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10.05 (수)
161005 수요말씀(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 선포일
- 2016.10.05 (수)
- 성경 본문
- 야고보서 2장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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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05-수요말씀(존재할_때까지만_존재한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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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5일 수요말씀>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본 문 야고보서 2장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에 대해서
핵적으로 말씀해 주었습니다.
◎ 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깨닫도록
<70여 개의 잠언>을 받아서 여러 가지로 표현했는데,
오늘은 그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 <주일말씀>을 듣고 이해했으면,
오늘 전해 주는 <잠언>이 아주 잘 이해되고 잘 깨달아질 것입니다.
◎ 70여 개의 잠언의 핵이 되는 것 하나는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잠언으로 표현했습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서 있을 때까지>만 서 있는다.
<운동할 때까지>만 ‘근육’이 튼튼하게 존재한다.
<잠을 잘 때까지>만 ‘꿈’을 꾸고, ‘잠의 세계’에서 존재한다.
<음식을 먹을 때까지>만 ‘음식의 맛’을 느낀다.
<그곳에 살 때까지>만 ‘그곳의 실체’를 보고 만진다.
<얼음을 먹을 때>만 ‘시원’하다.
사랑하는 자라도 <사랑할 때까지>만
‘사랑’을 느끼고 ‘사랑’이 존재한다.
<살아 있을 때까지>만 ‘살아 있는 자’다.
<신앙생활을 할 때까지>만 ‘신앙’이 살아 있다.
만사의 모든 것들이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행할 때>만 된다. <행할 때>만 존재한다.
여름에 더워서 굴속에 들어가면,
<굴속에 있을 때까지>만 시원하고 찬 것을 느낀다.
굴에서 나오면, 그 존재가 끝난다.
이와 같이 <존재할 때까지>만 보고 느낀다.
<행하고, 보고, 듣고, 접하면서 존재할 때까지>만
‘그것’을 보고 듣고 접하면서 ‘그것’과 함께 존재한다.
사람이 ‘그것’과 같이 있을 때까지만 ‘그것’과 같이 존재한다.
<성령님을 부르고 찾고 일체 됐을 때까지>만
‘성령’과 같이 존재한다.
<거기에 속해서 존재할 때까지>만, ‘거기에 속한 존재자’가 된다.
하나님의 주관권 안에서 사는 것도 그러하다.
<하나님과 주를 믿고 그 말씀을 행하며 따를 때까지>만
‘생명권 하나님과 주의 품’에 거하며
‘하나님과 주’와 함께 존재한다.
캄캄한 밤길에 <찬란한 불을 켰을 때>만 환하고,
불을 끄면 다시 캄캄해진다.
신앙생활도 그러하다.
<대낮같이 깨어 신앙을 할 때>만 ‘신앙’이 살아 있다.
하다가 안 하면 바로 캄캄해진다.
생각할 때만 ‘생각이 존재’하고,
생각을 안 하면 생각이 끊어져 ‘존재를 안 하는 세계’가 된다.
행할 때만 ‘존재’하고,
행하다 안 하면 바로 존재가 끊어져 ‘존재를 안 하는 세계’가 된다.
<그것을 생각할 때>만 ‘그 생각’이 존재한다.
<주를 생각할 때>만 ‘주’가 자기와 함께 존재한다.
<말씀을 듣고 생각할 때>만 ‘그 말씀’이 자기와 함께 존재하여
그 말씀대로 판단하고 분별하게 된다.
뜨거운 여름에 <시원한 물에 들어갔을 때>만 시원하다.
물에 있다가도 물 밖으로 나오면 또 덥다.
만사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다.
<거기에 속해 존재할 때까지>만
‘거기에 존재하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얻는다.
힘들어도 <거기에 속해서 행할 때>만 ‘거기’에 존재한다.
고로 매일 해야 된다. 안 하면 끊어져 버린다.
힘들어도 <하나님과 주 품에서 행할 때>만
‘하나님과 주 안’에서 존재한다.
안 하면 끊어져 버린다.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하니,
<거기에 해당되는 것>을 얻으려면
<거기>에 속해서 계속 행하며 존재해야 된다.
운동도 <할 때>만 몸의 피곤이 풀리고,
튼튼하고 균형 잡힌 근육질의 몸매로 존재한다.
힘들다고 안 하면, 바로 ‘안 하는 체질’이 된다.
신앙도 그러하다. <할 때>만 ‘하나님과 주 안’에서 존재한다.
힘들다고 안 하면, 바로 ‘다른 세계’에서 존재한다.
힘들게 운동해서 튼튼한 근육질의 몸매로 만들었는데
‘이제 됐다.’ 하고 안 하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고로 너무 허무했다.
이때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행하면서 존재시킬 때까지만 존재한다.” 하셨다.
신앙생활도 잘할 때는 표가 나게 열심히 하며 잘 존재한다.
그러다 어떤 이유가 있든지 열심히 안 하면,
바로 표가 나게 마음이 변해 버려서 그때부터 존재하지 못한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밥을 한 번 먹는다고 존재하느냐.
잠을 한 번 잔다고 존재하느냐.
매일 꾸준히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숨을 쉬듯 해라.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하지 말고 해라. 해야 ‘힘’이 온다.
<할 때>만 ‘존재’한다.” 하셨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존재할 때까지만 존재한다.’에 대해서
<잠언>으로 여러 가지를 표현하며 말씀하겠습니다.
어떤 물건을 자기가 돈을 주고 사거나 선물을 받으면,
<그 물건의 주인>이 되어 쓰고 싶을 때마다 쓸 수 있다.
<타인의 것>은 자기 마음대로 못 쓴다.
쓸 때마다 허락을 받거나 돈을 지불해야 된다.
<자기 것>과 <타인의 것>은 이같이 다르다.
어떤 물건을 자기 것으로 완전히 사 놓으면 3년, 5년, 10년씩 가고
어떤 것은 100년, 1000년씩도 간다.
신앙을 만드는 과정 중에는 ‘만들 때’만 만들어져 간다.
고로 안심하고 보장할 수 없다.
신앙을 완전히 하여 <자기 영>을 완전히 만들어 놓으면,
<육>이 죽어서 더 이상 신앙을 못 해도 <영>이 영원히 존재한다.
완전하게 만들어 놔야
<육>도 <영>도 ‘자체적 기능’을 하여
<육>이 쉬면서 보기만 해도 <영>이 생명권에서 존재하며 행한다.
이는 아기를 다 키워 놓으면 ‘자체적으로 존재’하니,
부모가 쉬면서 보고 보람을 느끼고 영화를 보는 격이다.
기도도 할 때까지만 존재한다.
<기도할 때>만 ‘기도의 역사’가 일어난다.
안 하면, 기도의 역사가 안 일어난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영광 돌릴 때>만 ‘영광’이지,
안 하면 끝난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고달프다. 힘들다.” 하면서 안 하면,
‘안 하는 그 차원’에 그대로 있게 된다.
그러다 하면, 다시 ‘하는 세계에 처한 자’가 된다.
행하면서 존재할 때까지만 거기에 존재하니,
‘행하면서 존재하는 것’을 생활화해라.
그러면 <혼>도 <영>도 계속 변화되고 만들어진다.
그러다 <혼과 영>이 완전하게 만들어지면,
그때부터 누리면서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월명동도 다 만들면 더 이상 육이 고달프게 일을 안 해도
편히 쉬면서 보고 느끼면 되고, 관리하면서 귀히 쓰기만 하면 된다.
신앙도, 휴거도 이와 같다.
몸은 운동을 하다가 일주일, 열흘만 안 하면 근육이 바로 풀어진다.
그 좋은 몸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해야 된다.
신앙도 그러하다.
새벽 기도, 삼위와 주와의 대화, 말씀 실천도 하다가 안 하면
금방 표가 나서 ‘그 존재 세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속적으로 해야 된다.
전자 제품의 전기선을 ‘콘센트에 연결했을 때’만 가동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주께 연결됐을 때>만 ‘생명권’에서 존재한다.
<그 존재 세계에 속한 자>가 되어
‘그 존재 세계의 것’을 얻으려면,
‘그 존재 세계’에 속해 살면서 행해야 된다.
이와 같이 <천국 황금성에 속한 자>가 되어
‘황금성’을 얻고 ‘거기에 해당되는 것’을 얻으려면,
‘하나님이 이 시대에 행하시는 새 역사’에 속하여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를 믿고 ‘그 말씀’을 행하며 살아야 된다.
화장도 한 번 했다고, 계속 ‘화장한 얼굴’로 존재하느냐.
<화장했을 때>만 ‘화장한 얼굴’로 존재한다.
고로 귀찮고 힘들어도 계속 화장을 하지 않느냐.
신앙생활도 그러하다.
때로는 귀찮고 힘들어도 하면! ‘얻는 것’이 있으니, 해야 된다.
<잠시 쉬었다가>
건강도 <관리할 때까지>만 ‘건강’이 그 차원에서 존재한다.
관리를 안 하면, 약해지고 병이 들어 ‘건강’이 존재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운동’을 하고,
속으로는 ‘그에 해당되는 것들’을 먹으면서 보충하고,
아프면 ‘그에 해당되는 약’을 먹고,
‘그에 해당되는 수술’을 하면서 관리하기다.
그래야 매일 ‘건강’이 존재한다.
건강을 관리하면, 10~20년을 더 건강하게 산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들이 건강하게 살면서
- 자기를 더 좋게 만들기를 원하시고,
-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혹여 ‘죽는 날’을 정해 놓았어도
본인이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
힘들지만 <건강>에 신경 쓰고 <하늘 일>도 열심히 하면,
생명도 연장하여 10년이고 20년이고
더 살게 해 줄 수 있다고 하셨다.
가령 하나님이 ‘85세’에 ‘죽는 날’을 정해 놨다 하자.
본인이 <건강>에도 신경 안 쓰고
<하나님의 일>에도 신경을 안 쓰고 살면,
수명이 5~10년은 더 짧아지기도 한다.
세상에서 죄도 없고 착하게 살았는데,
지도자의 무지로 일찍 죽을 때가 있다.
한국에서 ‘큰 배가 침몰하는 사건’이 있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었다.
그날 <세월호>가 떠나기 전에 안개가 끼고 파도가 심하게 쳤지만,
지도자의 무지와 욕심으로 화물까지 과하게 싣고 출항했다.
결국 배가 기울어지고 결국 침몰했다.
476명이 탑승했는데, 300여 명이 죽었다.
지도자 <선장>만 안 가도, <전체>가 다 안 갔을 것이다.
<지도자의 잘못>으로 어이없이 ‘많은 자들’이 죽었다.
이와 같이 <지도자>가 잘못해서, 세월호 침몰 사건처럼
어이없이 ‘많은 생명들’을 죽일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지도자>가 ‘죗값’을 다 받고,
<억울하게 죽은 자들>은
하나님이 ‘그 영’에게 공의롭게 대가를 주신다.
하나님은 ‘안개와 바람’을 징조로 보여 주며,
그날 배가 출항하지 못하게 막으셨다.
그러나 <지도자>가 이를 무시했고,
<그 배에 탄 자들>도 이 징조를 예사로 여기다가 당했다.
신문을 보니, 제주도에 살던 어떤 부부가
육지 관광을 하고 집에 돌아가려고 <세월호>에 탔다.
그런데 남자가 안개가 자욱하게 끼고 바람이 부니
찜찜하다고 하며 배를 타고 가기 싫다고 했다.
그런데 부인은 “이렇게 큰 배가 설마 뒤집어지겠어? 가자!” 했다.
그래도 남자는 가기 싫은 느낌이 들어서 싫다고 하며
“안개 끼면 앞이 안 보이니,
잘못해서 어디에 부딪히면 이 큰 배도 넘어져.” 했다.
부인이 그 말을 듣고 “그럼 내리자.” 하고,
미리 실어 두었던 차는 제주항에 대 놓기로 이야기했다.
그때 마침 선사에서 저녁밥을 준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때 부부는 “배도 구경할 겸, 배에서 밥이나 먹고 가자.” 했다.
“그럼 빨리 밥만 먹고 나오자.” 하고 다시 배에 들어갔다.
밥을 먹다 보니,
밥 먹는 분위기와 배에 탄 수백 명이 웅성거리는 분위기에 쏠렸고,
어느 새 출항 소식이 들려 갑판에 올라갔더니
배는 이미 항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부는 “우리 그냥 가자!” 했다.
분위기에 쏠려서 할 수 없이 가게 됐다.
그리고 조금 후에 남자는
같은 객실에 있던 다른 부부의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 주기 위해
‘배 안에 있는 상점’으로 가려고 객실에서 나왔는데,
그때 배가 기울어지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충격으로 남자는 갈비뼈 몇 개가 부러졌고,
부상을 입은 탓에 결국 객실에서 자고 있던 부인은 못 구했다.
이와 같이 ‘그날 그 배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거친 파도와 안개로 ‘갈 길’을 막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연 계시>를 모르니
선장이 배의 책임자들과 함께 배를 몰고 나갔고,
그 배에 탄 사람들도 그대로 배에 탔다.
하나님은 <자연>을 ‘사역자’로 쓰고,
막기도 하시고 돕기도 하신다.
늘 <갈 길>을 두고 - 만물이나, 사람이나, 말씀으로 막고 도우신다.
<느낌>을 주면, ‘주변 분위기’를 꺾고 목숨 걸고 행해라.
존재할 때만 존재한다.
<하나님께 매달려 물을 때>만 신경 쓰게 되고,
<만물을 신경 쓰고 볼 때>만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영감을 느낀 사명자는
누가 옆에서 이론적으로 이야기해도 영감대로 굳건하게 해야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받고 만물로 계시와 감동을 받았으면
받은 대로 굳세게 실천해야 살고, 자기 사랑하는 자를 안 죽인다.
고로 <주>가 “순종해라.” 하면, 순종하는 것이다.
<평소>에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어떤 일이 닥친 실제 상황>에서도 ‘순종’한다.
고로 ‘화’를 면하고 ‘축복’을 받는다.
<잠시 쉬었다가>
◎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사랑할 때>만 ‘사랑’을 느낀다.
성령과도 <대화할 때>만 ‘대화 존재’를 하게 된다.
안 하면, ‘안 하는 차원’에서 존재하게 된다.
삼위와 <심정 일체 됐을 때>만 ‘일체 된 세계’에 존재한다.
안 하면, ‘안 하는 차원’에서 존재한다.
<심정 일체>는 ‘생각과 행위’로 된다.
<생각>이 ‘삼위’께 붙어 있어야 된다.
그에 따라 <행위>도 ‘삼위가 원하시는 대로’다.
<생각>이 딴 데 있고 <행위>가 하나님의 뜻 밖에 있는데,
삼위와 주와 ‘심정 일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이 되어서 행하며 살아야 된다.
행하는 대로 ‘거기’에 속해 존재한다.
고로 <거기에 속한 것>을 이루려면,
‘거기’에 존재하며 행해야 된다.
<영원한 것>을 이루려면,
‘이 시대 하나님의 역사에서, 주 안’에서 존재하며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대로 행해야 된다.
농부가 과일 농사를 지으면서 나무를 가꾸는데
어떤 나무에서는 열매가 600개 열리고,
어떤 나무에서는 열매가 300개 열리고,
어떤 나무에서는 열매가 100개 열리고,
어떤 나무에서는 열매가 1개 열렸다.
<한 개>만 열었다고 나무를 뽑아 버리지 않고,
그 ‘한 개의 열매’라도 추수한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생명 농사’를 이렇게 지으신다.
매일 <삶>을 존재시키려면, 매일 행해라.
매일 <신앙>을 존재시키려면,
매일 삼위와 주와 교통하고 그 말씀대로 행해라.
매일 <휴거>를 존재시키고 더 <차원>을 높이려면,
매일 ‘휴거’를 잊지 말고 ‘휴거의 삶’을 살아라.
행할 때만 존재한다.
<얼음을 입에 댈 때>만 ‘차가운 것’이 느껴지고, 빼면 못 느낀다.
만사의 모든 일이 <행할 때>만
‘거기에 해당되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기쁨과 흥분과 희망’도 느끼고, ‘슬픔’도 느낀다.
공중에 날아가는 날짐승이 <날개를 칠 때까지>만 하늘을 난다.
날개를 안 치면, 땅에 떨어진다.
사람도 <의의 날개, 사랑의 날개를 칠 때까지>만
‘삼위와 주 안’에 거한다.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라도 멈추면, 땅에 떨어진다.
존재하려면, ‘존재’를 위해서 지속적으로 행해야 된다.
인생은 ‘자기를 존재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존재시킬 <몸>도 <생각>도 있으니,
‘안 하고 쉬는 것’보다 ‘하는 것’이 10배, 100배 더 낫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