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6.12.18 (일)
161218 주일말씀
- 선포일
- 2016.12.18 (일)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8장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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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8일 주일말씀>
해라. 하지 마라.
전능자 하나님의 말에 절대 순종하여라
본 문 요한복음 8장 51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 말씀의 주제는
‘하여라. 하지 말아라.
전능자 하나님의 말에 절대 순종하여라.’입니다.
◎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하시는 말씀이
듣기에는 그냥 <보통 말> 같은데
결국 겪고 보면 그렇게도 <중하고 귀한 말씀>이며,
<삶과 죽음이 좌우되는 말씀>이다. -입니다.
오늘은 이것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하고자 하는 말’을
<각자 본인>에게 직접 깨우쳐 주기도 하시고,
<보낸 구원자>를 통해서 가르쳐 주어 깨닫게 하기도 하시고,
<관리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기도 하십니다.
구약에서 신약까지 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보낸 메시아나 선지자들이나 일을 맡긴 자들에게
어떤 일을 놓고 말씀하실 때
“해라.”, 혹은 “하지 마라.” 하고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말씀하실 때는
간단하게 “해라. 하지 마라.” 하십니다.
극한 내용의 말씀을 하실 때도 어떤 자극적인 단어를 안 쓰시고,
그저 순수하게 “해라. 하지 마라.” 하십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 말을 ‘보통’으로 듣고 넘겨 버립니다.
실상은 ‘보통’으로 들으면 안 되는 내용입니다.
그 말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행하면 ‘그리도 중하고 귀한 말씀’이며,
어느 때는 ‘삶과 죽음이 좌우되는 것’도 있고,
어느 때는 ‘복과 화가 좌우’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삶과 죽음,
최고 좋은 복과 최고 나쁜 화가 좌우되는 말씀>인데도
삼위일체는 간단하게 “해라. 하지 마라.”라고만 말씀하십니다.
왜 해야 되는지, 왜 하지 말아야 되는지,
그 ‘내용’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중요) 왜 ‘내용’은 말씀을 안 해 주실까요?
첫째, 본인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면
실제로 겪어서 알게 되니까 ‘내용’은 말해 주지 않습니다.
둘째, <내용>을 보고서 하거나 안 하면
전능자의 <말씀>을 보고 순종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보고 그것을 중심하여 행한 것이 됩니다.
<내용>이 ‘화’를 당하는 것이라서 순종하거나,
<내용>이 ‘복’을 받는 것이라서 순종한다면
<생각의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고
그 ‘내용’에 둔 것이 됩니다.
고로 <말씀의 권위>를 중심하지 않으니,
그것이 곧 ‘하나님’을 중심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고로 ‘육적인 자’가 됩니다.
고로 왜 하라고 하는지, 왜 하지 말라고 하는지
<내용>은 말을 안 해 주고
순수하게 “해라. 하지 마라.” 하시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지 보십니다.
하나님이 “하여라.”, 혹은 “하지 말아라.” 하시면,
<내용>을 궁금해할 것 없이
<전능자의 말씀>이 얼마나 큰지 깨닫고
즉시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순종해야 됩니다.
(중요) <하나님이 하라고 한 것>을 행하여
죽음도 화도 피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하나님이 하라고 한 것’을 행해서
화를 면했다는 것을 모릅니다.
고로 자기는 화를 당하지 않았으니,
‘별 특별한 것이 없었는데 왜 하라고 하셨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라고 한 것’을 행하지 않으면,
그로 인해 화를 당하고 나서야
‘이래서 하라고 하셨구나. 안 해서 화를 당했구나.’ 합니다.
행해서 화를 피한 것을 모르니,
흔히 행하고 얻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중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본인이 순종해 봐야 압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화를 피했다는 것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한 것을 하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안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에
해도 화도 안 당하고, 위험한 것도 넘겼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에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간단하게 “해라. 하지 마라.” 하고 깨우쳐 주십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 말이 ‘생명’이라서 그리도 큽니다.
<간단한 말>이라고 소홀히 여기면
하나님 앞에 순종하지 않은 죄도 짓게 되고,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화를 받고 복을 못 받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보낸 자>를 통해 말씀해 주시고,
<계시자들>을 통해 계시할 것들을 계시해 주시고,
<만물>이나 <꿈>을 통해 계시할 것들을 계시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성령으로 감동’되게 하여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때마다 말씀해 주십니다.
말씀해 주시면, 즉시~ 빨리~ 행해야 됩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선지자나 메시아나 사명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안 지켜서
망하고, 죽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한 자들은 고통을 안 받고, 안 죽었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한 연고로 축복을 받았고,
그 시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시키는 대로 순종하지 않아서 일생 동안 형벌을 받고,
또 후대까지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형벌을 받으니,
“해라. 하지 마라.” 하는 말은 단순한 말 같지만
정말 크고도 크고, 중하고도 중한 말입니다.
이 시대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이 시대에 보낸 구원자를 통해
“해라. 하지 말아라.” 말씀하십니다.
시대 사명자는 그 말씀을 받고,
모두 이해하도록 ‘설교’로 전해 줍니다.
<행한 자>만 새 역사로 부활되고, 휴거되고,
영원한 휴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왜 하라고 하는지, 왜 하지 말라고 하는지는 ‘비밀’입니다.
미리 알려 주면 ‘내용’을 의식하니,
오히려 <할 것>도 못 하게 되고 <안 할 일>도 하게 됩니다.
그러니 ‘내용’을 묻지 말고,
하나님과 성령과 주가 말씀한 것은 목숨같이 지키며
<하라고 한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중요) 말씀대로 행하면,
행함으로 인해 ‘실체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의 말씀대로 해야 됩니다.
항상 안 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가 말한 대로 한 것은 다 잘됐습니다.
가령 “이 땅을 사라.” 하시면
“왜요? 아무 쓸모없는 땅인데요.” 하지 말고 사야 됩니다.
그리고 “그 땅, 그 밭을 파 보아라.” 하시면,
“왜요? 힘든데요?” 하지 말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열 일 제치고 파 봐야 됩니다.
파 보니, ‘밭에 감춰진 전설의 보화’가 있었습니다.
말씀대로 하면,
그제야 “이래서 이 밭을 사라고 하셨구나.
그리고 이곳을 파서 개발하라고 하셨구나.” 깨닫게 됩니다.
(중요) 하나님은 ‘행하지 않는 자’에게
<보화 이야기>를 안 하십니다.
왜요? <보화>를 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육적인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화>를 준비하시고 “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해서 해 주시는 <말씀>을 생명시하고,
‘말씀의 권위를 세워 순종한 자’가 <보화>를 발견하게 하십니다.
<내용>을 듣고서 할지, 안 할지 결정한다면,
<작은 내용>이면 하나님과 주의 말씀을 듣고도
안 할 수도 있게 됩니다.
지난날 겪은 사연을 잊지 말고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하라고 한 것>을 하니
무엇을 받고 얻고 좋은 일이 생겼는지 잊지 말고,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안 하니
무엇 때문에 하지 말라고 했었는지 깨닫고 잊지 말기 바랍니다.
지난날의 사연을 잊으면, 기뻐하다가도 ‘기쁨’이 사라집니다.
<잠시 쉬었다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것은 하고, 어떤 것은 하지 말라고 하실까요?
<의>는 행하고, <불의>는 행하지 말아야 됩니다.
여기서 <의>는 ‘하나님이 보실 때 의’이며,
<불의>는 ‘하나님이 보실 때 불의’입니다.
어떤 것은 <자기 생각>에 ‘의로운 일’이라 생각하고 했는데,
할수록 ‘손해’가 갔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의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자기 생각>이 다르니,
항상 확인하고 해야 됩니다.
<가장 확실한 확인>이 곧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산 중앙에 있는 과일은 따먹으면 죽는다.
그러니 따먹지 마라.” 하셨는데도
아담과 하와는 그 말씀이 정말 중한지 모르고 따먹었습니다.
그 말씀이 ‘육과 영의 운명을 좌우하는 말씀’인지 몰랐습니다.
결국 <금단의 열매>를 비유한 ‘동산 중앙의 과일’을 따먹었습니다.
곧 ‘육체 사랑 관계’를 했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중한지 모르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저주’를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고통을 받을 때,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깨졌고,
그 후손들도 4000년 동안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하다는 것을 알고 안 따먹었으면
그 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당세에 본인들도, 후대에 후손들도
<지상천국, 천상천국>을 이루고 축복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어,
<신약의 새 역사>를 펴 나갔을 것입니다.
수학 공식을 보면,
간단한 말로 “더해. 빼. 곱해. 나눠.” 한두 자로 말합니다.
그 <공식>대로 하면,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이와 같이 간단하게
“해라. 하지 마라. 더해라. 빼라.”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대로 하면, 영도 육도 ‘축복’입니다.
어떤 것은 하라고 할 때 안 해서
10~20년 만에 온 기회를 놓쳤습니다.
어떤 것은 하라고 할 때 해서
천 년 동안 기뻐하며 쓸 것을 얻게 됐습니다.
<이 시대 말씀을 믿고 행한 자들>은
영원히 그 ‘혜택’을 보게 됩니다.
반면 <순종하지 않은 자들>은 섭리사를 나가서
우울증과 후회 속에 살고 있고,
혹은 병들어 고통 속에 살고 있고,
혹은 육적 사랑을 나눈 자에게 버림받았고,
혹은 악한 자가 되고 하나님의 반대자들이 되어 악평하며
사망에 속해 살고 있습니다.
다 확인됐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확인될 것입니다.
그 영들도 그 <행위>대로 ‘사망’에서 살고 있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 시대 말씀>은 선생이 10~20대에 성자께 받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서 가르쳐 주셨는데,
실상 <전능자 성자>가 ‘예수님’을 쓰고 나타나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기성에서 가르치는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 ‘공중 휴거’에서 공중은 ‘하늘 공중’이 아니다.
<땅>이 ‘지구 공중’이다.
▸ <예수의 육신>이 안 온다.
<하늘 구름>을 타고 오기를 기다리는데, 그렇게 안 온다.
예수가 ‘땅’에서 <마리아의 몸>을 타고 태어났듯이,
<믿는 자들>을 타고 나타났듯이,
‘땅’에서 <인구름>을 타고 온다.
▸ 하나님이 예수에게 ‘말씀’을 주었고,
그 말씀을 믿고 따르면 그것이 ‘부활’이고 ‘휴거’다.
신약 때는 ‘자녀급 부활, 자녀급 휴거’다.
▸ 성약 때는 하나님이 ‘시대 사람’을 다시 뽑아서
그를 ‘구원자’로 삼고 역사하신다.
예수 때처럼 ‘그 육신’을 쓰고 삼위가 나타나 역사하신다.
그가 전하는 말씀 듣고 행하면 ‘신부로 휴거’된다.
(하고, 성경을 펴 보이며 가르쳐 주셨습니다.)
▸ 기독교에서는 1999~2000년쯤
‘예수가 구름 타고 재림한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
그들은 성경을 잘못 푼다.
오직 ‘메시아’만 성경을 제대로 푼다.
봐라. 2000년이 돼도 안 온다.
<육>을 가지고 <하늘 구름>을 타고는 영원히 안 온다.
외쳐라. (하셨습니다.)
▸ <심판>도 ‘지구 멸망’이 아니다. ‘악과 무지 멸망’이다.
<육적 심판>도 ‘부분적인 심판’이다. 외쳐라. (하셨습니다.)
▸ (어떤 사람을 지목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는 ‘메시아’가 아니다.
<메시아 나 예수>가 말했으니,
그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담대히 외쳐라.
그러면 이 말씀을 따라서 구름같이 많은 자들이 밀려온다.
그들을 데리고 <성약의 역사>를 이루며
<성경에 기록된 나 예수의 예언>을 이루며 가게 된다.
(하고, <성자>가 ‘예수님’을 쓰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 기성은 성경을 제대로 못 푸니,
네가 내게 배운 대로 바로 외쳐라. (하셨습니다.)
▸ 이후, 누구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절대 ‘성자의 말씀’대로 밀어붙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누가 반대하면 “너는 예수님이 아닌데, 네가 뭘 알아?
이 소경아...” 하면서,
성자께서 내게 주신 복음을 전했습니다.
▸ 결국 섭리사에서 가르친 말씀대로 됐습니다.
구시대 기성인 전체 중에서 ‘성경을 제대로 아는 자’가 없습니다.
오직 ‘주인’만 압니다.
섭리사에 온 여러분들은 ‘주인’에게 제대로 배웠습니다.
이 말씀대로 정·녕·코 됩니다!
고로 <이 시대 말씀>을 담대히 전해야 됩니다!
성경이 이루어졌는데도 ‘몰라서 달리 생각하는 자들’ 앞에
숨어서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모르는 자들이 ‘동쪽’을 ‘서쪽’으로 알고 있으면,
인식이 굳어서 오히려 ‘옳은 말’을 안 받아들이니까
잘 보면서 ‘전초’를 해 주면서 이해시켜 줘야 됩니다.
사람이 그릇되게 인식하면, 정말 돌이키기 힘듭니다.
<기성인들>은 인식이 그릇되어 있습니다.
고로 ‘옳은 말’을 전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구시대 무지가 박힌 기성인들>보다
<상식을 아는, 안 믿는 이방인들>을 더 전도하기 쉽습니다.
그들을 전도해야 됩니다.
예수님 때도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사도 바울> 정도만 눈을 떠서 따랐지,
<구시대 유대 종교인들>은 거의 안 왔습니다.
<구시대인들>은 ‘핍박자들’로 끝났습니다.
<안 믿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기독교 역사를 폈습니다.
이 시대도 그렇게 하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남이 닦은 터에 집>을 세우려 하지 말고,
<새 땅>에 터를 닦고 신앙을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구시대>는 ‘오염’됐습니다.
<새 시대>는 ‘깨끗한 새 땅’입니다.
<구시대>는 ‘때’가 갔습니다. ‘빛’을 잃었습니다.
이제 ‘새 시대의 때’입니다. <새 시대>가 ‘빛’이 납니다.
<전환 - 잠언>
◎ 마지막으로 이 말씀에 해당되는
잠언 20여 개를 전해 주고 마치겠습니다.
<삼위의 말씀과 계시>를 듣거나 읽어 보면,
‘사람들이 쓰는 보통 말’ 같다.
그러나 그 속에는
‘그때마다 필요한 귀하고 중한 말’이 들어 있고,
‘삶과 죽음, 축복과 심판을 좌우하는 말’이 들어 있고
‘사고와 화를 피하는 길’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마.” 하셨는데,
그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고 하다가 죽었다.
성령이 “해라.” 하고 감동을 주셨는데, 안 했다.
그러다 그 물건이 떨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하여라. 하지 말아라.” - 이 말은 간단한 말 같으나,
‘죽음에서 사는 말’이며 ‘길’이다.
한 사람이 자기 동료에게 창고 안에서 말하기를
“이 문의 손잡이 꼭 빼야 된다.” 하고 창고를 나갔다.
그런데 동료는 ‘하찮은 말’이니, 그대로 안 했다.
잠시 후 문이 닫혔는데, 못 열고 갇혀서 죽었다.
하나님의 말씀도 ‘보통 말, 간단한 말’ 같아도
그 속에는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들어 있다.
“해라. 하지 마라.” - 이 말은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다.
다른 말을 더하면, 헷갈려서 인식이 다른 방향으로 돌아간다.
고로 전능자는 다른 말씀을 더 안 하시고,
그냥 “해라. 하지 마라.”라고만 간단히 말씀하신다.
그 말씀에 순종해 보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게 된다.
<사람>은 ‘길게’ 말하나, <신>은 ‘짧게’ 말씀한다.
“먹어.” 하면 됐지,
“먹으면 배불러. 살도 쪄. 몸에 좋아.” 하는 <결과>는
본인이 직접 먹고 겪어 보면 안다.
하나님은 “해. 하지 마. 더해. 빼. 곱해. 나눠.” 하고,
간단히만 계시하신다.
<인간의 천 마디 물음>에 <한 마디>로 대답이 되게 하신다.
그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얻는다.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화가 오고 심판을 받는다.
어느 때는 낙심하여 안 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더해라.”도 아니고 “곱해라.” 하실 때가 있다.
행하고 보니, 곱한 만큼 잘됐다.
하나님이 “빼라.” 하셨는데,
우리가 못 알아듣는다고 “빼라. 빼라.” 두 번 말씀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말을 듣고 ‘두 번 빼기 때문’이다.
고로 ‘한 번’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기도를 오래 해도, 응답을 오래 기다려도
때가 되면 하나님은 “해.”, 혹은 “빼.”,
혹은 “더해.”, 혹은 “하지 마.”라고만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하지 마.” 하셨어도
자기 뇌와 마음과 생각이 시동이 걸려 있으면
하지 말라고 한 것이 하고 싶다.
그래도 하지 말아야 된다.
하나님은 ‘강의’를 안 하신다.
<한 단어, 한 문장>으로 강의할 것을 다 하시고,
1년 동안 사람들이 가르칠 것들을 다 가르쳐 주신다.
<보낸 자>는 그 말씀을 ‘잠언’으로 받아서 가르친다.
그러니 ‘잠언 한마디, 한 문장’에
얼마나 엄청난 뜻이 들어 있겠느냐. 경히 여기면 안 된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보낸 자’를 통해
“해라. 하지 마라.” 말씀하시고,
<보낸 자>는 그 말씀을 ‘설교’로 받아 가르쳐 준다.
고로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모두 ‘근본’을 알도록 불같이 전해야 된다.
왜 하지 말라고 했는지는
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안 한 자’만 안다.
왜 하라고 했는지는
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 자’만 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한 자>만 얻고,
‘이래서 하지 말라고 했구나. 이래서 하라고 했구나.’
스스로 알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잔치한다.
<한 개> 행하고, ‘잠언 한 개’를 깨닫고 받은 것이다.
너희도 행해야 잠언의 뜻을 안다.
이성에 관한 것도 “하지 마.”
전도할 때도 “그 사람은 전도하지 마.” 하신다.
왜 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행한 자’만 안다.
그 땅을 파라고 해서 파 보니, ‘각종 유물들’이 나왔다.
말씀대로 하니, 됐다.
말씀대로 하여 되니, 그것이 신기한 것이다.
어느 때는 어떻게 하라고 마음의 소리도 안 들렸는데,
호기심에 그 땅을 파고 싶어서 파 보니 ‘신기한 형상석’이 나왔다.
하나님과 성령이 깨닫도록 감동을 주시며 속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속지 말고, 속으로 너만 알아라.” 하셨다.
어느 때는 달라고 기도하면,
“조건!” = 이 한 마디가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
그때는 ‘기도’보다 ‘조건’을 세워야 된다.
<조건>을 속 시원히 쌓고 행하니, 이루어졌다.
이 말씀을 쓰는 날 새벽 꿈에
도로를 타고 오는데 ‘조은이’가 내 옆에 있었다.
조은이와 같이 도로로 오다가 보니,
산을 중장비로 파내면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은이 손을 꽉 잡고
“나 따라와. 딴 데로 가지 마.” 하고, 그곳을 빠져나오려 했다.
그런데 도로에 흙이 꽉 차서, 나오는 길이 없었다.
중장비들이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해서 위험했다.
가만히 보니 ‘작업 감독’이 있었는데,
차가 뒤로 올 때 피하는 도로변이 있어서
그리로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
나도 그 ‘작업 감독’을 따라서 들어갔다.
그리고 차가 앞으로 가면, 다시 나왔다.
그 감독이 하는 대로만 했다. 옆은 절벽이었다.
그렇게 ‘작업 감독’을 따라서 하고 있다 보니,
포클레인 기사가 포클레인으로 도로의 흙과 돌을 치우고
트럭으로 실어 날랐다.
그러니 사람도 차도 다니게 되었고,
거기서 조은이와 같이 빠져나오다가 꿈에서 깼다.
꿈에서 <작업 감독>은 ‘하나님과 성령님’이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과 주가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
하나님과 성령과 주와 ‘심정 일체’ 되어
“더해. 빼. 곱해. 나눠.” 하는 대로 따라 하면 된다.
하나님이 “나눠라.” 하면 따라 해라.
“왜 뭉치라고 해 놓고, 다시 나누라고 하지?” 할 것 없다.
사탄이 개입하면 쪼개고 나눈다.
하나님은 항상 ‘선악 분립’을 하신다.
<가인>과 <아벨>이 같이 있으면, 꼭 ‘가인’을 쪼개 내신다.
<가인>은 <아벨>과 같이 못 산다.
이와 같이 <악평자들>도 쪼개 내셨다. 깨달아라.
구약부터 성약까지 하나님은 그때마다 ‘여건’을 보고,
“해라. 하지 마라.” 말씀하신다.
그 시대에도, 민족에게도, 개인에게도 그리하신다.
<불의>는 “하지 마.” 하시고,
<의>는 “할 수 있다면, 꼭 해.” 하신다.
<자기에게만 주신 “해라. 하지 마라.” 하는 비밀의 말씀>은
절대 이웃에게 나팔 불지 말아야 된다.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는 <자기>만 안다.
이미 기도하여 ‘문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성령님은
<꿈>에도 비유로 보이며 “해. 하지 마.” 하시고,
<낮>에도 만물을 보이며 “해. 하지 마.” 하시고,
<보낸 자>를 통해 말씀과 계시로 “해. 하지 마.” 하신다.
혹은 “빼.”, 혹은 “전진!”, 혹은 “쪼개 내라.” 하신다.
간단한 말이지만 ‘복과 화를 좌우하는 생명의 말씀’이다.
오늘 <잠언 계시>가 뭐냐고 기도하니,
하나님과 성령님은 “해.”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잠언을 쓰기 시작하니,
하나님과 성령께서 ‘오늘 말씀’을 주셨다.
<말씀 마무리>
오늘 말씀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는
“해라. 하지 마라.” 하고 간단하게 말씀하십니다.
왜 하라고 하는지, 왜 하지 말라고 하는지 말 안 해도
‘어련히 알아서 복을 받고 잘되게 하시려나!’ 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을 받고 ‘화’를 면해야 됩니다.
<작은 일>도 ‘할 일’을 안 하면 그것으로 문제가 생기고,
<작은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면 그로 인해 문제가 생겨
자기에게 닥치니, 갈 길 가는 데 고통이 됩니다.
이를 깨닫고 ‘간단히 하신 말씀’을
귀히 보고 중히 여기고 행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성령의 말씀은 행해 보면, 실제로 겪어 봐서 알게 됩니다.
고로 ‘내용’은 말해 주지 않습니다.
또 ‘내용’을 말해 줘서 말씀에 순종하면
전능자의 <말씀>을 보고 순종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보고 그것을 중심하여 행한 것이 됩니다.
<내용>이 ‘화’를 당하는 것이라서 순종하거나,
<내용>이 ‘복’을 받는 것이라서 순종한다면
<생각의 중심>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고
그 ‘내용’에 둔 것이 됩니다.
하나님과 주를 사랑해서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의 권위를 세우는 휴거된 신부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해라. 하지 마라. 전능자의 말에 절대 순종하여라.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