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7.04.19 (수)
170419 수요말씀
- 선포일
- 2017.04.19 (수)
- 성경 본문
- 전도서 3장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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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9일 수요말씀>
<그 나이 때, 그 시대에 해당되는 것>은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하고 끝났다
본 문 전도서 3장 1-8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그 나이 때, 그 시대에 해당되는 것은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하고 끝났다.’라는 주제로 말씀했습니다.
◎ 오늘은 주일에 못다 한 말씀을 이어서 해 주겠습니다.
<말씀 시작>
여러분 모두 ‘시대 말씀’을 듣고
<주>를 확인하고 시인하고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러나 <주>를 따르면서
환난을 맞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듣기도 하는 등
보고 듣는 것이나 환경과 상황에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합니다. 그렇지요?
그러나 한 번 <주>를 확인하고 시인했으면,
<주>가 시대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서 변장하거나 달리 보여도
끝까지 ‘표상’으로 시인하고 믿고 따라야 됩니다!
◎ 먼저 이것에 대해 ‘비유’로 이야기해 주면서,
오늘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답고 멋있는 여자’를
가까이에서 보고 확실히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여자가 어떻게 차려 입고 나타나든지
절대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름다운 여자가 시장에서 지나가는데,
전에 보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아줌마 옷을 입고 있었고, 뚱뚱해 보였습니다.
이 남자는 ‘그동안 내가 잘못 봤나?
저 여자는 아름답고 신비한 여자가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 여자는 ‘비 오는 날 지저분한 거리’를 지나
시장에 가서 배추와 파를 사서 안고 오려고,
자기 엄마 옷을 입고 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보이는 대로만 본 것’입니다.
그 여자가 어떤지 한 번 확실히 확인했으니
환경에 따라서 달리하고 다녀도
<전에 확인한 것>을 표상으로 두고 흔들리지 말고 믿어야 되는데,
보이는 대로만 판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그 아름답고 예쁜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맞다! 저 여자다! 정~말 예쁘다.’
하고 또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헷갈리지 말아야지.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말아야지.’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답고 예쁜 그 여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자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 여자가 맞느냐고 했습니다.
사진을 보니 그 여자가 맞는데,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데,
얼굴을 바짝 당겨서 사진을 찍으니 보통으로 보였습니다.
입소문으로는
“그 여자는 정말 신비하고 아름다운
몸매와 얼굴을 가진 여자다.” 했는데,
사진을 보니 착시 현상이 일어나서 또 헷갈렸습니다.
남자는 생각하기를
‘여자가 꾸미는 대로 이리저리 보이는구나.’ 하면서,
마음이 갈대같이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여자는 그 남자가 자꾸 헷갈리는 것을 보고,
“내가 목적을 두고 꾸미고 행한 대로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어떤지 확실히 확인하고도
제대로 못 보고 헷갈리니 심정이 상한다.”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자기를 확인시키려고,
이번에는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해변가로 갔습니다.
여자가 해변가에 나타나니 해변에 온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서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밀려왔습니다.
이날 ‘보이는 대로 헷갈려하던 남자’도 왔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보고
‘저 여자는 내가 볼 때마다 헷갈려했던 여자네!
다시 보니 확실히 미인이다. 세상에 둘도 없다.’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착시인가?’ 생각했습니다.
가까이 가서 눈, 코, 입, 귀, 목, 허리, 몸매를 자세히 봤습니다.
전에 확인했던 대로 그 모습이 정말 예쁘고 아름다웠습니다.
‘으앗! 저 여자는 여신이지 사람이 아냐.
이제 누가 아니라고 말해도 헷갈리지 말고
어떤 차림을 하고 변장을 해도 헷갈리지 말아야지.
아줌마 옷, 할머니 옷을 입고 있어도,
누가 사진을 우습게 찍어서 보여 줘도
이제는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지.
실제로 확인했으니, 이제는 내가 스스로 부인하지 못해.
누가 뭐라 해도 이 여자를 믿고 사랑하고 따르며,
천 리 떨어져서라도 그 편이 되어 살아야지.
누가 아니라고 하면 혀가 닳도록 증거해야지.
확인했으니 절대 이 마음 변치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습니다.
실제로 확인하고 맞으니, 희망에 차고 기뻤습니다.
이때 그 여자가 그 앞을 우연같이 지나가다가
남자에게 가까이 오더니 말하기를
“나를 볼 때마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하며 헷갈렸지?” 했습니다.
남자는 사실 헷갈렸다고 고백하며,
왜 볼 때마다 달리 보이냐고 물었습니다.
여자는 말하기를
“내가 환경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며 따를 온전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
했습니다.
남자가 진짜인지 한 번 만져 보고 싶다고 하니, 여자는 말하기를
“네 행위의 차원대로 보인다.
지금은 ‘눈’으로만, ‘마음’으로만 만져 봐.
지금 ‘눈’으로 보고 ‘뇌’에 저장했다가
나중에 네 실력대로 <생각, 혼, 영>으로 만지고 봐.
또 언제든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생각>으로, <혼>으로, <영>으로 통하자.” 했습니다.
남자가 여자보고 어디에 사냐고 물으니, 여자가 말하기를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미인’으로 절대 믿고,
마음도 생각도 행동도 요지부동하여 흔들림 없는 자의 마음에 살아.
나는 매일 예뻐지고 신비해져서
하나님이 ‘시대 미인 표상’으로 세우고 보냈어.
<믿는 자>에게만 더 ‘미인’으로 보여 준다.” 했습니다.
이 시대 주를 따르는 자들도 그러함을 깨닫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이 남자가 확실히 확인하고
옆의 사람에게 “이 여자 정말 미인이지?” 하니,
그 사람은 “내 부인이 더 예쁜데?” 했습니다.
이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 주’를 두고,
<자기가 믿는 우상>이나 <자기가 믿고 따르는 자>가
더 낫다고 하는 격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가 와도
이미 ‘자기기 믿고 따르는 자’나 ‘우상’이 있으면,
그 사람이나 그 우상을 더 크게 보고 좋아합니다.
<메시아 예수님>이 왔어도
구약인들은 ‘자기들이 따르던 모세’를 더 크게 보고
지금도 ‘모세’만 따르며 ‘모세’를 예수님보다 크게 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보낸 자>가 와도
신약인들은 ‘자기들이 믿고 따르던 자’만 더 크게 보고 따릅니다.
<구시대인들>은 ‘자기 주관권’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보낸 구원자>는
‘자기를 믿고 시인하며 확신하는 자’에게 더 나타납니다.
<잠시 쉬었다가>
<세상의 둘도 없는 미인>도 ‘볼 때’만 믿어지고,
사라지면 안 보이니 또 헷갈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또 의심하고 부인하고 불신합니다.
<시대 표상인 주>를 대할 때도 그러합니다.
- <주>가 환경에 따라 변장해서 나타나면
변장한 그대로 보고 의심하고,
- 안 보이니 헷갈려하고,
- 자기는 제대로 보고 확인했어도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불신합니다.
<뇌의 신경 구조>는 마치 카메라 같아서
보이는 대로만 인식하고 느낍니다.
가령 ‘사람’으로 나타났다가
뒤에 가서 ‘원시인’이나 ‘짐승’으로 꾸며 다르게 입고 나타나면,
뇌는 그렇게 인식하게 됩니다.
고로 ‘전에 보고 확인한 것’과 비교해서 판단하고,
항상 ‘근본’을 두고 분별해야 됩니다.
<나이가 적은 어린아이>나 <신앙의 어린아이들>은
‘분별과 판단의 지혜의 뇌’가 성장이 안 되어서
보이는 그대로 믿고 생각합니다. ‘문자적’입니다.
<기성>이 이와 같습니다.
<신앙의 어린아이인 구시대 기성>은
성경에 쓴 대로, 문자대로 보고 믿고 행해 왔습니다.
부활, 휴거, 불 심판, 말세, 재림, 구름 타고 오시는 주에 대해
문자 그대로 보고 믿고 행해 왔습니다.
그러니 하나도 안 맞습니다.
부활도, 휴거도, 불 심판도, 말세도, 구름 타고 오시는 주도
그들이 문자대로 믿은 대로는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비유>로 빗대서 말한 것인데,
<문자>대로만 해석하고 믿으니, 안 맞고 안 이루어졌습니다.
<비유>는 결국 <실체>로 이루어집니다.
부활도, 휴거도, 불 심판도, 말세도, 구름 타고 오시는 주도
<비유>가 <실체>로 이루어집니다.
<비유>가 <실체>로 이루어지면,
‘비유를 실체로 풀고 행한 자들’만 압니다.
<실체 시대>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대’입니다.
이 역사는 <구름>을 ‘비유’로 보고,
그 ‘실체’를 <사람>으로 봅니다.
부활도, 휴거도, 재림도, 불 심판도, 말세도
모두 <비유>를 <실체>로 풀고 행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에 대한 말씀도 <실체>로 풀어서
‘새 역사에서 하나님이 새로 다시 보낸 자’로 봅니다.
◎ 잘 들어요. (설명 잘해야 함)
<신약에서 예언한 재림의 새 역사>는
‘신약 주관권, 신약시대’에서 못 이룹니다.
<신약역사>와 <그가 다시 와서 한다는 새 역사>는
시대가 달라서 안 됩니다.
고로 ‘신약의 구원자 혼자’ 다 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같은 시간’에
<차>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갈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이와 같이 <2000년 신약역사>는 ‘같은 주관권, 같은 시간’이라서
이때는 이미 하고 지나갔고,
<재림>은 ‘다른 주관권’이므로 <초림 역사 사명자>가
혼자서 ‘초림 역사, 재림 역사’ 두 가지를 못 합니다.
<신약의 구원자>를 통해서는 ‘초림 역사’를 하시고,
이후 때가 되어 <성약의 때>가 오면,
하나님이 <성약의 구원자>를 다시 보내어 ‘재림 역사’를 하십니다.
인생의 <과거>는 한 번 지나갔으면
다시는 그 시간을 못 사는 이치와 같이
2000년 동안 <신약역사>를 했으면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그 시대에 미련 없이 하고 끝내시고,
<신약역사>를 반복하지 않으십니다.
<신약에서 예언한 새 역사>는
‘다음 시대’에 ‘새로운 중심자’를 보내어 펴십니다.
<월명동 야심작>을 만들고 아쉽다고,
다른 데다 똑같이 <야심작>을 또 만들겠습니까?
<야심작>은 그것으로 끝내고,
‘다른 데’다 ‘다른 작품’을 만듭니다.
그래서 월명동에 <기도동산 왕관 작품>을 만들었고,
<호수 폭포>를 만들었고, 또 <연회장 폭포>를 만들었습니다.
<구약의 모세 시대>가 아쉽다고, 구약 4000년이 지났는데
하나님이 또 ‘모세 때와 같은 역사’를 펴셨습니까?
<구약 때 할 일>은 ‘구약 때’ 하고 끝냈습니다.
<신약 때 할 일>은 ‘신약 때’ 합니다.
이와 같이 <성약역사>가 오면 ‘신약에 예언한 일’을 합니다.
곧 <재림, 휴거, 신부의 말씀>을 주고 믿고 행하게 함으로
<육>을 가지고 <신부의 영>으로 만들어
<신부로 변화된 영들>을 삼위일체가 취하여 휴거시키는 역사입니다.
이 역사가 곧
<하나님이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는 역사>입니다.
지구 세상 전에도 후에도 ‘이보다 더 좋은 역사’는 없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모두 지난날을 생각해 봐요.
과거 ‘그 나이 때에 행복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함께하시어
그 나이 때, 그 시대에 해당되게
개인적으로, 섭리사적으로 ‘혼인 잔치’를 하고 지나갔습니다.
다시는 ‘그 나이 때, 그에 해당되는 역사’는 다시 안 옵니다.
이미 하고 끝났습니다.
결혼한 사람들 생각해 봐요.
젊었을 때 20대, 30대 초반의
싱싱하고 아름다운 젊음이 다시 오겠습니까?
젊었을 때 행복했던 시간은 그런 대로 다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자기 옆에 ‘그 여자, 그 남자’가 지금 같이 살고 있으니,
옛날을 생각하면서 화평하게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과거 젊었을 때 그 여자, 그 남자이면 지금 늙었어도 좋은 것입니다.
신앙의 신부들도 그러합니다.
이미 젊었을 때, 어렸을 때,
<하나님이 보낸 자>를 맞고 나름대로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그 나이 때의 모습, 은혜, 사랑, 환경>은 다시는 안 옵니다.
<지나간 역사>는 ‘이미 다 하고 끝나서 죽은 격’입니다.
두 번은 못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지난날 주와 함께한 것’을 잊었으면,
깊이 기도하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20대, 30대, 40대 때의 역사는 다시 못 합니다.
하나님은 ‘반복’은 안 하십니다.
<동시성 역사>를 하더라도 ‘반복’은 안 하시고,
차원 높여 ‘다른 시대’에, ‘남은 때’에 하십니다.
이제 ‘과거에 행한 터전’위에
‘지금 이 나이 때에 해당되는 것’만 남아 있습니다.
이를 절실히 깨닫고, ‘이제 남은 나이 때에 해당되는 것’을 두고
마음과 뜻과 목숨과 정성을 다해 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그 나이 때, 이때 해당되는 것>은 다시는 안 옵니다.
<지금 그 나이 때의 모습, 은혜, 사랑, 환경>은 다시는 안 옵니다.
지금 하고 나면, 후에 ‘반복’이 없습니다.
고로 <지금 자기 나이 때, 지금 해당되는 역사>가
얼마나 중한지 절실히 깨닫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주와 함께 날개를 달고 날아다녀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과거를 생각하면서 성령께 기도하니
성령님이 말씀하셨답니다.
“과거를 생각해라. 기적의 역사였다.
과거 환난기 때 ‘주’를 만나고 ‘할 일’을 하고,
그때가 ‘그 시절 최고의 때’였다.
힘들어도 고생돼도 지나고 보면 ‘최고의 때’인데,
사람들은 ‘언제 소망이 이루어지지?
앞으로는 잘되겠지?’ 하며 기다리기만 한다.
<기성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는 자들>이다.
힘들고 고생되지만 그때가 ‘자기 때’인데,
그때는 앞날에 잘될 것만 생각하면서 ‘자기 때’를 흘려보냈다.
아이쿠. 답답하다.
환난 때도, 어려울 때도, 힘들 때도
<행복>은 ‘주’와 함께 지나갔다.
이미 이 땅에 <주>가 왔으니,
어렵고 힘들어도 때마다 환경 따지지 않고
<주>와 함께 ‘행복’은 지나간다.
왜 <좋을 때>만 따지냐.
<행복>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환경을 안 따지고 온다.
<주>가 ‘시의 계시’로 이미 말한 것을 생각하여라.”
하고 성령이 깨우쳐 주셨다고, 편지로 고해 왔습니다.
이제 모두에게 ‘남은 나이 때에 해당되는 것’만 남았습니다.
지금 정신 차리고 해야 됩니다.
지금 이때도 ‘이때에 해당되게 좋은 것’이 지나갑니다.
지금 정신 못 차리고 제대로 안 하면,
몇 년 있다가 또 ‘그때가 그 나름대로 좋았는데.’ 하고 후회합니다.
자기 나이 때, 주와 함께 산 것을 늘 기억하고,
또 지금 그 나이 때, 주와 함께 사는 것을 늘 잊지 말고,
현실에서 힘차게 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섭리사에 온 지 오래된 자들이나,
얼마 안 된 자들이나, 이제 온 자들이나
‘지금도 미래에 비해서 나이는 젊다.
이때가 청춘이다. 이때가 황금기다.
이때가 주와 함께 실천하고 잔치하며 누릴 때다.’절실히 깨닫고
미련 없이 주를 사랑하고 실천하며 살기 바랍니다!
<전환>
오늘 말씀한 대로
한 번 주를 믿고 시인하고 따랐으면,
보이는 대로 판단하면서 헷갈리지 말아요!
주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지 헷갈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쓰시니, 시대 상황과 그때그때의 환경에 따라서
옷도 입고 분장도 하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한 번 ‘남자다. 여자다.’ 확인했으면,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그 존재, 그 성별’입니다.
이와 같이 <주>가 환경 따라 옷을 바꿔 입어도
처음 고백한 대로, 본 대로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오직 ‘하나님의 뜻’만 행하며 갑니다.
한 번 고백하고 주를 믿고 따랐으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누가 뭐라 해도
- <지금까지 주가 말하고 행한 것들>을 생각하고,
- <처음 주를 믿고 고백하고 행한 것>을 시인하고,
- 첫사랑 변치 말고, 영원히 흔들리지 말고 가라고
오늘 계시의 말씀을 전합니다!
과거에 주가 말하고 행한 것은 다시 보여 줄 수 없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말하고 행하고 역사할 것’만 남아 있습니다.
옛날에 말씀하고 행한 것들을 보고 싶으면,
녹화해 놓은 영상을 보면 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며 생각하면 됩니다.
<휴거>도 의심하지 말고, 매일 ‘휴거의 삶’을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의심이 없습니다.
<이 시대 섭리역사>는
- 구약 창세기에서 신약 계시록까지의 모든 말씀을 다 이루고,
- 계시록의 모든 희망의 예언의 역사를 다 이룬 역사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말씀>은 ‘성약에 대한 예언이며 계시’입니다.
고로 ‘다른 교파’는 못 이루고, ‘이단’도 못 이룹니다.
이루고 싶어도 ‘한두 가지’만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이단들>이 ‘계시록 말씀’을 이룬다고 하나,
그들은 ‘악의 편, 가인 편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진짜 참역사>는 싸우고 다투고 일일이 변론할 시간이 없습니다.
오직 ‘결혼식 날, 신랑을 따라가야 되기 때문’입니다.
섭리인들은 모두 <시대 말씀>을 듣고
<말씀의 불>을 뇌에 받고 주와 같이 실천해야 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먼저 ‘자기’를 굳건하게 하고 ‘생명들’을 붙잡아 주기 바랍니다.
시대 말씀을 듣고 주를 고백하고 믿고 따르다가도
흔들리고 의심하고 나간 자들은
첫째, <말씀의 불>이 뇌에 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 관리, 생명 관리>를 못 해서
사탄과 악한 자의 유혹과 꾐으로 나간 것입니다.
항상 지도자들이 <자기 관리>를 못 하면,
절대 <생명 관리>를 못 합니다.
항상 교역자나 지도자가 <자기 관리>를 못 할 때,
<생명 관리, 교인 관리>도 안 되어
생명들이 힘들어하거나 나갔습니다.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는 지도자>는
자기 신앙도, 생명들의 신앙도 잠들지 않게 합니다.
지도자가 <자기 관리>를 못 하고 신앙이 잠들어 있으니,
그때 ‘생명들의 신앙’도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 말은 ‘확실’하며 ‘진실’합니다.
잠들었다는 것은 ‘몰랐다.’ 함입니다.
교역자나 지도자가 잠들어 있으니
생명들이 힘들어도 모르고, 나가도 모르고,
사탄이 채어 가도 모르는 것입니다.
주가 말하여 이제야 찾으나,
어떤 자는 신앙이 죽어서 시체가 되어 딴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두 뇌에 ‘말씀의 불’을 받고 깨어나야 됩니다!
지금은 <실체 시대>이니, 알았다고만 하지 말고
실제로 깨닫고 고치고 실천해야 됩니다!
보면 뭐합니까? 들으면 뭐합니까?
보고 들어도 둔하여 고치지 않으면 뭐합니까?
옛것을 장사 지내지 않으면, 어떻게 새롭게 행합니까?
특히 교역자들은 정말 잘하라고 매년, 매달, 매순간 교육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은혜와 감동 없이 설교하고,
그렇게도 교인들과 화목하게 지내라 해도 안 합니다.
아직도 먼저 왔다고 하며
주가 세운 젊은이들을 무시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주 앞에는 화목하게 잘 지낸다, 잘 챙긴다 하고,
자기 밑의 사람은 정말로 자기 밑에 있는 줄 알고
아직도 무시하며 제 성격대로 합니다.
그러니 주가 다 알고 대합니다.
<화평하지 않은 자, 형제를 무시하고 자기 성격대로 하는 자>는
자기 복을 뺏기고, 그 화평이 다른 자에게로 갑니다.
지역별 교회의 교역자들도 하나 돼야 합니다.
합봉하여 새 성전을 얻은 교회의
교역자들과 지도자들도 하나 돼야 합니다.
그리고 휴거됐으니,
꼭 성격을 고치고 주를 따라 온전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10년, 20년 동안 못 고쳤다고
영계에서 ‘딱지’가 붙습니다.
주는 불꽃 같은 눈으로 보니 알고, 느낌으로 다 압니다.
저울로 달아 보고, 자로 재 보고 압니다.
100% 고치고, 옛것을 장사 지내야 됩니다.
마음이 어린아이 같아야 주께 가까이 옵니다.
<주>께는 ‘양’같이 대하면서,
<형제끼리>는 ‘염소’같이 대하는 성격을 고쳐야 됩니다.
옥에 ‘티’가 있으면, 그 옥은 ‘B급’입니다.
하늘 신부도 그러합니다.
생각과 성격에 ‘티’가 있으면, 절대 ‘A급 신부’는 못 됩니다.
지금은! 옛것을 장사 지내고 뇌에 말씀의 불이 붙은 젊은 2세들이
좋은 성격을 가지고 그 위치에서 완성하고
주와 함께 잔치하며 축복을 받고 삽니다.
<먼저 온 사람이 못 세운 조건>을
<후에 온 사람>이 와서 조건을 세우고 받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먼저 온 자들>은
고치지 않은 성격이 ‘마음의 눈’을 뒤덮어 모릅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세포가 죽어서 ‘생각’도 ‘영적 감각’도 희미해집니다.
나이 들어 ‘영의 세계에서 주와 대화하는 자’가 얼마나 됩니까?
10대, 젊은이들이 ‘영적으로 예리’합니다.
진정 깨닫고 제대로 해야 됩니다.
신앙이 온전히 살아 있으면,
하나님과 성령과 주와 매일 대화가 됩니다.
신앙이 온전히 살아 있으면,
말씀의 불이 뇌에 붙어 살아서 행하며
옛것을 깨끗이 장사 지내고 새롭게 행합니다.
살았다 하나 죽은 자들이 많습니다.
어서 옛 방법, 고정 관념, 인성, 인본주의, 육적인 것을 장사 지내고
깨어서 실천하기를 축원합니다!
<말씀 마무리>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장난’이 아닙니다. ‘실체’입니다.
고로 ‘매일 실제로 행하는 자’만 주를 맞고 잔치하며 살고,
‘못 하는 자’는 앞날의 희망만 가지고 삽니다.
그러다 앞날이 되면, 얻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이 나이 때, 이때에 해당되는 것>은
지금 행해야!!! 받고 누립니다! 믿습니까?
<역사>도 마치 ‘사람이 크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은 어릴 때 끝났고,
크면 장성기를 보내며 그때 해당되는 일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역사도 <옛날 것>은 ‘옛날’에 하고 끝났고,
<지금 것>은 ‘지금’ 하면서 갑니다.
과거에 주를 잘 모르고 따라온 자들은
모르는 대로라도 맞았으니 다행입니다.
아직 ‘자기 몸’이 섭리사에서 주와 함께 있으니 다행입니다.
이제는 정말 가치를 알고 제대로 행해야 됩니다.
그리고 더 뛰어야 됩니다.
과거에 어릴 때, 잘 몰랐을 때
왕이 사랑하여 ‘귀중품’을 줬다 합시다.
그때는 귀한 것을 모르고, 커서 귀한 것을 알았다 합시다.
그래도 아직 ‘몸’은 ‘왕 옆’에 있으니,
이제 ‘그 몸’을 가지고, 깨닫고 귀히 쓰고 살면 됩니다.
이제 옛것을 장사 지내고 정말 깨달아야 됩니다.
깨달아야 - 느끼고 감동됩니다.
깨달아야 - 육도 영도 형체가 더 좋게 변화되고 완성됩니다.
깨달아야 - 삼위도 주도 더욱 은밀하게 행하십니다.
주를 맞고 주와 함께 축복의 때를 보내며 누리고 살아도
모르면, 세월이 가도 감동도 기쁨도 흥분도 없습니다.
후에라도 깨달으면, 그제야 감동되고 기쁘고 흥분됩니다.
<깨달은 것>은 ‘꽃이 핀 것’과 같고,
<깨닫고 행한 것>은 ‘열매를 연 것’과 같습니다.
고로 “이제는 알고 깨달아라. 매일 깨닫고 실천해라.”
하고 생명의 말씀을 줍니다.
<그 나이 때, 그 시대에 해당되는 것>은 이미 하고 끝났습니다.
반복은 없습니다.
<전도할 자>도 그때 못 하면, 못 하고 끝납니다.
그 사람을 또 못 만납니다.
고로 <전도할 사람>을 만났을 때, 그때 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자기 앞에 온 복’입니다.
<생명을 구원하지 못한 자>는
그 날에 ‘공적’이 없어 부끄러워서 ‘주’를 못 만납니다.
하나님도 상황을 트십니다.
<주>는 십자가에 매달려서도 생명을 구원하니,
모두 <주의 몸>이라면 ‘주’를 따라서 하기 바랍니다.
이제는 ‘청중 전도’입니다.
<청중>을 모아 놓고 ‘성령’으로 녹이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대 말씀>을 가르쳐
뇌에 ‘말씀의 불’이 붙게 해 줘야 됩니다.
이제 ‘텃밭 농사’ 그만하고, ‘농장을 경영할 때’입니다.
<생명 관리>도 생명이 신음 소리를 낼 때 못 하면, 끝납니다.
생명을 관리하여 살리면, 관리한 자에게 ‘복’이 갑니다.
처음 생명을 전도하여 불붙었을 때 그때 ‘말씀’으로 100% 잡고,
3~5년씩 꾸준히 관리해 줘야 됩니다.
5년 동안 관리해도 ‘다섯 살 어린아이’입니다.
관리하는 생명이 잘 성장하면,
그때는 어린아이 대하듯 하지 말고 성장한 대로 관리해 줘야 됩니다.
<관리>는 ‘깨닫고 크는 차원대로 해 주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나이 때에 해당되는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 처음 주를 고백하고 시인했던 것을 잊지 말고,
- 주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나타나도 헷갈리지 말고,
- 과거에 주가 말씀하고 행한 것을 잊지 말고,
- 과거에 주와 함께했던 날들을 잊지 말고,
- 지금은 미래보다 젊은 때, 황금기 때라는 것을 생각하고,
- 어서 장사 지낼 것은 장사 지내고,
- 생명을 구원하고 관리하며
- 일어나 빛을 발하여 주의 길을 예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