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6.12.21 (수)
161221 수요말씀(뜻이 있어야 되고 좋아야 된다) 최종
- 선포일
- 2016.12.21 (수)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4장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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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21-수요말씀(뜻이_있어야_되고_좋아야_된다)-최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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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1일 수요말씀>
뜻이 있어야 되고 좋아야 된다
본 문 요한복음 4장 34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뜻>이 있어야 된다. <좋아야> 된다.’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잠언>으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 <잠언>은 ‘삼위일체와의 대화의 말씀’입니다.
고로 <한마디 잠언>은 ‘운명’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잘 듣고 마음에 새기기 바랍니다.
◎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뜻>이 있으면, ‘먼 것’이 상관없다.
생각이 있고 좋으면, ‘멀고 가까운 것’이 상관없다.
좋으면, 먼 길도 간다.
◎ 계속해서 잠언을 쭉~ 들어 보면,
앞에 말한 세 가지 잠언이 쑥~ 이해가 될 것입니다.
좋아도 처음 대하면, 눈에도 마음에도 확~ 안 들어오는 것이다.
살아야 정들어 좋아진다.
시골의 집이나 별장을 좋아하면,
도시의 아파트를 두고 찾아서 가야 된다.
도시를 좋아하면, 아파트라도 가야 된다.
핵 보고 간다. <마음에서 좋아하는 것>이 ‘핵’이다.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대로’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이 ‘뜻’이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대로’다.
곧 ‘하나님의 계획’이다.
<뜻 있는 데>로 가야 ‘형통’한다.
월명동은 멀고 먼 시골인데도 <뜻>이 있으니,
가서 ‘자연성전’을 만들어서 살게 되었다.
월명동은 <뜻>이 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과 <생각>이
전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는 곳이다.
선생이 월명동에 살다가 서울로 시대 복음을 전하러 갈 때,
처음에는 월명동을 버리고 갔다.
그러다 그 후에 월명동에 ‘성전’을 세우려고,
300리나 멀리 떨어진 시골로 다시 왔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지,
사람들은 생각도 없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시골이 싫어서 떠났는데, 월명동으로 다시 왔다.
사람이 사는 곳도 아닌데, 사람들이 와야만 하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복음의 핵심지’를 만든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뜻>으로는 아무리 따져 봐도 ‘좋은 뜻’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뜻이 있는 곳이다.” 하셨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교회는 서울에 두고, 시골 월명동은 수련회 때 쓰면 된다.
이곳을 하나의 수련 장소로 쓰자.” 했다.
역시 <사람>은 ‘사람의 생각 외’에는 더 생각하지 못했다.
오직 하나님만 ‘뜻’을 두고 행하셨다.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조금씩 깨달아 알게 되었다.
월명동은 농토까지 모두 풀밭이 되어
주위의 환경과 경치가 좋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단지, ‘흙벽돌집 하나뿐’이었다.
고작 ‘집터 200평뿐’이었다.
그러니 서울에서 다시 와야 될 희망은 하나도 없었고,
단지 고향 집에 가끔 와서 쉬는 장소로 쓰는 것 하나뿐이었다.
가시덤불에 냇가도 없고, 옹달샘 하나뿐이었다.
그나마 논 구석에 있어서 흙탕물이 들어가는 샘물이었다.
나무도 없는 산이 월명동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러니 <사람의 생각과 뜻>이 없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뜻>만 있었던 곳이었다.
그러니 여기 살던 사람들이 모두 이곳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개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년에 한두 번씩 도시에서 10명, 20명, 50명씩 찾아왔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하나님의 궁 ‘자연성전’을 만들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이 가니, 개발하고 점점 좋아졌다.
산만 그대로 놓고, 개발하여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게 만들었다.
<사람>도 ‘하나님의 뜻’이 있어 만들면,
월명동 자연성전같이 아름답고 신비하고 웅장한 자가 된다.
월명동은 대한민국 고을 중 작은 고을일지라도
절대 ‘작지 않은 마을’이 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오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이 되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보잘것없는 자도
<하나님의 뜻>이 있어 만들면, ‘큰 자’가 된다.
사사도 되고, 선지자도 되고, 메시아도 된다.
<뜻>이 없으면, 잘 만들어도 별로다.
<잠시 쉬었다가>
뜻도 있어야 되지만, 좋아해야 된다.
가령 ‘좋아하지 않는 곳’에 집을 잘 만들어 놨다 하자.
거기에 살겠냐.
살다가도 팔거나, 안 팔리면 사용하지 않고 떠난다.
사람도 그렇다.
좋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싫어서 떠나게 된다.
<뜻 있는 곳>도 좋아해야 살게 된다.
좋아하지 않으면, <뜻이 있는 곳>이라도 못 산다.
<뜻 있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으면, 예쁘나 멋있으나 같이 못 산다.
내가 <지구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이 ‘월명동’이다.
하나님이 내게 ‘뜻’을 이루셨으니 그러하다.
하나님은 <내가 좋아하는 곳>에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붙여 놓으셨고 존재하게 해 놓으셨다.
여러 산과 바위 절벽 대둔산을 월명동에 붙여 놓으셨고,
그 안에 대걸작 형상석과
신비하고 오묘하고 아름답고 웅장한 것들이 존재하게 하셨다.
또한 시골 인가에서 떨어진 곳, 공기 좋은 곳,
높은 곳, 조용한 곳에 자리 잡게 하셨다.
존재물들을 <다> 좋아하면, ‘종일’ 기쁘고 ‘매일’ 기쁘다.
월명동도, 월명동에 있는 존재물인 나무, 돌, 형상석,
조경, 산, 물, 운동장, 잔디밭, 건물 등을 <다> 좋아하는 자는
그것들을 ‘볼 때마다, 쓸 때마다’ 기쁘다.
하나님께 말하기를, ‘돌로 자연성전을 만든 것’을 보니,
하나님도 나같이 ‘돌’을 좋아하신다고 했다.
이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돌>을 창조했으니 좋아한다.
<내가 창조한 것들>은 다 좋아하니, 다 좋고 기쁘다.
너희도 항상 ‘나의 창조물’을 보고 기뻐하며 살아라.
또한 너희도 ‘제2의 창조’를 하고 새롭게 만들어서
매일 보고 쓰고 기뻐하며 살아라.” 하셨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은 얼마나 좋아하시느냐고 물으니,
하나님은 “그곳에 앉아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하셨다.
그때 깨달아지기를
‘그곳에 <자연성전 하나님의 궁>을 짓고,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사시는구나.’ 했다.
그러니 모두 <하나님의 뜻 있는 곳>에서 떠나지 말아라.
뜻이 있어서 좋아하면,
사랑하는 자와 일체 되어 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모터’로 삼고 ‘뜻 있게’ 돌리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는 ‘뜻’을 말씀해 주고 행하신다.
나머지에게는 ‘비밀’로 하고 행하신다.
좋아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떨어지게 된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좋아하고 사랑해야 떨어지지 않는다.
<삼위일체>를 좋아하고 사랑해야
<삼위일체가 좋아하시는 것>을 차지하고 쓰게 된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속을 시원하게 해 드려야 되겠다고
새벽마다 기도하니, 하나님도 성령님도 말씀하시기를
“깨달아야 속이 시원하고, 행해야 속이 시원하다.” 하셨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니,
<하나님의 뜻>을 펴 오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가 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여
<새 역사 하나님의 뜻, 휴거 역사>를 편다.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때>가 오면 주신다.
◎ 때가 오면 주신다.
이 잠언이 이해되게 한 번 더 설명해 주겠습니다.
잠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화면> 여름에 더울 때 등산을 하는데
옹달샘과 씻는 장소가 모두 한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등산하는 중에 ‘한 번’밖에 못 쓴다.
고로 하나님은 <때>가 되면,
그때 가서 ‘그 위치에 따라 하나씩’ 주신다. <끝>
섭리역사를 펴면서도 -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마치 등산하다가 덥고 목이 탈 때마다
옹달샘과 폭포수 계곡이 나오듯 그리해 주셨다!
<전환>
이제 기도한다고, 잠언을 그만 받겠다고 하니,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만 받으려면, 나 건드리지 마.
나 건드리면, 자꾸 잠언이 쏟아져 나온다.” 하셨다
몰라서 답답해서 물었는데
그 말에 하나님이 답하시니, 그 <답>이 ‘잠언’이 되었다.
몰라서 답답하니 묻고 싶고,
물으면 하나님이 답을 주어 알게 되니,
잊지 않으려고 ‘잠언’으로 썼다.
어느 때는 잠언 100개, 150개를 쓴다.
그러면 여섯 시간씩 써야 되니, 힘들다.
그래서 궁금해도 안 물었다.
물어보면 ‘답’을 주시는데,
그것을 안 쓰니 금방 뇌에서 사라졌다.
나만 순간 답을 받고 끝나니, ‘남는 것’이 없었다.
잠언을 어떻게 쓰는지 알아라.
<잠언>은 ‘삼위일체와의 대화의 말씀’이다.
<비유의 말씀>이니, 풀어야 된다.
말씀이 끝나고
“휴~ 이제 하나님 가셨으니 좀 쉬자.” 했더니,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신은 가도 옆에 있다. 대화만 안 할 뿐이다.”
그래서 또 대화하며 이야기했다.
“신과 인간은 너무도 차이가 나니,
하나님의 삶은 참 재미있고 보람이 있겠습니다.
인간은 옆에 있다가 가면 안 보이고 멀어지는데
하나님은 가셔도 옆에 계시잖아요.
인간의 삶과 같지 않고, 신만이 누리는 삶이니 좋겠습니다.” 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다르게 사는 맛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깨달아라.
다른 자들과 다르게 자기만 특별하게 사는 맛, 누리는 맛,
그것이 희열과 기쁨과 흥분과 절정의 인생의 맛 아니냐.
새 역사로 와서 신부의 삶을 사는
너희 자신에 대해 깨달아라.” 하셨다.
◎ 이렇게 대화하며 받은 잠언을 몇 개만 더 말씀해 주고, 마치겠습니다.
자기만 가지고 있는 맛, 자기만 누리는 맛이다.
전에도 성령님이 대화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인간은 ‘구분해서 사는 맛’이다.” 했는데,
그 말씀이 같은 맥으로 연결되어 생각났다.
사람은 ‘구분해서 대하는 맛’이다.
아무에게나 할 말을 다 하면, 구분하지 않은 만큼 맛이 감한다.
열 가지 음식도 구분해서 먹으면 ‘열 가지 맛’을 다 느끼지만,
합쳐서 같이 먹으면 열 가지 맛도 ‘한 가지 맛’으로 끝난다.
사람도 ‘구분해서 대하는 것’이 지혜다.
이것이 ‘인생 삶의 맛’이다.
똑같이 대하면, ‘개성의 맛’이 없다.
<비밀>도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같은 차원에 있는 자들끼리만 말하고 즐겨야 된다.
아무에게나 다 이야기하면, 인생 맛없이 사는 자다.
<사랑>도 다 똑같이 대하는 사랑이 아니다.
행한 대로 대해 주며 사랑하는 맛이다.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 주도 행위대로 대해 주며 사랑해 주신다.
그래야 ‘사랑의 맛’이 난다.
만물도 ‘개성대로 존재하며 대하는 맛’이다.
돼지에게 자기 비밀을 이야기하면,
돼지와 고구마를 같이 먹게 된다.
닭이나 개에게 농사지은 것을 어디 두고 먹는지 이야기를 안 해야,
재미있고 맛있게 산다.
구분하여 말하지 않는 자는
마치 ‘개를 황금 의자에 앉히는 자’와 같다.
구분하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화를 다 줬더니,
결국 버리고 가서 ‘보화에 묻은 흙’을 씻느라 땀을 뺐다.
◎ 마무리하겠습니다.
다 똑같이 받고, 다 똑같이 대해 주고, 다 똑같이 이야기하면
‘인생의 맛, 사랑의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 주도
각 사람의 ‘행위’대로 대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새 역사로 온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다르게 사는지 진정 깨닫고,
자기만 특별하고 다르게 사는 맛, 누리는 맛을 알고,
그 기쁨과 흥분과 절정의 인생의 맛을 알고
매일 ‘성령 충만’하여 살기를 축원합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