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수요말씀2016.12.14 (수)

161214 수요말씀

선포일
2016.12.14 (수)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11

첨부 파일

<2016년 12월 14일 수요말씀> 성령으로 외쳐라. 영적 차원을 높여라 본 문 고린도전서 13장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영적 차원을 높여라.’라는 주제로 말씀하면서, 왜 ‘영적 차원’을 높여야 하는지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삼위일체는 ‘사람의 육신’을 쓰고 행하십니다. 고로 삼위일체는 항상 ‘사람’에게 임하여 행하십니다. 고로 <삼위가 쓰고 행하는 자>만 ‘그 뜻’을 압니다. 그 결과는 ‘말씀하심’으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행하는 업적’으로 알게 됩니다. 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실현하십니다. 그러려면 먼저 인간이 ‘신령한 세계에 대한 차원’을 높여서 <신령한 세계>를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신령한 것>을 ‘육의 것’과 연관시켜서 깨달아야 됩니다.  <신령한 영의 세계>는 <육의 세계>보다 ‘알아야 할 것들’과 ‘배울 것들’이 무한하게 많습니다. 고로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영의 세계>에서 ‘육계의 상황’을 보여 주며, 올바로 깨닫게 해 주십니다. 고로 <주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계시자를 통해 하시는 삼위와 주의 계시>를 들어야 됩니다. 그 말씀과 계시를 들으면, <영계의 영적 현상>이 ‘인간들의 육’에게 전달됩니다.  <영적인 현상>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방식’으로 인간들에게 나타내십니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한 것>이 ‘실체’가 되어 하나님의 눈에 보이고 하나님의 귀에 들리지요? 이와 같이 <삼위가 말한 것>이 꿈에 ‘실체’가 되어 보이고, <삼위가 말한 것>이 인간의 마음의 눈에 보이고 마음의 귀에 들려 깨닫고 행하게 됩니다. 공통적입니다.  섭리인들이 자꾸 ‘더 깊은 계시’를 듣고자 하고, 영적으로 ‘차원’을 높여야 삼위도 주도 자꾸 ‘영적 현상’을 반영하여 말씀해 주고, 계시자들을 통해서 ‘영계’에 대해 더 말씀해 주십니다. <잠시 쉬었다가>  주 안에서 <영적>으로 배우고 연구하면 ‘영적’으로 차원이 높아지면서 <영적인 것들>이 강렬하게 깨달아집니다. <육적>으로 배우고 연구하면 ‘육적’으로 차원이 높아지면서, <육적인 것들>이 강렬하게 깨달아집니다. 주 안에서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 그러나 <영적>으로 더 신령하게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그래야 성령이 역사하시어 <영적>으로 많이 보이고 강렬하게 깨달아집니다.  기도를 깊이 해야 정신과 생각이 그쪽으로 집중되어 신경 쓰니, <신령한 차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영적인 신령한 차원>에 들어가고 올라가야 ‘그 세계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지고 깨달아집니다.  <성령>이 임하고 함께하시면 ‘영적’으로 더 강렬하게 느껴지고 확실히 깨달아집니다.  <영적>으로 차원을 높여야 ‘몰랐던 것’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육’이 행하면 얻습니다.  <영적>으로 차원을 높여야 말의 표현도 잘하고, 설교도 잘하고, 다른 것들도 모두 차원을 높여서 하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중요) <시력>을 보세요. <자기 시력>만큼만 보이지요? 그 이상은 보고 싶어도 안 보입니다. 이와 같이 <영의 차원>도 그러합니다. <자기 영의 차원>만큼만 보이고 깨달아집니다. <차원 이상>은 더 보고 싶어도 못 보고, 더 깨닫고 싶어도 못 깨닫습니다. 고로 ‘영적 차원’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 성령이 함께하셔도 <자기 차원과 공적>에 의해 보이고 깨달아집니다. 고로 ‘영적 차원’을 높이라는 것입니다!  <육적인 세계>는 육이 한계가 있어서‘그 차원도 한계’가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차원이 무한’합니다.  <영적>으로 차원을 높여서 <육>이 ‘그 생각’을 전달받고 하면, 더 높게 생각하고 행하게 됩니다. 그래도 <육>을 통해 해야 되니, 한계가 있습니다.  영적 차원을 높여서 생각하더라도 생각날 때는 대낮같이 환하게 생각나다가 기억에서 사라지면 생각이 다 사라져서 흔적조차 없습니다. 고로 ‘생각날 때 자세히 기록’해야 됩니다. 잊었어도 ‘기록한 것’을 ‘눈’으로 보면 다시 생각납니다. 더 확실한 방법은 ‘생각날 때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것’이 되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 <영>은 육이 생각하고 행하는 대로 차원을 높이게 되고, 영 자체로도 행하여 차원을 높이게 됩니다.  <영적 차원>을 높여야 ‘꿈’에도 잘 보이고 잘 깨달아집니다.  <생각의 차원이 낮은 자>는 어떤 존재물의 모양과 형상이 ‘낮은 차원’인데도 그것이 자기 마음에 든다고 선호하며 그것을 사고 만족합니다. 종교도 ‘자기 생각의 차원’에 따라서 택합니다. 그러다 <생각의 차원>이 높아지면 이전 것에는 만족을 못 하고, 다시 ‘높은 차원의 것’을 택하기도 합니다.  <자기 눈높이>로 보이듯이, <자기 시력>대로만 보이듯이, <자기 뇌 지능, 생각의 차원>대로만 보입니다.  <생각의 차원>이 낮으면, ‘차원 낮은 것’만 보고 좋아합니다.  아무리 <좋은 것>을 봐도 ‘자기 생각의 차원’대로만 생각나서, 더 봐도 그 이상으로는 좋은 것을 모릅니다.  <차원>을 높여야 ‘좋은 것’을 알고 행하게 됩니다.  수석도, 형상석도, 조경도 자꾸 보고 깨달아야 ‘차원’이 높아져 알게 됩니다.  월명동에 각종 돌들이 있습니다. 저마다 ‘돌의 형상’에 대해서 배워야 <더 좋은 것, 더 차원 높은 것>을 알게 됩니다.  <차원>이 낮으면, ‘차원 낮은 것’만 좋아합니다. 자기 취향이라 하지만, ‘각각의 가치’가 있습니다. 고로 <자기 차원>을 높여야 ‘가치 있고 차원 높은 것’을 택하여 차원 높게 살게 됩니다.  <자기 차원>이 낮으면, 사람도 ‘차원 높은 자’를 못 봅니다.  <자기 생각과 행위의 차원>대로 ‘자기 영’이 ‘그 차원의 영계’로 가고, 그 영계에서도 ‘개인 차원에 해당되는 곳’으로 갑니다.  힘들어도 ‘자기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 <주>가 높은 차원에 있으니, <주>와 일체 되고 하나 돼야 <주>를 따라서 같이 차원이 높아집니다.  <성령>과 일체 되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적 차원’이 높아집니다.  <말씀>을 깊이 보세요! 곧 ‘설교 말씀’과 ‘잠언’입니다. 깊이 보고 알아야 깨달아져서 ‘차원’이 높아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 성경을 보면 ‘차원’에 대한 표현이 나옵니다. 예수님도 ‘차원’을 두고 설교하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늘 ‘차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찾아봐요. 각 센터별로 나옵니다.  선생이 두 가지만 말씀해 줄까요?  오늘 성경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13장 11절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 말씀과 같이 생각도 행실도 차원이 낮을 때는 말하는 것,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으나, 성장하고 차원이 높아지면 ‘어린아이의 것’을 버리고 차원 높게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게 됩니다.  로마서 8장 5~8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이 말씀과 같이 <육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차원이 낮아서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차원이 높아서입니다.  <구약 차원>은 낮습니다. <신약 차원>은 중간입니다. <성약 차원>은 최고 극적으로 높고 실체적입니다.  <고양이 차원>은 낮습니다. <치타 차원>은 높습니다. 기능도, 행함도, 사냥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 <개미 무게>는 가볍습니다. <코끼리 무게>는 무겁습니다. <무게>로 ‘차원이 결정’됩니다. 이와 같이 <신앙>도 ‘생각과 행위의 차원’으로 결정됩니다.  인간은 ‘차원’대로 누리고 기뻐합니다. 고로 생각과 행위의 차원과 영적 차원을 높여서 신앙의 차원, 휴거의 차원, 사랑의 차원을 높여야 그만큼 기쁨과 희망과 사랑의 이상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 <육적인 자들>이 하는 ‘행위’나 ‘세상 예술’을 봐요. 얼마나 차원 낮게 행하고 즐기며 갑니까? 모두 자기만 좋은 차원대로 놀고 즐기고 만족해합니다. 고로 <육적인 자들>이 ‘영의 세계’에 오면, 땅에 붙어 삽니다. 그 영들이 사는 집을 보면, 형편없습니다. 그런데 <삼위와 주와 함께 영에 속해 사는 자들>이 왜 ‘그들의 것’을 그리도 선호합니까? 삼위와 주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을 떠난 예술>은 아무리 화려하고 대단해도 ‘썩은 예술’입니다.  하나님은 정확하십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정확하신지 <그 단계의 선(線)>을 보면 압니다. <땅과 바다>같이 선(線)이 확실하고, <바위와 흙>같이 선(線)이 확실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는 <선(善)과 악의 선(線)>이 확실하고,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선(線)>이 확실합니다. 고로 <육적으로 사는 자>는 ‘육적 극’에 처해 살고, <영적으로 사는 자>는 ‘영적 극’에 처해 살고 있습니다. <전환> 중요 부분  성령은 ‘영적인 차원을 높인 자’와 함께하십니다. <혼자> 하면, ‘혼자 자기만의 영적인 세계’입니다. 항상 ‘성령과 함께’입니다. ‘주와 함께’입니다!  여자 혼자 ‘사랑의 차원’을 높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사랑할 대상, 남자’가 없으면, 실체로는 못 높입니다. 남자와 사랑하면서 ‘사랑의 차원’을 높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끼리도 ‘사랑의 차원’을 높이기는 하지만 <근본의 차원>은 못 높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사랑의 주체’로 삼고 ‘그 대상체’가 되어야 실체로 근본적으로 사랑의 차원을 높입니다. 이는 절대적입니다.  <혼자서 하는 자, 자기중심으로 하는 자>는 하기는 하되 ‘혼자 사랑을 이루는 차원’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절대적으로 ‘주체이신 삼위’와 일체 돼야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하나님 뜻에 의한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 여기서 ‘육적으로도 하나님 뜻에 의한 사랑을 이룬다.’ 함은 삼위와 주와 생각 일체, 행동 일체 되어 전도도 하고, 강의도 하고, 설교도 하고, 주의 일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듯 <사랑의 차원>을 높이는 자입니다.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는 자신을 <절대 사랑의 주체>로 삼고 일체 되어 그 생각을 가지고 늘 소통하며 진정 간절히 사모하고 사는 자를 <사랑의 동반자>가 되게 하시고, <휴거된 신부>가 되게 하시고, 이런 삶을 <사랑 일체의 생활>로 보십니다. <이야기> 중요 부분  하루는 선생이 낮에 성령과 수십 번 의논하고 대화하며 잠언을 쓰고, 편지도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다 써서 보냈습니다. 그날 밤 <꿈>에 선생이 밭도 매고 일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 옆에서 같이 일을 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와 같이 일도 하고, 대화도 하고, 사랑의 생활을 했습니다.  그 여자는 말하기를 “나와 마음이 딱 맞게 일했으니, 사랑도 한 거야. 그러지 않았으면 절대 사랑하지 않았을 거야. 늘 나와 함께 일을 하되, ‘내 생각’대로 해 줘. 그러면 또 사랑할 것이고, 그러다 같이 살게 된다.” 했습니다.  그 말을 듣고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런데 나는 <육>이니, 이제 잠에서 깨고 ‘육의 일’을 해야 돼. <육신의 일>을 다 하고, 밤에 잠잘 때 또 같이 일하러 올게. 나 갈 시간 됐어. 일어나야 돼.” 했습니다.  그 여자는 또 말하기를 “나는 <영>이지만 ‘육계’에 가서 나도‘너와 같이’ 일할 테니, 꼭 여기서 나와 일체 되어 하듯 ‘육의 일’도 해야 돼. 그러면 육계에서도 또 사랑해 줄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잠’도 깨고 ‘꿈’도 끝났습니다.  새벽에 기도할 때 이 꿈을 말하며 성령께 물어보니 성령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늘 삼위일체를 절대 중심해라. <영계>에서나 <육계>에서나 그리해야 된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듯, 삼위와 일체 되어 해야 돼. <자기중심으로 하는 자>는 ‘혼자 일하는 자’와 같다. 이 시대 신부들 모두 <삼위와 주와 일체 되어 주 안에서 사는 삶>이 늘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며 같이 사는 삶이다.” 하셨습니다.  <삼위와의 사랑>은 이와 같이 이루어집니다. 인간 육체끼리 하는 사랑과는 다릅니다. 천국에서도 ‘휴거된 신부와 삼위와의 사랑’이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마무리> 중요 부분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 <휴거된 신부>라면, 항상 ‘성령과 함께, 주와 함께’ 해야 됩니다. 생각도 일체, 행실도 일체, 혼과 영도 일체입니다.  그런데 영계에서 ‘섭리인들의 혼과 영’을 보면 혼자 밭을 매고, 혼자 포도 농사를 짓는 자들이 많습니다. 성령과 주를 간~절히 모시지 않고, 진정 사랑하고 대화하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 간~절히 해야 됩니다. 간~절히 모시고 사랑해야 됩니다. <간절히>란, ‘간이 저리도록’입니다. 다른 말로는 ‘배추에 소금 간이 배어 절도록’입니다. <자신의 간절함>이 ‘하나님의 마음’에 절도록 해야 됩니다.  간~절히 기도하고, 간~절히 성령과 주를 모시고 행하며 간~절히 삼위와 주를 사랑하면, <그 간절함>이 ‘삼위의 마음’에 절게 되어 하나님은 “간이 딱 맞다. 너 맛있는 인생이다.” 하시며 사랑도 주시고 축복도 주시며 함께 행하십니다. 모두 그 단계로 가야 됩니다!  (중요) 성령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절대신>은 ‘공의’도 높고 ‘생각’도 높아서 수준 낮게 행하지 않고 차원 높여 행한다. 고로 이 시대 휴거된 너희들도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차원’을 높여서 삼위와 주와 일체 되어 삼위와 주를 ‘차원 높게’대해라. 하나님이 깜~~짝 놀라시게! <절대신의 사랑의 대상, 신부>가 되어서 행해라.” 하셨습니다.  (중요) 삼위일체는 ‘차원’이 높으십니다. 삼위일체는 이때를 위해 계속 ‘차원’ 높여 역사해 오셨습니다. 고로 <이 시대 새 역사>는 ‘이 시대에 해당되게 기대’하시며 <최고의 차원>에서 기다리십니다. 모두 ‘그 차원’으로 올라가야 됩니다! 차원을 높이는 대로 ‘자기 것’을 깨닫고 찾게 되어 <자기>도 쓰고 <섭리사>도 쓰면서, 주와 함께 잔치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