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7.02.08 (수)
170208 수요말씀(삼위와 함께 택하고 행한 것만 크고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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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2.08 (수)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14장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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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8일 수요말씀>
삼위와 함께 택하고 행한 것만 크고 영원하다
본 문 요한복음 14장 21절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인간 최고의 도전과 실천은 삼위와 같이 사는 삶이다.’라는 주제로
하나님이 해 주신 말씀을 짧지만 깊게 전해 주었습니다.
◎ 오늘은 어떤 것을 택하여 실천하고 살아야 하는지
<잠언>으로 하나씩 말씀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사람은 <자기가 원하고 좋아서 행한 것>이라도
시간이 가면 싫어지고 후회하게 된다.
자기가 좋아서 해 놓고도
“내가 이것을 왜 했지? 내가 이 사람을 왜 사랑했지?
내가 이것을 왜 샀지? 내가 이것을 왜 팔았지?” 하게 된다.
사람은 한계에 처해서 멀리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시켜서 한 일>은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어떤 것을 막론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람이고 기쁨’이다.
왜 그렇겠느냐.
삼위는 멀리 내다보시고 선택하여 행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삼위는 영원하시어 계속 역사하시니,
그 보람과 기쁨도 함께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이다.
<월명동 하나님의 자연성전 건축>은
‘하나님이 구상하고 시키신 일’이다.
이 일은 ‘성약시대의 일’이다.
고로 1000년이 흘러가도 빛나고,
보람도 기쁨도 희망도 사랑도 영원하다.
만물이나, 작품이나, 사랑의 대상이나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것>은
처음에는 좋아서 흥분하고 기뻐하며
더 이상 없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하면서 희망의 잔치를 한다.
그러나 갈수록 희망도 기쁨도 사랑도 식게 되어서,
오히려 “왜 이것을 샀지? 왜 여기에 건물을 지었지?
왜 이 작품을 만들었지? 왜 이것을 선택했지?
왜 이 사람을 택했지? 왜 이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택했지?”
하며 후회하고 벗어나려 한다.
고로 자기가 행한 것을 후회하면서
땅도 건물도 작품도 팔고, 사랑하는 자와도 헤어진다.
인간은 <육체>를 가진 존재인 고로 <육적인 생각>으로 판단하니,
시간이 가면 <생각>도 뒤바뀌고, 또 <시대>도 뒤바뀌기 때문이다.
자기가 ‘선택’을 제대로 했는지 겪어 보아라.
시간이 갈수록 끝으로 갈수록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알고 후회한다.
<자기가 잘못 선택한 종교>도 그러하다.
끝까지 가 보아라. 결국 후회다.
가는 중에도 후회하다가 지옥에 가서는
기한 없이 더 이상 없는 최고의 고통을 받게 된다.
그때는 돌이킬 수도 없고, 회개할 수도 없고,
거기서 나올 길이 영원히 없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원하시는 일>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는 일>을 계속해 보아라.
육신 일생, 영혼 영원까지 잘했다고 그리 좋아하고 기뻐하며,
영원히 삼위를 사랑하면서 누린다.
하나님과 메시아를 믿어도 ‘자기 식’으로 믿으면
처음에는 그리도 좋아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며 살아도,
갈수록 육도 마음도 생각도 혼도 영도 곤고하고, 후회되고,
기쁨도 떠나가고, 사랑도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과 그 보낸 메시아의 뜻>대로 믿고 선택해야
보람도 기쁨도 희망도 사랑도 사라지지 않고 연속된다.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과 성령과 주가 하라고 해서 함께 해서 얻은 것>이
갈수록 보람과 기쁨과 사랑과 이상세계가 된다.
이는 <삼위가 행하신 일>이니,
인간의 한계는 끝나도 삼위가 연속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돌 하나도
<하나님께 물어보고 성령과 성자와 함께 주워 오고 사 온 것>은
10년, 20년이 됐어도 늘 이야기하면서 사연을 나눈다.
같은 것이라도 <스스로 한 것>은 스스로 기뻐하다가 짧게 끝나고,
사연이 없으니 후회하여 팔거나 버린다.
<옛날 임금이나 위대한 자들이 쓰던 물건>은
사연이 깊으니 값이 비싸고 중하게 여긴다.
하물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 받은 것>은
세상 임금이나 위대한 자들이 쓴 것보다 얼마나 더 귀하겠느냐.
<옛날 화가들이 그린 그림>도
당세에는 값이 몇만 원, 몇십만 원 하다가,
세월이 지나면 한화 100억, 200억, 1000억, 4000억이나 나간다.
이는 ‘그림 자체 값’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도 그만큼 비싸게 보시겠느냐.
모든 물가에는 ‘표준’이 있다.
세계적으로 명예롭게 그림을 띄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값이 비싸니 그만큼 잘 그렸구나 생각하며 보게 하려는 심리다.
값이 싸면, 그만큼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옷이고, 건물이고, 예술 작품이고,
값이 비싸다고 하면 그만큼 크게 본다.
세상 사람들 모두 그런 상술로 이목을 끌려 하지만,
실상은 잘 팔리지도 않거니와,
팔아도 자기네들끼리 돈은 조금 오고 가면서 비싸게 줬다고 한다.
조직단들도 그런 수법을 많이 쓴다.
<하나님이 시켜서 그대로 그린 시대 그림>을 따라가겠느냐.
하늘나라에 가서 보니
<하나님이 구상하여 시키신 대로 그린 그림>은
그 값이 세상 돈으로 환산해서 ‘수백조’였다.
<세상에서 수천억씩 하던 그림>은 하늘나라에 있지도 않았다.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들>만 차원대로 하늘나라에 있었다.
전능자 하나님이 보는 것이 ‘완전한 평가’다.
<잠시 쉬었다가>
물고기들을 보니 <어떤 한 바위 밑>을 ‘궁’같이 여기고
그 값이 ‘수천억’이나 하는 듯 서로 차지하려고 싸웠다.
하도 싸우니, 사람이 그 옆에다 더 좋게 하나 만들어 줬다.
그런데 물고기들은 그곳은 보통으로 봤다.
<물고기들이 크게 보던 바위 밑>은
<사람들이 볼 때>는 ‘몇만 원짜리’였다.
실상 <사람이 만들어 준 곳>은 ‘수백만 원짜리’였다.
<하나님이 보는 것>과 <인간들이 보는 것>도 그러하다.
세상에서 가장 불확실한 값은 ‘예술품 값’이다.
실상은 그만한 값이 안 되는데
100만 원짜리는 1000만 원이나 하고, 1억짜리는 10억이나 한다.
따져 보면 그런 ‘가치’도, ‘사연’도 없다.
최고로 비싼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만든 작품>이고,
<하나님이 만물을 통해 만든 작품>이다.
내 방에서 키우는 메뚜기를 보면,
늘 ‘내가 쌓아 놓은 서류 옆’에 가서 붙어 있다.
그 자리가 ‘방 안에서 수천억짜리 위치’나 되는 듯 여겼고,
그 자리를 ‘방 안에서 최고의 장소, 천국’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메뚜기가 정한 것’이고,
‘메뚜기 자기 머리로 생각한 것’이다.
선생이 메뚜기를 손으로 집어다 ‘내 발등 위’에 갖다 놨다.
감촉이 너무 좋으니, 그때부터 메뚜기는 딴 데를 안 갔다.
그곳이 ‘수조 원짜리 위치’다.
이와 같이 <사람이 만든 것>과
<하나님이 행하여 만든 것>은 그 가치가 하늘과 땅 차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과 내 생각은 땅과 하늘 차이다.” 하셨는데,
흔히 사람들은 비행기가 떠다니는 위치나, 구름이 떠 있는 위치,
혹은 해와 달이 떠 있는 위치를 ‘하늘’로 본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는 하늘>은
‘빛으로 가도 150억 년이 넘는 거리’를 말한다.
그만큼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보다 높다.
<사람의 생각>은 ‘메뚜기의 생각’보다 높듯이,
그러므로 ‘그 행실과 삶’도 높듯이,
<하나님의 생각>은 지극히 높고,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귀하고,
<하나님이 직접 행하여 만드신 작품>은 귀하고 비싸다.
<하나님이 구상하여 만든 월명동>은
다른 장소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6000년 전에 만든 것과, 2000년 전에 만든 것과,
발달되어 차원 높은 이 시대에 만든 것이 얼마나 차이가 있겠느냐.
어렸을 때 좋아하여 만들고 산 물건과
커서 20대에 만들고 산 물건과,
더 커서 30대, 40대, 50대에 만들고 산 물건은
얼마나 차이가 있겠느냐.
어릴 때는 ‘자기 동네’를 보고 “크다. 좋다.” 하고,
20대에는 ‘군(郡) 단위’를 보고 “크다. 좋다.” 하고,
더 크면 ‘도시와 수도권’을 보고 “크다. 좋다.” 하고,
더 크면 ‘전국과 세계’를 다니며 “크다. 좋다.” 한다.
더 크고 성장하면 ‘천국’을 보고 “크다. 좋다.” 하고,
신같이 더 크면 ‘황금성 천국’을 보고 “크다. 좋다.” 한다.
<잠시 쉬었다가>
종교도 그러하다.
<구약인들>은 ‘구약 율법 말씀’을 보고
“좋다. 더 이상은 없다.” 했다.
<신약인들>은 메시아 예수님을 믿으면서 구약인들을 아기로 보고,
“예수님의 말씀이 최고다. 더 이상은 없다.” 하고,
2000년 동안 믿고 좋아하며 살았다.
<성약인들>은 성경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보낸 자를 통해 시대 말씀을 주시니,
“이제 더 이상 없는 최고의 역사다.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말씀이며 역사다.
최고의 황금성 천국이 우리 것이다.” 하고 좋아하며 믿고 따른다.
그래도 <구시대인들>은 ‘구시대, 옛 말씀’이 좋다고
그리 좋아하며 만족한다.
<부모>는 ‘부모가 사는 집’이 좋다 하고,
<자녀들>은 ‘결혼해서 사랑하는 자와 같이 사는 집’이 좋다 하듯
<구시대>와 <새 시대>도 그러하다.
<구약시대>는 ‘동 같은 시대’
<신약시대>는 ‘은 같은 시대’,
<성약시대>는 ‘금 같은 시대’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어린아이들은 ‘부모, 형제’가 그리도 좋다고 한다.
그러다 커서 ‘애인’을 만나면 거기에 미쳐서
평생 부모나 형제보다 ‘사랑의 대상’을 더 좋아하면서 산다.
하나님 앞에도 ‘시대’에 따라 이러하다.
<성경에 예언된 마지막 시대>는 ‘사랑의 역사 세계’다.
곧 ‘사랑하는 대상을 맞아서 같이 사는 시대’다.
고로 이 시대가 오면
<종급 구약시대>와 <형제급 신약시대>는 빛을 잃는다.
그러나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자는 무지한 자다.
이는 마치 자기가 좋아서 ‘여우 털 옷’을 사고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했는데,
새 가게에 가 보니 ‘호랑이 털 옷’이 있는 격과 같다.
어떤 사람이 ‘큰 집의 일꾼’으로 들어가서
“나는 저 집의 일꾼이다.” 하고 자랑했다.
그 집의 ‘일꾼’이 된 것만 해도 자랑이었는데,
주인이 ‘그 집 자녀’를 대하는 것을 보니,
자기와는 너무도 큰 차이가 났다.
그것을 보니, 더 이상 자랑하고 싶지 않았다.
종은 주인이나 자녀가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지 나가야 되는 신세다.
종이 ‘자녀’가 되기를 원하나 될 수가 없고,
때가 되면 ‘양자’로 삼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 사이는, 형제자매끼리>는
‘최고 크고 좋은 사랑’은 못 이룬다.
때가 되면, ‘사랑의 대상’을 만나서 결혼해야 된다.
그래야 ‘사랑의 세계’에 오른다.
이 세계는 ‘부모와 형제의 사랑과는 비교가 안 되는 딴 세계’다.
이와 같이 <구약, 신약, 성약>은 차이가 있다.
<구약>은 ‘종 세계’이며, <신약>은 ‘자녀 세계’다.
<성약>은 ‘더 이상 없는 최고의 사랑 세계’다.
곧 ‘하나님의 마지막 천년왕국을 이루는 세계’다.
<신부 시대>로서 ‘결혼한 시대’와 같다.
<마지막 성약역사>는 이같이 차이 나게 역사를 펴신다.
<땅>에서 1000년 동안 ‘사랑의 역사’를 이룬 대로
영의 세계도 ‘황금성 천국’을 주시며,
<황금성>에서도 1000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하신다.
그 후에 영원히 ‘사랑의 세계’가 펼쳐진다.
지금! 이 역사가 ‘땅’에서 시작되어 이루어져 가고 있다.
하나님은 ‘보낸 구원자’를 통해서
<당세>에 ‘최고로 가까이하는 사랑의 역사’를 펴시고,
<보낸 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신약 때같이 성약역사가 1000년 동안 커져만 간다.
<성약 1000년 역사 후>에는
이 세상이 마치 농사짓고 다 거두어 논밭이 비게 되듯 한다.
지금! 이 땅에서 ‘영원한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뜻을 이루기 시작한 이후,
지금 ‘더 이상 없는 최고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잠시 쉬었다가>
<자기가 살던 환경>도 시간이 갈수록 보아라.
<자기가 택한 종교>도 시간이 갈수록 보아라.
어떠냐? 만족하냐?
자기 생각과 삶에 길이 들고 습관이 든 대로다.
사랑하는 자라도 상대가 어리면, 그 수준의 것을 준다.
하나님도 <시대가 어릴 때>는 ‘그 수준에 해당되는 것’을 주신다.
고로 <구약 때 주신 것, 신약 때 주신 것>도
‘그 시대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시대에 따라 때에 맞춰 성장된
<이 시대 성약 때>에 주신 것이 최고로 높고 크다.
이 시대 성약역사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는 역사’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육과 영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뜻>을 이루시려고,
종교 역사를 시작하셨다.
1차 <구약 때> 씨가 나서 크듯 역사하셨고,
2차 <신약 때> 메시아를 보내어 나무가 커서 꽃이 피듯 역사하셨고,
3차 <성약 때> 열매가 열듯 역사하신다.
나무가 커서 꽃을 피우면 마지막에 ‘열매’를 열고 잔치하듯,
하나님도 <마지막 성약시대 때> ‘창조 목적의 뜻’을 이루어
신부로 변화된 자들을 <휴거>로 거두어 혼인 잔치 역사를 펴신다.
농부가 과일나무를 심는 핵심 목적은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그 외 나머지, 씨를 뿌리고 나무를 가꾸고,
나무에 꽃이 피는 것은 <과정>이다.
하나님의 역사도 ‘거두는 것’이 <목적>이다.
<구약역사>는 ‘종급’으로서 ‘씨가 나서 크는 소생기 역사’다.
<신약역사>는 ‘형제급’으로서 ‘꽃을 피우는 성장기 역사’다.
<성약역사>는 ‘신부급’으로서 ‘열매를 맺는 완성기 역사’다.
<구약과 신약>은 ‘과정 역사’이며,
<성약>은 ‘목적을 이루는 역사’다.
지금 이 시대는 ‘열매 역사’로서
하나님은 <창조 목적>을 이루시며
<성경에 예언된 휴거 역사>를 펴 나가신다.
이미 ‘열매’를 따서 거둬들이고 있다.
이미 ‘사랑의 대상이 된 신부들’을 <휴거>로 거둬들이고 있다.
이렇게 ‘창조 목적의 역사’가 진행 중이다.
믿는 자들은 ‘이 역사’를 기다리며 희망했으나,
희망을 이루지 못한 채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다.
<자기가 기다렸던 희망>을 ‘자기 무지로 못 이룬 자’도
희망을 못 이룬 대로 살기는 한다.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자를 만나 결혼하고자 했다.
때가 되어 ‘사랑하는 대상’이 나타났으나
자기 무지로 불신하여 뺏겼다.
그래도 ‘홀몸으로 형제들과 함께’ 살아가기도 한다.
이 시대 앞에 구시대 종교인들도 그러하다.
때가 되어 ‘하나님이 보낸 자’가 왔으나,
구시대인들은 무지와 교만으로 불신하고 배척했다.
그래도 ‘구시대에서 형제들과 함께 형제 사랑’을 이루며
살아가기는 한다.
<새 시대>가 왔어도 맞지 못하면 ‘구시대 급’으로 살고,
<새 시대>를 맞았어도 제대로 못 하면
새 시대에서 쫓겨나 ‘구시대보다 더 못한 세계’로 가기도 한다.
그러다 ‘사망길’로 가고,
혹은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사라지는 영들도 많다.
자기가 선택하되,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 보낸 자와 함께
<새 시대에 하나님이 행하시는 핵심 역사>를 택하여
<새 시대에 해당되는 일>을 해야 된다.
<자기 수준>대로 종교를 선택하면
- 우상을 믿거나,
- 6000년 전에 시작한 구약 종교를 선택하거나,
- 2000년 전에 시작한 구시대를 선택하게 된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보낸 자>를 만나서 선택하면
‘하나님의 최고의 역사’를 택하여
‘시대 주’를 만나 ‘최고의 황금성 천국’를 얻고,
<영원한 사랑의 신부 세계>를 이루게 된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보낸 자의 주관권 안>과 <밖>은
완전히 딴 세상이다.
<길>과 <길이 아닌 곳>은 완전히 딴 세상이다.
하나님의 역사도
<절대적 핵 역사>와 <주변 역사>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벽 안>은 ‘궁전’이지만, <벽 바깥>은 ‘길바닥’이다.
완전히 딴 세상이다.
<주(主)의 주관권 안>과 <밖>도 완전히 딴 세상이다.
<황금성 천국>과 <그 주관권 밖>은 완전히 딴 세상이다.
<삼위일체의 사랑과 진리의 핵심 주관권 세계>와 멀어질수록
삶의 가치도, 보람도, 기쁨도, 느낌도, 사랑도 작다.
<지구 주관권 밖>은 ‘허공’이다.
<하나님의 생명 주관권 밖>도 ‘생명이 없는 허공 세계’다.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핵심 주관권 세계>를
찾고, 만나고, 택하고, 그 세계에서 살아야 된다.
시장에서 많은 물건들 중에서 ‘좋은 것을 찾고 고르기’다.
더 좋은 것을 찾고 고르려면,
온 민족을 다니면서 ‘최고로 좋은 것을 택하고 고르기’다.
없으면 ‘만들기’다.
온 세상을 다니면서
<최고로 좋은 것>을 ‘찾기, 고르기, 택하기, 만들기’다.
만물도, 작품도, 인생도 그러하다.
<복직된 하와>도 그렇게 찾고 고르고 만들었다.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최고 핵심 역사>를 찾고 만났으니,
<최고로 좋은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여
<최고로 좋은 생각과 행실과 삶>으로 만들고,
육도 영도 <삼위의 최고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어라!
<인간 최고의 도전과 실천>은 ‘삼위와 같이 사는 삶’이다.
<육>이 이 세상에서 ‘삼위와 주와 같이 사는 삶’을 살면
그 <영>도 ‘천국 황금성’을 차지하고,
그곳에서 삼위와 주와 함께 ‘수백만 가지’를 하면서
영원히 기뻐하고 사랑하며 산다.
지금!! ‘삼위와 주를 가까이하며 같이 사는 삶’을 살아라.
<몸>이 붙어 사는 삶이 아니다.
<생각과 마음과 행실>이 붙어 사는 삶이다.
<생각과 마음과 행실>이 ‘삼위와 주와 일체 되어 사는 자’가
<육>도 <영>도 ‘삼위와 주’와 붙어 산다.
지금! 그렇게 살아라.
<지금>이 귀하고 중하다. <지금>이 나중을 좌우한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