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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6.11.13 (일)

161113 주일말씀(자기 취향)

선포일
2016.11.13 (일)
성경 본문
마태복음 25장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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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3일 주일말씀> 자기 취향 본 문 마태복음 25장 14-15절 『(천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자기 취향’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이 세상부터 신의 세계까지 ‘자기 취향’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자기만족’을 누립니다.  <취향>은 각자 개성대로 다르고, 체질대로 다르고, 존재하는 대로 다릅니다.  남자 취향과 여자 취향이 다릅니다.  또한 ‘생긴 대로, 생각대로’ 취향이 다릅니다.  인생은 <자기 취향>대로 살아가고, <자기 취향>대로 먹고 입고 즐기고, <자기 취향에 맞는 자>와 이야기하며, 그를 사랑하고, 그로 인해 만족해하고, 소원을 성취하며 삽니다.  <자기 취향>대로 해야 만족하고 기쁘고 희망을 이룹니다. <자기 취향>대로 해야 뇌가 흥분되고 희열을 느끼고 좋아합니다.  <취향>은 ‘자기 체질, 자기 생각’대로 됩니다. <자기 취향>대로 옷을 사고, 음식을 먹고, 환경을 만들어서 살지요? 모두 ‘자기 체질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뇌 차원대로’ <취향>이 결정되어 그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 자기가 성장하면 - ‘어릴 때의 취향’은 버리기도 하고, 그보다 ‘더 나은 것’을 취향으로 삼기도 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하나님은 인간에게 ‘개성과 취향대로 하는 자유 의지’를 주시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자기 개성, 취향’대로 살아가야 -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골고루 쓰게 되고, -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개성대로 다양하게 커서 - 하나님이 인생들을 골고루 귀하게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도 만족하십니다.  가령 <월명동>을 ‘자기 취향’대로 자유롭게 놀고 쓰라고 하지 않았다면, 모두 ‘하나님이 지정하신 곳’에서만 놀고 써야 합니다. 그러나 ‘취향’대로 자유롭게 놀고 쓰게 하셨기에 - 어떤 사람은 <야심작>에서 놀고 즐기며 사연을 이야기하고, - 어떤 사람은 <잔디밭>에서 놀면서 사연을 이야기하고, - 어떤 사람은 <잔디성전 앞 폭포수>에서 수영하며 만족하고, - 어떤 사람은 <운동장>에서 운동하면서 놀고 즐기고, - 어떤 사람은 <청기와집 정원 감나무 밑>에서 놀고 즐기고, - 어떤 사람은 <호수>에서 물놀이하며 정자와 대(大)폭포수에서 놀고, - 어떤 사람은 <산책로와 등산로>를 종일 다니면서 즐기며 만족하고, - 어떤 사람은 <큰 소나무 있는 곳>을 종일 다니면서 사연을 듣고 보고 즐기며 만족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 취향’대로 자기 자유 의지에 따라서 보고 듣고 즐기고 만족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구상하시고 만드신 것들>을 사랑하는 자들이 골고루 사용하며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시장에 ‘스무 가지 물건’을 내놨는데, 그것이 다 팔린 격과 같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 하나님이 ‘자기 취향대로 사는 자유 의지’를 주셨기에 사랑하는 자도, 음식도, 환경도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취해서 살아갑니다.  <취향>은 ‘자기 체질’대로 생깁니다.  술을 안 먹는 사람들은 ‘술 취향’을 극적으로 반대하지만, 술꾼들은 ‘술 취향’을 그리도 좋아하며 만족해합니다.  집도 환경도 ‘자기 취향’대로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파트’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땅에 지은 집’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도시에 사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조용한 시골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큰 집’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작고 아담한 집’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저층’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고층’을 좋아합니다. 이는 전적으로 ‘자기 취향, 자기 자유 의지, 자기 선택’입니다.  사랑하는 상대도 ‘자기 취향’대로 찾아서 만납니다. 어떤 사람은 키 큰 사람을 선호하고, 어떤 사람은 키 작은 사람을 선호하고, 어떤 사람은 통통한 사람을 선호하고, 어떤 사람은 마른 사람을 선호하고, 어떤 사람은 꼼꼼한 성격을 선호하고, 어떤 사람은 털털한 성격을 선호하고, 어떤 사람은 자유분방한 성격을 선호하고, 어떤 사람은 얼굴보다 몸매를 보고, 어떤 사람은 무조건 얼굴을 보고, 어떤 사람은 학력은 안 보고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을 찾고,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운 사람을 찾고, 어떤 사람은 사업을 잘하는 사람을 찾고, 어떤 사람은 순수하고 착한 사람을 찾고, 어떤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찾고,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사랑을 쏟고 변함없을 사람을 찾고, 어떤 사람은 자녀를 잘 낳고 잘 키울 사람을 찾습니다. 각자 <자기 취향>대로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는 것을 그리도 좋아합니다. 이는 전적으로 ‘자기 취향, 자기 자유 의지, 자기 선택’입니다.  음식도 ‘자기 취향’대로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양이 많은 음식을 좋아하며 먹고, 어떤 사람은 영양보다는 맛만 있으면 좋아하고 만족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그러나 인생들은 ‘하나님의 뜻 안의 취향’이 아닌, 육성으로 흐른 ‘자기 취향’대로 삽니다. 고로 ‘불의한 취향’으로 흐르는 자들도 있습니다.  불의해도 ‘자기 취향’, 의로워도 ‘자기 취향’입니다. 각자 <자기 취향>대로 행하되, <그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지고, <선을 벗어난 것>은 ‘그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됩니다.  선생도 여기서 같이 운동하는 조가 있습니다. 조끼리 같이 운동하다가도 자기가 싫으면 다른 조로 갑니다. 자기에게 맞춰서 이야기할 상대가 없으면, 꼭 조를 바꿉니다. 선생은 ‘하나님 이야기’를 합니다. 이 이야기가 싫으니, <자기 취향>대로 ‘세상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갑니다. 나는 100년이 가도 그런 사람들과는 안 통합니다. 내가 그리도 ‘하나님 이야기’를 해도 안 받아들이니, 선생도 싫어서 결국 이야기를 안 했습니다.  각자 ‘자기 취향’대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에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취향에 따른 자기 행위’는 결국 <자기>가 선악 간에 다 받게 됩니다. <취향>도 ‘자기 선택’이며, <그에 따른 책임>도 ‘자기’가 받는 것입니다.  그러나 <자기 취향>대로 살다 보면, 보장이 없습니다. <자기 취향>은 불안정합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요? <생각>과 <실체>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 취향>으로 ‘사랑의 상대’를 선택했더라도 <생각>과 <실체>는 다를 때가 많습니다. <눈>과 <생각>으로는 만족하여 그 사람을 선택하고 사랑하지만 <실체>는 ‘맛없는 음식’ 같아서 후회하고, 결국 서로 싫어하여 헤어지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찾습니다. 역시 만족이 없어서 또 헤어집니다.  음식도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먹어 보는 것’이 다르듯, 사람도 ‘겉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살아 보는 것’이 다릅니다. 같이 몸을 부대끼며 살아 보면, 자기 취향에 안 맞는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 <자기 취향>은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 대하고 살아 보는 것’이 다릅니다. 또한 <자기 취향>은 ‘동쪽’에서 보는 것과 ‘서쪽’에서 보는 것이 다릅니다. 고로 불안정하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 <인간>은 ‘자기 체질과 생각의 차원’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취향>으로 삼고 만족합니다. 고로 처음에는 좋아하다가도 시간이 갈수록 싫어하여 버리게 됩니다. 인생 마음은 변화무쌍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혹은 수백 번씩 마음이 잘 변합니다. 고로 자기도 <자기>를 믿을 수가 없고, <자기 생각>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불안정합니다. 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일체 된 취향>만이 믿을 수 있고, 후회하지 않고, 육신 일생 동안 취향 만족이고, 영 영원까지 취향 만족입니다. 또한 갈수록 이상세계를 이루고, 차원을 높일수록 더 좋은 취향을 선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만족하게 됩니다.  어떤 사람은 <자기 현실>은 맞춰서 살 수 있는데, <자기 앞날>이 자신 없다며 하나님과 주께 맡깁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주는 가르쳐 주시고, 그 육과 영까지 인도해 주십니다.  <인간의 취향>은 ‘한계’가 있습니다. 고로 <만족>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고로 그만큼 충분히 만족하고 기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전능자 신>만이 전능하시니 ‘인간의 취향과 만족’을 채워 주시고, 그것이 ‘영원’까지 지속됩니다. 또한 <주>는 하나님과 일체 되어서 그 능력을 받아 대해 주니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인간의 취향과 만족’을 채워 주며, 역시 그것이 ‘영원’까지 지속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취향>은 ‘자기 생각의 차원’대로 결정됩니다. 그대로 두면, 불안하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고로 ‘하나님과 주’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 비유로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요. (설교자는 이야기해 주듯 엄마와 아이의 대화를 잘 살리고, 이 부분은 대화체로 이야기해 주기다.) 어린아이 두 명이 있습니다. 한 명은 ‘큰 애’이고, 한 명은 ‘작은 애’입니다. 둘은 엄마랑 같이 시장에 갔습니다. 엄마가 뭐 사고 싶으냐고 하니, 각자 ‘자기 생각의 차원’대로 골랐습니다. 작은 애는 ‘장난감 차’를 산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그건 안 돼.” 하니,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큰 애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나도 장난감 차를 사고 싶은데, 이것을 사서 쓰다 보면 얼마 안 가서 싫증 날 것 같아. 엄마 생각에는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 것 같아?” 했습니다. 엄마는 “너는 장난감 차 말고, 종이와 물감을 사자. 너는 그림을 좋아하니까, 엄마랑 매일 그림 한 장씩 그리자.” 했습니다. 큰 애는 생각도 안 한 것이었습니다. 1%도 종이와 물감을 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엄마에게 맡기고, 종이와 물감을 사 왔습니다. 동생은 장난감 차를 샀는데, 집에 와서 가지고 놀면서 좋아하며 만족해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는 종이와 물감을 사 왔으니, 전혀 기쁨도 만족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엄마와 같이 그림을 그리니 좋았습니다. 엄마 얼굴도 그리고, 자기 얼굴도 그렸습니다. 그런데 잘 안 그려지니 화도 나고 별로였습니다. 엄마는 “잘 안 돼도 엄마는 너무 좋아. 내가 맛있는 것 해 줄게. 뭐 먹고 싶어? 말해 봐.” 했습니다. “아이스크림...” 하니, 엄마는 즉시 냉장고에 있는 것을 꺼내 주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엄마가 사 준 종이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니 좋았고, 또 엄마가 좋아하고, 맛있는 것을 같이 먹으니 기쁘고 만족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엄마! 정말 좋아! 내가 그림 또 그릴게. 이번에는 입이 찢어지게 좋아하는 모습을 그려 볼게.” 했습니다. 이를 보고 엄마는 좋아했습니다. 그러고는 “너 또 좋아하는 거 뭐야?” 하고 물었습니다. 큰 애는 “같이 춤춰요!” 했습니다. 엄마와 같이 춤을 추니 더 기쁘고 만족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도 ‘미술 취미 활동’을 했고, <집에서는 자기 취미>로 계속 ‘그림’을 그렸습니다. 결국 이 아이는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취미 활동’도 계속 즐겁게 했습니다. 엄마가 꿈을 넣어 주었고, 꿈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과 주께 맡기면, <그 취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과 일체 되게 됩니다. 모두 하나님과 성령과 주께 맡겨야 <하늘 취향>도 심어 주고, <개인 취향>도 키워 주고 그로 인해 ‘소원’을 이루게 해 주십니다.  섭리사에서 주가 기르고 키운 부흥강사를 봐요. <현재 취향>이 ‘어릴 때의 취향’과 다릅니다.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주를 좋아하며 따라 하다가 점점 성장하여 결국 자기도 <주의 취향, 하나님의 취향>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일하면 삼위일체가 뜨겁게 역사하시고, 주가 함께하며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 선생도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취향’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나의 대(大)희망’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내 고향 월명동에다 별장을 짓고, 거기에 사과나무, 포도나무, 복숭아나무, 배나무, 자두나무 등 각종 나무를 심어서 계절마다 따 먹고, 또 돼지, 소, 닭 등 각종 동물들을 키워서 때가 되면 잡아먹고, 정원을 크게 만들어서 사람들이 와서 놀게 하고, 그들도 같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서 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내 취향>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취향>과 비슷했습니다. 선생이 점점 하나님과 성자께 배우고 성장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의 취향>을 실현했습니다. 전 세계에 ‘이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구원하고, 그들이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사랑의 대상이 되게 하고, 월명동을 ‘하나님의 구상에 따른 자연성전’으로 만들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삼위 앞에 경배하고 사랑으로 영광 돌리게 해 줬습니다. <하나님의 취향 안>에 ‘내 취향의 기본’이 들어 있으니, 월명동을 볼 때마다 그리도 좋습니다.  <자기 취향>은 <실제 겪어 보고 살아 보면> 다릅니다. 잘 안 맞고 차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취향>은 실제로 겪고 살아 보면 더 이상적입니다. 그로 인해 육도 혼도 영도 다 만족하게 됩니다. 역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취향’이 최고입니다! 처음에는 잘 맞아도 - 가다가 변질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끝까지 <삼위의 취향>대로 살기입니다. 또 처음에는 잘 안 맞아도 - 가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생각대로 체질이 되면, <삼위의 취향>이 자기와 딱 맞게 됩니다!  <취향>은 전적으로 ‘자기 자유 의지, 자기 선택’입니다. 집도 환경도 ‘자기 취향’대로 찾아서 살고, 음식도 ‘자기 취향’대로 찾아서 먹고, 사랑하는 자도 ‘자기 취향’대로 찾아서 살고, 가치관도 ‘자기 취향’대로 정하고 삽니다. 그러다 열심을 내고 부지런하게 살면 <생각>이 ‘고차원’으로 변화되고, 그에 따라 <취향>도 바뀌게 됩니다.  신앙도 그러합니다. 처음에는 ‘자기 수준’대로 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더 열심을 내고 부지런하게 행하면 <생각의 차원>도 높아지고, 그에 따라 <취향>도 더 차원 높게 바뀝니다. 성령 취향, 말씀 취향, 계시 취향, 대화 취향, 사랑 취향, 관리 취향, 전도 취향, 강의 취향, 집회 취향, 목회 취향, 부서 취향 등 ‘자기 실력 위주’로 취향이 바뀝니다.  하루를 봐도 기도를 깊이 하고 깨닫고, 주와 생각이 일체 되어 사는 날은 ‘취향과 만족도’가 다릅니다.  <취향>만 맞으면 - ‘만족’이 없어서 못 삽니다. <취향>이 안 맞아도 - ‘고치면서’ 살기도 합니다.  <섭리사>가 ‘자기 취향’과 안 맞는다고 따르다가 나간 자들이 있습니다. 왜 ‘자기 취향’과 안 맞겠습니까? <자기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역사가 좋고 말씀이 좋아도 자기는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 <주>와는 ‘취향’이 맞으나 안 맞으나 일체 되어 맞추면서 살아야 ‘영원한 것’이 보장되고, 주의 것이 자기 것이 되고, 삼위의 것도 자기 것이 되어 쓰면서 삽니다.  <주>와 ‘취향’이 안 맞는 것은 아직 <자기>가 ‘그 차원’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고 부지런히 배우고 행하면서 어서 ‘주가 있는 차원’에 오르기 바랍니다. 그 차원까지 올라야 삼위도 주도 ‘그 차원의 것’을 보여 주고, 자기도 ‘그 차원의 것’을 받고 만족하며 살게 됩니다. 자기가 행하는 대로 <취향과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이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조금 더 말씀하고,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뜻을 떠난 취향>은 ‘타락의 취향’입니다. 그것은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만들면, 그 취향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사랑의 취향으로 바뀌게 됩니다.  인생이 <영>을 살리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려면, 각자 ‘신의 정신’을 가지고 ‘제2의 하나님’이 되어 <자기 취향>도 바로 하고 <자신>도 바로 만들어야 됩니다.  음식이 맛이 없으면 먹다가 수저가 저절로 놔지고 딴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다른 음식을 시켜 먹기도 합니다. 그 후부터는 다시는 그 음식을 안 먹습니다. 음료수도 향긋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샀는데, 맛이 텁텁하면 입에 대고 안 먹습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텁텁하고 미지근하고 개성의 미가 없으면, 땅의 신부로도, 하늘의 신부로도 어렵습니다.  하나님도 성령님도 ‘취향의 자유 의지’가 있으십니다. 고로 만민을 골고루 다 잘 대해 주되 <전능자의 취향에 만족한 자>를 찾아서 ‘사명’을 주시고, 그를 <자신의 몸>으로 삼아서 ‘뜻’을 펴 나가십니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취향대로 사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래야 창조 목적대로 사랑의 역사를 이루고 만족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자기를 만들어야 됩니다.  처음에는 ‘하나님의 취향’에 맞게 살다가, 점점 자기가 좋은 대로 자기 취향으로 뒤바뀌는 자들이 많습니다. 처음 마음, 처음 사랑이 식어서 변질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싫어하고, 스스로 하나님과 주를 떠나게 됩니다.  <천국>은 끝까지 삼위와 주의 취향에 맞추어 자기를 만들어야 갑니다. <휴거>도 끝까지 절대 삼위와 주의 취향대로 자기를 만들고, 삼위의 사랑의 상대체가 돼야 이룹니다. 자기를 자꾸 ‘삼위와 주의 취향’대로 고치고 만들어야 됩니다.  <월명동 자연성전>도 ‘하나님의 구상과 취향’대로 만들었습니다. 고로 그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함께하시고 돕고 역사하셨고, 그만큼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성전이 되었고, 그 안에 ‘하나님의 백보좌 형상’ 등 엄청나게 많은 비밀이 숨겨진 형상들이 나오게 됐습니다. 이제 일생 동안 가치 있게 사용하면 됩니다.  여러분도 그와 같이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취향으로 만드는 것>은 그만큼 수고와 노력과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삼위일체가 돕고 함께하시고, 그만큼 최고의 가치가 있는 영과 육으로 만들어지고,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 그 가치는 ‘영원한 가치’가 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를 온전히 만든 후의 취향>만이 자기 육의 일생도, 혼도, 영도 만족하게 해 줍니다.  <선생>도 ‘하나님의 취향’대로 해 달라고 맡기니, 하나님이 나를 딱 붙잡고 키우셨습니다. 그 터전 위에 선생도 지금까지 변함없이 오직 ‘하나님의 취향’대로 나를 만들었고, 결국 ‘만든 몸’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이 시대 구원과 휴거>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일체 되면, 삼위와 주와 ‘같은 체질, 같은 취향’이 되어 같이 뜻을 이루고, 같이 살면서 같이 기뻐하고 누리게 됩니다. 영원까지 그러합니다.  누가 하나님의 취향, 주의 취향 100%입니까? 하나님도 주도 그런 자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만족하시며, 그를 통해 뜻을 이루시고,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사랑으로 대해 주시며 축복하십니다.  <하나님의 취향>은 무한합니다. 고로 더 늙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어서 ‘하나님의 취향’대로 자기를 한없이 만들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시간 그 누구보다 귀히 쓰여지고, 삼위와 주와 함께 기뻐하고 누리며 잔치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