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7.03.01 (수)
170301 수요말씀(삼위가 동행하시어 뜻을 이룬 섭리역사다)
- 선포일
- 2017.03.01 (수)
- 성경 본문
- 로마서 5장 3~4
첨부 파일
- PDF
170301-수요말씀(삼위가_동행하시어_뜻을_이룬_섭리역사다).pdf
167.0 KB
<2017년 3월 1일 수요말씀>
환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삼위일체가 동행하시어 멈추지 않고 행함으로
뜻을 이룬 섭리역사다
본 문 로마서 5장 3~4절 (성경 본문 3절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빼고 봉독)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시간은 많아도 실천해 보면 시간이 짧다.
하나님의 때는 다 맞다.’라는 주제로 말씀해 줬습니다.
◎ 오늘은 주일말씀에 못다 한 말씀을 전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시간이 많아도 막상 일을 하면서 쓰다 보면, 시간이 모자랍니다.
잠자는 시간, 먹는 시간, 씻는 시간,
학교·직장·교회·약속 장소 등 이동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
청소하는 시간, 개인 시간, 공부하는 시간, 배우는 시간,
장보는 시간, 음식 만들고 치우는 시간 등
갖가지 일들을 하면서 목적도 이뤄야 하니,
시간이 많은 것 같아도 짧고 부족합니다.
<하루 24시간>도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써 보면 시간이 부족하고,
<1년 365일>도 많은 것 같은데 막상 써 보면 부족합니다.
할 일의 가짓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인생 일생도 그러합니다.
시간이 많은 것 같아도 갖가지를 하면서 살다 보면 짧습니다.
고로 경주하는 자가 한눈팔지 않고 집중해서 경주하듯 실천해라!
빛을 잡듯 빠르게 실천해라! - 했습니다.
◎ 이것이 이번 주 첫 번째 주일말씀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때>는 어떤 것은 맞고,
어떤 것은 맞지 않는 그런 것이 없다.
<하나님의 때>는 다 맞다. - 했습니다.
◎ 그중에서 <창조>와 <창조 목적을 이루는 휴거>를 두고
<때>에 대해서 말씀했지요?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6일 창조>를 확대하면 ‘종교 역사 6000년’입니다.
1차 4000년 <구약역사>가 끝나고,
구약역사 기간의 반인 2000년 동안 2차 <신약역사>가 펼쳐졌습니다.
신약역사가 끝나고, 신약역사 기간의 반인 1000년 동안
마지막으로 3차 <성약역사>가 펼쳐집니다.
<6일 창조>가 끝나고
하나님이 창조물을 보시고 기뻐하고 만족하셨듯이,
<신구약 6000년 종교 역사>가 끝나고
하나님은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셨습니다.
사람이 <어머니의 태>에서 ‘세상’으로 나오려면,
그 전부터 잉태되어 <모태>에서 ‘생명의 역사’를 시작합니다.
이와 같이 <성약 때 다시 오는 메시아>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세상에 나타나려면,
‘2000년 신약역사가 끝나기 전’부터
‘성약 자체적인 생명의 역사’를 펼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때에 따라 <2000년 신약역사>가 끝나면,
그 전부터 시대 복음을 전하면서
자체적으로 성약역사를 펼치며 이끌었던 ‘믿고 따르는 자들’,
곧 ‘인구름’을 타고 <새 시대 메시아>가 세상에 나타나
<성약의 새 역사>를 펴 나가며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룹니다.
<잠시 쉬었다가>
◎ 여기까지는 주일에 자세히 말씀해 주었습니다.
이제 지금까지 한 말씀에 이어서
주일에 못다 한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잘~ 듣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태어난 직후,
사탄 편 ‘헤롯 왕’과 ‘그 시대 종교인들’이
무지로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아기 예수님’은 잠시 ‘애굽’으로 피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신약 복음을 전하니,
그 시대 ‘율법 종교인들’은 또 예수님을 핍박했습니다.
이에 ‘이방의 이웃 나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시대도 그러했습니다.
시대 사명자가 ‘하나님이 주신 시대 복음’을 전하니,
사탄 편인 ‘세상’과 ‘기성인들’이 그를 핍박하고 배척했습니다.
이에 <시대 사명자> 역시 본국을 떠나
‘시대 애굽 같은 이웃 나라’로 가서
거기서 ‘시대 성약 복음’을 전하며 역사를 뛰었습니다.
이때가 1999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방’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때가 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시대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셨듯이,
시대 사명자도 ‘이웃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때가 되어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 시대의 죄를 감당했습니다.
예수님 때는 ‘육의 죽음’으로 시대의 죗값을 대신했지만,
이 시대는 ‘심정의 죽음’으로 시대의 죗값을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역사>를 펴서
‘정신적,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고
삼위와 함께 <휴거 역사>를 펴 나갔습니다.
그리고 <휴거>로 ‘창조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세상이 불신하고 핍박하여 환난이 일어났어도,
사탄이 총공격하며 막았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시대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입춘’이 지나 <봄>이 왔어도
날씨는 춥고 눈도 옵니다.
그러나 ‘봄날’이라서 햇볕이 내리쬐면서 ‘눈’을 녹이고,
<봄의 역사>를 하여 ‘만물이 소생’합니다.
성약역사도 그러합니다.
<때>는 ‘완연한 성약의 때’이니,
아무리 기성이 막고, 세상이 막고, 사탄이 막아도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성약역사’는 펼쳐져 나가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 휴거의 역사>는 이루어졌습니다.
사람이 어려움이 있어도 고생하면서 행할 것을 행합니다.
그리함으로 존재합니다.
세상이 전쟁하면서 싸웠어도
삶의 현실에서는 할 일을 하면서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리함으로 지구상의 각 나라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개인도, 가정도, 민족도, 세계도
어려움과 고통과 핍박이 있어도 할 일을 하면서
자기를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민족을 세우고, 세계도 세웠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역사>도
갖은 고통과 핍박을 당하고, 불신을 받고, 어려움을 당해도
다 ‘뜻’을 펴 왔고 ‘뜻’을 이루었습니다!
나무들도 비바람과 눈보라가 쳐도 다 이기면서 큽니다.
결국 성장하여 <때>가 되면 ‘열매’를 엽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시대 성약역사>도
갖은 핍박, 환난, 어려움, 고통이 있어도
<때>가 되어 ‘열매’를 열고 ‘휴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성약역사>는
비가 내려 ‘내’가 되고 ‘강’이 되고
어느새 ‘바다’가 되어 파도치고 있는데,
세상과 기성과 사탄 편은
<넘쳐 흘러가는 역사의 물줄기>를 막는다고 합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휴거 역사>를 막으니,
섭리인들은 더 근신하고 열심히 뛰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반대자, 불신자, 악평자들은
천 리 떨어진 곳에서 순간순간 악평할 뿐이지,
섭리사 하나님의 신부들을 따라다니면서
<우리가 하는 일들>을 다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좋아서 ‘하나님의 뜻 길’을 가는데,
누가 막는다고 안 갑니까?
닭이 갈 길을 가는데 사람이 막으니,
순간 날아서 그 길을 벗어나 자기 갈 길을 가는 격입니다.
그들이 막으니,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갑니다.
<환난과 핍박>은 신앙을 날게 하여
다른 길로 돌아서 가게 할 뿐입니다! 믿습니까?
개인이 핍박을 당하면 <본길>로는 못 가니,
<다른 길>로 돌아서 갑니다.
핍박을 안 받는 자가 핍박받는 자와 같이
<다른 길>로 돌아서 동행해 주면 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도 시대 신부들과 함께 동행해 주십니다.
불신자, 반대자들이 막으면
다른 길로 돌아서 동행하여 뜻을 이루십니다!
핍박을 받으면서도 했기에 오늘날 <휴거 역사>를 이루어 승리했고,
하늘의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모시고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또 <하나님 최고의 목적과 뜻>을 이뤘다고,
하나님께서 ‘최고의 황금성 천국’을 주셨습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핍박과 환난을 당해도, 고생돼도
지금까지 믿고 행하며 따라온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월명동 자연성전을 개발할 때도 어려움과 힘든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10년, 15년씩 ‘개발 허가’가 안 났습니다.
허가 난 곳 먼저 개발하고, 계속 기다리면서 조금씩 개발했습니다.
그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 해내고 말았습니다!
환난과 핍박의 시간이 지나고 <남은 것>은 ‘하나님의 궁’입니다.
이제 섭리인들이 그곳으로 모두 모여들어
<하나님의 1000년 성약역사>를 펴 나갑니다.
이제 관리하면서 마음껏 쓰고 누리면 됩니다.
월명동 하나님의 궁, 자연성전을 건축하듯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실천하여
<자신>을 ‘하나님 사랑과 생명의 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작품’입니다.
자기를 만들었으니 변질되지 않게 관리하고 차원을 높이면서
멋있게 보람 있게 쓰면 됩니다.
월명동도 개발하는 대로 변화되었듯이,
자기 자신도 자꾸 ‘휴거 변화’를 이뤄야 됩니다.
월명동은 ‘길성지’입니다.
천 년 동안 간다는 ‘반월 터’입니다.
이런 자리에는 ‘왕’이 난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시대 말씀을 듣고 실천한 자들>이니,
‘길성지, 반월 터와 같은 자들’이 되어
‘하나님 앞에 개성의 왕들’이 되었습니다.
개성의 왕이니 쩨쩨하게 놀지 말고,
인격적으로 공의롭게 행하며 살아야 됩니다.
<시대 성약역사>에 왔어도 모르고 살면,
저 ‘구시대가 시대를 모르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시대 성약역사>에 와서 ‘개성의 왕들’이 되었어도
가치를 모르고 살면,
저 ‘세상에서 가치 없이 사는 자들’과 같습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가르쳐 주어 깨닫게 해 줬으니,
이제 ‘역사의 가치, 자신의 가치, 휴거의 가치’를 알고
세월을 아끼며 빛을 잡듯 실천하기를 축원합니다!
<가치>를 깨달아야
‘환난, 핍박, 어려움’을 이기고 ‘희망’으로 행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섭리역사를 펴 오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앞날은 잘되니 ‘산’도 넘고 ‘강’도 넘어라.
어려운 처지는 다 거쳐 가는 과정일 뿐이다.
여기서 평생 살지 않는다. 너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다.
거쳐 갈 때 구경도 하고, 얻을 것도 얻어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환난과 핍박, 어려움 중에도 행했고,
그로 인해 ‘생명’도 얻고 ‘각종 보화’도 얻었습니다.
그렇게 얻은 보화 중에서 ‘기념’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갖다 놓고
1000년 동안 보게 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니 ‘절벽 길’로 돌아오다가
바위 절벽에서 ‘찾던 보물’을 찾고,
감탄하고 감사하며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주는 환난’을 통해
<사랑하는 자>에게 더 주시고 더 얻게 해 주십니다.
고로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섭리 길을 가다가
힘들면 하나님께 간구하고, 형제들에게도 알려 돕게 하면 됩니다.
환난 때가 지나면,
<큰 환난>도 ‘꿈’에 불과하게 되고 ‘추억’이 됩니다.
<환난 때>라고 ‘손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과정을 통해 ‘얻을 것’을 얻게 되고 ‘소망’도 이루게 됩니다.
<섭리사 최고의 환난의 때에>
성자는 선생에게 ‘어느 한 지역’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성자는 나와 같이 그곳에 가셔서 말씀하시기를
“이곳에 ‘너에게 주려고 한 것’이 있다.
높은 파도가 일지 않았으면, 평생 못 오는 곳이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귀한 보화’를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그 지역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그 후에 깨닫고 성자께 말하기를
“고생돼도 힘들어도 그 지역에서 더 있도록
더 높은 파도가 일어나게 해 주시지요.” 했더니,
성자는 말씀하시기를
“<환난>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고 ‘산 간증 거리가’ 된다.
그러나 그곳에 더 있었어도 더 이상 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와 같이 그곳에 갔을 때, 그 보화를 가져오게 했지.”
하셨습니다.
다윗은 악한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 멀리 도망쳐서
<피곤한 몸을 쉬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그 지역에 사는 자들이 유명한 다윗이 왔다는 것을 알고,
모두 와서 잔치해 주며 대접해 줬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사랑의 여인’을 찾았습니다.
‘사랑의 보화’를 찾은 것입니다.
다윗은 그 지역에서 즐겨 먹던
양고기, 소고기, 특산물을 먹으면서 잔치하며
환난과 핍박 중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반면 다윗을 쫓던 사울 왕은 ‘삶의 심판’을 받아
사탄과 귀신이 고통을 주어 매일 ‘지옥의 삶’을 살았습니다.
저마다 ‘환난의 때’가 있습니다.
<환난>을 통해 배우고, 이기고, 얻을 것도 얻는 것입니다.
<환난 때 얻을 것>은
평소에는 있어도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가 나도 못 맡습니다.
선생도 ‘시대 십자가를 지는 기간’에 더욱 간구했습니다.
시대 십자가를 져도 줄 것이 없느냐고 계속 간구하며 찾았습니다.
결국 주셨습니다!
지난 10년 동안도 극적인 환난이 있었으나
<귀한 생명들>도 얻었고, <밭에 감춰진 보화들>도 찾았고,
모두 귀히 쓰면서 왔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환난과 어려움 중에 몸부림을 치면서 얻습니다.
하늘 신부들도 그러합니다.
환난과 어려움이 있지만
그때 몸부림치며 평소에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고,
평소에 얻지 못했던 것들을 얻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섭리사를 나간 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나가지만,
자기 환난을 못 이겨서 나간 자들이 많습니다.
<환난>은 ‘시험’과 같습니다.
시험을 잘 보려면, 사전에 공부를 해야 하지요?
이와 같이 ‘신앙의 환난, 시험, 핍박’을 이기려면,
평소에 ‘신앙생활’을 잘해야 됩니다.
<평소 자기 신앙>으로
자기 환난과 시험과 어려움을 이기느냐, 못 이기느냐가 좌우됩니다.
어린 10대들도 ‘시험’을 당하고,
이기고 나서 선생에게 편지를 보내옵니다.
어떻게 해서 시험을 이겼는지 보니,
“더 기도하기, 더 사랑하기, 더 기뻐하기, 더 감사하기,
더 뛰기, 더 실천하기,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하기다.” 로
자기에게 온 시험과 환난을 이겼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으로 ‘환난’을 이기고 편지를 보내옵니다.
어떤 사람은
“왜 저에게만 환난과 핍박이 잘 오지요?
이제 잘하려고 하는데, 환난이 왔어요.
제가 이 일을 하는 게 뜻이 아닌가요?” 합니다.
<환난>은 ‘테스트’입니다. ‘실력 확인’입니다.
이기면, 차원 높여 임무를 줍니다.
이 시대 성약역사도 ‘환난’을 이기고,
차원 높여 <휴거 역사>를 받았습니다!
<신부의 값>은 ‘신랑을 따라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사랑하며 같이 사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환난이 있어도, 고비가 있어도
끝까지 신랑을 따라서 함께해야 됩니다.
월명동에 갈 때도 가다가 말면 ‘실망’이 더 큽니다.
끝까지 가서 월명동을 딱 보면
“생각과는 다르네. 이곳에 정말 자연성전이 있네.” 합니다.
섭리역사도 그러합니다.
가다가 말면 ‘실망’이 더 큽니다.
끝까지 가면
“정말 <황금성 천국>이 있네. <휴거>가 ‘실체’네.” 합니다.
<자기 몸>이 ‘자기 것’이듯,
<월명동 자연성전>도 ‘자기 것’입니다.
왜 <월명동>이 ‘자기 것’일까요?
<월명동 자연성전>은 ‘하나님, 성령님, 성자의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주>가 ‘자기 것’이면
<삼위가 가진 것>도 ‘자기 것’입니다. 믿습니까?
알고 살아야 주인이 되고, 그 힘으로 이기고 승리합니다!
<말씀 마무리>
◎ 한 가지만 간단히 더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유전자>는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의 유전자>가 만나서 ‘생명이 잉태’되고,
모태에서 잘 키우면 ‘눈, 코, 입, 귀, 지체’가 만들어집니다.
이와 같이 <어린 신앙인>도 처음에는 특기와 재능이 안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잘 키우면, 특기와 재능이 보입니다.
그때는 다 실천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풍성한 열매’를 열게 됩니다.
고로 ‘주의 정신’을 넣어서 잘 키워야 됩니다!
<나무>도 퇴비하고 관리하며 잘 키우면,
다 성장하여 ‘열매’를 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잘 키우면 다 ‘열매’ 열듯 합니다.
고로 “사람 없다. 인재 없다.” 하지 말고 잘 키워야 됩니다.
<섭리역사>도 그러합니다.
키우면 많은 것들을 행하며, 주렁주렁 열매를 열게 됩니다!
<월명동의 작은 소나무들>도 퇴비하고 잘 키우니,
나름대로 잘 커서 ‘작품’이 됐습니다.
<그 위치>는 ‘그 위치에 있는 소나무’가 빛냅니다.
산 너머에 ‘큰 소나무’가 있어도
그곳만 빛내지 그곳 너머까지는 빛내지 못합니다.
고로 곳곳마다 ‘그 위치를 빛내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작든지, 크든지 ‘그 위치’는 ‘그 소나무’가 빛냅니다.
신앙의 세계도 그러합니다.
섭리사에 아무리 큰 자들이 있어도
<자기 위치>는 ‘자기’가 ‘개성의 왕’이 되어 빛냅니다!
큰 소나무는 ‘큰 작품’이고,
안 크고 작은 소나무는 ‘분재 작품’입니다.
손가락이나 팔뚝만 한 소나무도 다 ‘개성의 작품’이듯,
<섭리 인생>도 그러합니다.
고로 서로 귀히 여기며
“너 멋지다. 아름답다.” 하며 칭찬하기 바랍니다.
또 나이 먹고 늙었다고 하지 말아요.
자연성전에는 ‘노송’도 많습니다.
노송이 늙었다고 멋이 없습니까?
40년, 50년, 60년, 70년, 80년 된 소나무도 작품이듯
40세, 50세, 60세, 70세, 80세, 90세 된 자들도
다 ‘섭리 인생 연륜 깊은 작품’입니다.
월명동의 각종 나무들을 보면,
자기와 나이가 같은 나무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에 물도 주고 퇴비도 하고 키워서
<자기와 얽힌 사연>도 만들기 바랍니다.
어떤 나무는 왜 구경만 하느냐고 합니다.
동물도 좋으면 ‘먹을 것’을 줘야 그도 좋아합니다.
나무도 ‘퇴비’해 주고 자꾸 ‘사랑’하며 가꿔야 됩니다.
◎ 오늘 말씀 - 환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삼위일체가 동행하시어 멈추지 않고 행함으로
뜻을 이룬 승리의 섭리역사다!
◎ <환난>은 우리의 신앙을 날게 했고,
어떤 길이 안 되면 다른 길로 돌아오게 하여
결국 <대(大)소망의 휴거>를 차지하고 <황금성>을 차지했습니다.
이제 <차원 높인 휴거 잔치 2017년 3.16>을 앞두고 있습니다.
모두 가치를 알고, 더욱 기도하며 차원 높은 실천을 함으로 준비하여
그날을 온전하게 맞기 바랍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