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10.16 (일)
161016 주일말씀
- 선포일
- 2016.10.16 (일)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2장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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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6일 주일말씀> 생방송
<핵>은 마지막에 밝힌다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본 문 요한복음 2장 1-11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의 구상’을 하시고 행하시는지,
그 ‘질서’에 대해서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주제는 ‘핵은 마지막에 밝힌다. 질서의 하나님이시다.’입니다.
◎ <하나님이 앞날에 행하실 것>을
인간이 미리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이 아직 행하지 않으신 것>도
앞날에 어떻게 행하실지 미리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엄청난 말씀입니다.
◎ 하나님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날에나 <그 방법>으로 행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 들어야
<앞날에 하나님이 자신과 섭리사에 행하실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오늘 말씀은 끝까지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야 확실히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듣고, 모두 하나님이 행하시듯 행하기 바랍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새벽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인간이 어떤 것을 두고 노력하고 몸부림치고 기도해서
<조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꼭 주십니다.
그런데 ‘그중의 제일 좋은 것’은 <맨 끝>에 주시고,
<처음과 중간>에는 ‘보통 것’을 주십니다.
어차피 ‘좋은 것’을 주실 것인데,
왜 <맨 끝>에 주십니까?
그러니 조건을 세워 <처음과 중간>에 받고도
‘별것 아니네.’ 하고 실망하고 끝내는 자들이 많습니다.
또 ‘좋은 것’을 얻으려고 끝까지 가는 자는
수고하고 몸부림치다가 기진맥진해서 쓰러집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것 상관없이
<끝>에 가서 ‘최고 좋은 것’과 ‘핵’을 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한 혼인 잔칫집에 갔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잔치는 무르익어 가는데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도 그곳에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잔칫집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잔칫집의 열이 식어 갔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발길을 돌릴 때였습니다.
잔치가 끝날 때쯤,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서 모두 먹게 했습니다.
그때 그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이 신랑에게 말하기를
“사람들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주고,
사람들이 취하면 그때는 ‘그보다 못한 것’을 내주는데,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습니다.”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처음>부터 표적을 보이지 않고,
<끝>에 가서 표적을 보이셨습니다.
6000년 구원역사를 보면,
<한창 화려하고, 희망에 불타 준비하며 날뛸 때>는 -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던 핵이 되는 일들’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대충 어림짐작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역사를 보면 수천 번, 수만 번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중 <기독교 역사에서 핵이 되는 것 한 가지>만 말씀하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의 최고 소망>은
메시아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입니다.
다시 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메시아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절대 믿고 삽니다.
고로 <성경 최고의 핵>이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최고 핵>은
바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입니다.
이는 기독교인들의 바람이자 대(大)희망이며 기다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인자는 구름 타고 온다(마 24:30).”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처소를 예비하고서
“내가 다시 온다(요 14:2-3).” 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의 모든 말씀 중에서
메시아가 직접 말한 ‘재림의 소망에 대한 말씀’ 외에는
더 희망 있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 외의 말씀은 모두 ‘그 당세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그 당세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최고 희망의 말씀>은
‘메시아가 다시 와서 만민을 다스리며 가르쳐 주고
구원하고 휴거시켜 천국으로 데리고 간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메시아가 다시 오지 않으면
그 당세 사람들은 메시아를 보았으나,
후대 사람들은 메시아의 실물을 볼 수가 없습니다.
고로 후대는 메시아를 믿어도
‘이야기만 듣고 믿고 따르는 소망’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와서 후대도 보게 하고, 말씀도 주고,
휴거시켜 천국에 데리고 간다고 했습니다.
이는 마치 자기 사랑하는 자가
악한 자들에게 3년 동안 쫓기면서 살다가 결국 죽게 됐는데,
그가 죽기 전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다시 온다. 그러나 오기 전에 환난이 있다.
환난 끝나고 바로 온다.
비 개면 하늘이 맑아지듯,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다시 온다.
와서 너 데리고 갈 테니 기다려.”
하고 세상을 떠난 것과 같습니다.
그 여자는 ‘자기 애인이 다시 온다고 한 말’이
<최고의 소망>이고 <바람>이며 <희망>입니다.
<기다림>이 ‘기쁨’이 되었고 ‘신앙’이 되었습니다.
고로 믿고 기뻐하며 계속 기다립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온다고 했으니,
그 당세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다시 온다는 말씀>을 ‘최고의 희망과 신앙’으로 삼고
1년, 2년, 10년, 30년, 50년 동안
애를 태우고 심정 태우며 눈 빠지게 기다리다가 죽었습니다.
그 <신앙과 기다림>이 ‘예수님을 믿는 후대’까지 이어져
100년, 200년, 300년, 400년, 700년,
1000년, 2000년이 지나기까지
긴긴 역사를 두고 기다리다 죽었습니다.
곧 다시 오겠다고 말씀했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안 오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안 온다고 실망하기도 했고,
<구름> 타고 온다고 했으니 <구름>만 지나가면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2000년 동안 그러했습니다.
요즘 믿는 사람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한국은 1990년대까지
<하늘 구름>을 쳐다보고 구슬프게 노래하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그리도 기다리며 심정을 태웠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그 전에 이미 ‘재림의 열기’가 식었습니다.
인자가 구름 타고 온다고 하니,
<하늘 구름>을 쳐다보면서 마치 상상하듯
‘흰 구름 위에 크고도 큰 자가 흰옷을 입고 서 있고,
그 구름이 땅으로 내려온다.’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렇게는 안 오시는데도 그렇게 생각하고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선생이 10대 때 교회에 갔을 때도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온다고 그리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선생도 늘 예수님의 사진을 들고 <하늘 구름>을 쳐다보며,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기대하면서 기다렸습니다.
10년 이상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땅에 오셔서
가난한 나를 가르치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메시아의 재림>에 얼마나 정신을 쏟고 살았는지,
지금 사람들은 말해도 잘 모를 것입니다.
정말 떠들썩했고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리석게 생각하고 기다렸습니다.
모두 미련하고 어리석게 가르친 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미련하게 나를 가르친 자들이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바로 선생의 큰형과 작은형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 목사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최고 소망>이 ‘재림의 소망’입니다.
고로 ‘그것’에 대해 가르치니,
그대로 듣고 믿고 따르며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오시면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르치는 자들이 그렇게 가르치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고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구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잠시 쉬었다가>
1973년 6월 3일 주일 오후, 한국 여의도광장에서
기독교인들 약 110만 명이 모여서 집회를 했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그같이 많은 군중이 모였습니다.
큰 축구장도 꽉 차면 9만 명인데,
그것을 12개 합친 만큼의 군중이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그때 말하기를
“오늘 이렇게 온 민족의 기독교인들이 모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예수님이 곧 오신다.” 했고, 기쁨과 흥분과 감동이 물결쳤습니다.
그때 선생도 참석했습니다.
이 집회는 지금까지 전 세계 모든 집회 역사상
최고로 준비됐고, 최고로 열광했고, 최고로 성령 충만했고,
최고의 인파가 모인 대(大)집회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과 열망이
전 세계 집회 역사상 최고로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에 예수님은 안 오셨습니다.
다만 ‘그때에 해당되는 감동과 역사’가 있었습니다.
<신약역사 최고의 소망>이며 <핵>인 ‘예수님의 재림’을
뜨겁게 열광하며 준비하고 염원하면서 기다렸지만,
그들이 성경을 푸는 대로 ‘하늘 구름’을 타고 안 오셨습니다.
그 집회는 그 나름대로의 감동과 은혜로 끝났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고 미쳐서 좋아할 때,
수많은 군중이 모일 때, 소망이 최고로 휘날릴 때는
하나님께서 ‘최고로 기다리는 핵의 역사’를 행하신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오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알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과정 중에는 ‘점진적’으로 역사하시다가
<그토록 기다리던 것, 핵이 되는 것>은 ‘맨 끝’에 행하십니다.
마치 <과일나무를 심고 키우는 과정 중>에는
나무가 ‘점진적’으로 크다가,
<맨 끝>에 ‘열매’가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전 세계에서 다시는 없을
<민족의 대(大)집회, 청중 광장 집회>를 하며
가장 뜨겁게 열광했어도
하나님은 그때 ‘최고의 핵 역사’를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자는 ‘인(人)구름, 사람 구름’을 타고 오셨습니다.
그것도 ‘그들이 미쳐서 좋아하고 기다릴 때’ 안 오시고,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오셨습니다.
군중이 모인 것과 상관없이 조용히 도적같이 행하시며,
<기다리던 메시아가 다시 오는 역사>가 진행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성자의 구름이 되어 온 자, 한 명’만 압니다.
그가 먼저 ‘성자의 다시 오심’을 조금씩 배우면서,
그가 먼저 ‘다시 오신 성자’를 깨닫고 맞았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기도하며 성자께 배웠습니다.
군중 상관없이, 옆에 아는 자가 한 명도 없어도
<그 한 사람>이 먼저 ‘성자의 재림’을 완전히 깨닫고 알았습니다.
그러다 때가 되어 <그>가 ‘시대 복음’을 전하니,
또 ‘한 명’이 알게 되었고,
그렇게 계속 ‘복음’을 전하여
<시대 인(人)구름, 청중 구름>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성경에 예언된 새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역사를 펴 나가셨습니다.
마치 ‘한 소녀’를 키워 ‘장성한 여인’으로 만들듯 하셨습니다.
그러다 여자가 크면 결혼하여 사랑의 대상으로 삼듯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30년 이상 역사를 기르시고
때가 되어 ‘신약에 예언한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구약>에서도 ‘메시아’가 온다고 예언했지요?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는 ‘구약 주관권’에서 오지 않습니다.
이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법입니다.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는 ‘신약 때’ 왔습니다.
<신약>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 신약 때> ‘예수님’을 보내시고,
<구약에서 예언한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에서 예언한 ‘다시 온다는 주’> 역시
‘신약 주관권’에서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따라 <새로운 시대, 성약 때> 옵니다.
이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것을 잊으면, ‘새 시대 신앙’이 죽습니다.
하나님을 믿던 유대 종교인들은
메시아가 와서 자기 민족을 구원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민족의 대(大)희망으로 여기고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시대 주관권’에서
메시아가 올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새 시대, 신약 주관권’에서 왔습니다.
그러나 이를 믿지 않고 부인하니
결국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지 못하고,
‘자신들의 대(大)희망’도 깨지고 말았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 주관권’에서
기다리는 메시아가 온다고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1억 년이 가도 안 옵니다.
<부모가 예언한 것>은 ‘자녀 시대 주관권’에서 이루어집니다.
이와 같이 <구약에서 예언한 것>은
‘구약’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신약’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인들’은 지금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또한 <신약에서 예언한 것>은
‘신약’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새 역사’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의 세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모릅니다.
<새 역사>로 와서 하나하나 배우고 깨달아야 알지, 모릅니다.
이것을 잊으면, ‘새 시대 신앙’이 죽습니다.
<전환> 중요 부분
◎ <핵>은 왜 ‘맨 끝’에 보이시고 행하시는지,
계속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이 부분이 ‘오늘 말씀을 깨우쳐 주는 핵’입니다.
비유로 말씀하겠습니다.
한국의 제주도에는 천연 동굴이 수백 개나 있습니다.
그중 최고 좋은 천연 동굴이 4개 있는데,
바로 만장굴, 소천굴, 황금굴, 협재굴입니다.
동굴을 구경하고 배우려고 제주도에 갔는데
첫날 ‘제일 좋은 동굴 네 개’를 구경하면,
‘나머지 수백 개의 동굴’은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비교도 안 되고,
최고 좋은 것을 봤으니 나머지는 보고픈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보통 동굴’부터 하나하나 찾아서 보면
그 동굴들도 모두 다 귀히 보게 되고,
그만큼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맨 마지막에 ‘최고 좋은 동굴’을 보면,
속 시원하게 더 뜨끔하게 깨닫고 감탄하게 됩니다.
가령, 산속에 ‘산삼’이 있다고 해서 찾으러 갔다 합시다.
1년 동안 온 산을 뒤지면서 ‘각종 약초’를 캐내고,
맨 마지막에 ‘산삼’을 캐내야 됩니다.
그래야 ‘다른 약초들’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첫날이나, 며칠 후에나, 몇 주 만에 ‘산삼’을 찾으면,
‘다른 약초들’은 캐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맨 끝>에 ‘최고 좋은 것, 핵’을 주십니다.
<처음>이나 <중간>에 ‘최고 좋은 핵’을 주면
더 이상 희망도 호기심도 없고,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고로 <처음>에는 ‘새싹같이 소생하는 것’을 보여 주시고,
<그다음>에는 ‘성장하는 것’을 보고 겪게 하시고,
<그다음 맨 끝>에 ‘결실하는 것’을 보여 주며 역사하십니다.
그제야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이 이해가 갑니까?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한 번 더 ‘핵’을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최고 핵>이니, 정말 잘 듣기 바랍니다.
섭리사 한자리에 200명이 모여 있다 합시다.
200명이 모두 저마다 ‘신앙 간증’을 합니다.
그런데 <핵이 되는 자>가 먼저 나타나서 말씀하면
청중은 그 말씀 속에서 ‘섭리사 이야기’를 다 들었으니,
다른 사람들의 간증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누가 듣겠습니까? 그래요, 안 그래요?
고로 하나님은 <핵>은 ‘맨 마지막’에 내놓으십니다.
제일 먼저 <핵>을 내놓으면, <다른 것들>이 빛을 잃게 됩니다.
먼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고
맨 마지막에 ‘핵이 되는 자의 말씀’을 들으면,
<핵>도 빛나고 <핵 주변>도 같이 빛나게 됩니다.
<해>가 뜨면, ‘달과 별’은 빛을 잃게 되지요?
초저녁에 ‘별빛’이 보이고,
그다음에 ‘달빛’이 보이고,
그 빛이 다한 후에 ‘해’가 뜹니다.
섭리사도 이와 같습니다.
<섭리사의 핵이 되는 자>가 이제 곧 나타나 직접 말씀합니다.
물론 지금도 ‘글’로 전하지만,
얼마 안 있으면 ‘직접’ 나타나서 전합니다.
고로 지금 이때 모두 골고루 알려 주고 외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핵’을 깨닫도록 해 줘야 됩니다.
나중에 ‘핵’이 나타나 전하면,
누가 ‘주변의 말’을 들으려 하겠습니까?
지금 이때 해야 ‘핵’도 빛나고 ‘자기’도 빛납니다.
섭리사 집회 때나 평소에도 봐요.
<선생의 말씀을 대언하는 몸, 선생 증거의 몸>인
조은 목사가 나타나 말씀하면,
청중이 모두 그 말씀을 듣고 돌아갑니다.
그 후에 어떤 목사가 나와서 또 외친다고,
청중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까?
이것을 진정 깨닫고 행해야 됩니다.
지금은 <핵>이 안 나타나니, <별들>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그러다 <달>이 뜨면, <별>은 빛을 잃게 됩니다.
그러니 <달>이 뜨기 전에 어서 부지런히 열심히 해야 됩니다.
이때 열심히 한 번 해 보라고
각 교회를 ‘교역자들’에게 맡기고,
최대한 주의 말씀을 외치면서 교회를 운영하며 키워 보라고 했습니다.
또 이때 열심히 한 번 해 보라고
각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 외치게 해 주었습니다.
<해>는 ‘주’를 상징합니다.
<달>은 ‘증거자’를 상징합니다.
<별>은 ‘이 시대 하늘 신부들’을 상징합니다.
그동안 조은 목사는 섭리사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핵 옆>에 바짝 붙어서 목숨 걸고 뛰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자세히 살피지 못했던 것들을 최대한 살피고 있고,
또 주의 말씀을 최대한 정리해서 역사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증거자인 <달>이 떠서 동서남북으로 뛰게 되면,
<별들>은 빛을 잃게 됩니다.
그러다 때가 되어 <해>가 뜨면, 그 빛이 너무 강해서
달과 별이 아무리 빛을 발해도 빛이 안 보입니다.
이때! <핵의 지체들>이 열을 내서 해야 됩니다.
<핵>은 ‘맨 마지막’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핵>을 쓰시고
<핵의 지체들인 섭리사 모든 자들>을 통해 역사를 펴시고 나서,
그제야 <핵>을 드러내십니다.
섭리사를 따라오다가 나간 자들은
<핵 주변사>만 보다가 나갔습니다.
결국 성자가 그 육신 쓰고 행한
<핵의 휴거 역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해야 ‘하나님이 임하여 행하시는 핵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말씀을 전할 때도 ‘핵’ 먼저 전하면,
나머지는 귀를 기울이고 생각을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핵>을 들었으니,
<나머지>는 ‘핵에 속한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이 뒤바뀌어 안 듣습니다.
그러면 <핵>을 깨달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초 없이 지은 집’과 같아서
세상 유혹과 환난과 어려움의 비바람이 불면 쓰러집니다.
<이 시대 말씀>을 다 가르친 후에
맨 마지막에 <핵>을 가르쳐야 됩니다.
순서 있게 질서 있게 가르쳐야
스스로 깨닫고 신앙이 제대로 들어갑니다.
누구든지 이렇게 가르쳐야 됩니다.
이제 <핵이 되는 자>가
“너는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냐?” 묻고 파악해 볼 것입니다.
교역자들도 강사들도 어느 누구든지
강의하기 전에 먼저 100% 전초하고,
이 시대 말씀을 차근차근 다 전해 주고,
순서 있게 질서 있게 맨 마지막에 <핵>을 증거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배울 때 문제도 해결하면서 가야 됩니다.
급하다고 막 해 버리면,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자입니다.
고로 책임을 져야 됩니다.
<핵을 조급하게 먼저 밝히는 자>는 - 마치 장사를 하는데
좋은 물건을 먼저 내놓고 파는 지혜 없는 자와 같아서
늦게 내놓은 물건이 안 팔려서 ‘적자’를 보게 됩니다.
순서 있게, 질서 있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핵>은 ‘맨 마지막’에 오는데,
먼저 와서 ‘날치기’하듯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단이며, 거짓되고 가증스러운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모두 ‘시대 심판’을 받습니다.
교역자들과 지도자들은 ‘악평자 교육’도 해 주면서,
늘 ‘이단 교육’도 해 줘야 됩니다.
그리함으로 어린 자들이 알고 분별하게 해 주고,
그들과 겨룰 때도 지지 않게 해 줘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마지막으로 <귀한 말씀>을 하나 더 해 주고, 마치겠습니다.
개인 역사도 ‘좋은 것’은 맨 마지막 끝에, 오메가 때에 합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러하고, 미래도 그러합니다.
이것을 믿고, 희망으로 끝까지 행하며 주를 따라야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어떤 것을 보여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핵>은 ‘맨 마지막’에 내놓고,
<끝>에서 과일이 익듯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한다.” 하셨습니다.
<구원자>가 ‘핵’입니다.
그가 나타나면 ‘성자의 핵’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핵>을 쓰고 ‘맨 끝’에 <핵인 휴거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핵의 휴거 역사>를 보고도,
<핵이 되는 자>와 함께하면서도
보통으로 사는 자들은 정말 미련한 자입니다.
<자기>가 ‘핵의 가치’를 상실하니
<핵>도 ‘그’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고,
<핵의 빛>을 비춰 주지 않습니다.
조은 목사는 목숨 걸고 ‘핵’을 좋아하며 가까이합니다.
그 삶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습니다.
고로 ‘핵의 빛’을 완전히 흡수하여 ‘강한 빛’을 냅니다.
그 빛으로 ‘핵의 몸’이 되어 ‘핵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증거자 달>은 ‘구원자 해의 빛’을 받아서 빛을 발합니다.
저마다 <개인의 것>도
- 먼저는 ‘작은 것’을 받고,
- 그다음에는 ‘좋고 큰 것’을 받고,
- 맨 끝 오메가 때에 ‘최고 좋은 것’을 받습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동일합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점진적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온 산을 누비며 ‘각종 약초들’을 다 캐내게 하고,
더 이상은 없다고 할 때
‘200년이나 된 허벅지만 한 산삼’을 캐내게 하십니다.
이와 같이 섭리역사 37년 동안 ‘작은 것’을 이루면서 받다가
2015년 3월 16일에 ‘최고의 휴거’를 드디어 이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제대로 몰라서 못 맞았고,
1년 동안 근신하고 준비해서
2016년 3월 16일에는 구름같이 수많은 청중들이
하나님의 궁, 자연성전에 모여 미련 없이 휴거 잔치를 했습니다.
마지막 <핵의 역사>를 봤다면
정말 가치 있게 여기고, 지키고, 그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핵의 빛’이 자기를 비춰 주어 찬란하게 빛나게 합니다.
오늘 말씀 듣고,
저마다 ‘맨 끝에 핵이 있다는 것’을 절대 믿고
끝~~까지 가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핵인 구원자의 가치>를 깨닫고,
<핵 역사인 휴거의 가치>를 상실하지 말고,
<핵의 빛>을 받아서 찬란하게 빛을 발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