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7.09.13 (수)
170913 수요말씀(목적을 두고서 생각을 집중하고 해라)
- 선포일
- 2017.09.13 (수)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6장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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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13-수요말씀(목적을_두고서_생각을_집중하고_해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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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3일 수요말씀>
목적을 두고서 생각을 집중하고 해라
본 문 마태복음 6장 21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과
성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말씀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 이번 주 주일에는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룬 자’에 대해서
깊은 말씀을 전해 줬습니다.
◎ 오늘은 ‘목적을 두고서 생각을 집중하고 해라.’라는 주제로
<잠언>으로 말씀하겠습니다.
역시 ‘책으로 꾸밀 말씀’입니다.
◎ 한 분야씩 책으로 꾸미지 않으면, 그냥 <잠언>으로만 끝납니다.
밀가루나 쌀가루로 각종 음식을 만들듯,
각종 분야의 주제로 책을 꾸며야 됩니다.
오늘도 ‘네 개 분야의 글’을 썼습니다.
이 말씀까지 하면 ‘다섯 개’입니다.
오늘만 ‘다섯 개 분야의 책’을 만든 것입니다.
◎ <교육국>은 그동안 주가 한 말씀들을
주제별로 엮어서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첫째, ‘부활, 휴거, 재림, 삼위일체, 창조 목적’ 등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으로 방대하게 나간 말씀들을
주제별로 엮어서 <읽고 외쳐라> 책을 만들었고,
또 계속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둘째, ‘죄와 회개, 뇌 사랑, 기도’ 등
몇 번에 걸쳐서 주일말씀과 수요말씀으로 나간 말씀들을
한 번에 보기 좋게 엮어서 책을 만들었고,
또 다른 주제의 말씀으로도 계속 만들어 나가려 합니다.
◎ <출판국>은 설교집, 잠언집을 냈는데,
<역사의 기록>에 관한 말씀은
설교로 나간 말씀이나, 잠언으로 나간 말씀이나
모두 그냥 설교집, 잠언집을 엮는 것이 아니라
한 분야씩 따로 엮어서 책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냥 설교나 잠언으로만 끝납니다.
◎ 오늘 말씀 ‘목적을 두고서 생각을 집중하고 해라.’
말씀 시작하겠습니다.
<말씀 시작> 중요 부분
<목적>을 두고 생각을 집중하고 하지 않으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이 흐려져서 목적대로 행하지 못하여 무(無)로 사라진다.
<목적한 것>에 생각을 집중하고 입으로 말하면서 집중해야 된다.
그러면 <목적한 것에 해당되는 생각>이 차원 높고 깊게 떠오른다.
<뇌>는 ‘눈’과 같다.
<눈으로 집중해서 쳐다볼 때>
사물이나 사람이나 존재물이 세밀히 보인다.
이와 같이 <생각을 집중할 때>
- 목적한 것을 두고 좋은 방법이 생각나고,
- 혼적 단계, 영적 단계로 들어가 생각하게 되어
육의 생각보다 차원 높게 보고 알게 된다.
<이때 보는 것>이
질서대로 ‘육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를 보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판단하면, 훨씬 이상적이다.
<자기 소질과 재능>도 자꾸 해 볼수록 더욱 유능해지듯이,
<생각>도 자꾸 하면 할수록 ‘유능한 생각’이 되어
분별도 잘하고 판단도 잘하게 된다.
생각을 집중함으로
<혼의 세계>를 거쳐 <영의 세계>에서 영적으로 생각하면,
최고의 생각이 된다.
그때 ‘하나님 주관권 안의 생각’을 하게 되고,
‘하나님의 생각과 일체 된 생각’을 하게 된다.
<뇌>는 집중할수록 ‘목적한 것’에 집중되어 느끼고 깨닫는다.
<뇌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연결된다.
<삼위와 일체 된 생각을 하는 것>이 ‘영의 생각’이다.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많다.
그런데 <뇌의 생각>에서 좋은 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못 얻는다.
<뇌>는 ‘손’과 같다.
<손>을 가지고 자꾸 일을 하면, 여러 가지를 얻는다.
<손>으로 그림을 그리면 그림을 얻고,
<손>으로 글을 쓰면 글을 얻고,
<손>으로 작품을 만들면 작품을 얻는다.
<뇌>도 자꾸 생각을 함으로 얻는다.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은 것>을 가지고 자꾸 생각하여 분별하고,
<목적한 것>을 두고 생각을 집중하여
영의 세계로 가서 ‘하나님의 생각’을 받고 행해라.
<뇌의 생각>이 잠을 자면 모른다.
<뇌의 생각>이 ‘육’에 속해 살면,
육 주관권의 것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생각>을 깊이 하여 ‘지상영계’에만 들어가도
육의 세계보다 차원이 높으니 ‘보다 차원 높게’ 깨닫는다.
그 생각을 가지고 육의 세계에 나와서 행하면, 얻는 것이 많다.
<뇌>로 ‘생각’하기 시작하여
<영의 세계>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서 행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차원의 것을 얻게 된다.
<먼 거리라서 ‘자기 육이 직접 행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는
<자기 혼>을 보내서
<뇌의 생각>을 가지고 ‘원격 조종’을 하면서 쓰면,
마치 ‘육이 간 것’같이 보고 얻게 된다.
<생각>으로 ‘자기 혼과 대화’다.
<혼이 영계에서 본 것, 지상에서 본 것>에 대해
‘생각’으로 물어봐라.
유능하게 될 때까지 계속해야 된다.
화가가 ‘자기 손’을 가지고 초상화를 유능하게 그리듯,
<뇌의 생각>도 유능하게 써먹어라.
제때 먹어야 제맛이 나고 최고로 좋다.
제때 먹고 그로 인해 힘을 받고 일을 해서 ‘실체’를 얻어 놓고,
주와 함께 삼위를 모시고 사랑하며 쓰는 것이다.
<잠시 쉬었다가>
<생각의 집중>을 어느 정도까지 해야 되겠느냐.
칼이 예리하게 될 때까지 칼을 갈듯 그리해라.
생각이 예리하게 집중되면, 어떤 문제를 놓고 바로 판단하게 된다.
생각이 예리하게 집중되면, 바로 분별하게 된다.
생각이 흐릴 때는 ‘집중을 안 해서’다.
졸음이 올 때 생각을 집중하면 안 졸린다.
그 정도로 집중하면, ‘딴 세계’다.
<생각>이 ‘미각’까지 좌우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데 ‘딴생각’을 하면,
그 음식 맛을 모르고 먹게 된다.
하루는 선생이 밥을 먹다가 ‘다른 것’에 생각을 집중하니,
음식도 안 보이고 음식 맛도 몰랐다.
그 순간에 ‘생각한 것’을 <시>로 쓰고 <노래 가사>로 썼다.
20여 분이 지나고 보니,
내 앞에 ‘밥과 음식’이 있었다.
<생각>에 의해 ‘보이는 것’도 ‘듣는 것’도 좌우된다.
무엇을 보고 있어도 다른 것에 생각을 집중하면 안 보이고,
무엇을 듣고 있어도 다른 것에 생각을 집중하면 안 들린다.
생각을 집중하면 옆의 소리도 안 들리고 자기가 아픈 것도 못 느끼고,
<집중한 것>만 의식하고 하게 된다.
<생각>을 ‘천 리나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니,
<생각의 파장>이 ‘영상’이 되어 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과 <혼>이 ‘생각한 곳’에 가서 그 모습을 중계한 것이다.
<자기 생각>이 <혼의 생각>과 함께 작동하면,
<혼>이 ‘생각한 곳’에 가서 그 현장을 중계하여
<육>이 알게 된다.
<천국에 있는 것>도 ‘혼’이 가서 보고 듣고
그것을 ‘생각’을 통해 ‘자기 육’에게 중계해서 알게 된다.
동물도 곤충도 <느낌>으로 ‘멀리 있는 것’을 느끼고 알고 행한다.
사람도 <뇌 생각의 파장>으로 느껴서 안다.
거리는 상관없다.
생각을 집중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일체 되면,
<우주, 땅속, 영의 세계의 것>까지 알게 된다.
<코>로 ‘냄새’를 맡고 ‘멀리 있는 것’을 알듯이,
<뇌의 생각, 혼, 영>으로 ‘느낌’을 받고 안다.
<3차원>은 ‘감각, 느낌, 직감’이다.
<4차원>은 ‘영에 속해서 영으로 아는 것’이다.
<영>으로 알고 <육>이 가서 확인하고 알면 확실하다.
<확실히 아는 자>가 ‘신’과 같다.
<사람의 뇌와 생각>도 개발을 안 하고 쓰면,
모양은 ‘사람’같이 생겼어도
사람으로서 ‘짐승 차원’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그 차원에서 살다가 죽는 자들이 많다.
일생을 살아도 ‘특별한 삶’을 살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신경을 써서 영리해진 짐승들>은
사리 분별을 아주 잘하고 죽음도 피한다.
<짐승>도 ‘죽을 짓’을 거듭하지 않는데,
<사람>은 ‘위험한 것’을 거듭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짐승>은 위험하면 판단하고 안 간다.
그런데 <사람>은 위험한데도 거듭 행하여 사고를 많이 당한다.
시행착오가 너무 많다.
하나님이 ‘인간의 뇌’를 뛰어나게 창조하셨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훨씬 좋은 뇌’를 가지고 산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개발을 안 해서 예리하게 안 쓰니,
짐승보다도 예리한 판단을 못 할 때가 많다.
<말씀 마무리> 중요 부분
◎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와 거리가 얼마나 멀어져서 살고 있는지,
그 표준을 어디에 두는지 아느냐.
첫째,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에 따라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와 자기와의 거리>가 결정된다.
둘째,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와 자기와의 거리>가 결정되고,
<사랑의 강도>가 결정된다.
<말하는 것>을 보면 어떤 사이인지, 누구인지 안다.
<말하는 것>을 보면 종인지, 자녀인지, 애인인지 안다.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보면 구약인지, 신약인지, 성약인지 안다.
<가까운 자, 일체 된 자>는 ‘말하는 단어’가 다르다.
<영의 세계>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대하느냐에 따라서
<사는 주관권>이 결정된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사랑으로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를 대하느냐에 따라서
<위치>가 결정된다.
▸ <구약인들>은 ‘종 입장’에서 하나님을 ‘주인’같이 대한다.
고로 <그 영들이 거하는 곳>도 ‘삼위가 계시는 천국’에서 멀다.
▸ <신약인들>은 ‘자녀 사랑’으로 하나님을 대한다.
고로 <그 영들이 거하는 곳>도 ‘자녀 주관권’이다.
▸ <성약인들>은 ‘사랑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대한다.
고로 <그 영들>도
삼위가 계시는 천국의 삼위와 최고 가까운 주관권에서 살게 하시고
<그 영들이 거하는 성>도
삼위가 계시는 곳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
<하나님이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마치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으로 ‘한 몸’ 되어 살듯,
삼위가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사랑하는 만큼
인간도 삼위를 ‘사랑의 대상’으로서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은 <사랑>을 ‘최고의 기준점’으로 보신다.
이에 <사랑이 온전한 자들>을 ‘최고의 보화’로 보신다.
<하나님이 최고로 목적하시는 것>을 <자기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눈도 귀도 생각도 집중해서 살아야 된다.
◎ 말씀 마쳤습니다.