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7.08.13 (일)
170813 주일말씀
- 선포일
- 2017.08.13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5장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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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13일 주일말씀>
역사의 기록 : <모르는 소경>과 <하나님의 새 역사>
본 문 마태복음 15장 13-14절
누가복음 6장 39-40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오늘은 ‘소경’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원래 <책으로 남기려고 기록한 말씀>입니다.
책으로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오늘 먼저 말씀해 주고,
또 책으로도 기록해 둘 것입니다.
◎ 이 말씀 외에도 <책으로 남기려고 기록한 말씀>이 더 있습니다.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미리 다 내보내서 모두 듣게 해 주겠습니다.
◎ 이 말씀은
<모르는 소경과 하나님의 새 역사에 대한 역사의 기록>입니다.
<말씀 시작>
◎ 먼저 <잠언>으로 ‘소경’에 대해 이해시켜 주겠습니다.
<소경>은 앞을 못 보니, 이야기를 해 줘야 안다.
(꿈에 젊은 외국 소경이 밥상 앞에 있기에
내가 외국어로 이야기해 주니, 듣고 좋아했다.)
모르면, ‘소경’이다.
젊은 자라도 ‘소경’이면, 못 보니 불쌍하다.
<소경>은 - 구체적으로 그에 해당되는 말을 해 주고
- 만져서 느끼고 알게 해야 된다.
이와 같이 생각의 소경, 마음의 소경, 무지의 소경,
시대의 소경, 성경 해석의 소경,
주를 제대로 모르는 소경,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소경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느끼게 해 줘야 된다.
<전부 모르는 소경>도 있고, <부분적으로 모르는 소경>도 있다.
자기 할 일을 100% 못 하고,
자기 할 일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자기 할 일인데 책임을 질 줄 몰라서 못 하는 자들은
<육에 속한 소경>이다.
영의 세계에 대해 모르고, 신령한 세계를 모르고,
죄가 있어도 회개할 줄 모르고, 신앙적으로 행할 것을 모르고,
하늘 신부의 가치를 모르고, 휴거의 가치를 모르고,
상대의 심정과 의견을 헤아릴 줄 모르고 대하는 자들은
<영적인 면의 소경>이다.
<잠시 쉬었다가>
◎ 지금부터 <새 역사를 모르는 이 시대 소경들>에 대해 말씀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말씀하신 시대를 깨달은 자들>은
오신 주를 맞고 행하며 살고,
<깨닫지 못한 자들>은
주가 와서 역사하는 시대가 가고 있어도 모르고
아직도 희망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불쌍한 ‘신앙의 소경들’입니다.
<구시대에 살면서 몰라서 소경이 되어 주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눈을 떠서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고,
각종으로 역사하며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은 기존 인식 그대로
자기중심, 자기 생각, 교만, 죽은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여
<신앙의 눈, 시대의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소경들을 데리고
2000년 동안 <신약역사>를 펴셨습니다.
그들은 ‘시대의 눈을 못 뜬 소경’이라
하나님은 그들을 데리고 <약속하신 새 역사>을 펼 수 없었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시대 사명자>를 보내어
<이 시대에 택한 자들>을 가르치시고 ‘시대의 눈’을 뜨게 하여
그렇게 <눈뜬 자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 사랑을 이루는 휴거 역사>를 펴셨습니다.
<역사>는 ‘참여한 자’만 압니다.
<참여하지 못한 자>는 아직도 ‘주’가 안 왔다 하고,
<참여한 자>는 ‘주’가 왔다고 합니다.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400년간의 <이집트 종살이>를 벗어나 <신광야>로 나왔지만,
책임을 못 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에 못 갔습니다.
결국 <신광야>에서 끝났습니다.
이렇게 <책임을 못 해서 신광야로 끝난 자들>은
아직 “가나안 복지 역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 2세들>은
제2의 영도자이며 구원자인 여호수아와 함께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책임을 하고
담대하게 싸워 이겨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습니다.
이들은 “이집트 종살이를 벗어난 목적을 이루었다.” 합니다.
<행하지 못한 자들>은 “하나님이 아직 진행하시지 않았다.” 하며
이미 하고 지나간 역사를 기다리고,
<행한 자들>은 “하나님이 진행하셨다.” 하며
이미 진행되고 있는 역사에서 뜻을 이루며 갑니다.
이 시대도 역사적으로 볼 때,
이미 <하나님이 약속하신 역사>가 지나갔습니다.
- <주를 맞고 행한 자들만 알고 행하고 끝난 것>도 있고,
- <지금 진행 중인 것>도 있습니다.
지난 6000년 동안의 성경 역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새 역사>가 오면,
하나님은 처음에 ‘택한 자들’을 데리고 ‘작게’ 시작하십니다.
그러나 <구시대의 소경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으나 제대로 신앙생활을 못 해서 육적이고,
자기들의 습관과 생각대로 판단하고 신앙을 합니다.
고로 <새 역사>가 왔어도 ‘평소 신앙’대로 대하니,
거의 새 역사를 맞지 못합니다.
예수님 때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구원자’를 보내시고 ‘주’가 와서 행하는데,
<구시대 유대 종교인들>은 ‘시대의 눈’을 못 뜨고
반대하고 불신하고 외면하고 무시하고 막고 핍박하고
싸우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새 역사>를 중지하시겠습니까?
<따라오는 자들>을 데리고 새 역사를 펴 나가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새 역사’로 흐르고,
<새 역사>에서 ‘하나님의 뜻’을 정녕코 이뤘습니다.
<구시대인들>은 평생 반대하고 불신하고 핍박하다가 늙어 죽고,
<그 후손들>까지 선조들이 주장한 대로 믿고
역시 ‘새 역사의 소경’이 되어 삽니다.
<구시대에서 나와 새 역사를 믿고 따르고 사는 자들>만
‘새 시대의 눈’을 뜨고 알고 갑니다.
한 시대에 같이 살아도, 한자리에 같이 살아도
<알아야 될 것을 아는 자>는 알고 따르며 행하고,
<모르는 자>는 전혀 이해를 못 해서 반대하고 살았습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 ‘사울’이었을 때,
예수님을 모르고 핍박했듯 모르고 삽니다.
사울은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 <구시대 인식관>을 가지고
그리도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예수님의 영>이 사울에게 오셨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소리는 들리는데,
사울이 ‘눈’을 뜨지 못하여 <예수님의 영>은 못 봤습니다.
예수님은 사울에게 ‘제자 아나니아’를 보내시고,
기도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 자신이 ‘시대의 소경’이었음을 깨닫게 하시고,
<시대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시대의 눈을 뜬 사울은 ‘새 역사 시대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되어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메시아 예수님>이 살아 계시며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활동했어도
사도 바울은 ‘무지의 소경’이었기에
<예수님의 육신>은 따르지 못했고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시대의 눈’을 떴습니다.
<메시아의 육신>이 살아 계실 때 ‘육을 못 본 것’이 한이 되어,
죽도록 열심히 하면서 ‘영’으로 예수님을 많이 보며 증거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시대의 소경’이 된 원인은
<구시대 구약인의 율법>과 <그들의 말>을 절대시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뿐 아니라 ‘구시대 안에 있는 자들’이 그러합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구시대 기성인들>이 ‘새 시대에 대해 소경들’인데,
그들의 말을 들으니 그들과 같이 ‘새 시대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역사>를 희망하면서도
<새 시대>에 대해 ‘깨어 있는 산 신앙’을 못 해서입니다.
누구든지 ‘모르는 소경들의 말’을 들으면,
그들과 같이 모르게 됩니다.
<눈을 뜬 자>라도 ‘못 보는 소경의 말’을 들으면,
똑같이 못 보는 것과 같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지금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해 봐요.
<구시대인들>은 ‘새 시대의 구원자’가 온다고 기다렸으나
기존 인식을 못 버리고 자기중심으로 죽은 신앙을 하니,
하나님이 ‘때’를 따라서 <새 역사>를 시작하셨어도
<새 시대>에 눈을 뜨지 못하고 ‘소경’이 되었습니다.
고로 후손들까지 그 말을 듣고, 계속 ‘소경’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새 시대>를 기다립니다.
그들은 <충분히 하나님을 믿으면서 새 시대를 기다렸던 자들>이라서
하나님은 그만큼 충분히 ‘새 시대’를 알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먼저 새 시대 주를 안 자들>을 통해서 해 줄 만큼 해 주시고,
개인별로 만물이나 각종 것을 통해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렇게 ‘한 시대’를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구시대인들>은 ‘새 역사’를 그릇되게 인식하여
반대하고 미워하고 막고 악평하는 데만 빠져 생각이 굳어져 있습니다.
고로 그 사고가 잘못되어 ‘새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할 일을 다 해 주며 ‘새 역사’를 알도록 역사하셨어도
<구시대인들>은 그릇된 사고와 기존 인식으로 책임을 못 하고
시대의 눈을 뜨지 못하고 ‘새 역사’를 반대하고 핍박합니다.
사람이 ‘인식과 주관과 사고’가 그릇되면,
뇌신경 덩어리가 아예 그릇된 쪽이 옳다고 결정하여 보고 판단합니다.
아무리 ‘옳은 것’을 보여 주고 들려줘도
이미 ‘인식과 주관과 사고’가 돌아가 있으니,
그것을 옳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심리는 이러합니다.
<상대의 것>이 ‘더 좋은 것’임을 알면서도
자기가 기분이 나쁘고 싫어하는 것이면,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자기가 부정했던 것>이 ‘옳은 것’이라도
자기 잘못을 깨끗이 회개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하나님 앞에 잘못하고 후에 자기 잘못을 알았어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도 그렇게 하는 자들이
<자기가 불신하고 부정했던 자>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쉽게 회심하고 받아들이겠습니까?
굳이 안 받아들여도 인생은 살아가게 되니 안 받아들이고,
또 자기 혼자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안 받아들이니
그들과 같이 어울리며 씹고 욕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교만, 무지, 강퍅한 마음대로,
그들이 새 역사를 싫어하고 행한 대로
하나님은 ‘시대 보낸 자’와 함께 ‘시대를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은 이 말씀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1장 28절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두사
- 계속 ‘구시대’에 갇혀 살게 하시고,
- <하나님이 새 시대에 약속하신 것>,
곧 <시대 보낸 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못 받고 끝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뒀다.’ 함이
그들에게 응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시니
자기 육성과 감정대로 흐르고,
구시대의 때가 갈수록 한계가 오니
더욱 육적으로 흐르게 되어 곤고합니다.
시대는 ‘하나님의 새 시대의 때’가 되어
하나님이 <새 역사>를 돌리시는데 아직도 <옛 시대>에 있으니,
마치 <봄>이 와서 봄을 맞아야 되는데
<한겨울>에 처해 있는 것과 같아서
그리도 고통을 받고 통곡하며 슬퍼합니다.
<새 시대의 때를 놓친 자들>에게는
‘구시대 자녀급 역사 외’에는 안 해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며 ‘질서’입니다.
<새 시대의 때를 놓친 것>은
마치 여름 장마철에 댐에 물을 안 가두고 있다가
가뭄이 계속되는 계절을 맞아서 물도 못 먹고 사는 격입니다.
그렇다고 다시 지구를 반대로 돌려서 때를 맞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때 그렇게 행했으니, 행한 대로 받고 견뎌야 됩니다.
<앞날>에는 반드시 ‘자기 행위대로 받는다는 것’을 모르고,
<당시>에는 ‘자기 성격과 감정’대로 하며 쾌감을 느낀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못 지킨 자들>은 순간의 잘못으로
<육>이 당세에 ‘구시대, 혹은 사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생 동안 고통을 받습니다.
육의 고통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이 제때 ‘하나님의 새 역사’를 맞지 못하고
시대 말씀을 듣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함으로
<영의 형체>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영>이 영원히 ‘저급 영계, 혹은 사망’에서 살게 되는
무서운 운명이 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하나님은 6000년 동안 구원역사를 펴시며,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위해 준비하고 역사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새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그 뜻을 이루십니다.
그 역사는 <휴거 역사>입니다. <사랑 완성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 신부>가 되어
삼위일체를 100% 온전히 사랑하며 사는 역사입니다.
지구 역사 이래, 하나님이 이 땅에 구원역사를 시작하신 이래
하나님은 인간에게 ‘최고의 사랑과 영광’으로 대해 주시며,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펴 나가십니다.
<새 역사>라서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으니,
하나님은 ‘새 역사에 필요한 것들’을 점차적으로 다 주십니다.
<개인>에게도 주시고, <새 역사>에도 주십니다.
마치 결혼하면 신랑이 신부에게 ‘예물’을 주듯이,
이 시대 휴거 역사, 사랑의 섭리역사를 위해
하나님도 성령님도 성자도 ‘필요한 것들’을 다 주셨습니다.
섭리역사 ‘1000년을 두고 쓸 것’도 주십니다.
당세에 주가 있을 때 받아야, 후손들도 쓰게 됩니다.
또, <당세>의 것은 주와 함께 당세의 사람들이 받고,
<후대의 것>은 후대들이 받습니다.
<가장 큰 것>은 ‘하나님의 시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전해서 ‘시대의 택한 자들’이 새 역사로 오게 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 <휴거>를 이루게 하고,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 신부>가 되게 하는 새 역사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궁, 시대 성전>을 주시고,
<새 역사의 기념품들>을 주십니다.
그러다 <휴거 후>에는 마치 결혼하고 집을 장만하듯이
삼위께서 역사하시어 <교회 건물들>을 사게 하셨습니다.
어떤 건물은 <새 시대의 표적을 넣어 이미 건축해 둔 건물>인데,
표상으로 그 건물을 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하나 <표적과 징조>로 계시하시며,
기적적으로 교회 건물들을 사게 하셨습니다.
모두 <신부들이 거하며 성삼위께 영광 돌릴 성전>이며
<삼위께서 영광 받으실 성전>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은 ‘위치’에 대해 계시하시며
위치가 얼마나 중한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도 집을 지을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땅이나 새로 산 땅 중에서
<최고 좋은 장소>에 집을 짓습니다.
하나님도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최고 좋은 장소>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시대 사랑의 대상체들이 거할
신부 집 = 성전을 주셨습니다.
주의 발길이 닿은 위치, 뜻이 있는 위치, 환경이 좋은 위치입니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차원 높은 것’을 주고 계십니다.
<전환>
◎ 이제 지금까지 해 준 말씀들을 한 번 더 정리해 주고,
마지막으로 전할 말씀을 해 주겠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역사>를 두고,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예언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에 <택한 자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쁨과 희망으로 살았습니다.
<약속하신 한 시대>를 두고,
구약 4000년 동안 각 시대마다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은 ‘기다렸던 역사, 약속하신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시대인들>은 그때 ‘새 역사의 소경’이 되어
<하나님이 시작하신 새 시대>와 <메시아>를 못 받아들였습니다.
자기들이 구원받을 때는 ‘그때 당세 한 시대’인데,
시대의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고로 그들은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지 못했고,
계속 ‘종 입장’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살았습니다.
<그 후손들>까지 그러했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메시아를 보냈는데 못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약속>은 ‘새 시대’에 이루어집니다.
고로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를 맞고 새 역사를 맞은 자들>만
‘하나님이 구약 때 하신 약속’을 이루고 새 역사를 펴 왔습니다.
결국 <구약의 다음 역사>인 ‘신약역사’는
처음에는 미약하였으나 점점 창대하게 되어 ‘딴 세상’이 되었고,
우러러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신약역사>를 펴시면서,
예수님과 제자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목적과 뜻>을 두고
<새 시대 새 역사>를 말씀하시며 약속하셨습니다.
이 새 역사는 2000년 신약역사가 끝나면,
<땅에 보낸 자>를 통해 ‘한 시대’를 두고 당세에 펴 나가십니다.
<한 시대>를 두고 당세에 역사를 펴 나가시니,
하나님은 ‘먼저 아는 자들’을 통해 시대 복음을 전해 주시고
새 역사를 믿고 따르도록 할 일을 다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녀급에 사는 구시대 기성인들>은
본인들의 신앙의 수준, 사고, 생각, 자기 행위대로 받아들였고,
신앙의 소경이 되어 새 역사를 불신하고 외면하고 배척했습니다.
이미 불신한 자들의 말을 듣고, 같이 불신한 자들도 많습니다.
그로 인해 <자녀급>에서 ‘삼위 앞에 신부가 될 자들’이
불신과 무지로 인해 못 되고 끝났습니다.
땅에서 <그 육신>도 ‘신부’가 안 되니,
<그 영>도 ‘신부의 영’이 안 되어
영원히 ‘자녀 취급’만 받고 ‘저급 영계’에서 살게 됐습니다.
이 역사는 <사랑의 근본을 이루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성약역사>입니다.
이 역사에서 <하나님이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는데,
<그 목적을 이룬 자들>은 ‘삼위의 절대 사랑의 대상체’가 됩니다.
이에 하나님은 ‘거기에 해당되는 것들’을 다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자녀>와 <사랑의 대상, 신부>는
차원도 다르고, 사랑도 다르고, 대함도 다르고,
함께 사는 것도 다르고, 영이 거하는 처소도 다릅니다.
휴거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고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된 자들의 영>은
주의 영과 함께 ‘사랑의 세계, 천국 황금성’에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와 함께 살게 됩니다.
<천국 황금성>은 천국에서 ‘최고 급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1000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합니다.
1000년의 혼인 잔치가 끝나면,
<최고 급 사랑의 천국의 삶>이 영원히 연속됩니다.
그 <육신>은 땅에서 ‘삼위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주의 육을 중심해서 ‘혼인 잔치 하며 사는 기간’을 보냅니다.
그 후손들까지 그 기간이 ‘1000년’입니다.
그러나 구시대 기성인들은
<무지>로 ‘소경’이 되어 이 같은 축복을 못 받고,
차원이 낮은 ‘자녀급’에 속해 삽니다.
그러다 ‘때’가 지나도 ‘기다리는 주님’이 안 오니,
예수님이 구름 타고 안 오신다고 실망합니다.
성경을 ‘문자’대로 풀고 믿고 ‘육적인 자’가 되어
그나마 ‘자녀권 구원’도 상실하고,
그 영이 ‘어두운 세계’로 가기도 합니다.
평소에 깊이 기도하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눈을 뜨고 있어야
때가 되어 <하나님의 새 역사>가 오면,
뜬 눈으로 알고 ‘새 시대’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저마다 ‘소경 된 신앙’을 하니,
항상 ‘볼 것’을 못 보고 ‘받을 것’을 못 받고 고통들을 당합니다.
때가 지나면 드러나니 그때 잘못도 인정하고 후회도 하지만,
이미 ‘때’도 지났고 ‘자기 시대’도 갔으니 그대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자기 젊은 인생’과 같이 갑니다.
고로 그때 못 받아들이면,
<자기 때>와 같이 <하나님의 때>도 가서 끝나고 맙니다.
때가 지나면, 나이 먹고 인생이 늙어서 끝난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제때’ 안 하면, 못 하고 끝납니다.
<확대한 하나님의 역사>도 ‘제때 황금기’에 못 받아들이면,
못 맞고 ‘구시대’나 ‘사망’으로 끝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지금부터 하는 말씀을 잘 듣기 바랍니다.
오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새 역사>는 ‘신부 시대’라서
삼위와 일체 되어 대화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주>를 통해 가르쳐 주고,
<삼위와 제대로 대화하는 자들>을 통해 차원대로 가르쳐 주어
삼위와 일체 되어 대화하게 합니다.
<새 역사 신부 시대>는
모두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변화되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이전 상태로 복직하고 성장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뜻, 창조 목적>을 이루며 역사를 펴 나갑니다.
<하나님의 성약 1000년 역사의 핵심>은
<당세>에 ‘휴거’로 이룹니다.
우리는 <주의 조건과 희생>으로,
<뜨거운 진리와 성령의 역사>로 ‘휴거’를 이루었습니다!
이제 차원을 높여 ‘삼위의 완전한 사랑의 대상체’로 거듭나서
주를 중심해서 삼위일체를 사랑하며
시대 복음을 전함으로 생명들을 번창시키며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후대들을 위해 <글>을 써서 남기고,
<화면>으로 남겨 보게 해 줌으로
그들이 역사의 확신을 가지고
기뻐하며 증거하며 따라오게 해 줘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성령도 ‘글’로 남겨 기록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선생은 시대 십자가를 지면서도
계속 ‘글’로 써서 역사를 기록합니다.
오늘(이 말씀을 쓰는 날)은 2017년 8월 1일입니다.
오늘도 새벽 1시부터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보낸 자를 중심해서 시대에 행한 일들을
글로 남기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시대의 역사’가 되고 ‘성경’도 됩니다.
<당세>에는 모두 보고 살았기에 어느 정도 알지만,
<후대>는 안 봤으니 모릅니다.
고로 ‘기록’해 놔야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한 당세인들>은
다 같이 한 시간에 죽지 않고,
역사를 펴 나가면서 하나둘씩 점점 죽어 갑니다.
그리고 점점 ‘다음의 때’가 와서
<기존 사람들>과 <새로 온 사람들>이 겹쳐서 갑니다.
그러면서 계속 ‘말’로 역사를 전달합니다.
그래서 100년, 200년, 500년 후에도 역사가 전달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기 감정을 넣어서 전달하기도 하고,
혹은 빼고 전달하기도 합니다.
고로 제대로 전달이 안 됩니다.
고로 <당세>에 ‘주인’이 정확히 ‘원본’을 기록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셨을 때의 역사>도
본 자들이 말한 것이 계속 전달되었지만,
똑같이 보고 들었어도 ‘기록한 것’이 조금씩 다릅니다.
<처음에 당세에 본 자>가 죽기 전에 전해 주고,
<그 말을 들은 자>가 다음 때에 전해 주어서
성경 말씀과 그 외의 말씀들이
지금까지 2000년 동안 전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만
제대로 풀고 그 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이 시대도 그러합니다.
<당세를 따르는 자들에게 전하는 말씀의 내용>과
<후대에 따르는 자들에게 전할 말씀의 내용>이
시대에 따라 약간 다릅니다.
<근본>은 같으나 ‘그 시대에 전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직접 말로 할 때>와 <글로 쓸 때>는
느낌도, 표현하는 말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말>로도 하지만, <글>로도 역사를 기록하여 남깁니다.
모두 <시대 복음>을 전할 때는
할 말, 안 할 말을 쪼개서 제대로 전해야 됩니다.
봤다고, 안 쪼개서 다 말하면 안 됩니다.
오직 ‘복음’만 전하기 바랍니다.
선생도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할 때
<나만 알고 행할 것>은 쪼개어 말하지 않고,
<시대 복음>만 말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중요 부분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역사의 기록>은 ‘매일’ 해야 되지만,
다 기록하자니 할 수가 없습니다.
<당세에 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 기록하려면, 지구를 백지장으로 삼아도 부족합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행한 것들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기록>은 저마다 ‘본 자들’이 기록을 해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 차원으로 보고 자기 인식으로 기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듯 ‘하나님 입장’에서 정확히 기록해야 됩니다.
주가 역사에 대해 말해도
- ‘각 사람의 차원’대로 말해 주고,
- ‘그때 그 사람이 처한 상황’대로 말해 줍니다.
고로 ‘그 당사자’만 내용을 압니다.
<문제를 아는 자>만 ‘답’도 제대로 압니다.
그 문제에 해당되는 답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성 죄를 저지른 자’에게 편지를 해 줬다 합시다.
“알았다. 잘해라.” 하고 답을 해 줍니다.
<이성 죄를 저지른 당사자>는
자기 죄 문제에 대해 고하고 답을 받았기에
‘알았다. 잘해라.’ 하는 이 말이 어떤 말인지 압니다.
그러나 <이 편지를 옆에서 본 사람>은
당사자가 아니라서 ‘문제’를 모르니,
기록만 보고 ‘아~ 잘하라는 편지구나.’ 하고 판단합니다.
당사자만 <자기 문제>가 무엇인지 아니,
<그 문제에 해당되는 답>을 주면 압니다.
하나님과 주의 말씀도, 설교도 그러합니다.
<행한 자들>이 더 잘 이해하고 압니다.
주가 ‘차원대로, 믿는 대로’로 답을 해 주니,
사람마다 ‘답’이 다릅니다.
그래서 <역사의 기록>은 ‘공적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해야 됩니다.
모두 역사를 기록하되, ‘중심 역사’를 기록하기 바랍니다.
섭리사를 배척하고 나가서 악평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도 말고 믿지도 말아요.
이들은 ‘하나님 앞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사탄의 육>이 되어 거짓과 음모로 악평들만 하니,
그 <정신과 생각>이 ‘악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 것’이 아니고 ‘자기편’이 아니면,
자기 주관대로 판단하고 나쁘게 대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절대로 심판하십니다.
이미 행한 대로 해 오셨습니다.
<환난, 핍박, 악평>까지 다 기록하다 보면
<하나님이 계시하시고 행한 것>을 더 많이 기록하지 못하니,
그런 것들은 몇 군데 이야기만 하지
수백 가지 사건들을 다 기록하지 못합니다.
하루 동안 행하고 일기를 쓰려 해도
제대로 쓰려면 10장 이상 써야 됩니다.
하물며 <역사의 기록>은 얼마나 많겠습니까?
너무 많아서 ‘한 건’만 써도 ‘책 한 권’이 나옵니다.
고로 ‘공적 역사’를 중심해서 기록합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펴고 가면서,
말 못 할 ‘수백 가지의 일’을 다 겪고 삽니다.
고로 ‘고통’도 받지만 ‘실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니,
기쁨과 희망과 보람과 사랑입니다!
성삼위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 말씀 마쳤습니다.
<말씀 후 광고>
◎ 이번 주 수요말씀은 ‘특강’입니다.
무슨 특강이냐고요? ‘17기 신학 말씀’입니다.
◎ 모두 17기 신학생들이 주께 어떤 교육을 받는지 궁금하지요?
그래서 <7월 신학 말씀>을 ‘수요 특강’으로 전해 주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모두 알아야 ‘방향’을 알고 행할 수 있습니다.
◎ 신학생들이 각 교회에서 외쳐도 되는데
신학생들은 주의 정신을 받은 만큼 어서 전도하며 외치고 다녀야 하
니,
<부흥강사가 주의 몸 되어 외친 주의 말씀>을 듣게 해 주겠습니다.
◎ <17기 신학>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지만,
이번 주 수요일에 <17기 신학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두에게 맛보기로 보여 주겠습니다.
◎ 17기 신학생들은 이 말씀을 듣고 다시 정신 차리고 행하고 있지요?
수요일에 한 번 더 주의 교육을 듣고,
모두 뭉쳐서 ‘신학의 불’을 가지고 ‘불’이 되어 행하기 바랍니다.
◎ 전 세계 섭리인들도
이 말씀을 통해 ‘주의 방향’을 듣고 ‘불’을 받아
남은 시간 불같이 행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