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7.08.30 (수)
170830 수요말씀
- 선포일
- 2017.08.30 (수)
- 성경 본문
- 고린도전서 14장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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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30일 수요말씀>
역사의 기록 : 질서의 세계
본 문 고린도전서 14장 40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8월 13일 주일부터
<책으로 남기기 위해 기록한 말씀>을 설교로 전해 주고 있습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몸자세와 신앙의 자세>,
<마음과 생각과 행실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했는데요,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을 오늘 마저 해 주겠습니다.
◎ 오늘 말씀은 <질서>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잠언식>으로 전해야 이해가 더 잘되니,
<잠언>으로 말씀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자기는 열심히 하는데도 상대가 몰라주는 원인이 있다.
각자 ‘자기 인생 삶의 골짜기’에 깊이 들어가서
몸부림치고 일을 하니 ‘산맥’이 가려서 안 보인다.
<일하는 골짜기>에 가서 ‘일해 놓은 것’을 보면 안다.
서로 그러함을 알고, 알아주고 칭찬도 해 주어라.
<섭리사 일에 관심이 없고 일을 안 하는 자>는
‘일하는 자의 심정’도 모르고 ‘해 놓은 것’도 모른다.
<생각의 소경>이라서 그렇다.
모두 자세를 바르게 하듯이, 바로 보아라.
자기도 일해 보면서 겪어 봐야 ‘상대가 일한 것’도 알아준다.
<새 시대에 눈을 못 뜨고 새 시대 일을 안 하는 자>는
새 시대 사람들이 ‘새 시대의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
누가 알아주나 안 알아주나
자기는 이미 행해서 <구원>도 받았고 <휴거>도 받았고
<상>도 받았고 <받을 것>을 받아 놨으니,
오직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를 보고서 할 일을 행해라.
<잠시 쉬었다가>
<질서>가 무엇이냐. 곧 ‘질이 서는 것’을 말한다.
<질이 서는 것>은 무슨 말이냐.
곧 ‘질들었다. = 길들었다.’라는 말이다.
<질서>는 ‘법’이다.
곧 ‘법이 섰다. 사람이 바로 섰다.’라는 말이다.
<질>, 곧 <길>이 나서 바로 서야 ‘중심’이 선다.
<하나님의 세계>는 ‘질서의 세계’다.
곧 ‘질=길이 바로 선 세계’다. ‘온전하다, 완전하다’ 함이다.
길을 닦아서 길이 서면, 길을 닦은 대로 다닌다.
열차 길을 닦아서 길이 서면, 열차가 길을 닦은 대로 다닌다.
인생도 그러하고, 신앙도 그러하다.
<질서>를 벗어나면
목이 굳고 허리가 틀어지고
무릎과 골반이 돌아간 채 다니는 자와 같아서
오래 못 가서 주저앉는다.
<1차>로 질이 서야 된다. 길이 서야 된다. 길이 잘 들어야 된다.
마치 자세를 바로 교정할 때
1차로 제일 먼저 뼈를 바로 세우고 다니듯,
<마음과 행실의 질>을 바로 세우고 다녀야 된다.
<마음과 행실의 길>이 똑바로 ‘1자’가 돼야 하는데,
60도, 혹은 45도, 혹은 30도로 굽어 있는 자들도 있다.
어떤 자는 아예 ‘―’가 되어 누워 버렸다.
이런 자는 ‘누운 것에 길들어 버린 자’다.
길이 잘못 들었다. 질이 잘못 섰다.
<동물>도 길들이기에 달려 있다. <사람>도 그러하다.
<질들었다. 길들었다.> 함은 아주 체질이 됐다는 것을 말한다.
<질이 좋은 사람>이 있고, <질이 나쁜 사람>이 있다.
재판 때도 ‘그 사람의 질’이 좋은지, 나쁜지를 크게 본다.
그런데 <좋은 질을 나쁜 질로 보고 재판하는 법관>도 있다.
그런 자는 ‘질이 안 좋은 나쁜 법관’이다.
하나님은 공의롭게 ‘각도’를 재 보시고 ‘질’을 측정하신다.
<정상의 길>에서 벗어나면 ‘죄’로 보신다.
<잠시 쉬었다가>
<질과 양>이다.
양이 많아도 질이 안 좋으면 - 가치가 낮고,
양이 적어도 질이 좋으면 - 가치가 높다.
질도 좋고 양도 많으면 - 가치가 최고다.
<비진리>이면 많은 자들이 따라도 질이 안 좋으니 - 가치가 낮고,
<진리>이면 따르는 자들이 적어도 질이 좋으니 - 가치가 높다.
하나님은 ‘작아도 최고로 질이 좋은 것’,
그런 장소와 사람을 택하여 역사를 펴신다.
곡식도 과일도 ‘질’을 보고 가치를 따지고 씨를 남긴다.
<품종>을 ‘질’로 표현한다.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은 수한까지 생명이 존재하기는 하나
<질>이 안 좋아서 ‘효력’과 ‘기능’을 잃고 쓰러진다.
<질>은 ‘품질’이다.
물건을 보면, 얼마나 ‘질이 안 좋은 물건’이 많냐.
적당히 대충 만들어서 질이 나쁜
건물, 물건, 생활용품들이 너무 많다.
<질이 나쁜 물건>은 일찍 폐품이 되어,
일찍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진다.
<마음, 생각, 행실의 질>도 안 좋으면, 가치 있게 쓸 수가 없다.
질이 바로 서도록, 길이 바로 들도록
주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고쳐서
자기를 ‘가치 있는 자’로 만들어라.
<체질>은 ‘몸의 질’이다.
<체질>이 안 좋으면, 병을 고쳐도 자꾸 또 병이 발생한다.
고로 <체질>을 좋게 만들기다.
사람이 <몸>을 연단하지 않고 그냥 쓰면,
질이 별로이고, 길이 안 들어서 약하다.
고로 조금만 더워도 못 견디고,
조금만 추워도 추위를 타고 몸살이 나서 못 견디고,
환경의 영향을 너무 잘 받아서 힘들어하고,
작은 일만 생겨도 신경병에 걸려서 고통을 받고,
쉽게 우울증에 빠져서 제 기능을 못 한다.
고로 사는 데 너무 고통이 많다.
고로 연단하고 단련하여 <체질>을 강하게 만들어야 된다.
<마음과 생각>도 안 만들고 그냥 쓰면,
사람들과 너무 많이 부딪히고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충격을 받고 괴로워한다.
<몸>도 운동하고 단련하여 강하게 만들듯이,
<마음과 생각>도, <신앙>도 강한 체질로 만들어서 써야 된다.
그래야 편하게 살게 된다.
세상에는 ‘각종으로 부딪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연단하고 단련하지 않으면,
작은 토끼가 좋다고 쫓아와도 자기를 무는 줄 알고 기절한다.
연단되고 단련되면 뱀이 쫓아와도 일순간에 잡고,
큰짐승이 쫓아와도 다스린다.
연단되고 단련되면 어떤 문제가 닥쳐도 대처하고, 큰일도 해낸다.
<마음>도 <생각>도 ‘담대한 질’로 만들어라. 연단이다. 단련이다!
강철 기둥 같아라! 바위산 같아라! 1000년 묵은 소나무 같아라!
자연성전을 보아라. 돌과 바위가 굳건하게 서 있다.
비바람, 눈보라를 견디고 빛이 난다.
<질 나쁜 돌>은 다 깨졌다. 빼냈다.
너희 <마음과 생각>도 질이 좋고 굳건해야
비바람을 견디고,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하게 서 있게 된다.
<질 나쁜 것>은 귀히 쓰이지 않는다.
또한 약해서 ‘영화(榮華)’가 합당치 않다.
대장간에서 쇳덩이를 불에 넣고 물에 넣어 담금질하여
<좋고 단단한 질의 연장과 도구>로 만들듯이,
네 마음과 생각도
<물 같은 진리>와 <불 같은 성령>으로 담금질하여
<인생 걸작>이 되게 만들어라.
잘못해서 지적하는데,
자기 질이 나쁜 것은 모르고 서운하다 한다.
그러니 어떻게 귀히 쓰겠느냐.
인생, 잘 만들기 끝없다. 잘 만든 자를 보면, 눈에 확 띈다.
<몸의 질, 마음과 생각의 질>이 안 좋으면
수고를 많이 해도 수고한 만큼 ‘표’가 안 나고 ‘효력’이 없다.
<질>이 좋아야
- 주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있으면 마음과 생각이 잘 느끼고,
- 더 좋은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물건도, 자동차도, 녹음기도, 스마트폰도 질이 안 좋으면
<감도>가 약해서 제 기능을 못 한다.
<품질>은 ‘감도’를 좌우한다.
<잠시 쉬었다가>
육도 영도 ‘질’이 좋아야
- 빛나고,
- 제 기능을 발휘하고,
- <삼위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 ‘귀한 위치’에 서게 된다.
처음에는 미약하나
<마음과 생각의 체질>을 ‘굳건하고 좋은 질’로 만들어라.
<물건>도 제값을 줬는데 ‘품질’이 안 좋으면
기분이 나빠서 딴 것을 사다 쓰게 된다.
<사람>도 ‘질’이 안 좋으면 그러하다.
<강하고 거친 생각과 행위의 질을 가진 자>를 사람들은 싫어한다.
무섭다고 피하고, 그 옆에 있기 싫어서 떠난다.
<안심같이 부드럽고 연한 마음과 생각과 행위의 질>이다.
<온유한 마음의 질>이다.
<유순한 말>이다.
<피부의 질>도 부드럽고 고와야 좋다.
피부가 염소나 물소 가죽처럼 뻣뻣하면, 안 좋다.
이와 같이 ‘은혜의 피부의 질’이 좋아야 된다.
<주의 말씀>을 받고 <성령의 불>을 받고 <하늘 사랑>을 받았어도
말과 행위가 거칠면 ‘질이 안 좋은 닭살 피부’ 취급을 한다.
그 ‘거친 말과 행위’가 살에 닿으면
기쁨은커녕 기분 나쁜 느낌을 받고,
마치 ‘쐐기’가 쏘듯 하고 ‘참나무 껍데기’가 스치듯 하여
<부드러운 피부 같은 마음>에 멍이 들고 상처가 나서
<자연성전 병원>으로 기도하러 간다.
<마음과 생각과 행동의 질이 강하고 거친데 못 고치는 자들>은
쓰기는 하되, ‘강하고 거친 위치’에 쓴다.
<가인 성격의 질>이 구약부터 신약을 거쳐 이 시대까지 왔다.
<가인의 후손들>은 ‘메시아’를 못 맞았다.
어떤 사람은 <인상>은 험한데,
<마음의 질, 말의 질, 행위의 질>은 부드럽다.
<지혜>로
그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성령’으로 대한다.
<이상세계>는 ‘말과 마음과 행실의 질이 좋은 신부의 세계’다.
<악평을 일삼는 자들의 질>은 그 성질대로
- 엉겅퀴 같고,
- 자갈밭 같고,
- 물이 없는 사막과 광야 같고,
- 인기척이 전혀 없고 야수들과 뱀과 해충들이 사는 밀림 같다.
<전쟁을 일삼아 사람의 생명을 멸하려고 하는 자들>은
생명들을 무참히 대하기 위해
무기만 주력해서 만들고 평화를 멸시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데도 안 하면,
결국 ‘그들 자신이 만든 살생 무기’로 심판하신다.
지구 세상 어느 민족이나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택한 민족’이다.
그러나 <질서>를 깨고
타락, 음란함, 불법, 횡령, 사기, 무력, 미움, 꾐,
의를 짓밟는 행위, 악평 등으로 질이 나쁘게 살면
하나님은 <개인적 심판, 가정적 심판, 민족적 심판>을 정해 놓고
그 시대 보낸 자와 함께 행하신다.
<마음>이 담대하고 <행실>이 부드럽고 힘이 있어,
‘사탄’도 이기고 ‘악’도 이겨야 된다.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근육과 힘줄’이 땅겨서 아프다.
목을 앞으로 숙이면
목 앞쪽은 안 아픈데 뒷목과 등 쪽 근육이 땅기고,
힘줄이 쭉 잡아당겨지니 그리도 아프고 통증이 온다.
이와 같이 <질서의 자세=질이 서 있는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의의 힘줄>을 ‘악과 불의’로 잡아당기는 격이 되어
생활의 고통이 온다.
<잠시 쉬었다가>
질서를 지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도 복잡하지 않다.
질서를 어기면, 적은 인원수가 살아도 부딪히고 복잡하다.
<질서>는 ‘순리’다.
<질서>는 ‘순서’다.
<질서>는 ‘정돈’이다.
<질서>는 ‘참’이다.
<질서>는 ‘제 위치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 하나님께 ‘질서에 대해 빠진 말씀’이 있냐고 간구하니,
다음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 <질서>는 ‘온전히 행하는 것’이다.
* 때는 2017년 7월 29일 오전 10시 35분이다.
새벽부터 기도하고,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나님)
<사람 몸의 지체>를 모두 ‘질서’로 창조하였느니라.
<천지 만물>을 모두 ‘질서 있게’ 창조하였느니라.
고로 <질서>로 ‘인생’을 살아야 잘된다.
<질서>로 ‘천지 만물’을 대해야
만물도 ‘순리’로 대해 주고 잘된다.
<질서가 무너질 때> ‘혼돈’이 오고 ‘고통’이 온다.
질서 있게 살아라. 그러면 쉽고 잘되고 형통한다.
<질서>가 무엇이냐. ‘하나님의 법’이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쉽고 잘되고 형통한다.
모두 ‘정리, 정돈, 질서’다.
<질서>를 떠나면, ‘위치를 떠난 천사장 루시퍼’같이 된다.
<질서>, 곧 <순서>가 바뀌면 기계도 결합이 안 되듯이
만사의 모든 일도 그러하다.
먼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뛰어 보아라.
질서가 뒤바뀐 고로, 힘들어서 뛰지도 못한다.
<질서>대로 먼저 뛰고 씻고 음식을 먹으면,
질서대로 했으니 ‘이상세계’다.
<하루 삶의 순서>도 질서가 바뀌면,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도 않고 오히려 고통이다.
<문장을 엮어 글을 쓸 때>도 질서가 바뀌면
글 표현이 제대로 안 된다.
가령 ‘사람이 차를 탔다.’라는 말을
질서를 떠나 ‘차가 사람을 탔다.’라고 쓰면,
혼돈되어 의미 전달이 안 된다.
또 ‘사람이 개를 몰고 갔다.’라는 말을
질서를 떠나 ‘개가 사람을 몰고 갔다.’라고 쓰면,
혼돈되어 의미 전달이 안 된다.
또 ‘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했다.’라는 말을
질서를 떠나 ‘사람이 하나님을 심판했다.’라고 쓰면,
혼돈되고 말도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만사의 모든 일’을 질서 있게 행하신다.
그리고 ‘질서를 깨뜨리고 혼돈 속에 사는 자들’을
질서 있게 다스리신다.
<질서>는 ‘그때마다 먼저 할 것을 먼저 하는 것’이다.
<음식>도 ‘질서’대로 안 만들면 만들 수가 없고,
만들어 놔도 맛이 없다.
<말>도 ‘질서’대로 ‘순서’대로 안 하면, 이해가 잘 안 된다.
<질서대로 살지 않는 자>는 ‘늘 고통’이다.
<하나님의 법>은 ‘질서’다.
먼저 <영>이 ‘천국’에 가고,
나중에 <육>이 ‘땅에서 조건’을 세우느냐.
먼저는 <육>이 ‘땅’에서
주를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하고 삼위일체를 사랑하면서
합당한 행위로 조건을 세우고,
후에 <그 행위로 변화된 영>이 ‘천국’에 간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법의 질서>를 안 지키면,
육도 고통이고, 영은 결국 영원한 형벌이다.
<질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질서’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보낸 자>를 통해 행하신다.
◎ 말씀 마쳤습니다.
◎ 이 말씀을 책으로 엮을 때는
8월 27일 주일말씀으로 나간
<역사의 기록 : 몸자세와 신앙의 자세, 마음과 생각과 행실의 자세>
이 말씀과 연결해서 엮어야 됩니다. - 교육국, 출판국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