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7.04.30 (일)
170430 주일말씀(하나님이 보실 때 온전한 것을 해야 고생돼도 유익이다)
- 선포일
- 2017.04.30 (일)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14장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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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30-주일말씀(하나님이_보실_때_온전한_것을_해야_고생돼도_유익이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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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30일 주일말씀>
하나님이 보실 때 온전한 것을 해야 고생돼도 유익이다
거듭 말하고 대화하고 기도하고 고해라
그럴 리가 있겠느냐. 풀면 답이 나온다
신부라면 <자기가 한 일>과 <하나님의 생각>이
딱 맞아야 된다
본 문 요한복음 14장 23절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어제부터 <꽃 축제>가 시작됐습니다.
실상 꽃도 많이 안 피어서 안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때에 맞는 축제다.” 하셔서 <꽃 축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꽃 축제>는 꽃이 많이 안 폈어도
<때 축제, 환경 축제>입니다.
◎ <꽃 축제의 목적>은 이미 광고한 대로
첫째 하나님께 영광, 둘째 섭리사 화목, 셋째 생명 전도입니다.
9일 동안 진행하고, 마지막 날 5월 7일 주일에는 <폐막식>도 합니다.
이날 <잠언>도 전해 줍니다.
◎ 또 <꽃 축제 개막식, 폐막식> 때는
선생이 이번에 새로 지은 곡 ‘두 가지’를 발표합니다.
하나는 <폭포 사랑>이고, 하나는 <고향>입니다.
모두 마음껏 불러요!
두 곡 모두 <명곡 노래대회> 때 경연 곡으로 불러도 되고,
<꽃 축제 개막식>과 <폐막식> 때
치어, 관악대, 오케스트라, 경음악, 성가대로 영광 돌리기도 하고,
다 같이 부르기도 하면 됩니다.
◎ 어제 <꽃 축제>가 시작되어 말씀 전에 잠깐 소개하며 설명했습니다.
◎ 오늘은 크게 세 가지를 말씀하겠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이 보실 때 온전한 것을 해야 고생돼도 유익이다.’
두 번째, ‘거듭 말하고, 대화하고, 기도하고, 고해라.
그럴 리가 있겠느냐. 풀면 답이 나온다.’입니다.
세 번째, ‘신부라면 <자기가 한 일>과 <하나님의 생각>이
딱 맞아야 된다.’입니다.
<말씀 시작>
◎ 첫 번째 말씀, 먼저 잠언 두 개를 전해 주고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잠언1 자막>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
<잠언2 자막>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한 일’을
인정하고 합리화하며 좋아한다.
가령 <이성 사랑>을 했으면, 그것이 좋다고 인정하고 합리화하고
주장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반면 <이성을 멀리하는 자>는
그것이 좋다고 인정하며 주장하고 가르치고 삽니다.
양쪽 모두 ‘그로 인해 얻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행한 대로 받게 하셨으니,
둘 다 자기가 행한 대로 받은 ‘실체 결론’으로 알게 됩니다.
◎ 이 말씀을 받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쓰기 전날 자정이 다 되기까지 많은 일을 했습니다.
새벽 1시에 겨우 잠에서 깨서 ‘기도하고 잠언 받아야지.’ 했는데,
피곤해서 계속 누워 있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났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하기를
‘늦게까지 잠잤다고 그렇게 큰 문제가 되랴. 차라리 잘됐다.
피곤해서 쌓인 피로는 언제라도 잠을 자서 풀어야 되니 잘됐다.
이제부터 맑은 정신으로 기도하고 시작하자.’ 했습니다.
그리고 씻으면서 거울을 봤는데
자면서 피로가 없어져서 얼굴이 평소보다 훤했습니다.
하나님께도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을 정말 잘 만들어 놨어요.
<잠>이 없으면 피곤해서 다 죽어
지구 세상에 남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잠>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대로 쓰이니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오늘 잠잔 것 정말 잘했어요.
이제 잠잔 만큼 일할게요!” 하며 이유를 대고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또 말했습니다.
“저도 하나님의 신부잖아요.
미인은 잠을 많이 자야 된다는데,
저는 늘 잠이 부족해서 ‘신부 미인’이 안 돼요.”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자기가 한 일’을
자기 쪽으로 인정하고 합리화하고 좋아하며 그편이 되어 삽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합당한 일>을 인정하고 좋아하면 괜찮지만,
<합당하지 않은 일>을 인정하고 합리화하니 문제입니다.
타락한 자들도 그러합니다.
타락했어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기보다,
<자기 행위>를 자기 쪽으로 합리화하며 타락의 편이 되어서 삽니다.
그러다가 후에는 괴로우니 회개합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생각>을 중심으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여
자기가 잘했으나 못했으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것>을
좋아하고 인정하여 그쪽 편이 돼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이 있는데,
자기 행위가 옳지 못해도 ‘옳지 못한 편’을 인정합니다.
그쪽에도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으니 그리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생돼도 <하나님이 보실 때 온전한 것>을 해야
육도 영도 다 ‘유익’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의로운 것>도, <불의한 것>도 행하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 고로 <의를 행한 자>는 ‘한 것’을 잘했다고 하며 좋아합니다.
그만큼 고생되지만, 육과 영에게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를 행치 않은 자>도 ‘안 한 것’을 잘했다고 하며
그쪽 편을 주장합니다.
그만큼 고생도 안 하고 힘들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 <불의를 행한 자>도 ‘한 것’을 잘했다고 하며 좋아합니다.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불의를 행하면서 좋다고 합니다.
<불의를 행치 않은 자>도 ‘안 한 것’을 잘했다고 하며
그쪽 편을 주장하고 가르칩니다.
자기는 불의를 참고 이기느라 힘들지만,
그만큼 자기 육에게도 영에게도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의도, 불의도 <행한 자>는 ‘한 것’을 잘했다 하며 좋아하고,
<안 한 자>는 ‘안 한 것’을 잘했다 하며 그편을 주장합니다.
<의>도 <불의>도 행하면, ‘행한 대로 유익’이 있습니다.
<의>도 <불의>도 안 하면, ‘안 한 대로 유익’이 있습니다.
<유익>을 보고 의를 행하기도 하고, 불의를 행하기도 합니다.
<유익>을 보고 의를 행치 않기도 하고, 불의를 행치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법’대로
<의>를 행하면 고생돼도 ‘생명길’을 가고,
<불의>를 행하면 고생도 하고 ‘사망길’로도 갑니다.
<섭리사를 따르다가 나간 자들>도
‘안 하는 것’이 좋다며 나갔습니다.
<섭리사를 계속 따르는 자들>은
‘하는 것’이 좋다며 지금도 따릅니다.
둘 다 <겉>은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영원한 것>을 두고 보면 ‘땅과 하늘 차이’입니다.
이 차이는 ‘영원한 차이’입니다.
고로 ‘유익이 있다. 좋다. 고생한다. 안 한다.’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보실 때 합당하고 온전한 것>을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좋은 쪽>으로 하면,
‘고생’도 있고 ‘좋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따져 보면 ‘좋은 것’이 더 많습니다.
그것을 보고, 고생돼도 <하나님이 보실 때 좋은 쪽>을 행해야 됩니다.
선생도 일하다가 늦게 잤지만
제시간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말씀을 받았으면,
시간이 많으니 기도도 충분히 하고 말씀도 충분히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말씀 내용’도 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몸은 피곤하고 힘듭니다.
그러나 ‘몸부림의 진리의 걸작’을 낳게 됩니다.
이 <진리>는 ‘육 평생 지구가 없어질 때’까지 쓰고,
‘영에게는 영원히 유익’이 됩니다.
잠을 못 자고 피곤하고 얼굴이 상한 것은 또 풀어 주면 됩니다.
섭리사 여러분도 그러합니다.
- 섭리역사를 따라오면서 고생되고 힘들어도 <할 일을 한 자>는
그편에 속해서 좋아하며 삽니다.
- <할 일을 못 한 자>는 안 해서 편하니 장점은 있지만
할 일을 안 함으로 얻지 못한 채 그편에서 주장하며 삽니다.
그러나 ‘할 일’을 해 보니, 하는 것이 낫습니다.
고생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오직 <생명길, 얻는 길>로 가야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이제 모두 ‘휴거된 하늘 신부’가 됐으니, 옛날과는 다릅니다.
이제 ‘홀몸’이 아닙니다.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로서 ‘삼위를 모시고 같이 사는 자들’입니다.
또한 주와 함께 ‘신앙의 자녀들’을 낳고 삽니다.
정성을 다하고 부지런해야 됩니다.
이제 ‘신부 체질’로 완전히 바꿔야 성공합니다.
모두 주를 머리로 삼고 실천하여
육도 혼도 영도 ‘최고의 휴거 작품’으로 만들기 바랍니다!
휴거된 지 3년 됐으니 이제 옛것을 장사 지내고,
항상 <하나님의 편의 것>을 행하면서 그것을 주장하고 기뻐하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진정 사랑하며 살기 바랍니다!
고생돼도 힘들어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과 성령과 주와 딱 붙어 살아야 됩니다.
<오늘> ‘할 일’을 못 했어도 못 했다고 낙심 말고
못 한 것으로 인해 교훈을 얻고,
<내일>은 정녕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집념같이 실천하여
하나님 족속,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 최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 그러면 <육>도 ‘땅’에서 최고로 얻고,
- <영>은 ‘시대 최고 급’으로 행한 만큼
최고의 천국 ‘황금성’에 가서
삼위를 영원히 사랑하고 삼위께 영원히 사랑받으며 살게 됩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사랑>은 그리도 좋습니다.
<사랑>이 그리 좋아도 ‘자기 사랑’을 주지 못하면,
사랑의 느낌, 사랑의 유익, 사랑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고로 <자기 사랑을 줄 대상이 있는 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줄 대상’이 있습니까? (아멘!)
그 대상이 ‘영원한 대상’이라면
지구 세상 최고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도
<보통 사랑, 중간 사랑, 최고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 사랑>은 ‘줄 대상’이 없어서
하나님은 ‘최고의 사랑을 줄 대상’을 창조하셨습니다.
▸ 먼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육’을 통해 ‘영’을 창조하셨습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도록
하나님은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서 가르치시고,
그를 통해 ‘지킬 말씀’을 주어
<인간의 육>이 그 말씀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육>이 말씀을 지키면,
<그 영>이 ‘하나님적 차원으로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장한 영>에게 ‘최고 사랑’을 주시고,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종교 역사를 시작하시고
4000년 동안 <종급 보통 사랑 차원, 구약역사>를 펴 오시고,
2000년 동안 <자녀급 중간 사랑 차원, 신약역사>를 펴 오시고,
이제 마지막으로 <신부급 최고 사랑 차원, 성약역사>를 위해
- 이 땅에 메시아를 보내어 말씀을 주시고,
- 그를 믿고 따르며 그 말씀대로 하는 자들의 육과 영을
<사랑의 대상체>로 만들어 ‘창조 목적’을 이루시고,
- 그 육도 영도 ‘최고 사랑’을 해 주면서 같이 살아 주십니다.
- <땅>에서는 이들의 ‘육신’이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이고,
- <영의 세계, 최고급 황금성>에서는
그 ‘영들’이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입니다.
하나님께 아무리 사랑이 많으셔도
<사랑을 줄 대상체>, <사랑의 대상체로 변화된 자들>이 없으면
사랑을 줄 수도 없고 사랑의 역사를 이룰 수도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는
지금! 마지막으로 <최고 사랑의 역사>를 이루시고
<최고 사랑의 대상체들>을 만들어
<육>으로는 ‘땅’에서, <영>으로는 ‘황금성’에서
그들과 같이 사랑하며 살고 계십니다.
곧 성경에 예언된 역사,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역사,
성약 섭리역사, 그중에서도 최고의 휴거 역사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만들어지면
하나님은 ‘개인에게 해당되는 것’도 주시지만,
모두가 같이 쓸 수 있게 ‘크고도 큰 것’도 주십니다.
<개인에게 해당되는 것>은 ‘개인’에게 주시지만,
<큰 것>은 ‘개인’에게는 따로 안 주십니다.
너무 커서 개인이 감당을 못 하니,
하나님이 가지고 운전하고 다니면서
<주와 하나 된 자들>이 주와 같이 실컷 쓰게 하십니다.
마치 <태양과 지구>는 너무 커서 ‘개인’에게는 안 주고,
가치를 아는 만큼 주와 함께 사용하게 하는 격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와 하나 되면
<하나님, 성령님, 주의 것>이 ‘자기 것’입니다.
마치 <월명동 자연성전>을 개발해 놓고 ‘개인’에게 주지 않고,
주와 하나 된 자들이 주와 함께 실컷 쓰게 하는 격입니다.
황태자가 있는데, 아무리 ‘사랑하는 자기 애인’이라도
<황금 열차>는 안 줍니다.
운전을 못 하니까 안 주고, 줘도 뺏기니까 안 줍니다.
황태자가 쓸 때, 사랑하는 애인도 같이 쓰게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주도 아무리 사랑하는 자라도
<큰 것>은 개인에게 안 줍니다.
<주와 하나 된 자, 주를 진정 사랑하는 자, 주와 함께 행하는 자>만
주가 쓸 때 같이 쓰게 하십니다. 이해했습니까?
어느 날 기도하다가 하나님께 또 선물을 달라고 하니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커서 못 가지고 다니니 못 준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너무 커서 못 가지고 다닌다.
고로 내가 가지고 다닐 테니, 네가 나와 하나 되어 실컷 써라.
네가 가지고 있으면 무거워서 감당 못 하고,
기술이 없어서 감당 못 한다.
그러니 내가 쓸 때마다 실컷 써라.
섭리사의 신부들도 그러하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하나 돼야,
마치 태양과 지구를 쓰듯이 하나님이 쓰실 때 같이 쓰게 됩니다.
사랑으로 하나 돼야 하나님의 것이 자기 것이 되고,
주의 것이 자기 것이 됩니다. 믿습니까?
<태양>과 <지구>는 ‘개인’에게 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의 대상’이라도 못 줍니다.
다만 ‘지혜’를 주어 남들보다 가치 있게 많이 쓰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지구 세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자라도 ‘개인’에게 주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지혜’를 주어
<사랑하는 자들>이 더 많이 가치 있게 쓰게 하십니다.
섭리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섭리사에 주신 것들>이 많습니다.
개인에게 안 줬어도 ‘자기 것’으로 알고 관리하고 쓰면 됩니다.
월명동도 그러하고, 성전도 그러하고, 각종 작품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가 주신 것>을 귀히 여기고,
매일 사연을 이야기하고 귀히 쓰며 증거해야 또 주십니다.
잊어버리고 이야기 안 하고, 증거 안 하고, 귀히 안 쓰면
다음에는 또 안 주십니다.
일한 만큼 배고프니 많이 먹듯이,
- 하나님과 성령과 주를 사랑하는 만큼 진리를 실천하고,
- 하나님과 성령과 주를 사랑하는 만큼 받은 것을 증거하고,
- 하나님과 성령과 주를 사랑하는 만큼 행하며 쓰게 되어 있습니다!
아멘! 믿습니다!
<전환>
◎ 이제 <두 번째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섭리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소통에 대한 두 가지 말씀’입니다.
◎ 첫 번째!
섭리사에서 열심히 하는 자들은
늘 하나님과 성령께서 주와 함께 관리하십니다.
더 힘과 능력을 주고, 지혜를 주고,
주와 같은 마음을 주어 ‘주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주의 몸’으로 더욱 강력하게 쓰십니다.
이들이 ‘하나님과 주의 몸’이 되고 ‘손발’이 되어서
주의 심정으로 약한 자, 힘든 자, 넘어진 자들을 이끌어 줘야 됩니다.
그리고 후에, 선생에게 고하기 바랍니다.
편지로도 고하고, 나중에 만나서도 고하기 바랍니다.
아무도 모르게 한 일도 고하고,
때가 되면 만나서 이야기해 주기 바랍니다.
편지했는데 답이 없으면, 또 편지하면 됩니다.
답을 안 주고 싶어서 편지를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날은 시간상 못 주고 다음 날 하려다가
착오가 생긴 편지도 있습니다.
▸ 어떤 편지는 꼭 답장해 주겠다고 특별히 한쪽에 빼놨는데
그 위에 다른 서류들이 얹어져서 나중엔 잊어버려서
답장을 못 해 준 편지도 있습니다.
한두 달 후에 서류를 정리하다 찾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당사자에게 사연을 이야기하니,
그동안 자기가 못 하여 답장을 못 받았다고만 생각하고
낙심하고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 또 어떤 편지는 답장을 써 놨는데 다른 서류와 섞여서 못 보내고,
두 달 후에 써 놓은 답장을 찾아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이 편지하면, 웬만하면 다 답장을 해 주는 편입니다.
고로 편지했는데 답이 안 오면
- 기도하고 ‘꿈’으로 답을 받거나,
- 기도할 때 ‘대화’로 답을 받거나,
- 또 ‘편지’해서 답을 받으면 됩니다. 알겠지요?
선생 몸이 하나인데 할 일이 많아서 잊어버릴 때도 있으니,
그럴 때는 낙심하지 말고 ‘본인이 또 하는 것’이 빠릅니다.
또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도 있으니,
역시 낙심하지 말고 ‘또 기도’하면 됩니다.
그래도 응답이 없으면 ‘말씀’으로도 답이 가니,
말씀을 귀 기울여 잘 듣기 바랍니다.
하나님도 성령도 주도 여전한데,
<자기 생각의 오해>와 <다른 사람으로 인한 오해>로 낙심하여
<지금까지 자기가 수고한 것들>까지 꺾여 버립니다.
오해하지 말고 또 묻고, 또 편지하고, 또 기도하고,
말씀으로 답을 받으면서 ‘늘 소통’해야 됩니다.
자기가 하는 것이 제일 빠릅니다!!
어느 때는 선생이 ‘생각’으로만 어떤 사람에게 편지해 놓고,
그 사람의 답장을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생각>으로만 편지하겠다 했는데 <실제>로 편지를 한 줄 알고,
그 사람에게 편지하여 “너는 왜 내 편지에 답장을 안 하냐?”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당사자는 중간에서 편지를 전해 주는 자가
편지를 자르고 안 전해 준다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고로 늘 ‘소통’해야 되고 ‘확인’해야 됩니다.
◎ 이것이 ‘소통에 대한 첫 번째 말씀’입니다.
<잠시 쉬었다가>
◎ 두 번째!
선생이 <하나님의 구상을 주고 일을 맡긴 자>가 있는데,
<구상과 목적>대로 안 해서 제대로 하라고 편지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 허물어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계속 안 했습니다.
‘이상하다? 계속 안 하려고 하는 듯, 왜 다시 제대로 안 하지?
<하나님의 구상과 목적대로 만든 것>을 보고 싶은데...’
하고 계속 기다렸습니다.
아직도 안 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 보낼 리가 없다. 알고 보면 사연이 있을 것이다.
무한히 이해한다. 쉬운 일이 아니니까. 풀면 답이 나온다.’ 하면서,
그 일을 맡긴 자에게 또 편지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생도 이렇게 하니, 모두 이같이 하기 바랍니다.
어떤 오해할 만한 일이 생기면
‘그럴 리가 없다.’ 하고 풀어야 됩니다.
풀면 ‘답’이 나옵니다. 따져 보면 ‘답’이 나옵니다.
풀 때는 ‘중심’을 끼고 풀어야 ‘양쪽 입장을 대변’해 줍니다.
이미 당사자들이 선생에게 ‘자기 사정’을 이야기했기에
선생이 알고 있으니, ‘양쪽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서 알아보면,
<이쪽 입장>과 <저쪽 입장>이 다 있습니다.
<이쪽>은 상대를 해하기 위해 나쁘게 한 행동이 아니었으나,
<저쪽>은 자기 위치에서 이쪽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성자바위>는 앞쪽, 뒤쪽, 좌우 측면 등
‘보는 위치’마다 형상이 다르게 보이지요?
섭리사에서 일어나는 일도 그러합니다.
<보는 위치>마다 다르게 보이니,
<위치>를 바꿔서 보면 이해가 됩니다.
또 <주>를 끼고 풀면, 주가 ‘양쪽 입장을 대변’하여
억울한 자 없이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말>은 못 해도
<행동>은 그 사람을 위해서 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말>을 안 하면 모르니, 꼭 <말>을 해 줘야 됩니다.
모르면, 하나님도 주도 오해하고 대합니다.
알고 보면 전혀 아닌데, 자기만 그렇게 생각한 것들이 많습니다.
오해가 없어야, 날개를 펴고 날아다니며 할 일을 하게 됩니다.
고로 오해가 없도록 꼭 <말>을 해 줘야 됩니다.
하나님께도, 주께도, 형제에게도 그리하기 바랍니다.
한 번에 안 되면 ‘거듭 반복해서’ 해 줘야 됩니다.
섭리사에서 같이 살아도 각자 ‘자기 의견’이 있습니다.
<자기 의견>도, <상대의 의견>도 다 ‘유익’이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크게 <주의 의견>을 듣기 바랍니다.
섭리사에서 <각자 자기 의견>을 다 내놓으려면 끝이 없으니,
<주>를 ‘머리’로 삼고 ‘주의 의견’대로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결국 그 속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도 나옵니다. 믿습니까?
<화목> 노래 알지요?
<생각>은 ‘각각’이나 <뜻>은 ‘하나’다. -했습니다.
섭리인 모두 <생각>은 달라도, 주 안에서 <뜻>은 하나입니다.
- 고로 꼭 ‘대화’로 자기 것을 내놓기도 하고,
- 또 ‘기도’로 ‘편지’로 자기 사정을 고하기도 하고,
- 꼭 ‘주의 의견’대로 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오해가 없고, 서로의 상황을 알고 이해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잘못했다 책망하고 멸시해도
<주>는 ‘행위’를 가지고 정확히 저울질하고 대합니다.
<주>가 정확히 저울질해 보면,
그 행위는 ‘책망받고 멸시받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의’의 일일 때도 있습니다.
<의>를 행했으니, ‘심판’하지 않습니다.
오직 <불의>만 심판합니다.
마치 글을 써 놓고 ‘틀린 것’만 지우고 고치듯 합니다.
<각 사람의 행위>도 그러합니다.
오직 <불의>만 책망하고 심판합니다.
◎ 이것이 ‘소통에 대한 두 번째 말씀’입니다.
<전환 : 말씀 마무리>
◎ 마지막으로 2~3분 더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 들어요.
앞으로는 더욱더 섭리사의 어떤 일이든지
- 글을 써 놓고 교정하듯 모두 교정할 것이고,
- 하나님의 구상과 목적대로 안 된 것은 반드시 다시 할 것입니다.
고로 일을 맡았으면, 꼭 주께 묻고
<하나님의 구상과 목적>대로 그대로 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것도 허무십니다.
정녕코 ‘하나님의 생각’을 이뤄야
하나님은 <야심작>같이 영원히 기뻐하며 쓰십니다.
절대로 <하나님 생각>대로 해야 됩니다.
<자기 생각>대로 한 것은 ‘전초로 배운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선생이 <야심작>을 쌓을 때도
‘내 생각으로 쌓은 것’은 다섯 번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은 기어이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다섯 번 쌓으면서 ‘전초’로 기술을 배운 후에,
여섯 번째에는 ‘하나님의 구상과 목적’대로
<야심작 백보좌 대(大)걸작>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휴거된 하늘 신부’입니다.
이제는 옛것을 장사 지내고 정말 잘해야 됩니다.
이제는 <자기가 한 일>과 <하나님의 생각>이 딱 맞아야 됩니다.
<자기>만 맞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맞다고 하셔야 됩니다. 믿습니까?
◎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