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7.01.18 (수)
170118 수요말씀(빛을 잡듯 실천해라) 최종본
- 선포일
- 2017.01.18 (수)
- 성경 본문
- 이사야 19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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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8-수요말씀(빛을_잡듯_실천해라)-최종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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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8일 수요말씀>
빛을 잡듯 실천해라. 순간의 판단과 실천이다
본 문 이사야 19장 1절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무엇을 실천할 것인가에 앞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뭐였죠? (청중이 답하기를 기다렸다가)
네~~ “빛을 잡듯 실천해라.”입니다.
◎ 오늘은 ‘빛을 잡듯 실천해라.’에 대해서
<잠언과 설교>로 풍성하게 말씀해 주겠습니다. 깊은 말씀입니다.
<말씀 시작>
◎ 먼저 ‘핵심 잠언 7개’를 말씀해 주겠습니다.
모든 것이 ‘순간’에서 좌우된다.
모든 것이 ‘순간의 판단과 실천’에서 좌우된다.
큰일도 ‘순간의 판단과 빠른 실천’으로 결정된다.
큰 기회도 ‘순간의 판단과 빠른 실천’으로 잡게 된다.
동시에 따라가라.
<생각>과 동시에 <몸>도 따라 행해라.
빛을 잡듯 실천해라.
빛보다 빠른 <생각>이 있으니, <빛>이 번쩍 하고 지나가도
<생각>으로 ‘순간 판단’하고 잡을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일체 되어 행하면,
전능자의 생각같이 빨리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천하게 된다.
<잠시 쉬었다가>
◎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빛을 잡듯, 순간 판단하고 실천하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겠습니다.
순간의 판단과 빠른 실천입니다!
<그 순간>은 돌을 공중에 던졌을 때
돌이 공중이 떠 있다가 내려오는 순간과 같습니다.
그 안에 빨리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해야 됩니다.
순간의 판단과 빠른 실천입니다.
<그 순간>은 날아가는 새가
사람의 몸을 나무로 착각하여 앉았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순간 날아가기 직전과 같습니다.
그 순간에 판단하여 새를 잡듯 해야 됩니다.
평소 자기 소원을 놓고 예비하고 근신하며,
<순간의 판단과 빠른 실천을 한 자>만 얻습니다.
순간의 판단과 빠른 실천입니다.
<그 순간>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자기 몸을 지나가는 순간과 같습니다.
이 잠깐의 순간에 판단하고 실천해야 됩니다.
새벽 정한 기도 시간에 일어날 때도 잠에서 깨서 눈을 떴으면,
순간 판단하고 순간 일어나는 실천을 해야 됩니다.
일어날 기회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 ‘잠’에 빠집니다.
새벽 제시간에 눈을 떴는데, 조금 더 누워 있었습니다.
이때 ‘영계의 한 장면’이 보였습니다.
두 사람이 어떤 일을 놓고 하느냐, 안 하느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사람의 형상’이 형성되고 있었는데,
선생이 계속 일어나지 않으니
시계 초침이 가는 대로 ‘그 사람의 형상’이 점점 희미해지다가
사라져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새벽 제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영적 세계의 일>이 형성되지 않는구나.
<육>을 통해 ‘영적 세계가 형성’되어
<육>으로 전달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즉시 육이 일어나서 행하니,
<영적 세계>가 형성되어 <육>으로 ‘말씀’이 전해져 왔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육이 실천>해야 ‘영의 세계’가 형성되어 보이고 들립니다.
이 장면은 마치
땅에서 샘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하고,
나무를 심어 푸른 숲을 만들고,
수증기가 증발되어 구름이 형성되고,
때가 되면 비로 내려 땅을 적시는 것 같았습니다.
영의 세계도 ‘순간’ 형성됩니다.
고로 ‘육이 순간 판단하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 순간>은 대화할 때와 같습니다.
대화할 때 어떻게 하지요?
한 마디 하고, 한참 있다가 또 하지 않지요?
계속해서 다음 말을 이어 가면서 합니다.
그래야 대화가 되죠!
지금 하고 있는 말에 이어서
순간 다음 말을 생각하면서 말하는 순간같이,
순간 판단하고 실천해야 됩니다.
<시간>과 같이 ‘할 일’이 가기 때문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누구든지 ‘순간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기다리면서 미리 준비하고 생각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영계를 보니, 파도가 밀려왔다가 해변에 부딪히고
다시 밀려 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물을 그릇에 떠 담듯, 순간 판단하고 실천해야 됩니다.
물을 얼마만큼 담을지, 순간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미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그때가 오면, 판단한 대로 즉시 실천하면 됩니다.
큰일도 이같이 ‘순간의 판단과 실천’으로 좌우됩니다.
단 ‘기다리면서 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순간 “할 거야? 안 할 거야?” 했을 때,
“한다.” 혹은 “안 한다.” 대답할 수 있는 순간의 시간같이
모든 일이 ‘순간’으로 그때그때 흘러갑니다.
고로 미리 준비하고 생각해 뒀다가,
그때가 닥치면 즉시 판단하고 대답하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홍수가 나서 급물살에 떠내려가는 자를 건지는 순간같이
여러분 앞에 ‘기회’가 오고 있습니다.
미리 준비했다가 그때가 닥치면 빛같이 움직여
준비한 대로 순간 판단하고 실천해야 됩니다!
<정녕코 해야 될 일>인데 그 순간 빨리 못 하면,
1년 있다가 그 기회가 다시 오거나,
혹은 한 때 두 때 반 때가 지나야 그 기회가 다시 옵니다.
그러나 그때는 더 어렵고 힘들게 해야 됩니다.
기다렸다가 하니 실속 있게 실천할 수는 있는데
처음보다 더 값을 달라고 하고, 더 어렵게 얻게 됩니다.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미리 준비하고 예비한 자만
착오 없이 ‘그 순간의 기회’를 맞게 됩니다.
기회가 왔을 때 ‘순간의 시간’이지만,
누구든지 ‘순간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긴 시간에
‘할까, 안 할까? 어떻게 할까? 얼마만큼 할까?’ 하면서
미리 생각하며 준비하고 기다렸기 때문에
누구든지 순간 판단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순간 판단하고 실천하는 순간>은
파리가 순간 앉았다 날아가는데 순간 잡는 시간과 같습니다.
시간이 짧은 것 같지만, 짧지 않습니다.
이미 그 파리가 앉기를 기다리면서
잡기 위해 준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결정하고 준비하고 있는데 파리가 날아와서 앉으니,
즉시 판단하고 잡을 수 있습니다.
설교 때도 순간 듣고 못 깨달으면, 그냥 지나갑니다.
정신 차리고 예비하고 집중했다가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한 번 기회를 놓치면
1년, 2년, 3년 후에 다시 돌아오는 기회도 있습니다.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심혈을 기울이고 심정을 다해 전해도
듣는 자가 같이 정신과 생각을 일체 시켜 듣지 않으니,
들어도 이해를 못 하게 됩니다.
콘센트와 플러그가 딱 맞으니 ‘전기’가 통하듯이,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같이 정신 차려야
주의 말씀이 제대로 들립니다.
지구는 공전과 자전을 하지요? 그러면서 <시간>이 갑니다.
인간도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따라서 살고,
그에 따라 흐르는 <시간>과 함께 삽니다.
고로 인간은 <시간>을 따라가면서 행해야 됩니다.
시간은 가는데,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뛰어야 따라갈 수 있습니다.
시간이 더 가도 앉아만 있으면, 결국 뛰어가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기회의 때>에 못 하면, 그 기회는 ‘딴 세상’에 가 있습니다.
미리 애타게 기회를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다가
자기 앞에 ‘기회’가 왔을 때,
어서 ‘순간 흐르는 시간’을 따라서
순간 판단하고 잡고 행해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계속해서 <잠언>으로 조금 더 말씀하겠습니다.
<먼저 할 일>을 먼저 해라.
초침, 분침, 시침 가는데 다 잡으려면 못 잡는다.
<초침> 먼저 잡고, 그다음에 <분침> 잡고,
그다음에 <시침>을 잡으면서 ‘그 시간에 해당되는 일’을 해라.
<먼저 할 것, 그 시간에 해당되는 것> 먼저 해라.
새벽에도 ‘먼저 할 것’ 먼저 하면서, 순서대로 하기다.
새벽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기’다.
그다음에 ‘씻기’다.
그다음에 ‘성삼위께 인사’다.
그다음에 ‘말씀 받아쓰기’다.
그다음에 ‘기도 대화’다.
이것은 ‘선생 새벽 시간 순서’다.
저마다 다 순서가 있다.
<먼저 할 것> 먼저 해야 ‘다음 것’으로 이어진다.
먼저 새벽을 깨워 일어나라.
그래야 삼위와의 대화로 이어진다.
<영의 세계>는 빨라서 ‘빨리 판단하고 실천하는 자’만 잡는다.
<새벽 일찍 일어난 자>만 <새벽 일찍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다.
늦게 일어나면 10년, 50년, 100년이 가도 한 번도 못 듣는다.
<빛같이 빠르게, 일찍 실천하는 비밀>도
오직 ‘실천하는 자’만 알고 말한다.
안 해 본 자는 ‘빛을 잡듯 실천해라.’- 이 말씀이
평~생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없다!
<실천한 자>만
생명의 말씀의 주인공이 되어 ‘그 세계’에 모여 산다.
<영적인 이야기>는 ‘영적인 자들’만 안다.
나머지 사람들은 ‘육적’으로 알아듣는다.
<전환>
◎ <실천한 자>만 알고 말하듯, <영적인 자>만 영적인 이야기를 안다.
- <마지막 이 잠언에 해당되는 말씀>을 조금 더 해 주겠습니다.
<성경의 영적인 말씀>도 ‘육적인 말’로 써져 있습니다.
<영적인 자들>은 ‘영적’으로 듣고 행하고,
<육적인 자들>은 ‘육적’으로 듣고 행합니다.
결국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이루어졌고,
<육적인 것>은 ‘육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는 자들>만 ‘모르는 자들의 그릇됨’을 알고,
<영적으로 이루어진 역사>를 맞고 꿈을 이루며 갑니다.
<모르는 자들>은 계속 ‘육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기다리던 자들>이 모르면 모르는 대로 지나갔고,
<아는 자들>만 아는 대로 이루면서 갑니다.
<아는 자들>은 ‘영적’으로 행하고 그대로 되었으니 확신합니다!
<영적인 것>이면 ‘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고로 <영적으로 알고 행한 자들>만
‘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따라갑니다.
<육적인 자들>은 ‘육’으로 안 이루어지니 계속 기다립니다.
계속 기다려도 ‘육’으로는 안 이루어지니,
그때는 왜 하나님이 행하시지 않느냐고 하기도 하고,
연장했다 생각하기도 하고,
연장했다면 왜 연장됐는지 하나님께 구하며,
계속해서 ‘육적’으로 풀면서 막연한 희망으로 삽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메시아는 구름 타고 온다.’는 말씀의 해석입니다.
<육적으로 푸는 자들>은
메시아가 ‘공중의 하늘 흰 구름’을 타고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렇게는 안 오시니,
“아직 시간이 안 됐다. 시대가 악해서 연장됐다.” 하고
교리를 바꾸면서 기다립니다.
<구름>을 ‘영적’으로 풀면 ‘사람’이니,
메시아는 ‘인구름’을 타고 와서
<따르는 자들>을 데리고 ‘시대 하나님의 뜻’을 펴고 갑니다.
그러나 <육적인 자들>은
“그것이 아닌데 저렇게 생각한다.” 하면서 배척합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이루어지고,
<영적인 자들>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펴 나갑니다.
<영적인 것을 100% 아는 자들>은
성경을 육적으로 해석하며 막연히 기다리는
건너편 구시대에 있는 자들의 무지를 이야기하며
마치 ‘초침’을 따라가듯 ‘새 시대’를 따라서 신속히 떠나갑니다.
<육적인 자들>은 다 ‘육적’으로 보니, 둔합니다.
고로 <영적인 자들>이
‘기다린 시대 혼인 잔치 역사’를 하고 가도 전혀 모릅니다.
<영적인 자>는 ‘하나님과 일체 된 자’이며,
<육적인 자>는 ‘하나님과 일체 되지 않은 자’입니다.
고로 <영적인 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찾고 펴며,
<육적인 자>는 ‘하나님의 역사’를 찾을 수조차 없습니다.
<구약인들>은 ‘신약 앞에 육적인 자들’이라서
새 시대 메시아를 맞지 못했습니다.
<신약인들>은 ‘성약 앞에 육적인 자들’이라서
새 시대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맞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영적인 것>을 ‘영적으로 보고 듣고 행하는 자들’만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맞고,
<창조 목적 휴거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시대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음식을 먹은 사람>과 <안 먹은 사람>을 비교해 봐요.
처음에는 별 표가 안 나는데,
시간이 가다 보면 알아보게 표가 납니다.
<음식을 먹은 사람>은 힘이 나서 계속 행하고,
<음식을 안 먹은 사람>은 힘이 없어서 주저앉고 쓰러집니다.
<이 시대에 해당되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이 보낸 자를 통해 주시는 시대 말씀>도 그러합니다.
<보낸 자를 알고 그 말씀을 들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알아보게 표가 납니다.
그 말씀을 못 들으면, 힘이 없어 주저앉고 쓰러지게 됩니다.
육의 삶뿐 아니라 영혼까지 그리됩니다.
<물건을 손에 쥔 자>만 느끼지, <그렇지 않은 자>는 못 느낍니다.
<시대 역사>도, <하나님이 보낸 자>도
절대 ‘알고 믿고 따르는 자들’만 느낍니다.
<모르는 자> 앞에서 ‘겉 이야기’를 해 보니,
장님같이 못 보고 귀머거리같이 못 들었습니다.
짐승보다 더했습니다. 쇳덩이 같았습니다.
마태복음 13장 15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해져서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다.” 했는데,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모르는 자들> 중에서도 ‘조심할 자들’이 많으니,
아무에게나 ‘시대 복음’을 전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물어뜯어 상처를 입힐까 함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야기를 해 보면 압니다.
인생들... 생활 속에서도 <아는 것>만 하고 가고,
<모르는 것>은 몰라서 못 하고 살아갑니다.
<주>도 ‘맞은 자’만 맞고 가고, ‘못 맞은 자’는 못 맞고 갑니다.
<목적지에 갈 자>만 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차가 오면 순간 타고 갑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메시아를 맞기 위해 준비한 자들>만
메시아를 맞고 그 말씀을 듣고 행하여
그 영이 홀연히 변화되고 성자께 붙어 성자를 따라갑니다.
그 시간은 마치 ‘파도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순간’과 같습니다.
<미리 준비했다가 ‘주’가 왔을 때,
순간 판단하고 실천하여 주를 따라가는 자들>은
파도가 밀려오기를 기다렸다가 밀려왔을 때 윈드서핑을 하며
파도를 따라가는 자와 같습니다.
일출도 ‘해가 뜨는 순간’에 봅니다.
그러나 ‘예비하고 기다린 자’만 봅니다.
그 장소에서 기다렸던 자도
졸든지, 그 시간에 화장실에 가 있으면 못 봅니다.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고 일출 볼 준비를 했다가
해 뜨는 시간이 되면 그 자리에 있어야 봅니다.
화장실에 갔다는 것은 ‘회개하는 것’과 같습니다.
<회개하는 시간>에는 ‘주’가 와도 못 봅니다.
고로 ‘주’를 맞으려면,
그 전에 다 회개하고 눈 빠지게 기다리고 준비했다가 맞아야 됩니다.
그러면 순간 해 뜨는 것을 보듯, 그 순간 ‘주’를 맞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마지막으로 ‘귀한 잠언’을 몇 개 더 말씀해 주고 마치겠습니다.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영>이 변화되지 않고서는 ‘영원히 존재할 가치’가 못 된다.
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의 말을 듣고
‘사랑으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그 남자와 일생 동안 같이 살 가치 있는 자’가 못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인생들도 그러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변화되어
그 육도 영도 ‘사랑의 대상체’로 변화되지 않으면,
그 <영>이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살 자격’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사랑의 대상체’로 변화된다면,
그 <영>이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
하나님 앞에 ‘사랑의 대상 자격’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육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영이 얼마나 변화됐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또한 하나님과 성령의 마음이 감동되는 대로 좌우된다.
고로 그 말씀을 지켜 행해라!
하나님과 성령의 마음이 감동되도록
간구하고 기도하고 대화하며 교통해라!
어떤 집에 가서도
‘하룻밤이라도 자고 올 수 있는 여건과 자격’이 돼야
주인이 자고 가라고 한다.
<황금성 천국>도 ‘황금성에 있을 가치’가 있어야 들어가게 된다.
<황금성에 들어가 살 수 있는 가치>는
‘온전한 신부로 변화된 사랑’이다.
<휴거>는 ‘사랑’으로 형성되고 변화되고 만들어지고 이루어진다.
<휴거>는 뒤집으나 엎으나 ‘온전한 사랑’으로 형성되어 있다.
<앞>은 ‘금덩이’인데 <뒤>는 ‘은 덩이’라면,
그 사람은 ‘하늘 신부 자격을 갖추는 과정 중에 있는 자’다.
완전하게 변화되어라.
걸작 하나도 아쉬움 없이 형성되어 있다.
<황금성 천국에 들어갈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는 어떠하겠느냐.
아쉬움 없이 온전히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
<성령>은 ‘온전한 감동’을 주시나,
<그 감동을 받는 자>가 온전해야 감동도 온전히 받는다.
<받는 자>가 온전하지 않으면 ‘부분적 감동’만 받는다.
<성령>은 주와 함께 ‘사랑을 목적’하고 오는데
<너>는 ‘딴 것’으로 맞으면,
거기 채워 줘야 될 것만 채워 주고 떠나간다.
<사랑>으로 맞아야 대화하고 붙어 산다.
성령을 맞으려면 <주일말씀, 수요말씀, 새벽 말씀, 계시 말씀>을
전적으로 읽고 마음에 새겨라. 그리고 물어라. 그러면 대답하신다.
여기까지 말씀을 쓰고 마지막 잠언은 성령님께 해 달라고 하니,
성령님이 말씀하셨다.
“<솥뚜껑을 열고 덮는 자>가 ‘주인’이다.
음식을 만들 때 솥뚜껑을 열고 음식물을 넣고,
그다음에 솥뚜껑을 덮고 음식을 익힌 후에 다시 열지 않느냐.
그가 ‘주인’이다.
마지막 이 말씀이
‘말씀을 다 만들고 먹으려고 솥뚜껑을 여는 것’과 같다.
<내게 이 말씀을 받은 자>가 ‘주인’이다.
따르는 자들이 그와 더불어 삼위를 모시고 먹고 마시고 즐긴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