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6.11.16 (수)
161116 수요말씀(하나님이 축복해 주셔도 마음, 생각, 행실, 여건, 조건, 환경을 갖춘 자가 받는다) 수정본
- 선포일
- 2016.11.16 (수)
- 성경 본문
- 고린도전서 12장 27
첨부 파일
- PDF
161116-수요말씀(하나님이_축복해_주셔도_마음,_생각,_행실,_여건,_조건,_환경을_갖춘_자가_받는다)-수정본.pdf
155.7 KB
<2016년 11월 16일 수요말씀>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도
‘마음과 생각과 행위’를 갖추고
‘여건과 조건과 환경’을 갖춘 자가 받게 된다
본 문 고린도전서 12장 27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자기 취향, 하나님의 취향’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 오늘은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도 <마음과 생각과 행위>를 갖추고,
<여건과 조건과 환경>을 갖춘 자가 받게 된다.’
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 <잠언>으로 하나씩 말씀합니다.
◎ <잠언>에는 ‘상상도 못 할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11월부터 나간 <수요말씀 잠언>은 정말 귀합니다.
새벽 잠언도 잘 들어야 됩니다.
<최고 지혜와 지식의 교육>입니다. 정말 귀히 여기기 바랍니다.
읽고 깨달으면, <명철과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됩니다.
<말씀 시작>
모든 것을 줘도 ‘여건을 갖춘 자’가 복 있는 자다.
가령 아파트에 사는 자에게 50톤, 100톤의 큰 형상석을 준다 하자.
그 돌을 놓을 ‘여건’이 안 되는데, 받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도
<여건, 조건, 환경, 마음, 생각>이 안 되어 있으면,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여건과 조건을 갖춘 자>가 ‘복 있는 자’다.
어떤 사람은 시골이나, 도시를 벗어난 한적한 곳에 있는 별장을
아주 헐하게 사라고 해도 왜 저런 곳에 있는 별장을 사냐며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곳만 찾아다니면서 비싸도 좋아서 사려고 한다.
<자기 마음과 생각>에 따라서,
<자기 여건과 조건>에 따라서 달라진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보낸 자를 믿는 것도 그러하다.
<자기 마음과 생각>, <자기 여건과 조건>에 따라서
믿든지 안 믿든지 한다.
아파트에 살든지 단독 주택에 살든지
<여건과 조건과 환경>이 안 되어 있으면,
큰 소나무를 주고, 큰 바위를 주고, 아름다운 돌을 줘도
갖다 놓을 수 없으니 싫어하여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도 그러하다.
저마다 <여건과 조건, 마음과 생각, 행위>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줘도 받지 못하고, 받으려는 마음도 없고, 주는 자도 줄 수 없다.
<마음과 생각과 행위를 갖춘 자>,
<여건과 조건과 환경을 갖춘 자>가 ‘복 있는 자’다.
월명동은 ‘돌과 각종 나무’를 줘도
<받을 수 있는 여건과 조건과 환경>이 갖춰져 있으니,
얼마나 복 있는 장소냐.
그러나 월명동도 어떤 돌이나 나무를 줘도 더 받을 수가 없어서
더 이상 사 오지 않는다.
각 개인도 <받을 수 있는 마음과 생각과 행위>를 갖추고,
<받을 수 있는 환경과 여건과 조건>을 갖춰라.
그래야 하나님이 주셔도 받을 수 있고, 받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무리 ‘좋은 돌과 소나무’라도
<자기 집에 갖다 놓을 여건과 조건과 환경>이 안 되니
줘도 못 받기도 하고,
<받을 마음과 생각>이 갖춰져 있지 않으니 필요 없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건>도 갖춰져 있고 <환경>도 되고 <마음>도 있으니,
좋은 돌과 소나무를 찾으러 다닌다.
찾으면, 비싸도 산다.
비가 와도 <마른 땅>이어야 ‘물을 빨아들일 여건’이 되어
땅이 물을 빨아들인다.
<젖은 땅>은 비가 와도 그냥 흘려보낸다.
<잠시 쉬었다가>
한 사람에게 다 맡기면 그 사람의 취향대로 하여
다른 사람이 원하는 취향대로는 못 하게 된다.
고로 하나님은 <주>가 ‘전체의 주인’이 되어 하게 하신다.
섭리사에서도 각자 사명대로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고로 <주>가 하나님께 받은 대로 모두에게 개성대로 주어서
각자 주 안에서 좋아하는 대로 얻게 한다.
월명동의 ‘돌, 나무, 땅, 물’을
좋아하며 가치 있게 대하는 자들이 있고,
보통으로 대하는 자들이 있고,
하나의 자연 풍경으로만 보고 대하는 자들이 있다.
<자기 마음, 생각, 여건, 조건을 갖춘 차원>대로 대한다.
고로 하나님이 축복을 주셔도 다 못 받는다.
<주>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받은 것’을 기뻐하고 좋아하며,
삼위일체와 수천 번을 대화하며 감사 감격하며 깊은 이야기를 한다.
<자기 여건과 조건과 환경>이 갖춰지고 <차원>이 높아야
사람도, 만물도, 그 어떤 존재물도 ‘축복’으로 받게 된다.
<자기 여건과 조건과 환경이 갖춰지는 축복>도
역시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조건’을 세워야 받는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저마다 <마음, 여건, 조건, 환경>이 갖춰져야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주도 축복을 주시고,
자기도 삼위와 주를 사랑하며 믿고 싶어지게 된다.
교회도 <그 면의 여건과 조건과 환경>이 갖춰져야
그 환경, 그 위치에 ‘성전’을 주신다.
저마다 ‘원하는 것’을 받으려면,
그에 해당되는 <마음, 생각, 행위, 여건, 조건, 환경>을 갖춰라.
개인 형, 가정 형, 민족 형, 세계 형의 여건을 갖춰야
삼위일체는 ‘거기에 맞는 것’을 주신다.
<주>는 갖췄으니, 하나님은 그에게 ‘큰 것’을 주신다.
월명동같이 받을 자가 있느냐.
월명동은 <시대 여건>을 갖추고 <조건>을 갖추고 <환경>을 갖췄기에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수많은 것들을 주셨다.
<주>는 마음과 생각이 하늘까지 닿아서 모든 것을 다 품는다.
그러나 <따르는 자들>은 ‘자기 취향과 생각’으로 기울어져
때로는 ‘자기중심’으로 흐르게 된다.
고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나중까지
항상 <주>에게 “네가 해라.” 하신다.
시대 말씀을 줘도
이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싫어하며 불신함은
<마음, 생각, 행실, 여건, 환경>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갖춰져 있지 않고
<조건>이 없기 때문이니라.
아파트에 사는 자는 ‘수억짜리 아름다운 소나무’를 줘도
<심을 곳>이 없으니 받지 못한다.
이와 같이 ‘수조의 가치가 있는 시대 말씀’을 줘도
<받을 만한 마음, 행실, 여건, 조건, 환경>이 안 되니 받지 못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과 내가 주는 모든 것을 받을 만한
마음과 행실과 여건과 조건과 환경을 갖춘 합당한 자만
받느니라.” 하셨다.
어린 자라도 <마음, 행실, 여건, 조건, 환경>을 갖췄다면 주지만
청년이나 어른이나 직급이 높은 자라도
<마음, 행실, 여건, 조건, 환경>을 못 갖췄다면
받지도 못하고 주지도 않는다.
결국 <갖추어 받은 자>를 통해서만 ‘하늘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러하니 다른 자들을 귀히 여겨라.
센터별로, 개성대로, 사명대로
모든 사람들이 ‘그 센터의 왕’이다.
이를 알고, 모두 귀히 여겨라.
가령 섭리세계에서 ‘눈 역할을 하는 자’가 있다 하자.
그 사람은 ‘눈 역할을 하는 데 왕’이다.
각 지체마다 ‘그 면의 왕’이 있다.
오직 <주>가 ‘머리’가 되어 전체를 인도한다.
섭리인들은 ‘각 지체’로서 ‘개성의 왕’이다.
오직 머리인 <주>를 ‘중심’으로 하고 행해야 형통한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합당하게 그 면의 눈을 뜨고 아는 자’를
쓰고 행하신다. - 그러나 항상 <중심>은 ‘주’다.
<전환 - 잠시 쉬었다가>
돌은 울퉁불퉁하고 들어갔다 나왔다 해야 ‘형상’이 있다.
매끈한 돌은 ‘형상’이 별로 없고,
형상이 있어도 흐릿하게 간단하게 있다.
돌이 파이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구멍도 뚫려 있어야
특이한 여러 형상이 있듯이,
사람도 성격과 행동이 여러 가지로 갖춰져 있어야
성격상 열심히 뛰고 달리며 잘한다.
산도 들어갔다 나오고, 뾰족했다가 완만하고, 기암절벽도 있어야
산의 형상이 여러 가지로 보인다. 고로 볼거리가 있다.
사람도 그러하다.
만물들은 저마다 ‘존재의 성질’대로 만들어진다.
사람도 ‘마음, 생각, 성질, 성격’대로 행하고 만들어진다.
그러나 만물도 사람도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손’이 가야 된다.
모두 ‘삼위의 손’이 가서 그같이 만들어진 것이다.
만물들은 ‘개성적 특성과 성질’에 따라서 만들어지지만,
그 위에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손’과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손’이 가야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만들어진다.
사람도 ‘자기 마음, 생각, 성질, 성격’대로 행하고 만들어지지만,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신의 손’이 가야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만들어진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아름다운 손, 신비한 손, 웅장한 손을 가지고
지혜와 지식과 슬기로 인생들을 정성껏 만드신다.
<잠시 쉬었다가>
월명동 지역을 그냥 보면, 그냥 매끈하게만 보인다.
깊이 보아라. 높이 보아라. 깨닫고 보아라.
월명동의 산은 해발 450m다.
울룩불룩한 산봉우리 한두 개만 있어도 좁은 산이다.
그런데 그 좁은 지역에 <골짜기>가 ‘다섯 개’나 된다.
<산봉우리>는 ‘일곱 개’나 된다.
<일곱 개의 산봉우리가>가 뭉쳐서 마치 ‘한 여인의 형상’ 같다.
얼굴, 코, 가슴 두 개, 동산, 히프가 불룩 튀어나와 솟아 있다.
<성자바위>에 ‘일곱 가지 형상’이 있듯이,
<월명동 핵심 지역>에도 ‘각종 형상’이 있다.
사람도 <성격, 생각, 행위>가 여러 가지여야
그 생각도 행위도 다양하여 ‘인생 작품’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과 주 안’에서 행하며 살아야지,
밖에서 행하면 ‘죄’요, ‘심판감’이다.
<잠시 쉬었다가>
<성품과 생각이 조용하고 고요한 자>도
호수같이 고요하게 보면 안 된다.
그 조용하고 고요한 생각과 매끈한 성질대로
높고 낮은 것을 다 가지고 있다. - 자세히 보아라.
메뚜기, 여치, 귀뚜라미는 같은 종류의 곤충이다.
이 곤충들은 조용히 가만히 있다가도
한 번 뛰면 ‘딴 지역, 딴 세상’에 가 있다.
한번은 방 안에 메뚜기를 잡아 놨는데,
메뚜기가 한 번 뛰니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찾다가 겨우 찾았다.
방 안이니까 찾았지, 밖에서는 찾기 힘들다.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 귀뚜라미를 건드리면 풀쩍 뛰고 날아가서
‘다른 지역, 다른 세상’으로 간다.
이와 같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도 그러하다.
메뚜기보다 작은 방아깨비는 보다 조용하고 고요하다.
잘 뛰지 않고 걸어 다닌다. 내성적 성품이다.
메뚜기와 같이 안 놀고 혼자 있기에
메뚜기가 있는 벽의 옷 위에 갖다 놨더니,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서 방바닥에 앉았다.
이것을 보고 “너 거기 있다가는 내가 몰라서 깔고 앉는다.” 하며,
다시 메뚜기가 있는 벽의 옷 위에 갖다 놨더니,
다시 방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다섯 번이나 계속해도 뛰어내리기에
“너의 힘 빠질 때까지 한다.” 하고 또 갖다 놨다.
결국 벽의 옷 위로 갖다 놨는데, 거기에 열 시간 동안 있었다.
메뚜기와 같이 다녔다.
이것을 보고
‘순진하고 마음이 매끈한 사람도 성격이 대단하다!
내성적 성품인 사람들도 성격이 굉장하구나!’ 했다.
그래도 <곤충>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못 당했다.
섭리사에도 ‘내성적 성품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마음이 매끈하고 순진해도 ‘뛰고 나는 성질’이 있다.
겉으로 내색을 안 하고 살 뿐이다.
외향적 성품인 사람들은 밖으로 나타내고 산다.
<순수하게 보이는 월명동 지형>도
거기에 ‘각종 형상’이 다 들어 있듯이,
<매끈한 성격을 가진 사람>도 내색을 안 할 뿐이지
‘다양한 생각과 행위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
이를 깨닫고, 서로 알아주고 칭찬해 주고 잘 대해 주며 살아라.
<잠시 쉬었다가>
<월명동에 있는 각종 형상석>은
울퉁불퉁하고 울룩불룩하게 들어갔다 나온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니 ‘여러 가지 형상’이 갖춰져 있다.
반면, <밥상바위>처럼 매끈한 돌도 있고,
야심작 위에 세운 돌처럼 고구마같이 길고 매끈한 돌도 있다.
또 각 위치에 세운 돌같이 별 형상이 없는 돌도 있다.
그런데 ‘귀한 위치’에 서 있다.
이런 돌들은 ‘손이 가고 편히 대하는 돌’들이다.
또 ‘편히 앉고 누울 수 있는 매끈한 돌’들이다.
모두 ‘개성의 왕’으로 귀히 보고 대한다.
이와 같이 사람도 저마다 ‘성질과 성격’이 있다.
섭리사에도 ‘마음, 생각, 성격’들이 천층만층으로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기암절벽 같은 성격이고,
울퉁불퉁한 형상석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고로 겉으로 보면 무섭다.
대둔산도 기암절벽이라서, 보면 어지럽다.
그러나 오르면, 높아서 스릴을 느낀다.
그리고 그만큼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다.
이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도 그러하니, 무서워 말고 대해라.
메시아 예수님도 착하고 조용하고 겸손하고 순하고 양 같아도
실상 그 기질이 ‘기암절벽’ 같고 ‘알프스 산맥’ 같았다.
그러니 그 엄청난 핍박을 받았어도 다 이겼고,
따르는 자들을 힘 있게 이끌고,
온 인류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그 성품과 생각이 ‘에베레스트 산’같이 치솟지 않았다면,
그같이 못 했다.
이 시대 보낸 자도 그러하다.
선생은 <대둔산 용문골 기암절벽>에서 기도하면서,
‘대둔산과 같은 성품과 생각과 행위와 정기’를 받았다.
성자도 예수님도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대둔산의 형상>같이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정기’를 받아라.” 하셨다.
<정기>가 무엇이냐. ‘특성과 모양, 전설과 신화와 뜻’이다.
선생이 20대 때 그리했다.
세상의 험한 것들과 두려운 것들도
<대둔산 같은 마음과 생각과 정신>으로 대하니,
결국 나와 겨루는 자들이 약해지고 사라졌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정기와 생각과 뜻과 행실>을 받았기에
세상도, 사탄도, 핍박도, 환난도 나를 꺾지 못한 것이다.
섭리사 사랑하는 신부들아.
너희는 <시대 말씀>을 듣고 ‘그 진리의 정기’를 담았으니,
두려워 말고 담대히 행해라!
<전환>
* 조금 더 말씀하고, 말씀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과도 사람들과도 대화할 때는
<깨달은 데>서 출발해라.
그러면 쉽게 이해한다.
<상대가 깨달은 것>을 가지고 상대에게 이야기를 해 나가라.
<깨달은 것>을 가지고 ‘다른 것도 이와 같이 이러하다.’ 하면,
쉽게 이해하고 알게 된다.
성령님도 그 사람이 ‘깨달을 때’ 계시하신다.
“네가 깨달은 것이 맞다.” 하며 계시하신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무엇을 물었을 때,
우리가 ‘맞게 말할 때’만 맞다고 대답하신다.
그것이 ‘답’이기 때문이다.
삼위와 생각을 같게 맞추면, 그것이 ‘답’이라고 대답하신다.
삼위와 생각을 안 맞추고 삼위의 생각과 뜻에서 벗어나면,
대답하지 않으신다.
가령 어린아이가 시계를 보면서 “지금 한 시지?” 했다 하자.
맞으면, 엄마도 형제들도 “맞다.” 하고 귀여워하며 대답한다.
틀리면, “아니야.” 하든지,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우리가 그 생각과 뜻에 안 맞추면 ‘답’을 안 하신다.
상대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번호가 맞으면 - 연결이 되어 상대가 대답하고,
전화번호가 안 맞으면 - 연결이 안 되니 상대가 대답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맞는 것, 합당한 것’만 대답하고 행하신다.
지금까지 세 시간이 넘도록 기도하고 대화하면서 잠언을 쓰고 있다.
<형상>을 ‘눈’으로 보면서 쓰고 있다.
모두 나와 같이 봐야 더 충격적으로 느끼는데,
못 보니 ‘말씀’을 들으면서 겨우 느낀다.
(하나님 말씀) 맞으니까 성령이 대답하고,
성령의 형상과 같이 아름답고 신비하다고 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자’가 어떤 것을 두고 말하면,
그 사람과 잘 알고 지내고 그 사람이 자기편이니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그 말이 맞다.” 한다.
그러나 <성령님>은 ‘잘 아는 자’가 말했어도
그 말이 무조건 맞다고 하지 않으시고,
더 알아보고 그 말이 정말 맞으면 대답하신다.
사람들은 현실을 직접 보고 대하면서 사는데도 속고,
어느 때는 기대에 어긋나서 산다.
이는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며, 기술이 없기 때문이며,
삼위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 현실감 있게 살기 원한다.
눈으로 직접 못 보면서 살면 답답해하고 궁금해한다.
하지만 현실과 세상에서 볼 것을 다 보면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못 보고 속고 살고 기대에 어긋나서 산다.
사람들은 궁금하면, 기어이 도전하여 눈으로 보고야 만다.
세상의 것은 그렇게 하는데,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것, 영원한 것, 영계의 것은
궁금해도 그냥 믿고 산다.
영의 실력이 없으니, 거기까지 도전을 못 하는 것이다.
고로 답답해하고, 더러는 헛된 것에 속고,
믿어도 확실히 믿지 못하고 기대에 어긋나서 산다.
배워라. 기도해라. 행해라. 그리고 영의 실력을 키워라.
네가 못 보면, 실력이 되는 주를 100% 믿고 따라라!
<전환>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의 핵심을 한 번 더 말해 주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도
<마음과 생각과 행실>을 갖추고,
<여건과 조건과 환경>을 갖춘 합당한 자만 받는다.
<받을 만한 마음, 생각, 행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줘도 필요 없다 하며 싫어하고,
<받을 만한 여건, 조건,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줘도 못 받는다.
마음, 생각, 행실, 여건, 조건, 환경을 갖춘 자가 복 있는 자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