도 ‘한 나무에서 얻는 열매’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병든 나무’이거나 ‘질이 안 좋은 나무’이면,
거기서 열린 ‘열매’도 별로입니다.
고로 그만큼 수고해도 손해가 됩니다.
공의롭게 <모든 나무>를 다 관리하고 가꿔야 됩니다.
나무마다 1년에 똑같이 두 번씩 퇴비하고 소독해 주어
<나무 전체>가 ‘열매’를 열어야 ‘많은 유익’이 됩니다.
이것이 ‘공의의 관리’입니다.
신앙 세계에서 <생명 관리, 생명 농사>도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사과나무를 심었는데 <병든 나무>이거나 <열매>가 별로이면
주인은 얼른 판단하여 ‘그 나무’를 캐내고,
거기에 다른 종인 ‘포도나무’를 심어서 관리하여
<사과나무를 통해 못 이룬 소원>을 이룹니다.
많은 나무들 중에서 그 나무만 ‘포도나무’이니,
주인은 더욱 기대하며 가꾸고 퇴비해 줍니다.
때가 되면 그 나무에서 포도가 50송이, 70송이씩 열리고,
주인이 그 열매를 따 먹고 기뻐하며
자기 동료들을 데려다 이야기하며 잔치합니다.
<신앙 세계>에서도 이와 같이 해야 됩니다.
<병든 신앙인>인데 ‘그 한 사람’에게만 계속 투자하면,
<나머지 전체>는 그만큼 손이 안 가서 손해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이 병들어서 못 일어나면,
그 자리에 ‘제2의 사람, 후자’를 세워야 됩니다.
그러면 ‘전자를 통해 못 이뤘던 소원’을 이루고 잔치합니다.
<말씀 마무리> 바로 앞의 말씀과 이어지면서, 말씀 마무리
<하나님의 역사>도 그러합니다.
<구시대>는 병들었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어리고 청청한 포도나무 같은 새 역사>를 키워
찬란하게 ‘사랑의 휴거 역사’를 이루십니다.
<구시대>는 병들어서 피골상접 되어 누워서 긴 병을 앓고 있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예정대로
어리지만 <새 역사>를 키우면서 ‘하나님의 뜻’을 펴셨습니다.
<새 역사 섭리역사>는 처음에는 어리지만,
100년, 200년, 500년이 가고, 1000년 역사가 흐르면
이 지구 세상이 ‘하나님의 포도원’이 됩니다.
<월명동>도 처음에는
리어카로 흙을 나르고 삽으로 땅을 파면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점점 커져서 이제는 ‘하늘 궁’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곳으로 전 세계에서 ‘수만 명’씩 몰려듭니다.
또 <각 도시>와 <지방>에 ‘수백 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여러 나라>에도 ‘섭리 촛대’가 꽂혀 커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20년이 더 가면
마치 ‘월명동 소나무들’이 커서 한 아름씩 되어
아름다움과 풍채를 갖추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되듯이,
<세계 각 나라의 각 교회>도 그렇게 됩니다.
월명동에 쌓은 돌들은
아무리 비바람이 쳐도 닳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몇십 톤씩 되는 엄청난 무게로 서로를 누르고 있고,
기초로 삼은 땅은 굳어져서 쇳덩이같이 되었습니다.
돌들이 서로 누르면서 잡아 주니 튼튼하고,
바위 사이에 심은 소나무들은 마치 ‘바위 솔’이 되듯 큽니다.
이 소나무들의 뿌리가 확 치고 내려가
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바위 솔’이 되었습니다.
<섭리사 생명들>도 그러합니다.
<자연성전의 돌들과 나무들>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월명동 산봉우리들>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주인 되어 잘 관리하기 바랍니다.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솔이나 나무’도 관리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산’을 정해서 관리하고,
<자기 것>으로 삼고 기대하고 즐기고 사랑하면서,
각자 개성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바랍니다.
찾아보면 신비한 것들, 감탄할 것들이 많습니다.
어떤 것은 일생 동안 ‘그 신비함, 아름다움’을 말해도 못다 합니다.
선생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도, 인간도, 자연성전도 보며 감탄하면서
“어떻게 이렇게도 오차 없이
아름답고 신비하고 오묘하게 창조했습니까?” 하며
매일 감사의 영광을 돌립니다.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창조 때부터 아름답고 신비하고 오묘하게 창조되어라.
어느 시대 누가 봐도 아름답고 신비하게 여기도록 되어라.
- 했기에 이같이 되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아무리 아름답고 신비하고 오묘하게 창조했어도
<너희>가 ‘눈’으로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면,
아무 기쁨도, 흥분도, 감탄도 없다.
이는 마치 ‘소경이 산을 보는 것’과 같고,
‘소경이 나 여호와의 최고 작품’을 대하는 것 같아서
<창조자>도 보람이 없고 영광도 안 된다.
<깨달은 자>가 전할 것은 전해 주고,
또 창조자와 사연을 나누면서 대해라.
그러면 내가 ‘더 신비한 것’을 말해 주어,
그것이 ‘너의 기쁨’이 되고 ‘사랑’이 된다.
또 ‘가치’를 알고, 그것을 늘 차지하며 살게 된다.” 하셨습니다.
모두 각자 기도해서 ‘그 신비함과 오묘함’을 알려면
10년, 20년 기도해도 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고로, <깨달은 사명자>가 ‘알고 가르쳐 주는 것’이 얼마나 큽니까?
그러나 구원도, 휴거도, 영원한 것도, 아름다움도, 신비함도
그리도 가르쳐 주면서 “이렇게 살아라.” 하지만,
귀히 여기고 그렇게 사는 자가 적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몸부림쳐 가르쳐 주는 만큼
진정 깨닫고 주와 일체 되어 사는 자들이 되기를,
<주>는 오늘도 고대하고 기도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