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10.30 (일)
161030 주일말씀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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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30일 주일말씀>
<생각>이 온전하지 못하면,
<육>이 무용지물이다
본 문 시편 33편 11절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40편 5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시편 92편 5절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지금까지 ‘생각’에 대해서 정말 많은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생각>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생명’과 같습니다.
고로 <생각>이 온전해야 <육신>도 제대로 사용하며
가치 있게 의롭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생각>은 ‘핵’과 같아서
<생각에 대한 말씀>은 끝도 없이, 받는 대로 나옵니다.
그만큼 ‘생각의 중요성’을 알고 깨닫고,
<생각>을 온전하게 하여
<육>도 <영>도 최대한 차원 높여 변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 오늘도 ‘생각’에 대해 말씀합니다.
주제는 ‘<생각>이 온전하지 못하면 <육>이 무용지물이다.’입니다.
오늘 ‘생각’에 대해 말씀해 주고,
다음 주에 이어서 또 ‘생각’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하나님도 성령님도 <생각>에 대해 핵적으로 말씀하시기를
“<생각>이 온전하지 못하면, <육>이 무용지물이다.” 하셨습니다.
왜 <생각>이 온전하지 못하면 <육>도 무용지물일까요?
<생각>은 ‘핵, 근본, 생명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 핵이 되고, 근본이 되고, 생명의 역할을 하는 <생각>과
<육>의 관계에 대해서 몇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생각>은 ‘전기’와 같고, <육>은 ‘전깃줄’과 같습니다.
<생각>은 ‘흐르는 물’과 같고,
<육>은 ‘물이 흐르는 바닥’과 같습니다.
<생각>은 ‘엔진’과 같고, <육>은 ‘차체’와 ‘기계’와 같습니다.
<생각>은 ‘열매’와 같고, <육>은 ‘나무’와 같습니다.
<생각>은 ‘글씨’와 같고, <육>은 ‘백지’와 같습니다.
<생각>은 ‘집 안의 물건’과 같고, <육>은 ‘집’과 같습니다.
<생각>은 ‘곡식’과 같고, <육>은 ‘땅’과 같습니다.
<생각>은 ‘시침, 분침, 초침’과 같고,
<육>은 ‘시계 동체’와 같습니다.
<생각>은 ‘속’과 같고, <육>은 ‘겉’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생각>은 ‘핵, 근본, 생명 역할’을 하니,
<생각>을 잘하고 늘 <자기 생각>을 귀히 관리해야 됩니다. <끝>
사람은 ‘생각 값’입니다.
<생각>이 온전한지 보고, ‘사람의 가치’를 매깁니다.
(*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생각>을 통해 <육>이 행하고,
<육의 행위>를 통해 <영>이 변화되어
영원한 존재가 되느냐, 못 되느냐가 좌우됩니다.
이와 같이 <생각>이 ‘영 변화의 핵, 근본, 생명 역할’을 하니,
<생각>을 ‘삼위와 주와 일체’시켜 생각을 잘하고,
<자기 생각>을 잘 관리하고 다스려야 됩니다! <끝>
<생각>이 ‘지옥 가는 데도 핵’이 되고,
<생각>이 ‘천국 가는 데도 핵’이 됩니다.
<생각>에서 얻기도 하고, 못 얻기도 합니다.
<생각>대로 <육>이 행하고 <영>이 변화되는
‘생각 실상의 세계’입니다.
<생각>에 따라서 ‘꿈과 영계의 자기 혼의 행함’도 좌우됩니다.
<생각>이 흐리멍덩하면, <육의 행실>도 흐리멍덩합니다.
고로 <생각>을 선하게 하고 아주 잘해야 됩니다.
절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일체 된 생각’을 하고,
<육>이 ‘생각의 실체’가 되어 행하며 살아야 됩니다.
<자기 육>은 ‘자기 생각’을 닮아서 그 생각대로 행합니다.
사랑하는 대상보다, 부부보다 성격이 더 닮아서 삽니다.
<육신>은 ‘생각 실상체’입니다.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 ‘생각의 목적과 소원’이니,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의 생각’을 가지고 따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생각>이 ‘주의 생각’이 되고,
<자기 육신>도 ‘주의 생각’을 닮아서 그 생각대로 행하게 되고,
<주의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 ‘생각의 목적과 소원’이 됩니다.
<전능하신 삼위의 생각과 주의 생각>을 ‘한 번 실천하는 것’이,
<자기 생각>을 ‘만 번 실천하는 것’보다 그 ‘의’가 더 큽니다.
<주를 떠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각을 떠난 생각>은
하나님은 ‘사망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대하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항상 자기 앞에 ‘두 가지 생각’이 옵니다.
하나는 <해야 될 것>이고, 하나는 <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생각을 주와 일체시키고, 선하게 하고, 지혜롭게 판단하여
<해야 될 것>은 꼭 하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은 꼭 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데 인생들을 보면, 생각이 짧습니다.
생각이 짧다는 것은
어떤 일이 닥치면 최대한도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한 가지만 보고 짧게 생각하고 빨리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큰일도 짧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해 버립니다.
그러다 일을 그르치고,
<해야 될 것>은 못 하고 <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필요 없이 하여
하는 일이 안 되고 실패하게 됩니다.
더 영적으로 볼 때 생각이 짧다는 것은
<전체>를 보시는 ‘하나님의 생각’과 같지 못하고,
지능이 낮게 <부분>만 보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최대한도까지 하고 판단하면,‘충분한 답’이 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같게 만들고 판단하면, ‘온전한 답’이 옵니다.
생각을 짧게 하고 하면,
<일>도 제대로 안 되고, <작품>도 제대로 안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하시기를
“생각의 차원을 높여라!
배우고 기도하고, 영적인 지혜자의 말을 듣고
주와 일체 된 생각으로 만들어라.” 하셨습니다.
<생각>은 ‘집 크기, 정원의 크기’와 같습니다.
고로 ‘집이 작다. 정원이 작다.’라는 말은
‘생각이 짧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집이나 정원이 작으면 ‘불편’하지요?
정원도 5평짜리가 있고, 10평, 20평, 50평, 100평짜리가 있고,
1000평, 3000평, 5000평, 만 평짜리도 있습니다.
집도 10평짜리부터 20평, 30평, 50평, 100평, 200평 등
다양한 크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2000평까지 크게 집을 짓고 삽니다.
<생각>이 ‘집과 정원의 크기’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작게, 혹은 크게 생각하고 삽니다.
<생각>이 작을수록 그만큼
<삶>도 살기 불편하고 <신앙>도 하기 불편합니다.
<생각>은 ‘그릇’과 같습니다.
또한 ‘자기 생활 공간’과 같습니다.
<그릇>이 작으면, 많이 못 담고,
<자기 생활 공간>이 작으면, 그만큼 불편하게 삽니다.
<생각>도 이와 같습니다.
여자들을 보면 <생각>이 옹졸하고, 좁고, 감정적이고,
시기와 질투를 잘하고, 섭섭함과 서운함을 잘 타는 자들이 많습니다.
<생각>이 마치 ‘도시의 좁은 골목길’ 같고,
‘시골 토담집들의 좁은 골목길’ 같고,
‘암벽과 절벽에 난 손바닥만 한 길’ 같습니다.
저마다 모두 생각해 보세요.
꿈에 <자기 생각>을 혼으로 보여 달라고 하고 보세요.
<자기 행위의 집>도 보여 달라고 하고 보세요.
어느 정도인지 보기 바랍니다.
좁으면, <성자가 타고 있는 황금 마차>가
그 ‘생각의 길’로는 못 들어가고 <엿장수>나 그 길을 왕래합니다.
꿈에 ‘혼’으로 못 보는 자들은
생시에 ‘자기 육의 활동’을 보면,
자기가 <생각>을 어떻게 하고 사는지 알게 됩니다.
<생각>이 좁고 <행함>이 작으면 ‘큰일’을 못 합니다.
<큰 길>이 아니라서 평생 ‘큰 차’가 왕래를 못 합니다.
모두 <생각>을 ‘월명동’같이 만들어야 됩니다!
늘 ‘월명동’같이 만들라고 해도
‘왜 월명동같이만 만들라고 하지?
왜 서울같이, 도시같이 만들라고 하지 않지?’ 생각합니다.
확실히 깨달아야 그와 같이 만듭니다.
◎ 왜 ‘월명동’같이 만들라고 했는지, 확실히 가르쳐 줄까요?
확실히 가르쳐 줄 테니, 이제는 정말 확실히 알고 깨닫고
<자기 생각>도, <행실>도 ‘월명동’같이 만들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월명동은 처음에 보잘것없는 골짜기였습니다.
잡초와 엉겅퀴가 무성했고, 농토까지 풀밭으로 덮여 있었고,
산에는 나무도 별로 없었고, 샘이 있어도 그나마 흙탕물이었습니다.
그런 곳인데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 있었기에
<1000년 성약역사 기간 동안 귀히 쓰는 성전>으로 만들고,
세계의 택한 자들이 몰려들게 한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과 성령님은 늘 좌정하시고, 주도 늘 역사합니다.
월명동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보물’도 수백 가지가 있습니다.
모르면, ‘그동안 가르친 것들’을 생각하면 됩니다.
<생각>도 <행실>도 <인생>도 <신앙>도
‘월명동’같이 이렇게 개발하라는 말입니다!
지금이 ‘자기를 만들 황금기’인데,
머뭇거리다가 <때>라는 해가 넘어가 버립니다.
어서 서두르고 재촉하여 ‘월명동’같이 만들기 바랍니다! <끝>
◎ 이제 왜 <생각>을 ‘월명동’같이 만들라고 했는지
확실히 알았습니까?
아무리 섭리사 각 교회가 커지고 멋진 성전을 사도
그 성전은 1000년 동안 가지 않습니다.
1000년 동안 갈 성전이 어디입니까? ‘월명동’입니다.
또한 그곳에 앞으로 수억 명이 몰려옵니다.
고로 <자기 생각>을 ‘월명동’같이 만들라는 것입니다.
또한 ‘시대 구원자’같이 만들기 바랍니다.
<구원받을 자와 구원자의 차이>는 ‘땅과 하늘 차이’입니다.
<주>를 따라 그와 같이 만들어야 ‘하늘’같이 솟아오릅니다.
<월명동>은 ‘세계 최고의 신화의 땅’입니다.
<자기 생각>도 이와 같이 만들라는 것입니다.
월명동에 가면 구경만 하지 말고,
‘나도 이와 같이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해야
<마음과 생각>이 그렇게 됩니다.
아직도 곤고해하고, 적적해하고, 외로워하고,
마음이 좁고 쩨쩨하고,
가시 같은 마음과 생각이 아직도 남아 있고,
주가 잘 대해 줘도 뒤에서는 불평이나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모두 만들어지지 않고 개발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주는 이미 다 알고 ‘그에게 주는 복’을
<생각을 고치고 온전히 행하는 자>에게 줬는데도
모르고 계속 그 마음, 그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차원을 높이지 못하고 ‘그 위치’입니다.
회개하고 온전히 할 때까지 ‘그 복의 물줄기’는
<온전히 하는 다른 자>에게 흘러갑니다.
하나님은 <땅>에 ‘자신의 상징적인 보좌’를 두시고,
그곳에 ‘실체 하나님을 상징하는 작품들’을 두셨습니다.
곧 ‘월명동’이며,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작품들’입니다.
이것도 모르면, 아직도 ‘그 면을 개발하지 않은 자’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어느 날 ‘하나님이 월명동에 주신 것들’을 두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곳은 거룩한 곳이다. ‘네 발의 신’을 벗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네 생각’을 벗고 보아라.” 하심입니다.
내가 ‘자연성전’과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정말 귀히 보고 좋아하니,
하나님은 ‘근본의 귀한 것 70여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하나 조금씩 밝힐 것입니다.
앞으로 ‘월명동 자연성전에 대한 문제’를 내 주겠습니다.
그래야 자꾸 알려고 하고,
안 만큼 자기도 그와 같이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월명동에 대한 문제’를 내면, 맞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를 그같이 만들어 놓으면, 맞힐 것입니다.
안 만든 만큼 못 맞히고, 만든 만큼 맞힙니다.
<월명동>은 지리적으로 ‘끝과 끝이 만난 지점’입니다.
고로 <구원역사의 마지막 끝>에 ‘시작’되었고,
<섭리역사 절정기 끝>에 ‘휴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월명동>은 마치 ‘오른손 끝과 왼손 끝이 만난 지점’과 같습니다.
또한 마치 ‘머리끝과 발끝이 만난 지점’과 같습니다.
곧 ‘처음과 나중이 만난 곳’입니다.
하나님은 <월명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월명동은 ‘일요일 같은 지역’이니라.
▸ 월명동은 ‘휴거 같은 곳’이니라.
▸ <에덴동산>은 ‘처음 지(地)’라면,
<월명동>은 ‘나중 지(地)’니라.
▸ <에덴동산>은 ‘아기’라면,
<월명동>은 ‘다 큰 처녀 총각’이니라.
▸ <나 여호와가 끝 날에 행한다고 한 곳>이 ‘월명동’이니라.
▸ <그 날에 모두 드러낸다고 한 곳>이 ‘월명동’이니라.
▸ <월명동>은 ‘1000년사의 시작과 끝’이니라.
자기가 살면서도 ‘그 땅에 대해서 모르는 자’는 <소경>입니다.
소경은 계속 더듬거리며 살아야 됩니다.
모두 배우고 눈을 뜨고 깨닫고,
<자기 생각>도 그와 같이 온전히 만들어 <자기 육>도 귀히 쓰이고,
그 행실에 따라 <영>도 귀히 만들어 영원히 귀히 살기를 축원합니다!
<전환>
◎ 이제 방향을 돌려 ‘세 가지’를 짧게 말씀해 주겠습니다.
◎ 첫 번째,
오늘 말씀을 다 쓰고, 다음 잠언을 받았습니다.
→ 웃기는 말을 했어도 ‘모르고 하는 말’이면,
웃고 났어도 기분이 안 좋다.
◎ 왜 이런 잠언을 받았는지, 짧게 설명해 주겠습니다.
한 제자에게 어떤 일을 맡겼는데,
그 제자가 내게 보고를 제대로 못 했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고 나름대로 구상하면서,
그 제자와 각종 의논을 했습니다.
그 후에 알고 보니, 4년 동안
그 존재물에 대해 ‘거꾸로, 반대로’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을 알고 하나님께 “정말 웃기네요!” 하고 말하니,
하나님은
“너는 깨닫고 웃었지만, 나는 답답했다.
웃음이 안 나오고 기분이 나빴다.
그것도 4년이나 그리 봤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냐.” 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뜻도, 성경도,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하늘이 보낸 자도, 하나님이 주신 것도
모두 ‘거꾸로’ 보여도 ‘바로’ 봐야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수요일>에 자세히 말씀해 주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 두 번째,
그리고 한 잠언을 받았습니다.
→ 모르면, 부딪힌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도 모르면, 서로 부딪힌다.
그리고 다음 잠언을 또 받았습니다.
→ <상대의 모순>을 고쳐 주려다가 오히려 <신앙>을 죽이게 된다.
선생의 방에 ‘여치’를 기르고 있는데,
방에 ‘모기’가 들어와서 살충제를 뿌렸습니다.
모기는 즉시 죽었지만,
그쪽에 숨어 있었던 ‘여치’가 같이 살충제를 맞고
시름거리다가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순>과 <사탄>을 잡으려다가
<신앙>까지 잡게 되기도 합니다.
<자기 모순>도 고치고, <사탄의 역사>도 잡아내야 됩니다!
모기를 ‘손’으로 잡으면 <모기>만 죽고 <여치>는 삽니다.
이와 같이 깨닫고 잘 판단하여
<모순>은 고쳐 주고 <사탄>만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모순>만 고쳐 주고,
<다른 것들>은 꼭 칭찬해 주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마지막 세 번째,
<하나님의 행하심>은 너무 깊어서 인간이 봐도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수백 가지’입니다.
◎ 그중의 ‘한 가지’만 짧게 말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곤충들>은 벽을 잘 기어 올라갑니다.
너무 신기해서 방바닥에 백지를 세워 놓고
백지를 기어 올라가나 보니, 참 잘도 기어 올라갔습니다.
‘기술인가? 가벼워서인가?’ 생각하며, 섬세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발바닥 검사를 해 보니 껄끄럽고, 솜털도 있고,
여자들 하이힐같이 뾰족하게 바늘 같은 것이 솟아 있었습니다.
마치 ‘징이 박힌 신발’로 ‘빙산’을 찍어 올라가듯,
그 발로 찍어서 기어 올라갔습니다.
기술도 아니었고, 가벼워서도 아니었습니다.
창조주가 아예 계획적으로
그렇게 섬세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산>도 화산이 폭발하여 솟아올랐다 내려갔다 한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하나하나 손을 대어 ‘산 준령’을 만드신 것입니다. <끝>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조각가들이 쇳덩이나 동을 녹여서
하나하나 손을 대어 주물을 떠서 ‘형상’을 만들듯이,
나 여호와도 지구 창조 당시 지구가 녹아 있을 때
하나하나 손을 대어 ‘산 준령’을 만들고,
산마다 작은 것까지 ‘거기에 맞는 모양과 형상’을 만들었다.”
하셨습니다.
화산이 폭발한 대로 그냥 놔두면
산마다 그 모양이 그 모양이고,
모두 비슷한 형상이라서 볼 것이 없고,
아름답지도 신비하지도 않습니다.
월명동 작품도 손이 안 간 곳 하나 없이 만들었듯이,
이 세상 만물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연을 기구로 삼고
하나하나 손을 대어 창조하셨습니다.
2016년 10월 섭리사 달력에 나온 <월명동 산 준령>을 자세히 보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깨닫기 바랍니다.
바로 이 사진이지요? 잠깐 그 사진을 보여 주겠습니다. <영상5>
지금 이 순간에 다 깨닫지 못하니,
예배 후에 각자 자세히 보고 깨닫기 바랍니다. <끝>
<마무리>
<생각>이 온전하지 못하면, <육>도 무용지물이다.
<생각>은 ‘핵, 근본, 생명 역할’을 하니,
<생각>을 잘하고 늘 <자기 생각>을 귀히 관리해라.
<생각>이 좁고 <행함>이 작으면 ‘큰일’을 못 한다.
<큰 길>이 아니라서 평생 ‘큰 차’가 왕래를 못 한다.
모두 <생각>을 ‘월명동 자연성전’같이 만들어라!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