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10.02 (일)
161002 주일말씀(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 선포일
- 2016.10.02 (일)
- 성경 본문
- 야고보서 2장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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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02-주일말씀(존재할_때까지만_존재한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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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일 주일말씀>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본 문 야고보서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입니다.
◎ 이 말씀은 ‘깨닫게 하고자 하는 내용의 가짓수’가 많아서
<70여 개의 잠언>으로 표현했습니다.
◎ 깨닫게 해 주려는 많은 잠언들 중에서
<최고 핵이 되는 잠언 하나>가 있습니다.
곧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입니다.
그리고 이 잠언을 <오늘 말씀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 이제 ‘핵이 되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 주겠습니다.
◎ 오늘은 ‘핵적인 말씀’을 해 주면서
왜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하는지,
오늘 말씀을 왜 하는지 <핵>을 말씀하고 마칠 테니,
처음부터 집중하여 잘 듣고 이해하고 깨닫기 바랍니다.
<말씀 시작>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70여 개의 잠언 중에서 이 말씀을 가장 잘 이해하게 해 주고
확 깨닫게 해 주는 <비유의 잠언>이 있습니다.
잘 들어 봐요.
사람이 숨 쉬는 것으로 존재를 할 때까지만 (천천히 강조하면서)
육신의 삶이 존재한다.
이해했습니까?
유초등부는 100% 이해가 안 된 것 같으니,
<그 나이에 맞는 비유>를 들어서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 이 말씀을 이해하게 해 주겠습니다.
이번에는 다 이해해야, 다음 말씀을 해 줘도 깨닫게 됩니다.
잘 들어요.
입에 과자를 넣고 깨물고 씹고
과자가 입안에 존재할 때까지만 (천천히 강조하면서)
맛을 느끼고, 깨물고 씹는 기쁨을 느낀다.
이제 모두 이해했습니까?
그런데 나이 많은 부모님들이 속 시원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비유>로 깨우쳐 주겠습니다.
가려운 곳을 손자나 아들이나 본인이 긁을 때까지만 시원하다.
이해했지요?
이제 모두 알아듣고 이해했으니, 일사천리로 말씀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깨닫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바랍니다. 알겠지요? (아멘!)
<잠시 쉬었다가>
선생의 어머니는 살아 계실 때,
선생이 말하는 것을 보고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말을 잘 알아듣게 쉽게 한다.
네 큰형과 작은형은 쉬운 말도
어렵게 하니 알아듣기가 어렵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아는 것이 있어도 ‘표현’을 할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또 ‘어머니에게 맞는 문법과 표현’을 써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형들은 ‘물건이 존재한다.’라고 말하고,
나는 ‘물건이 있다.’라고 말하니 내 말을 더 쉽게 알아듣지요.”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왜 쉽게 말할 수 있는데 어려운 말을 쓰냐.” 하셨습니다.
왜 ‘어려운 표현’을 쓰겠습니까?
그래야 상대가 ‘많이 배운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예수님은 ‘생활 단어’를 많이 써서 잘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것이 최고로 말을 잘한 것입니다.” 했더니,
어머니는
“네 기도는 ‘내 마음속’에 쏙~ 들어온다.
형들의 기도는 ‘마음 문 밖’에서 돌다가 끝난다.”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설교를 하든지, 말을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상대가 알아듣기 쉬운 말>로 표현해 줘야
그 말이 ‘마음속’에 쏙~ 들어가게 됩니다.
요즘에 성령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는데,
바로 “늘 <표현>을 잘해라.”입니다.
하나님은 ‘비유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사람들이 잘 알아듣도록
설교할 때 ‘생활 용어’를 많이 쓰십니다.
모두 상대를 이해시킬 때는
<자기에게 맞는 문법과 표현>을 쓰기보다
<생활 비유, 생활 용어>를 써야 ‘표현’을 잘하게 되어
강의도, 설교도, 대화도 잘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할 때나 평소에 수시로 교통할 때는
<자기에게 맞는 문법과 표현>을 써도
하나님이 다 아시고 이해하시니 괜찮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가장 핵이 되는 중요 부분
◎ 이제 계속해서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를 이해했으니,
지금부터 하는 말씀을 다 알아들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믿고 따를 때까지’만
<생명권 하나님의 품 안>에 존재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어도
하다가 안 하면 ‘생명권 안의 존재’가 끝납니다.
계속 <생명권 하나님의 품 안>에 존재하려면,
계속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행하며 자기를 존재시켜야 됩니다.
물도 ‘끓일 때까지’만 물이 끓고 뜨겁습니다.
불을 끄면, 끓던 물도 멈추고 서서히 식어 갑니다.
물이 식기 전에 훌훌 마셔야 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치 물이 끓듯이 열을 내며 잘하던 사람이
마음이 식어서 교회에 안 나오기도 하고,
더러는 반대하며 악평까지 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열심히 하다가 저렇게 될 수 있지?
어떻게 저 지경까지 됐지?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합니다.
왜 그럴까요?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열을 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어도
자기가 계속해서 삼위와 주를 믿고 따르며 존재해야
계속해서 <하나님과 주 품>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절대 원리이고, 절대 법칙이며, 절대 순리입니다.
만일 ‘한 번’ 손댔는데 ‘계속’ 존재한다면, 정말 큰일 납니다.
왜 그럴까요? 또 이해하기 쉽게 <비유>로 표현하겠습니다.
운전할 때까지만 차가 운행됩니다.
만일 한 번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운전했는데
그다음부터 운전을 안 해도 차가 계속 운행된다면, 사고가 납니다.
고로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의 순리의 법칙입니다.
이해돼요? (아멘.)
아직 이해하지 못했으면, 한마디 더 해 주겠습니다.
사람이 밥을 먹을 때까지만 배가 불러 옵니다.
한 번 먹고 안 먹어도 계속 배가 불러 오면,
결국 배가 터져 죽게 됩니다.
고로 하나님은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하도록’
세상과 인간을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이제 모두 이해했지요?
그러니까... 안 하면 되는 것이 없으니 하라는 것입니다. (강조)
열심히 했어도 계속해야 존재합니다.
하나님과 주를 믿어도 계속 믿어야 존재합니다.
말씀을 듣고 삼위와 주와 대화하며 교통해도 계속해야 존재합니다.
성령을 받았어도 계속 성령과 일체 되어 살아야 존재합니다.
안 하면 되는 것이 없으니, 꼭 해야 됩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할 때까지만 된다. (강조)
고로 안 하면 되는 것이 없으니 해라.
이 말을 하려고,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오늘 말씀을 해 주는 것입니다.
옷 만 벌을 방에 쌓아 놓고도 안 입으면,
평생 알몸으로 살게 됩니다.
옷이 쌓여 있어도 입어야 옷을 입고 존재합니다.
사람은 ‘행할 때까지’만 존재하니,
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야 됩니다.
행하지 않으면, 실 가닥만큼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행위>가 ‘창조’입니다.
<휴거>도 그러합니다.
삶 속에서 <휴거>를 잊고 살면서 ‘휴거의 삶’을 살지 않는 자는
자기를 더 차원 높은 세계에 존재시키지 못하고,
매일 그 위치, 그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매일 행하면서 휴거를 존재시켜야
마치 살아 있는 과일나무가 크듯,
<휴거의 영>이 더 성장하고 더 빛나게 변화되어
차원 높게 존재합니다.
이런 자가 ‘매일 휴거를 존재시키는 자’입니다.
<평소>에는 휴거를 잊었다가
<휴거 이야기가 나올 때>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자는 ‘휴거에 잠자는 자’입니다.
그러면 ‘졸다가 잠결에 운전하는 자’와 같아서
가다가 ‘꽝’ 하고 부딪혀 사고가 납니다.
휴거에 졸고 살다가 순간 ‘꽝’ 하면
휴거를 다치게 하거나, 휴거를 죽이는 꼴이 됩니다.
<휴거>도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합니다.
<성령님>도 ‘찾을 때까지’만 자기에게 존재하십니다.
안 찾으면, 그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존재하지 않으십니다.
성령님은 인생들을 따라다니지 않습니다.
찾게 하고 부르게 하시며, ‘찾고 부르는 자’에게 가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감동을 주시고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성자 주도
자기가 믿고 사랑하고 찾고 부르며 존재시킬 때까지만
같이 존재해 주십니다.
사람이 길을 걸어갈 때까지만 가집니다.
계속해서 걷는 것으로 존재를 안 시키면,
한 발자국도 더 가지지 않습니다.
관리도 해 줄 때까지만 생명이 존재하고,
안 해 주면 존재가 끊어지게 됩니다.
자기 인생 삶도 그러합니다.
계속 행하면서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합니다.
삼위도, 주도, 인생도 사랑할 때까지만 사랑이 존재합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주를 믿고 따르며 주 안에 존재하는 것도
믿고 따를 때까지만 존재합니다.
모든 존재의 이치는 같습니다.
각종으로 존재시키려면 ‘행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말씀
왜 오늘 말씀을 해 준다고 했지요?
할 때만 존재한다. 안 하면 존재가 끝난다. 고로 해야 된다.
이것을 깨우쳐 주기 위함입니다.
<너의 육>이 <너의 영>을 위해서 행해야
<영>이 ‘휴거’되어 존재한다.
<육>이 계속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된다.
그래야 ‘휴거’를 느낀다.
<육>이 ‘휴거의 삶’을 살지 않으면,
<영>이 ‘휴거’됐어도 못 느낀다.
매일 ‘휴거의 삶’을 살아야
매일 ‘휴거’를 존재시키며 느낀다.
이것을 깨우쳐 주기 위해 오늘 말씀을 했습니다.
<휴거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2년 동안 계속 말씀해 줬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도 소홀히 하고 안 행하니,
안 하는 자만 손해 가고 아쉽습니다.
다른 것에는 그렇게도 시간을 내고 쓰면서,
<휴거의 삶>은 점점 신경을 안 쓰고 안 행합니다.
고로 <휴거>를 계속 존재시키지 못하고
<휴거의 감>도 떨어지고, <휴거의 기쁨과 가치>도 상실하고,
<휴거>를 잊은 채 <휴거>와 상관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휴거 존재’를 했다가도 ‘휴거 상실’이 됩니다.
휴거뿐 아니라 <섭리사 하나님의 뜻 안의 모든 일들>도
할 때만 되고, 안 하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자기가 실천해야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해야 됩니다.
<행하는 자>는 ‘생명을 존재시키는 자’입니다.
교역자들도, 지도자들도 ‘과거에 행한 것’이 있지만,
지금도 행하면서 존재해야 됩니다.
흔히 “나는 과거에 이랬다.” 하면서,
현재는 그렇지 않은데 ‘과거 이야기’만 하며
자기를 존재시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누구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현재에는 안 하면서,
과거에 자기가 무엇을 했다고 하며
현재까지 존재시키는 자는 모순입니다.
<과거에 행한 것>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현재도 행하면서 존재하는 것>을 기준으로 합니다.
지금도 주의 뜻대로 행하면서 온전히 존재해야 됩니다.
지금 상태를 보고 평가합니다.
<과거>에 ‘왕’ 살아 먹었어도
<지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도 행해야 됩니다!
<과거>에 주 앞에 충성자였는데,
<지금>도 그와 같이 행하며 주 앞에 충성하느냐. - 이것을 봅니다.
사명자들과 책임을 맡은 자들이 간판만 가지고 실제로 안 뛰면,
<존재의 잠>을 자고 있으니 깨워 줍니다.
그래도 안 하면 자격이 상실된 자이니, 옆 사람이 뛰기 바랍니다.
이런 자들은 조는 신앙, 잠자는 신앙, 죽은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건강>도 ‘관리할 때까지’만 건강이 존재합니다.
<운동>도 ‘할 때까지’만 근육이 튼튼하게 존재하고,
몸매가 잘 잡혀 있습니다.
운동하다가도 힘들다고 안 하면,
그 좋은 근육도, 몸매도 모두 존재하지 못합니다.
섭리사 모든 지도자들이
일하다가 힘들다고 ‘건강관리 존재’를 안 시키면
균형이 깨져 맹꽁이 배같이 되고,
결국 <건강>이 존재하지 못하여 ‘하늘 일’도 못 하게 됩니다.
<신앙>도 계속해서 ‘자기 관리’를 안 하면,
맹꽁이 배가 되어 신앙을 하기가 버겁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배가 점점 불러 오다 보면, 결국 신앙을 놓게 됩니다.
<전도, 강의, 관리>도 ‘한 번’만 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행하면서 존재시켜야 됩니다.
전도할 때 꼭 명심할 것은
<이단>을 전도하여 헛수고하지 말고,
전도할 때 상대를 100% 파악하고 전도해야 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말씀도 해 줘야 존재하기에
<잠언>만 내보내려다가 <설교>로 요리해서 전해 주었습니다.
<설교>로 존재시키니, 모두 잘 듣게 됐습니다.
하면 되니, 이같이 해야 됩니다! (아멘.)
자기가 행할 것을 행하면서, 생활 속에서 겪고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이 말씀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 <잠언>은 수요일에 해 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이해해야
수요일에 전해 주는 <잠언>도 잘 이해가 됩니다.
이제 <1시 기도 시간>까지 2분 남았습니다.
이제 펜을 놓고 기도해야 됩니다.
<117기도>도, <110일 기도>도
계속 행하면서 존재시키는 자만 ‘그 차원의 것’을 받습니다.
직장인은 ‘그 시간’이 되면 눈을 뜨고
속으로 대화로 기도하면 됩니다.
생활 속에서 하면 됩니다.
<기도>를 못 하면 <대화>는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기도>가 ‘하늘과의 대화’입니다.
모두 각자 <생활 속>에서
신앙도, 휴거도, 삼위와 주와의 대화도, 사랑도, 믿음도
계속 멈추지 말고 행하면서 존재시키기 바랍니다.
안 하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안 하면, 존재하다가도 존재가 끊어집니다.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합니다.
생활 속에서 계속 행함으로
계속 <생명권인 하나님과 성령과 주의 품 안>에서
빛을 발하며 존재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 이대로 마치기 전에,
<별지>로 한 가지 귀한 것을 더 이야기해 줄까요? (청중 반응을 본다.)
그러면, 5분 안에 ‘귀한 것 하나’를 짧게 말해 주고 마치겠습니다.
<별지>
성령님은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것들’이 되어 주셨습니다.
산속에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나무’가 있는데,
내가 좋아만 하지, 그 큰 산에서 캐 올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그 나무 역할’을 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을 사랑하고 모시고 섬기고 위하며 살면,
마치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나무’를 캐다가
‘내 정원’에 심은 것과 같습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에 있어서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것들’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비싸고 좋은 시계가 한 개밖에 없다 합시다.
<성령님>은 그 시계보다 ‘억만 배’ 더 좋게 해 주십니다.
<시계>는 ‘인간이 그때마다 할 일’을 깨우쳐 말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님>과 일체 되어 있으면, 성령님은
‘그때마다 할 일’을 말씀해 주고 깨닫게 하여 행하게 하십니다.
<시계>는 ‘시간’만 보여 주지
‘만 가지, 억 가지의 일’을 못 해 줍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인간이 좋아하는 것들’보다
천 배, 만 배 그보다 더 좋은 역할을 해 주십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좋다 하지 말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늘 사랑하면서
기뻐하고 좋아하며 살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최고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꼭 깨닫고 살기 바랍니다.
이렇게 사는 자가
<마음과 생각의 천국>을 만들어서 살고,
<삶의 천국>을 만들어서 실속 있게 사는 자입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