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7.08.06 (일)
170806 주일말씀(뇌를 근본으로 깨워라. 자극으로 중독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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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06 (일)
- 성경 본문
- 마가복음 13장 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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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06-주일말씀(뇌를_근본으로_깨워라._자극으로_중독되지_말아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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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6일 주일말씀>
뇌를 근본적으로 깨워라. 자극에 중독되지 말아라
본 문 마가복음 13장 33-35절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뇌를 근본적으로 깨워라.
자극에 중독되지 말아라.’라는 주제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 먼저 첫 번째 주제 -
<뇌>를 ‘근본’적으로 깨워라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이 말은
뇌를 잠만 깨우듯 깨우지 말고 깨닫는 단계로 깨우라는 말입니다.
기도할 때도
뇌를 <깨닫는 단계>로 깨우고 집중해서 기도해야 잘 깨닫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뇌를 <깨닫는 단계>로 깨우고 들어야 잘 깨닫습니다.
이것을 알고, 말씀을 듣기 바랍니다.
<잠시 쉬었다가>
<뇌>는 ‘하고자 하는 일’을 두고 ‘자극’을 안 주면,
-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못 느끼고
- 결국 생각과 기억이 흐려지다가 잊어버립니다.
어떤 일을 두고 처음에는 잘 안 해지지요?
그 원인은 뇌신경이 자극이 안 되어서 생각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다 보면, 뇌신경이 자극을 받으니
생각도 기억도 생생해지고 뚜렷해져서 잘해집니다.
고로 <할 일>을 하려면,
뇌에 ‘자극’을 주어 ‘생각과 기억’을 확실하게 해 줘야 됩니다.
그러면 잘 행해집니다.
어떤 일이든지, ‘처음 시작’이 힘듭니다.
<뇌>가 화끈하게 자극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아서입니다.
그러다 하기만 하면,
그때부터는 절제가 안 될 정도로 쉬지 않고 해집니다.
행하는 대로 뇌신경이 자극되니, 스릴을 느끼며 하게 됩니다.
사람은 보고 들으면서 뇌신경을 자극하면,
그쪽으로 <생각>이 가고, 그쪽으로 <정신>이 또렷하게 집중됩니다.
그래서 선잠을 자서 졸린 사람에게
자극을 가하거나, 자극적인 것을 보여 주고 들려주면
<뇌신경>이 ‘자극’을 받아서 즉시 일어납니다.
어느 날, 날씨가 너무 더워서 방 안의 온도가 32도가 넘어갔습니다.
너무 더우니 <뇌신경>이 무뎌졌고, <생각>도 바로 흐려졌습니다.
그러니 ‘글’을 써야 되는데, 안 써졌습니다.
즉시 찬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여 <뇌신경>을 깨우고,
이것저것 보면서 <뇌신경>을 생생하게 깨웠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생각>이 생생해지고 총명해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목적한 일을 하려면,
먼저 <뇌신경>을 자극하여 <생각>을 생생하게 깨워야 됩니다.
찬물로 씻거나 그에 합당한 것을 보고 들으면서
<뇌신경>이 깨어나게 하고,
<뇌신경>이 깨어나 <생각>이 생생해지면
그때 ‘원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또 할 일을 하다가 ‘리듬’이 깨지면,
잠시 몸을 풀거나 머리를 식혀 주면 됩니다.
그러다 <생각>이 잡히면,
다시 돌아와서 ‘하던 일’을 하면 됩니다. 알겠지요?
<잠시 쉬었다가>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실 때,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흥분시켜서
<뇌>를 깨우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생각>이 흐리면, <일>도 흐리게 합니다.
<뇌신경>이 깨어나 흥분되어 해야 <일>을 해도 제대로 하게 됩니다.
흥분은 좋아하면서 느끼는 자극이 극적인 단계입니다.
<흥분의 단계>는 ‘자극을 느끼는 극적인 단계’입니다.
<뇌>는 ‘자극’을 받고 ‘흥분’돼야 ‘제 기능’을 발휘합니다.
고로 흥분시킨다는 것은
뇌신경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연성전을 건축할 때>
섭리사 신부들의 마음을 ‘흥분’시켜 하나 되게 하여
희망으로 하게 하셨습니다.
흥분되면, 뇌도 마음도 몸도 극적으로 느껴서 행해집니다.
고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좋아서’ 했습니다.
하나님은 ‘신부들의 마음을 흥분’시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뇌신경이 흥분되면, 뇌가 제 기능을 하며 작동됩니다.
그때 기도하면 <뇌에 들려오는 소리>를
잘 느끼고 받고 분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행하고 싶어집니다.
<뇌>는 ‘느끼는 지체’입니다.
고로 느끼도록 뇌신경을 깨우고 흥분시켜야 됩니다.
첫째, 뇌신경 깨우기.
둘째, 할 일을 생각하기.
셋째, 온전한지 판단하기.
넷째, 판단했으면 할 일에 생각을 정확히 집중하기입니다.
그래야 <뇌>가 그 방향으로 집중해서
<생각하는 것>을 느끼고 행하게 됩니다.
그 터전 위에 다섯째, 행하기입니다.
<뇌신경>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대로
<생각>도 <행실>도 돌아갑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 뇌신경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면
그 면으로 생각도 행실도 돌아가고
작품을 만드는 데 뇌신경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면
그 면으로 생각도 행실도 돌아가고,
이성이나 육적 사랑으로 뇌신경을 흥분시키면
그 면으로 생각도 행실도 돌아갑니다.
<뇌>는 ‘하나의 보이는 신’과 같습니다.
<인간>은 ‘뇌의 생각’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고로 <뇌신경>을 잘 써야 됩니다.
<뇌신경>은 자극받고 느끼는 대로 ‘길’이 들고,
<뇌신경>이 자극되고 흥분되는 대로 ‘몸’이 가집니다.
고로 <뇌신경, 생각>을 잘못 쓰면 실패하고 망하고,
잘 쓰면 성공하고 흥하고 기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은 첫 번째 주제
<뇌를 근본적으로 깨워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이 말씀의 핵심>을 말씀해 주고,
두 번째 주제 말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뇌신경>을 깨워야 됩니다.
그러나 <뇌신경을 깨우는 단계>가 있습니다.
<1단계>는 ‘잠을 깨우듯 뇌를 깨우는 단계’입니다.
머리를 감든지, 목욕을 하든지, 무엇을 보여 주든지 들려주면
<뇌>가 잠에서 깨듯 깨집니다.
<2단계>는 ‘총명하게 느껴지고 깨달아지는 단계’입니다.
선생은 이 단계에서 ‘말씀’도 받고 ‘계시’도 받습니다.
모두 <잠을 깨우는 단계>에서 한 단계 더 높여
<깨닫는 단계>로 완전히 뇌를 깨운 다음에
집중해서 <할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뇌의 잠을 깨우는 단계>에서
- 교회를 운영하는 목회자들이 많고,
- 부서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많고,
- 생명을 다루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이 상태는 완전하지 않아서 열심히 해도 80%밖에 못 합니다.
<뇌가 완전히 깨닫고 하는 단계>에서 ‘할 일’을 해야 됩니다.
<이 단계의 생각>으로는 바로 실천이 되고, 실천해도 잘됩니다.
생명에 대해서, 상대에 대해서 확실히 모르는 단계,
자신에 대해서, 할 일에 대해서 확실히 모르는 단계는
뇌가 깨어 있어도 <깨닫지 못하는 단계에 처해 있는 자>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셔도 뇌와 생각이 제대로 깨어 있지 않으면,
깨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고로 바로 실천하지도 못하고, 실천해도 제대로 안 됩니다.
운전할 때도 <뇌가 잠에서 깬 상태>에서 운전하면 80% 안전합니다.
<뇌가 근본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에서 운전하면,
자기 자체적으로는 절대 사고가 안 납니다.
<뇌신경>을 ‘근본’적으로 깨우고
<눈>을 ‘집중’해서 운전하기입니다.
<뇌신경이 근본적으로 깨어났을 때의 느낌과 깨달음>은
‘최고 단계의 느낌과 깨달음’입니다.
말씀도, 기도도 <뇌신경이 깨닫는 단계>에서 해야
말씀이 잘 들리고, 잘 깨닫고,
기도할 때 삼위와 교통이 잘되고,
만물 계시도 잘 보이고, 그 계시를 즉시 알게 됩니다.
<뇌가 깨닫는 단계의 감각>은 어떠한지 비유로 표현해 볼까요?
자기가 가지고 있던 휴대폰이나 지갑을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고 모르는 상태로 있다가,
어느 순간 뇌에서 번뜩 느껴지면서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충격적으로 생각나면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게 되지요?
바로 이 단계가 <뇌가 깨닫는 단계>입니다.
이와 같이 깨달으면, ‘충격’이 되면서 ‘자극’을 받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선생이 10대에서 20대 초반일 때입니다.
내 생각이 <성경의 문자>에 매여 있으니,
성경에 나오는 <선악과>는 ‘나무의 열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매여 있지 않은 사람들은 <선악과>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에 해당되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계속 ‘성경의 문자’에 매여 있으니,
<선악과에 해당되는 말>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후에 <뇌신경이 깨닫는 단계>에서
<선악과>가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의 인봉>을 풀었습니다.
그 말씀이 ‘섭리사 핵심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의 문자>에 매이면
아담이 실제 930세까지 살았다고 하고,
므두셀라가 969세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표적’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도
사람의 수한이 100세 전후라는 것을 알고 사는데,
<성경을 연구하며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930세, 969세까지 산 것은 표적이라고 말합니다.
고로 하나님은 뇌를 근본적으로 깨워 깨닫고 알고 살라고,
이 시대에 ‘구원자’를 보내어
이미 40년 동안 온전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성도 이단도 ‘섭리사의 것’을 보고 외치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역사>가 아닙니다.
<새 역사>는 ‘자리’를 옮기고 ‘새 집’을 짓듯 합니다.
구약의 유대 종교인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을 일부 알고 쓴다고,
<자녀 역사>가 되겠습니까?
이는 ‘헌 집을 일부만 고치는 격’입니다.
이 시대도 <섭리사에서 가르친 말씀>을
기성이 일부 알고 쓴다고 <신부 역사>가 되겠습니까?
역시 ‘헌 집을 일부만 고치는 격’입니다.
또한 <섭리사 말씀>을
이단이 일부 알고 쓴다고 <참역사>가 되겠습니까?
이는 ‘남자가 여자 옷을 입고 여자 분장을 한 격’입니다.
남자가 ‘여장’을 한다고 <지체>까지 ‘여자’가 되겠습니까?
<기성>을 벗어나고 <이단>을 벗어나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역사>로 와서
<시대 보낸 자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
<새 역사의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헌 신발>은 아무리 닦아도 ‘헌 신발’이듯,
<기성>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기성 세계, 옛 세계’입니다.
<남자>는 아무리 여장을 해도 ‘남자’이듯,
<이단>은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이단’입니다.
<하나님의 법! 진리!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새 역사>에 와서
<주>를 믿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와 일체> 되어 같이 행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새 역사의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돌포도나무>가 ‘참포도나무의 이론’을 일부 배운다고,
<참포도나무>가 되겠습니까?
<돌포도나무>를 자르고 ‘참포도나무’를 접붙여서 진액이 통해야
비로소 <참포도나무>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새 역사에 왔어도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 일체 되어 100% 온전히 하는 자>만
그 영이 ‘100% 신부의 영, 휴거의 영’으로 변화되어 있습니다.
어정쩡하게 하면, ‘그 단계의 영’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휴거의 기본>은 ‘300선’입니다.
모두 ‘주의 공적’으로 이 단계까지 올려놓고,
<황금성 천국에서 혼인 잔치>를 하게 해 줬습니다.
이제 본인이 <뇌를 근본적으로 깨우는 단계>로 가서
주의 말씀을 듣고 성령과 함께 행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휴거 300선>에서 내려오게 되고,
그 영이 ‘지상에 속한 영’이 되어,
자기 육을 도우면서 ‘휴거되기를 원하는 단계의 영’으로 삽니다.
이는 마치 결혼을 했으나 여자가 제대로 결혼 생활을 못 하여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대하지 않으니 제대로 못 사는 것과 같습니다.
모두 완전하게 만들어서 <700선 완성 단계>를 넘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영>이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 신적 차원’으로 완성되어
<아름답고 신비하고 온전한 형체>가 됩니다.
단순히 <주를 맞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휴거’가 아닙니다.
<삼위일체가 원하시는 사랑의 뜻을 이룬 것>이 ‘휴거’입니다!
하나님은 땅에서 <인간의 육>을 ‘사랑의 대상체’로 만들고,
육신의 행위로 인해 <영>도 ‘사랑의 온전한 대상체’로 만들어서
영원한 사랑의 세계에서 사랑하며 살게 하려고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의 뜻을 이룬 것>을 ‘휴거’로 표현합니다.
이 시대 말씀을 듣고 주와 일체 되어
매일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사는 자는 ‘휴거된 자’입니다!
잃어버린 물건이 있었는데 번뜩 깨달아지면서 생각나듯이,
<뇌가 깨닫는 차원에서의 사랑의 세계>가 바로 ‘이 역사’입니다.
<전환>
◎ 이제 두 번째 주제 -
자극에 중독되지 말아라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뇌>가 자극을 받고 흥분이 돼야 <몸>이 잘 움직이지만,
자극을 느끼려고 자극적인 것만 하면, 결국 뇌가 중독돼 버립니다.
<짠 음식>을 좋아하면 자꾸 짜게 먹다가,
나중에는 소금을 퍼먹어야 짠맛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짠맛에 중독된 것입니다. 결국 건강도 무너집니다.
<단 것>을 좋아하면 자꾸 더 진하게 단 것을 먹다가,
나중에는 설탕을 퍼먹어야 단맛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단 것에 중독된 것입니다. 결국 건강도 무너집니다.
<뇌>는 ‘신경 덩이’라서 끝도 없이 자극을 느낍니다.
계속 <자극>만 주면, 결국 ‘자극적인 것에 중독’ 되어 버립니다.
인터넷, TV, 영화, 음란물, 게임 등은
모두 <자극>을 ‘목적’으로 하고 만들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것들을 무작위로 계속 접하니,
결국 <자극>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자꾸 ‘세상의 자극적인 것들’을 보고 듣고 행하니,
더 강한 자극을 받고자 ‘더 자극적인 것’을 찾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보통 것’을 보면
눈에도 귀에도 안 들어오고 생각도 안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성’으로 자극과 흥분을 느끼려고
자꾸 ‘성적’으로 흐릅니다.
그러면 결국 ‘성’에 중독되어,
후에는 더 자극적인 것을 해도 감각이 없어지고
결국 ‘뇌’를 버리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술이나 마약을 먹고 자극을 느낍니다.
그러다 결국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이 되어
폐인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자극적인 것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들’을 인터넷에 올려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돈을 법니다.
그런 것들을 계속 보고 접하면,
결국 눈도 귀도 생각도 삶도 그쪽으로 중독이 됩니다.
나중에는 ‘정상적인 것’을 보면,
기쁨도 즐거움도 못 느끼게 됩니다.
현대인들은 ‘인터넷’을 통해서 별의별 행위들을 다 합니다.
<이성의 올무, 거짓의 올무>를 놓고 열어 보게 하고,
조건을 제시하여 사람들을 낚아채 돈을 뺏습니다.
숨어 있는 조직들이 하이에나같이 모여 있습니다.
악한 자들과 악평자들은 ‘자극적인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려놓고 읽게 합니다.
그 행위대로 뇌가 중독되어 그렇게 행합니다.
그 행위는 명백히!! ‘불의’입니다.
<불의>는 스스로 망하고 맙니다!
<스스로 망하는 불의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신부로서 사랑의 삶>을 ‘생활화’하면서 기뻐하며 살기 바랍니다!
<뇌>는 ‘신경 덩이’입니다.
<신경>은 ‘느끼는 것’을 좋아합니다.
고로 ‘좋은 것’을 보고 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육의 생명도, 영의 생명도 소생하고 형통하게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 오늘 말씀 서서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떤 특별한 자극>을 줘야만 느끼면, 이미 중독된 것입니다.
<자극만 느끼는 자>는 ‘중독된 자’입니다.
<중독>은 ‘온전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소금>도 간간하게 쓰면서 음식을 만들어야
짠맛에 중독되지 않습니다.
<신앙>도 그러합니다.
평소 신앙, 평소 대화, 생활 신앙, 생활 사랑입니다.
기도할 때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찾지 말고,
평소에 궁금한 것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때그때 물어보고 대화하기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만 깨닫고 결심하지 말고,
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주와 일체 되어 행하기입니다.
주일말씀, 수요말씀, 새벽말씀만 좋아하며 듣지 말고,
평소 생활 가운데
하나님과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들을 공급받기입니다.
성령집회 때만 뜨거운 성령을 느끼지 말고,
평소 생활 가운데 성령과 함께 행하기입니다.
찬양하고 성삼위께 영광 돌리는 것도
무대에서만, 청중 앞에서만, 행사 때만 하지 말고,
생활 속에서 각자 자기 것을 하기입니다.
신앙을 ‘생활화’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와 멀리 지내게 됩니다.
결혼하고 나서 육적 사랑에만 빠져 있으면, 그것에 중독됩니다.
생활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대화하고 한뜻으로 행해야
<중독>되지 않고 <진정한 사랑의 삶>을 살게 됩니다.
신앙도 <자극적인 것>에만 빠져 살면, ‘중독된 신앙’입니다.
집회 때나, 행사 때나, 말씀을 들을 때나, 기도할 때나,
어떤 특별한 때만 감동받고 은혜 받고 흥분되고
<평소 생활 속>에서는 별로이면 ‘중독된 신앙’입니다.
이런 자들은 ‘짠맛을 느끼려고 소금을 퍼먹듯 하는 자’입니다.
<어떤 특별한 자극>에 빠져서 신앙을 하지 말고,
매일 기도하고, 매일 말씀을 생각하며 행하고,
매일 삼위께 영광 돌리며 기뻐 찬양하고,
매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사랑하며 대화하고,
매일 성령을 받고 행하며 신앙을 <생활화>해야 됩니다.
이 삶이 ‘평소’에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은혜 받았을 때, 그 핵을 중심해서 ‘생활’로 이어져야 됩니다.
이런 자는 ‘음식에 소금을 합당하게 잘 쓰는 자’와 같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하나님의 섭리역사 사랑의 세계>는
생활의 사랑, 생활의 신앙, 매일 실천의 삶입니다.
이는 마치 ‘결혼한 삶’과 같습니다.
<매일 삼위일체와 사랑하며 사는 삶>입니다.
육신이 나이가 들면,
<뇌신경>이 점점 죽어서 자꾸 잊어버리고 못 합니다.
고로 지금부터 매일 해 버릇하면서 길을 들여야 됩니다.
그러면 뇌세포가 덜 죽고, 병도 잘 안 옵니다.
하나님과 성령과 주 안에서 매시간 행하기입니다.
신앙의 생활화, 사랑의 생활화입니다.
<불의, 이성 등 각종 육적인 자극>을 주며 흥분시키지 말고,
<전능자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사랑하면서
<영적인 생각>으로 뇌에 ‘좋은 자극’을 받고,
<영적이고 영원한 흥분과 기쁨>을 가지고
매일 ‘휴거의 생활’을 하면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 뇌를 근본적으로 깨워라. 자극에 중독되지 말아라.
말씀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