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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6.12.01 (목)

새벽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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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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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 2016년 12월 새벽잠언 <2016년 12월 01일 목요일 잠언> 1. 일부만 봐서는 멋이 없다. 100% 봐야 멋있다. 고로 힘들어도 100% 하라는 것이다. 2. 100% 해야 ‘전체’를 보게 되고 ‘전체’를 얻게 된다. 3. 사람들은 힘드니 ‘일부’만 행하고, ‘일부’만 얻고 살아간다. 4. 성경도 ‘일부’만 풀고 알고, ‘일부’만 행하고 살아간다. 5. 대화할 때 ‘표현’을 제대로 해야 재미있고 기쁘다. 6. 설명할 때 ‘표현’을 잘해야 된다. 7.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창조 법칙을 보면 ‘전체’를 아름답게 창조해야 하니, 어떤 것 하나만 특이하게 잘 만들지 않으셨다. 모두 다 아름답게 만드신다. 8. 사람의 수백 가지 지체도 ‘전체의 균형과 모양과 형체’를 보고 아름답게 만드셨다. ‘어떤 한 지체’만 아름답게 만들지 않으셨다. 만일 <한 지체>만 창조했다면, 지금처럼 만들지 않으셨을 것이다. <전체>를 아름답고 신비하게 만들어야 되니, ‘모든 지체’를 각각 아름답게 만들어서 ‘전체’가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게 하셨다. 9. <전체>를 위해 ‘산’도 만들고, ‘평지’도 만들고, ‘절벽’도 만들고, ‘물 지역’도 만드셨다. 10. 섭리역사도 ‘혼자 뛰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균형과 모양’을 보면서 뛰어야 된다. 11. 자기 할 만큼만 하면 된다. 전체가 하니, 결국 각각 자기 할 일을 다 놓고 보면 ‘전체 조화’가 된다. 12. 가령 ‘하나의 백지’에 ‘일곱 자 붓글씨’를 쓴다 하자. 한 장 안에 일곱 글자를 다 써야 되니, ‘어떤 한 글자’만 ‘종이 반 장 이상’을 차지하게 크게 쓰지 못한다. 일곱 글자를 다 써야만 단어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한 글자>만 쓰려면, 아예 다르게 크게 쓸 수 있다. 13.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와 같이 <사람의 지체>도 ‘수백 개’다. 그 지체들이 ‘한 몸 안’에 모두 조화를 이루어 살게 했다. 고로 ‘어떤 한 지체’만 크게 만들지 않았다. 만일 ‘한 지체’만 만들었다면, 아예 크게 만들었을 것이고 지체의 위치도 달랐을 것이다.” 하셨다. 14. 이를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월명동 전체>를 아름답게 구상하고 만드니, ‘어떤 한 가지’만 크게 만들지 못했다. 또 하나하나 그 위치에 둔 것이다. 만일 ‘어떤 한 가지’만 만들도록 구상했다면, 아예 크게 다르게 했을 것이다. - <사람>도 그러하고, <조직>도 그러하고, <모든 구상>도 그러하다.” 하셨다. 15. 그리고 작품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를 “<여러 가지>를 만들어야 되니, ‘전체와 균형과 조화’에 맞추어 만들었다. <옆의 것>도 만들어야 되니, ‘그만하게, 그 위치에’ 만들었다.” 하시며 “이와 같이 <섭리사 각 사명들>도 ‘전체’를 보고 크고 작게 맡겼다. ‘어떤 한 개인’만 생각하고 일을 맡기면 ‘전체 균형과 조화’가 안 맞는다.” 하셨다. 16. 10시간을 가지고도 <여러 가지>를 해야 되기에 쪼개서 쓴다. 고로 어떤 일은 크게 쪼개서 4시간을 쓰고, 어떤 일은 3시간, 2시간, 1시간으로 쪼개서 쓴다. 10시간을 가지고 <한 가지>만 하려면, 10시간을 크게 그냥 쓰게 된다. 17. 까마득한 절벽도 10~15미터 ‘밑’에서 보면 안 무섭다. 그런데 ‘위’에서 보면 무섭다. 18. 삼위일체가 하시는 일은 다 신기하다. 오묘하다. <2016년 12월 02일 금요일 잠언> 1.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말씀하시기를 “인간은 <생각>으로 살아간다.” 하셨다. 모두 이 말씀을 듣고, 어떤 의미에서 하신 말씀인지 생각해 보아라. 2.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생각>으로 통하고, 사람은 <말>로 통한다. 3. 생각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삼위일체와 통하지 않는다. 4. 생각하면, 바로 삼위일체와 통한다. 5. 사람이 생각하면, <그 생각>이 ‘실제 행위’가 되어 삼위일체께 보인다. 6. 사람은 <생각>하고 있으면 ‘행위’는 안 보인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사람이 <생각>만 해도 마치 녹화된 것을 틀면 화면이 보이듯 선악 간에 다 보신다. 7. <생각>은 ‘눈’과 같다. 고로 생각하는 자는 ‘생각’으로 보게 된다. 8. 생각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도 평생도 ‘무(無)’에서 살게 된다. 9.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도 안 보고 안 들은 것’은 평생 그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무(無)’에서 살게 된다. 10. 보고 들었던 것도 기억에서 잊으면, 다시 기억할 때까지는 ‘무(無)’에서 살게 된다. 11. 삼위와 주를 생각해라. 말씀을 생각해라. 그리고 잊지 말아라. 그리고 행해라. 12. 인생은 ‘생각하는 맛’이다. ‘생각하는 기쁨과 즐거움과 희망’이다. 13. 만일 <생각>이 둔감해져서 ‘무딘 칼’과 같고 ‘선잠이 든 것’과 같고, ‘구름 낀 하늘’ 같으면 ‘사는 맛’도 없어진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2 14.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모르고 살아가는 자>는 영원한 세계와 육신의 세계와 하나님께 해당되는 모든 것들을 모른 채 먹구름 속에서 살듯 하고, 굴속에서 살듯 하고, 밀림 속에서 빛을 못 보고 세상을 전혀 못 보고 살아가는 원시인과 같다. 15.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자신들의 목적한 바’를 행하시며 ‘뜻’을 펴시며 ‘이상적인 새로운 역사’를 행하고 계신다. 이것을 모르는 자는 안 믿는 자들이나 믿는 자들이나 ‘하나님이 이 시대에 주시는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살게 되니,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다. 16. 국가에서 ‘새 시대에 해당되는 공동 시설’을 만들어 줬는데, 이것을 모르면 옛날에 쓰던 것만 쓰고 살면서 갖은 아쉬움을 당하며 고통과 고생 속에서 수고하며 살게 된다. - <하나님이 이 시대에 펴시는 이상적인 새로운 역사>도 모르면 그러하다. 17. 하나님이 이 시대에 행하시며 베푸시는 것은 ‘육신’에게도 해당되고 ‘영혼’에게도 해당되니, <새 시대 혜택>을 못 받으면 엄청난 손해이며 영원한 손해다. 18. 사람은 <생각>으로 살아가니, <생각>을 잘해라. 19. <생각>을 잘못하면, 몰라서 못 산다. 20. 평생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데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예 행하지 못한다. 고로 평생 쓰고 누릴 것을 얻지 못한다. 21. <생각>으로 살아가니, 하루 종일 잘 생각하고 행해라. 22. <생각>대로 행해지고, 만들어지고, 얻어진다. 23. <몸>이 생각하지 않는다. <뇌>가 생각한다. 24.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생각해 보아라. 그리고 생각한 것을 말해 보아라. 생각에 대해서 자꾸 물어라. 25. <하나님 생각>과 맞게 행하고 <하나님 마음>에 들게 살면, 인간으로서 ‘하나님 세계의 삶’을 살게 된다. 26. <하나님의 생각>을 생각해내고,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이 맞냐고 물어봐라. 맞으면, 하나님과 통한다. 27. 자기가 어떻게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삼위의 생각’과 맞고 합당하면, 그때 삼위일체와 통한다. 28. 물과 물은 통하듯, ‘생각’이 같으면 통한다. 29. <생각>이 같지 않은데 통하면, ‘의견 차이’가 생긴다. 30. 삼위일체와는 ‘생각이 같은 것’만 통한다. 31. 삼위가 보낸 자도 ‘생각이 같은 것’만 통한다. 그리고 ‘생각이 같은 자’와 함께 행한다. 그래야 ‘자신의 뜻과 하늘의 뜻’을 이루기 때문이다. 32. <생각>을 놀리면 ‘얻는 것’이 없다. <몸>이야 ‘생각한 것을 실천할 때’만 쓰면 된다. 그러나 <생각>은 늘 움직이며 생각할 수 있다. 놀리지 말아라. 33. <생각>은 ‘신’과 같아서 ‘빛보다 수백조 배 더 빠른 속도’로 다니면서 행한다. 34. <생각>을 놀리면 ‘할 일’도 없게 된다. ‘몸’도 놀게 된다. 35. 사람은 <생각>으로 살아가니, 계속 ‘좋은 생각’을 하여라. 36. 육신도 혼도 영도 잘되게 하기 위해 생각해라. 그러면 <혼>도 <영>도 <생각>과 같이 활동하여 ‘혼이 가 볼 곳’은 혼이 가 보고 ‘영이 가서 확인할 것’은 영이 가서 확인한다. 37. 절대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생각’과 일체 되어 생각하고 구상해라. 그러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함께하고 돕고 축복해 주신다. 38. 차원 높여서 생각해야 다른 것을 얻지, 보통으로 생각하면 보통의 것만 얻는다. 39. 영적으로 생각해야 차원이 높아진다. 육적으로 생각하면 차원이 낮아진다. 40. <절대자 삼위일체를 사랑하고 그 생각과 하나 되어 사는 자>가 ‘차원 높이 사는 자’다. 그러면 ‘그가 원하는 것’을 주신다. 41. 전능하신 삼위일체를 늘 생각해라. 그래야 삼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게 되고, 삼위가 무엇을 주시는지 알게 된다. 42. 자기가 극히 사랑하는 자와 길을 가는데 눈으로 늘 쳐다보면서 가야 옆길로 가는지 바로 가는지 알고, 사랑하는 자가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지, 싫어하는 것을 행하는지 안다. 안 쳐다보고 가면 많이 떨어져 가는지, 조금 떨어져 가는지 모른다. 43. 쳐다보듯, 늘 생각하여라. 44. 사랑하는 자를 늘 쳐다보며 가듯, 삼위일체를 늘 생각하여라. 45. 삼위일체를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생각’을 줘도 받지 못한다. 46. 삼위일체를 생각할 때 그때 삼위와 통하니, 삼위는 그때 ‘자신의 생각’을 주신다. 47. 주를 쳐다봐야 주가 눈치 주면 안다. 쳐다보라 함은 ‘생각해라’ 함이다. 생각해야 ‘주의 심정과 뜻’을 알게 된다. 48.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면, ‘자기 차원의 것’밖에 못 얻는다. 49. <주를 머리>로 삼고 ‘주의 지체’가 되어 느끼고, ‘주의 손발’이 되어 행해라. <2016년 12월 03일 토요일 잠언> 1. 결국은 ‘쓰는 자’나 좋아한다. 2.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지 않는다. ‘주인’만 좋아한다. 3. 주인은 ‘자기 것’이니 좋아한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3 4. 무엇이든지 ‘주인’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5. 사랑에도 ‘주인’이 있다. 곧 <사랑을 하는 자, 사랑을 주는 자>다. 한번 보아라. <사랑을 하는 자, 주는 자>가 ‘사랑을 받는 자’보다 더 사랑을 느끼고 ‘사랑의 주인’이 되어 기뻐한다. 6. <짝사랑하는 자>가 ‘그 사랑을 받는 자’보다 더 사랑을 느끼고 기뻐하듯, <사랑을 하는 자>가 ‘사랑을 받는 자’보다 더 사랑을 느끼고 기뻐한다. 그가 ‘주인’이다. 7. <먼저 하는 자>가 ‘주인’이다. 8. 이제는 ‘삼위와 주와 같이 사는 시대’다. 먼저 삼위와 주를 찾고 사랑하며 사랑을 주는 자가 되어라. 9. <주인>이 더 기뻐하고 좋아하고 사랑한다. 10. <사는 데 주인>이 있고 <쓰는 데 주인>이 있다. ‘주인’이 더 기뻐한다. 11. <깨닫는 자>가 ‘주인’이다. 고로 깨닫는 자가 기뻐한다. 12. 모든 자들이 다 좋아하는 물건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자들이 다 좋아하는 사람도 될 수 없다. 13. 물건이든 사람이든 ‘자기 것’이면, 제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다음에는 ‘쓰는 자’가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다음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자’나 좋아하고 사랑한다. 고로 ‘다’ 좋아할 수는 없다. 14. 생각났을 때 잊지 말아야지, 잊으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찾아주기 어렵다. 고로 생각났을 때 번개같이 기록해라. 행해라. 15. 뇌에서 잊으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먼저 ‘자기 생각’에서 감을 잡고 잊지 말아야 된다. 그래야 하나님도 할 말을 그 생각에 전달해 주신다. 16. <뇌의 기억 구조>를 깨달아라. <뇌>는 마치 ‘눈’과 같다. <눈>이 어떤 것을 보다가 눈을 돌리면 안 보이듯이, <기억>도 어떤 것을 생각하다가 잊으면 기억에서 사라진다. 17. 하늘에 높이 뜬 비행기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쳐다볼 때만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그때 고개를 돌리고 다시 쳐다보면 안 보인다. 고개를 안 돌렸으면 끝까지 보였다. 이와 같이 기억났을 때, 순간 다른 것을 생각하면 잊어버린다. 기억났을 때, 그때 기록해야 된다. 이는 ‘순간 보일 때 사진을 찍어 놓는 격’이다. 기억하려면, ‘그것에 집중’해야 된다. 생각을 돌리면, 바로 잊게 된다. 18. 지나가는 차에서 눈을 돌렸다가 다시 그 자리를 쳐다보면, 차가 안 보인다. 멀리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억>도 그러하다. 기억이 나다가 다른 것으로 생각을 돌리면, 기억했던 것이 떠나가서 생각이 안 난다. 19. 집중하면, ‘평소에 잊었던 것’도 생각난다. 20. 생각이 순간 스쳐 지나가니, 금세 기억에서 사라진다. 고로 순간 ‘한 단어’만이라도 표시해 놔야 다시 기억하게 된다. 21. 영계에 가서 <영>이 생각하고 기억하면, 어렸을 때 하던 일들이 다 기억나서 ‘죄 지은 것’도 생각나고 ‘몰라서 회개하지 못한 것’도 생각나서 다 회개하게 된다. 22. <육성>에 속해 있으면, ‘기억’이 잘 안 난다. 23. <영>은 육보다 ‘기억’을 훨씬 더 잘한다. 24. <육>은 생각을 집중하고 기도를 깊이 할 때, 삼위일체와 일체 되고 성령의 감동이 오면 ‘기억’이 잘 난다. 25. 자기가 ‘주인’이 돼야 누구보다 기뻐하고 좋아한다. 26. 전능자 삼위일체는 ‘천지 만물의 창조자’이며 ‘주인’이시다. 고로 상천하지 통틀어 최고로 ‘천지 만물’을 보고 제일 기뻐하고 사랑하고 귀히 여기신다. 27. <주인>이 쓰고 사랑해 줘야 기쁘고 즐겁다. 28. <주인>이 돼야 아끼고 좋아한다. 다 주인이 될 수 없으니, 다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다. 29. <메시아>라도 지구 세상 모든 자들이 다 좋아하고 기뻐하며 맞을 수 없다.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믿고 사랑하는 자’만 <주인>이 되어, 메시아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기쁨의 삶을 살게 된다. 30. <좋아하고 사랑하는 자>가 ‘주인’이 된다. 31. 어떤 물건도 만물도 사람도 ‘그것에 대해 알아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된다. 32. <산>에 대해 ‘알아야’ 그만큼 산을 좋아하게 된다. 33. <기암절벽과 나무, 계곡의 물과 폭포수>도 ‘알아야’ 그만큼 좋아하게 된다. 34. <물>을 좋아하는 자를 보아라. 물에 대해 잘 알고 각종으로 사용하는 자이며, 수영을 할 줄 아는 자다. 이와 같이 <주>도 ‘알아야’ 좋아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행해야’ 더욱 기뻐하며 사랑하게 된다. 35. <돌>을 좋아하는 자는 ‘돌에 대해 알아야’ 된다. 모양, 형상, 가치, 아름다움, 신비함 등이다. 36. <운동>을 좋아하는 자를 보아라. 눈으로만 좋아하고 기뻐하는 자도 있지만, ‘그 운동을 할 줄 알아야’ 좋아하게 된다. 37.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알아야’ 좋아하고, 최고의 존재자로 믿고 사랑하며, 그의 뜻대로 살면서 기뻐하게 된다. 모르면 의지하는 데만 좋아하고 만다. 38. 삼위일체와 대화하며 삼위를 모시고 사랑하며 같이 살기 위해 믿고 좋아하는 자가 있고, 의지하기 위해 믿고 좋아하는 자가 있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4 39. <삼위와 대화하고 삼위를 모시고 사랑하며 같이 살기 위해 믿고 사는 자>와 <삼위께 도움 받고 의지하기 위해 믿고 사는 자>가 있다. 똑같이 좋아서 대하지만, 하나님은 어느 편을 더 좋아하시겠느냐.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도 네 생각과 같다. 40. 사람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대로’ 물건을 찾고, 사람을 찾고, 하나님도 찾는다. 41. <자기 취향>도 각각이고 <자기 생각>도 각각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각각이니,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좋아할 수가 없다. 42. <자기 생각, 자기 지능, 자기 지혜, 자기 지식, 자기 생활 정도>에 따라서 좋아하니, ‘어떤 사람’도 ‘존재물’도 ‘주’도 모든 자들이 다 좋아할 수 없는 것이다. 43. 좋아해야 일도 하고, 좋아해야 힘들어도 만든다. 44.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없으면, 힘들어도 몸부림쳐서 만들어라. 그러면 평생 보고 쓴다. 45. 만들되 ‘자기 혼자’ 좋아하게 만들지 말고 ‘많은 자들’이 좋아하게 만들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좋아하시게 만들어라. <2016년 12월 05일 월요일 잠언> ◆ 숨어 있으면, 가까이 있어도 안 보인다. ◆ 멀리 있어도 숨지 않고 다니면, 잘 보인다. (키우고 있는 메뚜기 한 마리가 내 방에 있는데 안 보여서 찾으니, 숨어서 눈만 내놓고 보고 있었다. 사탄도, 악한 자들도, 악평자들도 이와 같이 숨으면 안 보인다.) ◆ 조심하지 않으면 다 보인다. ◆ 조심하지 않으면, 상대도 적도 다 보고 있다. ◆ 적은 숨어서 활동한다. ◆ 숨어도 찾으면, 찾게 된다. ◆ 적은 가까이에도 있고, 멀리에도 있다. ◆ 생각지도 않은 데다 숨기고 숨는다. ◆ 숨기는 자들은 ‘사람들이 아예 생각을 못 하는 쪽’으로 행한다. ◆ <주>는 시대에 드러나기를 원하면서도 - 반대자들이 알고 막을까 봐 숨기고, - 알 만한 자가 아닌, 알아서는 안 될 자가 있으니 숨긴다. ◆ 주를 이용하는 자들은 숨기지만, 도리어 그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 ◆ <자기 목적>을 위해 숨기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 <처세>가 ‘철저’해야 된다. ◆ 매사에 ‘지혜’다. ‘지식’이다. 재 보고, 달아 보고, 분별하고 행하기다. ◆ <잘되게 예정된 것>도 소홀히 하면, 안 되게 판국이 기울어진다. 신같이 하면, 다시 되기도 한다. ◆ <행위>에 따라 안 되던 것을 뒤엎고 성공하기도 한다. ◆ <그 면>으로는 이미 안 된다고 결정되었으면 <다른 면>으로 ‘방법을 달리’해야 더 많이 할 수 있다. ◆ 하나님이 안 된다고 했으면, ‘다른 방법’으로 해야 된다. <2016년 12월 06일 화요일 잠언> * 육적인 사항들도 육적으로만 표현하면 단어가 부족해서 표현을 섬세히 자세히 하지 못한다. 영의 세계도 표현할 단어가 부족해서 다 표현하지 못하니, <비유>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형상’을 보여 주신다. * <말>로는 표현의 한계가 있다. <눈으로 보여 줄 때> 잘 이해가 가고 섬세하고 예리하고 자세하게 보여서 자기 차원대로 더욱 확실히 알고 잊지 않게 한다. * <말>로만 하면 ‘표현할 단어’도 부족하고,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많아서 바로 잊어버린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백 번 듣기>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더 기억에 남고 믿어진다. 고로 하나님도 성령님도 <만물>을 통해 ‘좋고 나쁜 것들의 그 사항’에 대해 자세하게 계시로 보여 주신다. * <말>로 하면 ‘실체’를 보일 수가 없으나, <실체>를 만들어 ‘만물’로 그 사건을 보인다. <실체>를 ‘상징’으로 그대로 보인다. 고로 현장을 검사하듯, 실감 나게 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계시>는 자기 행위로 보여 주시고, 타인으로 보여 주시고, 만물로 보여 주시고, 꿈의 영계로 보여 주신다. * 자기가 행했어도 자기 행위가 ‘죄’인지 ‘의’인지 모른다. 고로 하나님은 <그 실상>을 ‘비유’로 보여 주시는데, <죄>이면 ‘더러운 것’을 보여 주시며 깨닫도록 계시하신다. * 항상 ‘자기가 행한 것’과 연관되어 보인다. * <영의 세계>는 말로 하는 것도 있지만, 그 사실과 실상을 느껴서 알게 한다. 고로 들리는 소리가 없어도 <보이는 것>이 ‘언어’가 되어, 그것을 보면서 느끼고 깨닫고 알게 하신다. * <뜨거운 것>을 ‘말’로 표현하면 느낌이 약하다. <뜨거운 불>이 직접 ‘몸’에 닿아야 뜨거운 강도를 느낀다. 이때는 ‘실체’가 느껴지면서, 그 ‘말’도 심정으로 느껴지며 전해진다. * <영의 세계>는 ‘생각하는 차원’이 높아서 말을 안 해도 이미 알고 있다. = 고로 굳이 다 말할 필요가 없다. * <하나님의 말씀>도 ‘깨닫게 하면서 전달’하신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5 * <말>로 다 하려면 어떤 것은 내용을 전달할 때 소리를 질러야 되고, 어떤 것은 각종으로 거기에 해당되게 일일이 다 설명해야 된다. 그렇게 하면 번거로우니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 보여 주고 느끼게 하면서 전달하신다. * 그 사람의 <말>이 안 들려도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안다. 그 하는 <행동>이 그 사람의 <말>과 같다. * <만물>은 수백만 가지로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고로 하나님과 성령님은 ‘수백만 가지 만물들 중’에서 <그때마다 해당되는 만물>을 보여 주시며 깨닫게 하신다. 이때 <만물>이 ‘글’이 되는데, <보는 것>이 ‘읽는 것’이 되어 깨닫게 된다. * 자기가 한 일이 어느 정도인지 ‘말’로 하면 애매하다. 그러나 ‘컵의 물’로 보여 주면 간단하게 깨닫는다. (* 잠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 자기가 한 일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 적게도 많게도 보여 주며 계시하신다. (투명한 컵에 물이 5분의 1, 3분의 1, 반, 3분의 2정도 담긴 모습 보여 준다) 지금까지 ‘잠언 열다섯 개’를 쓰고 기도하니, <컵의 물>을 보여 주시며 “더 써야 된다. 80개는 써야 돼.” 하셨다. <끝> (컵에 물이 5분의 1정도 담긴 모습을 보여 준다) * “적다. 많다.” <말>로 하면 어느 정도인지 표현도 잘 안 되고, 잘 모른다. 고로 만물이나 사물을 직접 보여 주며 깨닫게 하신다. * <꿈 영계>는 말이 없고, 깨닫도록 보여 주기만 한다. 보이면, 해석까지 다 되기 때문이다. * <자기 행위>는 ‘문제’다. 그에 따라 <보이는 것>은 ‘답’이다. * 자기가 ‘온종일’ 행했어도 계시로는 ‘간단하게 일순간’ 보여 주며 깨닫게 하신다. * <좋은 것>은 ‘좋은 것’으로 보여 주시고, <나쁜 것>은 ‘나쁜 것’으로 보여 주시어 그 상태와 상황을 분별하게 하신다. * 자기 행위도, 육적인 것들도 <말>로 하면 좋고 나쁜 것을 실감 나게 표현하지 못하니, <좋고 나쁜 것의 실체>를 차원대로 비유로 보여 주면서 영적으로 깨닫게 하신다. * 계시를 줄 때는 <좋은 것>은 ‘좋게’, <보다 못한 것>은 ‘보다 못하게’ 분명하게 보여 주신다. * <육적인 것>도 ‘만물’을 보여 주며 깨닫게 하신다. *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때마다 필요하면, 그때마다 <만물>이나 <사물>을 보여 주며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계시를 보고자 노력하고 간구해야 하나님도 성령님도 주도 더 ‘자주’ 보여 주시고, 자기도 더 ‘잘’ 보게 된다. * 자기가 ‘알고자 할 때’ 계시해 주신다. 그러다 그것을 생각에서 잊으면, 하나님과 성령과 주가 계시해 줘도 그냥 지나치게 된다. * <생각과 행위>가 흐리멍덩하면 <꿈>도 흐릿하게 꿔지고, <계시>도 흐릿하게 전달받는다. * 자기 생각이 딴 데 있든지 흐리멍덩하면, 무엇을 봐도 들어도 흐릿하게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 정신일도 하면, 확실히 들리고 확실히 보인다. * 정신과 생각을 일도(一到) 하면, <생각한 것>이 <실체 형상>이 되어 ‘눈’에 보이기도 한다. <2016년 12월 07일 수요일 잠언> * 대걸작품은 ‘신비로움, 아름다움, 웅장함’이 있어야 된다. 그래야 월명동같이 세계적인 걸작품이 된다. * 신비함만 있으면 ‘신비한 작품’이고, 아름다움만 있으면 ‘아름다운 작품’이고, 웅장함만 있으면 ‘웅장한 작품’이다. *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이 없어도 신비함, 아름다움, 웅장함 중의 한 가지만 있어도 ‘그 면의 작품’이다. * 월명동 지형은 ‘여러 가지 형상’을 갖추고 있다. 고로 아름다움과 웅장함도 있고, 신비함도 있다. * 월명동 지형을 보면 하나님 백보좌 형상, 자미원 형상, 여자 자궁 형상, 반월 형상 이 ‘네 가지 형상’이 확실히 갖춰져 있다. 이 외에도 ‘일곱 가지 형상’이 더 있다. <아름다움, 신비함, 웅장함>이 갖춰져 있기에 ‘세계적인 장소’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돌 하나>에 ‘네 가지 형상’이 갖춰졌다면, 그 돌이 얼마나 비싸고 귀하겠느냐. 생각의 지혜와 판단이 어리면, 그렇게 <월명동>에 대해 이야기해도 귀한지 못 느낀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네 가지를 갖추기’가 쉬우냐. 갖췄다면, ‘세계적인 인물’이다. 금메달을 4개 따고 4관왕 하기도 얼마나 어렵냐. 이를 알고 <자연성전>을 가치 있게 여기고, 하나님과 성령과 주와 같이 기뻐해라. * <돌 하나>도 성자바위같이 ‘네 가지 이상의 형상’을 갖추고, 거기에 ‘전설’까지 갖추고,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기까지 하면 ‘세계적인 대걸작품’이다. * <사람>도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있으면 팔방미인이요, 큰 자요, 신비한 자요, 아름답고 웅장한 자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6 * <성자바위>는 한 바위에 성자 형상, 하나님 형상, 성령님 형상, 땅의 보낸 자를 상징하는 독수리 형상을 띤 사람 형상, 지상의 빠르기의 왕인 치타 형상, 전쟁용 팬텀기 형상, 신의 발바닥 형상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전능하신 절대신 성자’가 선물로 주고 가셨으니,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고 귀한 바위’가 아니냐. * 올림픽 경기 때 금메달을 3~4개 따서 3관왕, 4관왕을 한 선수는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자’다. 그러나 3~4관왕을 하기는 정말 어렵다. 이와 같이 바위도, 돌도, 지형도 ‘여러 가지 형상을 갖추기’는 어렵다. <형상>이 많으면, ‘금메달을 여러 개 따서 3~4관왕 한 것’과 같다. * 금메달 하나만 따도 ‘그 면의 왕’이 되듯이, 사람이 <한 가지>만 ‘최고’로 갖춰도 ‘그 면의 왕 같은 아름다움과 신비함과 웅장함을 가진 자’다. * 돌도 <한 가지 형상>을 ‘확실하게’ 갖추면, ‘형상석’으로 취급하고 귀히 본다. * 사람이 <얼굴 하나>만 뛰어나게 예뻐도 그 면의 미인이고 작품이고, <몸 하나>만 뛰어나게 갖춰도 그 면의 미인이고 작품이고, <귀 하나>만 아주 잘나게 갖추고 있어도 그 면의 미인이고 작품이다. * 신앙도 <한 가지>라도 확실히 갖추면 ‘작품’이다. <여러 가지>를 두루두루 갖추면 ‘대걸작’이다. * 이것도 저것도 갖추지 못한 자는 배우면 되고, 자기를 만들면 된다. * <형상 없는 돌>은 ‘정’으로 쪼아서 <유명한 조각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사람도 그러하다. 갖추지 못했어도 부지런히 배우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를 만들면 된다. * 수고한 대로의 값도 있지만, 조금 수고하더라도 ‘하나님이 필요한 대로 만들기’다. 그러면 조금 수고했어도 더 ‘값’이 있다. * <자기가 원하는 것>을 1~2년 동안 엄청나게 수고하여 만들었어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이면 귀히 안 봐서 ‘싸게’ 팔린다. * <자기에게 별로인 것>을 며칠 조금 수고하여 만들었어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면 귀히 여기고 좋아해서 ‘비싸게’ 팔린다. * <자기>를 만들되,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라. 그러면 사람들과 상관없이 귀히 쓰여진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따라서 <구원자>를 거기에 맞게 만들고 가르쳐서 보내신다. 하나님의 때에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서 보낸 자가 귀한 자다. *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기를 만들어야 <이 세상>에서도 ‘그 육’이 가치 있게 쓰여지고, 이 세상에서 육신이 가치 있게 쓰여진 것으로 인해 그 <영>이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형체’를 갖추어서 <영의 세계>에서도 영원히 귀히 살게 된다. * <이 세상에서 육적으로 만들어서 귀히 쓰여진 것>은 ‘이 세상에서 한때’다. <2016년 12월 08일 목요일 잠언> ◎ 오늘 처음에 ‘잠언 열다섯 개’를 썼더니, 하나님은 ‘컵에 물이 5분의 1 담긴 것’을 보여 주시며 “더 써라. 80개는 써야 돼.” 하셨다. 그 말씀에 따라서 잠언을 썼고, 그 잠언들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전해 줬습니다. 이제 몇 개 남았습니다. 그 후 더 쓴 잠언은 오늘 전해 주겠습니다. 모두 끝까지 잘 새겨듣고, 월요일부터 오늘 잠언을 하나로 연결해서 또 보고 깨닫기 바랍니다. * 돌이 사람 형상이나 동물 형상을 갖추지 않았지만 구멍만 자연스럽게 뚫려 있어도 ‘신비에 속한 작품’으로 본다. * 꿈에 한 장소에 가니 <돌 하나>가 있었다. 돌이 형상은 없는데 타원형에 60cm 크기의 구멍이 자연스럽게 뚫려 있었다. 이 돌을 발견하고 가져오려 했다. 깨닫고 보니, ‘사람’을 보여 준 것이었다. “그 사람이 그와 같은 자다.” 함이었고, “그 돌과 같이 보화 같은 자를 얻는다.” 함이었다. * 나무도 가지가 골고루 뻗어 있으면, ‘그 면의 작품’이다. * 나무가 가지가 없고 ‘1자’로 쭉 뻗어 있으면, 역시 ‘그 면의 작품’이다. * 나무가 가지도 별로 없고 1자로 쭉 뻗어 있지도 않지만, 구불거리며 컸으면 그것이 ‘작품’이다. * 나무가 크지도 않고, 가지도 없고, 구불거리지 않아도 100년, 200년 동안 컸으면 그것이 ‘작품’이다. * 주인이 어릴 때부터 정성 들여 키운 나무라면, 어떻게 생겼든지 ‘작품’이다. * 사람들도 이러하다. ‘개성의 왕’이다. 각자 <개성>대로 ‘작품 인생’이다. *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성자 상징’이고, 어떤 사람은 ‘성령님 상징’이다. 각각 ‘상징하는 것’이 다르다. 누구를 상징하고 어떤 것을 상징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좌우되기도 한다. * <그 존재자를 상징하는 자>가 되려면, ‘그 존재자의 생각’대로 행해야 된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상징하는 자>가 되려면, 오직 ‘삼위의 생각’대로 철저히 행해야 된다. * <사람>도 저마다 개성에 따라 ‘특성’이 있듯이, <존재물들>도 저마다 ‘존재의 특성’이 있다. 꼭 찾아봐야 더 가치 있게 귀히 본다. * <존재의 특성>이 ‘잠재’되어 있으면, ‘개발’하면 된다. * 월명동 지역도 ‘존재의 특성’이 있는데, 개발하기 전에는 그 ‘특성’이 안 보였다. 개발하니 ‘가지고 있는 형상과 특성’이 보였다. 섭리인 모두 월명동 지형과 같으니 ‘개발’하여라! 그래야 ‘존재의 특성’이 보이고, 더욱 귀히 쓰인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7 * 월명동은 존재의 특성이 30~70가지나 된다. 크게 보면 ‘일곱 가지’ 정도 되고, 구체적으로 보면 ‘스물한 가지’ 정도 되고, 더 자세히 세밀히 보면 ‘70여 가지’가 된다. * 행해야 거기에 답이 있다. * 처음에 서툴러도, 행하다 보면 점점 유능하게 하게 된다. * 그냥 놔두면 - 썩고, 망하고, 없어진다. * 적이 없어지기만 원했는데, 적이 없어졌다 하자. 그러면 뭐하냐. 적이 있든지 없든지 <우리 할 일, 자기 할 일>을 해야 유익이고 보람이다. * 자기 적이 지옥에 갔어도 <자기 할 일>을 못 했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 이번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전해 준 잠언 중의 <핵심 두 가지>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정리해 주겠습니다. 나중에 꼭 이 잠언들을 연결해서 한 번 더 보기 바랍니다. * 첫째, <말>로 하면 단어가 없으니 표현을 다 못 한다. 고로 영계에서도 육계에서도 <만물>을 보여 주며 계시하신다. * 둘째, 월명동은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것’을 다 갖췄으니, 얼마나 귀하고 중하냐. ▸ 돌도 ‘사람들이 최고로 원하는 형상’을 갖추면, 그리 귀하고 중하다. 왜 그리 모르느냐. <성자바위>는 ‘최고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 고로 값이 없다. 지구상에는 둘도 없는 작품이다. ▸ <한 지역>이 ‘여러 가지 형상’을 갖추기가 아주 어렵고, <한 돌>이 ‘3~4가지 형상’ 갖추기가 아주 어렵다. ▸ 사람도 <최고로 치는 것>을 갖췄으면 팔방미인, 영웅, 재벌, 명예가이며, <땅과 하늘이 볼 때 최고로 치는 것>을 갖췄으면 메시아다. ▸ 못 갖췄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라. 그러면 육 평생 귀히 쓰이고, 영 영원히 귀히 산다. <2016년 12월 09일 금요일 잠언> 1. <두 가지>가 아니면, ‘온전한 답’이 있을 수 없다. 2. 꿈을 꿨는데 생시에 보고 생각하고 행한 것에 대한 꿈이었다. 생시에 내가 보고 생각하고 행해서 그런 꿈을 꿨는지, 아니면 삼위일체가 계시해 주셔서 그런 꿈을 꾼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물어보니, 성령님은 “<두 가지>가 없으면 ‘온전한 답’이 있을 수 없다.”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첫째, 네 육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해서 그런 꿈이 꿔지기도 한다. 둘째, 네 육이 그렇게 행하니 꿈에 그렇게 계시해 주기도 한다. 고로 ‘스스로 꾼 꿈’인지, ‘계시’인지는 분별하여라.” 하셨다. 3. 자기 육이 생시에 전도하니까 전도하는 꿈이 꿔질 때가 있고, 열심히 하니까 삼위가 그런 꿈으로 계시하실 때가 있다. 항상 ‘두 가지’로 현상이 일어난다. 4. 자기 육이 생시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면, 꿈에도 어떤 상대와 사랑하는 꿈이 꿔지기도 한다. 또 하나님이 어떤 상대와 사랑하는 것을 꿈으로 보여 주시며, “이같이 사랑한 것과 다름없다.” 하며 교훈으로 계시해 주실 때도 있다. 5. <스스로 자의에 의해 꿔지는 꿈>은 ‘자기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말고, <하나님이 계시로 주신 꿈>은 ‘그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6. <자기만 좋아하다가 꿔지는 꿈>은 ‘심리에 의한 꿈’이며 ‘짝사랑 꿈’이다. 7. <육성의 꿈>이 있고, <영성의 꿈>이 있다. 자기 육이 생시에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하니 그에 따라 꿈이 꿔질 때가 있다. 이것이 ‘육성의 꿈’이다. 혹은 하나님과 성령이 계시하시어 꿈이 꿔지기도 한다. 이것이 ‘영성의 꿈’이다. 항상 <두 가지>로 ‘답’이 온다. 8. 가령 자기가 어떤 상대를 좋아하고 사랑하니, 자기 생각과 행위에 의해서 같이 사랑하는 꿈을 꿀 때가 있다. 자기 혼자 사랑해서 꾼 꿈이면, ‘심리적인 꿈, 짝사랑 꿈’이다. 혹은 상대의 혼이나 영과 같이 사랑해서 사랑하는 꿈을 꿀 때가 있다. 이 꿈이 ‘계시’이며 ‘영몽’이다. ‘실체적 꿈’이다. 늘 언제나 ‘분별’이 필요하다. 9. 자기 육이 생시에 산에 가면, 심리에 의해 그런 꿈이 꿔지기도 한다. 이런 꿈은 ‘심리적인 꿈, 짝사랑 꿈’이다. 혹은 삼위일체가 산으로 실체적 계시를 주실 때도 있다. 이 꿈은 생시에 이루어진다. 이런 꿈을 ‘계시의 꿈’, 혹은 ‘영몽’이라고 한다. 10. 요셉은 ‘상징’으로 꿈을 꿨다.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그 꿈은 ‘스스로 원해서 꾼 짝사랑 꿈, 심리적인 꿈’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시의 꿈’이었다. 11. 자기 육이 삼위를 진정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고 살았더니 꾼 꿈은 거의 ‘짝사랑 꿈’이 아닌 ‘계시의 꿈’이다. 12. 과거에 꾼 꿈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고, 겪어 보니 하나의 꿈에서 끝난 것도 많다. 이는 ‘짝사랑 꿈’이기 때문이다. 13. <삼위의 계시의 꿈>이어야만 ‘생시’에 이루어진다. 14. 선생이 어릴 때 꾼 꿈 중의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중심으로 한 줄로 쭉 서서 면담하는 꿈을 꿨다. 이것은 내가 생시에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 후 삼위와 함께 섭리역사를 펴게 되었고 어느 날 섭리사 한 집회에 갔는데, 그 날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나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그제야 그 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꿈을 꾼 지 20년이 넘어서 꿈이 이루어졌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8 15. 이 잠언을 쓰는 날 새벽에 잠을 자는데, 섭리사 사람들 몇 명이 내게 와서 나를 불렀다. 그 소리에 깊은 잠에서 깼다. 실제 섭리사 사람들의 혼들이 와서 나를 깨운 것인지, 연극처럼 그런 영적 현상을 꿈으로 꾸게 하면서 하나님이 깨우신 것인지,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꿈 이야기, 대화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궁금하면 물어라.” 하셨다. 이에 하나님이 영적인 현상을 연극처럼 만들어서 꿈을 꾸게 하여 깨운 것이면 하나님이 깨워 주셨으니 좋지만, 혹시나 섭리사 사람들의 혼들이 내게 왔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가 ‘답’이다. ‘자의에 의해 스스로 꿔지는 꿈’이 있고, ‘계시에 의해 꿔지는 꿈’이 있다. <자의에 의해 스스로 꾸는 꿈>은 ‘짝사랑 꿈’이고, <계시로 꾸는 꿈>은 ‘실체적인 꿈’이다. 고로 이루어진다.” 하셨다. 16. 상대가 좋아서 사랑하고 잘 대해 줬던 것도 실제로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하신 것들이 많다. 17. <동쪽에서 보는 것>과 <서쪽에서 보는 것>이 다르듯이, <육계에서 육들이 보는 것>과 <영계에서 영들이나 혼들 입장에서 보는 것>이 다르다. 18. 가령 자기 부모나 형제들이 죽어서 묘지를 만들어 놓고 <육들>은 세상 떠난 날을 기념하며 귀히 대하지만, <영들>은 그것을 그리 귀히 안 본다. 영의 세계에 가면 ‘영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고로 육계에 잘 오지도 않는다. 완전히 다르다. 마치 <새 집>을 짓고 다른 세상으로 살러 가면 <옛날에 살던 집>에 거의 안 가는 것과 같다. 19. <영들>은 ‘영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영>은 ‘영’으로 대해야 된다. <2016년 12월 10일 토요일 잠언> 20. <이 시대>가 얼마나 좋은지, 사람들은 모른다. 21.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는 시대>가 왔으니, ‘행하는 자’만 얼마나 좋은지 안다. 22. <행하는 자>만 ‘기쁨과 희망과 즐거움의 연속’이다. 23.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을 잊지 않고 계속해서 삼위와 주와 같이 행하며 기뻐하는 자에게만 기쁨도 희망도 쉬지 않고 연속된다. 24. 과수원 축복을 줬으면, 열매를 한 번만 따먹고 과수원을 버리고 끝내면 되겠느냐. 해마다 퇴비하고 가꿔서 해마다 열매를 거둬야 된다. 그래야 기쁨과 희망이 연속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축복해 주신 것>도 한 번, 혹은 몇 번 기뻐하고 끝내지 말고, 계속 감사하고 기뻐하고 삼위께 영광 돌려라. 그래야 기쁨도 희망도 연속된다. 25. 결혼하고 혼인 잔칫날만 자랑하고 기뻐하지 말고, 매일 계속 사랑하고 감사하며 대해야 매일 기쁨과 사랑이 연속된다. 이와 같이 <삼위가 해 주신 것>을 매일 생각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랑으로 쓰면서 삼위와 대화하며 잔치해라. 그런데 사람들은 ‘받을 때’뿐이고 ‘몇 달’만 생각하며 즐거워할 뿐이다. 잊으니, 기쁨도 떠나도 희망도 떠난다. 26. 월명동을 생각해 보아라. 과거에는 서울에 모일 곳이 없어서 한강 고수부지에 가서 모이고, 공원에서 모였다. 그때 수백 번, 수천 번씩 기도하기를, 아예 우리가 거할 곳을 달라고 했다. 이에 하나님은 자연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다. 보화같이 얻는 곳이다. 자꾸 사연을 듣고 가치를 알아야 된다. 월명동의 값을 아는 자가 있는가, 생각된다. 거기서 <영원히 잘되는 휴거 역사>를 했다. 이와 같이 과거에 쓰던 것이 불편해서 정말 좋은 것을 달라고 간구하니, 하나님은 월명동같이 또 주셨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잊지 말고 늘 생각하고 감사하고 기뻐하여라. 27. <새로 산 성전>도 그러하다. 과거를 생각하며 매일 삼위 앞에 ‘새 성전’을 주심에 감사하고, 보람 있게 귀히 여기고, 매일 삼위와 대화하며 살아라. 그래야 기쁨과 희망이 찬란하여 매일 기쁘다. 그런데 ‘첫사랑의 기쁨과 감사’를 잊으니 교회가 발전이 없고, 삶에서 기쁨이 떠나고, 생각에서 삼위도 주도 떠나 버린 것이다. <처음 사랑>을 잊지 말고 <과거의 사연>을 잊지 말아라. 잊으면 기쁨도 사라지고, 하나님의 심정이 상해서 축복도 안 해 주신다. 28. <매일 사랑하는 자>만 ‘매일’ 사랑을 느끼고 보람이 있고, 그로 인해 ‘이상적인 사랑의 차원’에 이른다. 이와 같이 매일 삼위와 주를 생각하고, 매일 감사하고 기뻐하며 대화해라. 29. 매일 먹을 식사를 만들듯이, 노력해서 진수성찬을 먹듯이, 매일 삼위와 주와 대화하며 ‘대화의 잔치’를 하고, 매일 삼위와 주와 행하고 사랑하며 ‘사랑의 잔치’를 하고, 매일 삼위와 주가 해 준 것을 잊지 않고 생각하고 감사하면서 ‘감사의 잔치’를 해라. 그래야 매일 기쁨과 희망과 사랑이 연속된다. 30. 줘도 그때만 잠깐 좋아하고 판이 식으면, 신뢰를 잃어 하나님은 더 이상 안 주신다. 그리고 전에 준 것을 가지고 만족하며 살든지, 심심해하며 살든지, 그냥 두신다. 31. 몸부림쳐 좋아하고 만들고, 몸부림쳐 기뻐하고 좋아하며 살아라. 32. 마음과 생각에 기쁨이 없으면, 지구를 다 줘도 보통 희망과 기쁨으로 살게 된다. 33. 어떤 사람은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기뻐하며 사는데, 어떤 사람은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그 소원이 이루어졌어도 잠깐 기뻐하다가 판이 식어서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9 살아간다. 하나님이 이를 보고 심정 상하셔서 말씀하신다. 그래도 말씀으로 불을 못 붙이면, 불 붙여 보람 있게 살라고 가물게 하시고 찬바람 불게 하신다. 그제야 비닐을 쓰고 다니며 ‘받는 것’을 생각하면서 깨닫는다. 34. <무지>가 ‘흑암’이 되게 하고, ‘마귀 집’이 되게 한다. <2016년 12월 12일 월요일 잠언> ◎ 이번 주 새벽에는 ‘주를 머리로 삼고 행하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1. 머리 외에는 다 지체다. 단, 어떤 지체냐에 따라서 ‘머리의 일’을 더 하느냐, 안 하느냐다. 2. <주>는 ‘머리’다. <주가 한 것>은 ‘영적’이고, <지체가 한 것>은 ‘육적’이다. 3. 지체라도 <주를 머리로 삼고 한 것>은 ‘영적’이다. 4. <주의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여 주와 함께한 것>은 ‘영적’이다. 5. 누구든지 머리 되는 <주의 생각>대로 안 하고 <자기 생각>대로 했다면, ‘육적’으로 한 것이다. 6. <주와 일체 된 자>는 ‘주의 생각에 속한 자’다. ‘영적인 자’다. 7. 주와 일체 되어 주를 머리로 삼고 주의 생각으로 했느냐, 자기 생각으로 했느냐, 이로써 ‘영적인 자’와 ‘육적인 자’를 알게 된다. 8. 자기가 신령하여 스스로 영에 속해 행해도 <머리 되는 주>를 떠나서 행하면, 그 역시 ‘육에 속한 자’다. 이런 자는 ‘머리 없이 몸만 가지고 있는 자’와 같다. 9. 사람 자체로 볼 때 <머리>는 ‘영’이라 하고, <지체>는 ‘육’에 비유한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머리’이고, <따르는 자들>은 ‘지체’와 같다. 10. <주의 말씀>이 ‘머리’다. 11. <머리로부터 온 말씀>이 곧 ‘영적인 말씀’이다. 12. <지체의 말>은 ‘육에 속한 말’이다. 13. 섭리사 안에서도 <자기 생각>을 가지고 ‘영적’이라고 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 <지체>는 ‘평생 지체’다. <주의 말>이 ‘영적’이다. 그래서 <말씀>은 ‘영적’이다. <말씀>이 ‘육’이 되어 나타났다. <주의 육>은 ‘말씀’으로 나타난다. 14. <자기 생각>대로 ‘육적’으로 행하면서, <주의 생각>으로 ‘영적’으로 행한다고 한다. - 역시 ‘육에 속한 자들’이다. 15. <주가 머리 되어서 지체를 통해서 그대로 한 것>만 ‘영적’이다. 16. 지금 ‘머리의 생각’을 ‘손’으로 그대로 쓰고 있다. 이 잠언들이다. 이 지체는 100% 영적으로 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머리 되는 주의 생각과 일체> 되어 <자기 생각을 비우고 주의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 영적’인 것이고, 이렇게 하는 자가‘영적인 삶’을 사는 자다. 17. <자기 혼자 기도하며 신령한 삶을 사는 자>는 ‘영적’으로 사는 자이지만, ‘영의 근본’에 속하여 사는 자는 아니다. <머리 되는 주와 일체 되어 사는 자>가 ‘근본의 영적인 자’다. 18. 영적으로 기도도 잘하고 신령하다고 하는 자들도 섭리사를 나갔다. 자기 혼자 육에 속한 영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머리에 붙어서 머리와 일체 되어 행했으면, ‘머리 되는 주’가 섭리사에 있듯이 그들도 함께 있을 것이다. 자기 스스로는 ‘주의 생각’과 달라지게 된다. <자기 생각>을 버려야 된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육적’이다. 그러다 결국 ‘인(人)사탄’이 된다. 19. <자기 생각>을 가지고 “주의 생각이다.” 하는 자들이 있다. 머리에게 물어보아라. 아니면 “아니다.” 하고, 맞으면 “맞다.” 한다. 20. 목회도 ‘머리의 생각’대로 안 하면, 머리가 그 지체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는다. 21. 머리의 생각대로 안 하는 자가 있기에, 머리가 그 지체를 그 사명지에서 내려오게 하고 말하기를 “주는 주가 시키는 대로 하는 지체를 쓴다. 머리는 지체가 머리의 생각대로 했는지, 그 행위를 보면 안다. 너는 머리가 시키는 대로 하도록 고쳐라! 그럼 또 쓰겠다.” 했다. 그러고 나서 오랜 후에 그 지체가 “머리가 시키는 대로 할 테니, 일을 맡겨 주세요.” 하며 오랫동안 간구했다. 그러던 중 ‘주의 몸인 한 교회’가 나와서, 그 지체에게 맡기며 “이 교회 목회를 한번 해 보자.” 했다. 그러나 ‘전에도 모순되게 행하던 것’을 아직도 못 고치고 목회를 했다. 고로 지체로 쓸 수가 없었다. 머리 되는 주는 그 지제를 정말 쓰고 싶은데, ‘안 고치니’ 못 쓰게 됐다. 머리가 쓰고 싶어도 머리가 원하는 대로 안 하면, 그 사람은 설교 때도 강의 때도 행사 때도 안 쓴다. <2016년 12월 13일 화요일 잠언> ◎ 이번 주 새벽에는 ‘주를 머리로 삼고 행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22. <자기>가 안 하면, <머리인 주>도 못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섭리사 모든 자들이 다 ‘주의 지체들’이다. 23. <다 큰 자들>이 못 하면, 섭리사의 일들을 못 한다고 생각하느냐. <10대들>이 더 잘한다. 왜? 그들은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이다. 24. ‘내가 섭리사를 나가면, 다른 사람은 못 하겠지.’ 하면서 섭리사를 나간 자들이 있다. 그들이 나가니, ‘남은 지체들’이 더 잘했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0 25. 축구 하다가 <오른발>을 다쳤다. ‘이제 축구 못 하겠지.’ 했다. 그 후 계속 <왼발>로 연습하고 연마하니, 6개월 만에 오른발보다 볼을 더 잘 차게 되었다. 이제 <왼발>이 ‘주체’가 되었고, <오른발>이 ‘대상’이 되었다. 이를 알고 해라. 교회 안에서도 “내가 안 하면 못 하겠지.” 해도 머리가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한다. 26. 섭리역사도 <시대 세례 요한>인 ‘기성’과 <섭리역사 앞에 세례 요한 격>인 ‘전초자’가 기대대로 못 했다. 그들이 없으면 안 될 줄 알았겠지만, <시대 주를 알고 따르는 자들>이 ‘주의 지체’가 되어서 ‘휴거’까지 다 이뤘다. 그들이 했으면, 자신들도 이 역사에 참여하고 증거하며 같이 영광을 얻고 같이 역사를 펴니 자기들만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못 했으니, 자기들만 손해가 갔다. 27. 선생의 가정에서도 <기성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가정의 형들>이 못 하니, 하나님은 <어린 동생들>을 키워서 ‘형들이 못 한 것’을 하게 하셨다. 그들이 ‘머리의 지체 역할’을 해 주었다. 28. <일을 맡긴 자들>이 머리가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육적’으로 하니,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린 자들>을 키워서 오직 머리가 시키는 대로 ‘영적’으로 하게 하시며 섭리역사를 펴 오셨다. 29. <본래 지체들>이 ‘육적’이라서 머리가 시키는 대로 안 하니, 그들만 못 하고 끝나게 되었다. 머리는 <후대들>을 키워서 다 했다. 30. 선생의 가정에서 <제일 기도 많이 하고 신령하다고 했던 자>가 ‘큰형’이었고, <제일 육적이라고 했던 자>가 ‘범석’이었다. 아무리 신령하다 해도 머리가 시키는 대로 안 하니, 하나님은 ‘육적인 자’를 신령하게 만들어서 머리와 일체 되게 하셨다. 그리고 그를 쓰셨다. 신령하다고 한 자는 실상은 신령하지 못했다. 이 시대도 그러하다. <최고로 기도 많이 하고 신령하다고 하는 자들>이 ‘기성인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신령하게 행하시는 것’을 몰랐다. 고로 하나님은 ‘최고 육적이다 하는 자들’을 키워서 ‘최고 영적’으로 귀히 쓰셨다. 곧 <섭리역사를 따르는 자들>이다. 머리인 주가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운명이 뒤바뀐다. 31. 신약시대의 <사울>은 지극히 ‘육적’이었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님을 깨닫고 ‘영적인 자, 사도 바울’이 되었다. 32. 이전에도 <머리>가 행했지만, 섭리사의 때가 되니 이제는 더욱 <머리>가 행한다. 고로 모두 더욱 ‘머리와 일체’ 되어 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머리’와 안 맞으니 틀어서, ‘다른 자’를 통해 그 일을 행한다. 그러면 ‘머리’와 먹고 마실 수 없게 된다. 33. <머리>는 ‘그 일의 머리’가 되어서 ‘지체’를 쓰고 하고 싶어 한다. 고로 <지체>가 ‘머리의 생각’대로만 해야지 <지체>가 ‘머리’가 되어 행하면, 삼위도 주도 상황을 틀어서 그 지체를 안 쓰신다. 모두 이것을 알고 행해라. 머리의 생각대로만 하면, 주의 즐거움에 항상 참여하는 자가 되어 주와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사랑을 받게 된다. <때>는 지나가면 끝나고, <주의 생각대로 한 자>가 ‘주인’이 된다. 34. <머리>도 ‘삼위일체의 지체’다. 고로 항상 하루에도 수십 번씩, 횟수 상관없이 삼위께 묻고 행한다. 그런데 <지체>이면서 ‘자기 식’으로 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 그 사람은 안 쓰신다. 35. 어떤 지체는 말하기를 “저 지체는 내 마음에 안 들어.” 한다. 왜 그럴까? 육적이라서 그렇다. 실상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했던 그 지체는 ‘머리와 일체 되어 성령과 함께 행하는 자’다. 그러나 자기가 머리와 안 붙어 있으니, 자기 생각으로 육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36. 섭리사에서 <주의 지체>가 누구냐. <신세대>가 누구냐. 누구든지 ‘주와 일체 되어 주를 머리로 삼고 하는 자들’이다. 나이는 상관없다. 나이 든 자도, 어린 10대도 <머리와 일체 되어 하는 자>가 ‘주의 지체’이며 ‘신세대’다. 삼위와 주는 ‘그들’을 데리고 역사를 펴 나간다. 37. 머리를 제일 속 썩이고 고통받게 하는 자들이 있으니, ‘머리와 일체 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넣고 행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머리>는 이미 알고 ‘성령과 능력’으로 틀어, 같이 못 하게 한다. 38. 역사가 깨진 이유는 ‘지체이면서 자기가 머리 되어 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만 깨졌지, <하나님의 역사>는 주와 함께 다른 지체를 통해 행하여 이루고 마셨다. 39. 지금은 <섭리사 110일 기도 기간>이다. 이 기간에 ‘자기라는 지체가 머리인 주와 일체 되는 기도’를 해라. 말로는 모두 주를 머리로 삼고 자기는 지체가 되어서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행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꼭 ‘자기 주관, 자기 생각, 자기 것’도 넣고서 한다. <머리와 완전히 일체 되지 않은 것>은 헐고, <온전히 주를 머리로 한 것>만 역사에 남겨라. 개인의 일, 교회의 일, 섭리사의 일 모두 항상 ‘머리와 일체’ 되어 해라. 그래야 주인 되어 주와 같이 쓰고 즐기며 역사를 편다. <2016년 12월 14일 수요일 잠언> ◎ 이번 주 새벽에는 ‘주를 머리로 삼고 행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복)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1 지금은 <섭리사 110일 기도 기간>이다. 이 기간에 ‘자기라는 지체가 머리인 주와 일체 되는 기도’를 해라. 말로는 모두 주를 머리로 삼고 자기는 지체가 되어서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행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꼭 ‘자기 주관, 자기 생각, 자기 것’도 넣고서 한다. <머리와 완전히 일체 되지 않은 것>은 헐고, <온전히 주를 머리로 한 것>만 역사에 남겨라. 개인·교회·섭리사의 일 모두, 항상 ‘머리와 일체’ 되어 해라. 그래야 주인 되어 주와 같이 쓰고 즐기며 역사를 편다. 40. <꿈>을 꾸고 나서 풀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꿈>은 ‘계시’이니, 하루 종일 생활하다 보면 그 날에 해당되는 꿈은 제대로 풀린다. 이렇게 풀면, 꿈을 더 지혜롭게 풀게 된다. 이와 같이 <주 머리>로 했는지, <자기 생각>으로 했는지 행한 후에는 알게 된다. 41. <자기 추측과 예측>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러나 <추측하고 예측한 것>을 실제로 행해 보면 얼마나 맞았는지, 얼마나 틀렸는지 알게 된다. 이와 같이 <주 머리>로 했는지, <자기 머리>로 했는지 해 보면 알게 된다. 대개 ‘추측’이 많다. 자기는 ‘머리의 뜻이겠지.’ 추측하고 행하지만, 얼마나 머리의 생각과 맞는지 머리에게 물어보아라. <온전치 못한 것>은 결국 드러나서 모두 알게 되고, 다른 지체들이 인정도 안 하고 신임도 안 해 버린다. 42. <머리 되는 주>가 아닌 <자기 머리>로는 ‘구원받을 자’도 없고 ‘시대 휴거를 이룰 자’도 없다. <구원과 휴거>는 오직 ‘주’로 말미암아 된다. 고로 ‘자기 머리’로 살려고 하지 말아라. 그러면 머리와 멀어져서 영광이 감소되게 된다. 43. 지금은 시대 신부들이 휴거되었고 성장했다. 모두 ‘개성의 왕들’이 되었다. 44. <머리와 일체 되어 행하는 지체>가 ‘개성의 왕’이다. 45. 섭리사의 지체들이 ‘머리를 중심하여 행하는 것’을 보아라. 자기는 못 하고 있지만, 다른 지체들이 하는 것을 못 보았느냐. 46. 주의 신임을 받는 자가 주께 말하기를, 누가 육적으로 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주가 보기에 그는 100% 성령과 주와 함께 행한 자였다. 주의 생각은 다르다. 고로 자기 머리 굴리지 말고, 스스로 판단하지 말아라. 주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47. 목사이고 지도자인데 ‘지극히 육적으로 하는 자들’이 많다. 고로 ‘어린 자들’을 경히 대한다. 실상 그들은 ‘어리지만 알고 행하는 영적인 자들’이다. 본인이 모르니, 모르는 관으로 보는 것이다. 주를 머리로 하고 행하는데,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이다. 48. 성령은 ‘하나님이 보낸 자’를 증거하러 이 세상에 오셨다. 성령을 받아도 ‘은혜에 속해 살고 마는 자들’이 있다. 이는 ‘성령의 본뜻을 행하지 못하는 자들’이다. 성령을 받았으면 ‘주를 증거’해야 된다. 49. 진짜 성령을 받으면, 성경 말씀대로 ‘주’를 온 땅에 증거하고 다닌다. 50. 증거자들이 제대로 모르면, 성령을 받아도 일반 신앙생활만 한다. 51. <보낸 자>를 증거해야, <보낸 자>가 ‘삼위일체’를 증거하여 모두 제대로 알게 한다. 52. 목회자들은 ‘교회의 머리’가 아니다. <머리>는 ‘오직 주 하나’다. 목회자들도 ‘지체’다. 목회자를 ‘머리’로 알고 행하는 자들은 다 속는다. 53. <머리>는 ‘오직 주 하나’뿐이라는 것을 늘 가르쳐라. 그리고 <머리>는 ‘오직 주 하나’뿐이라는 것을 알고 행해라. 은근히 자기를 머리화하며 중심하게 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그런 지도자는 결국 주가 쓸 수 없다. 54. 교회마다 목회자가 머리같이 하고 있는지 보아라. 주와 일체 되어 행하지 않는 목회자는 ‘자기 의견, 자기 말, 자기 생각’을 중심으로 하고 행한다. 55. ‘이것이 주의 생각이다.’ 추측하고 자기 생각으로 행하면, 때가 되면 하나님이 다 드러내어 모두 알게 하신다. 그때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56. 목회를 내보내 달라고 그리도 간구하여 내보내 주면, 아쉬울 때만 소식을 보내며 이야기한다. 그러다 소식조차 없이 목회한다. 그런 자는 ‘마지막 목회’가 될 것이다. 57. 어느 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그릇된 생각들>은 ‘틀어서’ 못 하게 하고, <그 육>은 ‘쳐서’ 못 하게 한다.” 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 ‘사람들이 생각을 잘못하고 있으면 쳐 달라.’고 간구할 때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생각>은 때리지 못하니 ‘틀어서’다스리고, <육>은 ‘때리고 쳐서’ 다스린다.” 하셨다.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을 깨달아라. <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잠언> ◎ 이번 주 새벽에는 ‘주를 머리로 삼고 행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말씀하겠습니다. 월요일부터 오늘 잠언까지 연결된 잠언이니, 꼭 연결해서 보기 바랍니다. 58. 주와 의논하고 행할 때 ‘자기 생각’을 섞지 말아라. 그러면 성령이 보시고 양심을 지적하시고, 보고자를 통해 보고하게 하여 모두 알게 하신다. 59.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일을 맡기면, 자기 생각으로 하게 되어 있다. 고로 머리가 해라.” 하셨다. 고로 머리는 일을 맡기고, 계속해서 주의 생각대로 하고 있는지 알아본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2 본인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면 머리가 시키는 대로 안 한 것들이 들어 있다. 고로 안 믿는다. 이제 모두 ‘머리’가 한다. 섭리사 어떤 모임도 행사도 ‘말씀’이 없으면 하지 말아라. <말씀>이 없으면 ‘머리 없는 지체 모임’이다. 60. 머리는 일을 맡기기만 하지 않는다. 맡기고 확인한다. 성령과 주의 영이 늘 가서 보고, 계시자들을 통해 다 본다. 자기 뜻대로 하는 자들 때문에 섭리사 생명들이 유실되고, 본인도 자기 뜻대로 하다가 섭리사를 나간다. 그러니 ‘자기중심, 자기 생각’으로 행하고 ‘자기 머리’로 육적으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냐. 61. 섭리사의 누구든지 다 ‘지체’다. <지체>를 ‘머리’로 알고 대하는 자는 다 속는다. 62. 지체는 머리와 1대1로 통하며 자기 사명을 해라. 63. 어린 자들도 머리와 1대1로 통하며 일체 되니, ‘주의 지체’가 되어 <주>가 ‘그 몸’을 쓰고 다니며 행한다. 64. 목회자들은 목회를 하다가 때가 되면 임기가 끝난다. 그러나 <머리>는 ‘영원히 머리 역할’을 한다. <육>으로는 육 평생, 성약 1000년 역사 기간 동안 머리가 되어 주고, <영>으로는 천국에 간 자들 앞에 왕이 되어 삼위를 중심해서 영원히 머리가 되어 다스린다. 65. <천국>은 육계와 체제가 달라서 육계의 부모, 부부, 형제들이 더 이상 자기 부모, 부부, 형제가 아니다. <천국>은 영의 세계로 ‘하나님의 체제’로 운영된다.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는 아예 다른 체제다. 육의 세계에서 사랑하는 자였다고, 천국에 가서도 그 사람과 같이 사랑하며 아기 낳고 살겠느냐. 비유로 말하면, 군인이 제대하면 더 이상 ‘군 체제’로 지휘를 받지 않는다. 이와 같이 <영의 체제>는 ‘육의 체제’가 아니다. 66. <영>은 육이 농사짓고 돈 벌고 장사하듯이 하지 않는다. <영>은 ‘영의 조직’으로 산다. 67. 세상에서 ‘자기 교회 목회자’를 좋아하면, 그 사고에 따라서 그 영도 ‘그 주관권’으로 가게 된다. <110일 기도 기간>에 기도만 하지 말고, 자기를 온전히 만들어라. 주를 완전히 자기 머리로 삼아라. 자기 추측과는 틀리다. 아니다. 자기 추측대로 하다가 끝나고 나서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도, 그때는 다시 못 한다. 고로 지금 제대로 확인하고 주와 일체 되어 해라. 자기 추측대로 하다가는 ‘큰일 날 일’도 좋아하며 한다. 68. 자기가 기도하여 “성령의 뜻이지요?” 하면 “그렇다.” 한다. 그러다 하루 종일 살아보면서 그 말대로 안 되어 있으면, ‘자기 주관적 생각과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성령과 주의 생각대로 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아니었다. <추측>과 <실제>는 다르다. 69. 대통령도 당선되지 않으면 패배를 인정하듯, <주의 뜻>을 알았으니 <자기 생각>이었다는 것을 인정해라. 인정하지 않으면, 성령이 <그 생각>을 틀고 <그 몸>을 치신다. 지도자들은 이 말씀에 모두 해당된다. 항상 잘하다가도 ‘자기 육성’으로 ‘자기 영성’을 짓뭉갠다. 그러다 주의 말이 선포되면 머리 되는 주와 하나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기 영이 “그것 봐라. 육의 생각이 그렇다.” 한다. 70. <지체>가 깨닫는 것이 아니다. <머리>가 깨닫고, <지체>는 머리와 일체 돼 있으면 느끼는 것이다. 71. <주>는 ‘머리’요, <따르는 자들>은 모두 ‘지체’다. <머리>는 ‘직접 엄청’ 느끼고, 지체는 ‘조금’ 느낀다. 72. <주>는 ‘직접’ 보고 듣고 알고, <대상>은 ‘느낌’으로 안다. 73. 지도자들은 ‘성령의 계시’를 받아 보아라. <성령>은 주를 증거하고 가르쳐 주신다. 74. <110일 기도 기간>에 ‘성령의 계시를 받아 보는 단계’까지 올라가 보아라. 75. <110일 기도 기간>에 기도하는데 뭐하느냐. 이때 열심히 기도하여 자기 모순을 고치고 해결해라. 76. 하다가 말지 말아라. 끝까지 해라. 될 때까지 해라. ◎ 이제 <110일 기도 기간>이 거의 다 끝났습니다. 내일과 토요일에 <기도 기간>에 정말 필요한 잠언을 또 말씀해 줄 것입니다. <2016년 12월 16일 금요일 잠언> ◎ 오늘과 내일은 ‘회개’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110일 기도 기간>과 <연말>에 모두 듣고 꼭 행해야 될 말씀입니다. 1. 죄를 지으면, 혼자서는 해결이 안 된다. <죄를 지은 자>는 회개하고, <성령>은 감동을 주고, <주>는 그 이름으로 돕고, <하나님>은 용서하여 없애 주신다. 2. 방 안의 쓰레기, 거실의 쓰레기, 주방의 쓰레기 등 집안 청소를 다 하듯이 회개해야 된다. 3. 본인이 빨래할 옷을 벗어 줘야 빨래해 주듯이, 본인이 회개해야 삼위도 주도 그 회개를 받고 같이 없애 주신다. 4. 매일 밥 먹듯이 잠자듯이, 꼭꼭 ‘죄를 회개’해라. 5. 몸에서 배설물을 버리듯이, 꼭꼭 ‘죄를 회개’해야 된다.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먹고 배설하지 못하는 자와 같아서 꽉 차면, 입 밖으로 나오게 된다. 고로 모두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3 드러나게 된다. 빨리 회개해라. 6. 왕이라도 회개를 안 해서 배설물이 입으로 나오니 모두 드러나서, 온 백성들과 어린아이들까지 알고 거리에서 시위하며 회개하라고 한다. 회개해도 자격이 없으니 물러나라고 한다. 모두 이와 같으니, 꼭 회개해야 된다. 7. 궁궐같이 좋은 집이라도 청소를 안 하고 방에, 응접실에, 정원에 쓰레기들을 늘어놓고 살면, 헌 집에서 사는 것 같다. 저마다 ‘신앙’도 그러하다. 8. 매일 이를 닦듯이, 매일 ‘회개’로 청소해라. 그래야 ‘죄’로 인해 인생이 썩지 않는다. 9. 청소 안 하면 냄새 나고, 썩고, 벌레가 생기고, 세균이 득실댄다. 그러다 해충이 몸에 달라붙어 자기 살을 뜯어 먹어 병들고 괴롭게 된다. 이와 같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러하다. <죄>로 인해 얼마나 해를 당하는지 알면, 당장 <회개>할 것이다. 10. 깨끗해야 자기 집과 방 같은 ‘자기 마음’에 ‘성령’이 오신다. 11. <신부>는 ‘깨끗함’이 아름다움이며 신비함이다. 12. 얼굴과 몸이 예뻐도 더러운 옷을 입고, 안 씻어서 냄새가 나면 누가 가까이하겠느냐. 13. 얼굴 예쁜 거지가 길에 있는데, 그 옆을 지나가니 옷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났다. 모두 도우러 왔다가 멀리 떨어져 피했다. <신앙의 신부들>도 그러하다. 육이 진짜로 예쁘고 멋진 여자와 남자라도 ‘죄’를 행실로 회개하지 않아서 영이 더러우면, 냄새가 나서 가까이 지내고 싶어도 접근할 수가 없다. 14. 거지라도 썩는 냄새 없이 깨끗이 하고 있으면 길을 가다가 바로 도와주듯이, 신앙을 깨끗이 하여 죄가 없으면 하나님도 도우시고, 땅도 돕고, 형제들도 돕는다. 15. 어떤 사람은 게을러서 방에 개미가 집을 짓고 방의 흙을 파내어 산같이 쌓아 놓고 산다. 영적으로 보면 보인다. 신앙의 할 일을 하고, 죄를 회개하여 없애고 깨끗하게 해라. <110일 기도 기간>에 먼저 100% 자기 것을 깨끗하게 하기다. 연말까지 하여라. 16. <사탄을 이기고 구원받고 휴거되어 천국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꼭 할 일>은 ‘회개’다. 17. <회개>는 ‘구원과 휴거의 필수 과목’이다. <빚>을 갚지 않고서는 ‘빚의 감옥’에서 못 나가듯이, <회개>하지 않고서는 ‘죄의 감옥’에서 못 나간다. 18. <회개>같이 ‘좋은 것’도 없다. 19. <씻어야 될 자>에게 ‘목욕탕’같이 좋은 것이 없다. 20. <씻어야 될 자>에게 ‘물’이 없고 씻어야 될 자가 ‘목욕탕’을 찾아도 없다면, 얼마나 애가 타겠느냐. 그러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저기 목욕탕 있어요. 간판 없이 가정집처럼 생겼어도 목욕탕이에요.” 하고 같이 데려가서, 때를 밀어 주며 깨끗이 씻게 해 주었다면, 그는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주>는 ‘사명자’로 왔으니 회개하라고 늘 외치며 가르쳐 준다. 그리고 같이 때를 밀어 주듯, 같이 회개해 준다. 때가 지나면, 목욕탕 문을 닫게 된다. 21. 깨끗이 씻고 다니면 떳떳하고, 신사와 숙녀가 된다. 22. 집도 더러우면 미친개가 들어와서 배설하고 가고, 깨끗하면 벌과 나비가 날아든다. 23. <110일 기도 기간>에 자기 죄를 깨끗이 회개하고 깨끗하게 하여라. 24. 어떤 사람은 ‘죄’로 인해 더럽고 단장이 안 되어서, 성령이 가셨다가 그냥 돌아오기도 한다. 25. 헌 집도 청소하고 보수하면 ‘새 집’같이 된다. <마음의 방, 마음의 집> 도 그러하다.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어라. 26. 작은 방도 청소하고 정리하면 커진다. <마음의 방, 마음의 집>도 그러하다. 27. 옛집은 아무리 정리해도 옛집이다. 기성도 그러하다. 28. 청소하면, 집이 고급스러워진다. 신앙도 그렇다. 회개하고 깨끗이 살면, 고급스러운 자가 된다. 29. <만들기>에 따라 ‘자기 인생을 평가’ 받는다. 30. 꿈에 ‘자기 인생의 집’이 어떤 집인지 보아라. 31. 청소하고 깨끗하게 하여 자기 집을 고급스럽게 단장하는 자가 있고, 아예 다시 멋지게 짓는 자도 있다. - 신앙도 저마다 하기에 달려 있다. 32. <자기 자신>은 ‘자기가 사는 집’과 같다. <자기 신앙>도 ‘자기 영적 집’과 같다. 깨끗하게 해라. 새로 멋있게 지어라. 주의 말씀으로다. 주의 생각으로다. <2016년 12월 17일 토요일 잠언> ◎ 어제, 오늘은 ‘회개’에 대해 말씀합니다. <110일 기도 기간>과 <연말>에 모두 듣고 꼭 행해야 될 말씀입니다. 33. 청소는 할 때 깨끗이 하듯이, <회개>도 하다가 말지 말고 ‘깨끗이 할 때 아예 깨끗이 하기’다. 34. <하다가 마는 자>는 몸 한쪽은 씻고 한쪽은 안 씻는 것과 같아서 보는 자들도 꿉꿉하고, 자신은 더 꿉꿉하다. 35. 목욕탕에 갔다가 반만 씻고 오면, 안 씻은 쪽은 간지러워서 못 견디게 된다. <회개>도, <인생의 할 일>도 모두 꼭 해야만 된다. 36. 하다가 말면, 목적지에 못 간다. 37. 사랑도 하다가 말면, 과거에 수고한 것이 헛수고가 된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4 38. 월명동도 할 일을 다 해야 아름다움과 웅장함과 신비함이 다 드러나게 된다. 39. 끝까지 하되, ‘할 일을 다 하기’다. 40. 하다 말면, 한 만큼만 된다. 41. 삼위는 하다가 말지 않는다. 하나님은 “정녕코 해라.” 하셨다. 42. 성경의 예언대로 하나님은 정녕코! ‘새 일’도 하시고, ‘그때마다 할 일’도 하시고, ‘마지막 휴거 역사’도 하고 마셨다. 43. <하다 마는 자>는 ‘아기가 나오는 중에 해산을 중단한 여자’와 같다. 44. <하다 마는 자>는 지붕만 덮으면 들어가서 사는데, 지붕을 안 쳐서 겨울에 천막 치고 사는 자와 같다. 45. <하다 마는 자>는 ‘보화가 묻힌 밭까지만 사고 마는 자’와 같다. 46. <깨끗이 다 회개하고, 끝까지 할 일을 다 하는 자>가 ‘보화까지 얻는 자’다. 47. <하다가 마는 자>는 아홉 개의 산을 넘었고 한 개의 산만 더 넘으면 소원 성취되는데,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자와 같다. 48. 하다가 말면, 극적인 기쁨이 솟아나지 않는다. 49. 샘을 파다가 말면, 흙탕물만 나온다. 하나님 앞에 ‘신앙의 할 일’을 두고, 모두 해야 된다. 하나님 앞에 ‘꺼리는 것’을 두고, 모두 회개해야 된다. 50. <하다가 만 자>는 ‘만들어지다가 만 자’와 같다. 눈도 반, 코도 반, 입도 반, 귀도 반, 각 지체도 반씩만 형성된 자와 같다. 이와 같이 신앙도 하다가 말아서 완성되지 않으면, ‘미완성 신앙인, 불구자 신앙인’이다. 51. 할 말도 하다가 말면 모르니, 그 말을 듣고 뭘 해 줄 수가 없다. 52. 차도 만들다가 말면, 쓸 수가 없다. 반만 만들어도 못 쓰고, 90%만 만들어도 못 쓴다. 100% 만들어야 쓰게 된다. 신앙도 그러하다. 53. 글씨 한 자도 쓰다가 말면, 무슨 글씨인지 모른다. 54. 잠언도 깨닫다가 말지 말고, 끝까지 깨달아야 된다. 55. <할 일을 하다가 마는 자>같이 ‘모자란 자’도 없다. 56. <할 일을 하다가 마는 자>는 ‘생각이 모자란 자’다. 57. 대둔산 용문골 바위 절벽에서 기도하는데 비가 오나 더우나 배고프나 하다가 말지 않고, 다 기도하고 내려와서 시대 복음을 전했다. 시대 복음을 전하면서 환난과 핍박이 오고 악평하고 반대해도 하다가 말지 않고, 다 전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보낸 자의 육신’을 쓰고 하니, 하다가 말지 않았다. 삼위일체는 보낸 자와 함께 끝까지 할 것을 다 하여, 성자가 다시 오신 지 70년 만에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셨다. 58. <휴거>는 남녀가 다 커서 연애하고 결혼한 것과 같아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대로 보낸 자와 함께 끝까지 해야 “휴거됐다.”라고 표현한다. 59. 딴 데서는 “휴거됐다.”라는 말을 못 쓴다. 쓰면, ‘거짓’이 되고 ‘죄’가 된다. 60. 하다가 말았는데 휴거되는 자는 없다. 61. <구약과 신약>은 ‘과정’이다. <성약역사>가 와도 시대 말씀을 듣고 주를 따라 성장하고 만들어 완성해야, 그제야 ‘휴거 말씀’을 준다. 그 말씀을 듣고 완전하게 행해야 ‘휴거’된다. 62. 어린아이 때는 ‘결혼’이라는 말을 안 한다. 다 커서 결혼하기 직전에 ‘결혼’이라고 한다. <휴거 역사>도 그러하다. 먼저 ‘시대 구원자’가 와서 시대 성약 복음으로 삼위와 함께 ‘성약의 신부들’을 낳고, 그들이 크면 그제야 ‘휴거 말씀’을 주어 마지막으로 만들어서 ‘휴거’시킨다. <휴거>는 삼위와 시대 주와 일체 되고 ‘사랑의 신부’가 되어 ‘황금성 천국’으로 가는 것이다. 63. 할 일을 다 해야 완성되어 기쁘고 흥분되고, 자기에게도 영광이 되고, 삼위와 주께도 영광이 되고, 이상세계가 된다. 완전하게 완성되기 전까지는 과정의 기쁨이다. 64. 월명동도 ‘다 만든 곳’만 100% 쓰고 찬란하게 빛난다. 65. 올해는 ‘저마다 목적한 것을 두고 도전하여 끝내 하기’다. <2016년 12월 19일 월요일 잠언> ◎ 어제, 오늘은 ‘회개’에 대해 말씀합니다. <110일 기도 기간>과 <연말>에 모두 듣고 꼭 행해야 될 말씀입니다. 33. 청소는 할 때 깨끗이 하듯이, <회개>도 하다가 말지 말고 ‘깨끗이 할 때 아예 깨끗이 하기’다. 34. <하다가 마는 자>는 몸 한쪽은 씻고 한쪽은 안 씻는 것과 같아서 보는 자들도 꿉꿉하고, 자신은 더 꿉꿉하다. 35. 목욕탕에 갔다가 반만 씻고 오면, 안 씻은 쪽은 간지러워서 못 견디게 된다. <회개>도, <인생의 할 일>도 모두 꼭 해야만 된다. 36. 하다가 말면, 목적지에 못 간다. 37. 사랑도 하다가 말면, 과거에 수고한 것이 헛수고가 된다. 38. 월명동도 할 일을 다 해야 아름다움과 웅장함과 신비함이 다 드러나게 된다. 39. 끝까지 하되, ‘할 일을 다 하기’다. 40. 하다 말면, 한 만큼만 된다. 41. 삼위는 하다가 말지 않는다. 하나님은 “정녕코 해라.” 하셨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5 42. 성경의 예언대로 하나님은 정녕코! ‘새 일’도 하시고, ‘그때마다 할 일’도 하시고, ‘마지막 휴거 역사’도 하고 마셨다. 43. <하다 마는 자>는 ‘아기가 나오는 중에 해산을 중단한 여자’와 같다. 44. <하다 마는 자>는 지붕만 덮으면 들어가서 사는데, 지붕을 안 쳐서 겨울에 천막 치고 사는 자와 같다. 45. <하다 마는 자>는 ‘보화가 묻힌 밭까지만 사고 마는 자’와 같다. 46. <깨끗이 다 회개하고, 끝까지 할 일을 다 하는 자>가 ‘보화까지 얻는 자’다. 47. <하다가 마는 자>는 아홉 개의 산을 넘었고 한 개의 산만 더 넘으면 소원 성취되는데,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자와 같다. 48. 하다가 말면, 극적인 기쁨이 솟아나지 않는다. 49. 샘을 파다가 말면, 흙탕물만 나온다. 하나님 앞에 ‘신앙의 할 일’을 두고, 모두 해야 된다. 하나님 앞에 ‘꺼리는 것’을 두고, 모두 회개해야 된다. 50. <하다가 만 자>는 ‘만들어지다가 만 자’와 같다. 눈도 반, 코도 반, 입도 반, 귀도 반, 각 지체도 반씩만 형성된 자와 같다. 이와 같이 신앙도 하다가 말아서 완성되지 않으면, ‘미완성 신앙인, 불구자 신앙인’이다. 51. 할 말도 하다가 말면 모르니, 그 말을 듣고 뭘 해 줄 수가 없다. 52. 차도 만들다가 말면, 쓸 수가 없다. 반만 만들어도 못 쓰고, 90%만 만들어도 못 쓴다. 100% 만들어야 쓰게 된다. 신앙도 그러하다. 53. 글씨 한 자도 쓰다가 말면, 무슨 글씨인지 모른다. 54. 잠언도 깨닫다가 말지 말고, 끝까지 깨달아야 된다. 55. <할 일을 하다가 마는 자>같이 ‘모자란 자’도 없다. 56. <할 일을 하다가 마는 자>는 ‘생각이 모자란 자’다. 57. 대둔산 용문골 바위 절벽에서 기도하는데 비가 오나 더우나 배고프나 하다가 말지 않고, 다 기도하고 내려와서 시대 복음을 전했다. 시대 복음을 전하면서 환난과 핍박이 오고 악평하고 반대해도 하다가 말지 않고, 다 전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보낸 자의 육신’을 쓰고 하니, 하다가 말지 않았다. 삼위일체는 보낸 자와 함께 끝까지 할 것을 다 하여, 성자가 다시 오신 지 70년 만에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셨다. 58. <휴거>는 남녀가 다 커서 연애하고 결혼한 것과 같아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대로 보낸 자와 함께 끝까지 해야 “휴거됐다.”라고 표현한다. 59. 딴 데서는 “휴거됐다.”라는 말을 못 쓴다. 쓰면, ‘거짓’이 되고 ‘죄’가 된다. 60. 하다가 말았는데 휴거되는 자는 없다. 61. <구약과 신약>은 ‘과정’이다. <성약역사>가 와도 시대 말씀을 듣고 주를 따라 성장하고 만들어 완성해야, 그제야 ‘휴거 말씀’을 준다. 그 말씀을 듣고 완전하게 행해야 ‘휴거’된다. 62. 어린아이 때는 ‘결혼’이라는 말을 안 한다. 다 커서 결혼하기 직전에 ‘결혼’이라고 한다. <휴거 역사>도 그러하다. 먼저 ‘시대 구원자’가 와서 시대 성약 복음으로 삼위와 함께 ‘성약의 신부들’을 낳고, 그들이 크면 그제야 ‘휴거 말씀’을 주어 마지막으로 만들어서 ‘휴거’시킨다. <휴거>는 삼위와 시대 주와 일체 되고 ‘사랑의 신부’가 되어 ‘황금성 천국’으로 가는 것이다. 63. 할 일을 다 해야 완성되어 기쁘고 흥분되고, 자기에게도 영광이 되고, 삼위와 주께도 영광이 되고, 이상세계가 된다. 완전하게 완성되기 전까지는 과정의 기쁨이다. 64. 월명동도 ‘다 만든 곳’만 100% 쓰고 찬란하게 빛난다. 65. 올해는 ‘저마다 목적한 것을 두고 도전하여 끝내 하기’다. <2016년 12월 20일 화요일 잠언> 19. 자기 자녀나 형제나 애인이 살아 있는데 잃어버리면 ‘산 자’를 찾아다니게 되고, 죽었다면 ‘죽은 시체’라도 귀히 여기고 찾아다니게 된다. 20. 영계나 육계나 <좋은 기회>를 놓치면, <시체>라도 찾으러 다니듯 갈망하며 산다. 전심을 다해 열심히 살면서 <좋은 기회>를 찾고 잡아라. 잘못하면 <죽은 시체>라도 찾으면 좋겠다는 운명으로 기울어진다. 21. <육신>이 고생돼도 ‘육의 것’을 중심하지 않고 ‘영’을 위해 살면 <영>이 살아 있다. 고로 마치 살아 있는 애인을 부르면 살아 있으니 금방 대답하듯 <자기 영혼>을 부르면 대답하여 금방 찾는다. 반면 ‘육의 것’만 중심하며 산 자들은 <자기 영혼>이 죽어서 찾아도 대답이 없다. 죽은 시체라서 사망에 있으니 대답도 없다. 찾아도 ‘시체’같이 되었으니 시체를 껴안고 울며 안타까워하다가, 결국 시체를 사망에 묻고 끝난다. 이래서 ‘영’을 위해 살아야 된다. <자기 육>이 ‘육’을 위해서만 살아서 <자기 영>을 죽인 것이다. 22. <자기 육의 생각과 행위>가 ‘자기 영’을 영원히 죽이기도 하고, 영원히 살리기도 한다. 23. <육>이 고생돼도, 새벽에도 낮에도 <자기 영>을 하나뿐인 애인같이 챙기면서 ‘영’을 위해 살아라. 24. <자기 영>을 잔인하게 ‘사망’에 보내 놓고서, 세상을 즐기고 육적인 것을 즐기면서 뭐가 그리 좋다고 희열을 느끼며 사느냐. 제발 깨달아라. <휴거된 자들>은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6 25. 재벌도, 명예가도, 세상 스타들도, 왕들도 ‘휴거된 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마치 사약을 먹고 마지막으로 즐기는 자들과 같다. 그런데 왜 그들을 보고 부러워하느냐. 왕들도 다 누리며 살다가도 하루 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을 못 하고 산다. 하나님과 그 보낸 자를 머리로 삼지 않고 사니, 지체들은 모른다. <머리>는 예리하여 ‘하나님의 행하심’을 안다. 26. <육을 위해 사는 자들>에게는 계속해서 ‘환난’이 온다. 27. <주>를 ‘머리’로 삼고 살지 않으면, 차원이 낮아서 ‘육’이 계속 고통을 받는다. 그로 인해 ‘영’도 영원히 고통이다. 28. <육>은 ‘감각’으로 행하니, 실수투성이다. 29. <육>은 자꾸 ‘느끼는 대로’ 행한다. <생각>은 생각하고 차원 높이 행한다. 고로 ‘육, 살덩이의 감각’으로 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땅과 하늘 차이다. 30. <육>은 ‘육에 속한 뻔한 생각’으로 생각하고 산다. 31. <육>은 먹고 이성을 취하고 느끼고 즐긴다. 물체의 존재라 그러하다. <영>은 먹고 이성을 취하고 느끼고 즐기지 않는다. 고로 ‘영’으로 살면, ‘육에 속한 것들’이 싹 없어진다. 그 삶이 ‘육’에게까지 영향을 주어 ‘육의 체질’도 바뀐다. 32. 자기 다스리기다. 왕들도 자기를 못 다스리니 ‘육’으로 흘러서 백성들보다 못하게 ‘땅에 굴러다니는 생각’으로 흘러갔다. 33. 한 나라의 주권자도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고 ‘사람을 중심’하면, 끝 날에는 ‘그 행위’가 모두 드러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34. 자기 방, 자기 집의 더러운 것을 청소하듯, ‘부정부패’를 없애야 된다. 고로 ‘국가’를 위해 기도해라. <국가>는 ‘자기 것’이다. 국가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그만큼 자기 손해다. <섭리역사>도 그러하다. 섭리세계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그만큼 자기 것에도 손해가 간다. 기도하면 자기도 유익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국운’이 기울어져서 그 민족이 세월호가 침몰하듯 하게 된다. <국가>는 ‘자기 것’이니, 국가를 위해 기도해라. 기도해야, 하나님이 보시고 처리해 주신다. 기도하지 못한 만큼, 이미 손해가 간 것이다. 35. 하나님은 <민족>을 위해 기도한 자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다 드러내고 행하셨다. 36. 전능자를 생각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산 자들이 공의의 심판을 받도록, 자기가 행한 대로 받도록 ‘사명자’는 간구한다. 이에 인생들은 자기가 행한 대로 ‘복’도, ‘화’도 받게 된다. <자기 행위에 대한 대가>는 ‘남’이 못 받는다. 자기 행위에 의한 <복>도, <화>도 모두 ‘자기’가 받는다. 37. 온 세상은 모두 ‘하나님의 세계’다. 3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드러내며 세상을 책망한다고 했다. 모두 기도할 때다. 39. 여우 짓을 하며 산 자들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을 받으니, <국가>를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모두 결사적으로 기도해라. 40. 하나님은 보낸 자를 통해 “환난이 온다. 연말 심판을 한다. 고로 기도해라.” 하시어, <110일 기도>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보낸 자에게 말씀하시고, ‘악과 썩는 것들’을 다 심판하신다. 41. 악인들은 ‘도살의 날’을 앞두고, 그 행위로 살찌게 한다. 42. 자기 안의 여우, 섭리사 안의 여우, 국가 안의 여우가 없어지게 기도해라. 여우들이 많다. 안 돌아다닌 곳이 없다. 하나님이 행하시도록 기도해라! 43. <자기 육의 행위>로 ‘자기 영’을 ‘사망’에 보내 놓고, <육>은 잔치하는 미련한 자들이다. 너는 이런 미련한 자가 되지 말아라. <2016년 12월 21일 수요일 잠언> 31.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눈에 띄고, 그것을 취하고 만족한다. 32. 자기가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도 성령님도 여건을 틀어서 ‘다른 것들’도 사 오게 하셨다. 고로 많은 자들이 다 좋아하게 하셨다. 33. 전능하신 삼위일체는 ‘뜻’이 있고 ‘목적’이 있으면, <삼위가 좋아하는 것>을 얻고 <삼위가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해 인간을 통해 신비하고 지혜롭게 행하신다. 가령 어느 곳에 ‘삼위가 원하는 돌’이 있다 하자. 그런데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삼위가 좋아하는 돌’은 안 좋아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돌’만 사려 했다. 그러면 ‘삼위가 좋아하는 돌’은 못 사게 되니, <돌 파는 자>를 통해서 여건을 틀어 돌 하나만 사 오게 하지 않고 ‘그 사람이 사려는 돌’과 ‘삼위가 좋아하는 돌’을 같이 묶어서 팔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가지고 오게 하여, 사랑하는 자들이 모두 다 개성대로 좋아하게 하신다. 사람을 전도할 때도 그렇다. 전도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전도하러 갔다가, 하나님과 성령님이 역사하여 ‘삼위가 원하는 사람’도 같이 오게 하여 ‘뜻있는 자’를 데려오신다. 34.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전도했는데, ‘그때 옆에 같이 있던 사람’도 같이 전도되었다. 그런데 ‘원래 전도했던 사람’은 나가고, ‘그때 같이 따라온 사람’만 남았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자’가 남았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7 35. 자기가 좋아해서 전도했는데,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이 연결되어 오도록 성령님은 감동을 주시며 ‘성령이 전도하려고 하는 자’를 오게 하실 때가 많다. 36. <월명동에 필요한 돌>을 사러 다녔는데 없어서 못 사고, ‘생각지도 못한 형상석’이 있어서 사 왔다. 기도하고 알고 보니, 하나님이 ‘그 돌’을 사 오게 하려고 돌을 사러 가게 했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물어보면 안다고 하셨다. 37. 월명동 <초가집돌> 사연이다. 한창 약수샘 옆 돌 작업을 할 때였다.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는데, 어느 지점에서 여러 개의 돌들을 갖다가 쌓아도 들어가지를 않고 안 맞았다. 맞는 돌이 없어서 속상했다. “이렇게도 돌이 안 맞냐. 자로 재서 다른 돌을 찾아오자. 이 지역 어디에 그런 돌이 있겠냐? 600미터는 나가야겠다.” 하고, 나갔다. 목적지에 가니 돌이 있었다. 그런데 돌이 좀 커서 포클레인으로 깨려고 했다. 깨다가 포클레인 기름관이 터져서 못 깨고, 그 돌을 그냥 차로 싣고 왔다. 그 돌을 그냥 갖다 쌓으니, 역시 안 맞았다. 두루뭉술한 돌이라서 운동장 맨 끝에 흙을 채우는 곳에 갖다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비가 막 쏟아졌고, 땅이 질어서 포클레인이 못 움직이니 그날은 못 옮겼다. 그날은 작업을 중지했다. 다음 날 새벽, 비가 그치고 선생이 제일 먼저 조깅하려고 운동장에 나와 보니 축구를 할 만했다. 그런데 운동장에 ‘어제 버리려 했던 돌’이 있어서 치우고 축구를 하려고, 그 돌을 다시 봤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아니, 600미터나 멀리 가서 가져온 돌이 이렇게 안 맞아? 두루뭉술하게 생겼다. 아깝다. 운동장 맨 끝의 매립 장소에다가 넣고 흙이 안 무너지게 메우자. 이리도 돌 크기가 안 맞냐.’ 했다. 그리고 ‘그 돌의 사방’을 확인하면서 보니, 그때 ‘한 형상’이 눈에 띄면서 보였다. ‘옛날에 선생이 살던 생가, 초가집 형상’ 같았다. 즉시 포클레인 기사보고 “빨리 나와서 이 돌 좀 바로 세워 봐라.” 했다. 포클레인 기사가 뛰어나와서 돌을 바로 세우니, ‘옛날에 선생이 살던 초가집 형상’과 거의 닮은 모양이었다. 지붕이 썩어서 고친 것도 닮았고, 오래되어 약간 기운 모양도 닮았고, 추녀와 흙벽 등도 닮아 있었다. 운동하러 나온 제자들이 모두 “초가집 형상이다.” 하고 외쳤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여건을 틀어 ‘이 돌’을 가져오게 하시고, 또 여건을 틀어 ‘이 돌의 형상’을 찾게 하시고, 깨닫게 하고 좋아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다른 것’을 행하면서 ‘뜻있는 것’을 찾게 하셨다. 하나님이 선물로 ‘작품 돌’을 주신 것이다. 예전에는 수십 년을 봐도 그 형상인지 몰랐다. 반은 묻혀 있어 반만 보이고, 비스듬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살던 초가집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어 놨다고 늘 아쉽다고 기도했었는데, 소원이 풀렸다. 하나님은 사진보다 더 좋은 작품으로 ‘그 초가집을 닮은 돌’을 주셨다. 월명동 자연성전에는 이렇게 찾고 가져온 돌들과 나무들이 많다. 38. 전능하신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은밀하게 행하신다. 고로 처음에는 사연을 모른다. 후에 알고 깨달은 자는 기절초풍하며 감사하고 감탄하고 감격한다. 39. 모르는 자는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하며 ‘우연’으로 생각한다. 자기중심, 자기 사고대로 사는 자다. 40. 자기가 행하다가 따라오는 ‘자체 일’도 있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여 뜻있는 것을 주시려고, 그 행위에 따라서 여건을 틀어 인도해 주시는 일’이 많다. 이것을 믿어야 하나님이 자꾸 해 주신다. 41. 섭리사 어떤 사람이 계시도 받고 기도도 잘하다가, 관리자가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고 감시하는 관리를 하여 세상으로 뛰쳐나갔다. 성자께 이 사연을 말하면서, 잘못 관리한 것을 회개하며 ‘뜻있는 자’이니 다시 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다시 돌아오면, 내가 직접 관리하겠다고 했다. 기도하고 성자가 시키는 대로 편지를 써 주었고, 그 생명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각종 일을 시키기도 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도 하게 했다. 그 사연을 들어 보니,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집으로 오다가 교회 십자가가 보여 교회에 들어가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싶어서 부르면서, 그때부터 계속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섭리 교회에 와서 처음에 단상 청소, 교회 청소를 1년 동안 했다고 했다. 삼위는 ‘앞날의 뜻’이 있어, 전도자가 섭리 교회로 전도하기 전에 어릴 때부터 믿고 행하도록 인도하신 것이다. 그 사연을 듣고, ‘뜻이 있으니 챙기게 했구나.’ 더욱 깨닫게 되었다. 이같이 관리해 준 것도 ‘우연’이 아닌 ‘뜻’이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자>는 삼위가 감동을 주어 더 관리하게 하신다. 전에 그같이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본인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행한 것이지, 그냥 자기만 행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라. 42. <자기 공적과 사연>은 어디로 안 간다. 다 자기에게 돌아온다. <2016년 12월 22일 목요일 잠언> 31.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눈에 띄고, 그것을 취하고 만족한다. 32. 자기가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도 성령님도 여건을 틀어서 ‘다른 것들’도 사 오게 하셨다. 고로 많은 자들이 다 좋아하게 하셨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8 33. 전능하신 삼위일체는 ‘뜻’이 있고 ‘목적’이 있으면, <삼위가 좋아하는 것>을 얻고 <삼위가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해 인간을 통해 신비하고 지혜롭게 행하신다. 가령 어느 곳에 ‘삼위가 원하는 돌’이 있다 하자. 그런데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삼위가 좋아하는 돌’은 안 좋아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돌’만 사려 했다. 그러면 ‘삼위가 좋아하는 돌’은 못 사게 되니, <돌 파는 자>를 통해서 여건을 틀어 돌 하나만 사 오게 하지 않고 ‘그 사람이 사려는 돌’과 ‘삼위가 좋아하는 돌’을 같이 묶어서 팔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가지고 오게 하여, 사랑하는 자들이 모두 다 개성대로 좋아하게 하신다. 사람을 전도할 때도 그렇다. 전도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전도하러 갔다가, 하나님과 성령님이 역사하여 ‘삼위가 원하는 사람’도 같이 오게 하여 ‘뜻있는 자’를 데려오신다. 34.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전도했는데, ‘그때 옆에 같이 있던 사람’도 같이 전도되었다. 그런데 ‘원래 전도했던 사람’은 나가고, ‘그때 같이 따라온 사람’만 남았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자’가 남았다. 35. 자기가 좋아해서 전도했는데,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이 연결되어 오도록 성령님은 감동을 주시며 ‘성령이 전도하려고 하는 자’를 오게 하실 때가 많다. 36. <월명동에 필요한 돌>을 사러 다녔는데 없어서 못 사고, ‘생각지도 못한 형상석’이 있어서 사 왔다. 기도하고 알고 보니, 하나님이 ‘그 돌’을 사 오게 하려고 돌을 사러 가게 했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물어보면 안다고 하셨다. 37. 월명동 <초가집돌> 사연이다. 한창 약수샘 옆 돌 작업을 할 때였다.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는데, 어느 지점에서 여러 개의 돌들을 갖다가 쌓아도 들어가지를 않고 안 맞았다. 맞는 돌이 없어서 속상했다. “이렇게도 돌이 안 맞냐. 자로 재서 다른 돌을 찾아오자. 이 지역 어디에 그런 돌이 있겠냐? 600미터는 나가야겠다.” 하고, 나갔다. 목적지에 가니 돌이 있었다. 그런데 돌이 좀 커서 포클레인으로 깨려고 했다. 깨다가 포클레인 기름관이 터져서 못 깨고, 그 돌을 그냥 차로 싣고 왔다. 그 돌을 그냥 갖다 쌓으니, 역시 안 맞았다. 두루뭉술한 돌이라서 운동장 맨 끝에 흙을 채우는 곳에 갖다 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비가 막 쏟아졌고, 땅이 질어서 포클레인이 못 움직이니 그날은 못 옮겼다. 그날은 작업을 중지했다. 다음 날 새벽, 비가 그치고 선생이 제일 먼저 조깅하려고 운동장에 나와 보니 축구를 할 만했다. 그런데 운동장에 ‘어제 버리려 했던 돌’이 있어서 치우고 축구를 하려고, 그 돌을 다시 봤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아니, 600미터나 멀리 가서 가져온 돌이 이렇게 안 맞아? 두루뭉술하게 생겼다. 아깝다. 운동장 맨 끝의 매립 장소에다가 넣고 흙이 안 무너지게 메우자. 이리도 돌 크기가 안 맞냐.’ 했다. 그리고 ‘그 돌의 사방’을 확인하면서 보니, 그때 ‘한 형상’이 눈에 띄면서 보였다. ‘옛날에 선생이 살던 생가, 초가집 형상’ 같았다. 즉시 포클레인 기사보고 “빨리 나와서 이 돌 좀 바로 세워 봐라.” 했다. 포클레인 기사가 뛰어나와서 돌을 바로 세우니, ‘옛날에 선생이 살던 초가집 형상’과 거의 닮은 모양이었다. 지붕이 썩어서 고친 것도 닮았고, 오래되어 약간 기운 모양도 닮았고, 추녀와 흙벽 등도 닮아 있었다. 운동하러 나온 제자들이 모두 “초가집 형상이다.” 하고 외쳤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여건을 틀어 ‘이 돌’을 가져오게 하시고, 또 여건을 틀어 ‘이 돌의 형상’을 찾게 하시고, 깨닫게 하고 좋아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다른 것’을 행하면서 ‘뜻있는 것’을 찾게 하셨다. 하나님이 선물로 ‘작품 돌’을 주신 것이다. 예전에는 수십 년을 봐도 그 형상인지 몰랐다. 반은 묻혀 있어 반만 보이고, 비스듬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살던 초가집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어 놨다고 늘 아쉽다고 기도했었는데, 소원이 풀렸다. 하나님은 사진보다 더 좋은 작품으로 ‘그 초가집을 닮은 돌’을 주셨다. 월명동 자연성전에는 이렇게 찾고 가져온 돌들과 나무들이 많다. 38. 전능하신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은밀하게 행하신다. 고로 처음에는 사연을 모른다. 후에 알고 깨달은 자는 기절초풍하며 감사하고 감탄하고 감격한다. 39. 모르는 자는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하며 ‘우연’으로 생각한다. 자기중심, 자기 사고대로 사는 자다. 40. 자기가 행하다가 따라오는 ‘자체 일’도 있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여 뜻있는 것을 주시려고, 그 행위에 따라서 여건을 틀어 인도해 주시는 일’이 많다. 이것을 믿어야 하나님이 자꾸 해 주신다. 41. 섭리사 어떤 사람이 계시도 받고 기도도 잘하다가, 관리자가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고 감시하는 관리를 하여 세상으로 뛰쳐나갔다. 성자께 이 사연을 말하면서, 잘못 관리한 것을 회개하며 ‘뜻있는 자’이니 다시 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다시 돌아오면, 내가 직접 관리하겠다고 했다. 기도하고 성자가 시키는 대로 편지를 써 주었고, 그 생명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각종 일을 시키기도 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도 하게 했다. 그 사연을 들어 보니,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집으로 오다가 교회 십자가가 보여 교회에 들어가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싶어서 부르면서, 그때부터 계속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19 그리고 섭리 교회에 와서 처음에 단상 청소, 교회 청소를 1년 동안 했다고 했다. 삼위는 ‘앞날의 뜻’이 있어, 전도자가 섭리 교회로 전도하기 전에 어릴 때부터 믿고 행하도록 인도하신 것이다. 그 사연을 듣고, ‘뜻이 있으니 챙기게 했구나.’ 더욱 깨닫게 되었다. 이같이 관리해 준 것도 ‘우연’이 아닌 ‘뜻’이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자>는 삼위가 감동을 주어 더 관리하게 하신다. 전에 그같이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본인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행한 것이지, 그냥 자기만 행한 것이 아님을 깨달아라. 42. <자기 공적과 사연>은 어디로 안 간다. 다 자기에게 돌아온다. <2016년 12월 23일 금요일 잠언> ◎ 오늘 잠언은 매우 깊고 귀한 잠언입니다. 1. 혼자 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가 모든 사람들을 통해서 하는 영광을 막는 것이다. 2. 자기가 해야 될 일을 안 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영광이 안 되고, 또 자기 홀로 자기 주관으로 하면 모든 사람의 개성을 통해 행하시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막는 것이니 인생들이 삼위께 영광을 못 돌리게 막게 된다. 고로 다 고쳐 행하도록 틀어 행하신다. 3. 삼위가 여건을 틀었는데도 계속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따르는 자들을 통해 막고 틀어 행하신다. 4. <자기 것>이지만, 실상 ‘자기 상대의 것’이다. 5. <공원>은 국가의 것이지만, 국가의 상대가 되는 ‘백성의 것’이다. 6.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사랑>은 삼위 자기의 것이지만, ‘삼위를 사랑해 주는 상대체의 것’이다. 7. <주>도 자기 것이지만, ‘사랑하고 위하고 귀히 여기는 자의 것’이다. 8. <볼펜 잉크>가 볼펜의 것이지만, ‘쓰여지는 상대, 종이의 것’이다. 9. <음식>은 주인의 것이지만, ‘값을 지불하고 먹는 자의 것’이다. 10.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사랑>도 삼위 자기의 것이지만, 실상은 ‘삼위를 섬기고 좋아하여 삼위의 상대체가 된 자의 것’이다. 11. <물건>도 그 주인의 것이지만, 실상은 ‘그 물건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자의 것’이 된다. 12. <국가>도 ‘사랑하는 자의 것’이 된다. 13. <자기 몸>도 자기 것이지만, 상대가 되는 자가 좋아하고 사랑하여 조건을 지불하여서 자기가 허락하면 ‘상대의 것’이 된다. 14. 부부끼리 같이 살면 <남자의 몸, 여자의 몸>은 각각 자기 것이지만, ‘그 몸을 사랑하는 상대의 것’이 되어 산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몸>도 자기 것이지만, ‘그 말씀을 듣고 그 뜻에 순종하여 상대체가 되는 자의 것’이 되어 주신다. 이 말이 맞느냐고 하나님께 확인하니 말씀하시기를 “맞다. 댐에서 물을 방출할 때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물같이, 막을 수 없는 웅장한 순리의 말이다.” 하셨다. 15. 볼펜 속의 핵인 <잉크>는 볼펜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볼펜의 상대가 되는 종이의 것’이다. 16. <쓰는 자>가 ‘주인’이 된다. 17. <제1의 주인>은 ‘주체’이고, <제2의 주인>은 ‘대상, 상대’다. 18. <삼위일체>는 ‘제1의 주인’이시고, <삼위를 믿고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은 ‘제2의 주인들’이다. 19.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는 순리의 법 안에서 어느 누구에게나 <상대>, 곧 <대상>이 되어 주신다. 20. <상대>가 되고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사랑하지 않고, 그 생각대로 생각하며 행하지 않고, 그 뜻대로 살지 않으면 ‘제2의 주인 자격’이 상실되고, 삼위와 주와 멀어진다. 21. 삼위일체는 맞아야! ‘대답’도 하시고, ‘응답’도 하시고, ‘화답’도 하신다. 맞아야 삼위와 ‘연결’도 된다. 22. 삼위와 ‘하는 말’이 맞고 ‘생각’이 맞으면, 연결된다. 23. <문제>는 ‘답’이 맞으면 풀린다. 24. <인간>은 ‘항상 문제’다. 그 <답>은 ‘하나님’이시다. 25. <연결>되면 ‘답’이 온다. 26. 전화도 번호가 맞으면 연결된다. 상대와 마음과 생각이 맞으면, ‘대화’가 되고 ‘답’을 얻는다. 삼위와 주와도 그러하다. 27. <계시>는 ‘연결이 답’이다. 28. 꿈에나 생시에나 <계시>를 받으면, <연결되는 그것>이 ‘답’이다. 29. 이와 같이 이러하다. - 대상체를 연결하여 깨닫게 하신다. 30. 꿈에 한 여자가 머리 자르는 것을 봤다. 이 계시의 뜻을 풀려면, ‘자기가 행한 것’과 연결시켜야 된다. 연결하면, ‘연관된 내용’이 있다. 그와 같이 그러하다 함이다. 31. <야심작>은 ‘백보좌’로 연결된다. <백보좌>는 ‘하나님’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상대체’로 연결된다. 이렇게 그때마다 깨달을 것들을 깨닫도록 연결시키신다. 32. <성전>은 ‘주’이니 ‘주’와 연결하고, 주 위에 ‘삼위일체’와 연결시켜 ‘삼위의 상징적인 몸’이라고 깨닫게 하신다. 33.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깨우쳐 주고자 하는 것>을 ‘계시’로 보여 주는데, <그 사람>을 두고 ‘만물’이나 ‘사물’로 연결시켜 깨닫게 하신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20 어느 때는 맑은 물, 어느 때는 썩은 물, 어느 때는 바위, 어느 때는 흙, 어느 때는 나무, 어느 때는 무기, 어느 때는 생활 도구 등 각종 것들로 연결시켜 보여 주면서 “너의 지금 상황이 그러하다.” 하고 깨닫도록 계시해 주신다. 연결시키면, 바로 깨닫게 된다. 34. <연결>로 ‘인봉’이 되어 있다. 35. 어느 때 저 사람의 마음을 깨닫게 해 달라고 하면, 주름진 옷이나 구겨진 것을 순간 연결시켜 보여 주기도 하신다. 그와 같이 “주름져 있다. 구겨져 있다.” 함이다. <연결된 것>이 ‘푸는 답’이다. 36. 어떤 제자가 자기가 핍박을 받을 때, 하나님도 주도 자기와 함께한다면 ‘777, 1178’을 보여 달라고 하니, 간판이나 자동차 번호가 순간 지나가는데 ‘777, 1178’이었다고 했다. 이같이 연결시켜 계시하신다. 37. 어느 때는 어떤 생명이 걱정된다고 기도했는데 ‘썩어 버린 과일’을 보여 주시며, 그것과 연결시켜 깨닫게 하셨다. 확인해 보니 ‘썩은 과일’같이 되었다. 38. 꿈을 꿨어도 ‘연결된 것’을 잘 보아라. 꿈꾼 것을 낮에 연결시켜 깨닫게 하신다. 39. 꿈에 ‘매끈하고 구멍이 뚫린 수석’을 봤다 하자. 그 형상을 보니, ‘예술품’이었다 하자. 생시에 연결되는 것을 보면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수석>에 해당되는 것이 ‘생명’이니, 그것과 연결된 자에게 말씀을 넣어 줘야 된다. 그 사람이 믿고 따라오면 ‘그 수석을 가지고 온 것’과 같다. 돌이 크고 무거우면, 그 생명을 힘들게 생명권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40. 어느 때는 ‘자신의 신앙이 어느 정도’인가 기도하고 연결시켜 보여 달라고 하면, 순간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위치’를 보여 주신다. 그 지점에 따라 ‘자기 신앙의 위치와 상태’를 깨닫게 하신다. 41. 어느 때는 ‘만물’이나 ‘사물’이 안 보이고, ‘생각’으로 받고 깨닫고 연결되기도 한다. 42. <깨닫는 것에 유능한 자>가 될수록 ‘더 높게 고차원으로 연결’시켜 신비함을 깨닫게 하신다. 43. <자기가 확실히 아는 사물이나, 만물이나, 평소에 잘 통하는 것>으로 연결시켜 ‘답’을 주신다. 44. <자기가 사 온 작품>이나 <자기가 얻은 것>이 ‘어느 정도 차원의 것’인지 보여 달라고 하면 ‘사람’이나 ‘숫자’로 보여 주기도 하신다. ‘연결된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면서 풀어야 된다. 45. 한번은 <성자가 주신 것>이 어느 정도 멋있는지 ‘사람’으로 보여 달라고 했다. 이때 성자는 ‘키가 크고 허리가 가늘고 히프가 큰 아름다운 여자’를 보여 주셨다. 이것을 보고, <성자가 주신 것>이 ‘멋있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46. <연결>로 ‘인봉’이 되어 있으니, <연결된 것>을 잘 보아라. 그러면 ‘답’이 나온다. <2016년 12월 24일 토요일 잠언> ◎ 오늘 잠언은 깊고 귀한 잠언입니다. 47. <뇌>의 생각은 ‘그릇에 담아 놓은 물’과 같아서 ‘기울어지고 쏠리는 데’로 간다. 48. <생각>이 강해야 ‘느낌’도 ‘사랑’도 ‘기쁨’도 더 느껴진다. 49. <하나님의 사랑>을 강하게 느끼려면, <생각>을 강하게 해라. <하나님 생각>을 강하게 할수록 <하나님 사랑>을 강하게 느낀다. 50. 사람이 <힘>을 강하게 줄수록 ‘더 무거운 것’을 들듯이, <생각>이 강할수록 ‘기쁨’도 ‘사랑’도 더 느끼게 된다. 51. 물이나 불이나 돌을 <몸>에 대고 느낄 때도 ‘더 강하게 대야’ 더 확실히 느낀다. 52. 어떤 물체에 <몸>을 대면, ‘뇌와 생각으로 느끼는 것’보다 둔하게 느낀다. 53. <몸>은 물체에 몸을 대야 느끼지만, <생각>은 생각만 해도 느낀다. 54. 신경으로 느끼며, <신경>에서 ‘생각’이 발생한다. 만일 <뇌신경> 없다면, ‘생각’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55. 목욕탕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뜨겁게 느낀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이 그쪽으로 돌아가서 처음처럼 뜨거운 것을 많이 못 느낀다. 결국 <뇌신경>으로 <생각>으로 느끼는 것이니, <몸>을 대고 있어도 <생각>을 강하게 안 하고 있으면 <몸>으로는 많이 못 느낀다. <몸>도 ‘생각’에 의해 느낀다는 것이다. 56. 하나님도 <몸>을 대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느끼기보다, <생각>을 강하게 함에 따라서 몸과 눈과 귀로 느낀다. 고로 <생각>을 강하게 해라. 57. 몸이 느낀다 하지만, 실상은 <생각>에 의해 <몸>이 느끼는 것이다. 58. <마음과 생각의 근본>은 ‘영’이다. 고로 <영적인 자>가 더 많이 느끼고 깨닫고 안다. 59.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그 보낸 자도 <생각>을 강하게 해야 잘 느낀다. 더 나아가 <영적>으로 느껴야 더 느끼고, 확실하게 알고, 기쁨도 사랑도 느낀다. 60. <육체의 감각>은 ‘뇌신경의 10분의 1 정도’이니, <육체>로 느끼려 하면 ‘조금’밖에 못 느낀다. 이와 같이 <신령한 영의 존재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육적’으로 느끼려 하면 조금 느끼고, 조금 기뻐하고, 사랑도 조금 받게 된다. 강하게 ‘영적’으로 느껴야 100% 느끼고, 사랑도 기쁨도 많이 느끼고 받고 누린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21 61. <영적인 마음과 정신과 생각>으로 느끼면, <몸>도 알고 느낀다. 지구 끝에서도 느낀다. 천국에 있는 것도 느끼게 된다. <육>은 몸이 닿아야 느끼는데, ‘몸’이 닿았어도 <영에 속한 마음과 생각>이 안 느끼려고 하면 못 느낀다. 고로 ‘영적인 자, 정신적인 자, 생각이 강한 자’가 되어라. 그런 자가 100배나 더 강하고 확실히 느낀다. <육적인 자>는 ‘육’으로만 닿고 느끼려 하니, 삼위도 주도 가끔 보고 가끔 만나서 그 정도만 느끼게 된다. 고로 실감이 안 난다. 62.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대해야 근본을 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적’으로 느끼고 깨닫고 알게 하시고, 그로 인해 ‘육’으로 행하여 느끼고 누리며 그 뜻을 펴게 하신다. 63. <영적인 자>에게는 항상 ‘기회’가 있다. <육>은 ‘육’을 만나야 기회가 있다. 그러나 <영>은 육을 안 만나도 ‘혼과 영’이 가서 만나고, ‘마음과 생각’이 가서 만나니 항상 기회가 있다. 고로 <영적인 자>에게는 항상 ‘기회’가 있다. <2016년 12월 26일 월요일 잠언> 1. <약속한 시간>을 지키려면, ‘앞의 하던 일’을 잘라야 된다. 2.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를 것을 잘 자르는 자>는 ‘지혜자’다. 3. <마음이 무디고 생각이 무딘 자>는 ‘자를 것’을 못 자르다가 댐이 터지듯 사고를 내고 일을 낸다. 4. <이성>도 자를 때 잘라야 되고, <사랑>도 자를 때 잘라야 되고, <자기가 쓰는 자>도 자를 때 잘라야 된다. 왕들도 ‘자기가 옆에 쓰던 여우’를 못 잘라 내니, 하나님은 때가 되어 ‘그 속’을 다 드러내시고 ‘그 행한 일’을 다 드러내신다. 5. 성경에 나오는 <여우 헤롯 왕>도 때가 되니 ‘여우같이 행한 행위’가 다 드러났다. 고로 온 세상이 알게 되었고, 그 행위대로 받고 병으로 죽었다. 여우 간신들은 죗값을 받아도 그 죄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다. 그동안 엄청난 손해가 가게 했기 때문이다. 6. <시간>을 지켜야 ‘시간’을 잡고 ‘자기중심’을 다스리며 ‘제때 그 일’을 하게 된다. 7. <시간>을 안 지키면, ‘그 시간에 일해서 얻을 것’을 못 얻는다. 8. 지구같이 시간을 지켜라. 9. 계절같이 시간을 지켜라. 10. 시계같이 시간을 지켜라. 11. 시간을 지킨 날과 못 지킨 날을 비교해 보아라. 12. 하나님은 ‘시간’을 지켜 행하시니, 시간을 못 지킨 자는 혼자 걸어가게 된다. 13. 시간 지키는 맛을 알고 시간을 지키면, 인생이 얼마나 맛이 나는지 깨달아라. 14. <예배 시간을 안 지키는 자>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의 마음을 거스르는 신뢰 없는 자’다. 15. <예배 시간>은 ‘삼위일체를 대면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습관이 되고 뇌가 굳어서 안 지키고 산다. 16. 시간을 안 지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만, ‘시간을 지키려는 마음이 죽었기 때문’에 안 지키는 것이다. 17. <예배 시간을 안 지키는 자들>이 섭리세계에 너무 많다. 예배 시간 지키기를 행해라. 18. <자기 자유의 법>을 지켜야 ‘다른 법들’도 지키게 된다. 19. <예배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이 습관이 되니, <자기 할 일>도 안 지키며 자유분방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마치 신호등의 초록불이 켜졌는데 느리게 걸어가다가 빨간불로 바뀌어 달려오는 차에 치여 죽음까지 초래하게 되듯 그리된다. <예배 시간>을 엄하게 지켜라. 20. 어떤 사람은 ‘시간을 안 지키는 습관’이 들어서 늦게 하다가 탈 비행기를 못 타서 손해 가고, 늦어서 살 것을 못 사서 뺏긴다. 취직도, 성공도, 일도 ‘시간을 지켜서 빠르게 행하는 자’가 얻게 된다. 21. 시계처럼 시간을 지키라고 하나님께서 섭리사에 이미 선포하셨다. 그런데도 ‘예배 시간, 기도 시간, 하늘과 땅에 관한 시간들’을 안 지켜서 저마다 얻을 것인데 뺏기는 자들이 많다. 뺏겼어도 모른다. <시간을 지켜 행한 자>만 얻으니, 안다. 22. <시간 지키기 차원을 높인 자>만 얻고 누리고 기뻐한다. 23. <빠른 자>만 시간을 지킨다. 24. 성령께서 영계의 계시를 보여 주셨다. 넓이가 30m쯤 되는 길이 있었는데, 길을 목숨 걸고 뛰어가야 겨우 달리는 차에 부딪히지 않았다. 이는 ‘섭리인 모두 새벽에 즉시 일어나야 된다는 계시’였다. 25. 새벽에도 잠을 자르고 순간 일어나서 달려야 된다.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잠언> 1. 알면, 의문이 풀린다. 2. 제때 못 하면, 일이 꼬인다. 3. 제때 못 하면 시간도 여건도 꼬여서 자기를 만나러 오는 자와 길이 엇갈려서 서로 찾아다니게 된다. 이와 같이 <새벽 시간>을 제때 안 지키면, ‘삼위와 할 일’이 꼬인다. 4. 뜨거운 음식을 제시간에 먹듯이, ‘그 시간에 그때의 일들을 하기’다. 5. 어떤 일을 놓고서 번개같이 해야 된다. 할 일을 번개같이 해 놓고 번개같이 쉬고, 또 할 일을 번개같이 생각하기다. 6. 가만히 누워서 할 일을 눈으로만 보면 일이 자동적으로 해지냐? 일어나서 일을 해 없애야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22 ‘일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되고, 그로 인해 ‘먹고 즐길 일’이 닥쳐오게 된다. <자기 할 일>을 보면, 미쳐 좋아서 사랑하면서 해야 된다. 7. (현재 한국 주권자의 상황을 보고) 뿌리 깊은 나무이다 보니, 안 뽑힌다. 그러니 군중이 잡아당겨서 결국 뿌리가 잘라져 뽑아지게 된다. 8. <자기 길>은 ‘자기’가 가야지, 누가 가냐. 9. 다른 사람이 화장실 대신 간다고, 급한 볼일의 문제가 해결되느냐. 10. <새벽에 기도하고, 삼위와 대화하고, 말씀을 듣고 받는 시간>도 자기 것이니 ‘자기’가 해야 된다. 11. <할 일>을 하면, ‘자기 보람’이다. 그 일에 따라 차원대로 같이 기뻐하며 보람을 누린다. 12. 섭리사를 위해서 크게 행하면, 삼위와 같이 즐기고 먹고 마시며 삼위와 같이 보람과 영광을 누린다. 13. 일을 안 하면, 할 일이 안 보인다. <할 일>을 해야 그 일과 연관되어 연속 ‘할 일’이 보인다. 14. <일의 리듬>이 끊어지면, ‘할 일’이 많은데도 안 보이고 ‘일의 느낌’이 안 와서 일을 안 하면서 “나는 할 일이 없네.” 한다. 15. 일을 너무 무리하게 하다가 지쳐서 일의 맛을 잃지 말고, 마치 ‘일과 연애’하듯 지혜롭게 해라. 그래야 일이 쉽고, 일로 인해 힘을 얻으며 하게 된다. 16. 하루의 해가 질 때는 ‘그날 일을 정리’하며 ‘그날 못다 한 일’을 서둘러 처리하며 하듯이, ‘그 해의 일’도 그 해가 저물기 전에 서둘러서 해라. 17. <그 해의 일>은 ‘다음 해의 일과 연결’되어 있으니, 그 해를 넘기지 말고 해 놓고, ‘새해’를 맞아야 된다. 18. 실천해야 실제로 해결된다. 19. 행해야 해결된다. 20. <할 일>을 해야 ‘지난밤 꿈에 잊었던 것’이 생각난다. 21. <할 일>을 안 하고 삼위일체를 부르니, ‘대답’이 없었다. 22. <할 일>을 해 놓고 다 했다고 하며 삼위일체를 부르니, ‘대답’하시고 ‘대화’를 시작하셨다. 23. 그날그날 <새벽부터 일하는 자>는 일이 줄어서 하루 종일, 보다 쉽고 가볍게 일한다. <새벽부터 일하지 않는 자>는 종일 일이 무겁다. 24. 버스가 붐비고 짐 보따리가 많아도 열 일 제치고, 짐 보따리를 안고 들고 머리에 이고 제시간에 차를 타고 떠난 자는 고생돼도 간다. 그러나 짐 보따리도 없으면서 신사 숙녀 체면 차리며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몸을 스치면서 그 버스를 타고 가냐? 옷도 다 구겨진다.” 하고 타지 않는 자는 지겹게 다음 차를 기다려야 된다. 다른 사람은 무거운 짐을 다 이고 가면서도 차에 타고 갔는데, 왜 빈 몸으로 빨리 버스에 못 올라탔느냐. 좋은 날이 가고 비까지 와서 옷까지 다 적시고 있구나. 그제야 <제시간>에 못 탄 것을 후회하며 다음 차를 기다렸다. 다음 버스가 오니, 이번에는 빨리 올라탔다. 그러나 그 차도 ‘시골 장터 버스’라서 짐꾼들로 꽉 차 있어서 앞의 차와 상황이 같았다. 시간이 뒤로 갈수록 버스는 사람들로 꽉 찼다. 고로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제때 온 차’에 올라타야 된다. 25. 이와 같이 <새벽 시간>도 그러하다. ‘제시간’을 놓치고 ‘다음 시간’에 일어나면 잘 일어나질 것 같으나 잘 안 일어나진다. 그 시간을 놓치고 ‘또 다음 시간’이 되면, 역시 잘 안 일어나진다. 마치 시골 장터 버스가 짐꾼들로 가득 차서 시간이 갈수록 더 붐비듯이, <잠>도 더 잘수록 일어나기 힘들다. 고로 <제시간>에 일어나서 <할 일>을 하여 ‘하루 종일 가볍게 일하기’다. 26. 시장이 깨끗하면 먹을 것이 없듯이, <할 일>이 없어 깨끗하면 위(胃)가 깨끗하여 스스로 허리끈을 졸라매게 된다. 27. 사랑하는 자와 몸뚱이만 만나서 손가락만 빨면서 살 것이냐. 제때 뛰고 달리면서 입고 자고 배터지게 먹고 서로 만나야, 반가움도 기쁨도 희망도 사랑도 황금벌판처럼 물결친다. 28. 전능하신 삼위일체는 기대를 걸고 기다리신다. 그런데 그 기대가 어긋나게 하면 ‘자기 기대’도 어긋나고 ‘자기 운’도 돌아가 버린다. 29. <때가 와서 주는 복>도 못 받으면, <화>만 받게 된다. 30. <일거리>가 많아야 먹을 수 있다. 이것저것 먹고 배불러야 힘이 생겨서 웃음소리도 커지고 활기차다. 31. <할 일>이 없어서 몸에 날아온 먼지나 털고 있다 보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이 산다. 결국 지구 반대편에서 따로 놀게 된다. 32. 악착같이 <할 일>을 해 대야 ‘마른 골짜기’에 ‘물줄기’가 흘러와서 비경을 이루고, 그곳이 씻고 닦고 먹고 즐기는 장소가 되어 아쉬움 없이 기뻐하고 만족하며 산다. 33. 매일 ‘새 날’이 오듯이, 매일 ‘새 마음’으로 ‘새 날’을 맞고, 매일 요리하여 진수성찬을 만들어서 삼위일체를 모시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된다. 34. <지난날 애태우며 원하던 것>이 ‘때’가 되어 오고 있다. 그것을 받기 위해 ‘긴장하며 날고 기고 행하기’다. 35. <할 일>을 못 하면, ‘자기 것’도 ‘지나가는 개’가 물고 간다. 36.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생일만 기다리지 말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서 먹고 마셔라. 그러면 그날이 ‘생일 잔칫날, 혼인 잔칫날’이 된다. 37. 지금은 ‘전능자 삼위일체와 보낸 자를 모시고 사는 때’다. 고로 너희는 혼자 사는 노처녀도 노총각도 아니다. <시대 신부의 삶>이 ‘이론’이냐? ‘관념’이냐? ‘실체’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23 <실제로 삼위와 보낸 자를 모시고 사랑하며 사는 자>만 ‘시대 주인’이 되어 살아간다. 38. 세상만사 모든 일이 ‘때’ 지나면 지나가서 ‘희망’도 ‘기쁨’도 ‘사랑’도 같이 떠나 버린다. 39. <제때> 하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와 주도 같이 해 주신다. 삼위일체와 보낸 자는 ‘제때’ 하기 때문이다. 40. <때> 지나면 ‘혼자’ 해야 되니, 힘들게 해야 된다. 다 하면, 그제야 삼위와 보낸 자와 동행한다. <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잠언> 1. <잠에서 깨서 한 번에 일어나는 자>는 마치 ‘물건을 한 번에 드는 자’와 같다. 2. <잠에서 깨서 일어나려 했다가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는 자>는 마치 ‘물건을 들었다가 못 들고 두 번째에 들고 가는 자’와 같다. 3. 잠에서 깨도 ‘수면 상태’에 있었기에 순간 못 일어난다. 그때가 ‘최고 편안한 상태’다. 4. 신앙도 ‘조는 상태, 수면 상태’에 있을 때, 최고로 편안하다. 그 상태가 편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다. 이때 누가 일으켜 주고 잡아당겨 주지 않으면, 그 상태로 한 기간이 간다. 5. 마치 ‘수면 상태’와 같이 <신앙>도 ‘자기 주관, 자기중심, 자기 사고’에 빠져 살면, 그리도 편하고 좋다. 이 상태는 ‘잠에서 깨서 누워 있을 때’와 같고, ‘잠이 와서 최고로 졸릴 때’와 같다. <우상을 섬기고 비진리와 자기 주관에 빠져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도 이런 상태에 있는 자들이다. 잠에서 깨서 눈을 뜨고 즉시 일어나면 ‘수면 상태’에 있을 때보다 10배, 100배 더 좋다.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 ‘본정신’이 온전히 돌아왔기 때문이다. 6. <수면 상태>는 편한데,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다. 고로 깨지 못하고 계속 그 상태로 있으면, 손해만 간다. 7. 운전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잠>이 오면, ‘의식’이 잘 안 돌아온다. 그러면 곧 <수면 상태>에 처해 ‘위험한 일’이 일어나도 모른다. <잠을 자는 자>는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모른다. <신앙의 잠을 자는 자들>, 곧 <신앙의 수면 상태에 있는 자들>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시대에 무엇을 행하시는지 그 급한 것을 모른다. 8. <수면 상태에 있는 자>에게는 이야기를 해도 모르고, 행하며 보여 줘도 눈만 뜨고 있지 모른다. 이 시대가 그러하다. 9. <구시대에 속해 있는 자들>은 ‘신앙의 수면 상태에 있는 자들’이다. 고로 하나님이 ‘새 시대 역사’를 펴도 모른다. 봐도 모른다. 10. 잠결에 눈 뜨고 봐도 ‘수면 상태 속’에 있으니 모른다. 11. 모든 삶이 그러하다. <수면 상태>에 속해 살면, 봐도 들어도 모른다. 12. <휴거>에 대해서도 제대로 잠이 깨지 않아 ‘몽롱한 상태, 무의식 상태, 수면 상태에 있는 자들’은 그 신앙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이상 변화되지 못한다. 13. 온전히 잠을 깨고 행하듯 <육신>이 온전히 휴거의 삶을 살아야 <휴거의 영>도 매일 변화되고 차원을 높인다. 14. 자기가 각오하고 ‘행하고자 했던 의’를 온전히 행해야 ‘그 차원’에 오르게 된다. 15. 행할 때는 ‘몸부림’을 쳐야 그 일을 행한다. 16. <수면 상태>에서는 ‘몸부림’을 쳐야 일어나진다. 그러면 <급한 할 일>이 보이게 되고, 행하게 된다. 17. <신앙의 잠에서 깬 자가 봤을 때 이해 못 할 행동을 하는 자들>은 모두 ‘신앙의 수면 상태, 무의식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다. 18. <비정상에 빠져서 비정상의 것들을 거듭해서 행하는 자>는 ‘그것에 중독된 자’다. 19. <온전한 삶을 거듭하는 자>는 ‘중독자’가 아니다. ‘온전한 것을 반복하여 행함으로 굳세게 하는 자’다. 20.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거듭 행하는 자>는 ‘의를 거듭 행하는 자’다. 고로 그 육과 영도 더욱 빛이 난다. 21. <온전치 못한 것, 비정상의 것들>은 ‘독성’이 들어 있어서 거듭 행하면 ‘중독’이 되고, 그것이 ‘생명’을 망치게 한다. 22. 세상 사랑, 육체 사랑, 도둑질, 사기, 폭력, 미움, 시기, 질투, 게으름, 반항, 혈기와 분노, 자기 이론, 자기중심 등은 모두 ‘비정상적인 것, 불의에 속한 것’이다. 23. <중독의 행위>도 기쁨과 만족과 흥분과 편안함을 준다. 고로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하여 몸에 스릴을 느끼며 행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행할수록 몸에 병이 오고, 뇌에 병이 오고, 생각에 병이 오고, 육도 혼도 영도 사망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결국은 ‘시한폭탄 터지는 때’를 맞게 된다. 24. <중독>을 벗어나서 ‘전능자 삼위의 뜻’을 따라 <의>를 행하면, 하나님 주관권의 사랑과 기쁨과 흥분을 ‘뇌 전체, 생각 전체, 마음 전체, 몸 전체, 혼 전체, 영 전체’가 느끼고 기뻐한다. 이것은 행할수록 더 얻고, 더 기쁘고, 뇌도 생각도 마음도 몸도 혼도 영도 망가지지 않고 새롭게 변화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는 것들’이다. 25.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사는 자들>은 모두 ‘불의에 중독’되어 그쪽에 속한 기쁨과 흥분을 느끼며 산다. 그러나 이것은 행할수록 뇌도 생각도 마음도 몸도 혼도 영도 망가지고, 사망으로 기울어진다. 26. <선>에도 ‘기쁨’이 있고, <악>에도 ‘기쁨’이 있다. 도둑질하고 사기를 치는 등 불의를 행하면서 사는 자들에게도 ‘기쁨’이 있고, 의를 행하면서 사는 자들에게도 ‘기쁨’이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24 있다. 결국 <불의를 행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화’를 받고, <의를 행한 자>는 ‘축복’을 받는다. 각각 어떻게 기쁨을 누리는지 보아라. <2016년 12월 29일 목요일 잠언> 27. <육계의 것>도 제대로 깊이 안 하면 ‘제맛’이 안 나고, <영계의 것>도 제대로 깊이 안 하면 ‘제맛’이 안 난다. 28. <할 일을 두고 해야 될 것을 할 때> 그 맛이 ‘제맛’이다. 29. 가령 산을 정복한다 하자. <목적한 데까지 정복할 때> 그 맛이 ‘제맛’이다. 이는 그 전에 목적을 이루려 하는 과정의 맛과는 다르다. 30. 큰 돌 하나를 목적한 자리에 세우려 하는데, <그 돌을 찾아다닐 때의 맛과 기쁨>은 ‘희망의 맛과 기쁨’이다. 그러다 ‘높고 크고 웅장한 돌’을 찾았다. <찾았을 때의 맛과 기쁨>은 과정보다 훨씬 높고 크다. <그 돌을 싣고 가서 목적한 제자리에 세워서 전체가 더 빛나게 보일 때>는 ‘목적을 달성한 맛’이 그리도 크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과정을 거치는 자의 기쁨과 흥분>이 다르고, <하나님의 최고의 목적을 달성한 자의 기쁨과 흥분>이 다르다. 31. <남녀가 연애하는 과정의 기쁨>과 <과정을 거쳐서 목적을 달성한 기쁨>이 다르듯, 육계의 것도 영계의 것도 <신앙 안에서 얻기 위해 가는 과정의 기쁨>과 <얻고 누리는 기쁨과 흥분>이 다르다. <과정>은 ‘정신과 생각’으로 희망을 느끼고, <얻은 것>은 ‘손에 쥐고 있는 상태’라서 몸으로 ‘실체’를 느끼며 생각으로 ‘얻은 기쁨’을 누린다. 현대 종교인들도 그러하다. <주를 기다리고 새 역사를 기다리는 자들의 기쁨>과 <새 역사를 얻고 기다리던 주를 만나 실체와 같이 사는 자들의 기쁨과 희망>은 다르다. 32. 표현할 때도 그러하다. <실체를 안 보고 희망으로 표현하는 자의 차원>과 <실체를 보고 표현하는 자의 차원>은 다르다. 33. <밭의 보화를 찾으러 다니는 자가 그 기쁨을 표현하는 것>과 <찾아서 숨기고 그 기쁨을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이 시대도 <주를 희망으로 기다리는 자가 누리는 기쁨>과 <새 시대와 보낸 주를 찾은 자가 누리는 기쁨>은 다르다. 34. <짝사랑하는 자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기쁨과 흥분>이 다르고, <짝사랑을 이룬 자의 마음과 생각과 말과 기쁨과 흥분>이 다르다. 35. 오히려 <사랑을 이룬 자>는 그 기쁨과 흥분이 그냥 보기에는 ‘아직 사랑을 이루지 못한 자’보다 표가 안 난다. 이미 사랑을 이루어서 기쁨과 흥분이 가라앉아 ‘내적’으로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자>는 희망과 열광과 열망에 혈안 되어 더 날뛴다. 이는 비유컨대 <밭의 보화를 찾은 자>는 누가 알까 봐 기쁨과 흥분을 자제하고 숨기고 속으로 즐기며 기뻐하지만, <밭의 보화를 찾지 못한 자>는 보화를 찾기 위해 밖으로 흥분을 내뿜으며 더욱더 환각 상태에 빠져 미쳐 뛰어다닌다. 이로써 <보화를 찾은 자>와 <못 찾은 자>를 분별하게 된다. 36. 바닷속을 보면, 온몸에 불이 나게 다니는 물고기가 있다. 먹이를 찾으려고 희망에 차서 기뻐하며 흥분되어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먹이 잡는 것을 포기했는지, 한쪽에서 눈만 말똥거리고 꼬리만 치면서 몸이 무거운 듯 가만히 있는 물고기가 있다. 이 물고기는 먹이 잡는 것을 포기했거나, 혹은 이미 잡아먹고 배부른 기쁨을 누리며 흥분되어 있는 물고기다. 배가 불룩한 것을 보면, 모르겠느냐. 37. 종교인들도 보면, 불이 나게 흥분되어 다니는 자들이 있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희망에 차서 흥분되어 다니는 것이다. 그런데 조용한 자들이 있다. 새 역사와 주를 만나기를 포기했든지, 아니면 기다리던 주를 만나서 새 역사 주관권에서 같이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사랑 잔치하는 자들이다. 새 역사 주관권 밖에 있는 자들은 모르는 것이다. 38. <성전을 찾으러 다닐 때>는 오히려 요란하고 희망과 기쁨과 흥분이 불타오른다. 그러다 조용해지는데, 이는 판이 식었든지, 혹은 포기했든지, 혹은 찾았기 때문이다. 39. <찾던 애인>을 찾으면 조용하다. 집에 들어가서 같이 먹고 마시며 즐기느라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40. 거리를 누비며 기쁨과 흥분으로 전도하러 다니다가 안 보이는 자들은 전도의 판이 식었거나, 전도를 포기했거나, 혹은 찾던 자를 전도해서 가르치며 말씀 잔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도 ‘보낸 자와 새 역사를 찾은 자들’이 그러하다. 밖에서 보면 조용하지만, 그 주관권 안은 주와 함께 생명들을 구원하고 뜻을 이루며 잔치하느라 시끌벅적하다. <2016년 12월 30일 금요일 잠언> 41. 어떤 골짜기에 ‘모양이 신비한 형상석’이 있다고 하여, 사람들이 오랜 역사를 두고 찾았다. 수십 명이 자기가 ‘그 돌’을 찾았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기가 좋은 대로 각각 따랐다. 그리고 각각 박물관을 만들어서 ‘그 돌’을 전시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신비한 모양의 돌을 찾아간 자’가 분명히 있다. 그 골짜기에 이제 돌들이 하나도 없으니, 누가 ‘그 돌’을 찾아간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 전설 같은 신비한 모양이 속 시원하게 있는 돌’은 없었다. 따르는 자들만 좋아하며 각자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25 “이 돌이 맞다!” 했다. 그중에 딱 한 사람만 ‘신비의 형상석’을 가지고 있었다. 영락없이 ‘신비한 모양이 있는 돌’이었다. 보고 또 봐도 ‘자기가 주운 돌’과 ‘남들이 주운 돌’이 비교가 안 되었다. 그는 이를 알고는 초가집을 헐고, 아예 집 안에 ‘그 돌’을 넣어서 집을 지어 버렸다. 그리고 ‘따르는 자들’만 알고 따르게 했다. <이 시대 하나님의 새 역사>도 그러하다. 42. 한 나라에 전설이 내려오기를 그렇게도 ‘좋은 터’가 있다고 하여, 시대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터’를 찾아다녔다. 찾은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그 터’를 찾았다고 하며 기뻐했다. 그런데 찾았다고 하는 이가 많고도 많았다. <그 나라 전설로 내려오는 좋은 터>는 ‘딱 한 자리’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저마다 “내가 찾았다! 여기가 맞다.” 했다. 그러나 그중의 한 사람만 전설의 ‘그 터’를 찾았다. 그곳이 ‘핵’이었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찾았다고 한 곳은 모두 ‘핵 주변에 속한 환경들’이었다. 오직 ‘주인’만 아예 거기서 태어나고, 크고, 알고, 전설을 이룬다. 43. 월명동에 사람이 들어와서 산 이후부터 지금까지 200년 동안 그곳에 ‘반달 터’가 있다는 전설이 흘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그 터’를 찾아서 묏자리로 쓰기도 하고, 그곳에 집을 짓기도 했다. 알고 보니 <월명동 마을 전체>가 ‘반달 터’이고, <핵>은 ‘월명동 성전 안’이었다. 사람들이 좋다고 찾아서 묏자리로 쓰고 집을 지은 곳은 ‘핵을 중심한 배경들’이었다. 44. <핵 위치>에서 ‘최고로 큰 인물’이 난다. 그곳은 하나님이 보실 때도 ‘핵 위치’이고, 모든 사람들이 보기에도 ‘핵 위치’다. 하나님은 아예 그 자리에서 ‘최고로 큰 인물’이 태어나게 하시고, 그 자리에서 배우게 하시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크게 하신다. 나머지 좋다고 하는 곳은 ‘핵을 위한 배경들’이다. 45. <핵>을 위해 ‘민족 전체’가 이루어진다. <그 민족>은 ‘확대시킨 핵’이 된다. 이 나라에 ‘시대 복음’이 제일 먼저 선포된다. <그 민족의 주변 나라>는 ‘배경’이며 ‘복음의 대상 나라’다. 46. 영적 세계에서도 <차원 높은 계시나 설교나 기도나 생각이나 행위>를 보면, ‘표현’이 다르다. 그냥 보면 비슷한 것 같아도 ‘표현한 것’을 보면 다르다. 47. 조각도 다 비슷한 것 같지만 <첨단의 조각>을 보면 ‘본 얼굴의 이미지’를 그대로 조각하여 표현했다. 백지장 한 장 차이 같지만, 상상도 못 하는 차이가 난다. 설교자도, 강의자도, 증거자도 ‘증거하는 삼위일체와 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표현하는지 들어 보면 다 비슷한 것 같아도 차이가 크고 높다. ‘한 단어’를 더 넣느냐, 못 넣느냐에 따라서 그리도 크고 높은 차이가 안다. 48.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린 것을 보면 다 비슷해 보여도 <첨단의 초상화>를 보면 ‘본 얼굴의 이미지와 느낌’이 잘 표현됐다. 본 얼굴과 많이 닮았는가, 조금 닮았는가 하는 차이는 엄청난 차이다. 본 얼굴과 닮게 그리려면 수년, 수십 년씩 걸린다. <말씀을 표현하여 증거하는 것>도 그러하다. 설교자도, 강의자도, 증거자도, 계시자들이 표현하여 증거하는 것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가 직접 표현하며 증거하는 것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그 차이는 엄청나니 ‘삼위와 주의 계시와 말씀’을 깊게 보아라. 삼위는 거침없이 표현하신다. 49.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의 말씀의 표현은 무조건 차원이 높다고 평가하고 분별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 묻기를 “<하나님의 표현>은 ‘무조건 차원이 높다고 생각’하면 됩니까?” 하니, 하나님은 “아니다. ‘각 사람의 차원’에 따라서 표현해야 알아듣는다. 그래서 어느 때는 ‘보통으로 표현’하고, 어느 때는 ‘첨단으로 표현’한다.” 하셨다. 아무리 카메라 성능이 좋아도 무조건 ‘크게만’찍지 않고, 찍는 자가 원하는 대로 ‘크게’도 찍고 ‘작게’도 찍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라고 ‘차원 높게만 표현’하지 않으신다. ‘각자의 차원’에 따라서 어느 때는 유치부, 어느 때는 중고등부, 어느 때는 대학부, 청년부, 어느 때는 가정국, 장년부, 어느 때는 지도자들, 계시받는 자들에게 맞게 표현하신다. 고로 ‘표현의 차원이 높냐’를 보고 하나님의 생각을 판단하지 말고, ‘내용’을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된다. 50.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전하는 목적’에 맞게 말씀하신다. 고로 천층만층구만층으로 다양하게 표현하신다. 또한 ‘만물’로도 보여 주면서, 착오 없게 행하신다. <2016년 12월 31일 토요일 잠언> 1. <사람의 유혹>, <사탄의 유혹>이다. 2. <육의 세계 사람들의 유혹>, <영의 세계 사탄의 유혹>이다. <두 세계의 유혹>을 이겨야 ‘주의 세계, 삼위일체의 세계’다. 3. <사람>도 ‘자기 목적’을 이루려고 말하고, <사탄>도 ‘자기 목적’을 이루려고 말한다. 4. <하나님, 성령님, 성자>도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말씀하신다. 5. 사람이 ‘몰라서’ 유혹을 받는다. 6. 사람도 사탄도 ‘아는 자’는 유혹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는 자>에게는 ‘거짓말’을 해서 유혹한다.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26 7. 섭리사 안에서 ‘계시국을 통해 주께 계시 결재가 난 계시’만 들어라. 그 외의 계시들은 ‘자기 의지, 자기 지식으로 만든 사적인 말들’이다. 그 말은 듣지 말아라. 8. 주가 인정해야 ‘생명력 있는, 살아 있는 계시’다. 9. 똑같은 내용이라도 <성령과 주가 한 말씀>이 ‘생명의 말씀’이다. 10. 섭리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자기 나름대로 계시를 받는다. 자기 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고, 자기 의지와 지식에 의해 생각해서 아는 것이 있다. 이는 ‘시대의 온전한 계시’가 아니다. 11. 유혹하는 자들의 말은 그냥 들으면 맞는 것 같아도 ‘생명이 없는 말’이다. 그래서 속고 영이 망한다. 12. 예수님 때도 <주가 한 말>이 아니면, 맞는 것 같아도 ‘틀린 말’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나사렛 예수의 말이냐?” 하고 분별했다. 13. 똑같은 숫자를 썼어도 주가 쓴 것, 타인이 쓴 것, 어느 것이 ‘생명의 숫자’이겠느냐. 14. 똑같이 옳은 말을 가르쳐도 ‘하나님이 구원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중심하여 ‘그 주관권 안’에서 가르쳐야 <그 시대 구원>을 이루고 하나님도 <뜻>을 펴신다. 다른 자들이 가져다 자기 나름대로 가르치면, <그 시대 구원>도 안 이루어지고 하나님은 <뜻>을 안 펴신다. 15. 섭리사에서 시대 말씀을 듣고 나간 자들이 나가서 이 말씀을 가르친다. 그것은 ‘지식’으로 잠시 알고 가는 것으로 끝나고, ‘육의 세계’에서 끝난다. 16. <보낸 자가 가르친 말과 진리>는 ‘하나님과 성령이 하신 말씀’이다. 삼위일체는 오직 ‘그 말씀’만 인정하고 중심해서 ‘새 시대 뜻’을 펴시고 ‘시대 구원’을 이루신다. 17. 다른 데서 <섭리사 말씀>과 똑같이 가르쳐도 그들은 ‘시대 보낸 자’를 인정하지 않으니 ‘시대 구원’을 받지 못하고, 다만 ‘지식’만 가지고 있다가 육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난다. 18. 섭리사 안에서는 ‘주가 준 말씀’만 인정하고, ‘주가 허락한 것’만 주가 함께하며 그 편에 서 있다. 19. 사탄도 사람도 ‘옳은 말’을 하면서 유혹하며 가르친다. <하나님이 보낸 자를 통해 인정한 말>이 아니면 ‘생명 없는 말’로서 그것이 ‘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20. <가짜>가 <진짜>와 똑같이 생겼어도 ‘본 회사에서 만들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21. <섭리사 말씀>을 가지고 ‘자기 뜻’을 펴면,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니 모두 ‘허사’가 된다. 22. 다른 교파에서 “우리에게도 진리가 있다.” 한다. 그리고 <섭리사 말씀>을 “우리 것이다.”라고 한다. 아무리 그리 주장하며 가르쳐도 ‘새 시대 차원의 휴거를 이루는 구원’은 없다. 이는 헌옷에다 새 옷의 조각을 가져다 꿰맨 것이니 하나님은 헌옷으로 판단하시고,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하며 책망하신다. 23. 이 시대는 <휴거>에 대해 일자무식하다. 세상의 각종 유혹자들 때문에 섭리사는 ‘30개론’을 전초로 가르치고, 마지막에 핵적인 ‘휴거 말씀’을 3년 동안 가르쳐서 ‘신부’로 단장시키고, 육이 행하게 하여 ‘휴거의 영’이 되게 하고, 휴거 날에 휴거시켰다. <성자가 보낸 자의 육신 쓰고 다시 오신 날, 보낸 자가 태어난 날>에 성경에 예언한 뜻을 이루었다. 오직 ‘주인’만 이 역사를 한다. 지구 세상 73억 명 중에서 <그 날을 맞게 하는 자>는 전에도 후에도 없고 오직 ‘보낸 자 한 명’밖에 없다. <때>가 맞고, <말씀>이 맞고, <삼위일체>가 함께하시고, <따르는 자들>이 신부로 준비되어 다 그 날을 맞아야 되는데, 이것을 맞출 자가 누가 있겠느냐. 오직 <보낸 자>만 시침, 분침, 초침 다 맞춰서 ‘말씀’을 다 이루고 온전히 행한다. 24. 다른 교파, 다른 자들은 <휴거>를 전혀 모르고, 지도자들도 이미 죽었고, 지도자가 살아 있어도 90세 가까운데 그 노인들이 하겠느냐. 삼위일체는 이미 <보낸 자>가 70세가 되기 전에 ‘뜻’을 두고 행하셨고, 70년 동안 역사를 펴며 그를 기른 후에 그가 70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직접 말씀하신 성경의 예언’을 때에 맞춰 이루셨다. 25. <휴거>를 이루고 <주인>이 되려면, ‘수십 가지, 수백 가지 할 일’을 다 알고, ‘삼위의 몸’이 되어서 삼위와 함께 도적같이 행해야 된다. 26. 다른 자들은 자기가 ‘메시아, 재림주’라고 하면서도 <재림과 휴거>에 대해서 일자무식하다. 아무것도 모른다. 태어난 위치도 아니고, 태어난 때도 아니고, 말씀도 아니고, 삼위일체가 인정도 안 하시고 말씀도 안 주셨다. 거짓임이 다 드러났다. <새 시대를 온전히 알고 주를 알고 대한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거짓된 자들을 알아버렸다. 고로 하나님은 증거하게 하신다. 27. 어떤 자들은 <신부>가 아닌 ‘가정의 형제들’끼리 ‘혼인 잔치’를 했다. <시대의 뜻을 안 자들>이 그들의 실체를 알고 드러낸다. 하나님이 그 날에 다 드러낸다고 하신 말씀대로 된다. 28. 가령 어떤 사람이 ‘시대가 모두 바라는 혼인 잔치 역사’를 이루러 와서 ‘혼인 잔치’를 하면서 먹고 마셨다 하자. 그런데 알고 보니 ‘자기 형제자매’와 혼인 잔치한 것을 알았다면, 그를 따라가겠느냐. 인정하겠느냐. <시대 하나님의 계획, 창조 목적, 휴거를 이룬 자>는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육신 쓰고 나타난 자 2016년 12월 (새벽잠언).hwp27 한 명’이다. 그가 ‘메시아’이며 ‘주’다. <온전한 뜻을 이룬 자들>만 ‘주’를 안다. 29. <하나님이 보낸 자>는 ‘성경 말씀, 휴거’를 이뤄야 된다. 그런데 그 근처에도 못 가 본 자들이 ‘하나님이 보낸 자’라 한다. 30. 결국 <하나님이 보낸 자를 통해 하신 말씀>으로 ‘거짓’이 다 드러난다. 31. 하나님은 그 뜻대로 <휴거>를 다 이뤄 놓고, ‘거짓 선지자들’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계획이다. <진짜 온전한 성경의 예언>을 다 이뤄 놓고 밝혀야 다 인정하고 알기 때문이다. 32. <행한 자들>이 말하고 증거하니, 믿게 된다. 33. 월명동도 다 해 놓고 “전설의 주인이다.” 해야 믿으니, 다 해 놓고 군중들이 전설같이 모여들게 했다. 고로 “전설의 주인이다.” 하고 믿었다. 34. 다 해 놓고 드러내려고, 성경대로 행하기만 했다. 한국만 해도 ‘자기를 재림주라 하며 불법하는 자들’이 수십 명이나 있었는데, 이미 망하고 없어졌다. 남아 있는 자들이 자기가 가는 길이 옳다고 하지만, 자기들끼리만 믿고 갈 뿐이다. 그들은 해가 동쪽에서 떠도 “아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 하고 가는 자들이다. 35. <이 시대 온전한 복음>을 전해야 ‘모르는 자들’이 알고 따른다. 36. 거짓되게 행하니, 그 행위대로 거짓되게 되어 버린다. 37. 남자를 여자로 분장시켜 동성 결혼을 했는데, 모르는 자들은 따라간다. <주인>이 와서 제대로 행하고 가면서 다 드러낸다. 38. 거짓되게 “내가 하나님이다. 성령이다. 재림주다.” 하는 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온전히 행하는 보낸 자>를 통해 드러내시고 심판하신다. ‘하나님이 세우지 않은 것’과 ‘거짓된 것’은 하나님이 다 드러내신다. 39. <잡초와 가라지>는 가을이 되면 주인이 거두지 않고, 들에서 썩게 놔둔다. 40. 어느 마을의 원님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원님의 딸과 결혼하는 자’가 그 나라의 전설을 이루는 주인이라고 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욕심에 빠져 명예를 꿈꾸는 자들’이 서로 자기가 원님의 딸과 결혼했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런 줄로만 알고 그 사람들을 환영하고 섬겼다. 그런데 ‘진짜 원님의 딸과 결혼한 자’는 따로 있었다. 그는 그 고을의 원님과 하나 되어 ‘고을의 큰일들’을 해 놓고, 원님과 함께 ‘거짓된 자들’을 모두 드러내고 밝혔다. 이에 사람들은 <해 놓은 것>을 보고 ‘거짓되고 썩은 자들’을 알게 되었다. 41. <육적인 자>는 ‘육적인 것’을 행하고, <영적인 자>는 ‘영적인 뜻’을 이룬다. <육적인 자>는 ‘세례 요한 격’으로서 ‘영적인 자를 위해 첩경을 예비하는 자’다. 42. <육적인 자들>은 ‘육적 창조 목적’을 이루고 끝나고, <영적인 사명자>는 ‘영적인 창조 목적, 휴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