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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6.09.18 (일)

160918 주일말씀

선포일
2016.09.18 (일)
성경 본문
요한계시록 2장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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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18일 주일말씀> 과거에 왕 살아 먹은 자들아. 지금 뭐 하느냐. 본 문 요한계시록 2장 10절 (핵심만 봉독)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시작>  오늘 말씀의 주제는 ‘과거에 왕 살아 먹은 자들아. 지금 뭐 하느냐.’입니다. 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과거에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휘날렸던 <정치의 왕, 종교의 왕>들에 대해 성령님께 말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정말 무섭게 정치를 하거나 종교를 이끌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섭게, 엄청나게 그들을 따랐습니다. 마치 차를 만들어서 부속품이 못 빠져나가도록 꼼짝 못 하게 해 놓고, 자기 마음대로 몰고 다니듯 했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역사>를 끌고 가지만, 그들은 과거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무섭게 해서, 따르는 자들이 겨우 숨만 쉬고 따라가게 하고, 거기서 이탈하면 무섭게 대가를 주어 이탈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을 성령님도 보셨지요? 섭리인들은 ‘하늘 신부들’이라서 자유롭게 대해 주니, 너무 자기 마음대로 하고 마음도 신앙도 잘 변합니다. 그들은 ‘왕’이라는 표가 확 나게 하고 다녔습니다. 왕의 옷을 입고, 왕으로서 갖추고 다스렸습니다. 그러니 따르는 자들이 더 인정하고 따랐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며 가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 권위를 세우며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너무 그렇게 안 하니, 섭리인들이 너무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했습니다.  이 말을 듣고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과거에 왕 살아 먹은 자들>이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보아라. 그 육신이 죽었다면, 그 영은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보아라. 육신이 살아 있다면, 그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보아라. 과거에 왕 살아 먹었어도, 지금 뭐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운 자>가 ‘진짜 왕’이다.” 하셨습니다.  그리고 이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 과거에 <정치나 종교의 왕>을 살아 먹었어도 지금 <종>이 되어 살면 ‘종 취급’을 받습니다. 또 과거에 <왕>으로서 화려했어도 죽어서 그 <영>이 <지옥>에 가 있다면, 결국 ‘지옥에 가기 위해 과거에 왕으로 살았던 것’이 됩니다.  특히 ‘세상의 악한 왕들’과 ‘이단의 지도자들’은 - 그 <육신>이 죽으면 그 <영>이 ‘지옥’으로 가고, - <육신>이 살아 있어도 그 <영>이 ‘사망의 영’이 되어 삽니다. 그래도 ‘그를 따르는 자들’은 <천 리나 깊은 동굴 속에 사는 자들>과 같아서 현실과 영계를 내다보지 못하고 그 속에 갇혀 삽니다. 그러니 ‘자신이 믿고 따르는 지도자’가 <악한 영계>나 <지옥>에 갔어도 전혀 모릅니다. 자기 육도 영도 좋게 되어 ‘좋은 세계’에 가는 줄 압니다. 그렇게 계속 100% 믿고 삽니다.  <우상의 왕으로 살던 지도자들> 역시 자기가 ‘우상의 왕’인지 모릅니다.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전능자 하나님>을 모르고, <자기>가 ‘절대자 하나님’인 줄 알고 삽니다. 고로 <절대 근본의 존재자인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삽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삽니다. 고로 ‘따르고 섬기는 자들이 주는 영광’에 싸여 삽니다.  그리고 <자기 주관,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말을 믿고 따르면 ‘좋은 세계’에 간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기>도, <따르는 자들>도 ‘그 세계’로 가는 줄 압니다. <자기 주관, 자기 생각>으로 <자기 영의 세계>를 만드는 자입니다. 100% ‘하나님 앞에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다.  그러나 ‘그런 영의 세계’는 없습니다. <우상의 왕으로 살던 지도자>, 그가 죽으면 <그 육이 생각한 영의 세계>는 전혀 없습니다. <그 육이 죽기 며칠 전>에 지옥의 사자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육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 <육>이 죽으면 그 <영>을 철 몽둥이로 마구 때리고, 철로 된 채찍으로 마구 때리면서 <고통의 세계>로 끌고 갑니다. 하나님을 안 믿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많은 자들을 사망으로 끌고 간 죗값입니다.  그가 어떻게 되는지 계속 따라가 봤습니다. 그 <영>이 반항을 하니, 지옥의 사자들은 쇠망치로 ‘그 영의 이’를 몇 번 내리쳤습니다. 그랬더니 ‘이’가 다 빠지고 ‘턱’도 다 뭉개졌습니다. 그래도 지옥의 사자들은 그 영의 허리와 등 쪽을 계속 때리면서 끌고 갔습니다. 네 명쯤 되는 ‘악의 사자들’이었습니다.  어떤 집의 문을 거치고 거실을 거쳐서 <길>을 따라가는 줄 알았는데, 그 집의 벽을 <허공>같이 지나서 그 집의 뒤쪽으로 갔습니다. <길>이 아닌 <공중>이었습니다. <공중>을 ‘평지’같이 걸어갔습니다.  악한 왕이나, 우상의 왕이 되어 살았던 자들이나,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 이같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궁금하면 - 자기가 영의 세계를 보고, 못 보면 - 주의 말을 듣고 따르기 바랍니다.  과거에 자기 주관권에서 자기 나름대로 개성대로 왕 살아 먹었어도 - 육이 살아 있다면 그가 지금 뭐 하느냐. - 육이 죽었다면 그 영이 어떤 영계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 이 세상에서는 보이는 대로 크게 봅니다. 그러나 과거 ‘정치의 왕’도, ‘종교의 왕’도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자기가 하나님이라 하며 살았거나,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한 악한 왕들은 그 <영>이 100%! ‘지옥’에 가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왕’이었는데, <영계>에서는 ‘하나의 쓰레기, 오물’ 취급을 합니다.  성령님은 이같이 가르쳐 주시고 보여 주시며, 오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섭리인 모두>에게 말씀해 주겠습니다. <전환>  <과거>에 잘했어도 <현재>에 못하면, ‘과거에 잘했던 것’이 무용지물입니다.  섭리사에도 <과거>에는 잘했으나 <현재>는 주를 등지고 나간 자들이 있고, 더러는 섭리사를 반대하며 악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때 주의 사람, 하늘 신부’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주의 사람이다. 하늘 신부다.’ 할 수 없습니다.  또 <과거>에는 한 센터에서 왕을 살듯 잘했지만, <현재>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자기 과거만 자랑’하며, 사람들에게 ‘왕 대우’를 받으려 하고, 또 ‘주가 세운 자들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이런 자들은 ‘과거에 빠져 사는 자들’입니다.  <과거>에는 좋은 과일로 크고 있었어도 <현재>에는 썩고 있으면 ‘좋은 과일 취급’을 할 수 없습니다.  포도즙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최고 맛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니 맛이 변하여 시고 못 먹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맛있었다고 해서 ‘현재 맛이 변한 포도즙’을 먹을 수 있습니까? 당연히 못 먹습니다.  <과거>에 좋았을 때나 ‘좋은 사람 취급과 대우’를 해 줬습니다. <현재>에 나쁘게 변했으면 ‘좋은 대우’를 못 해 줍니다.  반면 <과거>에 못했어도 <현재> 잘하면, ‘과거 못했던 때’같이 대하지 않고 ‘현재 잘하는 대로’ 대해 줍니다.  하나님도 <지금 현재>를 보고 대하시고 쓰십니다.  <과거>나 <현재>나 잘했든지 못했든지 ‘끝난 것’은 이미 다 끝나서 ‘재연’하지도 못합니다. <지금 살아서 행하는 매일 그날그날>이 중합니다. <현재>로 인해 <과거>도 좋게, 혹은 나쁘게 보고, <현재>로 인해 <미래>도 좋게, 혹은 나쁘게 좌우됩니다.  <과거에 잘했을 때> 그때 대우받았고, 복 받았고, 행복했고, 행한 대로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재> 못한다면, 과거처럼 대우해 주고 복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는 ‘현재 행하는 대로’ 받고 있습니다.  <과거 일주일 전>에 몸의 때를 다 밀고, 밥을 먹고, 예쁘게 멋있게 꾸미고 화려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보니 몸이 더러워지고, 옷도 더러워지고, 밥도 못 먹고 다녔습니다. <과거>에 화려했어도, <현재>에 깨끗하게 씻고 먹어야 됩니다.  이와 같이 <과거>에 자기 센터에서 ‘왕’을 살았어도 <현재>는 ‘어떠한가?’ - 이것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인생도, 신앙도, 하나님과 주 앞에도 - ‘과거에 어떻게 살았나.’를 보고, -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를 봅니다.  <과거>에 못했어도 <지금> 잘한다면, 지금 귀히 쓰입니다. 반면 <과거>에 잘했어도 <지금> 못한다면, 치료하고 회개하고 다시 단장해야 됩니다.  <과거의 것>은 ‘과거를 유지하는 데’ 쓴 것입니다. 항상 ‘지금 현재 진행하는 이때에 잘하기’입니다. 그래야 <미래>도 ‘성공의 삶’으로 운명이 기울어집니다.  매일 <지금 현재>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것’이 좌우되어 더 좋게 되어 성공하기도 하고, 더 안 좋게 되어 실패하기도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여러분도 저마다 <과거>에 ‘열심히 한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과거>에 ‘제대로 못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가 ‘더 중요’합니다.  <과거>에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서 왕같이 했던 것들’은 <그때> 존재하는 데 얻고 쓰고 누렸습니다. 그러나 <현재>에 잘 못 한다면, ‘과거에 누렸던 것’만 가지고 <현재>까지 존재하면서 쓸 수 없습니다. <현재>에도 열심히 하면서 얻고 쓰고 누리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과거>에 ‘주유소’를 크게 하면서, 왕같이 누리며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그 사람은 <현재>에도 ‘주유소 이야기’를 했고,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부러워했습니다. 그 사람이 <현재>에는 뭐 하고 있나 보니 주유소는 없어졌고, 매일 하루하루 길에서 쓰레기를 주워다 팔아서 하루 두 끼를 간신히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주유소를 하면서 잘살았던 것>은 <현재>에는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현재의 사정>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 사람이 ‘과거에 잘살았던 이야기’를 해도 이제는 귀를 막고 듣지 않았고, 불쌍하게 봤습니다.  섭리사에도 이런 자들이 있습니다. 섭리사에 온 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은 <과거>에 ‘각자 나름대로 왕 살아 먹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때 잘해서 얻고 쓰고 누린 것’입니다. <현재>는 그때처럼 못 하는데, 자꾸 ‘과거에 잘한 것’만 이야기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띄우며 자랑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과거>는 열심히 하고 화려했어도 <현재>는 그렇지 않으니,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은혜가 안 되고 감동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 <과거에 왕 살아 먹은 것>은 ‘자기 영’에게 혜택을 주어 그 혜택을 ‘자기 영’이 가지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은 ‘그때만 누리고 끝나는 것’도 있습니다. <과거에 왕 살아 먹은 것들, 잘했던 것들>을 <자기 영>이 공적으로 가지고 가게 하거나 또 <현재>에도 얻고 쓰고 누리려면, <현재> 잘해야 됩니다.  <과거>에 돈이 10억, 100억 있었어도 그때 다 써서 <지금> 없으면, <지금>은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있느냐, <지금>도 존재하느냐가 문제입니다.  신앙도, 사랑도, 사명도 그러합니다. <과거의 것>만 자랑하지 말고, <과거에 잘했던 것>만 말하며 자기를 띄우지 말고, <현재> 잘해야 됩니다.  <과거의 왕>이 <지금의 왕>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섭리사’에서도 그러합니다. <지금 존재하면서 지금 행하는 자>를 써야 됩니다.  <과거>에 하나님과 주께 귀히 쓰였어도 <현재> 자기 마음대로 행하면 쓰이지 못합니다. <현재>도 하나님과 주 뜻대로 행해야 <현재>도 온전히 존재하면서 하나님과 주께 귀히 쓰입니다.  섭리사의 어떤 가정국도, 오래된 여자 지도자들도 “과거에 내가 선생님 옆에 있었다. 선생님이 나오시면, 우리를 부르신다. 지금 어린 애들 데리고 뭘 하시겠냐.” 합니다. 주를 망령되게 하는 자입니다. 주가 계속 주의 사람들을 키우고 차원 높여 행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입니다. 이 휴거 때에 아직도 <과거>에 묻혀서 변화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자입니다.  물론 ‘오래된 자들이 해야 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 큰 자들>을 세우고, <지금 왕 살아 먹는 자들>에게 사명을 줘서 행하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섭리사가 계속 발전하며 커 나가고 희망이 있습니다.  하나님은 “지난날 사연을 잊지 말아라. 과거에 내가 해 준 것들을 잊지 말아라.” 하십니다. 이 말씀과 같이 <과거에 하나님이 해 주신 것들>을 늘 생각하며, <지난날 하늘과의 사연들>은 늘 잊지 말고 계속 쓰고 누려야 됩니다. 이것을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잊지 말고 계속해서 감사하고 쓰고 누리며 살아야 됩니다.  <과거>에 왕 살아 먹고 잘했어도 <현재>는 그렇지 않은데, 계속 ‘과거에 행했던 것들’만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과거>에 자기가 왕 살아 먹듯 했어도 <현재>는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면, <현재>는 고치고 다시 잘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 <과거>는 이미 살았기에 ‘반복’을 못 합니다. <과거>는 ‘죽은 것’입니다.  <현재 새로 와서 크고 있는 자들>은 ‘과거 이야기’를 해도 이해를 잘 못 합니다. 하나의 ‘간증’일 뿐입니다. 고로 자꾸 반복해서 <과거 이야기>만 하며, <과거에 자기가 왕 살아 먹던 것>만 주장하면, 듣기 싫다고 하면서 즉시 선생에게 보고가 들어옵니다. <현재를 사는 자들>에게는 <현재 잘 존재하고 현재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감동받고, 은혜 받고, 모두 보고 존경합니다.  <과거>에도 잘했어야 하고 <현재>에도 잘해야 됩니다. <과거에 왕 살아 먹었던 것>만 이야기하는 사람치고, 할아버지, 할머니, 중년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현재>에는 못 하면서 “한때는 내가 말이야...” 이런 말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현재에 해당되는 말>을 해야 됩니다.  <현재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왕 살아 먹는 이야기>를 하는 자들은 모두 ‘현재에도 가지고 있고 현재에도 누리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나이가 들었어도 ‘마음이 젊은 자들’이며, 항상 ‘주와 일체 되어 과거도 현재도 주와 함께 뛰는 자들’이며, 혹은 ‘나이가 젊은 10대, 20대, 30대’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선생은 <과거>에 가난과 배고픔 속에 살았습니다. 온갖 무시를 당하면서 홀로 산에서 기도했습니다. 처절한 환경에서 모진 환난과 핍박을 다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도 ‘구원의 사명’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섭리 온 세계에 이 시대 귀한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주고 구원하고 휴거시키며,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점진적으로 차원을 높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 선생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멈추지 않으니 <나>도 멈추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차원 높여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할 것입니다. 이로써 <과거에 행한 것들>을 더 좋게 만들고, <현재와 미래의 운명>을 더 좋게 좌우시킬 것입니다. 앞으로 두고 봐요! 말한 대로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절대적인 역사입니다!  선생의 몸이 되어 사는 조은 목사도 봐요. <과거>에는 ‘한 소녀’였습니다. 어리니, 누가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섭리사에 환난이 터졌을 때, 그 어린 자가 선생을 지키며 열심히 하는데도 섭리사의 오래된 자들은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욕하고 배척했습니다. 그 어린 자가 선생과 함께 악평자들의 공격을 받으며 힘겹게 이겨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를 봐요. <성령의 상징체>가 되어 섭리사 전체에 ‘성령의 불’을 주며 ‘주의 심정’을 전하고, <복직된 하와>로서 ‘주와 함께 천주의 두 증인’이 되어 섭리인 모두를 휴거시키는 데 큰일을 했습니다. <지금>도 주가 맡긴 일을 하며 계속해서 행하고 있습니다.  <과거>에 잘했어도, <현재>에 잘해야 됩니다. <과거>에 휘날렸어도, <현재>에 휘날려야 됩니다. <과거>에 어리고 미약했어도 <현재> 성장하여 잘하면 그 위치에서 귀히 쓰임 받습니다.  섭리사의 오래된 자들, 교역자들, 지도자들은 <과거의 자기 모순>을 그대로 가지고 하면 안 됩니다. <과거의 모순>을 싹 고치고 <현재>에는 잘해야 됩니다. 그래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것들’이 더 좋게 됩니다. 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꼭 고쳐야 됩니다.  어떤 교회를 예로 들어서 잠깐 말해 주겠습니다. <죄와 회개에 대한 설교>가 나간 주일이었습니다. 교역자부터 그 말씀을 듣고 무엇을 회개해야 되는지 깨닫고 자기도 회개하고, 교인들도 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서울의 어떤 교회는 그날 기뻐하며 잔치했답니다. 왜 그랬는지 파악해 보니, 그 교역자가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교회에는 신입생 손실이 없다. 고로 회개할 것이 없다. 기뻐하자.” 했답니다. 목사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 교인들 모두 그렇게 했답니다.  성령이 이를 알고 신혼골수를 파헤치시고, 교역자가 자기 주관대로 했다는 것을 밝히셨습니다. 또 실상을 파악해 보니 열 명의 신입생을 전도했는데 다섯 명이 안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역자가 “우리는 생명 손실이 없다. 기뻐하자.” 하니, 교인들은 순간 그 말을 다 믿고 그 방향대로 한 것입니다. 확인할 때까지는 모르니까, 교인들은 지도자를 따라 합니다. 고로 사람을 보내서 전체를 다시 인식시켰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자기 주관>으로 해석하면, 이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자기는 ‘맞다’ 하고 행하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하나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 조은 목사를 봐요. 주일말씀이 나가면, 항상 그 방향대로 교회를 이끌어 나갑니다. 지금까지 항상 주가 말하면 ‘그 방향’대로 즉시 행했기에 주가 안심하고 일을 맡긴 것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즉시 행하니 ‘치타’입니다.  어떤 사람은 ‘한 사람’을 전도해 놓고, ‘하나님도 좋아하시겠지? 주도 좋아하시겠지?’ 하며 그리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인 생각’이었습니다. 왜요? 전도된 그 사람의 속심은 달랐습니다. 전도되는 척하다가 전도자를 이성으로 잡아먹고 나갔습니다. 그 사람을 확실히 파악하지 않고 전도하여 그리된 것입니다. 전도도 잘해야 됩니다.  <자기 생각>이 <하나님 생각>과 ‘100% 같다.’ 확인하기 전에는 장담하지 말고, 자기 주관을 내세우지 말아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선생은 항상 ‘이때’를 잊지 않고 삽니다. 곧 ‘<월명동 앞산>을 처음 개발할 때’입니다. 그 작품이 ‘지금의 <야심작>’입니다. 처음에는 ‘시멘트로 계단을 만드는 것’이 절대 <하나님의 생각>인 줄 알고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큰 돌을 가져다 쌓는 것’은 아예 생각도 못 했고, 아예 ‘큰 돌을 사다가 세울 여건’도 아니었습니다. 고로 세상에서 하듯, <월명동>을 ‘공원 식’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돌을 세우고 쌓아서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만들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도 선생은 “어떻게 그렇게 합니까?” 했습니다. <돌을 쌓는 법>도 몰랐고, <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월명동 아래 석막리 주변의 돌들’을 찾게 하셨고, 또 남들이 찾기 전에 빨리 ‘한국에 있는 크고 좋은 돌들’을 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큰 돌들’을 찾아서 사다가 월명동에 세우고 쌓게 하셨습니다. 철저히 기도하게 하시고, 몇 번이고 상황과 여건을 틀고 감동을 주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구상, 하나님의 생각’대로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자연성전>이 되었습니다.  선생은 항상 이 사건을 잊지 않고 명심하고 행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보다 높고, <하나님의 길>은 ‘인간의 길’보다 높습니다. 이 말씀을 절대 잊지 않고, <과거>에도 그리했듯이 <현재>에도 그리합니다. 그리함으로 <미래>에도 오직 ‘하나님의 뜻과 생각’대로 될 것을 확신합니다! <말씀 마무리> ◎ 오늘 말씀...  과거에 왕 살아 먹은 자들아. 지금 뭐 하고 있느냐. <과거>에 잘했어도 <현재>에 못하고 있으면, 치료하고 회개하고 다시 단장해라. <과거>에 못했어도 <현재>에 잘하고 있으면, 현재 행하는 대로 대해 준다.  인생도, 신앙도, 하나님과 주 앞에도 - ‘과거에 어떻게 살았나.’를 보고, -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를 본다.  매일 <지금 현재>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것’이 좌우되어 더 좋게 되어 성공하기도 하고, 더 안 좋게 되어 실패하기도 한다.  <과거의 것>은 ‘과거를 유지하는 데’ 쓴 것이다. 항상 ‘지금 현재 진행하는 이때에 잘하기’다. 그래야 <미래>도 ‘성공의 삶’으로 운명이 기울어진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