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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6.09.25 (일)

160925 주일말씀(신앙 졸지 말고 근신하고 깨어 행해라)

선포일
2016.09.25 (일)
성경 본문
베드로전서 5장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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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25일 주일말씀> 생방송 신앙 졸지 말고 근신하고 깨어 행해라 본 문 베드로전서 5장 8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신앙 졸지 말고 근신하고 깨어 행해라.’ 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사람들은 생활하면서 무의식중에 자기도 모르게 졸고 잡니다. 어느 때는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가다가 순간 졸아서, 내릴 때인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칩니다. 어느 때는 운전하다가 순간 무의식중에 좁니다.  사람이 운전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사고가 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졸다가 사고가 납니다.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졸게 됩니다. 그러다 본정신이 사라지고 비몽사몽간에 졸다가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거나 죽기도 합니다.  이와 같이 <생활의 졸음, 신앙의 졸음>도 1년 365일 매일 겪게 됩니다. 정신 안 차리고 흐리멍덩하게 생각하면 말씀을 들을 때나, 방에서나,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어떤 장소에서나 무심코 졸다가 잠이 들게 됩니다. 이와 같이 생활 속에서 목표를 안 정하고, 정신 안 차리고, 집중을 안 하면 이것이 졸고 자는 것과 같아서 그때 스르르 ‘다른 생각’이 들어오고 ‘다른 행동’을 하면서 자기 위치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 여러분도 순간 졸다가 잠이 든 경험이 있지요? 순간 졸다가 잔 것 같은데, 무심하게 많은 시간이 훅~ 흘러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할 일’을 못 하고 지나가 버립니다. 이와 같이 생활하다가 순간 헛시간에 빠지고 잡생각에 빠지면, 자기도 모르게 본정신이 사라지고 생각이 자기중심으로 흐르거나 세상으로 흐릅니다. 그로 인해 ‘할 일’을 못 하고, 삶의 ‘문제’가 일어나고 ‘사고’도 일어납니다.  생활 속에서 정신을 안 차리면 자기도 모르게 이성의 졸음과 잠에 빠져들고, 미디어의 졸음과 잠에 빠져들고, 각종 세상 것들의 졸음과 잠에 빠져들고, 자기중심의 졸음과 잠에 빠져들어 ‘다른 방향’으로 갑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자기 인생’을 망치게 됩니다.  <생활의 졸음, 신앙의 졸음, 신앙의 잠>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다른 생각, 잡생각, 다른 행동을 하고 사는 순간’을 말합니다. 이런 자는 ‘졸고 자면서 운전하는 자’와 같습니다. 바로 이때! 생각과 사고와 행실이 ‘다른 데’로 흘러서 신앙의 중심이 무너지거나, 신앙의 큰 사고가 나거나, 신앙이 죽는 일이 생기는 등 각종 문제가 일어나게 됩니다.  운동경기를 하는 자가 졸고 자면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생활의 잠을 자고 조는 자 역시 ‘인생 승리’를 할 수 없습니다.  공부하면서 시험을 보면서 졸고 자면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하여 실패합니다. 생활의 잠을 자고 조는 자도 이와 똑같은 자입니다.  어떤 목적을 두고 ‘생활의 잠, 생활의 졸음’에 빠지면, 그때마다 실패하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운전하면서 졸다가 사고 나서 어이없이 죽는 자들이 1년이면 한 나라에 수백 명, 수천 명입니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은 청춘들인데, 이제 인생 성공하여 희망으로 살 날만 남았는데, <졸음과 잠>을 못 다스려서 사고 나서 죽습니다. 잠보다 수백 배 더 어려운 것도 몸부림쳐 이겼는데, 그까짓 ‘졸음과 잠’을 못 다스려서 그리된 것입니다. 졸릴 때 찬물 한 바가지만 머리에 부었어도 살았는데, 그것이 하기 싫어서 안 하다가 그리된 것입니다. 자기가 졸다가 죽을 줄 알았다면, 아마 자기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면서라도 깨웠을 것입니다. 죽기 전에 조금만 잘 생각했으면 살 것인데, 그것을 못 해서 어이없이 죽는 자들이 매일 그리도 많습니다.  이와 같이 <신앙 세계>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리도 열심히 하던 자들인데 정신 안 차리고 태만하여 <신앙의 졸음과 잠>에 빠져듭니다. 그러다가 일순간 신앙이 죽어, 어이없이 사망으로 가 버립니다.  ‘과거에 열심히 살았다. 이제는 살 만큼 됐다. 앞으로는 오랫동안 누리며 살자.” 각오하고도 생활 속에서 태만하게 졸고 자다가 죽음과 고통의 변을 당합니다.  사람들은 오래 살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순간 생명을 앗아 가는 <인생의 잠>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삶의 애착심>은 하늘까지 치솟는데 실상 <자기 생명 관리, 정신과 생각의 투자>는 소극적으로 합니다. 그 정도로는 자기를 존재시킬 수가 없습니다. 고로 생명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런 자들이 1년이면 한 나라에 수만 명씩 됩니다.  이 세상에는 ‘건강 사고’가 최고로 많습니다. 수십만 명이 ‘건강관리’에 졸고 잠을 잡니다. 자기 건강을 소홀히 관리하니, 생명을 껴안고 몸부림치다가 어처구니없이 결국 뺏기게 됩니다.  <신앙 관리>도 그러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신앙이 잘못되기를 원하는 자’가 있습니까? 모두 잘되고는 싶어 하지요. 그러나 생활 속에서는 자기 좋은 대로 먹고 놀고, 자기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고, 우선 편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여 그쪽으로 쏠립니다. 그러면서 ‘자기 신앙의 생명’을 소홀히 합니다. 고로 자기도 모르게 ‘신앙의 졸음과 잠’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탈하여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고, 결국 <자기 영혼>을 죽이고 <육>도 사망권에 처하게 만듭니다. <잠시 쉬었다가>  <육신>도 ‘졸음이 올 때’ 안 벗어나면, 무심코 잠이 듭니다. 고로 생활하다가 ‘졸음’이 오면 치타같이 후다닥 뛰고, 동작을 빠르게 하여 불같이 움직여야 됩니다. 그래야 ‘졸음’에서 벗어나 ‘잠’에 빠지지 않습니다.  <신앙>도 그러합니다. ‘졸음이 올 때’ 벗어나야 됩니다. 안 그러면 무심코 ‘신앙의 잠’에 빠집니다. 정신 안 차리고 편안한 마음으로만 살다가 자기도 모르게 생각이 몽롱해지고 노곤해집니다. 그러다가 침체되고 기운이 빠집니다. 그러다가 수면제를 먹은 것같이 잠이 듭니다. 그때는 자기가 못 막습니다. 졸기 시작할 때, 그때 찬물을 끼얹고 졸음을 깨듯, 정신이 흐리멍덩해지고 자기 생각으로 스르르 빠지려 할 때, 그때 그 마음과 행동을 조종해야 벗어납니다. 신앙의 졸음 초기 단계에서 얼른 벗어나야 됩니다! 그때 못 벗어나고 ‘그 단계’를 넘어가면 못 벗어납니다. 어떤 일로 인해 생활이 졸고 신앙이 졸았든지, <졸음 단계의 선>을 넘어가기 전에 꼭 벗어나야 됩니다. 안 그러면 ‘잠’에 빠져서 선을 이탈하게 되고, 결국 신앙이 와르르 무너지게 됩니다. <초기에 해라 - 구체적으로 설명>  종목마다 ‘다스리는 법’이 있습니다. <잠을 다스리는 법>이 있듯이, <생활 속의 졸음과 잠을 다스리는 법>이 있습니다. 곧 처음에 졸릴 때, 초기에 진멸하여 다스리기입니다.  초기에는 - ‘모래알 하나’와 같아서 다스리기가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커지면 - 그만큼 다스리기 힘들고 불가능합니다. <초기>에 묘목을 뽑듯 하고, 괴물 새끼를 잡듯 해야 됩니다. <불씨가 일어날 때, 화재 초기>에 불을 끄듯 해야 됩니다.  생활 속의 졸음도, 나쁜 생각도, 불의도, 어떤 문제도, 사탄도, 행악자도 - <초기>에 작다고 얕보지 말고, <초기>에 불을 끄듯 처리해야 됩니다. 열 일 제치고 <초기>에 잡고 다스리고 처리하고 행해야 됩니다!  자기 앞에 ‘자기와 겨루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초기>라서 자기보다 작습니다. 이때 방심하고 ‘별것 아니네.’ 합니다. 미련한 자입니다. 그가 순간 변해 ‘괴물’이 되어 덤빕니다. <초기>에는 작으니 쉽습니다. 그러나 점점 큽니다. 고로 <초기>에 잡고 처리해야 이깁니다!  암도 <초기>에는 암세포가 ‘밥알’만 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로 몇 시간이면 수술이 끝나고 금방 회복됩니다. 그러나 그냥 두고 ‘건강’에 졸고 잘 때 암이 중기, 말기가 되어 <암세포>가 ‘자기 건강’을 쥐고 흔들게 됩니다. 결국 <암>에 절절매다가 <암의 종>이 되어 끌려다니면서 몸부림쳐야 됩니다. 결국 ‘고칠 수 없는 단계’까지 가게 됩니다. 그러다 ‘자기 생명’을 뺏깁니다. 초기에 치료, 초기에 진압입니다.  <자기 모순>도 ‘초기 진압’입니다. <죄>도 ‘초기 진압’입니다. 커지기 전에, 고칠 수 없는 단계까지 가기 전에 빨리 ‘초기 진압’해야 됩니다. 초기에는 무엇이든지 쉽습니다.  신앙도 졸기 시작할 때 ‘초기 진압’해야 됩니다. 아예 잠이 들어 버리기 전에 ‘초기 진압’입니다. 모든 문제 해결은 ‘초기 진압’에 달려 있습니다.  초기 진압도 필요 없이 아예 죄와 상관없이 온전히 행한다면, 더 완전합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으면, 비 한 방울 떨어질 염려도 없지요? 이와 같이 <죄와 상관없이 온전히 행하는 자>는 ‘구름 한 점 없는 청청한 하늘’과 같아서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게 완전합니다.  <초기>에는 ‘점’만 합니다. ‘모래’만 합니다. 고로 그때는 거뜬히 들고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점점 커져서 ‘돌’이 되고 ‘바위’가 됩니다. 그때는 들고 가집니까?  졸음도 잠도 <초기>에는 ‘모래알’만 합니다. 졸려서 눈만 깜빡깜빡합니다. 그때 ‘설마 이 바쁜 때에 자랴?’ 하고 정신 차리면, 눈이 감겼다가 떠집니다. 이때 찬물을 끼얹기만 하면, ‘졸음과 잠’을 벗어납니다.  운전할 때도 졸리면, <초기>에 찬물을 붓듯이 ‘졸음’을 물리쳐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심코 ‘잠’이 들어 큰 사고가 나거나 죽습니다.  신앙의 졸음, 죄의 졸음도 <초기>에는 ‘모래알’만 합니다. 졸려서 눈만 깜빡이듯 합니다. 그때 초기에 진압하고 다스리면, 벗어납니다. <졸음 초기>에 ‘불같은 정신과 행동, 불같은 말씀’을 끼얹고 죽음에서 벗어나기입니다.  어떤 상황에서도 <신의 정신>을 가져야 <신과 같은 힘>이 생겨 육성에서 벗어나고, 각종 사고에서 벗어나고, 신앙의 잠에서 벗어나고, 각종 생활의 졸음에서 벗어나고, 육의 죽음에서도, 영원한 죽음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전환> ◎ 최근에 섭리사에서 스무 살이 된 한 학생이 정말 큰 위험에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죽음 직전까지 간 사건이었습니다. (* 간단히 사연 소개만 해 준다. 자세한 것은 간증 집회) ◎ 현재 본인이 직접 ‘간증 집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또, 격월간지 <섭리역사>에도 그 사연이 나와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본인의 간증이나 글을 통해 접하기 바랍니다.  그야말로 ‘죽음의 문턱’에서 산 것입니다. 옆에 도와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극적인 상황에서도 빛을 발한 것은 평소에 절대 말씀을 중심하며 행한, 살아 있는 정신이었습니다. 고로 누구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극적인 상황에서도 <신의 정신>을 가지고 정신 바짝 차리고 끝까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깨어 행할 수 있었습니다.  이와 같이 섭리인 모두 극적인 상황에서도 <신의 정신>을 가지고 해야,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 있어야 승리합니다. 이것이 이 사건을 통해 <섭리사 전체가 깨닫고 행해야 할 것>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 지금은 <휴거 후, 가장 극적인 때>입니다. 사탄 마귀는 우는 사자들같이 두루 다니며 휴거 후 ‘신앙의 졸음, 신앙의 잠에 빠진 자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지금! 긴장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나야 됩니다.  성자와 그 육이 우리를 휴거 <300선>까지 끌어올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자신’이 해야 됩니다. 그 터전 위에 졸지 않고 행하여 <700선>까지 가야 안심입니다. 우리가 휴거되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뤘어도 사탄은 절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졸지 않고 깨어 행합니다. 그러면서 휴거 이후 방심하는 자, 조는 자, 자는 자들을 노리며, 우리가 ‘완전한 단계’에 가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 <초기>에 ‘신앙의 졸음, 신앙의 잠’을 다스리지 못한 자들은 벌써 스르르 ‘깊은 잠’에 빠졌고, 그 육도 영도 ‘휴거를 상실’했습니다.  그러나 이때 졸거나 잠에 빠져들지 않고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며 주와 함께 행한 자들은 벌써 ‘휴거 700선’을 이루었습니다.  지금 이때가 <휴거를 상실할 수도 있는 극적인 때>이며, 지금 이때가 <휴거의 차원을 높일 수 있는 극적인 때>입니다.  할 때 해야 됩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휴거됐을 때, 더욱 근신하고 정신 차려 휴거 차원을 높이기입니다. 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과일나무에 높이 올라간 김에 딸 것을 다 따고 내려오기입니다. 몇 개 따다가 내려와서 먹고 다시 올라가려면, 배가 불러서 나무에 오를 때 배가 걸리고 힘들어서 못 올라갑니다. 또 이미 먹었으니, 호기심이 없어져서 올라가고 싶지 않습니다. 고로 할 때 해야 됩니다.  만사의 모든 것은 할 때 해라. - 이것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비법>입니다.  휴거의 삶도, 신앙도,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도 모두 할 때 해야 됩니다. 하다가 중단하고 “나중에 다시 하면 되지.” 하지만, 그때는 과일나무에 올라가서 과일 몇 개만 따고 나무에서 내려와서 과일을 먹고 다시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나중에는 힘이 들어서 못 하고, 또 하고자 하는 마음과 희망과 호기심이 사라져서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 휴거나, 신앙이나, 말씀을 배우는 것이나, 어떤 일을 놓고 하고자 하는 마음, 호기심, 희망, 흥분이 솟을 때 그때가 ‘기회’입니다. 그때 뒤로 빼고 이유를 대면서 “다음에 하자.” 하면, 1차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다음에 더 호기심에 불타고, 희망이 화산같이 타오르고, 흥분이 태풍 불듯 마음을 휩쓸어야, 그제야 다시 하려고 가 봅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일들>이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따라가서 없어진 후입니다. 자기 호기심과 희망과 흥분의 힘으로 뛰어가서 <그 일>을 만나기는 만났는데, 그때는 <그 일>을 만나려고 목숨 걸고 뛰어가느라 지쳐서 숨이 안 쉬어지고 <만난 그 일>도 변해 있습니다. 기대가 어긋나 실망이고, 하고 싶지도 않고, 여러 생각만 각종으로 치솟게 됩니다.  고로 - 배고플 때 맨밥이라도 보면, 껴안고 맛있게 먹어라. → 이것이 지혜입니다. 밥이 찬밥인데, 반찬도 없이 어떻게 먹어? - 하며 미련한 생각을 하지 말고, 어서 ‘맨밥’이라도 껴안고 맛있게 먹어야 됩니다.  배고플 때 안 먹고, ‘진수성찬’을 찾아 헤맵니다. 헤매다 ‘진수성찬’을 찾았어도 그때는 밤중이라 하품이 나오고 졸려서 자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휴거 전에 <성자가 떠나실 때>도 이런 말을 했지요? 휴거 후 <마지막 한 때>가 남아 있다 했습니다. <성자가 떠나실 때>도 졸고 자다가 한이 됐는데, <성자의 육을 맞을 때>도 그리하면, 어쩌려고 합니까? 그때는 남은 인생 동안 평생 ‘그 주관권’에서 살다가 끝납니다.  지금 <때>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회>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기회>까지 1년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그때 ‘성자의 육’을 맞고 나서 하려고 합니까? 그것은 자기 생각입니다. 이때 못 하면, 못 한 것으로 끝납니다.  역사는 구원자를 직접 만나나 안 만나나 그 현실대로 열렬히 사는 삶입니다. 지금 못 만나면 못 만나는 대로 열렬히 살아야 됩니다. 지금 힘들면 힘든 대로 열렬히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그리도 귀합니다!  ‘선생님 나오시면 잘해야지. 그때까지 내 마음대로 살다가, 그때 정신 차리고 해야지.’ 하는 자가 있습니까? 정말 큰일을 낼 사람입니다.  ‘지금 내 마음대로 즐기며 살다가, 선생님 나오시면 다시 돌아가야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벌써 ‘사망’에 묻혀 있습니다. 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려움도 있고 환난도 있습니다. 그때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로 인해 망합니다. 그런 때는 그런 대로 삶을 살아야 됩니다. 살다 보면, 또 ‘좋은 때’가 오게 됩니다. <그때 힘들지만 행한 것>으로 또 ‘좋은 때’를 맞게 됩니다.  섭리사 환난 때도 “환난이 끝나면 다시 잘해야지.”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은 지금 제대로 존재하지 못하고 있거나, 벌써 주의 품을 떠나 세상에 묻혀 살고 있습니다.  선생도 섭리사가 극심한 환난기일 때 ‘환난 끝나고 제대로 해야지...’ 했었다면 생명들을 다 잃고 큰일 났을 것입니다. 그때 과정 중에 뜻을 이루면서 사는 삶입니다.  다윗도 ‘전쟁 중’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하려고 했으면, 못 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왜요? 그만큼 전쟁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중에 늘 하나님을 부르고 모시며 그 뜻대로 살았습니다.  환난 때는 ‘하늘과 1:1’입니다. 선생도 환난 때 내 옆에 청중이 없으니 하나님과 1:1이었습니다. 고로 누구든지 그때를 ‘최고 전성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  지금은 ‘각자 신앙의 전성기’입니다. 모두 ‘자기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고로 이때 주가 옆에 있으나 없으나 졸지 말고 잘하기입니다. 이때가 지나면, 상황이 또 달라집니다. 이때 행하는 대로 그 때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 주가 옆에 없으면 ‘영’으로 만나고, 주가 옆에 있으면 ‘육’으로 만나면서 사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자는 ‘고단수, 신적 삶을 사는 자’입니다.  예전에 “우리, 환난 끝나고 멋있게 만나자!” 했습니다. 멋있게 만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가 옆에 있으나 없으나 졸지 말고 깨어 행하며, 조금씩 나이가 들어 가면서 자기 영을 위해, 주를 위해, 생명을 위해 살면서 만나자는 말입니다.  “지금 힘들어요.” 하는 자들이 있고, “저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뭐가 다를까요? ‘종자’가 다릅니다. 종자가 다르니, <주>가 걱정하는데 오히려 <자기>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주>를 위로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멋있게 만들어 <주>를 만나고자 합니다.  지금! 바로 오늘이! ‘휴거의 삶’을 사는 최고의 때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 선생은 철창 속 환경에서 사니, 복숭아를 사 먹어도 ‘4등급 천도복숭아’를 사 먹습니다. 그런데 이게 못생기고, 참 맛이 없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몇 주 후에 좋은 것이 오니, 그때 사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훗날>은 ‘오늘’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이 ‘복숭아가 당기고 먹고 싶은 날’입니다. 고로 <오늘> ‘안 먹고 기다리는 것’보다, 못생기고 맛없어도 <오늘> ‘먹는 것’이 몸에도 마음에도 더 좋습니다. <지혜>는 ‘판단’입니다.  이와 같이 <제때에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신앙의 삶, 휴거의 삶도 그러합니다.  제때 하면서 마음에 안 들면 고치면서 하면 됩니다.  월명동 돌 조경을 쌓을 때도 ‘제때’ 했습니다. 제때 하면서 마음에 안 들면, 돌을 돌려서 세우고, 엎어서 세우고, 빼내기도 하면서 했습니다. 그때 “돌이 작다. 좋은 돌 오면 쌓자.” 하고 중단했으면, 지금까지 못 쌓았을 것입니다. 그때 먼저 ‘작은 돌’로 쌓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손을 댈 때>가 왔습니다. 그때 “이때다!” 하며 끌어안고, 즉시 ‘작은 돌’은 다 깨서 빼 버리고 그 자리에 ‘크고 푸짐한 돌’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돌 틈에 큰 구멍을 내어 ‘큰 나무’를 꽂아 심고, 앞산 남쪽 작업을 다시 했습니다.  이때가 언제인 줄 알아요? 선생이 외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이때 ‘앞산 남쪽을 다시 손댈 기회’가 왔는데, 선생이 외국에 있어서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 이때 ‘내 몸이 가야 하나님의 구상대로 완전하게 쌓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 하고 안 했으면 못 하고 끝났습니다. “봄은 두 번 안 온다. 내 몸이 못 가면 ‘다른 방법’으로 하자. <때>를 맞았으니 지금 해야 된다.” 하고, <내 지체 같은 자>를 세워서 인터넷 화상 중계를 하며 “이 돌은 여기 세워라. 저 돌은 여기 엎어 놓자.” 하면서 쌓았습니다.  그때 ‘작은 돌, 깨진 돌’은 빼내고, ‘새로 들어온 큰 바위’를 여기저기 놓았습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의 구상으로 아름답고 웅장하게 쌓아, <앞산 남쪽 걸작>이 완성되었습니다.  이와 같이 <제때>에 해야 됩니다. <기회>가 왔을 때 해야 됩니다.  10년 동안 사랑하는 자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만날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한 벌뿐인 외출복’을 빨아서 입고 나갈 옷이 없다면, 속옷 입고 눈 감고서라도 가야 됩니다. 가다가 시장에 들러서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 <때와 기회>가 왔으면 어떤 이유도 대지 말고, 벗었으면 벗은 대로 나가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기회>는 책임지고 자기 품에 넣고 데리고 갑니다. 이같이 <기회>를 대하는 자만 성공하고 승리합니다.  구약성경 아가서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기회>를 기다리던 한 여자가 긴긴 세월 단장하고, 오직 ‘사랑하는 자’가 오면 문을 따 주겠다 하며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정조를 지키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사랑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문밖에서 ‘사랑하는 자’가 문을 따 달라고 노크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어 보니 ‘자기가 기다리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벗었으므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급하니 문만 따라.”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손이 안 닿는다고 하며 계속 졸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밖에서 밤새 찬이슬을 맞으며 애원했으나, 여자는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자다가 일어나서 문을 따 주니, 사랑하는 자는 이미 가고 없었습니다. 단장하고 나가서 거리를 다니며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리고 거리의 파수꾼에게 물어보다가 결국 그들에게 당했습니다. 이로써 <희망>은 <절망>으로 끝났습니다. 이 시대가 ‘새 역사와 구원자를 맞는 데’ 있어서 이러했습니다.  <기회>가 오면 여건을 따지지 말고, 보는 즉시 ‘몸’만이라도 따라가야 됩니다. 가다 보면, ‘입을 옷’이 생깁니다. 그리고 가다가 또 <기회>가 옵니다. 왜일까요? <기회>는 ‘주인’이라서, 계속 <기회>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고로 <기회>와 동행하면, 계속 ‘기회’를 만나게 됩니다.  <기회>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이십니다.  <기회를 절대시하는 자>는 ‘기회의 주인’이 되어 <기회>와 ‘동행’하게 됩니다.  <영원한 기회>인데 ‘육적인 생각’으로 판단하여 <육적인 기회>를 얻으려고 그것과 짝이 되어 살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기회>를 따라가야 됩니다. <육적인 기회>를 잡으려고 <영원한 기회>를 놓는 자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얼마나 큰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일 미련하고 불쌍한 자입니다.  <하늘의 영적인 기회>는 ‘영원’하고, <땅의 육적인 기회>는 ‘일생’ 동안만 얻고 누립니다.  <기회>를 잡으려고 수년 간 고생하고 돌아오다가 <기회>를 만나는 자도 있습니다. 고로 끝까지 마음 딴 데 두지 말고 포기하지 말아야 됩니다.  <기회>를 좇으며 가도, <기회>가 눈앞에 있어도 바로 안 잡힙니다. <기회>를 따라가도 자기 마음대로 때를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정한 때, 합당한 때’에 맞춰 역사하십니다. 고로 끝까지 마음 딴 데 두지 말고 포기하지 말아야 됩니다.  <하나님>은 ‘기회’이십니다. 따라가도 금방! 자기 마음대로 소원을 성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다 보면 <때>에 맞춰 ‘합당한 때’에 주시고 역사하십니다. <기회>도 ‘순서와 질서’대로입니다. 고로 끝까지 마음 딴 데 두지 말고 포기하지 말아야 됩니다.  그리고 <기회>가 오면 성령님은 뜻을 두고 감동을 주어 <기회>로 인도하십니다. 고로 성령님을 찾고 부르며 함께 살아야 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 오늘 말씀 <생활의 졸음, 신앙의 졸음, 신앙의 잠>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다른 생각, 잡생각, 다른 행동을 하고 사는 순간’을 말한다. 이런 자는 ‘졸고 자면서 운전하는 자’와 같다. 바로 이때! 생각과 사고와 행실이 ‘다른 데’로 흘러서 신앙의 중심이 무너지거나, 신앙의 큰 사고가 나거나, 신앙이 죽는 일이 생기는 등 각종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 (했습니다.) 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생활 속에서 정신 안 차리면, 생각이 몽롱해지면서 졸게 된다. 그때 <초기>에 졸음에서 깨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신앙의 잠’이 들고, 결국 ‘신앙의 생명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신앙의 졸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느냐. 잘되려고만 하지 말고, ‘졸음’에서 깨어나라. 그러지 않으면 운전하면서 졸다가 사고 나듯 한다.” 하셨습니다.  지도자들과 교역자들은 ‘운전하는 자’와 같습니다. 고로 특히! 생명들을 이끌면서 졸거나 자면, 모두 당합니다. 정말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 됩니다. 지도자인데, 잘 몰라서 캄캄한 자들이 많습니다. 모르면, 졸고 잠자는 자입니다. 그러다가 생명들까지 사고 납니다. 무지를 벗어나려면, 정말 기도해야 됩니다. 그리고 알기 위해 관심을 갖고 노력하고, 계속해서 주께 배워야 됩니다. 지도자들, 교역자들 정말 알겠습니까?  혼자 있으면 졸아도, 잠을 자도 깨울 사람이 없습니다. 교역자도, 지도자도 그러합니다. 혼자서는 생명을 파악하고 교회를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고로 잘 몰라서 졸고 자게 됩니다. 교인들과 골고루 교통하며 대화해야 됩니다. 그러면 ‘졸음’이 안 오듯 ‘무지의 졸음’이 안 옵니다.  모두 <건강>에 졸지 말고 관리해야 됩니다. 앞날에 주를 만나 육으로도 잔치하고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육은 무익하다.” 했지만, 실상 하나님의 뜻 밖에서 <육>은 ‘무익’하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육>은 ‘유익’합니다. 남은 때, 주와 함께 부지런히 뛰고 얻고 누리며 살아야 됩니다.  <전도>에 조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교회 운영>에 조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러다가는 문제가 생기니, 주는 ‘생명을 잘 관리하며 뛰는 자’로 <운전자>를 교체합니다.  <교육할 것>을 안 하고 조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수시로 ‘악평자 교육, 이단 교육’을 해 줘야 됩니다. 그리고 교육만 하지 말고, 절대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해서 ‘악’을 물리쳐야 됩니다.  모두 깨어 있어야 ‘악’에게 당하지 않습니다. 특히 교역자와 지도자는 깨어 있어야 됩니다. 교역자와 지도자가 졸면 ‘악평자, 이단’에게 당합니다.  몇 번 기도한다고 해서 ‘악’이 없어지겠습니까? 없어질 때까지 기도입니다. 엘리야는 사생결단하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자기 앞의 거짓된 자들 850명을 모두 멸했습니다. 그리고 ‘악’을 완전히 멸했습니다. 모두 엘리야같이 사생결단하고 해야 됩니다.  섭리인들은 ‘적’에게 너무 약합니다. 사생결단 기도를 해야 됩니다. 그래야 안 졸고 안 자고 깨어 있습니다.  기도하지 않는 자는 ‘조는 자, 잠자는 자’입니다. 고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 위치’를 이탈합니다. <주>는 ‘여기’ 있는데, <자기>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 ‘세상’으로 흐르고 ‘악’에게 당합니다. 꼭 기도해야 됩니다!  지금 <110일 기도>가 진행 중이지요? 이때 주와 함께 섭리인들이 다 같이 기도해야 됩니다. 이때 꼭 ‘기도의 불, 대화의 불’을 붙이고, 그로 인해 ‘다른 것들’도 불을 붙여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악’을 멸해야 됩니다. 사생결단 기도의 때입니다. 정말 중요한, 남은 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 못다 한 말씀은 수요일에 해 주겠습니다. 수요말씀 - <지금 생활 속에서 바로 쓸 무기와 같은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생방송으로 잘 전해 주었으니, 수요말씀은 교역자들이 정말 긴장하고 근신하며 준비해야 됩니다. <전능자의 긴급 계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