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10.09 (일)
161009 주일말씀
- 선포일
- 2016.10.09 (일)
- 성경 본문
- 전도서 12장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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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9일 주일말씀>
기억해야 기쁘다
잊어서 기쁨이 사라진 것이다
본 문 전도서 12장 1-2절, 7절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마태복음 6장 21절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기억해야 기쁘다. 잊어서 기쁨이 사라진 것이다.’
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 바로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어느 날, 갑자기 <내 생각>에서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뇌>에서 ‘생각’이 지워지니, ‘기쁨’도 사라졌습니다.
마치 컴퓨터에 입력한 글이 지워지면,
한 글자도 남지 않듯이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기도하려고 씻고 나오는데,
선연히 지난날이 생각나고 기억났습니다.
지난날이 기억나니, 다시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이때 ‘기억’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깨달아졌습니다.
‘아~ 기억해야 기쁘구나! 잊어서 기쁘지 않구나!’ 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과거의 것이나 현재의 것이나
기억할 것을 꼭 ‘기억’해야 ‘기쁨’도 있습니다.
<생각>에서 잊으면 - 기쁘다가도 바로 ‘기쁨’이 사라지고,
다시 <기억>하면 - ‘기쁨’이 일어납니다.
<기억>은 마치 ‘꿈’과 같습니다.
좋은 꿈을 꾸면 자고 일어나서 ‘기뻐할 것’이 있고,
아예 꿈을 안 꾸면 자고 일어나도 ‘기뻐할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기억하면
마음 그릇에 ‘맛있는 음식이나 귀한 물건이 담긴 것’과 같아서
<기뻐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을 안 하고 잊으면
마음 그릇이 ‘비어 있는 것’과 같아서 <기뻐할 것>도 없습니다.
섭리역사에 와서 살아 있는 주를 맞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이루고 사는 여러분은
<기쁨과 희망>이 찬란합니다.
그런데 왜 ‘기쁨이 사라진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생각>에서 ‘기억’이 사라졌으니,
동시에 ‘그로 인한 기쁨과 희망’도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의 사랑의 역사도
기억하고 행할 때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러다 그 ‘기억’이 사라지면,
동시에 ‘기쁨’도, ‘희망’도 사라집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왜 기쁘다 하지 않느냐.
기뻐할 것들이 ‘기억’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억해라. 생각해라. 지난날 기뻐한 것들을 기억해라.
그러면 다시 ‘기쁨’이 온다.
네 기억에서 ‘지난날의 무엇’을 잊었는지, 찾아라!
지난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의 사연들을 잊지 말아라.
기억해라!
새벽에 깊이 기도하자. 하늘과 대화하자.
그러면 기뻐할 것들이 기억나고 생각난다.
기억나면, 다시 ‘기쁨’이 일어나고,
희망의 바람이 불고, 희망의 흰 구름이 밀려온다.” 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기억에서 잊으면,
마치 ‘자기 큰 보물’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그로 인한 ‘기쁨’도 사라지게 됩니다.
가령 자기 사랑하는 자와 매일 서로 이야기하다가 안 하면,
마치 전깃줄을 끊으면 전기가 안 들어오듯이,
즉시 그로 인해 오는 ‘기쁨’도 사라집니다.
사람은 <생각>으로 모든 것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고로 <생각과 기억>은 ‘정신적인 생명’입니다.
또한 <기억>은 ‘기본’입니다.
마치 한글의 기본이 되는 자음 첫 글자가 ‘ᄀ(기역)’이듯이,
사람에게는 <기억>이 ‘기본’입니다.
<기억>하니, ‘그것’으로 인해 금방 기쁨과 흥분이 오고,
희망이 해가 뜨듯 찬란하게 빛납니다.
사람이 <기억>을 못 하면, ‘식물인간’과 같습니다.
마치 ‘빈 그릇’과 같아서 ‘희망’도 없습니다.
사람이 <뇌와 생각>에서 잊으면, ‘빈 머리’뿐입니다.
잊어버리면, 머리에 아무것도 없으니 ‘해골’뿐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도,
신앙을 하며 기뻤던 것도,
하나님과 성령과 성자 주의 사랑도,
말씀을 들으며 깨달았던 것도,
시대와 주를 깨닫고 기뻤던 것도,
성령을 받고 기도하며 기뻤던 것도,
<생각과 기억>에서 잊으면, ‘골 빈 사람’처럼 됩니다.
이것을 잊으면 - 동시에 그로 인한 ‘기쁨’도 같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얻는 것’도 같이 사라집니다.
<지난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하신 말씀>과,
<삼위일체가 주를 통해 해 주신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리고 날마다 기뻐하며 행해야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는 <자기 생각>을 비워야 되지만,
말씀을 받고 나서는 <자기 생각>에 ‘그 말씀’을 가득 채우고
절대 잊지 말고 행해야 됩니다.
애인과 살을 맞대고 있어도 <생각>에서 애인을 잊고 있으면,
어느새 ‘애인으로부터 오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로 인해 ‘몸’도 그것을 느낍니다.
인간으로서 더 이상 없는 축복인 <영원한 휴거>도
기억을 상실하면, 바로! ‘그로 인한 기쁨’까지 사라집니다.
그로 인해 ‘몸’도 그것을 느끼고 곤고해합니다.
그래서 <기억>은 ‘생명’이고 ‘기본’입니다.
자꾸 기억하고 암기하면서 기억과 생각을 훈련해야
기억을 잘하게 됩니다.
또한 <기억한 것>을 기록해 놓고 잊지 말고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생활화하며 행해야 됩니다.
생각만 하지 말고 자꾸 행해야 ‘몸’으로 더 느끼고,
그로 인해 ‘유익’을 얻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많은 것들이 있어도
그중에서 ‘자기가 좋아하고 중심하는 것’으로부터
기쁨과 희망이 생깁니다.
금은보화도, 돈도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가지고 있어도 ‘기쁨’이 없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갖고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만족’이고 ‘기쁨’입니다.
비싼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음식이 비싸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과 담배와 이성에 미쳐서 좋아하며 사는 사람도 있고,
절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길들여진 대로’ 좋아하고,
‘자기가 아는 대로’ 좋아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의 표준’이 다릅니다.
그러나 ‘이 표준’을 잘 정해야 됩니다.
그 <표준>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정해야 됩니다.
그것을 표준으로 해서 행해야 영원히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좋아서 행해도 그로 인해서 병들고, 망하고,
하나님의 법에 의해 심판도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살아도
타인에게 해가 되거나 법에 어긋나면, 그 대가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도 그러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의 표준을 잘 정하고,
땅의 법,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게
그것을 기억하고 기뻐하며 행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생각의 차원’이 높아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사랑하며 그로 인해 기뻐하며 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별로로 생각하고,
술, 담배, 돈, 이성 사랑, 세상 향락을 더 사랑하고
자기 취미에 빠져 기뻐하며 삽니다.
<땅의 육에 속해 사는 것>과
<하늘의 영에 속해 사는 것>을 비교해 보세요.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꼭 깨달아야 됩니다.
어떻게 ‘끝날 것’과 ‘영원한 것’을 비교합니까?
<땅에 속해 사는 것>은 ‘개미 몸무게’와 같고,
<하늘에 속해 사는 것>은 ‘코끼리 몸무게’와 같아서
아예 비교도 안 됩니다.
<세상에서 육으로 누리는 것>은
<영원한 것>에 비하면, 그 기간이 ‘1초 정도’됩니다.
너무 짧고 허무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 봄에 ‘눈 뭉치’를 택하여
잠깐 놀다가 눈이 녹듯 그렇게 끝나는 자와 같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는 - 봄에 ‘흙뭉치’를 택하여
거기에 각종 나무와 과일나무와 꽃을 심어서
새들도 날아오게 하고, 벌과 나비들도 날아오게 하고,
사람들도 밀려오게 합니다.
<하늘에 속한 것>을 모르고,
<땅에 속한 것>만 잡고 누리며 행하는 자는
참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도살의 날>인데 그것을 모르고 좋아서 먹고 즐기는 짐승같이,
<육의 것>으로 인해 사망으로 가는데
그것을 모르고 즐거워하며 기쁨을 누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는 자>는 그 옆에서 못 먹고 굶으면서도
기쁨과 희락이 차고 넘칩니다.
때가 되니, ‘육에 속해 사는 자들’을 모두 싣고,
깊은 터널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비명 소리들이 들렸습니다.
하루살이 기쁨의 인생들... 시간이 되면 한 명도 없습니다.
기억해야 됩니다. 생각해야 됩니다. 무엇을요?
영원한 것, 영에 속한 것, 자기 혼과 영을 늘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와 천국 황금성을 늘 기억해야 됩니다.
<영에 속한 것들>은 눈으로 안 보이니,
기억을 안 하면 아예 잊게 됩니다.
<성령과 주의 영>이 옆에 있어도 기억하지 않으면,
아예 안 통합니다.
그리고 기억이 날 때까지 ‘자기 생각’으로 잘못 행하게 됩니다.
기억하고 부르면, <성령>도 <주의 영>도
멀든지 가깝든지 통하여 바로 대화가 됩니다.
손을 대면, 순간 느끼지요?
손으로 일을 하면, 일한 것이 표가 나지요?
<생각>도 그러합니다.
손을 대듯, 일순간 생각하면 느낍니다.
그리고 손으로 일하면 표가 나듯,
생각한 것을 몸으로 행하면 금방 표가 납니다.
<손>과 <뇌>는 ‘모양과 형상’이 다를 뿐이지
손도 대는 대로 느끼고, 일하는 대로 일이 되고,
뇌도 생각하는 대로 느끼고, 몸으로 행하는 대로 일이 됩니다.
<손>은 <뇌 신경>과 연결되어 있으니, ‘뇌 신경’과 같습니다.
꼭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영원한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주를 통해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그 <생각>을 <몸>으로 실천하기 바랍니다.
기억만 하지 말고 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동시에 ‘기쁨’도 오고 ‘얻는 것’도 생깁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 주도, 영원한 것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도, 하늘의 뜻도, 휴거의 기쁨도
기억하지 않고 그냥 뛰기만 하니,
기쁨이 없고 희망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전환>
◎ 이 말씀과 연결해서 ‘한 가지’를 더 말씀해 주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손>과 <뇌>의 ‘모양과 형상’이 다르다고, 달리 보지 말아요.
<손>과 <뇌>는 ‘신경’으로 통하고 같이 움직입니다.
<연결된 것>은 ‘하나’입니다.
모양과 형상이 달라도
<연결된 것>은 ‘개성으로 하나로 통한다는 것’을 배우기 바랍니다.
남자와 여자도 ‘구조와 형상’은 다르지만,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대상’으로 삼고
서로를 위해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연결하여 볼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볼 때도 그러합니다.
모양과 형상이 달라도
<하나님과 연결된 것>은 ‘하나님’으로 봐야 됩니다.
보세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전>은
‘형상’도 다르고 ‘존재하는 것’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 같은 형체를 가진 ‘영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건물로서 ‘물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전은 나 여호와의 몸이다. 나의 상징체다.” 하셨습니다.
전혀 다른 모양이라도 <연결된 것>을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월명동 자연성전>은 ‘하나님의 보이는 상징체’입니다.
하나님과 전혀 다른 모양이라도
‘하나님의 상징체’로서 ‘하나님의 몸’과 같습니다.
이것을 알고 대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상하시고, 그 구상대로 만든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자연성전’을 쓰고 나타나
그에 해당되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모양과 형상>이 전혀 달라도 <특성과 뜻>이 비슷하면
그것과 연관 지어 “나도 그러하다.” 하고 많이 깨우쳐 주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양과 형상이 다른 것’을 연결해서 말하면,
이해를 못 하고 인식을 잘 못 합니다.
이치의 육의 눈과, 이치의 마음의 눈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고로 배워야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글’로 쓰면,
그 <글>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상징체’가 됩니다.
그 <글>을 통해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글>을 쓰고 나타나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말’로 전하면,
그 <말>이 ‘하나님의 상징체’이며 ‘하나님’입니다.
무용가는 ‘무용’으로 표현하여 자기의 의도를 전달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글자>를 이리저리 구부리고 돌려서
마치 무용하듯 글로 그 심정을 나타내십니다.
이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수화를 쓰는 자는 ‘손짓’으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합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이고 ‘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도 <글>로 자기 마음을 전달하실 때는
<글>을 ‘자신의 몸’으로 삼고
마치 수화하듯, 춤추듯 표현하며 전달하십니다.
성령님은 이것을 가르쳐 주시면서,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글씨 좀 예쁘게 쓰자.
<글>이 나의 말과 나의 심정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무용>으로 자기 뜻을 전달할 때 ‘예쁘게’ 표현하듯,
나 성령도 <글>로 나의 뜻을 전달하니
네가 글씨를 쓸 때 끄적거리며 날림으로 쓰지 말고,
알아보게 제대로 써서 보내라.
무용 동작도, 수화도 ‘정확히’ 해야 상대가 알아보듯이,
너는 나의 말을 ‘글’로 써서 표현하니 <정자체>로 잘 써라.
<정자체>로 안 쓸 때는 <흘림체>로 잘 표현해라.
마치 그림을 그릴 때 <구상화>, 아니면
<추상화>로 회화의 기본에 맞춰 그리듯이,
나의 말도 <정자체>, 아니면 <흘림체>로
알아보게 써야 된다.” 하셨습니다.
선생은 평소에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글을 쓰기 때문에,
글자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글씨가 날림이 될 때가 많습니다.
끄적거리듯 써서 잘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의 원고를 보고 말씀을 정리해 주는 조은 목사가
항상 애를 태우고 기도하면서 많은 시간을 들여 수고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성령님의 말씀을 듣고 예쁘게 잘 썼습니다.
<말씀 마무리>
◎ 오늘 말씀
왜 기쁘다 하지 않느냐.
기뻐할 것들이 ‘기억’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 주도, 영원한 것도, 휴거의 기쁨도
기억하지 않고 그냥 살기만 하고 섭리를 뛰기만 하니,
기쁨이 없고 희망도 사라지는 것이다.
기억해라. 그러면 다시 ‘기쁨’이 온다.
잊어서 ‘기쁨’이 사라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다 잊어버려서 ‘기쁨’까지 사라진 것이다.
새로운 것만 찾지 말고, ‘이미 준 것’을 기억해라.
네 기억에서 ‘지난날의 무엇’을 잊었는지, 찾아라!
<지난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의 사연들>을 잊지 말아라.
기억나면, 다시 ‘기쁨’이 일어나고,
희망의 바람이 불고, 희망의 흰 구름이 밀려온다.
<지난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하신 말씀>과,
<삼위일체가 주를 통해 해 주신 것>을 기억해라.
그리고 날마다 기뻐하며 행해라.
그래야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기쁨>도 연속된다.
믿습니까? 기억하겠습니까?
그리함으로 기뻐하며 살겠습니까? (아멘!!) - 큰 호응으로 말씀 끝낸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